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강준만 고종석 박노자. 21세기의 첫 십 년도 어느덧 저물어 가는 오늘, 이 이름들을 같은 자리에 쓰고 있자니 조금 묘하다. 마치 "옛날 옛날"로 시작해서 "그리하여 강호, 그 네 명의 고수는…"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도 해야할 것 같은 기분. 무협지 비유가 너무 386 처럼 느껴진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꽃보다 논객'! F4 재결성!" ('죄송합니다'를 덧붙이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기억의 책꽂이에서 몇 권의 책을 뒤적여 본다. <Why Not?>(00년 2월), <대중 문화의 겉과 속>(00년 2월), <코드 훔치기>(00년 10월), <당신들의 대한민국>(01년 12월). 각기 다른 성향의 책들을 비슷한 이유로 읽었던 게 (조금 보태)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그렇다면 물어야겠다. 오늘, 무엇이 당신들을 다시 한 자리에 모았나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호들갑에 가깝다. 강준만은 말할 것도 없고, 고종석과 박노자 역시 꾸준히 책을 내오지 않았는가. 엄밀히 말해 제목에 쓰인 '귀환'의 말뜻에 맞는 것은 유시민 하나 뿐. 그렇다고 이들 네 명이 의기투합해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들이 '동시에' 또한 '바로 지금' 나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매출'을 의미한다…)  

먼저 지난 십 년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한 번의 정권 교체. 단군이래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학력과 IMF와 근접조우하는 경제 위기. 몇 번의 소동과 난리. "브루투스 너마저" 하는 실망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절망.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살림과 해준 것 하나 없는 사회. 뭐 그런 것들.  

점점 좁아지는 살 길과 얇아지는 삶의 기반 위에서 보낸 십 년 동안 '한국식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어느새 우리의 뼛속 깊이 자리 잡았다. 농담처럼 던지는, 그러나 웃을 순 없는 이런 명제(혹은 '절대명제')들.

① 사람은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본에 의해서만 의로워진다.
② 인간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본에 의하여 기초가 부여된다.
③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별을 배제, 자본 앞에서의 평등- 엄밀하게는 자본을 통한 것만이 권위를 갖는다.

그러니 정치 논객의 시대는 가고 경제 논객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 떠돌던 것도 당연하다(정확히 얼마나 떠돌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말을 지난 연말 Y*S24의 *** 대리에게 들었다). 우리는 미네르바를 '선지자'로 여겼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밧모 섬에 유배되었던 누군가가 남긴 것과 같은 '계시록'을 기다릴 차례인가?)   

하지만 미네르바를 잡아들인 것은 결국 '정치'였다. 용산을 재개발하려던 것은 '경제논리'였겠지만, 그것이 용산참사를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설명하지 못하기는 경제논객도 마찬가지. 그리하여 결국 '정치논객 F4'가 돌아오고야 말았던 것이니… 이것이 책을 파는 '소명'에 부응해 열심히 팔고 닦고 조이며 '사람노릇'하는 인문MD의 짧은 소견.

결국 우리는 한 번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를 돌아볼 필요가 있고, 이 책들은 그러라고 나왔다는 말이다. 설령 어떤 호기로 우리 경제가 상승곡선을 그린다고 해도 그게 해답은 될 수 없을 테니까. 30년 쯤 후에 '버릇없는 요즘 애들'한테 "그래도 그 분 덕에 경제가… 아니면 니가 지금 이렇게 밥 먹고 있을 줄 알아?"라고 타박할 희망에 부풀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생각하면 할수록 이 글에서 쓴 정치논객/경제논객의 프레임은 이상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그 얘기를 들은 건 Y*S24의… 사실 이상하기로 치면 이 글 전문이 그렇다. 하지만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마치 백스페이스 키가 고장난 것처럼 이 글을 반성하지 않기로 한다)  
 

 

 

 

 

 

 

 
이 책들을 넣고 보니 위의 경제/정치 프레임이 혼란스러웠던 이유를 알겠다. 이게 다 '말' 때문이다. 알라딘에는 사회과학과 경제경영 분류가 따로 있고, 경제학은 경제경영의 하위 분류다. (덧붙이자면 출판계에서는 흔히 사회과학 분류를 교X문고 식으로 '정치사회'라고도 부른다) 여기까진 좋다. 그런데 이 '경제학'이란 것이 실로 애매한 것이니, 이것 참, 굳이 얘기를 하자면.  

기왕 경제학 분류가 따로 있으니 경제학이란 제목이 붙은 것은 경제경영으로 가면 문제가 없겠지. 굳이 만세를 부를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만사 OK, <경제학 콘서트>나 <행동 경제학>, <상식 밖의 경제학> 등등 경제학 분야의 스테디셀러들. 나심탈레브의 <블랙 스완>, <2009 공황전야>, 폴 크루그먼, 토머스 프리드먼… 역시 모두 경제경영에 속하는 저자들이다. 그래.  

그렇다면 '경제학자' 우석훈의 책들은 어떨까? <88만원 세대>, <조직의 재발견> 등등. '한국경제대안'이라는 시리즈 명도 붙어있으니 역시 경제경영이겠죠. 하지만 이런! 애석(?)하게도 알라딘에서 우석훈은 사회과학 저자다. 인문 및 사회과학 및 역사 및 과학 분야를 맡고 있는 MD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덧붙이자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원래 경제경영 도서였다가, 불온서적이 화제가 되면서 사회과학으로 추가 분류를 하게 된 케이스)

자, 그렇게 해서 <프로메테우스 경제학>과 <살림의 경제학>은 '경제학'이란 제목을 당당히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놓이게 된 것이니. (함께 놓고 보는 저 네 권의 표지는 어쩐지 데칼코마니 같다)

<프로메테우스 경제학>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맑스경제학 강의'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작금의 경제상황을 맑스 경제학의 틀로 바라보도록 돕는 책이다. 이를테면 관점의 전환? 지난 연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강수돌 교수의 <살림의 경제학>은 그보다 좀 더 '살림'에, 그러니까 '인정'에 와닿는 책이다.  (조금 이상한 표현이긴 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아진 것 없는 살림살이, 더 바락바락 산다고 나아질까? 꿈깨!" 참으로 마음에 와닿지 아니할 수 없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 <뉴캐피털리즘>과 '신자유주의' 비판서인 <네오리버럴리즘> 역시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제목은 물론이고 표지도 비슷. '뉴'는 굳이 따지면 대중서에 가깝고, '네오'는 조금 더 '본격'적이다. (표지의 '달러'는 난이도 표시? 1달러 1장 vs 1달러 수백장… 물론 그 정도 차이는 아니다;)

"지금까지 어떤 사상가도 구조조정과 재조직화, 아웃소싱으로 대표되는 기업 문화의 끔찍한 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세넷만큼은 예외다. 그처럼 놀라운 통찰력을 지닌 지식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이 책에서 세넷은 사통팔달한 지식과 샘솟는 지성, 확고한 도덕적 세계관으로 새로운 기업 문화를 해부한다. 대단히 지적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러므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 바버라 에렌라이히, <빈곤의 경제> 저자 (<뉴캐피털리즘> 추천사. 개인적으로 '사통팔달'이라 옮긴 부분의 원문이 미친듯이 궁금;; 원문은 다음과 같다. "In The Culture of New Capitalism Sennett addresses the new corporate culture with his usual vast erudition, endlessly supple intellect, and firm moral outlook." 그야말로 '신묘한' 번역이다…)

"학술적이면서도, 참여적인 책이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를 통해 부를 획득한 사람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피수탈자들에게 그것이 미친 실제 영향은 무엇인지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설정한 지리적 범위와 분석 범주는 이 책이 삶을 위협하는 복잡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진정 신뢰할 만한 가이드가 되도록 한다."  

- 레슬리 스클레어, 런던정경대 교수 (<네오리버럴리즘> 추천사)


 

 

 

 

 

 

 

다시 강수돌 교수.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는 스승 홀거 하이데와 함께 쓴 책으로 "하이데 교수가 먼저 각 부의 앞부분에서 노동의 세계화(1부)와 노동의 주체성(2부), 노동 사회로부터의 탈출구(3부)에 대한 이론적 서술을 열고 나면 바로 뒤를 이어 제자 강수돌이 한국 사회의 구체적 상황에 이 이론을 녹여 내 보여 주는 형식을"(알라딘 책소개) 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과 한국의 비교가 먼저 눈에 띄는데, OECD 가입국 중 '최장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과 '최단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독일의 연간 근무 시간을 비교하면 4~5개월 차이가 난다고 한다… 유후! 살림살이는 좀 나아들 지셨나요.  

소스타인 베블런의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와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 : 공동체들>은 고전이고, MD에게는 고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특권'이 있다……………………………………………

<게으를 권리>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게으를 권리>라는 제목이 더 좋다. '게으를 권리'라는 말에는 "나는 게으를 거야!"라는 당당함이 느껴지는 반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말은 "그래도 혹시... 게으를 수도 있잖을까요?"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취향이다) 

저자인 폴 라파르그는 무려 마르크스의 사위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다고 한다. 1842년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혼혈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 의사로 일하며 아나키스트 성향의 프루동주의자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나 마르크스와의 만남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69세가 되던 1911년, 노쇠함으로 인해 '운동'에 더 이상 기여할 수가 없다고 판단,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노동계급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자신들의 본성을 타락시키는 악덕을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근절시키고 스스로 막강한 세력으로 등장해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당할 권리에 불과한 '인간의 권리'나 비참해질 권리에 불과한 '일할 권리'를 요구하기보다는 누구에게도 1일 3시간 이상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로 결단을 내린다면 지구는, 이 오래된 지구는 자기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는 개벽의 기쁨으로 몸을 떨게 될 것이다." (48쪽 중에서) 같은 '낭만적인' 생각과

"자본주의가 여성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해서 사회적 생산에 투입한 이유는 여성을 해방시키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성을 착취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여성을 착취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여성을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가둘 목적으로 구축된 경제적, 법적, 정치적, 윤리적 장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여성은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비참한 삶도 감내해야 하지만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족쇄도 감내해야 한다. 이로 인해 여성의 경제적 비참함은 더욱 심해진다." (209쪽) 같은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나 역시 마음 먹고 '실천하는 지성' 마냥,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 게을러 보기로 한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는 참 절절한 제목이다.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이런 노래도 생각나고(이유는 모름)… 따뜻한 봄날에 다시 읽어 봄직한 책이다.  

<악! 법이라고?>는 프레시안 등에 연재되었던 카툰 릴레이를 책으로 모은 것. 온라인에 연재할 때 '무한펌질'을 장려했던 만화가들은 이번엔 인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덕분에 책값은 5,000원이다. (10%할인해서 4,500원…)

<권력의 병리학>의 부제는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이다. <센코노믹스>의 '아마티아 센'이 추천사를 썼고, 저자 폴 파머는 '동양인 최초 아이비리그 학장'으로 주목받은 김용 교수의 '절친'이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책의 제목으로 이 책을 다시 설명한다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또한 병들었는가?"가 되겠다.  

새물결 What's Up 총서 다섯 번째는 국내저자의 책이다.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은 "복잡하고 온갖 것이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벤야민의 용어를 빌리자면) 새로운 사유의 성좌들 속에 새로이 배치해 앞으로의 사유의 항로를 탐색하려는 진중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과 조르조 아감벤 그리고 칼 슈미트가 저자가 호출하는 새로운 성좌들인데, 이러한 이름만으로도 벌써 우리 지식계에서는 논란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알라딘 책소개) 것이라고 한다…  

<자음과모음 2008 겨울호>에서 "발터 벤야민과 조르조 아감벤 그리고 칼 슈미트가 저자가 호출하는 새로운 성좌들"에 해당하는 꼭지를 먼저 본 일이 있는데, 재미있었다. 나는 게으르므로, 더 할 말은 없는 것 같다….


    
 

오늘 마지막은 한 편의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고작(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인썸니아>. 지난 화요일 아침, 비몽사몽간에 켠 TV에서 마지막 장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영화 속 알 파치노는 '늙은 개' 같은 인물이다. 과거의 신화 속에 존재했던 영웅들, '맹수' 같은 인간들이 멸종된 자본주의 사회에는 대신 '개 같은' 인간들이 존재한다. '개'는 살아가나 화해할 수 없기에 불행하고 그것을 결코 잊지 않지만 또한 끈질기게 살아간다.  

안개 속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던 알 파치노는 앞서 가던 동료를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되고, 그 장면을 목격한 연쇄살인범이 집요하게 그를 협박하고 괴롭힌다. 알 파치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신이 동료를 쏜 것이 실수인지 무의식적인 고의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범인을 추격하는 것 또한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알 파치노는 후배 여형사와 함께 로빈 윌리암스를 체포 직전으로 몰아넣고, 그 과정에서 후배는 선배가 알 파치노의 총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일단 로빈 윌리암스를 체포하는데 알 파치노는 그만 총에 맞는다. 그리고 죽어간다. (이것이 '늙은 개'들의 죽음의 형식이다)  

여형사는 쓰러져 있는 알 파치노에게, 곧 구급차가 올거라고, 다 괜찮을 거라고, 범인이 갖고 있던 선배님의 총탄은 이 호수에 던져서 영원히 없에 버리겠다고, 선배님을 믿는다고, 울먹이지만 힘겹게 손을 든 알 파치노는 그녀를 말릴 뿐이다. "그러지 마" 놀란 후배가 묻는다. "왜요?" 알 파치노가 대답한다. "네 자신을 잃지 마" 그리고 물러선 카메라는 알라스카의 눈덮인 산과 깨질듯 투명한 호수 사이에 '작게 존재하는' 그들의 모습을 얼마간 비추고 이내 크레딧이 올라간다.  

많은 찬사를 받았던 <메멘토>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다크 나이트> 사이의 <인썸니아>를 최고작으로 뽑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발한 트릭에 의존한 <메멘토>와 너무 거대해진 <다크 나이트> 사이에서, 이미 그는 인간 실존의 미세한 진동을, 불안을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이 어떻게 어그러지는지, 그리하여 그 작은 진동들이 어떻게 공명하여, 깨어지는 와인잔처럼, 한 인물을 무너지게 하는지, 그리고 그것은 왜 돌이킬 수 없는지를 거장의 솜씨로 잡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수밖에. 누군들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아, 이렇게 쓰고 나니 또 한명의 '늙은 개' 김훈 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김훈은 이렇게 썼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 대책 없이 온 봄, 아무 도리 없이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벽전 2009-03-20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고하세요
역학으로 본 우리 경제의 나아갈 방향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본 2009년 국운
이건희.이재용 부자를 통해 본 삼성그룹
탈렌트 노현희와 아나운서 신동진의 궁합 실례
역학으로 본 암투병중인 영화배우 장진영
역학으로 본 자녀의 적성과 학운
역학으로 본 막쥔손금의 길
역학으로 본 직업선택의 중요성
http://cafe.naver.com/fortunedrkss1102

활자유랑자 2009-03-23 17:37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평화사랑 2009-03-20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또 네사람 논객이 티비에 나왔다는줄 알았네요..^^;;
네분~~100토에서 볼수 없을까요?
넘 재밌겠는데요~~^^*

활자유랑자 2009-03-23 17:37   좋아요 0 | URL
100분토론에 저 네분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볼만 하겠는 걸요? 진중권 까지 추가하면 ㄷㄷㄷ 일정 맞추기도 힘들듯;

무해한모리군 2009-03-2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우수수

활자유랑자 2009-03-23 17:38   좋아요 0 | URL
주문하세요! 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Arch 2009-03-2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처럼 새삼, 참 잘쓴 글이라 생각이 듭니다. 인문MD의 책 소개가 아니라 인문MD가 쓴 글이란 지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활자유랑자 2009-03-23 17:39   좋아요 0 | URL
인문MD가 쓴 '무언가'가 '책소개' 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잘쓴 걸까요 (본업에 어긋난) 근무 태만일까요? 싱거운 질문. 고맙습니다. :)

Arch 2009-03-24 21:48   좋아요 0 | URL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어차피 책소개는 다른 루트로도 접할 수 있는바 근무태만이라기보다는 제대로 본업에 충실한 느낌이 드는걸요. 건조한 텍스트보다 이건, 맘을 동하게 만들어버리잖아요.^^

활자유랑자 2009-03-25 21:43   좋아요 0 | URL
너무 과한 찬사 같은데요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저희 부장님한테 전해드려야겠어요)

2009-03-24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3-25 21:4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놀러오세요 :) (땡스투는 참 좋은 제도이지요?;)

이주일 2009-03-30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괄호가 너무 많습니다. 괄호 안의 내용을 포괄하는 문장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활자유랑자 2009-03-30 15:25   좋아요 0 | URL
좋은 지적 고맙습니다. :)

금미미 2009-04-0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말이 많아지시네요

활자유랑자 2009-04-08 10:12   좋아요 0 | URL
가진게 입이라..
 

봄이 코앞이다. 1/4분기도 어느새 반이 지났다… 고 쓰다가 벌써 09 S/S 시즌이다, 라고 고쳐쓴다. 상처 입은 짐승이 제 상처를 숨기듯. (물론 바닥의 핏자국은 지울 수 없고, 나는 분기로 계절을 느끼는 직장인이다) 노스롭 프라이는 그의 비평론을 통해 봄을 희극과 병치했다. 마치 봄이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웃지 않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말에 따르면 겨울은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이 글의 첫 문장, '봄이 코앞이다' 같은 것. 누군가는 여즉 겨울을 사는 셈이다.

그렇지만 꼭 봄이 희극일 필요는 없다. 고급인 척 하는 커피잔에 그려진 꽃만큼이나 장식적으로 소비되는 엘리어트의 시구만 봐도 그렇다. 물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 필요 역시 없다. 그런 봄의 이중성을 가리켜 미야자와 겐지는 '봄과 아수라'라고 명명한다. (미리 덧붙이자면, 이 페이퍼를 예상이라도 한 듯 이상화는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부분을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라는 경고에 할애하고 있다… 나비 제비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겐지는 이런 말로 시집을 연다(序).  

나라고 하는 현상은 / 가정된 유기적이고 육체적 존재로서 / 하나의 파아란 조명입니다 / (모든 훌륭한 정신을 계승한 존재) / 풍경이나 모두와 함께 / 세상의 빠른 변화와 함께 명멸하며 / 끊임없이 확실하게 켜지는 / 모든 인과가 연속적으로 교착하는 / 존재로서 / 하나의 파아란 조명입니다 / (빛은 남고 전등은 소멸되고)

그것은 분명 어떤 종류의 정신주의이고(사실 나는 이 말이 조심스러우며 심지어 맞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나는 캠벨을 본다. 도처의 신화를 통해 인간 정신이 공통으로 지녀 내려온 어떤 원형을 바라보는 것. '너는 이것을 할지니'라는, 바깥의 명령이 아닌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 이 또한 어떤 종류의 정신주의이기에. 이것이 바로 캠벨의 세계다.  

여기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아포리즘이 그렇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이런 종류의 사고에 대해 지젝은 우려를 표한바 있다.

이런 방향에서 등장하는 지도적인 인물은 프로이트의 적수였던 칼 쿠스타프 융입니다.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그노시즘이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 저는 어떤 위험이나 악(惡)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치유책이나 대응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와 테크놀러지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정신주의, 새로운 정신주의적 태도인데, 이것은 단지 주변적인 현상도 아닙니다.   

미국에는 분명 이른바 테크노-그노시스(techno-gnosis), 그노시스틱-테크놀러지(gnostic-technology)를 향한 경향이 있고, 다시 말해서 가상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삶의 가상화라는 그노시스적 논리와 연결짓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현실적 인간이 아니다. 현실은 빌어먹을 똥이다. 우리는 정신적-가상적-잠재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서 해방될 수 있고, 또 다른 현실로 자리를 바꿀 수가 있다...." (중략) 그러나 저는 이들이 말하는 계시나 영적 인식 등이 오늘날의 테크놀러지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지젝 대담, 출처 : "철학과 정신분석의 만남", 로쟈 님의 서재 http://blog.aladin.co.kr/mramor/968590

융에 대한 캠벨의 부채를 생각하면, 지젝의 비판은 캠벨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하지만 이것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하이데거 철학의 내적구조가 나치의 그것과 상응하는 구석이 있다고 해서(이건 일단 가정법인데 당연히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인데, 그렇게 따지면 이 페이퍼 전체를 가정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전면 폐기해야 하는 건지, 혹은 '지젝의 라캉'이 싫다고 해서 라캉을 비난하는 것이 맞는 건지 나로서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라리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하지만 그 두 이론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를테면 주체와 구조 혹은 정신과 물질 같은 오래된 대립들 또한. 이런 대립을 넘는 '궁극이론'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과학자들과는 달리 소통을 위해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과학자들에게도 '궁극이론'은 요원하다…)

이제야 부록처럼 캠벨의 신간을 소개하자면, 재미있다. 기존의 캠벨 독자라면 요소요소에 삽입된 책 구절들이 읽기를 더욱 즐겁게 할 것이고, 캠벨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그의 세계를 그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신화와 인생>이라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양념처럼 첨가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때론 신나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일단 서부 연안에 도착하고 보니 나는 실업자 신세였고, 게다가 캘리포니아까지 왔으니 더 이상은 서쪽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중략) 마침 나는 카멜로 가다가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델한테 잠깐 들러서 인사나 하고 가지, 뭐.' 그래서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잘 있었어?' '어, 지금 카멜로 가는 중이라고? 그럼 나도 같이 가. 우리 언니 캐롤이 거기 살거든. 우리 형부란 양반은 작가가 되는 게 소원이래. 내가 소개해 줄게.'  

그녀의 형부란 바로 존 스타인벡이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같은 부분. 이것참, 신나는 얘기가 아닌가?

몇몇 언론에서 책의 출간을 알리며 첨언하듯 <신화와 인생>에는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적 요소가 존재한다. 물론 작금의 '자기계발서적'이 인생에 비유된 낚시에 대해, 잘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목 좋은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과는(게다가 그곳은 사람들로 이미 바글바글하다!) 다른 의미에서다. 어떻게 낚시대를 다루고 미끼는 어떻게 고르며, 물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기다리는 동시에 행동할 것인지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자기계발서적'이다.

나는 이 책의 교훈을 이렇게 들었다. "인생은 슬플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 귀 기울인다면, 다른 사람의 요구가 아닌 자신만의 희열을 따른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할지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지젝의 비판을 더 잘 이해하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이 바보는 아니듯,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믿으며 살아간다. 세계관은 곧 그 사람의 믿음을 뜻한다. 나는 캠벨이 내게 한, 그 말을 믿고 싶다.

봄은 희극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다. 하지만 봄이 봄 같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올바로 살아있는 것이 아닐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간절히 살아있고 싶은 것이다. 물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나아가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그저 상상해 본다.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보내고, 아예 죽여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2년 뒤에
진작 그래야 했다며 후회하리라.

 
   

  

 

 

  

 

 

 

생각난 김에 인간본성에 관한 이해와 오해에 관한 책들을 모아 본다. (라고 쓰고 '간지'라고 읽는다. 꽤나 '포스'가 느껴지는 표지들이 아닌가?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 책들이 다 따끈한 신간이라는 거다!)  

1961년과 1962년에 예일 대학에서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심리 실험이 행해졌다. 연구자들은 지원자들에게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라고 실험을 소개했다.  

실험에 들어가서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실험 참가자 중 한 명은 '교사', 다른 한 명은 '학습자'의 역할을 맡았다. 학습자는 끈으로 의자에 묶여 종이에 적힌 단어들을 외워야 했다. 학습자가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교사는 학습자에게 약한 전기충격을 가했다. 학습자가 단어를 틀리게 말할 때마다 교사는 실험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전압을 조금씩 높였다. 학습자는 처음에는 끙끙거리다가 전압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다.  

교사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학습자와 연결된 전기충격 장치에 실제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학습자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고통스러운 척 연기를 했던 것이다. 이 실험의 초점은 '희생자'가 아니라, 전압 버튼을 누르는 '교사'의 반응을 살피는 것에 있었다. 과연 교사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무방비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 점점 더 큰 고통을 가하는 실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77~78쪽 중에서

우리 모두는 그 해답을 알고 있는데, 소수의 참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학습자'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감독관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였다. 단지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이유 없는 고통을 줄 사람은 없을 거라 믿었던 관계자들은 물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결과를 접해 들은 세계가 받은 충격은, 분명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슬픈 사실은, 인류 역사의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을 바로 이 실험이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 국내 최초로 완역 되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작품성 높은 과학 서적이 아니었다면 밀그램의 실험은 그리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마음의 작동 방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르완다의 비극과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이라크의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모독 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84쪽 중에서

<자유의지 환상의 진화>는 조금 더 과감한 시도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흔히 인간의 고귀한 특성으로 여겨지는 '자유의지'를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알 수 있다. 예상대로 저자 프란츠 M. 부케티츠는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고, 그의 논증은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은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효과적인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클루지>를 함께 읽을만 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에는 하나의 반전이 준비되어있다. 저자는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획득한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히려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그 '환상'을 빼앗으려는 모든 규범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정치, 삶을 옭죄는 경제 한마디로 우리를 '자유의지'는 커녕 그런 '환상'조차 갖지 못한 존재로 취급하려는 이 시스템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흥미로운 시도가 아닌가?

알프레드 아들러의 <인간 이해> 역시 국내에 최초로 번역되는 책이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을 창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위상에 비한다면 너무 늦은 소개라고 할 수 있겠다. (심리학의 명저 50권을 소개하고 있는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에서는 이 책을 1번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열등감'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문화적 엘리트에 속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아들러는 인간 본질에 대한 연구가 심리학자만의 영역이 아닌 모든 사람,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쁜 결과를 얻는 사람들을 위한 소중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들러의 이러한 심리학 접근 방식은 상당히 대중적이어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빈 대중학회'의 1년치 강의를 듣는 것과 유사한 가치가 있다. 그만큼 그의 책은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45쪽 중에서

'문화적 엘리트에 속했던 프로이트'가 궁금하다면 <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를 읽으면 좋겠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로 유명한 사회학자 김덕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을 부전공한 사회학자'가 되겠다) 하여 저자는 서문에서 프로이트에 대한 입문서를 자처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 사회라는 억압사회에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 이론과 방법을 한 번 일반적인 수준에서 검토해보는 것이다" 라고.

지금 다시 책을 앞에 두고 생각하니 저자의 말은 단순한 겸양이 아닌, '입문서' 정도로 취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의혹이 든다. 그렇다면 이 책을 더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가 자신의 책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훌륭한 교양서이다. 프로이트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프로이트를 정복했다! 라고 생각하면 좀 곤란하겠지만…)
 

 

 

 

 

 

 

SERI 보고서 같은 표지를 하고 있는 <내 성격은 내가 디자인한다>는 MBTI에 기초한 책이다. 융의 성격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브릭스 마이어스가 만들어낸 일종의 성격검사(Myers Briggs Type Indicator)인 MBTI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명확히 파악, 장점은 계발하는 동시에 단점은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담이지만, 꽤나 오래전 대학시절 '제대로' 받았던 검사에서 나는 INTP를 판정 받았고 얼마전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약식 문항으로 한 검사에서는 INFP를 판정 받았다. 이 책에 따르면 두 가지 유형의 특징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다.

"내향-직관-사고-인식(INTP) 유형은 16가지 성격유형 가운데 머리가 가장 좋은 수재 그룹이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다."(106~107쪽)  

"내향-직관-감정-인식(INFP) 유형은 참으로 정적인 문학소녀와 같은 성격이다. 나는 이 땅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INFP 성격이 한 번 되고 싶다"(90쪽) 

이를테면 나는 '수재'에서 문학소년도 아닌 소녀가 된 셈인데, 저자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 없이 다시 INTP가 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하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고, 장동건도 불안하고, 그래서 장동건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추천했고, 그리하여 보통은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고 있고, 새롭게 책상 위에 놓인 <불안과의 싸움>이라는 제목은 솔깃하다. 불안이야말로 현대인의 조건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불안한 당신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아직은 세상으로부터 살아남아 행복해질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불안마저 사라진다면, 모든 것을 잃은 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다만 당신이 어떻게 불안을 극복하느냐의 문제일 뿐. 이 책은 당신에게 불안을 극복할 지혜로운 용기를 전해준다." - 김진세 | <심리학 초콜릿>의 저자, 정신과 전문의

그렇다면 우리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해 보이고 그에 더해 이 책의 저자인 앨버트 앨리스는 "1982년 임상심리 학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설문조사한 결과, 프로이트를 제치고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주요 상담 심리 학술지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 심리학자라는 명예로운 기록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쫑긋.

하여 오늘 책을 소개하며 마치 표준전과 처럼 뒤적이고 있는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로버트 A. 하퍼와 함께 쓴 <정신 건강적 사고(한국어 번역본 : 마음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으로 50권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팁을 하나 흘리자면, 인문MD가 되기란 참으로 쉬운데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같은 책이 몇 권 있으면 그만이고 없어도 MD로 일하는 중에 계속해서 출간 되어 나오므로 걱정할 것이 하나토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수치스런 과거 때문에 억압된 삶을 사는 사람, 뭘 해도 남보다 월등히 잘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 면접이 두려워서 일자리 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 애인에게 차일까봐 밤잠을 설치는 사람,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 공포증을 가진 사람, 사람들이 모두 자기 흉만 보는 것 같아서 눈도 못 마주치는 사람,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만 하려고 하면 앞이 캄캄한 사람 등등"이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한 4권은 더 사야할 것 같다…  

<증오의 기술>은 같은 출판사에서 연초에 출간된 <용서의 기술>과 겹쳐 읽으면 좋을 책이다. 후자가 "분노와 적대감을 억누를 때 발생하는 심각한 (정신적 / 육체적) 건강 문제를" 안고 사느니 용서 하라, 용서를 위해서는 이런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고 조언하는 형식이라면 전자는 그냥 다 잊고 '나는 용서하였노라'고 선언하는 것이 용서가 아니라는 것. 진정한 용서를 위해서는 반드시 분노의 표출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가스등 이펙트>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 

"우리가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원망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더 힘들다"(17쪽) 우리 모두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결국 화살을 정당한 곳으로 돌리고 감정을 표출하는 것, 그럼에도 근본적인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일 테다. 실제 환자의 사례를 통해 진행되는 책은 읽는 이를 몰입하게 한다.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 이 제목이 뜻하는 바 역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흔히 '멍청하다'는 것은 '똑똑하다'의 반대말로 쓰인다. 그것은 대개 지적능력에 대해 사용되며, '똑똑한 짓'을 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으로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을 '멍청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물론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짓'을 할 것이고, '멍청한 사람'은 '멍청한 짓'을 할 것임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하면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다.  

인지심리학과 응용심리학의 전문가인 공저자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예를 통해 (왜 코넌 도일은 홈즈를 죽이려 했을까? , 왜 클린턴은 애정행각이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똑똑한 사람을 칭찬하면 바보가 될까? 왜 지능이 높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행복할까? 등등)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우리 심리의 맹점들을 짚어낸다. 지난 1월에 출간 되었던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에 이은 'WHY' 시리즈의 두번째 책. (그럼 종종 멍청한 짓을 하곤 하는 나는 오히려 '똑똑한 사람'일까?)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단지 이 페이퍼가 늦어서 조금은 늦게 소개하게 된, 하여 이미 많은 분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러나 조금 더 사랑 받으면 어떨까 싶어 올려 보는 책들이다.  

<번역의 탄생>은 좋은 책이다. 물론 어떤 위대한 이론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전제다. (천문학적인 돈이 흘러가고 있는, 인류가 가장 높이 쌓은 바벨탑이라 할 '초끈이론' 또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상기하자) 저자의 성실함과 애정이 차곡차곡 쌓인 '번역론'은 단지 번역을 업으로 삼은 이들 뿐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독서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니, 좋은 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달을 먹다>로 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진규의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의 미덕은 여기저기서 빌어 온 '아름다운 문장'들로 책을 채우지 않았다는 것일 테다. 그녀의 다독은 독서를 위한 독서가 아니었기에, 그녀의 삶과 함께 펼쳐지는 문장들은 자연스레 녹아들며 읽는 이를 공명하게 한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으며 존 스타인벡의 책 두 권을 보관함에 담아 두었는데 마침 캠벨의 인생여정에 등장한 그 이름을 다시 보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드디어 오랜 예약판매를 그치고 출간 된 <지식 e - 시즌 4> 소식도 빼놓을 수 없겠다. 실제로 손에 쥔 책은 언제나와 다름 없었지만 더욱 신경쓴 편집이 일단 눈에 띄었고, 사랑해 마지 않는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이야기로 시작해 '레판토의 외팔이' 즉 세르반테스로 끝내는 구성 또한 좋았다.  

음악으로도 유명한 '지식채널e' 답게, 영상을 더욱 빛냈던 음악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CD도 발매된 모양인데 수록곡이 만만치 않다. Travis, Franz Ferdinand, Lou Reed 등 반가운 이름들이 한 가득. (개인적으로는 이런 노래가 떠오른다. "너무 짜릿짜릿 몸이 떨려 知知知知知~")

이 책은 남은 것들, 여분의 것들, 제외된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 곧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상상하는 일... 그런 생각과 상상만으로 다른 세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책.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다. 무용해 보이는 그 모든 상상들이 이 세계를 바꾸리라. - 김연수, 소설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피에르 바야르의 두번째 책(물론 번역서 기준이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은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의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혹은 속임수 같은) 반전을 에르퀼 푸아로의 해석망상으로 나아가 크리스티 자신의 해석망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혹은 또다른 해석망상적인) 독해를 제공한다.  

이렇게 말하니 책이 재미 없어 보이는데… 책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와 그 장르의 법칙에 충실하게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읽기를 거부한 바야르는, 추리소설을 치밀하게 따라 읽으며 마치 새로운 추리소설을 하나 쓰듯 이 책을 쓰고있다. 꼭 애거서 크리스티와 푸아로의 팬이 아니더라도, 장르 팬이 아니더라도, '읽기'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마지막은 발터 벤야민으로. 딱히 이유는 없다. 실은 얼마 전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었기/보았기 때문일지도. 이건 좀 부끄러운 얘기인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속으로 "발터 벤야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말이 계속해서 떠돌았던 것이다. (그런 떠돌이 개 같은 생각도 결국엔 이렇게 길어 꾸역꾸역 써넣고 마니 통탄할 일이다.)

왜 하필 이 책이냐, 고 묻는다면 가장 솔직한 대답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이 책이기 때문이라 하겠는데, 곰곰 생각하면 이 글 전체와 조응하는 내적논리가 존재함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무의식은 언어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고', 말은 말을 낳으며, 결국 여기까지 쌓아온 말장난과 무의미한 말의 연쇄가 결국 이 책을 불러냈다고 밖에는.   

사실 나는 벤야민이 어렵다. 그를 좋아하는 건 아마도 이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멋진 이름이긴 하다. 벤자민 버튼도 귀여운 이름이다)

이 책은 지난 겨울의 초입, "인간과 언어의 제문제"라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식탁 옆에 쌓아 둔 책들 중 하나이다. (나머지 책들의 목록은 대략 이렇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바흐친의 <말의 미학>,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란다 사브리의 <담화의 놀이들>, 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 역) <시학>,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노스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 

나는 아마도 겨울잠을 자려는 곰처럼 책을 쌓아 놓았거나, 바벨탑이라도 세우려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간은 겨울잠을 자지 않고, 바벨탑을 쌓으려는 자들은 저주를 받았으니 나 역시 나와는 다른 말을 구사하는 책들에 놀라 사실 많이 펴보진 않았다. (아마 그때 저주를 받아 INFP가 되었나 보다) 새봄에는 "인간과 언어의 제문제"를 마침내 풀어보길 희망하며 씁쓸하게 이 글을 끝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기호는 사물들이 착종된 곳에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다 속에서 언어를 노예화하는 일에 이어 그것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어리석음 속에 사물들을 노에화하는 일이 등장한다. 노예화를 뜻하는 사물로부터의 이러한 이반 속에서 바벨탑 건축의 계획과 그와 더불어 일어난 언어 분규가 생겨난다." - 92쪽 중에서  

"진정으로 그러나 누이여 오늘은 나도 너무 괴로우니까 수양버들꽃도 따지 않는다" - 미야자와 겐지, '연애와 열병' 중에서


*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계란 2009-03-0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소녀시대!!! 그 디테일이 참으로 정적인 문학소녀스럽군요! 이번 주도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03-03 18:04   좋아요 0 | URL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 고맙습니다 ^^

안티크 2009-02-27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소녀시대 열풍이군요. ^^;

활자유랑자 2009-03-03 18:04   좋아요 0 | URL
GEE GEE GEE GEE BABY BABY 라고 할 수 있겠죠? ;

alice1101 2009-03-0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03-03 18:04   좋아요 0 | URL
또 놀러 오세요~ :)

ego2sm 2009-03-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링크 담아갈게요.
http://opencast.naver.com/EG788

활자유랑자 2009-03-03 18:0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섬연라라 2009-04-10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비 제비도 노력하고 있습니다......에서 빵 터지고 갑니다. ㅎ_ㅎ

활자유랑자 2009-04-13 13:17   좋아요 0 | URL
노력은 하고 있는데... 많이 부족하네요 ;
 

"불행한 사람일수록 TV를 많이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의 '국립여론조사기관'이 31년 간 미국 성인 3만 명을 조사한 끝에,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 중 불행한 사람의 수가 30% 더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음,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몇 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1. 불행해서 TV를 보는 걸까, TV를 봐서 불행해지는 걸까?
2. 불행의 어떤 면이 우리를 TV로, TV의 어떤 면이 우리를 불행으로 이끄는 걸까?
3. 불행한 것은 TV의 내용일까 TV를 보는 행위일까?
4. TV를 보지 않고 단지 틀어 놓는 일만으로도 불행할까?
...
5. '미국 국립여론조사기관'은 TV와 불행의 상관관계를 밝혀 어쩔 생각이었을까?
5-1. 31년 간, 3만 명, 30% 에서 반복되는 3은 무슨 의미일까?
...
8. 불행의 기준은 무엇일까?
9. 불행을 판단하는 것은 TV일까, 우리일까?


간단하게 이야기해보자. 우리들 대부분은 TV를 보며 밥을 먹는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TV는 항상 떠든다. 이제 TV는 누군가의 말처럼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가족은 사랑스럽다. 그래야 하니까. 가족은 밉다. 원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TV가 실은 우리의 가족이고, (윤리적 의미에서) 우리가 불행하듯 그도 불행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장시간 켜진 TV는 항상 꺼진 TV 보다 30% 더 불행할까? 정확히 말하자면, 장시간 우리에게 보여진 TV가 보여지지 않는 TV 보다 30% 더 불행한 걸까? 너무 말장난 같다고 느껴진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이 자본주의의 '실체 없는 육체'라면 TV는 그것의 '물화된 영혼'이다, 라고. 우리가 보는 그것은 동시에 우리를 본다, 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불행하다, 고. 

2009년, TV에서 전한 뉴스를 되뇌어 본다. '미네르바 소동'은 푸코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저자란…… 사람들이 의미의 확산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표시해주는 이데올로기적 인물"이라는. 미네르바를 두려워한 것은 정부였다. 강호순은 어떤가. 짧게 '악마에게는 인권도 필요 없다'는 논리를 빌어 그를 구체적인 한 (비정상적인) 개인으로 명확히 못박으(ㅁ으로써 가두)려는 바람은 요즘 판매부수가 예전 같지 않은 한 신문과 다수의 겁먹은 시민들의 것이었다.  

우리는 '의미의 확산'을 두려워 한다. 물론 우리는 '의미의 부재' 또한 두려워 한다. 실상 우리가 바라는 것은 눈 앞에 놓여 있는 초콜렛 만큼의 의미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며 소화 까지 시킬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에 '착한 초콜렛'은 없다. 발렌타인 데이가 코앞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TV를 본다. TV의 네모난 프레임은 '의미'를 안전하게 가두고, 화려한 스타와 진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이야기를 단선적으로 풀어내며 동시에 해소한다. TV에서 보여지는 사건은, 일단 그곳에서 보여지는 순간 이미 '여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네모난 화면 속'의 일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일종의 '안전한 괴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허공에 뜬 채로, 밤이 새는지도 모른 채, 채널 사이를 부유한다. 그것은 분명 불행이다.

(지금 이 쓸모 없는 글이 <지식 e>를 소개하기 위한 서두라는 게 믿겨지는가? 그래도 나도 '9시 뉴스에 나온 사람'인데…)


EBS의 '지식채널e'는 그런 의미에서 참 영리한 프로그램이었다.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이미지와 음악, 짧은 텍스트가 그려내는 것은 하나의 팩트, 완벽히 서사로 해소되지 못하는 그 조각이다. 생채기를 남기는 것이 언제나 유리의 조각이고, 얼룩을 남기는 것은 언제나 초콜렛의 부스러기이기에. (지금 추측 가능한) 의도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프로그램은 '의미의 확산'을 불렀고, 김진혁 PD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다.

물론 '지식채널e'의 태생적인 한계는 명확하다. 하여 <지식 e>의 기획은 조금 더 영리한데, 더 적은 노력을 들여 더 큰 여파를 노릴 수 있음을 발견한 눈이 특히 그렇다. 그렇게, "시즌 1이 출간된 이후 시즌 3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지식 e>가 2월 23일까지 예약판매를 하고 있다"는 것. "지금 예약구매하면 '지식채널e' DVD를 준다"는 것. 사실 이 긴 문장들의 연쇄속에서 내가 해야할 말은 오로지 그것 뿐이다.  

  

 

 

 

 

 



지난 '만선'에서 살짝 선보였던 프레시안의 'Revolutions' 시리즈다.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꽤나 재미있다. 비록 페이퍼의 너비 제한으로 <호치민 :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한 권을 빼야했지만… (대신 호치민은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지난 연말 개봉한 [트로픽 썬더]에서 벤 스틸러를 납치한 라오스의 마약 밀매 단체가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톰 크루즈에게 전화를 걸자 톰 크루즈가 이렇게 되물었던 것. "Who the Hell are you? Ho-chi-minh?"

1차로 출간된 다섯 명의 인물과, 2차로 예정된 다섯 인물- 카스트로, 토머스 제퍼슨, 시몬 볼리바르, 토머스 페인, 마르크스 등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런 의문이 든다. 'Revolutions'라는 시리즈명은 무엇을 말하는가?

rev·o·lu·tion
1 [U.C] (정치상의) 혁명
2 [U.C] 대변혁, 개혁;격변, 완전한 변화
3 회전, 선회;1회전 
4  (계절 등의) 주기;순환, 회귀
5 【천문】 운행, 공전(公轉)(cf. ROTATION);공전 주기

(출처 : 네이버 사전)

결국 '거의 불가산명사(U.C)'임을 알리는 약호에도 불구하고 복수형의 표기를 고집한 것은, 이 책이 이중적 혁명을 시도할 것임을 암시한다. '혁명'에 대한 '혁명적 읽기'- revolutions. 슬라보예 지젝, 월든 벨로, 테리 이글턴 등이 '혁명적 읽기'를 제안하는 서문은 꽤나 즐겁게 읽힌다.  

 

 

 

 

 

 

 
- 입시전쟁 잔혹사, 강준만. 저자 그대로, 제목 그대로

- 유동하는 공포, What's up 총서 4로 출간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지그문트 바우만. 언제나처럼 충격적인 문제제기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희미하게 느끼고 있는 것'들의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 뉴 레프트 리뷰, 우리가 알고 있는 'NEW LEFT REVIEW'의 한국어판. 1년에 한 권씩 출간될 계획으로 일종의 선집. 마이크 데이비스,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테리 이글턴, 낸시 프레이저, 로빈 블랙번 등등

-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경식 강연 및 대담집. 앞으로 '서경식에게 가는 길'의 입구엔 이 책이 놓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긴 말이 필요 없는 책들이란 말이다.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철학 콘서트 2>의 띠지 뒷면에는 이렇게 써있다. "왕의 귀환, <철콘 2>!" 상당히 귀여운 이 자신감의 정체는 <철학 콘서트 1>에 있다. (2006년 출간된 책은 2009년 2월 1주, 여전히 알라딘 인문 베스트 11위에 랭크되어 있다

<지식의 단련법>이란 제목은 또 얼마나 거창한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제목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렇다, '知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다. (아마도 일본에서 붙였을 그 애칭을 다시 보라. '지식'의 거장이 아니다. '지'의 거장인 것이다) 2월 12일까지 예약판매 중이라 아직 실물을 받아보진 못했다.   

알마 출판사의 'Science & Society'는 새롭게 시작하는 시리즈다.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완전할까> 세 권이 먼저 출간 되었고, 앞으로도 25권이 더 예정되어 있다. '과학과 사회'라는 시리즈명에서 느껴지듯, 우리 사회의 '쟁점'들을 과학과 인문학, 사회학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시도다. 프랑스에서 매년 행해지는 '콜레주 드 라 시테'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내용을 모았다고 한다. 

<지식의 이중주>는 그와 함께 읽을 수 있는 국내저작으로 '뇌와 의식', '기후변화', 'GMO', '인공지능' 등 13가지 키워드에 대해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각각 자신들의 '학문적 입장'에서 한 꼭지씩 쓴 글들을 모았다. 말그대로 한 '꼭지'라 깊은 성찰은 찾을 순 없지만, 각각의 시각이 비슷하면서도 또 뚜렷하게 갈려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출판계에서 조선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민 선생이 이번에 주목한 인물은 아직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18세기의 문인 청성 성대중이다. "또 정민이야?!"라고 되묻는 당신. 당신은 아마 언젠가부터 정민의 저작이 같은 말만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면, 그 이유는 생각해보았는지 반문해야겠다.   

1. 정말 중요한 얘기다
2. 우리가 듣지 않는다
3. 술에 취했다 
4. 일종의 랩이다‥?

답은 1번과 2번이고 이는 촘스키 할아버지의 경우와 같다. 따라서, 그 말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땅땅.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어쨌거나 '한결 같아 보이는' 선생의 작업은 언제나 다른 선자들의 다른 사유의 결을 우리에게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문장은 그냥 농지거리에 불과하다…)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에서 우리는 다시 미네르바를 만난다. 출간 직전까지 고민했던 제목은 "왕을 꾸짖은 조선의 미네르바"였다는 것. "권력과 벼슬을 탐하지 않으며 학문과 교육에 힘쓰고 자연을 유람하며 시를 읊은 재야의 선비들, 즉 처사들"을 다루는 책은, 권력에 지지 않고 바른 목소리를 내던 선비들의 기상을 그린다. 물론 '미네르바 = 처사'라는 공식이 어디까지 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꽤나 재미있는 제목의 <화염조선>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08 우수저작출판지원사업 당선작'으로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고구려부터 조선까지 전통시대를 대표하는 첨단무기들을 열전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영화 '신기전'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나, '밀리터리 매니아'(줄여서 밀덕후…?) 친구들에게 선물하면 베스트 프렌드가 될지도. 물론 색다른 역사를 읽고 싶은 사람도 대환영이다.  

<조용헌의 명문가>는 2002년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 이은 조용헌의 두번째 조선 명문가 탐방이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위하여'(제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명문가를 만드는 요소와 원칙에 비중을 두"었던 전작과는 달리, "명문가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행동양식과 그들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그리는데 천착하고 있다"고. 

 

 

 

 

 

 

 
이번 주제는 '연애'와 '섹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조선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고 싶다면 <조선의 섹슈얼리티>를. 진화심리학 혹은 '성선택론'의 입장에서 사랑을 바라보고 싶다면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 <연애>를. (이 두 권의 책은 각각 <사랑의 해부학>과 <메이팅 마인드>의 개정판으로, 두 권 다 모두 원서를 그대로 번역한 제목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바꾸어 달았다) '성선택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초월한 자연계의 방대하고 충격적인 '섹스'를 보고 싶다면 <성의 자연사>를 보면 되겠다.

 

 

 

 

 

 

 
오늘의 마지막 책들은 이렇게 불러야겠다. '이름 값' 하는 책들.  

<진리와 정당화>는 하버마스의 논문집이다. 사실 하버마스의 이론은 잘 알지 못하지만(물론 그렇다고 다른 이론들은 잘 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하버마스의 이력에서 꽤나 중요한 논문집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오늘 리오타르 관련 글을 찾아 읽다 allnaru님의 서재에서 이현복 선생이 쓴 "리오타르: 차이의 철학과 해방의 미학"를 읽었는데, 그 글에서 하버마스가 단역으로 잠시 등장한다. 이런 우연이! 참고로 나는 이현복 선생에게 3번의 A+을 받았다. 9시 뉴스에 나왔다는 사실에 이은 오늘 두번째 자랑이다)

누구나철학총서의 다섯 번째는 <슬라보예 지젝>이다. 국내 저자가 쉽게 풀어쓴 지젝 입문서. 이제 지젝 정도는 읽어야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건 물론 거짓말.

민음사의 이데아총서 시리즈가 꾸준하게 재발간 되고 있다. <헤르메스> 역시 그 중의 하나. 사실 세르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쓸데 없는 취미로 절판 되었다고 하니 괜히 찾아 다니던 이데아총서 목록에 있던 책이 손에 쥐어지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고.  

오늘 마지막 책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 꿈>은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 프로이트가 살아 있다면? 그래서 오늘날의 신경과학을 접한다면? 뇌과학의 발전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많은 부분 틀렸다는 것이 밝혀진 오늘(여기에도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미심쩍음이 존재한다)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꿈을 바라보는 책이다. 어쨌거나 생각만으로도 흥미롭지 않는가? 그러니까, <꿈의 해석> 옆에 이 책을 그저 꽂아두는 것 뿐일지라도.

(<꿈의 해석> 첫 문장을 생각해보자. 프로이트가 얼마나 단호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서 나는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심리학적 기술이 존재하며, 이 방법을 적용하면 모든 꿈은 깨어 있는 동안의 정신 활동에 포함시킬 수 있는 뜻 깊은 심리적 형성물로 드러난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  

 

오늘의 마무리는 한 권의 책이다. 지난 만선의 말미에 표지 이야기를 하며 멋진 표지로 꼽은 LP Critical Thinkers 의 <문제적 텍스트 : 롤랑 / 바르트> (아, 이름 사이에 저 귀여운 센스라니 ㅜㅜ)를 언급하다 문득 떠오른 책.  

동문선의 표지와 번역은 때론 악취미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동업자 정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그렇지만 그 목록은 ㅎㄷㄷ이라고도) 이 책 역시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닌데, 잘은 모르겠지만 "'쉬운 성경'에서는 진정한 신을 만날 수 없다"는 레토릭과 닮아 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생각은 바르트에게 비판 받아 마땅하다!) 

<글쓰기의 영도>는 일견 <아티스트 웨이> 처럼 들린다. 領導가 더 친숙한 탓이다. 물론 바르트는 우리의 사유를 어디론가 이끌어주지만, 글쓰기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은 'zero degree' 그러니까 '0도'인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단순화시켜서 말하는 것이 용서된다면) 무엇을 위해서도 복무하지 않는, 오직 글쓰기 그 자체만을 위한 일종의 중립적 글쓰기다.  

그렇기에 이 글은 어떤 의미에서도 '0도'의 글쓰기가 될 수는 없다. 언제나 너무 위에 있거나 아래에 혹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탓이다. (사실 바르트도 그것이 완벽하게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위안을?) 다만 우리는 김훈 선생의 말과 그것에 더해 언젠가 저 위에 계시다는 그 분의 말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결국 인간의 '원죄'인 것을. (나는 단지 비유적인 의미로만 이 말을 쓰고 있다) 카뮈의 영웅적인 시도가 그러하듯, 바르트의 '반역에 반역'이 그러하듯 언제고 그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묵묵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을... 허나 부조리에 대한 감각을 놓지 않는... 아 이건 너무 교훈적이지만. 

 

* 헛소리가 특히 길었네요 오늘은 ; 일종의 실험, 이었는데 ;
* 목수정 씨 인터뷰를 다녀왔습니다. 확인은 '여기'에서.
* 아, 그런데 혹시 아셨어요? '만선'에는 이런 동음이의어가 있다고 하네요. 滿船 <명사> 가득 실은 배, 萬善 <명사> 온갖 착한 일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티크 2009-02-2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네요. 봄의 광합성을 기다리며 알라딘에서 책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 날에 어떤 책이 좋을지 생각하며 보관함에 넣었다가 장바구니에 넣었다가를 반복 중이었습니다. 책 소개들을 보면 이 책도 매력 있고, 저 책도 매력 있고, 그러다가도 간혹 그 매력이 소개에 나온 그것이 다인 경우도 있어서 잠시 주춤거려지고, 이럴 때는 역시 엠디님들의 글을 읽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싶어서 독서공방에 들렸습니다. 역시 제가 보관함으로 장바구니로 들었나 놨다 했던 책들에 대한 글이 있어서 잘 읽고 갑니다! ^^

활자유랑자 2009-02-2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봄날에는 책이 없어도 좋겠지요. 빨리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어요.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

Ravirex 2009-02-2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책을 읽어야할지 고민할때
자주 들어오는데....
오늘은 레볼루션즈 호치민편을 사네요..^^
책와서 읽을걸.. 생각하니까 벌써 설레네요^^

활자유랑자 2009-03-04 11:37   좋아요 0 | URL
많이 읽으셨나요? :)
 

 

 

 

 

 

 

'해리엇'이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당시 그의 나이 176세. 공식적인 세계 최장수 기록이었다. 문득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179세가 되었을 그 늙은 거북은, 자신을 문명세계로 데려온 인간을 어떻게 기억할지 몹시 궁금해진 것이다.  

황량하고 또 다채로웠을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이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게 된 인간 세상에서 171년을 산 늙은 거북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그건 어떤 회한이 아닐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어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친구"라며 쿨하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새롭게 출간 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해리엇' 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뜬 이 탁월한 진화생물학자가 살아 다윈 200주년을 맞았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것 역시 일종의 회한이 아닐까. 죽은 이를 생각하는 일이 대개 그러하듯이.  

물론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다. '다윈의 불독'을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가 그 대표. 기념비적인 저작 <이기적 유전자>는 '해리엇'이 떠난 2006년 30주년 기념판을 찍었고, 그는 여전히 중요한 저작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굴드와 도킨스는 모두 진화론의 토대 위에 선 학자이고, 도킨스는 <다윈 이후>에 대해 "스티븐 굴드의 문체는 우아하고, 박식하고, 재치 있고, 일관성 있고, 힘차다. 또 내가 볼 때 그는 대체로 옳다"라는 평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여러 면에서 다른 학자였다. 진화론에도 여러 갈래가, 여러 해석이 있는 탓이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다윈의 식탁>. 진화론의 대가들이 펼치는 가상 토론을 통해 진화론의 면면을 유쾌하게 살피는 멋진 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마도 가장 명쾌한 서평일 한겨레의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을 참고)

아무래도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일까. 누가 맞고 누가 틀리냐를 떠나 오늘날 미치고 있는 영향을 생각하자면 도킨스의 손을 들어줘야 하겠다. 오죽하면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Tell me'를 편곡해 선보인 빅뱅 권지용은 "이기적인 유전자 / 우리가 부럽나"라는 가사의 랩을, 오는 3월 1일 내한하는 트래비스는 '이기적인 제인(Selfish Jane)'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을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관련 서적'은 굴드의 <풀하우스>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알라딘에서도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름하여 '다윈 특별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윈전' 티켓을 비롯해 이런 저런 경품을 내건 이벤트. 경품 중의 하나는 해리엇을 닮은 바다거북 인형이다! 사실 저 인형은 내가 갖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 >>> 이벤트 보러가기 

  

 

 

 

 

 

 

오바마 취임을 맞아 특별히 고른 두 권의 책은 <제국은 무너졌다>와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였다. 어제 오전까지 알라딘 국내도서 페이지 탑을 장식하고 있던 두 책은 이런 모양이었다. (좀 경박하지만 이렇게 웃어야겠다. "ㅋㅋㅋ"

프랑스의 자크 사피르가 쓴 <제국은 무너졌다>는 제목의 단언이 그러하듯이, 이미 끝난 '미국의 세기' 그 이후를 고민하는 책이다. 물론 그 주체는 유럽이 되어야 한다고 유럽인들은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반면 촘스키는 버사미언과의 최신 대담을 통해 '미국의 세기' 동안 미국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고발하며 강도높은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문득 과연 촘스키가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써야 미국은 회개할지 궁금해지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하여 적이 씁쓸하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바라보며 현실적인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음모'를 느낀다면 <음모의 네트워크>를 권한다. 프리메이슨과 나치즘,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의 암살, CIA와 FBI, MI5, MI6, 모사드와 같은 첩보기관들의 활동이 모두 '세계를 지배하려는 숨은 세력'과 관계하고 있음을 치밀하게 추적하는 '음모론의 완결판'이라 할 만 하다. "그럼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 있어?"라는 시원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다시 오바마 이야기로 돌아가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코드 그린>에서 지적하고 있듯, 이제 '환경'은 '먹고 사는 문제'의 수준으로 내려온 것 같다. 더이상 "아무리 지구의 마지막 날이 가깝다고 해도, 당장 내일 보단 가까울까!"라는 당당함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바마-미국 또한 추세에 발맞춰 '녹색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 하고. (물론 유행이라면 뒤지지 않는 '패셔니스타' 대한민국도 '녹색'의 중요성을 간파, '녹색뉴딜'을 발표한 바 있다. 그에 대한 진중권의 논평을 보려면 여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녹색'은 환경단체의 단어였다. 그리고 물론 그런 단어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제 녹색이 '유행'이 되었으니 "OK, 대성공!"인 걸까? 과연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녹색성장의 유혹>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저자의 책이긴 한데, 오바마는 이 책을 봤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모 주간지 기자 분을 만난 일이 있다. 즐겨보던 잡지의 폐간도 있고 해서, 주간지 시장의 상황을 묻자 인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간지는 생필품, 주간지는 사치품"이라고 여긴다는 것. 꽤나 그럴듯한 대답이 아닌가. 요즘에야 다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신문을 봤다. 그런 신문의 '1면 기사'라면 당대의 관심이 집중된 커다란 뉴스일 터.  

그렇기에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의 기획은 영리하다. 특히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1884 ~ 1945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1권에서 우리는 "안중근이 도시락 폭탄을 던지던 그날", "3월 1일 만세를 부르던 그날", "일본이 항복하던 그날"의 뉴스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의 신문은 (마치 언젠가의 촛불에 대해 어떤 신문들이 그러했듯) 3.1 만세 운동에 대해 "각지 소요 사건 - 경성을 위시하여 각 지방 소동, 황평양에서는 폭행이 심하다" 같은 기사 밖에는 내보내지 못했지만,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말해진 것'은 물론 '말해지지 못한 것' 까지 미루어 볼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제목 그대로 '17세기 지식인들의 삶과 생각'이다. 굳이 대중역사서 시장을 나누자면, 팩션을 비롯한 '흥미 위주'의 역사서와 조금 더 진지한 고민을 담은 역사서로 나눌 수 있을텐데 (문장의 앞을 나는 이미 '굳이'라는 부사로 시작했다) 후자의 책들이 자꾸만 과거의 지식인들을 오늘로 소환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책에서 설명하고 있듯 ("17세기는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 함께 막이 올랐다. 지는 명나라와 뜨는 후금, 오랜 내전을 끝내고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수립한 일본,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또한 제2의 창업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오늘의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기 위함이 아닐까. 역사에서 답을 찾으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오늘을 닮은 어제를 통해 다시금 오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인기 시리즈 도서'의 최신작 출간 소식도 알려야겠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3>이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21일 기준으로, 지금 사면 저자 사인본을 받을 수 있다. 선착순 한정수량이므로 서둘러야 할지도…)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 완역본도 3, 4권이 함께 나왔다. 2월 말이면 5, 6권이 나와 완간될 예정이라고.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모두 '공부'에 관한 책이다! (어쩐지 가슴이 뜨끔)

제목부터 노골적인 <인문학 스터디>를 지난 편집장의 선택을 통해 나는 이렇게 소개했다.  

"인문학 공부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커리큘럼이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에 질려 인문학을 읽어볼까 기웃거리는 이들이 선뜻 손내밀지 못하는 것도, 지식에 대한 욕구에 불타 책을 사들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막막해 하는 것도, 모두 이 커리큘럼이 부재한 탓.  

미국에서 출간 된 <학생들을 위한 핵심 커리큘럼 안내(A Student's Guide to the Core Curriculum)>를 강유원을 비롯한 인문학 전공자들이 번역한 <인문학 스터디>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런 커리큘럼의 부재를 해소해 주기 위해 출간된 책이다. 화려한 수사가 넘치지도, 현학이 과시되지도 않는 그저 작은 책일 뿐이지만, 단지 한 권의 독서로 끝나지 않는 인문학으로의 입문을 친절하게 돕는다."   

하지만 물론 다른 평가는 가능하고, 여기에 그런 평가가 있다. (알라딘 독자 '사량'님의 리뷰의 일부분을 옮긴다)  

"여기저기서 주목받는 책이어서 잔뜩 기대하고 들춰보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크게 실망스럽다. 160쪽밖에 안 되는 분량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구 인문학의 각 분야를 개관하고 추천도서 목록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임을 읽어 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분야의 소개는 지나치게 개괄적이고 간략한데다가, 굉장히 전통적이고 보수적 시각으로 일관되어 있다. 서구중심적인 거야 그렇다 쳐도, 20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한 다양하고 풍성한 이론적 성과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 대단히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은 이 책이 옹호하고자 하는 인문학과 교양의 가치를 무척 의심스럽게 한다.

사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얇다는 점, 그리고 주로 고전에 그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량님의 리뷰에 댓글을 남긴 'limelight'님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커리큘럼도 모든 커리큘럼을 포괄하진 못한다" 같은 무뚝뚝한 말이 마음에 닿았다. 그건 일종의 지적 성실성이 아닐까. 모든 책에는 호불호가 갈리게 마련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책이 좋다. 커리큘럼은 커리큘럼일 뿐이고, 그것이 가만히 밝혀주는 그 '길'이 썩 나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 세미나 11>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많지 않다. 나 역시 소문으로만 라캉의 이름을 들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미나>는 앞으로도 계속 출간 될 예정이고, 또 근간에 <에크리>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그저 반가울 뿐.  

<논어 한글 역주>도 최초로 시도되는 방대한 역주작업이라고 한다. 마치 "도올 김용옥 선생에 대한 호불호로 성급히 판단하면 섭섭해"라고 말하고 있는 느낌의 책이라고 할까. 출판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21세기는 논어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중요한 고전의 중요한 번역임에 틀림 없다.   

혹시나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고전의 참맛을 느끼고 싶다!"라고 생각하실 분을 위해 고른 책은 <이이화의 한문공부>다. 이이화 선생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제목부터 믿음직 하다. 이 책은 일견 '자습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부러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 읽듯이 그냥 훌훌 읽어 버리고 마는 나 같은 사람 때문인듯;) 언제 한문을 공부해서 고전을 읽을까,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 아닐까, 라고 설에 어울리는 덕담으로 마무리.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몇 권만 더 소개해야겠다.  

 

 

 

 

 

 

 

인문학 시리즈 치고는 너무나 멋진 표지를 가지고 있는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니체 편이 출간 되었다. 사실 이번 편의 표지는 조금 평범한 편인데, 롤랑 바르트 편과 함께 가장 멋진 표지를 가진 책은 아마 <모리스 블랑쇼 - 침묵에 다가가기>가 아닐까 한다. (제목 또한 심금을 울린다…)   

그런데 모리스 블랑쇼의 선집이 출간 된다고 한다! (이러니 페이퍼를 멈출 수가 없다) '모리스 블랑쇼 선집 4'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기다림 망각>이 바로 그것. 시작을 4로 하는, 조금 이상한 출간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세 권은 더 나올 것임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해 오히려 반갑다.  

멋진 표지로 다시 돌아가보자. 실은 오늘 멋진 표지의 인물 시리즈를 또 만났다. 바로 프레시안북의 'Revolutions' 시리즈가 그것. 호치민, 로베스피에르, 마오쩌둥, 트로츠키, 예수의 총 다섯 편이 동시 출간 되었다. (근간으로는 카스트로, 토머스 제퍼슨, 시몬 볼리바르, 토머스 페인, 마르크를 예고하고 있다) 시리즈명에서 느껴지듯 세기의 혁명가들의 사상을 선별&편집된 그들의 글을 통해 조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여 <예수 : 가스펠>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oh, my god…)  

별이 잔뜩 들어간 독특한 표지는 영국의 &&&ltd 가 맡았다. 그 뿐이 아니다. 각 권의 서문을 쓴 이들은 다름아닌 슬라보예 지젝과 테리 이글턴, 월든 벨로! 오늘 받아 자세한 내용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표지와 지젝, 이글턴의 이름만으로 기대감은 120%. 자세한 내용은 아마 다음 주 이 자리에서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아, 책은 언제나 많다!


* 지난 주에 예고한 대로 다윈 특집으로 시작한 이번 주 만선.
* 설 연휴 이후로 (개천절과 주말이 모두 겹친) 추석 전까지 휴일이라곤 '어린이날' 달랑 하루 있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이렇게 지지 않고 배는 출발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09-01-22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도서 소개를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가 되네요. :)

활자유랑자 2009-01-28 15:09   좋아요 1 | URL
연휴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서 정신이 없네요; 다음 번에는 더 재밌는 소개를...;
고맙습니다 :)

연한커피 2009-01-28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인문MD님의 글 때문에 제가 모 인터넷서점에서 이리로 넘어오고 있어요. (아직 과거를 다 청산하지 못했네요. 흑) 이번 주도 읽을 책이 너무 많네요. 숙제를 잔뜩 내주시는 느낌.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활자유랑자 2009-01-29 11:46   좋아요 1 | URL
앗! 왠지 "어서오세요!"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
숙제는 아니고, 그냥 '평생 안고가야 할' 무언가가 아닐까요. ;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지나가다가 2011-01-21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는 3월 1일 내한하는 트래비스는 '이기적인 제인(Selfish Jane)'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을까.>>

트래비스의 5번 째 앨범에 수록된 2번 트랙은 Selfish Jean 입니다. 발음도 gene과 비슷하게 했죠.
 

 

 

 

 

 

 


리처드 오버리의 <독재자들>을 2009년 첫 '편집장의 선택' 네 권 중에 하나로 추천한 것은 일종의 농담이었다. "20세기의 쌍동이 악마"로 불리는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과 히틀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는 <독재자들>과 2009년의 한국 사회를 겹쳐 놓는 것은, 그러나 이제 더이상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꼭 '미네르바'라 불리던 남자가 잡혀갔기 때문은 아니다. 간결하게 책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추천사의 마지막 문장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오버리가 심히 소름  끼치는 두 체제의 구조를 사실에 근거하여 간명하게 해명한 덕에 독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악에 관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진리의 공식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정권들, 외견상 통합된 사회를 창조하여 외부인을 악마로 만들거나 살해한 정권들은 거듭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하려는 모든 역사가는 그런 일이 발생한 원인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혀준다. 결국은 바로 이것이 나치와 소련을 비교하는 진정한 이유이며, 이 책의 진정한 가치이다. 이 책은 과거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만큼 미래를 내다본다." - 앤 애플봄(Anne Applebaum), The New Republic
 

조금 늦게 찾아온 조반니 아리기의 대표작 <장기 20세기>가 지금, 여기에서 의미하고 있는 바는 분명하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를 바로 지금, 우리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세기, 즉 '장기 20세기' 이후의 세계의 모습은 어떨 것인가. 이에 대해 조반니 아리기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데,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한 번쯤 숙고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구의 자멸>은 조반니 아리기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서구의 몰락을 말한다. 원제인 'Suicide of The West'에서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나듯,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서구인들이 하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거대한 문명이 우발적으로 종말을 맞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지목하는 서구 문명의 핵심 키워드는 크리스트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연주의와 개인주의의 6가지 가치관. 책은 각 가치관의 의미와 변천의 역사,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자멸이 아닌 지속의 길을 모색한다.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서구의 몰락을 바라지 않는 서구인이 서구에 하는 쓴소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몰락을 바라지 않는 한국인이 한국에 하는 쓴소리'도 들어야 공평하겠다. 아무리 새침하게 "국가요?"라고 되묻는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정치경제사회적인 조건을 무시할 순 없을테니.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 경제>가 바로 그 책이다. 제목과 표지에 빨갛게 써있는 카피-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위기로 치닫는 카지노 자본주의와 추락하는 한국경제, 경제구조의 근본적 전환 없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가 그렇게 말하고 있듯.  

미네르바의 예측과 전망이 모두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지만 현재 전 세계는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예측에 다소 빗나간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 세계 경제변동의 향방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이 지점에서 사실관계의 해명을 넘어 본격적으로 가치관의 문제가 제기된다. 보수나 진보와 같은 가치의 기준으로 구조적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미네르바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 [결론 : 한국경제, 신자유주의 이후를 준비하며] 중에서 (나는 그냥 인용할 뿐이고… 그럼에도 잡혀갈까 무섭고, 나 엄마 보고 싶고…)  
 

 

 

 

 

 

 

새해 첫 브리핑부터 암울한 이야기를 늘어 놓고 있자니 몸까지 퍼지는 듯. 분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터인데, 그렇다면 이건 또한 '직업병'이므로 빨리 좋은 세상이 와서 유급휴가를 받고 병원에 입원하기를 꿈꾸며, 조금 희망찬 책들로 시선을 돌리기로 한다.  

마네의 '놀란 님프' 일부를 표지로 하고 있는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는 한국어에 천착해 온 그의 이력을 다시 한 번 잘 보여주는 책이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란 부제에서도 보여지듯 그가 이번에 탐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말의 에로스'. 입술, 감추다, 메아리, 가냘프다 등 그가 짚어내는 낱말은 결코 일상어의 범위를 넘지 않지만, 마치 표지의 그림이 일종의 '부분확대'를 통해 꽤나 새로운 느낌을 주듯, 우리가 미처 몰랐던 "모국어의 속살"을 은밀하게 드러내 준다.  

사랑이 미끈하다는 것은 그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고 활명적活命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미끈함에 미끄러져서 일상을 걷어차고 색황의 나락으로 한없이, 덧없이 굴러 떨어질 때, 연애는 (어쩌면) 치명적이다. 그 미끈함을 일상의 끈끈한 생동으로 껴안을 때, 연애는 (어쩌면) 활명적이다. - '미끈하다' 중에서  

신년에 참으로 어울리는 <불굴의 용기>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생각과는 달리 두터운 역사서다. 미국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루이스와 클라크를 선두로 한 원정대를 서북쪽으로 파견, 세인트루이스에서 로키산맥을 넘어 오리건까지 8천 마일에 이르는 장대한 탐사를 하게 한 역사적 사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은 물론 아니겠지만, 꽤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펼쳐진다.

* 주의 :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은, 그런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 대개 그렇듯 깊게 파고 들면 정치적으로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행복한 인문학>은 <희망의 인문학>의 속편 '격'인 책으로(직접적인 속편은 아니란 말), 노숙인·자활근론자·교도소 수용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코스의 강사진들이 소통으로서의 인문학, 그 가능성을 자신들의 경험에 빗대어 펼쳐내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2008년을 밝게 비추었던 '촛불'을 다시금 기억하게 하는 책이다.  

(희망적인 얘기를 하려고 하니 말이 짧아지는 이유는 무얼까?)
  

 

 

 

 

 

  


루이 알튀세르의 자서전을 소개하는 알라딘 책소개의 첫머리는 이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어느새 먼 과거의 전설처럼 잊힌 알튀세르의 삶과 철학, 독특한 정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신분석적 자서전이다." (원출처는 출판사 보도자료임을 밝힌다) 이 책을 마주하고 기억의 한 귀퉁이에서 '알튀세르'라는 이름을 다시금 찾아 낼 이들에게 이보다 더 긴 책소개가 필요할까.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다 1980년 정신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교살하기도 했던 그의 삶은… 지독히도 아프다.

한 친구하고는 어느 날 오후 내내, 고대의 가장 오래된 고전적 방법들에서 시작해 수많은 다른 자살 방법을 찾은 다음 마침내 간곡하게 권총 한 자루를 갖다 달라고 요청했다. 게다가 그 친구에게 "그런데, 자네는, 자네는 존재하고 있는가?"라고 끈질기게 묻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고 특히, 나는 내가 놓여 있다고 느끼던 그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끊임없이 파괴해 나갔다. - 본문 355쪽 중에서  

<레프 톨스토이>는 항상 빚독촉에 시달리며, 빚을 갚기 위해 끊임없이 선불을 받고 원고를 고칠 새도 없이 써 팔아 넘기던 도스토예프스키가 '큰 재산과 천재적 재능을 함께 물려 받은 작가'로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톨스토이의 평전이다. 세상 어떤 작가보다도 존경 받았던 톨스토이의 삶과 작품을 탁월하게 복원해 낸다. (좀 다른 말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원고를 충분히 다듬고 정련할 시간과 돈이 있었다면 과연 어떤 작품을 남겼을까?)

1권이 오랫동안 품절이었던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가 새롭게 출간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야겠다. 기존의 양장본은 이제 절판, 이후로는 새로 출간된 페이퍼백으로만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기존의 양장본을 1권만 미리 사두신 분은 2권이 절판 되기 전에 (소량의 재고만 남았다고 한다!) 서둘러 사두는 것이 좋겠다. 물론 아직 읽지 못한 분은, 페이퍼백을 사면 된다. (노골적이다!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은 "중세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시기들에 나타난 일련의 근본적인 변화들을 밝혀내고자 하며, 특히 르네상스에서 혁명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기존의 책들이 그 시작과 부흥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는 달리, 마지막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 알라딘에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강유원 박사와 정지인이 함께 옮겼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을 낸 출판사의 이름이 '르네상스'라는 거다. 난, 농담했을 뿐이고…)   
 

 

 

 

 

 

 

조금 이상한 짝짓기가 되어 버렸지만 앞의 두 권은 '재난재해', 뒤의 두 권은 '미학' 관련 서적이라고 보면 무리 없겠다.

<전쟁의 탄생>은 '왜 국가는 전쟁에 뛰어 드는가?'라는 원제에서 보여지듯 '숙명적'이라고 말해지지만 실은 '인간적'인 전쟁의 이유들을 살피고 있는 책이다. 모든 전쟁은 결국 인간이 시작한 것이므로, 그 인간에 이유가 있다는 것. 저자는 독소전쟁에서 걸프전을 지나 다르푸르 사태에 이르기까지 총 10개의 현대전을 분석하는데, 그 중 한국전쟁이 포함되어 있어 딱히 '전쟁사'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흥미롭게 읽어볼만 하다.  

전쟁은 분명 압도적인 재난재해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재난재해가 존재한다. 특히 21세기의 우리는 어디에서, 누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불안사회'에 살고 있다(혹은 그렇다고 세뇌 당하고 있다). 타임스 기자가 쓴 <언씽커블>은, 실재로 존재하는 재난재해 상황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며 이를 이용해 실질적으로 재난재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한다.

<무감각은 범죄다>와 <이콘과 아방가르드>를 보며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아 도저히 지금 당장 읽을 수는 없겠지만, 꽂아 놓고 싶다. 그러면 언젠간 읽지 않을까?" '저항의 미학'으로서의 '성 미학'을 탐구하는 <무감각은 범죄다>는, 기존의 '예술미학'과 달리 성행위를 미학의 대상으로 읽고 있다. 도발적인 제목 못지 않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주목할 만한 국내저작이라 하겠다.  

<이콘과 아방가르드>는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종종 나오곤 하는 군침이 흐르게 하는 고급 양장서 중 하나다. '초월적 성스러움의 문화적 표상'이라는 우아한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일종의 '이콘 개론서'이다. 이콘과 이를 둘러싼 2천년 역사의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사상.언어적 사건과 함의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긴 책 소개 보다, 예술이나 종교, 상징 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실물로 보고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하고 싶다.

 

 

 

 

오늘 마지막으로 카드점 치듯 다닥다닥 늘어 놓는 책은 바로 'HOW TO READ' 시리즈의 2차분 6권과, 2007년에 나왔던 1차 분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이라고 쓰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이라고 읽는다) <라캉>과 <비트겐슈타인>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이제 그만 나오는 건가, 생각하던 차에 나와서 반갑고 그 중 <융>을 담고 있기에 더욱 반가운, 그런 책이다. 2차분 6권이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은 다음과 같다. 사르트르,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사드, 융 그리고 푸코. 어렵게만 생각되는 사상가들을 쉽고 재미있게 안내하는 좋은 입문서들이다.  

융은 이 심층적인 내면성이 신의 영역에 관여한다고 가정한다. 융에게 있어서 그것은 인습적인 의미에서 신을 믿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 또 다른 세계를 안다고 말한다. BBC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프리맨(John Freeman, 1915 ~ )이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 유명한 대답을 했다.  

대답하기 어렵군요. 나는 압니다.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융은 신앙에 대해 자신이 지나고 있는 생각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믿는다'는 말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믿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특정한 가설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어떤 것을 안다면 나는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 <HOW TO READ 융>, 48~49쪽 중에서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How To Read 융>은 전반적인 융에 대한 입문서라기 보단, 그의 자서전인 <기억 꿈 사상>과 함께 겹쳐 보면 좋을 책이다. 좋은 책이지만, 그저 입문서로 놓고 볼 때는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마무리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적는 것으로. (융의 <기억 꿈 사상>의 문체를 흉내냈다)  

먼저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종의 계시와도 같은 것으로 "다윈주의, 영어로는 '다위니즘darwinism'이라고 한다"는 문장이었다.
그 문장이 떠오른 이유는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탄생 150주년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 속에서 썬글라스를 낀 비가 "레이니즘, 레이니즘, 난 네게 빠져 버렸어"라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그 장면은 하얀 수염을 기른 다윈이 "다위니즘, 다위니즘, 난 네게…"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체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다음 주에는 다윈 특집을 해야 한다는 것…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가 마침 재출간 되었다!)

* 2009년에도 가득한 헛소리와 함께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WTOR Credits 2011-12-2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탄생 150주년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 속에서 썬글라스를 낀 비가 "레이니즘, 레이니즘, 난 네게 빠져 버렸어"라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그 장면은 하얀 수염을 기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