작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했다. 세계적인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영국 왕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영국의 드라마 시리즈 ≪다운튼 애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는 영국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세계나, 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반대로 나처럼 ≪다운튼 애비≫에 대해 모르거나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 후 왕실 일원에서 물러나고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정도의 관심이 있는 이라면 매력이 적을 수도 있겠다.


영국을 생각하면 신사와 귀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책에서 소개하는 상류계급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어퍼 클래스’라는 계급은 작위가 있는 귀족뿐 아니라 ‘젠트리’라 부르는 지주도 포함된다고 한다. 시작부터 우리의 조선 시대의 가계도가 함께 겹쳐지는 건 왜일까. 아니나 다를까, 영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제도가 많았다. 귀족의 칭호도 무척 복잡하다. 이름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된다고 볼 수 있다.


칭호는 그 사람이 공작, 후작, 백작의 장남인지, 차남 이하의 아들인지, 그 아래의 작위를 가진 집안의 아들인지, 귀족의 딸인지, 아내인지, 이혼한 아내인지를 드러내는 구조로 되어있다. ‘정식’작위와 ‘예의상의’ 작위의 차이점도 사실은 영어 표지로 알 수 있다. ‘정식’작위는 The Duke of Devonshire라고 ‘The’가 어두에 붙는 반면, ‘예의상의’ 작위는 Marquess of Hartington이라는 식으로 ‘The’가 붙지 않는다.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 19쪽)


물론 그들 세계에서는 체계적이겠지만 말이다. 귀족과 지주의 작위와 토지, 재산은 전부 장남만 상속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어퍼 클래스’는 장남이고 차남 이하의 아들들인 ‘미들 클래스’에게는 작위는커녕 토지 상속도 불가능해 직업을 가져야 했다. 그러니 딸은 아예 찬밥이 아닐까 싶은 생각.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 속 사교 모임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무척 안타깝게 다가온다. 조선 시대의 조신한 양반가의 모습이라고 할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퍼 클래스’에게도 고충은 있었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어퍼 클래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소유하고 있던 저택과 토지를 관리하는 것,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웃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 그리고 저택과 토지를 온전히 다음 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주민들이 좀 더 가까운 길로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의 토지에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는 ‘통행권’을 발급하고, 토지와 저택을 1년에 몇 번씩 공개하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무다.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 90쪽)


상속받은 것을 유지하는 일, 사교 모임을 게을리하지 않고 주말마다 하우스 파티를 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귀족과 대지주들에게 재력이 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 부호의 딸이 영국 어퍼 클래스에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시대적으로 ‘올드 머니’가 주름잡던 미국 사교계의 신참인 ‘뉴 머니’는 런던으로 건너와 영국 귀족들과 사귀고 결혼한 것이다. 귀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가 바로 그들이 살았던 집, 그러니까 성이나 컨트리 하우스다. 어퍼 클래스는 같은 계급의 사람이라면 직접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부재중이라도 저택과 정원을 가정부와 집사에게 안내하도록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 관광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종가의 고택을 지키는 종손을 떠올리면 쉽겠다.


원래 그들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대저택이기는 하나, 그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으면 가짜처럼 인식되고 만다. 물론 20세기 이후의 컨트리 하우스 관광에는 어퍼 클래스의 생활을 엿보고 싶다는 관음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소유주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어퍼 클래스에 대한 기대도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 140쪽)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어퍼 클래스의 자제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변한 과정과 대학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현재 어퍼 클래스는 여전히 영국의 문학과 문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묘사된다. 그들과 만난 적 없고 접한 적 없는 이들에게 궁금증으로 가득한 존재인 건 틀림없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누군가에게는 영국의 문화와 어퍼 클래스에 대해 알아가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영국의 ‘어퍼 클래스’의 흐름이나 변화에 대한 제인 오스트의 소설이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처럼 다양한 작가의 소설이나 회고록을 통해 설명한다 게 인상적이다.. 영국 문학을 많이 접한 이들이라면 이 접점이 흥미롭게 작용해 풍부한 독서로 이어져 만족할 것이다.


이 책과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귀족 문화』를 같이 읽어도 좋겠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 그러니까 여왕으로 살아온 삶을 조금이나 알 수 있다. 제목 그대로 빅토리아 여왕과 그를 둘러싼 영국 왕실과 귀족 문화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개인적인 일상이 전부는 아니다. 당대의 모든 기록을 동원하여 설명하는 세계사 책이라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쓴 일기, 당대의 기록인 신문기사, 여왕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자서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들려준다. 영국사이자 세계사인 것이다.


책은 ‘제1장 즉위준비 1819-1837’를 시작으로 대관식, 빅토리아 왕국, 여왕의 결혼, 만국박람회와 전쟁, 남편의 죽음과 여왕의 마지막 ‘제9장 끝날 때’까지 시간별로 소개한다. 고백하자면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일기를 썼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우리의 역사를 생각하면 왕조 실록처럼 여왕을 보필하는 누군가의 기록이 아닌 여왕이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다는 점이 무척 남다르다. 18세의 나이에 자신이 여왕이 되었다는 사실과 결의에 찬 다짐을 자세하고 담담하게 기록했다.


커닝엄 경은 유감스럽게도 나의 할아버지, 국왕께서 이미 세상에 없다는 것, 오늘 새벽 2시 12분에 숨을 거두셨으면 이로 말미암아 내가 여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고했다. 커닝엄 경은 무릎을 꿇고, 내 손에 입맞춤을 했다. (빅토리아의 일기 (1837년 6월 20일), 12쪽)


신의 뜻에 따라 이 지위에 오른 이상, 나는 전력을 다해 나라를 위한 의무를 다할 것이다. 나는 너무나 어리고, 전부라고까지 하지 않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경험이 부족할 테지만, 지금의 나만큼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진정한 선의와 열의를 품은 사람은 없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빅토리아의 일기 (1837년 6월 20일), 41쪽)


이처럼 책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일기를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일기뿐 아니라 여왕과 관련된 각종 삽화와 초상화로 그 시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공간에서 지냈는지 세계사를 이해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즉위 3년 후 독일의 작은 연방국 군주의 차남 앨버트와 결혼한 여왕. 어머니의 오빠의 자식, 사촌 오빠와의 결혼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빅토리아는 핸섬하고 지적인 앨버트에게 반했다. 여왕이면서 한 남자의 아내로 모두 아홉의 자식을 둔 빅토리아 여왕.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아이보다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컸다. 빅토리아 여왕에게 혈우병이 유전자가 있어 영국 왕실에 퍼트렸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빅토리아와 아이들의 관계는 복잡한데, 시기에 따라, 연령에 따라, 그녀 자신의 상태와 기분에 따라 변화해 간단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생후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이는 ‘개구리 같다’면서 귀엽게 생각하지 않기도 했다. 아이보다 남편의 존재가 훨씬 컸고, 그와 단둘이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144쪽)


앨버트는 왕궁 개혁을 착수했는데 명령 계통을 정리하고 권한을 강화했다. 사용하지 않는 양초의 교환 구매나 허위 인원을 위한 와인 구입비 청구를 폐지시킨 것.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줄줄 새는 비용이 있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여왕이 신경을 쓰지 못하는 부분을 앨버트가 꼼꼼하게 챙기고 있었다. 아마도 영국의 공식적 여왕은 빅토리아였겠지만 여러 곳에서 앨버트의 영향력이 존재했을 것이다. 일중독자였던 앨버트는 런던 만국 관람회 당시 쓰러질 정도였으며 산업계, 군대, 교육계를 비롯한 노동자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다방면에 참여했다. 치통, 두통, 위통을 달고 살았고 1861년 12얼 14일 생을 마감했다. 남편의 사망 후 빅토리아가 일상을 찾는 일을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여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빅토리아는 남은 생애 40년을 원칙적으로 과부의 복장으로 지냈다고 한다.


1832년 7월, 13세일 때, 어머니가 일기장을 준 일을 계기로 빅토리아는 더욱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기록을 일기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 일기는 가족의 죽음 등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중대한 일이 일어났을 때 중단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반드시 재개되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 기록되었다. 또 언니, 숙부, 아이들, 가족과 친척에게는 대량의 편지를 썼다. (21쪽)


빅토리아의 치세는 길었다. 경험을 쌓은 그녀의 의견은 존중되었고, 발군의 기억력을 기초로 제시되는 과거의 지식은 대신들에게도 나름대로 존중받았다. 하지만 편지나 총리와의 회견을 통해 매일 영향력을 발휘한다 해도, 최종적인 결정에는 의회의 영향이 우선시되었으며, 정치나 외교, 군사에 관한 커다란 문제에 여왕 개인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한 입장으로 서서히 물러났기 때문에, 수많은 군주제 그 자체가 폐지되던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21세기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66쪽)


이 책은 분명 영국사, 세계사를 다룬 게 맞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맞다. 목차를 통해 시대별뿐만 아니라 관심이 가는 특정 시간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64년 동안 여왕으로 존재한 사람, 굳건하게 군주제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사람, 그녀의 생애가 곧 역사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일기를 통해 그녀의 감정과 개인적인 생각, 가족과 친척과의 관계까지. 풍부한 사료와 사진으로 영국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영국으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이런 책도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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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뜨겁지 않고 따뜻한 커피다. 한낮에도 얼음을 넣지 않은 커피를 마신다. 기가 꺾인 더위는 상냥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활짝 열렸던 창문은 닫힌다. 완전히 닫히지는 않고 조금 열린다. 가을이다. 이제 가을이라 말할 수 있다. 선풍기는 아직 내 곁에 있지만 그 바람을 쐬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뭔가를 끓이는 것, 그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떠 식혀가면 밥을 먹는 일, 가을인 것이다.


가을이라고 말해도 될까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그런 마음은 이제 없다. 가을이 되었다. 아직 짧은 소매의 옷을 입고 있지만 여름의 옷차림이 아닌 가을의 옷차림이다. 작은언니의 가방에는 말아 쥐어 밀어 얇은 카디건이 있다. 가을인 것이다.


그런 가을이라서 그런 가을이 시작되어서 조금은 계획적이면서도 충동적인 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게 제일 좋으니까. 가을엔 소설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네 권 가운데 두 권은 계획적이고 나머지 두 권은 충동적이었다.






계절의 소설로 소개할 수 있는 『소설 보다 가을 2023』은 이주혜의 단편이 궁금해서 샀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을 읽기 전 짧은 단편을 먼저 만나려고. 사실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책장에 몇 년째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근데 받고 보니 진짜 진짜 짧은 단편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마음산책 짧은 소설 같은 거라고 할까.


문지혁의 소설은 충동적인 구매였다. 적립금이 없었다면, 기대평과 편집장의 퀴즈 같은 이벤트 적립금이 없었다면 나중에 구매했을지도 모를 소설이다. 근데, 문지혁의 소설이 자꾸 궁금한 거다. 그래서 먼저 읽은 리뷰도 꼼꼼하게 읽을 수가 없다. 계획적인 충동구매가 맞겠다.


비가 온다. 가을비다. 기상 캐스터는 가을장마라고 했다. 비가 오는데도 습한 정도가 약하다. 친구의 말처럼 여름비와 가을비는 다른 것 같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매몰찬 기운이 아니라 상냥하고 부드러워졌다. 한 번에 등을 돌리며 떠나는 여름이 아니라 천천히 등을 돌리며 여름이 떠나고 있다. 가을이 그 여름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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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9-13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을 좋아해서 선선해 지니까 막 섭섭하고 그래요...근데 천천히 등을 돌리는 여름에 배웅하는 가을...자목련님 표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감동ㅜㅜ

자목련 2023-09-14 17:29   좋아요 1 | URL
망고 님은 여름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추운 걸 조금 더 견딜 수 있어요.
망고 님의 댓글이야말로 감동입니다. 남은 여름 안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물감 2023-09-1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쌀쌀해졌어요. 이번 장마 지나가면 본격 가을 날씨올 듯! 건강 조심하셔요🙂

자목련 2023-09-14 17:29   좋아요 1 | URL
주말 지나면 여름의 흔적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물감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요^^

독서괭 2023-09-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 꺾인 더위는 상냥해지고” 라니 넘 멋진 제목입니다!! 비와 함께 정녕 가을이 왔네요^^

자목련 2023-09-14 17:32   좋아요 0 | URL
가을이 왔어요. 와락 달려든 가을이에요. 얼마나 빠르게 지날지 모르겠어요.

거리의화가 2023-09-1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은 정말 가을이란 느낌이 확연하네요! 주말쯤 비가 다시 온다고 하더군요. 그 후엔 정말 가을일 듯합니다^^* 자목련님의 문장 표현은 언제 봐도 아름다워요^^

자목련 2023-09-14 17:33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비가 내리고 주말이 지나면 완연한 가을과 만나겠지 싶어요. 긴 소매 옷도 챙겨야 하고. 이불 정리도 해야 하고, 계절 맞이 쉽지 않아요 ㅎ
 

한정현의 산문집 『환승 인간』 은 여행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환승’이란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소와 공간을 이동하는 뻔한 여행을 기대한 건 아니다. 경험하는 인간, 다른 나로 이동할 수 있는 삶 같은 그런 의미의 환승이었다. 갈아탈 수 있는 삶은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갈아타야만 하는 삶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정현의 소설은 단편 한두 개 정도가 전부였다.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환승 인간』이란 산문집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그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소설 속에 자기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점점 더 나는 그가 쓴 소설이 궁금해지는 거다. 그는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일까. 이 산문집은 한정현이라는 인간의 삶의 이동경로인 셈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고 공부하는지, 그 모든 걸 그는 ‘환승’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자신을 설명하고 소설에 대해 말하는 방법, 하나의 관심사에서 다른 관심사로 이동하고 확장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볼 수 있는 앞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뒷면이 궁금해 파고드는 사람. 그래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한 줄의 기사에 숨겨진 이면을 보는 사람, 국가나 사회의 폭력으로 아픈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 결국 그것을 소설로 써야만 하는 사람.


산문집을 읽으면서 좋아서 좋구나 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하지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가 아닌 프롤로그 더하기의 이런 부분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가 환승하고자 원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 속 일원으로 혼자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다른 삶의 환승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정현은 바깥의 삶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마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손쉽게 쓰지만 사실 요즘은 그런 것마저 만들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삶도 많다고 느낀다. 그런 삶의 환승의 수가 빈번하게 높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무수한 환승을 경험하면서도 순간 나 자신의 바깥에 놓은 삶에는 또 한 번 무감했던 것 같다. (「프롤로그 더하기」, 18~19쪽)


그러다 또 이런 구절에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사랑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라는 말. 가만 생각하고 돌이켜보니 사랑의 시작은 과연 그러하다.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한 되는 것, 그건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가 남는 것. 헤어짐의 슬픔이든 실연의 아픔이든 감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69쪽)


감당하기 어려운 일,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삶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이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 이름으로 환승하여 다른 이름 뒤에 숨어 버리는 일은 재미있다. 소위 부캐라고 할까. 여려 명의 나로 존재하여,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면 비대한 하나로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다운 발상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우리로 환승하면 조금 쉽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작가의 산문집은 작가의 생각과 관심사, 가족,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무척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별로 일 것이다. 나는 경계에 있다고 해두겠다. 한정현 작가가 뉴질랜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더 공부하게 되고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의 우정이 그를 살리고 위로가 되었다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너는 한국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국인 친구의 질문. 그것은 그의 소설과도 연결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 그러니가 이 산문집을 읽고 그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과 훨씬 더 가까워질 거라는 말이다.


영자원(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본 영화 이야기, 아빠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로 본 히치콕의 영화 <새>로 인해 생긴 조류 공포증부터 다양한 영화 리뷰도 흥미롭다. 그가 소개하는 영화는 제목도 낯선 영화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이다>, <마스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무척 궁금한 영화로 남았다.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 어쩌면 나만 몰랐던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보고 전하려는 건 약자의 삶, 전쟁의 상흔, 진정한 자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다수의 목소리에 가려진 소수의 삶, 잊힌 개인의 이야기.


『환승 인간』에 대한 글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원하던 바일 수도 있다. 나처럼 조금 더 한정현이 궁금해지기를,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해지기를 바라니까. 나는 읽지 않은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더 좋은 나로 환승하는, 더 좋은 쪽으로 나가는 그의 소설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마고』, 『줄리아나 도쿄』,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들려줄 한정현이 궁금해졌다. 그의 할아버지 ‘주희’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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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되었고 책을 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책을 사고 책을 쌓아두고 책을 읽는 일 말이다. 8월에는 더위가 책 읽기를 이겨버렸다. 그러니 당연 기록하는 일도 진 것이다. 9월의 셋 째 날이지만 실내 온도는 30도다. 가을이 오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언제쯤 진짜 가을과 마주할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뜨거운 커피를 마시지 않고 얼음을 넣은 커피를 마신다.


9월의 첫 책은 세 권이다. 최은미의 장편소설 『마주』, 단편에서 확장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화했던 삶을 고스란히 마주할 것 같다. 더 멀어지고 소원해지거나 더 가깝고 밀접해진 우리의 관계. 『마주』의 표지는 평온하고 나른한 오후의 연상시킨다. 평화로움, 그러나 소설이 마냥 평화로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읽은 최은미의 소설에서 평화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 이즘』은 가장 흔하고 쉽다고 생각하는 에세이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기대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 소설이 되거나 산문, 시가 된다. 진정한 에세이란 무엇인가 배울 수 있을 것도 같고. 아직 읽지 않았으니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이꽃님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해도 맞을 것 같다. 이꽃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쁘지 않았고 이 소설도 그렇다. 문득 이꽃님이라는 이름은 필명일까, 본명일까 궁금하다. 필명 쪽으로 기우는데 본명이라면 더 좋을 것 같은 엉뚱한 생각.


9의 책이 아닌 9월의 첫 책인 이유는 주문하고 싶은 책이 또 생겨서다. 소설 보다 : 가을 2023』과 아코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 어쩌면 오후에 주문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 책들은 또 그 책들의 이야기가 있을 터. 9월에는 8월 보다 조금 알차고 촘촘한 책 읽기를 하고 싶다. 독서의 달이라고 하니, 나만의 독서의 달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책과 나른한 오후를 꿈꾸지만 덥다. 선풍기나 에어컨과 함께 가능한 나른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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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9-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꽃님 작가의 연애소설이라니...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자목련 2023-09-05 08:55   좋아요 1 | URL
완벽한 연애소설은 아니지만 풋풋하고 소중한 감성이 담긴 소설이라 말씀드려요^^
 

다양한 SNS 채널이 있다.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가입을 한 다른 채널이 있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편은 아니다. 미디어를 테마로 한 『연결하는 소설』를 읽으면서 블로그를 통해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지 질문을 받은 것 같았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고 무언가 쓰기 시작했을 때 아무도 모르길 바라면서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랐다. 익명의 존재, 닉네임으로만 알게 된 이들과 소통하였고 그 가운데 몇 명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고 더 이상 익명이 아닌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한 것이다.


나와 그들을 연결한 건 블로그였다. 미디어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미디어 사용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개인이 개설하고 이용하는 미디어도 다르지 않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진정한 대화가 있을 때 미디어는 빛난다는 사실을 『연결하는 소설』를 통해 생각한다.


미디어를 전면에 내세운 오선영의 「후원 명세서」와 김혜지의 「지아튜브」는 우리가 일상에서 미디어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보여준다. 「후원 명세서」 속 ‘윤미’는 과거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어떤 표정,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현재 아동 복지 재단에서 일하면서 과거 자신과 같은 후원 아동이 솔직함에 당황한다. 미디어로 포장했던 자신과 달리 솔직하고 당당한 아이의 모습.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을 후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번도 출연하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한 적이 없다. 연출된 장면이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 리얼 리티 프로그램도 대본이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실망하며 놀랐다. 보이는 대로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가.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이제 후원 방송을 볼 때 한 꺼풀 벗겨야 하는 막을 생각할까 걱정이다.


김혜지의 「지아튜브」도 다르지 않다. 아빠와 함께 인기 어린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지아는 아빠가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영상을 찍었다.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아빠도 좋아하고 엄마랑 함께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유튜브 채널 작가였던 희진 언니가 지아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올린 지아튜브의 진실에 대한 글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 친구들과 부모님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너도 나도 개설하는 유튜브 방송. 나를 표현하는 1인 미디어의 진정한 목적은 소통이 아닌 이익 창출인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일상의 대부분이 대면이 아닌 비대면을 가능한 시대, 온라인 쇼핑 훨씬 편리하다 말하지만 정작 장바구니를 볼 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된다. 서이제의 「위시리스트 ♥」란 제목이 말해주듯 검색을 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추천 목록,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은 진짜 내가 궁금한 것일까. 온라인 서재에서 책을 대하는 내 마음도 다르지 않다. 광고가 뜨는 책은 한 번도 클릭하게 된다. 미디어의 장점만 이용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세대 간의 소통이 어렵다는 걸 앱을 활용하는 태도에서도 확연하게 보여주는 임현석의 「무료나눔 대화법」은 무척 인상적이다. 아내가 미국으로 가면서 집안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나’는 무료나눔에 식탁을 올린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식탁에 대한 문의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모든 건 아내가 알고 있었다. 화자인 ‘나’는 식탁을 무료나눔하면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한다. 오직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나누는 대화에서 상대의 진의를 확인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바라보는 대화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마 이 단편을 읽고 뜨끔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집에 있으면서 말이 아닌 카톡으로 필요한 것을 전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만이 공들이고 신경 쓰던 것, 그것을 들어낸 자리였다. 나는 식탁이 놓여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나는 그 자리가 여전히 식탁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식탁은 사라졌고 그곳은 아무런 구획도 없는 텅 빈 바닥일 뿐이다. 그 순간 식탁이 놓여 있었던 자리는 유독 더 어두워 보였다. 나는 거기서 식탁의 그들이 차지했던 범위가 얼마만큼이었는지 떠오리며 손으로 바닥을 쓸어 보았다. 먼지 같은 것들과 찬 기운만 손에 들러붙었다. (…) 이젠 그때 흘려들었던 아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무료나눔 대화법」. 159쪽)


언어와 문자가 사라지는 미래, 마지막 언어를 화자들을 전시하는 ‘소수 언어 박물관’을 배경인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 같다. 우리나라만 봐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있지 않은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우주에 혼자 남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디어로만 소통하는 끝에는 우리도 말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연결되었다고 믿었지만 정작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 살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나누면 훨씬 신날 말. 시끄럽고 쓸데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고, 호소하는 그런 말들을…… (「침묵의 미래」, 34쪽)


이처럼 소설을 통해 미디어와 나 사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제대로 된 미디어 교육을 받았는가 돌아본다. 클릭 한 번으로 언제 어디서든 사회 이슈를 만날 수 있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배운 적이 있나 싶은 거다. 너무도 많은 정보, 쏟아지는 영상들, 올바른 선택과 시청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사고를 그대로 흡수할 수 있으니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올바른 미디어 시청법이라고 하면 좋을 태지원의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를 같이 읽으면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를 읽으면서 미디어를 제대로 보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드라마 속 인물의 행동과 말이 유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경험하지 못한 계층의 삶에 대해 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은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재벌가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크고 멋진 저택, 수많은 도우미들. 낙하산처럼 등장하는 재벌의 자제들 모습까지. 반복적인 장면으로 인해 시청자는 그들의 빠른 승진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재벌가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계약직 직원 같은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차별, 불평등에 대해 이 책은 말한다. 총 6장에 나누어 기회의 불평등, 양성평등, 사회적 소수자, 빈부 격차, 인종차별, 외모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은 인식했는지 돌아보게 질문을 던진다.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아이돌을 선택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언급한다.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공평하고 균등한 기회를 준다는 기획의도와 다르게 선정된 이가 있었다는 사실. 대학 입시를 다룬 드라마를 통해서 교육의 평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양성평등을 생각하면 드라마 속 여성의 직업 변천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문직이 아니나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 살림을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가부장 제도, 남성 중심의 사회 속 조연에 불과했다. 다양한 직업군과 차별받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송을 보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어. 미디어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현실 속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해날 수도 있단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75쪽)


그렇다면 빈부 격차는 어떤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쌍하고 나약하고 게으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고정된 이미지는 인종차별에서도 발견된다. 백인과 흑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같은가? 아니라는 대답이 많을 것이다. 드라마 속 백인은 친절하고 전문적인 직업군인 경우가 많았다. 미디어가 우리에게 보여준 이미지, 백인 중심, 서양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해 마주한 미디어는 획일된 이미지가 많았다. 그런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청소년들에게 잘 설명해 주는 책이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어. 미디어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현실 속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해날 수도 있단다.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 176쪽)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다양해지는 세상, 우리는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 하나의 기준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건 무엇일까. 미디어로 만나는 편리함 안에서 진짜 말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현명하게 미디어를 활용해야 한다. 쉽게 연결되는 것만큼 쉽게 끊어진다는 걸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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