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읍에 사는 덕분에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다. 여름인 요즘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와 뻐꾸기의 소리를 접한다. 그러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궁금해진다. 비가 오는 날에 새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어디서 휴식을 취할까. 어린 시절 흔하게 보던 참새로 보기 힘들다는 사실도 떠오른다. 까치도 그렇고 가을이면 들판을 가득 채우던 잠자리 떼도 기억 속에만 있다. 그만큼 그것들에게서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이 변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의 모든 것들이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는 내게 레이철 카슨 외 다양한 이들의 에세이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제목처럼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축복을 우리가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는가 깨닫게 만든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자란 탓에 자연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삶은 아닐지라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좋았다는 걸 어른이 돼서 알게 되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갯벌과 바다를 볼 수 있었고 확실하게 다른 계절을 느끼는 일을 추억할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인가, 묻는다. 레이철 카슨을 포함한 다수의 저가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에서 말하는 주제를 생각하고 그것에 쓴 글에서도 다르지 않다. 랠프 월도 에머슨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자연에게 배워야 할 것은 여전하다. 자연에 대한 사유와 시선을 생각하면 얼핏 농부나 환경활동가, 생물학자나 생태학자를 떠올리겠지만 에세이에 참여한 이들은 시인,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활동가, 조경가, 농부, 과학기술 전문가 등 다양하다. 자연이라는 광범위한 세계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들이 선택한 저마다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습관이나 기억으로 시작해 코로나로 인해 실내수영장이 아닌 연못에서 수영을 하면서 느낀 것들, 가을밤 야간 비행을 하는 새들을 관찰하는 일, 자연 안에서 어떤 편견과 거부감도 없이 존재만으로 자유를 느끼는 경험, 육류를 소비하며 가장 큰 해악을 키지는 현재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걱정, 이 모든 중심에 자연이 있다.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치유와 회복을 자연에게 찾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숨 막히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독기를 뚫고 눈부신 경치로 나아가는 길이 되어, 자신의 고통을 버릴 용기를 지닌 사람을 인도한다.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은 같은 것을 제공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말지는 그들과 그들이 믿는 신 사이의 문제이며, 자연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75쪽, 후안 마이클 포터 2세)


가만히 바람을 느끼고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주는 위안, 여름에 수확한 감자를 맛있게 먹는 일, 작은 땅을 일구며 흙을 만지며 살고 싶은 바람의 끝에는 모두 자연이 있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마주한 놀랍도록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피어난 에세이가 아니더라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늘 목도한다. 자연의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사라지는 벌들을 통해 배운다. 너무 늦은 배움이다. 지구라는 생명체에 거하면서 우리가 돌아갈 그곳도 자연이라는 걸 생각하면 자연과 공생해야 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계절은 자연의 시계이자 달력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자연의 단계들을 중심으로 돈다. 나는 계절을 밀어낼 수도, 끌어당길 수도 없다. 걸음을 늦추라거나 서두르라고 설득할 수도 없다. 자연은 지극히도 아름답고 잔혹하며, 내가 아무리 무수하게 애원해도 통보도 없이 나를 버려둔 채 나아가고 변화해왔다. 자연은 자애롭지도, 악의적이지도 않으며 무심할 뿐이다. 우리는 전체의 일부이고 자연은 그걸 안다. (182쪽, 맥스 모닝스타)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 자연에게도 휴식이 필요함을 모른척한다. 순환과 회복을 위해 인간이 자연과의 거리를 유지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마주하는지 코로나19를 통해 체감하고서야 뒤늦게 인정하는 어리석음이라니.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통해 접한 자연은 나와는 다른 세계가 아닌 곁에 두고서도 우리가 몰라보는 자연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침묵의 봄』의 작가 레이첼 카슨의 글은 1962년의 연설이지만 지금 현재에 적용해도 뛰어난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생각한다. 무너지고 사라지는 일부가 될 것인지, 보존하고 연대하여 함께 살아갈 것인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고 나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르고 인간도 그 흐름과 함께 움직입니다. 우리 세대는 환경과 타협에 이르러야 합니다. 진실에 대한 외면이나 오만으로 대피하지 말고 현실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중대하고 냉엄한 책임이 주어졌으니, 한편으로는 그것이 빛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나아갈 세상에서 인류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성숙함과 지배력ㅡ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지배력 ㅡ을 증명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과 운명이 놓여 있습니다. (29쪽, 레이첼 카슨)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읽으면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건 이 책의 시작이 된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김산하의 『김산하의 야생학교』였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중시하려면, 뭇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희생시키지 않는 철학이 삶의 밑바탕을 이룰 수 있다. 타인은 물론 심지어 사람이 아닌 생명체에게까지도 이심전심이 미칠 때에만 생명 존중 사상은 체화(體化)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문명 자체가 진정으로 생명을 받들어야 한다.( 『김산하의 야생학교』, 중에서)


자연을 지킨다는 말은 우습지만 우리가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자연을 지키는 방법이다.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 더위와 추위를 참지 못해 지키지 못하는 적정 온도. 그 작은 실천이 모아지면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고 지구는 좀 더 건강해진다.


자연이라는 주제를 떠나서도 각각의 에세이는 매우 훌륭하고 아름답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좋은 에세이를 만나는 일,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커다란 매력이자 즐거움이다. 그런 점에서는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경쾌하고도 우아한 문장이 가득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날마다 내 풍경 속으로 걷는다. 늘 똑같은 들판, 숲, 창백한 해변. 늘 똑같은 푸른빛으로 즐겁게 넘실대는 바닷가에 선다. 늦은 여름 오후, 보이지 않는 바람이 거대하고 단단한 똬리를 틀고, 파도가 흰 깃털을 달고 해변을 향해 달려와 소리 지르며, 고동치며 마지막 상륙을 감행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완벽한 날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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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7-13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연도 휴식이 필요하다...이 말이 너무나 와닿습니다.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지배력‘을 이젠 정말 보여줘야 한다는 레이첼 카슨의 말 모두가 새겨들었음 하네요.

자목련 2022-07-14 17:56   좋아요 0 | URL
쿨캣 님, 감사합니다. 이 책 참 좋았습니다. 주제로 다룬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고 참여한 저자의 글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맑았다고 할까요.
 

올해의 수국이다. 첫 수국이자 마지막 수국이 될 것이다. 직접 수국을 보러 가지는 못하고 결국 주문을 했다. 아이의 얼굴 보다 큰 수국 두 송이가 너무 예쁘다. 이번 수국은 작년과 다르게 꽃 수술이 적게 떨어진다. 해서 더 좋다. 수국이 도착하고 수국 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자꾸 수국을 찍는 일이다. 언제나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은 크고 결과는 그저 그렇다. 그래도 좋아하는 수국을 보고 있으니 모든 게 다 괜찮다. 수국은 실제가 더 예쁘다.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운 빛을 다 보여줄 수 없다.




알만한 분들은 알겠지만 맥주잔에 담긴 수국이디. 맥주잔에는 맥주도 좋지만 꽃이 꽃혀도 나쁘지 않다. 긴 머그 컵이 화병 역할을 제대로 했다. 수국은 땅의 성질에 따라 꽃의 빛깔이 달라지는 걸로 안다. 처음에는 모두 같은 수국이었겠지만 봉오리가 생기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고 확인하는 수국이 되었을 것이다. 수국의 성장이라고 할까. 모두 같은 수국처럼 보이지만 결코 같은 수국은 없다.







하루하루 물을 갈아주면서 조금씩 시드는 수국을 목격하는 일은 조금 슬프다. 줄기를 조금씩 잘라주면서 줄기에 스며든 물을 흔적을 확인한다.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식물이라는 걸 생각하면서도 사흘 정도 지나면 습관적으로 물만 갈아주게 된다. 그 마음이 수국에게 전해질까 미안해졌다.


밤에는 이런 사진도 찍었다. 아, 정말 신나는 수국놀이였다. 그림자를 담는 일,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처럼 그림자가 생겼다. 흔들린 사진이지만 나는 이 사진이 좋다. 더위와 장마, 습도, 그리고 슬그머니 자라는 불쾌지수를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수국. 올해의 수국, 올해도 수국수국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내년의 수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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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05 0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긴 맥주잔에 꽃혀 있는 수국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색깔도 어쩜 저리 오묘한지요~ 꽃잎마다 조금씩 다른 색이 보이네요. 내년에 올려주실 수국 사진도 기대됩니다^^ 습도 가득한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아름다운 사진 감사드려요.

자목련 2022-07-05 10:17   좋아요 3 | URL
네, 수국의 색을 보고 있노라면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요. 내년에는 내년의 수국을 만나겠지요.
화가 님도 시원하고 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서곡 2022-07-05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꽃을 각종 빈 병에 꽂아도 괜찮더라고요...

자목련 2022-07-05 10:16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모든 건 화병이 될 수 있죠^^

기억의집 2022-07-05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이쁩니다~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색의 수국이네요!!!

자목련 2022-07-07 08:48   좋아요 0 | URL
네 보는 동안 내내 행복해요. 수국의 색은 신비로움 그 자체인 것같아요^^

희선 2022-07-06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수국을 보셔서 기분 좋으셨겠습니다 2022년 처음이자 마지막 수국이라니... 다음해에는 그해 수국을 만나시겠네요 같은 수국이라 해도 늘 다르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2-07-07 08:49   좋아요 0 | URL
똑같은 수국처럼 보여도 저마다의 색이 다 다르더라고요. 내년에도 예쁜 수국을 기대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7-06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마다 수국 모종을 사서 구경하고 꽃대 잘라 놓음 그 다음 해는 꽃이 안피더라구요.ㅜㅜ
그렇게 3 년째네요^^
수국 이파리만 있는 화분은 늘어나고 있고, 수국꽃은 포기가 안되어 올 해 또 샀는데 확실히 수국의 종류가 다양하여 볼때마다 새롭습니다.
자목련님처럼 주문해서 예쁜 병에 꽂아서 감상하는 방법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꽃이 이쁩니다.
예전엔 파랑 수국이 가장 예뻤는데 요즘엔 자주나 분홍 수국이 또 예뻐 보이더라구요.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2-07-07 08:52   좋아요 1 | URL
왜 그럴까요? 구매한 화원에서는 이유를 알려주셨을까요? 저도 화분을 들이고 싶은데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
작약과 수국을 주문해보니 나쁘지 않아서 계속 주문해서 보려고 해요. 내년에는 저도 분홍을 한 번 주문해볼까 싶어요^^
 


모내기가 한창이던 때에 읽은 책이다. 그때는 비가 조금 왔으면 싶었다. 장마철이시작되고는 쨍한 햇볕이 그립니다. 자연의 뜻은 알 수 없기에 그냥 맡길 뿐이다. 감자와 마늘은 땅 속에서 숨겼던 굵고 예쁜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제 얼마후에는 고추를 따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을 읽지 않았더라면 논과 밭의 작물을 보면서 벌써 이렇게 컸구나, 수국을 보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쳤을 것이다. 시골에 살면서 직접 농사를 짓지 않기에 큰 감흥을 놓친다.


올해 초 「농부와 소설가」란 다큐를 흥미롭게 시청했다. 소설가 김탁환이 섬진강에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고 소설을 쓰고 책방을 여는 과정을 담은 다큐였다.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는 2021년 열두 달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건 농사를 짓는 방법보다는 곡성에서 글을 쓰고 땅을 만지며 만난 하루하루와 계절의 모습이다.


서울의 집필실을 정리하고 섬진강 옆 폐교였던 곳에 ‘달문의 마음’이라는 새로운 집필실을 장만한 김탁환은 40분은 쓰고 20분은 쉬면서 눈앞에 마주한 논과 밭의 풍경을 감상하고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그것들에게 스며든다. 1월부터 12월까지 꼬박 365일을 다 채운 일기는 아니지만 어느 날엔 한 줄, 어느 날엔 하고 싶은 말들이 더 많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기쁘고 벅찬 날들의 기록이다.


숙소와 집필실을 오가는 길을 걷으며 마주한 풍경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만나는 할머니, 하나하나 품게 된 개와 고양이들. 그를 섬진강으로 이끈 농부 과학자 이동현에게 배우는 농사일. 맨발로 흙을 밝으면 손으로 직접 모를 심고 피를 뽑고 풀을 매는 모습은 유유자적한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익히는 일이다. 흙을 만지고 제철 채소를 심고 키우면서 체득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금치와 시금치 사이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거기 흙이 있다. 시금치의 뿌리가 흙을 파고든다. 그렇게 파고들어야만, 시금치는 힘을 길러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독자도 상상력의 뿌리를 맘껏 내려야 한다. 단어와 문장과 문단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욕심이 독자를 틀에 가둬 자유를 빼앗을 때도 있다. (83~84쪽)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는지 소설을 읽는 독자인 나는 상상한 적이 없다.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등장하고 몇 년 동안 구상과 자료를 준비하고 시작했지만 초고를 버리고 다시 쓰는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더운물에 손을 넣고, 커피를 내리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트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그가 곡성에서 창문을 열면 들리는 새소리와 함께 시작하면서 그가 적는 바람은 신성하면서도 뭉클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아침에 집필실 근처에 찾아와 울어주는 새들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에게 ‘오늘 내 글이 잘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 지극히 모자라고 어리석지만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생명체란 사실을 아는 순간은 소중하다. (86쪽)


그래, 차차 쓰면, 살면, 걸으면, 만나면 될 것이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그 뒷날이라도. 이번에 얻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그 자리에 닿지 않더라도. 저 나무들처럼 그래, 차차. (128쪽)


곡성에서 소설을 쓰고 초보 농군으로 살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섬진강을 걷고 탐하는 그가 들려주는 섬진강의 자연은 아름답고 황홀하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든든함이라고 할까. 11월의 강가와 습지를 상상하게 된다.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오직 11월에만 볼 수 있는 풍경과 감상이다.


습지에 서면, 오감이 새롭게 작동한다. 강물은 검푸른 빛을 짙게 띠고, 겨울철새들 울음은 낭랑하며, 마른 풀과 젖은 낙엽의 냄새는 묘하고, 나무들의 껍질은 거칠고 단단하다. (362쪽)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고 차곡차곡 인생을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가 판소리를 배우고 대본을 쓰고 작품을 발표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단순한 일기의 형태를 지녔지만 그의 다짐이며 계획표이자 미래를 향해 나가는 동력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곡성에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까지 냈으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작년에 문을 연 생태책방엔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을까. 김탁환의 밭에서는 어떤 작물이 자라고 있을까. 큰 키에 해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땅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대신 올해는 작약을 심는다고 했는데 정원에 작약꽃이 활짝 피었을까. 섬진강을 떠올리면 이제 김탁환의 달문의 마음과 들녘의 마음이 함께 따랄 올 것 같다. 언제나 그곳에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말할 것도 없이.


김탁환의 일기처럼 최근 작가들의 에세이(일기)가 출판의 대세인 듯하다. 작가의 개인적인 일상과 은밀함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반가울 수도 있을 터.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건 좀 설명하게 복잡하다. 모든 일기는 사적일 수밖에 없다. 일기가 일기장을 벗어나면 모두의 글이 되기 때문이다. 황정은, 김연수의 일기는 기대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고, 문보영의 개성 넘치는 글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작가의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학적인 부분만 궁금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글쓰기의 비밀 같은 걸 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문보영의 글에서 만난 이런 문장처럼 말이다. 


개인이 각자의 정신이 미치지 않도록 기울이는 노력의 형태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글만 쓰면 안 된다고, 새로운 경험이 글의 밑천이 될 거라는 말은 반만 맞다. 글쓰기는 도자기 빚기와 같다. 도자기를 빚을 때, 물레는 계속 비슷하게 돈다. 도는 행위는 유지되지만, 미묘한 손길에 변화를 줌으로써 도자기의 형태와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그러므로 도자기를 빚는 인간에게 왜 자꾸 도냐고, 왜 자꾸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냐고, 그만 돌고 새로운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 사람은 거대한 반복 안에서 자신만의 내밀하고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시대』 중에서)


내가 좋았던 일기가 모두에게 좋을 수 없고 내가 좋지 않았던 일기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이,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기도 문학이니까. 그래서 여전히 누군가의 일기를 읽고 싶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이야기를 말이다. 가장 읽고 싶은 건 아직 읽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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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6-29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부와 소설가‘ 어디서 했나요? ebs?
알았으면 저도 봤을텐데...
김탁환 작가 참 열심히 사는 작가죠.
저 힘들어서 우찌 사나 했더니 섬진강에 둥지를 틀었군요.
정말 멋지게 사네요. 책 읽어봐야겠어요.^^

자목련 2022-06-30 12:28   좋아요 1 | URL
kbs로 기억합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확인하실 수 있을 듯해요.
김탁환 작가를 지지하는 어머님과 아내 분이 더 멋진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6-30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진강‘ 보고 김용택? 그랬는데
김탁환의 에세이네요
이분 소설 좋아하는데, 관심이 가네요.

자목련 2022-06-30 12:26   좋아요 1 | URL
김탁환 소설가의 소설 좋아하신다면 더 즐겁게 읽으실 것 같아요.
편안하고 좋은 글이었어요^^

그레이스 2022-07-08 18:38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7-11 17:5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저도 축하드려요^^

mini74 2022-07-08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2-07-11 17:58   좋아요 0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면 모두 선을 택할 것이다. 우리가 배우고 믿는 선은 인류를 구하고 평화를 원하니까. 그런 맥락에서 영화나 드라마 속 히어로와 빌런을 생각하면 히어로에 편에 서서 그들을 응원하는 게 마땅하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하고 악당에 맞서 싸우고 정의를 수호하는 게 그들의 임무이므로. 하지만 현실에서 히어로와 빌런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섣불리 한쪽을 지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빌런의 사업에서 일을 하고 그들에게서 월급을 받고 생활을 이어간다면 말이다. 나탈리 지나 월쇼츠의 장편소설 『헨치』속 애나가 그렇다.


빌런의 회사에서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들을 돕는 헨치가 바로 그녀다.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에게 악당 기지는 생계를 위한 직장일 뿐이다. 히어로를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고 세상을 점령하겠다는 의지 같은 건 없는 직장인이다. 애나는 보스를 도와 일을 진행한다. 십 대 소년의 납치였고 잔인한 사건을 이어질 보스의 행동은 몰랐다. 빌런을 막는 히어로 슈퍼콜라이더가 소년을 구하려고 그곳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덕분에 애나는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일 자리는 사라졌고 친구의 집에서 도움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무기력하게 지내던 애나는 소년 하나를 구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다치고 현장을 복구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계산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 히어로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까. 몸이 회복되면서 빌런 레비아탄과 일하게 된다. 레비아탄이 애나의 능력을 알아본 것이다. 애나가 수집한 정보와 데이터로 히어로를 상대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던 차에 애나는 상대 히어로 슈퍼콜라이더에게 납치가 되고 죽음 직전에 이른다. 극적으로 보스 레비아탄에게 구출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애나는 놀라운 뇌 능력을 갖게 된다. 걸을 때마다 지팡이가 필요한 사이보그 같은 인간 애나가 되었다.


히어로들은 잔인하고, 부패하고, 이기적이야. 그저 숨기고 있을 뿐이지. 모두 정의로운 일을 하는 척을 하면서 말이야. (1권, 301쪽)


레비아탄은 애나와 함께 히어로를 무너지게 할 계획을 세운다. 히어로 사이의 약한 틈을 공략해 그들 스스로 분열을 만드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슈퍼콜라이더가 있다. 그의 후배 히어로와 갈등을 시작으로 아내 퀀텀과의 사이를 움직이는 게 다음 전략이었다. 애나와 레비아탄의 의도대로 일은 진행되었다. 레비아탄이 슈퍼콜라이더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애나 역시 죽다 살아났고 기사엔 빌런 레비아탄의 죽음이 공식화되었다. 애나는 알 수 있었다. 레비아탄이 죽지 않았다는걸. 애나는 팀을 정비하고 레비아탄 구출 작전을 위해 퀀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빌런과 히어로의 공존이라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는 히어로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하죠. 누군가는 그들이 정말 영웅처럼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2권, 205쪽)


히어로의 능력과 존재를 항상 남편 슈퍼콜라이더에게 내주었던 퀀텀에게는 그를 향한 증오와 분노만 남았다. 애나의 작전을 수락하고 함께 레비아탄을 구출하러 나선다. 레비아탄을 구하기 위해서는 슈퍼콜라이더와 정면승부는 피할 수 없었다. 퀀텀이 상대한다고 해도 최악의 경우 실패로 끝날 수 있었다. 애나는 레비아탄을 구하지 못하면 자신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준비한다.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애나는 스스로 단단해졌고 성장했다. 이전보다 더 넓고 깊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놀라운 능력을 지닌 두 히어로, 슈퍼콜라이더와 퀸덤의 대결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1,2권을 통합해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었더라면 더 좋았게다는 생각이 든다. 히어로와 빌런의 활동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나처럼 히어로물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재미와 메시지를 전하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우리가 선이라고 믿는 게 과연 진정한 선일까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히어로를 중심으로 이어졌던 그간의 이야기와 달리 빌런을 내세운 전략도 훌륭하다. 이 소설을 영화로 보고 싶은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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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해봤다면 투명인간의 삶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상대는 나를 볼 수 없고 나만 상대를 볼 수 있다면 뭐든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과연 그럴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투명인간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할 수 있을까. SF 소설의 고전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은 투명인간의 삶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상상이 아닌 투명인간의 실체라고 할까.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쌌는데, 부드러운 중절모 챙이 반짝이는 그의 코끝을 제외한 얼굴 전부를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다. (13쪽)


아이핑 마을에 도착한 낯선 이방인. 수상해 보였지만 숙박시설에서 그게 무슨 대수랴. 객실 요금만 밀리지 않고 내주면 그만이었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서 그의 등장은 특별한 관심사였고 붕대를 감은 모습에 의료인 커스는 그를 찾아갔고 이방인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가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어줄까. 객실 요금이 밀리면서 여관 주인과 사소한 다툼이 시작되고 그 사이 마을에서는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모든 사건의 단서는 이방인을 향했고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에게 수갑을 채우려 한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들의 눈에는 악령이 씌어 가구가 움직이고 알 수 없는 힘이 목을 조르는 공포에 휩싸일 뿐이다. 여관에서 나온 이방인은 조력자가 필요했다. 투명인간이지만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입고 자야 할 공간이 필요했으며 여관에 두고 온 자신의 소중한 책과 짐을 가져와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능력을 악용해 마블이란 남자를 조종한다. 이제 세상은 투명인간의 횡포를 알게 되었고 그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


그 과정에서 운명처럼 과거의 친구 켐프를 만나게 되고 이방인과 투명인간이 아닌 ‘그리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가 어떻게 투명인간의 몸을 갖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과학자로 색소와 굴절을 연구했던 일과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벌어진 일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런 그리핀에게 켐프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리핀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 주위를 돌 수 있는데, 그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건, 시점을 골라 내가 원할 때 타격을 가할 수 있소. 내가 원할 때 피할 수도 있소. 내가 원할 때 달아날 수도 있소. (중략) 우리가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사람들도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점이요. 그래서 그 투명인간이, 켐프, 이제 ‘두려움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오. 그렇소, 의심의 여지없이 놀랄 거요. 하지만 나는 그걸 의미하는 거요. 두려움의 통치. (243~244쪽)


전도 유망했을 과학자가 한순간 늪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이다.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모든 걸 공개하고 협력했더라면 그리핀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스스로 파괴하는 결말에 이르렀으니까. 반대로 투명인간인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역할도 크다. 혐오나 비난이 아닌 있는 그대로 대하고 그가 원하는 도움을 주려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투명인간인 그를 인정했더라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소설 곳곳에서 그리핀이 세상을 향한 분노는 불신과 절망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아닌 현재 투명인간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아니, 선한 목적으로만 투명인간의 기능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1897년 발표된 소설이지만 대단한 장르소설뿐 아니라 그토록 사랑받은 고전인 이유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탐구에 있다. 인간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궁금하다. 기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과 이 책에서 특히 세심하게 다루는 부분의 번역을 비교해도 좋을 듯하다. 조금 더 허버트 조지 웰스가 말하고자 한 부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투명인간을 만나는 일도 나쁘지 않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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