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엔 T 팬티가 뜬다고 한다. 4월 4일자 조*일보 경제면 기사다. 불황에 미니스커트가 뜬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을 넘어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미니스커트 -> T 팬티의 환유는 독창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굳이 인터넷 기사의 표제를 그렇게 뽑은 이유는 무얼까? 

1. 불황 = T 팬티라는 므흣한 연상을 선물하기 위해서
2. 너무나 획기적인 뉴스라서
3. 클릭수를 위해
  

답은 뻔하고, 이 페이퍼의 제목도 같은 논리에 의해서 작성 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물론 불황에 뜨는 것이 T 팬티만은 아닌 모양이어서, 오늘 만난 우석훈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공황에는 사회적 담론들이 활발하게 생성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꼭 한 목소리로 모아질 필요는 없다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두 같이 공멸하는 것밖엔 안된다고. 사회적 담론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뜻.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 책들을 앞에 늘어놓고 보자니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과연, 하고.  

꽤 선동적인 제목을 하고 있는 <혁명을 표절하라>의 원제는 <Do It Yourself : A Handbook for Changing Our World>. 지속 가능한 삶, 의사 결정, 건강, 교육, 먹을거리, 문화 행동주의, 자율 공간, 언론, 직접행동 등의 장을 통해 숨을 죄여오기만 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손으로 직접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법들을 담고 있다. 원제의 제목은 적확하지만, 마음을 잡아 끄는 힘에 있어서는 번역서 제목이 더 좋다.  

이 책은 사회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나 정치 정당 혹은 운동 집단("우리에게 10파운드를 주시면 우리가 당신을 위해 세상을 지켜 줄께요"라는 식의)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방법에 대해 거창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세상의 잘못된 점에 대해(많은 훌륭한 책들이 이미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정부를 전복할, 혹은 정치적 권력을 잡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한 번 더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직면하는 도전들에 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그리고 정부나 기업들과 관계없이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 여는 글 '우리 손으로 세상 바꾸기' 중에서 

오늘 우석훈 선생과 함께 만난 인물은 일본 비정규직 운동의 아이콘, 아마미야 카린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이지만, 우석훈 선생의 말에 따르면 "일본 NHK나 아사히 등의 언론에서 거물급으로 대우"하는 키 퍼슨과 같은 인물이란다.  

그녀의 이력은 꽤나 특이하다. 10대 이전에 집단 따돌림을 경험하고, 비주얼 록밴드의 그루피이기도 했으며, 몇 번의 자살시도 끝에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20세 때에는 천황을 찬양하는 극우파 펑크 밴드(!)를 만들어 보컬로 활동했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좌파 성향의 다큐멘터리 감독, 쓰치야 유타카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는 변한다. 로리타 복장을 하고 천황을 찬양하는 '악'을 질러대던 스무살 아가씨에게 어떤 훈계도, 동정도 없이 그저 카메라를 건네 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미야는 어느 순간부터 사회와 자신의 접점을 찾아내고 허무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족주의자 아마미야는, 아직 아마미야 자신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주의主義를 짊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비디오카메라와 마주함으로써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좌회전을 통해 '프레카리아트' 운동, 당사자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 후 <생지옥 천국>, <살게 하라! 난민화하는 젊은이들> 등 수십 권의 저서(르포)를 통해 상징적인 인물로 성장한 것이다. <성난 서울>은 그런 그녀가 방문한 2008년 여름의 서울이다. 분명 그때 서울은 성난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가십을 좋아하지만 또한 가십을 폄하하는 우리들은 '그래서?'라고 시큰둥하게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마 이 책을 읽고도 그렇게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두꺼운 얼굴을 가졌을 것이다. 삶에서 우러나온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는 그녀는 젠체하지도, 방정을 떨지도 않으면서 단순하고 명확한 말로 누구도 쉽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발문과 결문을 쓰고, 중간의 대담을 함께 한 우석훈은 이 책의 공저자다)  

그나저나, 그 '성났던 서울'은 어디로 갔을까?  

마츠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은 이미 지난 페이퍼를 통해 장문의 머릿말을 통째로 옮긴 적이 있으므로, 굳이 더 긴 설명을 늘어 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국의 듣보잡이여 궐기하라!' 참고)

일본에서 '가난뱅이'로 즐겁게 살고 있는 마즈모토 하지메는 아마미야 카린과는 친구 사이로, 아마미야 카린의 권유로 함께 방한을 했다고 한다. (하지메는 어제 성미산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이미 귀국했으며 나는 하지메가 디자인한 '가난뱅이 티셔츠'를 입고 카린을 만났다. 카린은 티셔츠를 가리키며 "하하, 힌콘!貧困"이라며 반가워했다… 빈곤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시종일관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책이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은 고단한 삶, 그 자체다. 아마미야 카린이 말했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10년 동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묵묵히 참고 살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노숙자가 되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상황이 지금 일본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이 책이 깊이 와닿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저 대단할 뿐이다. 이 책이 철저한 실용서인 이유는 우리 또한 10년 후를 대비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68을 다룬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명저 <신좌파의 상상력>이 재출간 되었다. '88만원 세대의 희망찾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 앵글을 넘어>(절망의 트라이앵글은 '대학등록금 1000만 원' - '청년실업 100만 명' - '사회의 오해와 무관심'의 삼위일체를 뜻한다. 사실 삼위일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후지다')와 경제학도라면 누구나 가방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니기 마련인 <미시경제학>의 저자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는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이다. 나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드는 직장인이라면 가차 없이 '비타 악티바 개념사 시리즈'의 <노동가치>를 추천함미다.  


* 길고 긴 4월이 끝났네요. 5월엔 살림살이 좀 나아질까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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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2009-05-0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책을 소개받아서 기분이 좋은데..한편으로는 너무 서글프네요..글의 내용이...막상 책을 읽고나면 더하겠죠...가슴이 답답해집니다...근데..태그에 '아내일도출근해야겠네'ㅋㅋㅋㅋㅋㅋㅋㅋ

활자유랑자 2009-05-11 19: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에너지와 긍정이 있는 책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제 추석까지는 단 하루의 공휴일도 없다는 사실도 조금 답답하고 서글픈 일인 것 같아요. ;
 

모두들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런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부는 존재하지만 우리 것은 아니고 아마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침을 떼고 모른척, 오늘도 토익책을 읽고 적금을 붓는다. 그쪽이 마음 편한 것이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를 통해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고 말했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가난뱅이의 역습>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만국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인터넷 신조어)이여 궐기하라!"  

이 책은 가난을 불평하지도, 그렇다고 인내하지도 않는다. 단지 죽도록 일만하고, 그 결과로 더욱더 피폐하고 가난해지며 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경쟁사회의 쳇바퀴에서 빠져 나올 것을 권할 뿐.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이다. 대신 그 가난은, 다른 누구의 배를 불리지도 또 다른 누구의 밥을 빼앗지도 않는 그런 가난이다.  

'대안 가난' 혹은 '공정 가난'이라고 해야할까?  

다시 말해 그것은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의 가난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가난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임승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이의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는 일이니. 도무지 가난뱅이들끼리 싸워서 어쩌겠다는 건가? 

<습지 생태 보고서> 최규석의 삽화와 어우러진 텍스트는 꽤나 발랄하게 씌어졌지만 웃으며 넘기다 보면 이 책이 철저한 실용서 임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이 농담 같은 책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농담도 그런 농담이 없다.  

책 한 권 값도 사실 만만치 않은 우리 가난뱅이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옮기는 것은 책의 서문 격인 '첫머리'와 '첫머리(속편)'이다. '가난뱅이 선언' 쯤으로 들리는 이 두 편의 첫머리를 보고 있자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영리함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듯. 백문이 불여일견!

* 첫머리

미안, 쫌 심했나? 큭, '공짜로 살아가는 기술'이라고라? 말이 그렇지, 흠 그리 만만하진 않단 말이야…. 하지만 그보다 훨씬 끝내주는 작전을 알려줄 테니까 안심하라구!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참 재미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어!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그러면 안 돼, 저 사람처럼 살아라…. 아이고, 시끄러!  

요즘 '격차 사회'란 말이 유행하면서 모두들 '더 나은 생활'이라는 압박에 시달리는데 말이지, 이거이거 정신 나간 세파에 꼭 뛰어들어야 하겠어? 그렇게는 못하겠단 말씀이야! 누굴 바보로 아나! 대충대충 월급쟁이가 되어 30년 대출상환으로 집을 사면 도망도 못 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잖아. 빠릿빠릿하지 못한 남자하고 결혼해서 따분한 가정주부로 살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아이 목을 졸라 죽인 여자도 나타나고 말이야. 회사에 충성을 바쳐 아르바이트직에서 정규직으로 착착 승진해서 출세하려고 했는데, 사실은 혹사만 당하고 찬밥 신세가 되니까 우을증에 걸려 죽어버리잖아. 아니, 이런 김밥 옆구리 터지는 얘기가 어디 있어?  

어이, 이렇게 될 바에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멋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아? 지금 실업자 지원이나 프리터 대책 같은 걸 봐도 결국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라' 하는 얘기밖에 안 돼.  

근데 요즘 같은 세상에 '제대로'라는 게 뭐지? 말도 안 되는 저임금에 일만 죽도록 하다가 피로 좀 풀려고 거리에 나가면 이거 사라, 저거 사라, 귀가 따갑다구. 신상품에 발이 채여 괜히 사고 싶은 마음만 들잖아. 월급이 쬐금 많은 놈이라도 어쩌다 보면 돼먹지 못한 비싼 전자레인지 같은 걸 사는 데 보너스도 다 써버리고 무일푼이 된다구. 그런 꼴 당하기 싫어서 어디 가서 좀 쉬려고 둘러보면, 공원 벤치엔 요상한 팔걸이를 만들어서 낮잠도 잘 수 없고, 기차역 대합실이었던 자리에는 어느새 스타벅스가 들어앉아 있으니…. 쳇, 재수 없어…. 돈이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집에 들어가잖아? 텔레비전을 켜보라구. 사채 광고가 왕왕 돈 빌려준다고 난리를 떤다구. 예쁜 아가씨가 돈 빌려주는 줄 알고 입을 헤 벌리고 돈 빌리러 가보라구. 사람은 코빼기도 안 뵈고 기계만 떡하니 버티고 있다구. 그 다음엔? 필요 이상으로 험상궃은 아저씨들이 빚 받으러 찾아오신다구…. (이쿠! 그런 얘기까지 할 건 없잖아!) 여하튼 돈은 안빌리더라도 말이지, 매일 죽어라 일해서 PDP 사고, 세탁건조기 사고, 돈 모아서 도요타 자동차 사고(물론 대출 받아서!), 불경기로 찌부러진 치바나 사이다마 근처 땅에 30년 상환 조건으로 내 집 사고, 마지막으로 퇴직금을 탈탈 털어서 자기가 들어갈 무덤을 산단 말이지…. 결국 죽을 때 가져갈 땡전 한 푼 없이 써버리는 것, 그게 바로 제대로 된 '격차 사회'고 '더 나은 생활'이란 말이야….  

…흥, 이거 뭐야! 시시해, 답답해!! 

말하자면…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해서 이제는 '우등반'(* 우등반 : 일본어로는 '가치구미', 즉 승자들의 집단을 말한다. 상대어는 '마케구미', 즉 패자들의 집단으로 '격차사회'의 양극화를 나타내는 유행어)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안된 얘기지만, 자네도 이미 각 잡힌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진짜 '우등반'이란 말이지, 잠깐 일을 쉬거나 몇 년쯤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들이라구. 이런 놈들은 무지무지 노력하고 무지무지 재수가 좋아야 해. 그러니까 보통 사람한테는 무리지.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누군가 대신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시대를 잘 타고났기에 망정이지 옛날 같으면 가난뱅이들이 멍석말이를 해서 먼지 나도록 흠씬 두들겨 패주었을 것이라는 말씀.  

그런데 우리가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 어떻게 되지? 백발백중 눈 깜짝할 새 돈이 떨어져서 찍소리도 못하게 될 거란 말이야.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가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아니 현재 일본 사회의 90퍼센트 이상은 가난뱅이 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흐음, 이거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이기는 사람도 없는 경쟁사회에 휘둘리기는 죽기보다 싫으니 말이야!  

그런데 마음대로 살 거라고 선언이라도 해보라지. 좀 더 노력해보라는 둥, 세상을 위해서 일하라는 둥 설교하려는 놈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라구.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 -> 세상이 나아진다 -> 떡고물을 얻어먹는다'는 건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는 말이지. 이렇게 하면 우수한 노예가 될 뿐이야…. 거짓부렁! 뻥이야! 그만두는 게 좋다구.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나중에는 새 발의 피 같은 돈 부스러기나 얻어 쓸 수 있을 뿐이니까.  

그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 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 몸부림친다 -> 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는 생각을 해봐.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방식 아냐? 이거야말로 얼마나 인간답고 즐거우냔 말이야. 

조오타. 이렇게 된 바에야 멋대로 살아볼까! 야호! 시시한 놈들이 지껄이는 말은 듣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보자. 우리 가난뱅이가 이 세상을 한바탕 걸지게 뒤집어보자! 좋아 좋아! 정했어! 축제란 말이다! 시끌벅적 한판이닷! 

* 첫머리(속편) 

근데 잠깐만 기다려! 당신들, 덤비지 말구 내 말 좀 들어봐!! 

세상은 의외로 빡빡하다구. 기죽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근처 공원에서 매일 낮잠이나 자보라지! 그런 과격한 행동을 개시하면 먼저 근처 골목대장들이 알아보고 "저 사람, 회사도 안가나 봐!" 하고 밀고를 해서 동네에 금방 소문이 쫘악 퍼져.  

더구나 갑자기 아무 일도 안 하고 낮잠만 자고 있으면 조만간 돈이 떨어질 게 뻔하잖아.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쫓겨날 테고, 방세가 밀리면 집주인한테 방 빼라는 소리를 듣겠지. 배가 고파 빵을 훔치다가 걸리거나, 공갈 좀 해보려다 실패해서 중학생한테 린치를 당할 수도 있어. 이웃의 판잣집에 가서 사기 반 공갈 반으로 "댁에 흰개미가 득실거려서 집이 무너질지도 몰라요! 200만 엔만 들이시면 제가 고쳐드릴게요"하고 말했다가 거짓말이 들통 나면 노친네한테 멱살을 잡힐 수도 있어(옛날 노친네들은 의외로 힘이 세거든). 할 수 없이 벤치에서 풀이 죽어 자다가 굶어죽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멋대로 산다는 게 그리 녹록지 않다, 이거야.  

그럼 어떻게 하라구?! 

첫째 돈을 물 쓰듯이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의 본연적인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야. 그럼 어떻게 하느냐. 고고한 척하며 가난을 자랑거리로 내세워봤자 궁색하기 짝이 없거든. 그것보단 여차해서 큰 일이 나도 잘 넘길 수 있는 생활 기술을 익혀두자는 말이지. 또 거리 전체, 지역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밝고 씩씩하게 살아간다면 서로 도울수도 있고 훨씬 살기가 편해지지 않을까? 게다가 자기 힘으로 일도 하고 놀이도 해나간다면 스트레스도 낭비도 훨씬 줄어들 거야. 그렇게 못살게 하는 방해물이 나타나면 꼼짝 못 하게 물리치는 기술도 습득해두면 범에 날개를 다는 격이지.   

야! 야! 야! 매일 얼근하게 취해서 노세노세 하는 베트남 식당 주인을 보라구! 오후에 일을 마치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춘화를 보여주겠다고 하면 벌떼처럼 모여들던 에도시대 상인들은 어떻구! 밝고 씩씩하게 살아도 세상은 돌아가기 마련이야! 위대한 조상들의 뒤를 잇자구! 

이 책은 격차 사회의 승자 반인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되는 기술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우리 가난뱅이 계급의 서바이벌 기술 실용서인 셈이지! 자, 어때? 침 넘어가지 않아? 

축제를 벌이자! 시끌벅적 한마당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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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놀아봐야 놀 줄 알지 - 마쓰모토 하지메, &lt;가난뱅이의 역습&gt;, 이루, 2009
    from Fly, Hendrix, Fly 2009-04-21 19:26 
    가난뱅이의 역습 -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이루 세상에 처음부터 뭐든지 잘하는 사람은 없다. 기타를 잘 쳐보려면 기타를 일단 잡아야 하고, 춤을 잘 춰보려면 최소한 TV에 나오는 댄서들의 안무를 따라는 해봐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해보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넌 경험이 없어서 안 돼.”라고 말하는 경우다. 요새 취업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요구하..
  2. 가난뱅이의 역습
    from 으악! 2009-09-13 22:52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직접 해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했던 작전들을 소개해준다. 책에 나와있는 오프라인 작전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 작전들은 평화적이면서 재미도 있어보이고 사람들 사이의 정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따라해보고 싶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p.201)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만 하는 것이..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MD란 참 고민 많은 직업이 아닐수 없다. '뭐(M)든지 다(D)한다'의 약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업계 농담이 있을 정도다. 딱히 불평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 <고민하는 힘>도 많은 고민을 안겨준 책이었다. 출판사에선 많은 판매를 기대하는데, 솔직히 긴가민가 한 경우 나는 고민한다. 물론 그것은 책의 작품성,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모든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려고 한다. MD는 좋은 책을 많이 팔려고 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경우에는 표지 탓이 컸다. 인문학 분야 베스트 1위를 당당히 달리고 있는 지금은 그런 고민이야 깨끗하게 사라졌지만, 그래도 턱을 괴고 어딘가를(설마 나를?) 보고 있는 강상중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조금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주 신간메일 제목엔 '김상중 교수'라고 오타를 내기도 했다. 물론 강상중 교수 탓은 아니다)

고민이란 말은 내게 싱크대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방치된 집안일이 그렇듯, 그릇으로 가득 찬 싱크대는 묘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말이면 남아있는 밥공기가 없어 큰 맘 먹고 설거지를 해보지만, 이런. 분명히 10분 전에 설거지를 한 것 같은데 이내 싱크대에는 그릇들이 놓인다. 물론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설거지를 해냈으므로 곧바로 설거지를 할 마음은 없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설거지가 쌓이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셈이다.  

사무실 책상위의 전화기는 또 어떤지. 딱히 수화기를 빙빙 돌리거나 하는 것도 아니건만, 내가 모르는 종류의 자연법칙이라도 작용하고 있다는 듯 전화선은 언제나 꼬여있다. 전화를 받다가 함께 딸려오는 전화기에 당황해본 사람은 안다. 마치 계단을 헛딛은 것처럼, 매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사무실로 전화를 거셨다가 받자마자 "여보세.. 컥"라고 해서 놀라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를…)

언제나 바라보면 잘릴 준비가 되어 있는 손발톱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손톱깎이 정도는 다룰 줄 알지만, 일종의 알람처럼, 똑똑 손톱을 깎고 있자면 나도 모르는 새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어느새 손톱이 이렇게 자란 거야? 똑, 똑. 도대체 그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똑, 똑. 이봐, 자네 혹시 내 시간 봤나? 똑. 분명 도시락 통에 넣어둔 것 같은데 감쪽같이 사라졌단 말이야. 거 참… 아, 젠장 입에 튀었네. 퉤퉤퉷! 

이것들은 내가 인생해 대해 가지는 느낌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언제나 꺼림직하고, 죄책감이 들며, 꼬여만 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도리도 없이 시간은 흘러만 간다.

다들 마찬가지인 건지 <고민하는 힘>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참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말 이 (알 수 없는 사람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책이 잘나갈까?"라는 내 고민은, 헛고민이었던 셈이다. 사실 우리의 많은 고민은 헛고민이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잔가지 같은 고민들.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 머리는 또 어떻게 만져야 좋을지 / 이건 어떠니 또 저건 어떠니 고민 고민하지 마!"라고 이효리가 노래했던, 그런 고민들. 그래, 그런 고민은 지겹다.

사실 우리가 계속해서 작은 고민들을 안고 사는 것은 편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손 안에 넣고 주사위를 굴리듯 '짱구'를 굴려볼 수 있으니까. 큰 고민이 가끔 말을 걸려 하면 "아 잠깐만, 나 지금 바빠"라고 별 죄책감 없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강상중 교수의 책은, 이 책을 집은 사람의 심리를 '배반'하는 구석이 있는 셈이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큰 고민'이니까.

이쯤에서 폴 발레리(의 것으로 알려진 경구)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사는 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 정원사가 꿈이 아닌 이상 그 고민은 '큰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고민의 잔가지만 치고 있다고 정원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마음먹은 당신에게, 한 손에는 막스 베버와 다른 손에는 나쓰메 소세키를 붙들고 있는 이 책은, 적잖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이 고민하시라고 특별히 첫 줄의 나머지 세 권을 철학책으로 채웠다. 여기까지 쓰느라 벌써 적정량(?)의 고민을 한 본 담당MD는 나머지 세 권에 대해 별 다른 코멘트를 붙이지 않겠다… 라고 하면 부장님이 부르시겠지!  

- 책날개에 상당히 재미있는 저자 사진을 담고 있는 <시차적 관점>은 아시다시피, 지젝의 책이다. 이 책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지젝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미 여기저기서 많은 정보를 들어 알고 계실 테니. 

이 책에는 파란색 '편집자추천' 딱지가 붙어 있는데, 대개의 경우 그것은 "아, 책 파는 사람이 읽어도 정말 좋네요"(개인적 취향 78%)이지만, 이번 경우는 "지금 당장 읽어버리고 싶은 책!"임을 뜻한다. 실제로 내가 838쪽을 자랑하는 이 두꺼운 책을 읽으려면 안식년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차적 관점>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1993) <까다로운 주체>(1999)의 뒤를 잇는 주저이며, 스스로 대작(Magnum Opus)라고 칭한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번역은 꽤나 매끄럽다고.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많은 신문기사들처럼 대충 보도자료를 짜깁기해 설명할 수는 물론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라고. (물론 이건 단순한 '패러디'에 불과하다. 나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인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 <드림 위버>는 그 두터움에 있어 <시차적 관점>을 닮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고민하는 힘>을 닮았다고 해야겠다. 형식에 있어서는 <소피의 세계>를, 플롯을 따지자면 <기억 전달자>를 닮았다고 말해도 좋다. 한 마디로, 소설의 형식으로 철학을 다루지만, 철학사적 접근이 아닌 논쟁거리를 던지면서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두껍지만 어렵지 않은 책. 

- <고대원자론>의 부제는 '쾌락의 윤리로서의 유물론'이다. 쾌락과 윤리와 유물론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지만, 같이 붙여 놓으니 꽤나 근사하게 들린다.

쾌락의 유물론은 하나의 '비판철학'이다. 고대 원자론자들은 신성하게 여겨지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신화, 종교, 제도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 속에서 강렬하고 완벽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쾌락의 철학을 설파하며, 이에 다다르기 위한 우정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자들을 따라 유물론에 '비판'이라는 역할을 부여하는 동시에, 쾌락의 '유물론'을 '윤리'의 문제로 만든다. (중략)

일체의 초월적 원리를 부정하고 형이상학적 체계를 뒤흔드는 ‘스캔들로서의 철학’. 당연시되는 것들을 의문시하고, 행복을 위한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는 철학. 이는 사회 체제에 수상하고 위험한 것으로 비쳐졌고, 끊임없이 관념론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기독교적 세계가 들어서면서 원자론은 더욱 철저하게 비난받고 금기시됐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은 현재적이다. 역사의 종언이 이야기되고 공고화된 체제가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기, 계층화가 확대되고 다른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 지금, 고대 원자론자들이 제시한 물음들은 여전히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 출판사 보도자료 중에서

 

 

 

 

 

 

 
<심리학 초콜릿>의 저자 김진세가 남자인 줄은 TV를 보고 알았다. 사실 <심리학 초콜릿>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금은 20대 여성들을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스타트 신드롬>은 꽤나 공감하며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작은 언제나 두려운 법이다. 새로이 무언가를 쥐기 위해서는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하고, 그것이 아무리 하찮을 것이라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 자신이 없어서, 의욕이 없어서, 상처가 두려워서, 게을러서. 아니면 정말 신체적으로 어지럽고 숨이 막혀서. 등등등. 오죽하면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을까.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스타트 신드롬이다.

반대로 누군가는 시작을 쉽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시작만 하고 만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이런 경우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준비된 말이 바로 '작심삼일'. 이 역시 스타트 신드롬에 포함된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게 마련이니.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하지 않은 일은 알게 모르게 마음의 다락방에 쌓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터져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스타트 신드롬>은 꽤나 위안이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달콤해도 위로가 곧 해결은 아니다.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초콜릿을 먹던 사람들이 이내 불어난 몸무게의 역습에 더욱더 우울해지듯.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래, 한 번 시작해보자!"라고 마음먹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 이후 10여 년간 (가끔씩) 꿈꾸었던 복싱 도장과 역시 10년을 벼르던 기타 학원을 다니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딱히 세계챔피언이나 버나드 버틀러를 꿈꾸는 건 아니다.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런 책을 쓸 생각이다. <미스터 챔피언 : 혹은 나는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챔피언 벨트를 훔쳤나?>(미국 출간 제목 : Mr. Champ :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Steal The Belt) 

샬라카불라 매지카둘라 비비디바비디부~

- <왜 그녀는 다리를 꼬았을까>. 다들 그 이유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베스트 순위로 쑥쑥 치고 올라오는 모습에 조금 놀랐는데, 개인적으론 '일'로 만나서 그런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락처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지! 이런, 또 부장님에게 불려가는 건가… 어쩐지 스포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을 세워 버렸다. 그러니까, 음. 그녀가 당신 앞에서 다리를 꼰 이유는 바로, 당신을 OO 하기 때문이다. XX도 YY도 아닌 OO. 바로 그거다. (죄송합니다) 

책은 말 그대로 '왜 그녀가 다리를 꼬았(고 또 이런저런 행동을 했)는지'를 분석한다. 신체언어를 다루는 책이란 말인데, 신체언어의 '아이콘' 데스먼드 모리스의 <피플 워칭>과 비교하면 특징이 두드러진다. <피플 워칭>이 학문적으로 접근했다면(이 말은 결코 '지루한'과 동일어가 아니다), <왜 그녀는...>은 신체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원하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가 한층 수월할 것이라는, '자기계발'의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하는 걸까…?)

그렇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설득의 심리학>을 읽는다고 설득의 달인이 되지는 않을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있다. 1~2도 정도의 차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굉장히 새롭게 마련. 그게 바로 독서의 매력이고, 다리를 꼰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이 책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 전에 나는 <미러링 피플>의 한줄 광고문구를 "막장 드라마 열광심리!"라고 썼다. 쯧쯧 혀를 차고 욕을 하면서도 막장 드라마에 빠져드는 인간의 심리가 바로 이 책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뇌다. 남의 행동을 바라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때와 똑같이 반응하는 신경 세포, '거울 뉴런'이 작동하는 것. 우리가 자연스럽게 맺는 관계들, 공감의 원천이 바로 그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그러니까, 만약 쌓여있는 책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해대는 이 서재의 글을 보고 책을 사게 된다면 바로 '거울 뉴런'의 작동 때문이라는 것! 사실 발로 쓴 것만 같은 이 글에 '거울 뉴런'을 작동시키는 '서브리미널'이 가득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 오늘의 인간 심리여행 마지막 책은 <심리 게임>이다. 원제는 <Games We Play> 즉 '우리가 하는 게임'이다. 상당히 재미있는 제목인데, 우리가 누군지 어떤 게임인지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친절한 번역서 덕에 책을 읽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인간의 사회적 교류에서 작동하는 심리 역학을 밝혀내 정신 의학계에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 책이다. 아기가 엄마의 보살핌 없이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정서적 교류를 통해 보살핌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인정받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게임을 만든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은 모두 게임하는 동물이다. 

이 책에는 무려 100여 가지 게임이 등장한다. 자기 주위의 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들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평생토록 지속되는 게임 집단으로 ‘인생 게임’이 있다. 인생 게임에는 ‘알코올 중독자’, ‘빚쟁이’, ‘나 좀 차주세요’, ‘너 이번에 딱 걸렸어’, ‘당신 때문이야’ 같은 게임이 있다. 성적 충동을 착취하거나 이겨내려는 게임들인 ‘당신들끼리 싸워보세요’, ‘유혹’, ‘난리법석’ 게임 등은 때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상당히 유쾌하고, 번뜩이며 또한 섬뜩하기도 한 이 책에는 무려 故 커트 보네거트의 서평이 실려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심리 게임>은 중요한 책이다. 과학도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단순한 실마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러하다. 이 책은 또한 마법적인 직관력을 지닌 소설가나 극작가는 그 어떤 의사보다 삶에 관해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헛소문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자신의 통찰을 의술에 보태고자하는 마음뿐인 여기 이 훌륭한 의사 선생님은, 작가들이 앞으로 만 년 동안 써먹어도 바닥나지 않을 이야기 구조(!)를 제공한다.

- 커트 보네거트, 1965년 6월 11일자 <라이프(Life)> 지 서평. (!)는 인용자(인문MD!)가 추가  

 

 

 

 

 

 

모노폴리 하면 브루마블이 생각나고, 브루마블 하면 호텔왕 게임이 생각난다. 역시 그 중에서도 최강은 호텔왕 게임이었다. 어린 시절, 서울에 호텔을 짓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주사위를 굴렸던가! 지나간 많은 세월이 그렇듯, 좋은 시절이었다.  

<미디어 모노폴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바로 그런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어떻게 '그들이' 헬싱키-스톡홀름-베를린으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독점'을 구축했는지, 가까워 올수록 주사위를 던지던 내 손이 어떻게 떨렸는지 같은 것들을. 나는 마지막으로 브루마블을 했던 21살 무렵, 과학생회장이었던 2년 선배에게 주사위를 집어 던지며 "이 자본주의의 개!"라고 울부짖은 일도 있다…  

물론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섬뜩하긴 하지만, 그래도 주사위는 공평하니까. '미디어 모노폴리'가 어린 시절의 그것과 다른 것은, 우리에겐 선택할 기회가 없다는 거다. 누군가는 돈을 가지고, 누군가는 미디어를 사들인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그 위에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돈 한 푼 없이 남들이 구축한 호텔들 사이를 '황금 열쇠'에서 대박 카드라도 뒤집기를 바라면서 겨우 지나다니는, 운이 좋아야 그저 파산하지 않을 뿐인 플레이어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속칭 '미디어법'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을 보라.

성문영 씨가 잠시 편집장으로 있었던 '서브'라는 잡지가 있다. 90년대 후반, 모던-브릿팝을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잡지. 그 잡지가 망한 것은 단지 당시 잘나가던 미성의 가수 XXX 씨의 앨범에 아주 낮은 별점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고를 빼버린 것이다. 일이 그러한데, '미디어법'이라도 통과하는 날에는! 정말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에 대해 우석훈 교수는 이런 평을 했다. "제대로 된 세계화 교과서, 이제야 나왔다!" DK 출판사의 책 답게 이미지와 도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은, 세계화의 여러 토픽들을 간결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뜨겁게 선동하진 않지만 팩트 그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 언젠가 나는 <벌들이 사라지는 곳>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려 했었다. 벌들이 감쪽 같이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이 무척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벌들이 사라지면 인류는 3년 내에 멸망할 것"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직장인의 군집 붕괴 현상' 쯤이었을까.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에서 형제는 '납치' 모티브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나는 언제나 '실종'에 끌린다.  

벌들이 왜,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추측은 가능하다. 모든 나쁜 이유는 인간'들' 때문이고, 벌들은 죽은 것이다. 슬픈 일이다. 벌들은 식물의 자연 수분의 70%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벌들이 사라지면 자연히 작물을 얻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아인슈타인의 예언은 들어맞게 될 것이다. 꿀벌이 무슨 죄람! 

- 마지막으로 소개할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과 정보처리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숫자와 통계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숫자와 통계는 일견, 과학이 그러하다고 여겨지듯 차갑고 객관적인 '사실'로 느껴지지만 과연 그것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숫자와 통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단단한 위안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적어도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사실로 여겨지고, 우리는 기뻐하거나 실망할 지언정 적어도 불안은 느끼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상생활의 모든 불확실성을 '수'로 대체하려는 인간 심리의 작동 방식이라고 책은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첫머리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끝자리가 48로 끝나는 복권(로또)에 당첨된 스페인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7일 동안 연속해서 숫자 7에 관한 꿈을 꿨고, 7 곱하기 7은 48이다!" 결국 숫자와 통계란, 그것에서 우리가 얻는 위안이란 이런 식이 아닐까? 어쩐지 우디 알렌의 농담처럼 느껴지지만.

 


오늘의 마무리는 한 장의 그림(?)이다.  

한가로이 누워있는 한 마리의 수달과 다 컸지만 아직 애 티를 벗지 못한 멧돼지 한 마리.  

멧돼지는 벌벌 떨고 있는데 수달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따뜻한 털로 덮고 있으면서 뭐가 그리 무서운 거지? 어금니도 있고, 나보다 훨씬 강하게 생긴 주제에!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전부터 어금니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친구들 말로는 어금니 몇 개 간단하게 때우고 스켈링만 해도 돈 백은 우습다는 거다. 아, 이러니 떨지 않을 수가.   

사실은 오늘 회의 시간에 예술MD 님이 들고온 <일러스트 연습장 동물 그리기>를 보고 따라 그렸다… (이로써 이 글에서만 부장님께 불려갈 일이 세 번 생긴 셈이다)  

귀엽기도 하고 어딘지 애처롭기도 한 동물들의 그림이 가득하다. 게다가 따라 그리기도 아주 쉽다! (비록 내가 그린 멧돼지는 불쌍하게 벌벌 떨고 있지만…) 그래도 10,800원은 좀 부담스러운 게 사실. 흑.  

아 근데 나도 정말, 네 귀퉁이의 어금니가 모두 아프고, 잔고는 없고, 그래서 무섭다. 진심으로 그렇다. 치과가, 단순히 치과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무서운 곳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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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오버> 강준만, 고종석, 박노자, 유시민- 정치논객 F4! 그들이 돌아왔다! 누가 '구준표'가 될 것인가? 도대체 누가 '지후 선배'란 말인가? 이들 정치논객 F4의 '금잔디'는 또 누구?  

 

보이스오버> 4월은 과학의 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보다 더 재미있는 대중과학책들을 만나자!
과학책이 어렵다고? Don't Panic!  

 

* 보너스 컷 - "지젝님이 보고 계셔"

(2009.04.15. 추가 * 제공 : 마티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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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예술MD 2009-04-0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악 멋쟁이!!!

// 어쨌든, 일러스트 동물 그리기(와 자매품 인물그리기)는 알라딘 단독 할인 쿠폰이 붙을거니까 걱정말아요. 라는건 한 권 구입하시면 어떻겠냐는 의미. ^^

활자유랑자 2009-04-13 11:43   좋아요 0 | URL
여기서 어슬렁거리다 부장님께 혼나요 ;

치과싫어 2009-04-0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큰일인데요..
이에 통증을 느끼셨다면 정말 사소한 충치라 생각하고
이미 최소 20은 깔고 네 귀퉁이라 하시니 기본 80에..
줄줄이 비엔나처럼 딸려나오는 치료해야 할 충치떼 하며.
버틸수록 연봉이 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치료비가 늘어날테고
빨랑 가세요, 치과.
문제는 저도 아래위로 이가 아프다는 사실. ㅡ,.ㅡ;

활자유랑자 2009-04-13 11:44   좋아요 0 | URL
어디.. '함께 가면 싸져요' 이벤트를 하는 치과는 없을까요? ;

슬겅슬겅푸르릅 2009-04-0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하 어떻게 어떻게 해서 들어와보았는데요

! 글 정말 맛깔나십니다! (허허 처음 들어와놓고서는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는지요;; 근데 정말요!)
강상중 교수님 [고민하는 힘] 책 소개 보고서도 살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여기 들어와서 본 글 읽고난 후
살까말까 고민이 소장가치 확신으로 굳어집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글이 술술술~
제대로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비공개로 담아가도 될는지요~(이러면서 벌써 마우스 우클릭하고 있지만서도~ 하하)

늘 설렘 가득한 봄날 되시구요~ ^^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벌써 즐겨찾기 추가임돠~ 하하하)

활자유랑자 2009-04-13 11:45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종종 놀러오세요. 고맙습니다. (공개로 퍼가셔도 됩니다;)

핀볼 2009-04-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직장인의 애환과 고뇌(?)가 묻어있는 글이군요. 저 수달과 멧돼지를 그리고 있는 MD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흠..아름다운 모습은 아니군요;;) 어쨌든 부장님은 이 글을 보고 책을 읽고 싶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어 제발 인문MD님을 호출하지 않길 바랍니다! 어쨌든 봄은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계절이죠? 너무 일찍 더워진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고보니 숨막힐 것 같은 사무실에서 수달을 그리고 있으면 어쩐지 시원해질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서재에 올라오는 글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활자유랑자 2009-04-13 11:50   좋아요 0 | URL
어째서 아름답지 않을까요. 실물은 서재의 사진보다 훨 나은데... 아, 혹시 저를 알고 계시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 어느덧 벚꽃도 지고 있네요. 고생하세요.

로쟈 2009-04-0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책이 'Magnum Opus'인 건 맞지만 왜 '대작'이라고 옮겼는지는 의문이에요. 그냥 '대표작'이란 뜻이 더 적합한데요. 마침 오늘 책에 대한 짧은 원고를 쓴지라 눈에 잘 띄는 글이네요(원래 '애독'하고 있지만요)...

활자유랑자 2009-04-13 11:55   좋아요 0 | URL
"스스로 대작(Magnum Opus)라고 칭한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 문장을 보건데 아마도, '대작'(넓은 범위에서)과 '대표작'(지젝 자신의 저술 중에서)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언어적 경제성 때문일지도? 뭐 결국엔 '대작'이 '대표작' 보다 더 근사해 보인다는 이유겠지만요.

저야말로 항상 즐겨찾고 있습니다. :)

삶은계란 2009-04-1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톱 이야기를 하시니 황신혜밴드의 손톱이 생각나 오랜만에 음악감상 중입니다. 날도 좋은데 좋은 글에 음악을 더하니 10점 만점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3 11: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늘도 날이 좋은데요? :)

2009-04-10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3 11:57   좋아요 0 | URL
MD는 merchandiser의 약자에요. "상품이라는 의미인 ‘merchandise’에 ‘er’을 덧붙여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에 대한 결정권자 및 책임자를 의미한다" 라고 하네요... (네이버 백과사전)

말은 그럴 듯 하죠? :)

마티 2009-04-1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티 이철입니다. 지젝 사진이 어둡네요. 직접 스캔하셧나봐요. 달라고 하시지.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5 13:5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이철 2009-04-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년에 제가 어금니쪽이 시려서 난생 처음 동네 치과에 갔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스켈링만 5만원.. 허걱. 그래서 이래 저래 지인을 통해 알아보았더니 어느 분이 성남에 있는 아주 친절하고 바가지없는 치과병원을 알려주시더군요. 성남 단대 오거리에 있는 남서울치과 입니다. 듣기로는 스켈링비가 1만원정도라고 하더군요. http://namseoul-dental.ohpy.com/main 031-748-7028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7 09:14   좋아요 0 | URL
성남까지 가려면 휴가를 써야겠는 걸요 ㅜㅜ

Claire 2009-04-1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인문MD님 글을 표현할 적당한 거리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쵸와 갈릭소스가 생각나네요. 얌얌..
기분좋게 읽고갑니다. 좋은 책 추천 땡큐^^

활자유랑자 2009-04-20 09:02   좋아요 0 | URL
갈릭소스 좋은데요? 많이 먹으면 좀 느끼하지만...;
좋은 하루 되세요 :)

비로그인 2009-05-0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님이 보고 계세! 아하하

활자유랑자 2009-05-11 19:15   좋아요 0 | URL
강렬하시죠 ;

2009-07-12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영국의 가수, 모리씨의 얘기다. "젠장할 일요일, 나는 공동묘지 입구에서 너를 만났지. 키츠와 예이츠가 네 옆에 서 있었어. 하지만 너는 이길 수 없을 걸. 내 옆에는 오스카 와일드가 있으니까" 이런 환장할 가사로 80년대, '옆구리에 가시가 박힌' 소년소녀들을 울렸던 스미스의 보컬리스트이자 작사가. 

모리씨의 거대한 에고 덕에 위태롭게 굴러가던 밴드가 예정된 파국을 맞은 후,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스미스의 재결성 소식은 없나요?" 모리씨는 되물었다. "스미스라고? 지금 내게 스미스란 말라버린 강바닥의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떠올리게 할 뿐인데?"  

나는 이렇게 묻는다. "하루키라고?"  


그렇게 됐다. 

"은유라든가, 인용이라든가, 탈구축(脫構築)이나 표본조사 따위"가 아닌, 그냥, 하루키. 村上春樹라고 쓰고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읽는 심플한 하루키. 누구나 어느 순간 하루키를 읽고 또 다른 순간 하루키를 내려 놓는다. 그 뿐이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겐 각각의 '무라카미'와 각각의 '하루키'가 존재하고, 또 다시 그 각각의 조합이 무한대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누군가는 다시 하루키를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 경우라면 나는 '208번'째와 '209번'째의 하루키에 대해 말해야겠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하루키인 것이다.

*** 

어느 남성지의 편집장은 이런 제목의 글을 썼다.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꽤나 생색이라도 낸다는 듯이. 나는 그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마음은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사랑하지만 좋아하진 않는 대상에 대해 말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말하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다. 좋아하지는 않는 사랑이라면 더더욱. 좋아한다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지만 사랑은 즐거움만은 아니고, 때론 즐거움이 없는 사랑도 존재하는 것이다. 명태와 동태와 황태가 다르듯. 물론 일반론이다.

하루키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의 일이다. 나는 슬펐고, 궁금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무엇을 잃어버린 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들었다. 혹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자 슬프고, 궁금해졌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하고. 무엇이 먼저였을까? 물론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 되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그런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양을 둘러싼 모험>, <댄스 댄스 댄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태엽갑는 새>,  <렉싱턴의 유령>, <스푸트니크의 연인>, <화요일의 여자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세라복을 입은 연필>, <랑겔한스섬의 오후>, <꿈에서 만나요>, <슬픈 외국어>, <밤의 원숭이>, <먼 북소리>,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중국행 슬로보트>, <빵가게 습격>, <TV 피플> 같은 것을 읽고   

라디오헤드의 '마이 아이언 렁', '더 트릭스터', '펀치드렁크 러브식 싱얼롱', '하이 앤 드라이', '페이크 플라스틱 트리', '나이스 드림', '저스트', '불렛 프루프..아 위시 아 워즈', '블랙 스타', '스트릿 스피릿',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 '엑시트 뮤직(포 어 필름), '카르마 폴리스', '노 서프라이지즈', '하우 캔 유 비 슈어?' 같은 것을 들으며 10대를 보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학교생활은 지루했고 음악은 끝내줬으며, 책은 거의 경이롭기까지 했다. 시간은 참 더디게 흘렀다.  

몇 명의 여자애를 좋아했고, 몇 명의 여자애를 만났다. 그 아이들이 꼭 겹치지는 않았다. 한 여자는 나를 만나던 도중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를 만나던 도중 다시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마치 솜씨좋은 DJ가 교묘히 레코드판을 갈듯. 언젠가 나는,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무슨 생각으로 그 애를 만났던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대답했다.  

"그런 거지. 나도 한 번 여자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근사한 대답이다. 좋은 이유는 아니지만 좋은 대답. 세상엔 그런 것이 존재한다.

그런 시절이었다. '섹스가 산불처럼 공짜'였던 시절, 이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아직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이 산 속의 이름 모를 나무들처럼 늘어서 있던 시절. 우리들은,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으면서 무언가 잃고 있지 않을까 끊임 없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십오 년에 걸쳐서 정말로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버려 왔다.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가 중량을 줄이기 위해서 화물을 내던지고, 좌석을 내던지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엾은 스튜어드를 내던지듯이, 십오 년간 나는 모든 것을 내던져 왔고, 그 대신에 거의 아무것도 몸에 붙이지 않았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에서

그러니까 우리는,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도 아닌 주제에 무엇인가를 버리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다면 그것은 곧 다시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하루키의 친척쯤으로 여겨졌던 무라카미 류도 말하지 않았던가. "무언가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무언가를 잃음으로써 사라진다" 그런 식으로.

물론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가 <상실의 시대>를 살았다면, 그것은 '상실에의 예감으로 가득찬' 혹은 '상실에의 열망으로 가득찬'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계시록'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을 뿐이다. 새파란 어린아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버렸다. 껍질을 깨고 나온 애벌레가 껍질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듯. 그리고 다시는 껍질을 생각하지 않듯. 그래서 나는, 엄마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하루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다, 고.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작고 멋진데다 조용한 카페에 어느 날부터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하루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개나 소나. 애시당초 나에겐 카뮈가 그르니에의 책에 붙였던 그 유명한 서문처럼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 할 수 있는 아량 따윈 없는 것이다. 정어리는 정어리고, 카뮈는 카뮈다.  

언젠가부터 나는 하루키를 광산에 비유하며 그런 스노브를 정당화했다. 어떤 광산이 있다. 광물들이 무진장 많은 것만 같던.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러쉬'해오고 이내 광산은 바닥을 보였다. 더이상 내줄 것이 없어졌단 말. 물론 그 말은 틀렸다. 적어도, 그 광산에서 직접 캐낸 광물로 만든 무언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나는 그것을 김연수 작가에게 배웠다. 물론  김연수를 읽은 게 하루키 때문은 아니었지만…   

대신 레이먼드 카버, 스콧 피츠제럴드, 커트 보네거트, 레이먼드 챈들러, 무라카미 류(이름 때문에)를 읽지 않았던가.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갯츠비는 그저 기무타쿠가 선전하는 왁스로만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세상은 훨씬 단순하고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하루키를 탓하려는 건 아니다…

아직 내가 버리지 못한 하루키는 이런 모양이다.

각각의 책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말이 꽤나 많다. 밤을 샐 수도 있다. 뭐, 딱히 으시대는 건 아니지만…

대신 지금은 없는 책을 말해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하루키를 말하는 데에는 그걸로 충분하다. 기준은 두 가지다. 1) 지금 내게는 있지만 알라딘(을 비롯한 서점)에는 없는 책. 2) 한 때 내게 있었으나, 이 자리에 없는 책.  

먼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김춘미 역, 한양출판사 : 참 멋대가리 없는 표지이지만, 처음 읽었던 하루키 책이고 가장 많이 읽은 책이기도 하다. 사실 내게 저 책은 세번째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처음 산 한양출판본은 친구에게 빌려주었다 돌려받지 못했고, 두번째 문학사상사본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것 참.

<화요일의 여자들> : 이 빨갛고 두꺼운 책의 가격은 고작 6,000원! 나는 돈 없는 중학생이었고, 경제발전과 함께 이 책 역시 사라져버렸다. 시간은 흐르고 책값은 오른다. 어쩌면 그것이 '시간이 흐르고'의 유일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김난주 역, 열림원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 책 중의 하나다. 아무래도 나는 '문학성'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 역시 한 때 내게 있었으나 사라졌고, 얼마 전 알라딘 중고샵을 통해 다시 구입했더니 도서관 딱지를 달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나는 책의 상태나 밑줄 같은 것에는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하다. (중앙M&B판의 <먼북소리> 역시 김난주 번역이다. <국경>과 <먼북> 모두 현재 팔리는 문학사상사판은 역자가 다르다) 

이 자리에 없는 책들 중 첫째로 꼽고 싶은 건 한양출판의 <양을 둘러싼 모험>이다. 현재 팔리고 있는 문학사상사판의 제목은 <양을 쫓는 모험>이고, 나는 과거의 제목이 더 좋다. 딱히 감상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저 '둘러싼'이란 부분이 말할 수 없이 근사한 것이다.  

실은 얼마 전, 고등학교 때 <양을 '둘러싼' 모험>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친구의 신혼집에 들른 일이 있다. 그 집의 화장실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우습게도 <양을 '쫓는' 모험>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떤 것은 변한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이다. 변한 것이 슬픈 것인지, 변하지 않은 것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몇몇 부분은 여전히 근사했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  

조금 있다가 머리맡의 전화가 울렸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내 가슴 위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전화 벨이 네 번 울리고 나서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 이리로 와주지 않겠어"라고 상대방이 말했다. 긴장된 목소리였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야." 
'어느 정도로 중요한데?"
"와보면 알아"라고 그는 말했다.
"어차피 양에 대한 이야기겠지"라고 나는 시험삼아 말해 보았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수화기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어떻게 알고 있지?"라고 그가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양을 쫓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 <양을 쫓는 모험> 중에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와 <하루키 소설 속에 흐르는 음악> 그리고 <승리보다 소중한 것>에 대한 이야기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다시 읽은 건 충주경찰학교에서였다. 나는 전경이었고, 육군훈련소에서 이송되어 받은 2주간의 보충교육 중 하루는 가족과의 면회에 배정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필요한 것이 없냐는 엄마의 말에 "서점에서, 하루키 책, 무! 라! 카! 미! 하! 루! 키! 그래, 하루키. 아무 거나 그 사람 책. 몇 권이든 꼭!"이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1분이 1년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평균적으론 1분이 2시간 같았던 훈련소 생활이었다) 마침내 나타난 엄마의 손에 들려있던 것이 바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와 <하루키 소설 속에 흐르는 음악>이었다. 나는 적이 실망했다. 하필이면, '달라진 하루키'의 단편집과 소설도, 하루키가 쓴 책도 아닌 어정쩡한 책이라니! 마지막 '벌꿀파이'에서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실은 얼마전에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다시 읽었다. 김연수 때문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하라는 말에 스페인 여행 길에 들고 왔다며 당당하게 추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실은 이런 글을 쓰게 된 건, 김연수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내 문장이 김연수 탓은 아니다…

오랜 만에 읽는 하루키는, '달라진 하루키'는, 어쨌든 하루키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작품들을 어떻게 돌아 보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또 찾으려 했는지도.  

'벌꿀파이'만 해도 그렇다. 언제나 나는 그것을 주인공이 회상하는 '20대 초반' 부분에 집중해서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30대 중반'인 현재 시점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나는 30대 중반이 전혀 아니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오른쪽 발에서 왼쪽 발로 무게를 이동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그 경험이 하루키의 몇몇 책을 내게 다시 읽게 했고,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껏 의식도 하지 못한채 얼마나 하루키의 주인공처럼 살려고 했던가, 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29년이나 인생을 살아오며 나는 무엇하나 몸에 지니지 못했지만 그래도 교훈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살 수는 있어도(번개를 일곱 번 맞을 확률이라 하더라도),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 수는 없다. 전혀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갑자기 나이를 훨씬 더 먹은 기분이 든다.

"어때, 멀리까지 왔다는 게 조금 실감이 나?"  
"아주 먼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야" 하고 고무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시마오 양은 고무라의 가슴 위에다 손가락 끝으로 무슨 주문처럼 복잡한 무늬를 그렸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중에서 

*** 

이 두서 없고 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해변의 카프카>는 재미 없고 <어둠의 저편>은 수준이하라고, <도쿄 기담집>은 아직 읽지 않았고 당분간 읽을 생각도 없다, 라고…? 아, 가혹하다. 그건 너무나도 가혹하다…

대신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직 끊이지 않은 '하루키의 유산'('위대한 유산'이라고는 아직 하지 않기로 한다)에 대한 것.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지난해 여기저기서 들리던 샤이니의 노래. "누난 너무 예뻐"서 "하지만 이제 지쳐" 가는 샤이니 친구들은 난데없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라고 노래했는데, 놀랍게도, 그 출처는 바로 하루키였다!



 

 

 

 

 
사실 내가 눈이 가는 것 그 윗 문장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기도 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부분. 그러니까 나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인생에 대한 부분. 뭐, 가끔은 그런 생각도 나쁘지 않다.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딸깍!
OFF.

잠깐만, 잠깐만. 뭔가를 빼먹은 것 같은데?  

아! <승리보다 소중한 것>에 대한 얘기. 작년 여름, 문학MD님께 선물 받은 책이다. 저 책이 출간 되었을 때 우리는 마라톤을 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고, 실제로 10km를 뛰기도 했다. 단 한 번이지만… 우리는 10만원 내기를 했고, 내가 졌다. 그러니까 저 책은 10만원인 셈이다. 아직 읽지는 않았다. 10만원 짜리 책을 쉽게 읽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누가 반값(5만원)에라도 산다면 조금 생각해볼 의향은 있다. 되도록이면 파는 쪽으로…

 

*** 



 

 

 

 

 

정말 마지막으로, 하루키와 같이 있는 친구들을 소개하겠다. 간단히 말해 '일본소설' 분류.  

무라카미 류와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끼,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미야자와 겐지, 미루야마 겐지가 있다. 고려원에서 나온 <일본대표단편선 1, 2, 3>은 3권 해서 헌 책을 3만원 가까이 주고 구입했던 것 같다… 뭐, 한 권에 10만원 짜리 책도 있는데.

저 자리에 있었던 책들을 떠올리는 일은 물론 가능하다. 온다 리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미시마 유키오, 유미리 등등. 사실 일본 소설 칸이 두 칸이나 되는 건 비율상 맞지 않다. 그래서 온다 리쿠가 버려진 것인데, 결국 한 칸으로 줄이지는 못했다. 이런 경우에는 역시 책을 늘려서 두 칸을 이중으로 꽉꽉 채우는 게 가장 간편하다… 어처구니 없지만 낭비되지 않고 있다, 라는 느낌이 필요한 것이다. 직장생활이랑 비슷하다… (그래서 오늘도 보관함은 미어터지고)

<라스 만차스 통신>은 끌리는 제목이라 중고샵에서 구입하고 아직 읽진 못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참 오랜만에 읽은 재능있는 일본 신인 작가의 소설. 가장 최근에 합류한 책은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으로, 처음에는 <마츠모토 세이초 초걸작 단편 컬렉션>으로 읽었다. (얼마나 걸작이길래…?) 이런! 이야기가 또 길어지려고 하고 있잖아!

어쩌면 나는 이 글에서 왕가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지 모른다.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타락천사> 같은 영화들에 대해서. 하지만 나는 도서MD일 뿐이다.

대신 이런 문장으로 끝내야겠다.
MD로서, 진심을 담아.

와타야 리사, 꼭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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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서재와 쇠잔한 가짜책
    from 첩첩책중 2009-04-02 13:27 
    나는 (10km 경주에서 이겼고, 10만원을 받아낸 사람) 실제로 와타야 리사를 만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참고로 나는 잘 때 꿈을 거의 꾸지 않는 사람이다. (1년에 두 번 정도?) 왜국과 양국을 대표해서 함께 글쓰기 여행... 이라도 떠난다면 조나단 샤프란 포어와 함께(한.미.일을 대표해서),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조나단은 이제 조너선으로 표기되는 것 같지만... 천재 문학가 같은 게 되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신세라는 걸 아주
 
 
Narcolepsy 2009-04-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9년이면 아직 젊으시잖아요, "인문"MD님하. ~<-o->~
일본가면 꼭 등장 발로 차주고 올게요, 꼭한번만나고싶은그님하의.

하지만 어쨌든, 와글거리게 된 조용한 단골집의 기분은 97%가량 이해.
그런데, 갑자기 사라져버리거나 망해버린 단골집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흙.

활자유랑자 2009-04-03 01:51   좋아요 0 | URL
인증샷 부탁드리고... 사라진 단골집 대신 집구석단골화는 어떨까요? (일상예술화 전략처럼..)

Blanqui 2009-04-0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뜬금없는 와타야 리사. 반전이로군요-_-;

활자유랑자 2009-04-03 01:53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일본소설 책장을 훑다가 너무 반가워서 그만 ;

2009-04-01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4-03 01:53   좋아요 0 | URL
칭찬...이신거죠? ; 고맙습니다 :)

koogi 2009-04-0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이런 식으로 글을 쓰시는 건지,
그게 아니면 1973년의 핀볼을 따라하신건지..ㅎㅎ

활자유랑자 2009-04-03 01:54   좋아요 0 | URL
오마주, 라고 해둘까요?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더 따라했어요 실은.

두심이 2009-04-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이런 글을 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딱 그만큼.. 후후..너무나 재미난 인연이네요. 꼭 제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 듯 했답니다. 잘 읽었습니다.딸깍! OFF.


활자유랑자 2009-04-06 11:40   좋아요 0 | URL
그게 바로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겠죠? 반갑습니다 :)

ghost 2009-04-0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깔끔 담담한 문체 부럽습니다.

활자유랑자 2009-04-20 09:00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

2009-04-17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4-20 09:01   좋아요 0 | URL
<도쿄 기담집>은 아직 읽지 못했어요. 어쩐지 들게 되지 않네요.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죠? ;

bugs 2009-04-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흠, '와타야 리사'를 만나러갈때 비행기티켓은 제가 사도될까요?

활자유랑자 2009-04-29 15:42   좋아요 0 | URL
날짜 잡을게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볼까.

...

꽃이 피었겠지. 어쨌든 봄이니까. 

봄은 도둑처럼 찾아오고, 봄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꽃샘추위가 왔단다. 그러니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샘내는 봄은 꼭 '아수라 백작'을 닮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다시 꺼내는 일도 충분히 지겨운 일. 그래서 입을 다물고 묵묵히 바라봤다. 몇 초쯤. '소소한 일상'을. 그 '일상적인 삶'을. 그 안에서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그건 마치 '코너'에 몰린 복서가 커다랗고 텅 빈 링을 바라보는 일과 비슷하다. 조금 '병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크, 조심해! 

나는 늘 패배하는 3류 복서를 닮은 가수를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엘리엇 스미스. 속삭이듯 읊조리는 그의 노랫말도.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마지막이 어떨지, 아무도 말해주진 않아요. 당신이 직접 보기 전까진. 
no one says until it shows and you see how it is.

편히 잠들었기를.

갑자기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팔자 좋으시네요, 호이징하 씨! 그래도 역시 놀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 들지 않는 건 또 아니어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니까 내 방을. '읽GO 듣GO 달렸던(?)', 그래봤자 어쩔 수 없는 작은 방을. 

물론 '검은 백조' 같은 게 나타날 리 없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고, 내일의 바지를 입어야한다. 변함없이. 그래도. 작은 생각이 뇌 한쪽 구석에서 뇌까린다. 그래도.

그건 이런 말이었다. 

책을, 오오, 내게 더 많은 책을! 

이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결국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바벨의 도서관' 같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 보이는 게 결국 책이니, 어떻게든 해야 할게 아닌가. 훗날을 대비해 비축한 땔감으로 치기엔 빙하기가 너무 멀다. 가뜩이나 지구온난화가… 그래서, 별 수 없이, 조금 놀아주기로 했다. 명절날 조카들의 습격을 받은 삼촌 같은 기분으로. 

뭐? 놀자고? 그래, 그래 알았어… 뭐 할까, 응? 뭐?  
(얘네 엄마는 영영 안 올 건가… 나는 뭐 백순가…)

그건 아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놀이가 될 것이다. 물론 읽은 책이 더 많다. 진짜로… (?) 하지만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건 놀이는 아닌 것 같다. 무슨 학술대회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 부분이 바로 전작을 통해 홈즈가 제임스 왓슨을 왓슨이라 부르지 않고 '제임스'라고 부르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제 견해로 이때 홈즈의 의도 혹은 무의식은…" 보어~링!

어쩌면 '소설처럼' 아니면 '통상관념사전'처럼, 툭툭 던지는 두서없는 이야기들. 마이클 더다처럼 서평으로 퓰리처상을 받자는 것도 아니고, 책을 열심히 홍보해 '2009 소비자가 뽑은 최고 브랜드MD상'을 받자는 것도 아니니. 그렇다고 주체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도 아니다. 그대로 무용한 것. 그러니까 다시, '소설처럼'.

이건 결국 몸부림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할 때의 그 몸짓. 사실 나는 소리라도 질러야 할지 모른다.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하지만 대답은 없고, 나는 그냥 몸부림치기로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생'. 그게 진정 '상품화된 사회에서 찍어내었을 뿐인 그저 그런 인생'이라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돌을 굴리는 일이다. 별 수 있나? 별 수 없는 건 별 수 없는 거고, 별 수 있는 건 별 수 있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별 수 없는 일에 속한다. 대부분의 일처럼 이 역시 "아무 도리 없"는 것이다.

영차, 영차, 영차! 끄응. 아버지 돌 굴러가…

거창하게 '인생사용법' 따위의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다. 별 수 없는 인생에 사용법씩이나! 굳이 따지자면 흥에 취해 끄적이는 '환상수첩'에 가까울까. 좀 더 쓰자면 총체적이고 역사적이며 폭압적인 동시에 매혹적인 인생에 대한 '미완에 그칠 뿐인 프로젝트' 혹은 나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정도? 라고 하면 역시 거짓말이고…

그냥 이렇게 물어야겠다.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을, 한번쯤 바라보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
......
없다고 치고.


그리하여 우리의 놀이는 이곳에서 시작해 이곳에서 끝난다. (아직 시작도 안했기에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물론 끝에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겠지만…)



모든 놀이가 그렇듯 여기에도 최소한의 규칙은 필요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다시 불러 보자면-

움베르토 에코는 박학다식하고 재기 발랄하면서 통찰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학자의 반열에 든다. (3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큰 서재를 갖고 있는 그는 방문자를 두 부류로 나눈다고 한다. 첫째 부류는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와, 시뇨레 에코 박사님! 정말 대단한 서재군요. 그런데 이 중에서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 

두 번째 부류는 매우 적은데, 개인 서재란 혼자 우쭐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연구를 위한 도구임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맞다. 이미 읽은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보다 한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재력이 있든 없든, 장기 대출 이자율이 오르든 말든,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지든 말든, 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

박학다식도 재기발랄도 통찰력도 그렇다고 씨뇨레도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지만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읽은 책'은 그의 현재를 말해줄 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그가 '읽으려 하는 책'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기에. 어제의 문학소녀가 오늘부로 재테크 서적을 쌓아 놓기 시작한다면? 답은 뻔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책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UB(Unknown Book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SB(Skimmed Book 대충 뒤적거려 본 책), HB(Heard Book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FB(Forgotten Book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나는 여기에 하나를 보탠다. OB(Owned Book 가지고 있던/혹은 있는 책).

실로 서재는, 그러니까 책장은, 매우 미묘한 공간이다. 그것은 '추가'될 것이 아니라 '팽창'해야 될 것이지만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 추가되지 않고 팽창하는 것은 몸무게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집에 어느새 한가득 쌓이는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처분할 것인가? 

이때 처분의 일 순위는 이미 읽은 책이다. 일차적으로는 불유쾌한 독서를 제공한 책- 한 마디로 재미없는 책이 버려진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책은 점점 더 늘어나고, 책꽂이는 처녀 때 입던 치마처럼 요지부동이라면… 이 답도 뻔하다. 결국, 진정으로 신실한(?) 독자라면 읽지 않은 책으로 가득한 책장을 가지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할렐루야!

물론 어떤 이를 '알기' 위해선 오늘의 책꽂이를 보아야 하는 동시에 어제의 책꽂이를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한때 그곳에 자리했다 지금은 사라진 책들을. 그 그림자를. 우리의 오늘은 결국 어제와 내일의 사이이므로, 우리의 독서 역시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사이에 존재하므로.

... 뭐 어쩌자고?

허튼 소리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냥 책장을 훑어보고 꽂혀 있는 책에 대해 담소라도 나누자는 이야기를 이렇게. 하여 길고 지루하고 실은 책 얘기도 별로 안 나오는 이 프롤로그를 한 편의 시로 이만 마무리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꺼실꺼실하고 지저분한 손에 대한 변명으로.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니까.

해가 빛나고 새가 울고
여기 저기 졸참나무 숲도
흐려 보일 때
꺼실꺼실하고 지저분한 손을
나는 앞으로 가지게 된다. 

- '봄', 미야자와 겐지, <봄과 아수라 제3집>


바야흐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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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7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09-03-26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바닥에 책 뿌려놓고 사는 B급 자취생은 그저 부러울 나름..T_T

활자유랑자 2009-03-27 16:47   좋아요 0 | URL
자취생에 B급 A급이 어딨습니까 --;

Narcolepsy 2009-04-0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바닥에 책 깔아놓고 살다가 하드커버에 발가락 찍어
ㅆㅂㅆㅂ 훌쩍거리며 쓰레기무덤을 지나 침대와 현관만을 오가는
C급 자취생은 그저 부러울 따름.. T^T

활자유랑자 2009-04-03 01:5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집구석단골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