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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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이야기가 때론 더 즐거운 법!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42

 

 

 

 

 
두달전 이 책에 대한 리뷰들이 쏟아져나올때마다 귀엽고 예쁜 제목에 눈에 담아놓았었다. 나에게 하루키의 에세이는 처음이었고 (뭐 이렇게 처음인 게 많은가.... ㅎㅎ) 왠지 '소설처럼 의미깊은 말들이나 무거운 주제가 가득 들어있을 것 같다!' 했는데 어라? 이건 왠지 너무 가벼운 느낌이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서 바로 읽은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낯설고 새롭다. 하루키하면 생각나는 소설들이 깊게 파고들어야 될 책인 반면 이 에세이는 기분 좋아지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알고보니 20대 여성들을 독자로 둔 '앙앙'이라는 잡지에 연재하던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글을 모아둔 것인데 (책도 나왔었다.) 이것이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이다. 일종의 칼럼, 잡지 에세이 같은 느낌인것 같다.  제목 참 귀엽다.

 


  

채소의 기분.

 

 


  

"에세이라는 것은 내 경우, 본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미도 아니어서 누구를 향해 어떤 스탠스로 무엇을 쓰면 좋을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대체 어떤 걸 쓰면 좋을까 하고 팔짱을 끼게 된다. 그렇긴 하지만 내게도 에세이를 쓸 때의 원칙, 방침 같은 건 일단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꽤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그가 본업인 소설보다 쓰기 어렵다는 에세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속에서 하루키는 원래부터 쓸데없는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가끔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가 때론 더 즐거운 법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받는 사람에 따라 의미를 부여할 수도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벼운 말들. 가끔은 책보다는 잡지속 글들을 보고 싶은 마음과도 같을지도.. 사실 일본어를 한글로 가져오게 되면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든다. 아직은 일본도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번역의 특징일수도, 하루키의 문체때문일 수도 있겠다.

 


 


 

"여러 체형의, 여러 생김생김의, 여러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적당히 느슨하게 사는 세계가 정신건강상 가장 바람직한 것이구나 싶다."

 

사실 작가들이 무언가 글을 쓰는 소재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치열하게 다니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그들은 사소한 것들에서 생각을 뽑아내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떤 하나에 대해 남들보다 특별한 생각을 하는 것. 너무나 고만고만하게 평범한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부러운 능력이기도 하다. (너무 특별하면 또 안되겠지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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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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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의 행사에서 이병률 시인을 만난적이 있다.

조금 특이하기도 하고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우물우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똑부러지던 모습.

수많은 시간과 세계를 읽는 것 같던 여행에세이 대신에 이번은 그의 본업인 '시'를 읽었다.

그의 시는 아름답게 빛나고 가끔은 날카롭고 가끔은 독특한 생각에 재밌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3개의 시를 담아보았다.

 

 

찬란

 

                                                       이병률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않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찬란, 참 문학적인 단어이기도 하고 평소엔 잘 안쓰는 단어이다.

눈부시고 화려한 뜻의 단어인 '찬란'.

찬란함에 대한 시인데 그 빛나는 단어의 찬란한 것들이 뭔가 애절하고 슬퍼보이기도 한건 왜일까?

 

 

있고 없고

                                                      이병률

 

혼자 보내서 어떡하나 했다

가는 것은 가는 것이나

가고 마는 것은 또 어쩌나 했다.

 

 

 

사과나무

                                            이병률

 

사과나무를 사야겠다고 나서는 길에 화들짝 놀란다 어디에 심을지 아니면 어디에 기대놓을지를 생각하다 혹 마음에 묻으려고 하는건 아니냐고 묻는다 이 엄동설한에 사과나무는 뭐하게요 없다고 말하는 화원의 사내는 사과나무 허리 같은 난로를 껴안고 있다

 

나에게 혹 웅덩이를 파고 싶은 건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 웅덩이에다 세상 모든 알들을 데려다 버리고 욕 묻은 손들을 데려다 숨기면서 조금 나아지려는 게 아니냐며 나는 난로 대신 두툼한 머리 언저리를 감싼다

 

사과나무를 사려했던 것은 세상 모든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만유인력을 보고자 했던 것이므로 누군가 만유인력을 알아차렸다는 그 자리로 간다 사력을 다해 간다

 

숲과 대문, 그 사이에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누구나 저 사과나무한테 빚진 게 있다 어디 먼데서 오는 길이냐고 물어오지도 않고 낙과들을 지키고 서 있는 나무는 장엄하였다 그 나무 아래 누군가가 내려놓은 수많은 가방들이 있었다 누구나 들여놓아야할 가방이 있다

 

문득 누군가 만유인력을 알아차렸다는 그 나무 밑에 함부로 혼자 있고 싶은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  

"지나는 것은 지나는 것이리. 보이지 않는 것은 애써 덮은 것이리."

 

 

 

시인의 생애 속에서가 아니라 시인의 영혼 속에서 우리는 시인을 찾을 수 있다. - F.G 로르카

 

여행수필가의 이병률 작가도 멋지지만

시인의 삶 속에서의 작가는 그보다 더 솔직한 모습이어서 정감이 간다.

그가 끄적인 글들과 멋진 사진, 그리고 역시 시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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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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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작가에 대해선 처음 알았어요. 작가는 라디오 프로듀서이기도 했었고 다수의 에세이 등을 썼다고 합니다. 그 중  제가 가장 본받고 싶은 그녀의 모습은 굉장한 '다독가'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물론 서평도 작성한다고 하네요. 이 책의 제목 옆, 귀퉁이에는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책은 '책이란 존재가 과연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준다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책이 정말로 쓸모가 있나요?'하고요.

그런 의문에 '쓸모가 없어도 절대로 없어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작가는 대답합니다. '우리는 멸시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부자가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우린 조각가가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의사, 변호사가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목표를 세워 그걸 달성하기 위해 자기 삶을 사용하죠. 마치 그걸 위해 태어난 것처럼요. 삶 전체가 이유가 없는데, 무엇을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자기 삶을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어딘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 107p

 

저도 꿈을 위해서, 좀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책을 읽고 있지만 이러한 의문이 들때가 많습니다.

책이 정말 쓸모가 있을까?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 책을 어떻게 더 잘 기억할까?

책의 쓸모에 대해서는 저의 경우에는 '이렇게 읽는다고 뭐 달라질까?'하는 의문이겠죠. 이런 여러가지 질문을 포함한 아홉가지 질문(비밀질문 포함)에 정혜윤 작가는 명쾌한 답을 내어줍니다. 그리고 그 답들속의 이야기들이 저에겐 감동을 주고 제가 하는 독서에 대해서는 위안을 남겨주었습니다. 저에겐 너무 감사한 책이었어요. 기대밖의 큰 감동을 얻었습니다.

 

 

 

이 부분은 참 공감입니다. 읽던 책을 읽을 때, 주변의 소리와 향기를 읽는다는 것.

저에게도 음악과 같이 기억하는 책들이 있지요. 그런 경우엔 그 소중한 책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마치 정원사가 어린 나무를 보듯이 인간은 어린아이를 본다. 특정한 내재적 속성을 가진 존재, 적절한 토양과 공기와 빛이 제공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놀랄만한 성장을 이룰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버트란드 러셀"

"우리도 어린아이를 기르듯, 한 그루 나무를 가꾸듯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신을 키워보는 겁니다. 우리에겐 이렇게 '나를 키우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삶 전체가 원하지 않는 시간들, 아무 재미도 없는 무의미하고 무료하고 피로한 시간들, 비극이자 코미디인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삶은 내가 원한 삶이었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36p 

 


 

저는 아마도 '욕심을 채우고 만족한다(자기만족)'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엔 책장안에 새로운 책이 쌓여갈때마다, 책을 기록하는 어플에 내 책들이 하나둘씩 늘어날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것 중에 하나는 매일 하루를 시작할 때 또는 하루를 마감할때 '오늘(내일)은 무슨 책을 읽을까 ' 하고 책장 앞에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을때랍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가방에 한권씩은 책을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안읽고 들고갔다가 다시 들고올때도 많지만요 ㅎㅎㅎㅎ 그냥 챙기는 것으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낀달까요? 

 

사실 저는 책이라는 것을 꼭! 읽어야된다고, 책을 안읽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보고 느끼는 책읽기를 대신할 것은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음악, 연극, 뮤지컬 등등.... 그리고 책을 읽는 것보다 더한 이야기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에요. 물론 이 많은 것들에 독서가 따라가면 그것은 더 배가 되겠죠. 그래서 저의 경우엔 이야기를 얻는 수단을 책으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책읽기 초보자나 다름없지만 앞으로 더욱 독서에 빠져보고자 합니다. 아직 부족해요 ㅜ.ㅜ

 

예전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쓴적이 있는데,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굉장히 얕고 짧습니다. 어렸을때 책을 별로 안읽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책을 읽어야 된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던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그렇게 닦달하지 않으셨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더욱더 욕심내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상황에 따라가긴 하지만... 그런데도 어렸을때 작가란 꿈을 한번쯤 가졌던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저는 욕심을 부리려고, 만족을 얻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새로운 저의 길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꿈과 관련된 길.

 

여러분들은 책과 함께 무엇을 하며, 책을 통해서 무엇을 얻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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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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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돌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있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 (자주 방향과 색깔이 혼동되는 건 사실이다.)

 

 

몇년 전에 서점의 에세이 서가에서 시간을 때우다 이병률 작가의 '끌림' 이란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예쁜 사진과 좋은 글들에 반해서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위시리스트에 넣어놨었는데 딱히 메모해놓지 않아서 잊혀져버렸나봐요. 그 기억속의 '끌림'이란 책이 두번째 편으로 나왔다길래 이번엔 서점에 바로 달려가서 데려왔습니다.  '끌림 두번째 이야기' 이지만 제목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고 나왔네요. 좋아요. 에메랄드 빛 표지도 너무 맘에 듭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책 표지에도 써있다시피 '여행산문집'입니다.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시선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들을 엮어놓은 책이에요. 얼마전 여행의 매력을 진하게 느끼고 온 터라 책 속의 여행기록들을 보니 공감과 부러움을 함께 느끼게 되네요.. 세상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고 쓸쓸함도 느낀 그의 흔적들.. 그 기록들은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불평은커녕 대리만족의 행복을 저절로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스토리든 장소의 소개든 딱딱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제일 좋았습니다. 여행하면서 들어간 '평범식당'에서 만난 부부이야기, 공항 건물을 지나자 마자 아바야라는 의상을 벗어던지더라는 아랍 여인들의 이야기, 22살의 부랑자 청년이야기들이 자꾸 기억에 남아요...  

 

여행이란 말을 자꾸 하게 되니까 갑자기 동네 서점에서 여행서적을 며칠에 걸쳐 책 속으로 들어갈 듯이 읽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이 나네요. 여러 나라들의 여행서적을 번갈아 읽고 있던 아저씨. 그 분은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읽고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에 끌려 중고카메라를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YES24 제공]' 

 

작가의 소개처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는 세상의 여러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는 풍경들, 겪고 들은 사랑이야기 그리고 작가 개인의 고민과 생각들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시선도 아주 따뜻합니다. 게다가 사진들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네요. 사진들을 찍고 바로 글귀를 적어나갔는지 아니면 쓴 글에 사진들을 끼워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과 글이 오묘하게 어우러져서 슬쩍슬쩍 감성을 건드리는 듯 합니다.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 귀에는 아무 말도 아니게 들릴 수 있을 텐데 뱅그르 뱅그르 내 마음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말. 한마디 말일 뿐인데 진동이 센 말. 그 말이 나를 뚫고 지나가 내 뒤편의 나무에 가서 꽂힐 것 같은 말이."

 

 

너무너무 공감가서 철렁했던 이 말.

 

 


 


 

 

"나도 나 스스로를 M사이즈라고 여기는 적이 많다. 옷도, 사람도 실제로는 L이어야 하지만 때로 XL이겠지만 나는 나를 M이라는 상태로 놓아둔다. 나는 이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눈에 띄지 않는 게, 그 상태가 감사하다. 평범이란 말보다 큰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평범함을 추구하는 그,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써내려가려고 글을 썼는데 덜컥 그 길에 접어들었다는 작가. 페이지도 목차도 없는 여행산문집을 쓰는 작가. 리뷰를 쓰다보니 그의 시집도 읽고 싶어지네요. 시인 이병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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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
자크 스테른베르그 지음, 권수연 옮김 / 세계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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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스테른베르크 (Jacques Sternberg). 벨기에 국적의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가 쓴 사랑에 관한 콩트집인데요. 특이한 점은 프랑스어로 책을 쓴다고 하는 것이네요. 책의 제목이 로맨스소설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약간은 애매한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몇달 전 <다른 남자>라는 사랑에 관한 단편집을 본 것이 떠오릅니다. <더 리더>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리뷰를 쓸 때 부제를 '사랑에 관한 여섯가지 고찰'이라고 붙였었는데요. ' 그 책이 저에게 '이런 것도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을 주었다면 이번엔 '사랑이 도대체 뭐야?!'하고 의문이 들게하는 책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랑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40여개의 아주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콩트라는 단어의 뜻과 같이 발칙한 유머, 기지를 발휘하는 작가의 센스도 엿볼 수 있고 가끔은 따뜻한 이야기들도 보입니다. 사실 콩트로 시작해서 콩트로 끝나는 모음집이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는 편도 있었고, 보다가 훅 하고 어이없게 끝나버리는 편도 간혹 있었고 노골적인 장면으로 약간 민망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읽고나서 '참 이 책은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수닷거리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한 순간에 지나가는 설레임, 아픔을 불러오는 것들,  배신과 거짓말, 쓸쓸함과 무관심 그리고 행복을 포함한 모든 감정들이 담겨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간혹 사람들은 가슴 속에 무언가 남겨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괜찮아' 하는 것처럼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잖아요? 딱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구요. 제목의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끔은 우스워도, 허무해도, 슬프거나 기뻐도, 망상 속 이야기 같아도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라는 것을요.   

 


 

가장 좋게 보았던 세밀한 감정묘사.

 

 

"... 내 희망은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내 온몸이 굳은 기계로, 뇌는 물렁물렁한 스펀지로 퇴화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일어섰음에도 여자는 자리에 못박힌 듯 앉아 있었다. 문은 이미 열렸다. 나는 뒤를 돌아 여자에게 마지막 눈길을 던졌다. 명백한 의심, 거대한 무력감에 빠진 그녀가 내게 실망에서 비롯된 샐쭉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펼쳐진 양손이 순간, 위로 쳐들리며 짙은 회한의 감정을 표현했다. 굳어버린 몸으로 목청 높인 소리보다 더 아프게 '왜?!'를 외치는 그녀처럼, 아주 천천히, 그토록 슬프게" - 노선 (Le trajet) 편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나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내 곁에서 왜 그토록 느긋해지는지, 그녀가 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마치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만남을 계획이라도 했던 양 나를 그녀의 하루 속으로 끌어들였는지, 나로선 잘 알 수가 없었다 " - 거짓말 (Le mensonge) 편

 

 


 

"250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쓰는 건 어지간한 재능만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270편의 콩트를 써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리듬이 아니라 영감이다. 즉 270가지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 - 자크 스테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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