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간의 동원훈련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지난 금요일. 어김 없이 쌓여있는 책더미 사이에서 빛나던 단 한권의 책은 돌아온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었다. 도무지 교양이라곤 없는 인문MD가 "도대체 폴라니가 뭐라니?"라고 묻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적 기획의 파국과 글로벌 경제 위기 때문. 만사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모양이다.  

("폴라니가 뭐라니?"라는 질문의 답은 사실 간단하다. "쟤 이름")

2000년에서 2008년 상반기까지 그를 언급한 중앙일간지의 칼럼은 두세 건에 불과하지만, 2008년 하반기부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그 이름, 폴라니가 아직은 낯선 사람들에게 아래의 (가상) 문답은 그의 사상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애널리스트 : 우리 사무실은 고3 교실 같아요. 몇 주 뒤면 주요 경제 일간지에 '랭킹'이 발표되거든요. 업종별 애널리스트 순위가 매겨져요. 펀드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들을 평가해요. 인간이라는 상품에 공개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거죠. 6개월에 한 번씩 있어요. 피가 말라요.

순위에 따라 연봉이 조정돼요. 공개되는 랭킹은 분야별로 5명 또는 10명인데, 요즘은 주식시장이 좋지 않으니까 10등 안에 못 들면 쫓겨날 각오 해야 돼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어요. 흔적이 없어요. 달팽이들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져요. 여의도를 아예 떠나는 것 같아요. 점심 때 밥 먹으면 병신이래요. (중략)

폴라니: 마르크스는 당신의 계급을 저주했겠지. 케인스는 당신 같은 금융분석가를 휘하에 부리려 했을 테고. 하이에크는 당신의 역할을 찬양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행복하지 않지? 당신의 노동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 이 경쟁에서 언제 밀려날지 두렵다는 느낌…. 인간의 그런 불안과 공포까지도 위로해주는 것이 진짜 경제학이야.

"시장을 사회에 착근시켜라." 내 이론의 핵심이야. 어떤 경우에도 ‘상품화’시키면 안 될 것이 세 가지 있어. 노동·자연·화폐야. 재화를 교환하는 시장은 필요해. 그렇다 해도 노동·자연·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방임’으로 거래하면 곧바로 재앙이 시작되는 거야.

- 한겨레21 753호 '시장을 의심하는 당신 떠나라, 폴라니의 세계로' 중에서 (강조는 인용자)

마르크스와 하이에크를 비판하고 그렇다고 케인즈주의도 아닌 폴라니의 사상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전환>이라는 제목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거대한 전환'은 세 번의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말한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늘어난 생산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장이 바로 첫 번째 전환이고, 대공황과 양차 대전을 거치며 국가가 다시 시장에 개입해 보호 무역 등을 펼치게 되는 상황이 바로 두 번째 전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기는 바로 국가의 통제 하에 놓였던 시장이 다시금 통제를 벗어난(신자유주의의 역습!), 두 번째 전환의 말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전환은 무엇인가? 소비자운동, NGO, 사회적 기업, 정치유권자 운동 등을 통해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가 시장을 통제하게 되는 전환을 뜻한다. 결국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국가(마르크스)도 시장도(하이에크) 정부(케인즈)도 아닌 '사회'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또한 "지금, 왜 폴라니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국가도 시장도 정부도 실패했으니까. "당신의 노동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 이 경쟁에서 언제 밀려날지 두렵다는 느낌"이 드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폴라니의 사상을 '위로의 경제학'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하다!) 

이상이 '교양 없는 인문MD'(TM)이 지금까지 귀동냥 하고 눈앞에 놓인 <거대한 전환>을 뒤젂이며 섭취한 엉성한 폴라니 요약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선생도 발문을 통해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하면서도 난해한 책의 내용을 몇 줄에 요약하는 일은 힘들고 또 아마도 그릇된 것이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마당이니 오늘은 여기까지. 이 이상을 인문MD에게 요구하는 일은 힘들고 또 명백히 그릇된 것이다.
 

 

 

 

 

 

 

폴라니가 궁금하지만 <거대한 전환>의 두께와 가격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분들에게는 책세상 문고 고전의 세계로 출간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를 권한다. 폴라니의 사상 가운데 핵심적인 글 다섯 편을 추려 엮은 책은 작고, 가볍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고, 행복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재미 없는 글은 읽기 싫어! 라고 소리치는 분들을 위해서는 <어린왕자의 귀환>이 있다. <십자군 이야기>,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태권이 만화를 그리고, 우석훈이 해제를 달았다. '무급 인턴 왕자'가 된 주인공이 신자유주의의 우주를 돌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우리 사회를 풍자한다. 무척 쉽고 재미있지만, 현실을 그대로 가리키는 풍자의 디테일이 때론 섬뜩하게 한다.   

그래, 분명히 잘못 된 것 같아. 그런데 대안이 없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서는 <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을 준비했다. 제목 그대로 세계 곳곳의 저항운동 사례들을 만날 수 있다. '반자본주의 저항운동'이라니, 세상에!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꼭 따라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고. 단지, 다른 사회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마지막은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우파는 부도덕하고 좌파는 무능하다?'라는 부제처럼, 자본주의도 미심쩍지만 비판 세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이다. 엉터리 논리로 무장하고 자본과 시장을 예찬하는 우파와 논리적인 오류는 짚어내지 못하고 무작정 반대하는 좌파에게 모두 뼈아픈 일침을 가하는 저자는 바로 <혁명을 팝니다>의 조지프 히스. 흥미롭고 통쾌한 뼈아프며, 또한 논쟁적이다.   

 

07년 <금각사>
08년 <인 콜드 블러드>에 이어
09년 동원훈련 선정 도서는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 
걸걸한 입담으로 유명하신 조르바 선생의 어록 중에서 몇 개를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을 자르지 않으면...."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그러니까,  

"악마나 물어가라지!" 

* 땔감은 쌓였지만 여름은 덥고, 빙하기는 너무 머네요. 인간이 되기는 요원한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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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르크스vs케인스vs폴라니 - 경제학 거인들의 부활
    from 고장난 자본주의 대안을 말하다 2009-07-10 18:16 
    이 맑시즘을 소개했다. 칼 폴라니를 만나 보라는 권유와 함께. 덕분에 맑시즘2009는 졸지에 한겨레21이 권유하는 토론회가 됐다. “이 추천한 토론회, 맑시즘2009에 와 보시지요?!” ^^! 추천사(?)는 이렇다. 올해로 10번째 행사를 맞는 ‘맑시즘 2009’의 수용 능력은 조금 더 넉넉하다. ‘고장난 자본주의, 대안을 말하다’를 큰 주제로 잡았는데, 주요 세션 가운데 하나로 ‘맑스 vs 케인스 v...
 
 
뚜벅이 2009-07-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교양 MD님이 생각하시기에 조지프 스티글리츠라는 분이 왜 난해하다고 했을까요? 님의 서평을 보면 별로 난해할 것 같지 않고 책 소개 기사를 보아도 자연발생적이고 현존하는 "자유주의 시장"이란 없다는 증거를 귀납식으로 (서양 역사 속에서 여러가지 증거를 대면서) 서술한 책 같은데... 오히려 책의 가격이나 두께를 봤을 때 난해하기 보다는 지겨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독서 토론회를 만들어서 같이 읽어볼 책으로 해볼까 하는데 좀 걱정되네요, 첫 책으로 너무 두껍고 비싸니...

활자유랑자 2009-07-20 13:17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광범위하며 또한 읽는 이의 많은 배경지식을 요하기 때문이겠지요. 기사나 책소개는 그 중의 일부분만을 단순 요약한 것에 그치기 때문에 실제로 읽는 것하고는 꽤나 다른 것이 사실이지요. (이 이상을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힘들고 또 아마도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책으로 <거대한 전환>을 고려 중이시라니, 참 멋진 독서토론회인데요. :)
 

 

 

 

 

 



6월민주화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이 작품의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을 할 심산이었다. 첫 이유는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1987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고 주변의 어른들 또한 직접적 기억이 없었다. (중략) 이후에도 따로 현대사를 공부한 적이 없으니 남 앞에 이야기를 풀어낼 자격도 실력도 없었다. 세금을 들여 하는 일이라면 당시의 공기를 기억하고 잘 아는 작가가 맡는 것이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는 길이라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서 최규석이 밝힌 것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100도씨>를 소개하는 일이 어렵다. 물론 할 말은 있다. 좋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건 구매자 40자 평이 아니잖는가. 조금 보태 죽을만큼 어렵다, 라고 해도 큰 거짓말은 아니다. 이 페이퍼의 마감 데드라인을 두 번이나 어겼고, 데드라인은 '못지키면 죽는 최후의 선'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미 두 번을 죽은 셈이다.

다른 이유는 배알이 꼬여서였다. 87년 이전 공고를 졸업한 동네 형님들은 20대 후반이면 혼자 벌어서 제 소유의 자그마한 주공아파트에서 엑셀을 굴리며 아이들을 낳고 키웠었지만, 지금 내 또래의 친구 중에 부모 잘 만난 경우를 빼면 누구도 그런 사치를 부리지 못한다.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였던 철거민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맞고 쫓겨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전태일 이후로 수십년째 줄기차게 목숨을 버리고 있지만 전태일만큼 유명해지기는 커녕 성형 기사에조차 묻히는 실정이다. 선생님이 멋있어 보여 선생님을 꿈꾸던 아이들이 지금은 안정된 수입 때문에 선생님을 꿈꾸고 아파트 평수로 친구를 나눈다.  

나역시 조금쯤 배알이 꼬이기도 했다. 좋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무턱대고 들이밀며 '사세요, 사세요!' 하는 일은 너무 '장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부끄러움이지만, 내가 '장사꾼'이어서 느끼는 부끄러움은 아니다. 그건 이런 것이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발표에 양복을 입고 소주를 마시던 직장인들이 분노를 터트린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어디서 그런 구라를 치냐고. "종철이 가는 길에 술이나 한잔 올리자"며 잔을 드는데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학생이 다가와 시비를 건다.  



 

 

 

 

 

 

 

 

 

 

 

 


그런 술은 치우라고, 자본의 단물이나 빨고 있으며 종철이 죽으니까 눈물 한방울 흘려주시냐고.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 내게 "자본의 단물을 빨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다시피 설탕과 올리고당과 꿀을 같은 '단물'이라고 하기 민망하다…) 문제는, 언젠가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종종 그런 어법을 구사한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에 최규석은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 우월감'의 빈자리에 들어서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미묘하다. 마냥 숨을 수만은, 숨길 수만은 없는 부끄러움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 부끄러움은 정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되고 말테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면서.  

그럼에도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이 작품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얘기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하나마나한 소리도 꼭해야 하는 소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 -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 - 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에 대해서 "좋은 책이니 읽어들 보세요"라고 하는 것 외에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대신 함께 나온 두 권의 책과 한 장의 앨범을 통해 못다한 설명을 대신하려 한다. ('왼손은 그저 도울 뿐' 같은 느낌으로)  

차병직 변호사의 <상식의 힘>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상식을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인 판단에 의해 정해진, 한 사회가 반드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고귀한 가치'라고 정의하는 책은, 얄팍한 타협과 기회주의가 상식을 압도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상식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지만, 그 이전에 최소한의 상식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끓는다'. 물론 무턱대고 끓지는 않을 것이다. 물이 100도씨가 되면 끓듯 사람들에게도 어떤 비등점이 있는 것이다. <100도씨>는 바로 그 과정을 보여준다. '온건한 시민'들이, 87년 6월이, 어떻게 끓어올랐는지를.  

<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는 폭넓은 주제를 인문학적 교양을 통해 맛깔나게 다룬 <상식의 힘>에 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오늘의 현실을 가리킨다. 인사파행 속에 막을 내린 KBS 1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왕상한입니다'의 '최 변호사의 뉴스 해석'을 묶은 책이 다루는 것은 집시법 개정, 광고주 불매 운동, 용산 참사, 삼성 특검 등 여전히 뜨거운 이슈들. 오늘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몰상식의 풍경들이다.  

시민들이 '불온'해지는 것은 (아련한 '불온서적'의 추억…) '상식'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논리는 중요하다. 이 단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식'을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힘으로 짓누르려 할 때, 그리하여 또다른 '몰상식'이 동원될 때, 당연히 시민들은 더욱 더 불온해진다. 그것이 바로 <상식의 힘>과 <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와 <100도씨>가 전해주는 교훈이다. 오컴의 면도날 처럼 너무나 심플한, 상식 그 자체.  

그리하여 이 글을 쓰는 내내 내가 떠올린 것은 영국산 펑크 밴드 클래쉬의 'I fought the law'였다. 그들 역시 이렇게, 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한 논리로, 노래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필요했어 / 한 푼도 없으니까 / 나는 법과 싸웠고 / 법이 이겼어" 그렇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법과 싸우고 지는 일을 끝없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죽잖아. 근데도 살잖아?"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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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 시대 가장 hot한 만화가 최규석 그리고 "100도씨"
    from 창비 인문사회팀 블로그 2009-06-19 11:05 
    안녕하세요, 창비 인문팀입니다. 우선 『100℃』를 사랑해주시고, 최규석 작가님을 사랑해주시는 수많은 네티즌, 독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만간 최규석 작가님과 독자 여러분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벤트로 찾아뵙겠습니다. 더욱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한가지 말씀드리면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 작가싸인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최규석 작가 싸인회는 6월 20일(토) 오후 5시부터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에서 있다고 하네요. 많은 성원 부탁드립...
 
 
콩콩 2009-06-1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참. 너무나도 진솔한 글입니다. 읽으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상식의 힘도 힘이지만, 정직하고 진실한 것의 힘에 당할 장사는 정말 없을 것 같아요. 진실한 님의 글이 저를 감동시킨 것처럼요. 그리고 클래쉬의 런던 콜링!!

활자유랑자 2009-06-23 16:22   좋아요 0 | URL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

소영 2009-06-1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만화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남는 곳 중 하나가 저 부분이었는데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왼손은 거들 뿐! ㅋㅋ 최고예요)

활자유랑자 2009-06-23 16:23   좋아요 0 | URL
아! 왼손은 돕는 게 아니라 거드는 거였지요 ㅎㅎ

2009-06-19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6-23 16:2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푸른열정 2009-08-21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링크를 해놓아야 할 듯! ㅋㅋ

활자유랑자 2009-08-25 15: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버브verve, 큐어cure, 오아시스oasis,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매닉 스트릿 프리쳐스manic street preachers,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 그리고 플라시보placebo 까지.  

지난 9월부터 발매된 어떤 종류의 신보들 목록(* 모리씨morrissey는 부러 뺐음).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족히 10년은 거꾸로 세월을 거스른 듯한 이 모양새. 어떤 정권의 역주행에 바다 건너 건너 섬나라의 뮤지션들이 죄 고무되기라도 한 걸까? 그래, 그 와중에 개봉했던 영화 '클로저'도 빼놓을 순 없겠다. 조이 디비젼joy division 일단 추가. (트래비스travis랑 콜드플레이coldplay는 '짬'이 안된다!)

불평을 하자는 건 아니다. 차라리 "도대체 피터 훅peter hook이랑 버나드 썸너bernard sumner는 나잇살 먹고 왜 그래? 싸웠으면 화해하고 뉴 오더new order도 신보 내야되는 거 아냐?" 같은 불평이면 모를까(심지어 '클로저'에서도 피터 훅은 본명 대신 후키라는 애칭으로만 불린다)... 컷 카피cut copy, MGMT, 뱀파이어 위크엔드vampire weekend 같은 친구들 사이에 슬쩍 넣었던 블러blur의 'THINK TANK' 앨범을 들었던 게 바로 오늘 출근길이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를.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러브송은 어디로 갔을까?  
죄다 우울한 사람들
만사는 꼬여 돌아가고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진 도무지 모르겠고

- blur, 'out of time'  (우린 안될거야 아마... 가 제목이 아님)

언제부턴가 어떤 의무감에 mp3p를 채우게 된 신곡들 사이에 끼어있던 그 노래를, 오늘도 기어코 찾아 들었다는 이야기.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러브송들, 계속해서 변주되며 새롭게 흐르던 그 노래들이 요즘엔 다 어디로 갔는지가 궁금할 뿐. 진짜 놀랄 일은 따로있따.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블러가 재결성을 한다는 소식! 올 하반기엔 신보도 나올 예정이라고.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이 포함된 오리지널 멤버!)   

가만 생각하니 내가 이 소식을 들은 건 사실 며칠 전이었다. 그땐 무심히 흘려 들었던 그 이야기를 오늘 다시 듣고 새삼 놀란 것.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다. 납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일들도 있다는 뜻일까. 그러니까,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콕슨이 화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과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는 너무 일찍 화해했던 셈이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와 닉 맥케이브nick mccabe의 화해는 어떨까?)

나는 문득 듀란듀란duran duran과 2000년 그들의 앨범 'poptrash'(!)를 생각했다. 그들도 나도 모두 스무살이었던 그때를(듀란듀란의 경우에는 메이저 데뷔 앨범 발매시기를 기준으로). 처음에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척 할아버지가 돌아오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왠걸. 별 두개라는 올뮤직 가이드의 냉혹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앨범은 꽤나 눈물나는 명반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꽃이 꿀벌을 사랑하듯 그 사랑이 진실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떠나 보내는 것
하지만 난 알고 있어 넌 네 스스로를 놓아 버리게 될 것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 duran duran, 'someone else not me'  

스무살이란 무릇 이런 나이인 것이다. 아마 지금 스물을 맞은 이들이 보는 블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블러 역시 올해 스무살이 되었다. 이번에는 밴드 결성 시점으로. 완전 내맘) 물론 돌아온 친척 할아버지가 멋쟁이 할아버지인지 욕쟁이 할아버지인지는 앨범이 나와봐야 아는 이야기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어쩐지 나이를 엄청나게 먹어버린 기분이 들고...

블러를 처음 들은 건 13년 전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러의 앨범은 '13'. 어쨌거나,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음악을 단순히 귀로만 듣게 된 것이.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역시 백스테이지2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테니까. 사실 제대로 할 자신도 없으니까. 어둡고 습한 지하의 카페에 앉아 한쪽 벽을 채우고 있던 스크린 위로 흐르던 매닉스의 'motorcycle emptiness' 뮤직비디오를 보며 선배가 쥐어준 보급용 88 담배에 손을 뻗는 고등학생의 마음 같은 건, 십년이 훨씬 흐른 오늘도 손발이 오그라드니까.

군대 가는 순간- 이라던 선배의 말을 믿은 적은 없었다. 물론 나는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2NE1(중 1人)도 모두 좋아하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니까. 이등병 시절엔 보아의 넘버원 안무를 외웠어도, 최고참이 된 후에 신병이 들어온 날이면 취침 청소시간에 톰 웨이츠tom waits의 'a sight for sore eyes'를 틀곤 했는데. (왜 그랬을까? (왕고인 내가)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무의식의 발로?;)

나이도, 생활도, 여유도. 많은 이유가 통하겠지만 내 추리는 이렇다. 더이상 가사를 파며 노래를 듣지 않게 된 순간. 바로 그때부터 음악은 그저 'BGM'이 되고 말았다는 것. (그 순간 이후 지금까지 내가 가장 '음악적으로' 열광한 신인은 빅뱅이란 사실이 이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니까 더이상 "서로를 찾기 위해 약을 먹"지 않고, "너와 함께 빛나는 내가 되게 해줘" 같은 말을 하지 않고 "그런 경우라면 럼앤코크를 주문"하지 않을 뿐더러 '서쪽으로 튀'지도 않고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닉 혼비가 닉 혼비가 되었던 게 결국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건데, 이 마당에 모든 인간이 섬이든 아니든 도대체 내가 알게 뭐람!  

섬. 섬 얘긴 그만하자. 그러니까 꼭, 영국음악이 아니어도 좋다.

섬의 세련된 버전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쓰인 단어는 '인공위성'이다. 'satellite'이라고 해야 느낌이 산다. 바슐라르가 말한 문화적 컴플렉스. satellite 이라고 하면 루 리드lou reed의 'satellite of love'가, 인공위성 이라고 하면 "니가 좋아 너무 좋아"가 생각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 이건 '일기예보'고 '인공위성'은 아카펠라 그룹이었던가? 아무튼 루 리드가 "오, 사랑의 인공위성 오, 사랑의 인공위성, 이인고옹위이서엉"이라고 부르면 좀 웃기잖는가?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선 고유명사가 쓰였다. 같은 고유명사가 쓰인 델리스파이스의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란 제목은 너무 직접적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우습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게- 그냥 무덤덤한 수준에서 'high and dry' 같은 제목의 한글 번역은 가능할까?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fast as you can'은? 결국 운문의 번역 문제. 지금껏 맘에 쏙들게 번역된 엘리어트의 시구를 본적은 없으니까.   

we have lingered in the chambers of the sea
by sea-girls wreathed with seaweed red and brown
till human voices wake us, and we drown

아마도 그건 어떤 갈증 혹은 스스로가 글을 잘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겠다. 엄청난 비약이겠지만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라고 쓰고 '풍화작용'이란 단어를 못내 고민하던 시인의 마음이 비슷했을까? 실은 문화사대주의에 훨씬 더 가깝겠지만. 

U2의 'stay(far away so close!)' 가사에도 인공위성이 나온다. "멀리 그렇게 가까이 / 움직이지 않고도 / 라디오 그리고 위성 텔레비전과 함께"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찌나 빔 벤더스와 잘 어울리는 가사인지(가끔씩 그가 펼쳐보이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 이 노래가 쓰인 '베를린 천사의 시' 속편이라는 그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땅으로 떨어진 천사가 고속도로를 걷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과 더불어 내가 이 노래에서 잊지 못하는 건 한 줄의 가사다. "그가 너를 상처내도 / 너는 상관하지 않지 / 그가 너를 때릴 때 / 비로소 넌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재미있게도 '베를린 천사의 시'의 헐리우드 판인 '씨티 오브 엔젤'에 삽입된 구구돌스goo goo dolls의 노래, 'iris'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너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you bleed just to know you're alive"

그냥 단순한 우연인가. is that what it is? 이렇게 써놓고 보니 스트록스strokes를 떠올리게 되고야 마는 것 같은. is this it?  

스트록스를 보던 날, 2006년의 여름이 떠오른다.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는 후배의 남자친구에게 얻은 1일권으로 갔었던 그곳에서. 스노 패트롤snow patrol 라이브는 앨범 보다 백배 좋고,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는 참말로 귀여운 친구라는 걸 깨달았던 그날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대했던 건 역시 스트록스였는데. 'new york city cops'를 부르며 뛰던 그 밤. 진흙범벅이 되어서 부평에서 총알택시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던.  

무려 직장인이 되어 3일권을 끊어갔던 작년의 펜타포트는 어쩐지 트래비스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땡볕과 맥주도. 그러니까, 물에 적신 빨간 펜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맥주에 칵테일에 흐느적 돌아다니다가 목청껏 불렀던. "만약 우리가 턴, 턴, 턴, 턴, 턴, 턴, 턴, 턴, 터어어언, 터언 한다면 우리는 배울 수 있겠지?" 라던.  

그러니까 나는 아마 노래를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훈련소 시절, 길고 길던 행군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그 노래들.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 그 노래들. 그 노래들은 정말 어디로 갔을까?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내 노래를
내가 어울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아남을 거야  
아마 길진 않을거야
만약 우리가 턴, 턴, 턴, 턴, 턴 한다면 

그러고보니 디바인 코미디divine comedy의 새앨범도 연내에 릴리스될 예정이라던데. 결국 돌고 돌고 돌아오는 걸까? 해체 이후 줄기차게 NME 등에 "다시 밴드를 하고 싶습니다!" 따위의 구인광고를 냈던 스매슁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빌리 코건billy corgan 처럼, 아무리 살아도 놓아버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들이. 참고로 블러의 '아웃 오브 타임'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꿈꾸는 게 아니라고 말해줘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다고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어
시간 너머로  

우린 안될 거야 아마... 로 끝나지 않아서 참 다행. 그리고 도무지 맥락 없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렇게-

 

난 그냥 오랫된 이야기 책을 펴고 자리에 앉을래
옛날옛날에 꼭 나같은 애가 있었어
만물과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지
얘, 너 정말 순진하다!
결국 불보듯 뻔하니까
그런 애들은 딱한 최후를 맞기 마련이니까
엄숙하게 책장을 넘기며 나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멋진 미소를 한 그 불쌍한 꼬마가
그 순진함으로 마침내 성공한 거야!
난 울어버렸어
마지막 장면에서 난 맨날 울거든

- belle and sebastian, 'get me away from here i'm dying'


* 이 글은 이른바 '의식의 flow' 기법 혹은 '무통증 알코올 요법'으로 낯뜨거운지 모르고 씌여졌음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실은 신간소개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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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6-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생각지도 않았던 음반 지르게 만드시네요. -_- 인문 엠디를 가장한 음반 엠디?

활자유랑자 2009-06-18 00:58   좋아요 0 | URL
인문과 팝(클래식 아님)의 조화를 꿈꿉니다... 는 물론 뻥입니다 ;

여름매미 2009-06-1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스2의 빤딱빤딱 소파가 생각나네요. 스팽글 앞에서 피는 어질한 담배 맛과 스미스의 허브가 뿌려진 떡볶이는 어떻고요,, 흣

활자유랑자 2009-06-18 00:59   좋아요 0 | URL
혹시..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요? ;

mong 2009-06-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추억의 파도가 넘실대는 이곳은 어디? (두리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의 bgm은 Back in Black으로... 흠흠

활자유랑자 2009-06-18 01:03   좋아요 0 | URL
의식이 flow 하니까 추억도 flow... 저는 verve랍니다. ㅎㅎ

2009-06-19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1 0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ulhee89 2009-11-21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웃으며 읽고 갑니다~ 공감도 가고 재밌게 정말 흐르는 대로 읽힌 글이네요 ^^

활자유랑자 2009-11-23 00: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i'm flow yo 소리바다로~
 

심리학으로 보는 도시남녀의 욕망과 갈등
도시 심리학
하지현 지음 / 해냄


도시인, 그리고 13년 후…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길을 왔는데
이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누구도 말을 않네 

- 조용필, '꿈'  

1991년 발매된 조용필 13집 'The Dreams'에서 도시는 좌절된 유토피아로 그려진다. 교과서적 독해을 해보자면 도시라는 꿈을 꾸며 떠나왔지만 현실과의 낙차에 절망하는, 그러나 별 수 없이 고향의 꿈을 꿀 뿐인 화자의 절절한 마음이 녹아있는 가사라고 할까. 꽤나 고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주제.

아침엔 우유한잔 / 점심엔 fast food
쫓기는 사람처럼 / 시계바늘 보면서
거리를 가득메운 / 자동차 경적소리
어깨를 늘어뜨린 학생들 / This is the city life  

- 넥스트, '도시인'

그로부터 2년 후, 넥스트의 데뷔앨범에서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도시는 더이상 '대상'이 아니다. 도시는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고, 그곳엔 희망이나 절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저 일상이 있을 뿐.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을 보면서,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도시인이고, 꿈꿀 고향조차 없기에. 이것은 분명 (적어도 대중음악사에서는) 새로운 프레임이었다.

그렇다면 13년이 지난 오늘, '도시'란 단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차가운 도시남자. 하지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보들레르의 파리, 벤야민의 아케이드, 모더니스트들의 경성, 키리코의 '거리의 우수와 신비',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보이지 않는 도시'였다...라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고. 고작 웹툰 '마음의 소리'에 등장하는 대사가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워크홀릭에 빠진 차가운 도시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결국, '별 생각 없다'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이유는? 이제 '도시'란 말이 너무 당연해졌다는 것. 그리하여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다는 것. 워크홀릭에 빠진 차가운 도시남자처럼 말해보자면 'take-for-granted'라는 말이다. (아아...) 그것은 우리가 굳이 '사람'임을 되뇌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도시인으로 사는 일은 분명 피곤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대충 감이 온다. 거시적인 담론(을 다시 멀리서 바라보는 방법)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일은 익숙하니까. "'세계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국제화', '88만원 세대' 등 다양한 용어와 이론으로" 보고 재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론이 당신의 폐부를 찌르지는 않는다. 책의 표현을 빌자면  

"그런데 매일 신문을 장식하는 사건들의 큰 흐름과 원인들, 그것으로는 뭔가 미흡하지 않은가. '집단 속의 나'가 궁금하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니 말이다.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삼각형의 대열을 유지하는 이유도 알고,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라는 것도 우리는 이제 안다. 그러나 맨 앞에 날아가는 기러기의 고독, 중간에 쳐져서 허덕이는 기러기의 우울함,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젊은 기러기의 충동성은 망원경으로 파헤치기 어렵다. 그렇듯 하나하나의 마음 안을 돋보기로 샅샅이 뒤져봐야 도시에 살고 있는 나의 속내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렇다. 도시는 이론들이 분석하듯 그렇게 존재하고 있고, 당신은 그 속에서 살아간다. 고독하고, 우울해 하고, 전정긍긍하면서. 하지만 당신이 진정 궁금한 것은 도시의 존재방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허덕이는' 이유가 아닌가? 그렇다면 먼저 도시인으로서의 당신을 찬찬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가치와 욕망에 맞추어 살고 있는지.  

그런 의미에서 <도시 심리학>이란 제목과 기획은 꽤나 절묘하다. (반면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이란 부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조금 촌스럽다) 


'머물기에는 갑갑하고 떠나기에는 아쉬운' 당신을 위해


책 표지의 표현대로 '머물기에는 갑갑하고 떠나기에는 아쉬운' 도시인의 심리는 이율배반적이다. 개인정보 유출은 극히 꺼리면서도 만취한 상태에서 아무 의심 없이 대리운전을 부르고, 과학과 이성을 부르짖으며 사주카페를 찾는 것처럼. 하지만 책은 함부로 재단하지도, 함부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난개발된 도시처럼 얽히고 섥힌 우리의 욕망을 찬찬히 분석해 우리 앞에 보여줄 뿐이다. 문자메시지로 '통보'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소통을 원하고, 커다란 '한방'을 바라지만 '한방'을 위한 별 노력은 하지 않고, 카드값에 끙끙대면서도 결국 지름신에 굴복해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사들이는. 더하고 뺄 것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꽤나 많은 위안이 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아마 우리는 단지 이해받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과도한 소비, 과도한 욕망, 줄어들지 않는 공허함에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해라/저렇게 해라'라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래, 네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라는 말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의 저자 김혜남은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썼다.  

이 책은 쾌락을 행복으로 오인한 현대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쾌락의 무분별한 추구는 욕망을 더 가속화시키고, 소통의 부재와 소용돌이치는 관계 안에서 점점 더 분열되어가는 현대인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두려움과 외로움에 지쳐가는 현대인에게 저자는 분석의 렌즈를 꺼내들고 한번 ‘우리를 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소소하게 지나치던 일상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바로 이런 두려움과 갈등이 있다네. 자넨 어떻게 하겠는가?'라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당연히, 우리는 모두 친구가 필요하다. 
  

 책속에서

지름신은 21세기의 미륵불이 아닐까. 살면서 매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내 생각보다 중요하고, 지나친 자기절제의 당위성에 머뭇거리는 보잘것없는 인생살이에 아직은 ‘내가 원해서 산 거야’라고 선언할 용기가 없는 우리에게 지름신은 현재의 답답함을 해결해 줄 처방을 내려주는 존재다.

불확실하고 어두워 보이는 미래에 대한 신뢰할 수 없는 약속보다 현재의 포만감과 행복감을 원하는 중생들은 지름신을 모시려 한다. 품안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들면 삶의 괴로움에 찰나적이나 짜릿한 엔돌핀이라는 연고를 바르며 행복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든 자들이여, 당신 마음에 지름신을 모셔라. 베짱이 같은 삶을 살다가 겨울에 고생할 수 있다고 여름에 개미처럼 일만 할 이유도 없는 법. 오늘을 즐기자! -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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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2009-06-06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넥스트의 '도시인' 가사는 원래 프롤로그 서문에 적었다가 나중에 뺐는데 MD님이 언급하셨네요. 대략 비슷한 세대? ㅎㅎ

활자유랑자 2009-06-08 19:30   좋아요 0 | URL
전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촌누나의 LP 판을 몰래 들었어요. 아마 제가 손아래? ㅎㅎ
책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가끔은 상담을 받고 싶은데, 혹시 추천이라도...;
고맙습니다. :)

hublot 2011-12-2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니던 사촌누나의 LP 판을 몰래 들었어요. 아마 제가 손아래? ㅎㅎ
책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가끔은 상담을 받고 싶은데, 혹시 추천이라도.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난, 언제나 인문·사회과학 분야 책들이 종합 베스트 1위를 차지하기를 바라마지 않았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밥그릇의 무게가 가끔은 너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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