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어느덧 시상식의 계절입니다. 연예대상, 가요대상, 연기대상 등 화려한 시상식은 차고 넘치는데, 왜 어디에도 책 관련 시상식은 없는 걸까요? 리영희 선생이 평생공로상을 받고, 카라가 축하 공연을 하는 '도서대상'을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일까요? 아쉬운 마음에 여기, 현장MD로 살았던 2009년의 기억을 남깁니다. 조금 편파적이고, 아이돌 그룹의 축하 공연도 없는 소소한 시상식이지만 그 끝은… 창대할까요?


- 모든 선정은 알라딘인문MD의 자체 기준을 따릅니다.
- 부분별 수상작은 모두 2009년 출간 도서 기준이며, more about 에는 간혹 구간이 섞여 있습니다.



* 올해의 쇼 - 리차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independent.co.uk

"아마도 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인생을 즐기세요"


올 초, 영국에서 벌인 버스 캠페인 만으로도 도킨스는 '올해의 쇼' 부분을 수상할 자격이 있다. 지난 가을에 <The Greatest Show on Earth>가 출간 되었고, 이제 번역된 <지상 최대의 쇼>가 우리의 12시 당일배송을 기다리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전문 번역가 선생님'은 이 책을 가리켜 "친절한 진화론 입문서, 명쾌한 창조론 반박서"라고 했고, 나는 그 문장 앞에 '가장'이라는 단어를 덧붙일 뿐이다.

+ 올해의 추천사 :
 "내가 신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리처드 도킨스를 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 존 호건
+ more about 쇼


















* 올해의 '던적' - 김훈, <공무도하>


©문학동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 문제다."


언젠가 나는 김훈을 '늙은 개'라고 표현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개>를 보면 안다. 그것은 자서전일 수 없는 동시에 자서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김훈이 그려내는 세계는 바로 저 '동시에'의 세계이고, 당위와 인과를 떠난 자연사의 세계다. 그것은 또한 살아 갈 수도, 살아가지 않을 수도 없는 세계이다. 저널리즘의 언어를 통해 그가 기록하는 것은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과 비열함이지만 그가 기다리는 것은 최종적인 희망이다. 그것은 물론 희망을 가질 수도, 갖지 않을 수도 없는 자의 '던적스러운' 희망일 것이다.

+ 올해의 김훈 리뷰 :
 "나는 조리를 혐오하고 레시피를 불신한다. 딴 동네로 가서 새로 가게를 열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
 - 내일 님
+ more about '던적'

















* 올해의 컴백,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문학동네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해줘도 모르는 거야"


한때 우리에게 하루키는 딜레마였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아야만 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하루키였으니까. 우리가 그와 함께 살았던 <상실의 시대>는 결국 '상실에의 열망'으로 가득한 시대였다. 짐을 줄이기 위해 좌석을, 냉장고를, 스튜어디스를 내던지는 비행기처럼. 아무 것도 손에 쥔 것 없이 그저 상실를 열망했던 우리가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 자신 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를 잊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루키는 육십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고, 우리는 찌든 생활인이 되었으니까. 그가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뉴스는 그래서 꽤나 그럴듯 했다. 그것은 분명 한 시대의 종말에 대한 거창하고 쓸쓸한 기념비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을 타지 않았(못했)고, 대신 <1Q84>를 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올해의 하루키 잡담 : "무라카미 하루키 재습격"
+ 올해의 베드씬 : 덴고(29세) 후카에리(**세)
+ more about 베드씬


















* 올해의 여자친구,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Joana Linda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이것은 완벽한 팝 앨범이다.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들었던 지난 소설집(<나는 유령작가입니다>)과 달리 어깨에 힘을 뺀 그는, '4집 앨범'을 통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3분 짜리 팝송을 들려준다. 각각의 트랙들은 설레임과 체념, 기대와 엇갈림을 노래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하나, 사랑이다 .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그럼에도 인간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낙관 사이에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 '노력하는 작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more about 'Love and Other Demons'


















* 올해의 가난 -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최규석

"만국의 듣보잡이여 궐기하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0.1%가 자신을 '워킹푸어'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 중의 59.3%는 앞으로도 오랜기간 워킹푸어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 대답했다. 밥벌이는 물론 고단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가난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일 때문에 괴로월랑 마시고 인생을 즐기세요.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다니!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도킨스의 말보다 더 충격적일 말을, 그는 웃으며 실천한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가난뱅이다.

+ 올해의 가난탈출법 :
 "고품질 공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
+ more about 가난


















* 올해의 다윈 -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다윈 평전>



©http://www.australiazoo.com.au

2006년, 176세로 세상을 떠난 다윈의 거북이 해리엇의 175번째 생일상


2009년 우리는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동시에 맞았다. 다윈과 진화론 관련 도서만 50여 종이 출간 되었고, 다윈 전시회, 서울시극단의 공연 '다윈의 거북이'에 이르기까지 관련 행사도 풍성했다. 그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1300여 페이지의 볼륨으로 다윈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다윈 평전>이다. 진화론을 두고 '살인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던 노학자의 고뇌와, 그 고백으로 인해 영원히 바뀌어버린 인류의 삶을 만날 수 있다.

+ 이듬해의 인물 :
 장 폴 사르트르 - 사후 30주년
 알베르 카뮈 - 사후 50주년
+ more about 다윈


















* 올해의 노익장 -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http://www.brooklynrail.org

 "비록 지금은 어두워 보일지라도, 끊임없이 끊임없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에 빛이 보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 빛을 향해) 우리는 나즈막이 나즈막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책이여 안녕>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평생에 걸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코쿠 숲과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 아들 히카리, 그리고 신 없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문제에 천착해 온 노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책이여 안녕> 보다 나은 제목을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썼고, 새롭게 시작되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놓였다.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까?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언젠가 오에 겐자부로에게) 했어야 했던 말 :
 "와따시와 아나따노 고또가 다이스키데스" (나는 당신을 정말 좋아합니다)
+ more about 말년의 양식


















* 올해의 '디스'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사랑, 그 혼란스러운>


Gustav Klimt, 'Virgin'

 "도킨스의 신은 바로 유전자다. 이 신은 만물을 관장하고 전능할 뿐 아니라 모든 일에 관여한다."


2008년 출간 되어 얼마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나는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있다면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이름이(적어도 얼굴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자아'의 문제에 천착했던 지난 작품과 달리 <사랑, 그 혼란스러운>에서 그는 영화와 대중가요, 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손에 넘어간 '사랑'을 철학의 자장으로 탈환하려한다. '사랑 일병 구하기' 정도 될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물론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 데이비드 버스, 데스먼드 모리스 등 진화심리학의 스타들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꽤나 즐겁다(이 부분은 진화 심리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할 듯 하다). 그러니 그의 논의가 조금쯤 미심쩍더라도 일단 총알을 다 쓸때까지는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다.

+ more about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올해의 편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글쓰기>


©http://www.dailymail.co.uk

"소설을 써서도 충분히 살아갈 만큼 돈을 벌 수 있네. 이 어리석은 친구야, 어서 소설을 쓰게."


"개인적인 비극은 잊어버리게. 우리 모두 애초부터 실패한 인생이네. 특히 자네는 지독하게 상처를 입어야 진지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걸세. 지독한 상처를 입으면 그걸 활용하게. 숨기려 들지 말고. 과학자처럼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자네 자신이나 자네 가족들에게 생긴 상처라고 해서 그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 헤밍웨이가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글쓰기에 관한 특별한 지혜"라는 의심스런 부제를 달고 있는 <헤밍웨이의 글쓰기>는 완결된 저작이 아니다. 헤밍웨이가 편지, 기사와 잡글, 소설 속에서 글쓰기에 관해 말한 부분을 모아 놓은 편집본이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도 좋다. 대부분 200자 내외에서 마무리 되는 그의 짧은 말들은 대개 글쓰기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으니.

+ 올해의 일화 :
"피츠제럴드는 애통할 정도로 철자를 몰랐다" 그의 편지 선집을 편집한 앤드류 턴불의 말이다. "귀에 들리는 대로, 그는 습관적으로 'definate' 나 'critisism'이라고 적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고유명사는 그에게 쥐덫이었다." 종종 가장 친한 친구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게 편지를 쓸 때 조차 피츠제럴드는 'Ernest Hemmingway'나, 심지어 'Earnest Hemminway'라고 쓰곤 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되기의 중요성, (혹은 철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유) by Craig Brown
+ more about 편지



















* 올해의 재활 - 나카지마 라모, <오늘 밤 모든 바에서>



©http://www.wolverhamptonhealth.nhs.uk

"오늘 밤, 보랏빛 연기로 부예진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의 제1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수상작을 집어 든 사람의 십중 팔구는 "낚였다"라고 내뱉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이 책을 집어들 이유는 뻔하다. 1. 제목이 끌려서 2. <인체 모형의 밤>을 통해 나카지마 라모라는 이름을 알게 되어서. 게다가 장르물에 일가견이 있는 북스피어 출판사가 아닌가.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달리, 이 책은 알코올에 사로잡힌 남자 고지마 이루루의 갱생기이자 자전적 소설이다. 추리도, 미스터리도 공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내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오늘 밤 근사한 바에서 벌어지는 시크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병원에서 탈출해 오뎅바에 가는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저 망가진 한 사나이가 우여곡절 끝에 갱생의 끈을 붙잡는 이야기일 뿐인데.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붙잡아 놓아 주지 않는지, 그것이 미스터리다.

+ 함께 곁들이면 좋은 것 :
  싱글 몰트 위스키 두어잔, 몇 개비의 담배 그리고 (망가진) 인생
+ more about 질병과 중독



















* 올해의 글쓰기/책읽기 - 이만교,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닉 혼비, <런던 스타일 책읽기>




나는 글쓰기, 책읽기 분야의 챔피언이다. 나보다 해당 분야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자랑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평에 가깝다. 올해에도 관련 도서는 끊임 없이 쏟아졌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이만교와 닉 혼비의 책이다. 둘 다 재기발랄한(?)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고, 어느새 '재기발랄' 따위 안어울리는 나이에 접어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닉 혼비는 금연을 하기 위해 금연도서를 주기적으로 읽는다(그것도 같은 책으로!). 하지만 금연은 쉽지 않고, 자괴감만 늘어 간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에서 열린 한 작가 모임에 참석, 지루함에 치를 떨다 담배를 피기 위해 발코니에 나간다. 그곳에서 낯익은 인물을 만나니, 그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였다! 아 세상에 하나님. 커트 보네거트라니요.

반면, 주기적으로 금연을 선포하는 이만교 님은… 뭐, 금연은 어쨌든 해야 맛이니까. 아마 흡연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금연의 즐거움(자기 절제) 때문에 계속해서 담배를 피시는 것 같다.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2010년 부터 금연을 하게 되었다. (이게 글쓰기/책읽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시는 분은, 아직 글쓰기/책읽기 책을 덜 읽으신 거다)



* 특별언급 - 세계문학의 어떤 경향















물론 시차는 존재하지만, 올해 번역된 '젊은' 소설가들의 (문학계 만큼 '젊음'이란 개념을 폭넓게 쓰는 곳도 드물다) 책을 앞에 놓고 보면, 세계 문학의 어떤 흐름을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물론 설명해야 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야 할 무엇이다. 다만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기록한다.




* 올해의 시인 -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싶은), 행운의 여시인"



* 기타 시상

>> 접힌 부분 펼치기 >>
- 올해의 식단










- 올해의 서재









- 올해의 탐정









- 올해의 사전









- 올해의 재출간









- 올해의 지각생 (이제야 출간!)










- 올해의 데뷔









- 올해의 천재






- 올해의 방법
















<< 펼친 부분 접기 <<


* 고맙습니다. 올 해도 만선이었습니다!
* 모두에게 복된 새해가 되기를.


댓글(27) 먼댓글(2)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1Q84> 흥행의 비밀
    from 독서공방 2009-12-31 16:37 
      연말의 묘미는 역시 시상식이다. 영화․음악․드라마․버라이어티에 이르기까지, TV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한 해가 절로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때론 공정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아이돌 그룹이 축하공연을 하는데 공정성 따위에 신경 쓰고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공정성이라니, ‘초신성’도 아니고.   시상식이야 차고 또 넘치지만, 애석하게도 책을 대상으로 한 행사는 찾기 힘들다. 2010년을
  2. 고이고이의 느낌
    from goigoi's me2DAY 2010-01-20 01:19 
    알라딘 현장 MD가 뽑은 올해의 좋은 책 2009
 
 
무해한모리군 2009-12-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인문엠디님 저 칭찬해 주세요. 여기 나온 책 열여섯권을 읽었고 3권은 사놓았어요 이히히
특별언급 부문에 매우 동의!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목할 만한 젊은작가를 잘 못찾겠는 것이 아쉬움이예요.
(감성, 역사적 인식, 개인의 개성이 뒤엉킨 어떤것..)

인문엠디님 내년엔 만사 더 수월하게 풀리시길 빕니다.

활자유랑자 2009-12-29 14:51   좋아요 0 | URL
올해의 독자상을 드리겠습니다!

뭐, 상품은 없지만요...
대신 2010년에는 신나는 일만 생길 거예요. :)

Arch 2009-12-2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진즉에 인문MD님의 유머감각을 알아봤어요. 식단이라니, 여시인이라니! ^^
이렇게 쭉 정리되어 있으니까 정말 좋은데요~

활자유랑자 2009-12-29 14:15   좋아요 0 | URL
여시인은 농담이 아니었는데... 쿨럭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글샘 2009-12-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시상식이네요. ^^ 소원을 말했는데, 행운의 여시인이 말했을 뿐인가... 아쉽습니다. 1년에 한 번 이런 페이퍼를 만난다는게 좀 아쉽지만... 페이퍼 잘 보고 있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길...

활자유랑자 2009-12-29 14:16   좋아요 0 | URL
인간은 계량화된 시간을 살고 있으니, 정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일 년, 일 년...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는 해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저도 복 많이 짓겠습니다.

텍사스양 2009-12-2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스트에 읽은 책은 한권도 없지만
잘 보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12-29 14:17   좋아요 0 | URL
내년 이맘때 쯤엔 많은 책들이 구간이 되겠네요 (1년 6개월)
그때 할인 받아 읽으셔도 감동은 전혀 줄지 않을.. (응?)
고맙습니다. ^^

우연아닌우현 2009-12-2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서 빵!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콘솔에서 제 손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이런 지름신을 불러오시다니요~

활자유랑자 2009-12-29 14:18   좋아요 0 | URL
어떻게, 마지막은 좀 직접 시상하고 싶은데 안될까요? ㅎㅎ
책은 쌓아두기 좋지요.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쿠사노사랑 2009-12-2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머나 참 재기발랄한 시상식이네요. 저는 두 권 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꿋꿋이 살아가렵니다.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세요.

활자유랑자 2009-12-29 14:18   좋아요 0 | URL
오늘은 눈이 십센티나 내린다고 해요. 눈길 조심하시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starla 2009-12-29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긴이의 말' 제목이었던 그 카피 그거 전문 번역가가 쓴 게 아니라 편집자께서 써주셨지만...
아무튼 뿌듯합니다?!

결국 올해는 '쇼를 하라'는 명령에 충실했던 한 해인가요.

아래 리스트들이 다 주옥 같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완벽한 팝 앨범'으로 묘사한 건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표현이네요. '그래, 바로 그 느낌이었어...' 존 호건의 추천사(이거 굉장하죠)에 맞먹는 멋진 카피입니다.

인문 MD님 새해 복 많이 받기를!

활자유랑자 2009-12-29 14:23   좋아요 0 | URL
사실 올해는 쇼가 차고도 또 넘쳐서 (저 요즘 이 말을 너무 자주쓰는데 어쩌죠? ;;)
단호한 설명구와는 달리, 고민이 많았습니다. ㅎㅎ

존 호건의 추천사는 아마 길이길이 기억될듯...

전문 번역가 선생님도 복 많이많이 받으세요.
언제 한 번 시간나시면 글쓰기 특강이라도... -_ㅠ
(편집장의 선택 카피 쓸 때 자꾸 옮긴이의 말을 베끼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좌절)

산체보고파 2009-12-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 이젠 정말로 '슬슬' 정리하려던 2009년 다이어리를 멈칫,하게 하시네요.
이토록 재미있는 책들, 더 채워보렵니다. 아직 이틀하고도 반나절이나 남았거든요~ ㅋ
내년에도 기발한 책등대 되어주시길!

활자유랑자 2009-12-29 14:24   좋아요 0 | URL
책등대라니, 좋은데요? 불을 밝혀야 할 것 같고, 찬바람에도 꿋굿하게 버텨야 할 것 같고. ㅎㅎ
방심하지 마세요. 끝나기 전엔 끝나지 않은 거라는 말도 있으니... (응?)
남은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길!

그림 2009-12-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네요. 읽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기는 시상식이었습니다. ^^ 저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 테이블에 앉아서 박수를 보냅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즐거운 책소개 부탁드려요.*

활자유랑자 2009-12-30 15:42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거기 앉아 계셨군요. :)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하루(春) 2010-01-05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혹시 영화 보셨나요? 저는 얼마 전 dvd 빌려서 봤는데, 아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남자가 이 영화에 나오는데 어찌나 귀엽고 독특하게 생겼던지.. 하하하 영화 짱이에요! 책은 어떨까 궁금한데 영어로 된 책을 읽자니 아직 부담스러워서 계속 고민 중입니다.

활자유랑자 2010-01-07 17:35   좋아요 0 | URL
아직 못봤어요. 일라이저 우드의 안경 쓴 사진이 너무 귀여워서 꼭 한 번 보려고 벼르고 있던 참입니다. 미쿡은 살기에 좀 어떠신가요. 새해가 밝았는데, 이곳은 그냥 똑같네요. ㅋ

닉네임 2010-01-2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뱅이의 역습이란 책은 처음 알았네요.
찾아보니까 작가분이 예전에 티비에서 한번 봤던 분이네요.ㅋ
책은 끌리는데.. 표지가.. 표지가..... /쿨럭

활자유랑자 2010-01-22 23:12   좋아요 0 | URL
아! 그래도 발랄하잖아요. ㅎㅎ
만국의 듣보잡이 궐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ㄷㄷㄷ

9 2010-01-2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D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그리고 리처드 도킨슨 <지상 최대의 쇼> 꼭 읽어보고 싶네요!
"아마도 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인생을 즐기세요"ㅋㅋㅋㅋ
뭔가 속이 다 시원한 :)
그리고 마지막에 여시인에서 빵터졌어요 ㅋㅋ ! 농담이아니였다지만 웃기네용

활자유랑자 2010-01-26 14:44   좋아요 0 | URL
그런데 마음이 놓아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ㅎㅎㅎ
신은 없다지만... 돈도 없어서? ㅜ_ㅜ

소녀시대 2집은 커밍순...

2010-02-04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마도 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인생을 즐기세요. 버스 광고 함 보고 싶었는데.
게다가 도킨스 아저씨가 타고 있잖아요! 우앙ㅋ굿

D가다머냐? 님 ㅎㅎ
관심의 방향이 비슷한 거 같네요.
흐름을 타다 보면 어디선가 만날지도~~

활자유랑자 2010-02-05 18:19   좋아요 0 | URL
한국 반기독교 연합? 저는 정확히 잘 모르는 단체에서도 버스 광고를 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아인슈타인이 그려져 있고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하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라는 문구가.. ㅎㅎ

저도 이제 슬슬 흐름타려 하고 있습니다~ ㅎㅎ

sprout 2010-03-30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장MD님: 활자유랑자님, 책선이 눈길을 끄는군요. 처음부터 줄줄이 제가 읽은(혹은 읽을!) 책들을.. ㅎㅎ 뒤로 가면서 전 풀썩, 먼지 내며 쓰러졌지만 앞에서라도 팡, 팡 터진 게 기분 좋았어요. 도킨스과이신듯 하니 우선 공감. 친구들 사이에 제 별명은 활자중독이지만, 활자유랑자 앞에서 왠지 쿨럭, 갑자기 친구들 앞에서 활자방랑자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집니다. 팝앨범이라는 명언을 2009년에 남기시고, 거북이 해리엇의 마지막 생일상을 보여주시고, 듣보책들을 정리해서 소개해주시고, 기타 앞을 보니 댓글에 꼬박꼬박 답글 남겨주시고... 하여 어쩐지 그냥 반갑습니다.
 

겨울은 책을 쌓는 계절이다. 땔나무를 쌓아두던 옛 사람들처럼, 추위를 견디기 위해. 롤랜드 에머리히의 <투마로우>에도 나오지 않던가. 빙하기를 보내기 가장 좋은 장소는 도서관이다(그러니 책이 나무를 베어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은 사태의 한 측면만 보는 것이다. 정말 빙하기가 닥친다면 인간이 태울 것은 책밖에 없다!). 설령 난방비 대란이, 빙하기가 오지 않아도 좋다. 쌓아올려진 책은 그 자체로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니. 쌓여진 책 사이에선 웃풍도 견딜만 하다. 

당신이 종이책 아닌 '이북' 매니아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이북 단말기에 발열기능이 없다고 해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울에 책을 쌓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 때문이니까. 일 없는 겨울이면 모닥불에 둘러앉아 우습고 슬프고 놀라운 이야기로 추위와 밤을 이겨내던 선인들의 기억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자고로 겨울은 일을 하지 않는 계절이고, 그 시간들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또 퍼졌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고 하니,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은 겨울인 셈이다. 일하는 시간이 아닌 일하지 않는 시간.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따뜻한 이불을 나와, 쌓인 책을 뒤로하고 일터를 찾는다. 뭐, 어쨌거나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책소개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책은 그저 뒤에 쌓아둔 채, 존경해 마지않는 독자제위 여러분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전하려 40km 를 뛰어간 페이디피데스도 아니면서 이렇게. 아직 이 세상은 따뜻한 모양?


* 집나간 개념, 확실하게 찾아 드립니다! <개념어총서 WHAT!>

실용 최우선의 시대(가만보자... 올해가 '실용 2년'이던가?)를 살아가는 요즘. 인문MD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알라딘이야 인문 독자 분들이 계셔주는 까닭에 그나마 다행이지만. 언젠가 윤상이 왜 미국에 계속 안계시고 오셨냐, 라는 질문에 "제가 여기서나 윤상이죠…"라고 대답했듯, 요즘 세상에 인문은 알라딘에서나 인문인 것이다. 말하자면.

문과대를 나온 탓에 주변을 둘러 봐도 별 기술 없는 직장인이 대부분이지만 "요즘 뭐 재밌는 책 없수?"라고 물어 오는 건 대학원 공부하는 후배 뿐이다. 슬픈 일이다. '개발자' 혹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들만이 간간히 일 배우는 데 필요한 책들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올 뿐…

가끔 매맞을 각오를 하고 '인문학을 읽어라', '인문학이 블루오션이다'(?), '인문학을 읽어봐 넌 키가 커지고…'(??) 같은 말들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냉소. 루저남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물론 종종 구원의 눈길도 존재한다.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촉촉한 눈들은 대개 이렇게 되묻곤 한다.

"그래… 나도 읽고 싶어. 근데 뭐부터?"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가만히 그 사람의 성향, 취향 등을 곰곰 따져보고 있자면 그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지금이라면 대답할 수 있다. 조금 늦었지만 이렇게.

"네네, '개념어 총서'를 읽으시면 됩니다. 개념이 군대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 인문학/철학에서도 필수랍니다. 아, 물론 저도 읽어야겠지요. 인문학/철학은 몰라도 일단 회사생활을 하고 있으니… 저는 몰랐는데 윗분들이 싫어하시네요(해맑은 웃음). 혹시 동생이나 후배가 군대 가면 미리 좀 사주세요. PX에는 아직 안파는 모양이더라고요."

이미 '리라이팅', '달인' 등의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들을 선보여왔던 출판사의 책답게 작지만 충실하다. 가격도 6900원 ~ 7900원으로 착하기 그지 없고, 이건 비밀인데, 정가 35,500원이 30,000원으로 출간 된 특가 박스세트는 한정판으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에이, 그럼 낱권으로 구입하면 되지요. 책이 중요하지 가격이 중요하겠어요?

1차로 출간된 다섯 권이 다루고 있는 '개념어'는 각각 재현, 권력, 공, 내재성, 주체다. "아니, 쉬운 책처럼 이야기하더니 무슨 이렇게 어려운 단어들로 책을 만들었어?"라고 혹시나 물을지 모르겠다. 그건 전반적인 학술용어의 번역 문제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답할 성질은 아닌 것 같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재현'이란 개념어가 옆집에 살던 재현이 보다 친근하게 느껴질 거라는 것. 차근차근 개념어를 정복해가다 보면, 어렵게만 보였던 인문학 책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진짜에요.








<재현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채운 님의 동영상 인터뷰를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 책장에 꽂지 않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콜렉션 세트>


총 제작기간 5년, 제작비 4억에 원고지 3만 6천여매의 명실상부한 '인문학의 블록버스터' 기획을 보며 드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헉, 갖, 갖고 싶다"와 "근데 다 읽을 수 있을까?"가 그것.

기존의 <프로이트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카잔차키스 전집>에서 좀 더 진일보한 디자인이 갖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고지 3만 6천여매 = 책으로 9,300여 페이지 = 25권'을 앞에 두고 두려움이 드는 것 또한 당연지사. (더군다나 소설은 한 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난방비에 겨울옷 장만에 각종 연말 술자리 및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에 얇아진 지갑을 둘고 울상짓는 당신. 우리 모두는 겨울에도 도리 없이 먹이를 구하러 일터를 어슬렁거리는 직장인일 뿐 아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에코와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렇게 멋진 책을 어찌 곁에 두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에코와 함께라면 난방비 걱정도(책이 많은 곳에 있으면 빙하기가 와도 끄떡 없다는 얘기를 위에서 했던가?), 겨울옷 걱정도 뚝인 것이다! (외출을 자제하고 이불 속에 누워 한 권, 한 권 에코를 읽는 기쁨이란…)

물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가슴엔 삼천원쯤, 호주머니 속엔 자신만의 도덕률쯤 갖고 있게 마련. 그 중에는 분명 '읽지 않은 책이 이렇게 넘치는 상황에서 더 사들이는 것은 죄악이다!'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도덕률은 아주 꼬깃꼬깃하게 이미 구겨져 있어 세심하게 펴야만 하겠지만… 그럼에도 읽지 않은 책을 쌓아두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여전히 존재하는 당신을 위한 에코 박사님의 일화.

수많은 장서로 가득 찬 유명한 '에코의 서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와, 시뇨레 에코 박사님! 정말 대단한 서재군요. 그런데 이 중에서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 그 질문은 물론 순수한 경탄이 아닌, 압도적으로 보이는 책에, 지식에 대한 두려움이다. 에코 박사는 단지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아니요. 저 가운데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이미 읽은 책을 무엇 하러 여기에 놔두겠어요?”

우리가 이미 읽은 책으로 가득한 서재는 '나 이 정도 읽었네'의 과시일 뿐이다. 당신이 그것을 건성건성 읽었는지, 훌훌 읽었는지, 전혀 다르게 읽었는지,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그렇기에 당신 자신을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아직 읽지 않은 책, 그러나 읽으려는 책이다. 물론 움베르토 에코를 읽으려하는 당신은, 나쁜 사람일리 없는 것이다.

* 에코 박사님이 보고 계셔 (부담 갖진 마세요…)


























 
* 시리즈만 책이냐! 잘 빠진 단행본 한 권, 백 시리즈 안부럽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조금 미안한, 한 권 한 권 마다 하고 싶은/해야 할 이야기가 넘치는 책들. 하지만 어쩌겠어요. 시간은 짧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걸. 사람의 목숨은 물론 소중하지만, 타이타닉 호가 침몰 할 때에도 구명선에 모두 다 태울 수는 없었잖아요?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이 없지만, 품위 있는 인문MD라면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말해야겠다.

"여러분, 여러분을 '책탑' 꼭대기에 쌓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저라고 따뜻한 방구들에 누워 커피나 홀짝이면서 당장 읽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습니까"

다만 눈밝은 독자들이 알아봐 주시길.
오늘은 여기까지.


* 고맙습니다. 이번 주는 만만선입니다!

댓글(15) 먼댓글(1)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쟌느의 생각
    from avecjang's me2DAY 2009-11-28 13:39 
    남은 결 동안 새책 사지 말고, 쌓인 책 읽어 치우기로 먹은 맘을 든든히 다져주는 글.
 
 
무해한모리군 2009-11-1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팬이예요라고 댓글을 달고 싶어요.
그런데 왜 자유연상법에 따라 이번엔 안쓰신거예요?
전 그게 더 좋은데 ㅎ

활자유랑자 2009-11-20 00:19   좋아요 0 | URL
이것 참, 엠디를 설레게 하는 리플이군요. 송구스럽습니다.
자유연상법은 겨울에 쓸 수가 없어요. 뇌수가 얼어서... 죄송합니다.
실은 뉴런 문제, 정확히는 시냅스 문제인데 전문적인 얘기니까 다음 기회에...
전 아마 안되겠죠

무해한모리군 2009-11-20 19:10   좋아요 0 | URL
그런 사연이..
녹이시게 비니라도 알라딘으로 하나 붙여야겠네요 ㅎㅎㅎ

외국소설/예술MD 2009-11-21 02:29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좀..

활자유랑자 2009-11-23 00:51   좋아요 0 | URL
모두 감사 드립니다.
FTA반대휘모리님 / 기프티콘으로 보내주세요...
알라딘예술역사MD님 / 여기서 이러시다 불려 가세요...

최상철 2009-11-2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주신 집나간 개념을 찾으려고 하는데, 진짜 돌아올까요? ㅎㅎ;;
믿음이~~~

활자유랑자 2009-11-23 00: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상철군.
이 아저씨가 상철군 독후감을 처음 본 건 상철군이 오봉초4학년에 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아마 놀랐겠죠 지금? 실은, 그땐 아저씨가 어린이MD였거든요. 그리고 상철군 서재이름은 "오봉초4년최상철"이었잖아요. 아주 옛날일이죠. 그땐 상철군도 어린이였는데,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잖아요? 아저씨는 중학생이 되는 대신 인문MD가 된 거예요. 시간이 참 빠르죠. 앞으로 상철군이 세상을 살면서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들을 말이 바로 이 시간 참 빠르단 말일 거예요.

상철군이 쓴 리뷰 중에서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글은 <원숭이의 하루>에 쓴 리뷰에요.
상철군이 초등4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제 2학년이 되죠?)이 될 때까지 아저씨가 이 일로 밥을 벌어 먹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닿은 리뷰 두 개 중 하나에요. 다른 하나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란 책에 어떤 아저씨가 쓴 "책을 읽다가 아래의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그 다음날 공무원을 그만 두었다."라는 리뷰인데... 이 얘긴 한 15년 후에 하도록 해요.

상철군이 쓴 <원숭이의 하루>라는 리뷰는 이렇게 시작했죠.

"원숭이는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 오줌을 싸고 아침식사를 한 후 다른
친구들끼리 이를 서로 뽑아주며 개구리 던지기 놀이를 한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한 후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원숭이들이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 오줌을 싸고, 아침식사를 한 후 이를 뽑아주며 개구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잠이 드는 것- 이 모두가 좋지만 특히 '반복하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 좋아요.

"이런 원숭이들의 생활에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있다. 바로 2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바다거북 할아버지다. 바다거북 할아버지는 전
세계를 여행하므로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원숭이에게 들려준 후
떠난다.

이번에 찾아온 거북 할아버지는 아주 큰 배와 머리를 부딪쳐 원숭이
섬에 오자마자 곤히 쉬었다. 거북 할아버지가 간 후에 원숭이들은
다시 평소와 똑같은 생활로 돌아간다."

이 부분은 참 슬펐어요. 2년 만에 한 번 오는 바다거북 할아버지를 그렇게 기다렸는데,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갖고 오실지 손을 꼽아 기다렸을텐데, 그냥 잠만 주무시다니. 물론 거북 할아버지의 사연도 딱해요. 연세도 많으신 분이 머리를 다치시다니, 그래도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으셨나 봐요. 다음에 할아버지가 오려면 2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럼 상철군은 고등학생이 되겠네요) 원숭이들은 도리 없이 다시 일상으로. 하지만 역시 제일 슬픈 부분은 마지막이었어요.

"이 원숭이들은 우리 인간들과 매우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인간들도
언제나 일을 위해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매번
전혀 새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원숭이들이 바다거북 할아버지가 오면 매우 기뻐하듯이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일이 찾아온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색다른 일의 필요성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색다른 일의 필요성을 알게' 된 것도 무척 놀라운 일이지만, "언제나 일을 '위해'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는 부분은 특히. 보통 아저씨 아줌마들은 "생활을 '위해'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색다른 일은 정말 중요하죠. 바다거북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상철군이 우연히 이렇게 아저씨의 서재에 찾아오니 기쁜 것처럼요. 기억나요? 그때 '이주의 마이리뷰'에 아저씨가 추천했는데... 뭐 이제 지난 일이죠.

여전히 책 잘 읽고,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집나간 개념은... 아직 안찾아도 될 거예요. 보통 개념이 집을 나가는 건 고등학교 무렵이거든요. 그러니까 2년 후에, 다음 번 바다거북 할아버지가 올 때, 그 때 찾아도 늦지 않아요. (그리고 믿음이란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아저씨가 괜히 말이 길었죠. 일을 위해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자꾸 쓸데 없는 말을 하게 되네요. 15년 후 쯤에는 아마 아저씨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럼 안녕.

2010-01-06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10-01-07 17:45   좋아요 0 | URL
ㅎㅎ 좋은 걸요 저는. 고맙습니다.

이지알로 2009-11-2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인문MD를 알게 된지 3개월도 안되었는데...이제 완전 팬입니다...그대는 나만의 북돌!!!(북+아이돌???)...개인적으로 ㄱ린비 책들을 좋아하는데 위의 개념시리즈도 마구 당기네요~~

활자유랑자 2009-11-24 18:53   좋아요 0 | URL
북... 북돌이라니요 ㅜㅜ
저는 차라리 '복돌이' 타입이죠.
ㄱ린비 ㅋ... 개념어총서 재미있어요!

뒷북소녀 2009-11-2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읽은 책들도 많지만, 표지 속에 콕 박혀 있는 에코의 얼굴을 보니 다시 또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활자유랑자 2009-11-24 18:55   좋아요 0 | URL
저는 상단 좌측에서 세 번째 에코가 제일 좋아요. 몇 명쯤 묻어버리실 것 같은 ㄷㄷㄷ
중단 우측에서 네 번째 에코님도 무심한듯 시크하시죠! ㅎㅎ

섬연라라 2009-11-2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쩜 움베르토 에코 세트 장바구니에 넣을 뻔 했어요. - _ -a
인문MD님 글 넋 놓고 읽으면 안되겠음... ;ㅁ;

활자유랑자 2009-11-26 20:07   좋아요 0 | URL
ㅎㅎ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o;
 















우석훈이 돌아왔다. 이미 인터뷰까지 진행한 마당에 (인터뷰 보러가기) 이렇게 서두를 떼는 일이 좀 겸연쩍긴 하지만. 허나 지난 인터뷰엔 '생태 경제학 시리즈'를 받아보지 못했던 탓에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만 가득하니, 좀 쑥스러워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우석훈이 돌아왔다, 고.

<생태요괴전>과 <생태페다고지>의 '생태경제학 시리즈'는 말하자면 우석훈의 '전공 과목'이다. 실제 파리 유학시절 전공했던 분야인 동시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시리즈란 말. 야심차게 동시출간한 것으로 모자라 한 권은 청소년용, 한 권은 성인용(?)으로 나누어 낸 것만 봐도 파이팅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원래 계획은 4권 동시출간에 박스세트를 만드는 것이었다는 뒷 이야기는 더더욱…

드라큘라전, 좀비전, 프랑켄슈타인전, 생태요괴전, 동방불패전, 마시멜로전, 여고괴담전, 개발요괴전 등으로 나누어진 각 장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사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생태요괴전>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그만의 개념화와 스토리텔링. 논란 혹은 호불호는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 우석훈은 단연 발군이다. ('요괴전'이라는 말이 들어간 사회과학 서적을 내 MD 경력에서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싶다)

<생태페다고지>는 제목 그대로 '생태교육학'이다. 꼭 선생님이 아니어도 좋다. 부모 혹은 언젠가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선남선녀(?) 하다못해 교회 중등부 선생님이라도. 이 사회의 교육이, 그리하여 미래가 걱정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장 흐뭇한 장면은 지금 당장 이 책을 구입해 모두 읽고, 한 권은 아이에게/제자에게/후배에게/동생에게 건네주는 모습이겠지만… (땡스투는 필수…)

반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한 마디로 <88만원 세대 : 실천편>이라 할 수 있겠다. 잔뜩 쫄아있는 우리 20대들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거는 우석훈의 메시지는 사실 단순하다. 괜찮다고,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쫄지 말라고, 죽지 않는다고.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너희들이 일단 모여서 무엇이든 함께 한다면, 새로운 상상력들이 터져 나올 거라고. 그때 이미 변화는 시작된 거라고.

이거 뭐, 다같이 책상 위로 올라가서 "오, 선장님-" 이라도 외쳐야 하는 걸까?

물론 그렇게 냉소적일 필요는 없겠다. 가뜩이나 쌀쌀한 가을인데. 지난 인터뷰에서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맡은 인터뷰어는,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아무런 생산수단도 갖지 못한 20대들이 단순히 함께 모인다 해도, 결국 '게토'랑 뭐가 다른가요?" 그는 대답한다. "그것이 게토라도, 20대들만의 게토를 만들면, 그곳에서는 분명히 새로운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그리하여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간혹 이렇게 되묻는 이들이 있다. "무슨 말 하는진 알겠다. 다 좋은 말이다. 그래서 당신의 대안은?" 그건 참 한심한 일인데, '기계장치의 신'이 대안을 주던 시기는 이미 그리스 시대에 끝나지 않았던가? ('유행하던 시기'라고 정정해야겠다) 대안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적어도 이들은 책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시크한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아무리 댄디하게 차려입고 버스를 타도 요금은 내야하는 것처럼.

그래도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실천방안을 하나 소개하자면 그것은 바로 '진'이다. 다른 말로는'마을'. 진짜로 시골에 삼삼오오 모여 농사나 지으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동체 의식, 그러니까 '연대'다. 아… 이런 케케묵은 이야기!

그렇다. 그것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맞다. 잘개 쪼개진 욕망의 조각들에 휘감겨 살아가는 20대들은 이기적이고, 이 사회의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지 모른다. 결국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하는 것이다. 경제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네 친구도 먼 미래의 적일 뿐야, 라고 언젠가 김종서는 노래했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찍이 홉스는 자연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보았다. (이 부분은 분명 흥미로운데, 홉스의 주장은 그것의 타계를 위한 국가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21세기, 우리에겐 분명히 국가라는 것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물론이고, 자연 상태에도 협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온통 이기적인 생물들로 가득해보이는(뜨끔!) 지구상에서,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해답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고전 <협력의 진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 뒤늦게 번역 된 <협력의 진화>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제목 그대로, 자연 상태에서의 협력의 진화이다. 어떻게? 게임이론을 통해. 그렇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의 목표 또한 대립과 경쟁 상황에서의 필승전략 수립만은 아닌 것.

상황은 간단하다. 흔히 알고 있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 두 명의 죄수 A, B가 잡혀 각각 따로따로 심문을 받는 상황이다. A와 B 모두 협력해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둘은 경범죄로 1년 미만의 형을 살고, A와 B가 각각 상대방을 배신하면 둘 다 3년의 형을 산다. 하지만 A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동안에 B가 배신하고 A의 죄를 이야기하면, A 혼자 죄를 뒤집어 써 5년 형을 살고 B는 석방된다.

이것이 딜레마인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상대가 죄를 뒤집어 쓰고 나는 석방되는 것. 그렇다면 나는 배신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상대방도 배신을 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렇다면 3년을 살게 되고, 3년 보다는 협력해서 둘 다 1년 형을 받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 때 상대방이 배신한다면 나만 5년 형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배반.

협력의 경우 1년을 살거나(상대도 협력), 5년을 살아야 하지만(상대가 배반) 배반의 경우 0년을 살거나(상대는 협력), 3년을 살면(상대도 배반)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이론이란 결국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요즘들어 우리사회에 게임이론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런 심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로버트 액슬로드는 프레임을 바꾼다. 단발로 그치는 죄수의 딜레마가 아닌,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나를 배신/협력했던 저 친구와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반복해서. 직장동료와 애인과 거래처와 동네사람들과 만나듯이, 그렇게.

그리하여 그는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를 바탕으로 한 대회를 열고, 세계 각국의 게임이론 전문가들을 초대한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게임이론 전문가들은 나름의 전략/규칙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을 출품하고, 프로그램들은 돌아가며 각각 1:1 로 일정한 수의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다. A와 B가 100게임, C와 D가 100게임, 다시 A와 C가 100게임, B와 D가 100게임 이렇게 A, B, C, D, E… 이때 A와 B가 협력하면 3점, A와 B가 서로 배반하면 1점, A가 협력하고 B가 배반하면 각각 0점과 5점을 주는 것이다.

다양한 전략들이 출품 되었다. 무조건 협력만 하기도 하고 무조건 배반만 하기도 하고, 협력하는 척 하다가 가끔씩 배반을 하기도 하며 배반으로 상대를 떠본 후 상대의 반응에 따라 대응하기도 하고, 일단 협력으로 시작하지만 상대가 배반하면 끝까지 배반으로 보복하기도 하는 각양각색의 프로그램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전략이 우승을 차지했을까? 영리하게 상대의 등을 쳐먹는 전략이 아무래도 우승을 차지했을 것 같다. 왜, 주변에도 그런 사람 있잖는가. 친한척 하며 쏙쏙 빼먹고 정작 필요할 때는 입을 닦아 버리는 사람. 어른들 말로도 그런 놈들이 잘먹고 잘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놀랍게도

우승을 차지한 것은 '팃포탯'이라는 전략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Tit for Tat. 즉 팃에는 탯, 탯에는 팃.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후손인 셈이다. 일단 협력으로 시작한 팃포탯은, 상대가 협력하는 한 계속해서 협력한다. 하지만 상대가 배반하면, 그 즉시 다음 게임에서 배반하여 복수한 뒤, 일단 복수를 했으니 다시 협력한다. 상대가 계속해서 협력한다면 팃포탯도 지속적인 협력을, 계속해서 배반한다면 끝없는 배반의 메아리가 울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단발적 죄수의 딜레마 상황과 다른 것은 협력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협력은 3점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배신하면 5점이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무조건 협력만 하는 바보는 아니었고, 따라서 적절히 협력할 줄 모르는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점수는 상호배반인 1점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끔 봉을 만나(?) 5점의 점수를 적립해 놓아도, 그 외에는 줄곧 1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많은 협력을 통해 3점을 쌓아놓은 신사적인 프로그램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협력의 중요성을 일단 체크~
(여기에 진화의 개념이 들어가면, 결국 팃포탯의 성공적인 생존전략이 자연선택을 통해 확산되고 배반적인 규칙들은 떨어지게 된다. 실은 생태학적/생물학적 모델을 사용해 이것을 설명하는 부분이 책의 백미다. 물론 백미를 여기에 옮길 순 없다. 저도 땅파서 책 파는 건 아니니까요… 쿨럭)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 중 하나는 '안정성'이다. 안정성이란, 어떤 한 '사회'가 한 전략을 구사하는 개체들로 가득차 있는 상황에서, 다른 전략을 가진 개체가 그 사회를 침투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근데 나는 지금 책을 전부 요약하고 있는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여러 전략 중 총체적 안정성을 지닌 전략은 두 개 뿐이다. 바로 팃포탯과 언제나 배반을 선택하는 '올디'.

팃포탯이 99개 있는 사회에 다른 규칙을 가진 프로그램이 들어왔다고 생각해보라. 그 친구가 충분히 협조적이지 않다면, 그래서 시작부터 배반을 구사한다면 처음에는 5점을 가져갈 것이다. 각각의 개체와 10게임 씩 진행한다고 했을 때, 그 다음 게임에서 그가 얻을 수 있는 점수는 1점이다. 10게임이 끝난 후 그가 얻는 점수는 14점. 그와 경기했던 팃포탯은 9점을 얻는다.

그리하여 그가 나머지 98개의 팃포탯과 각 10게임 씩의 모든 경기를 끝낸 후 얻는 점수는 14*99 = 1386점이다. 반면 팃포탯은 그와의 경기에서 9점을 얻지만, 나머지 98개의 팃포탯과의 경기에서는 30점을 얻으므로, 그들이 기록하는 점수는 9+(98*30) = 2949점인 것이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비신사적인 전략은 도태된다(협력적인 전략으로 바꾼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배반하는 '올디'의 사회는 어떻게 총체적 안정성을 갖는가? 마찬가지로 올디가 99개 있는 사회에 팃포탯이 들어갔다. 올디는 첫게임 부터 배반하고, 팃포탯은 협력한다. 마찬가지로 10게임 씩 진행한다고 했을 때, 올디가 얻는 것은 5점 + (1점*9게임) = 14점이다. 반면 팃포탯이 얻는 것은 0점 + (1점*9게임) = 9점이다. 올디끼리 게임했을 때 그들은 모두 1점 * 10게임 = 10점을 얻지만, 팃포탯은 항상 9점 밖에 받을 수 없으므로, 그 사회에서 팃포탯은 도태된다.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손 좀 들어보실래요?)

지금 우리사회가, 설령 '올디'라고 해보자. 그래서 사회의 '뉴비'(* 뉴비지터 : 신참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인 우리 20대들은 선택해야만 한다. 위에서도 살펴 보았듯, 올디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다른 전략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88만원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도 올디가 되어버리자니, 너무 서글프다. 그래서 바로 케케묵은 연대가 중요한 것이다.

총체적 안정성을 지닌 이기적 배반자들의 집합체인 '올디 사회;라고 할 지라도, 5%의 팃포탯 무리가 침투하면, 도태되지 않은 채 자리를 잡고 동등하게 게임할 수 있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고? 95개의 올디가 있는 사회에 5개의 팃포탯이 들어간다고 하자. 하나의 올디가 얻을 수 있는 점수는 (14*5) + (9*94) = 916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팃포탯이 얻을 수 있는 점수는? (30*4) + (9*95) =  975 점이다! 만세! (* 팃포탯 끼리는 매번 협력 3점*10게임*4개체 이고 올디와는 10게임에 9점*95개체)  

* 10/22 추가 : 올디가 얻을 수 있는 점수는 모딕 님이 지적해주신 대로 (14*5) + (10*94) = 1010 점입니다. (본문과는 반복되는 게임의 수 등 변수의 차이가 있어서 이 경우에 팃포탯 5%는 약간 부족하네요;) 아무튼 기조는 마찬가지라 수정은 하지 않고 오류만 밝힙니다.

그렇다. 액슬로드가 말하는 것은, 우석훈이 20대들에게 말하는 것은, 팃포탯의 연대를 만들라는 것이다. 괜히 쫄지말고, 너도 같은 '올디'가 되지 말고, 같은 '팃포탯' 친구들과 뭉쳐서, 이 사회에 새로운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햐나고 물을 필요 없이. 이미 게임이론으로 Q.E.D.- 증명 끝! 했듯이.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고급영어로 표현하자면-

"Are you Tit for Tat? I am Tit for Tat, too! Let's make some fun!"

(죄송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아니라 MD인 거죠…)

핵심요약정리에 익숙한 20대 동지 여러분들을 위해, 이 긴 페이퍼를 이 만큼 읽어주신 데 대한 보답으로 팃 포 탯 전략의 핵심을 마지막으로 공개.

1. 질투하지 마라
2. 먼저 배반하지 마라
3. 협력이든 배반이든 그대로 되갚아라
4. 너무 영악하게 굴지 마라
















협력과 협상, 설득에 대한 게임이론이 더 궁금하다면 <가위 바위 보>를 읽으면 좋겠다. 액슬로드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 받아, 좀 더 다양한 사례에 접목시킨 책이라고 하겠다.

팃포탯 전략에는 사과가 필요 없지만(절대 먼저 배반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인간이기에 많은 실수를 하게 마련. <사과 솔루션>은 바로 그때 필요한 책이다. '갈등과 위기를 해소하는 윈-윈 소통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한 마디로 사과 매뉴얼이다! (사과에도 매뉴얼이 필요하다! 좀 더 말랑말랑한 사과 매뉴얼이 필요하신 분은 이기호 연재소설 <사과는 잘해요> 참고…)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사과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워킹 푸어>. 제목 그대로 열심히 일하지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즉,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협력이고, 우리가 마침내 협력해서 목소리를 낼 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어쩐지 평소와도 다르게 잔뜩 '이론적인' 이야기를 써버리고 말았는데 사실 이 자리를 위해 준비되었던 것은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였다. 그 페이퍼의 첫 머리에서 인용될 예정이었던 것은 바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한 대목.

오랫동안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은 어떤 도취감에 휩싸인다.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걷는 것 자체가 점점 더 큰 추력을 얻게 된다. 그에 반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상점, 자그마한 바나 웃음을 던지는 여자들의 유혹의 힘은 점점 더 작아지며, 다음 골목, 저 멀리 으슥하게 우거진 나뭇잎들, 어떤 거리의 이름 등의 자력에는 점점 더 저항하기 힘들게 된다.

곧 배가 고파온다. 그러나 허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수백 가지의 가능성이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금욕적인 동물처럼 그는 미지의 구역을 배회하다가 결국 지칠 대로 지쳐 자기 방으로, 그의 방이지만 왠지 서먹서먹하고 그를 차갑게 맞이하는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중에서

서먹서먹하고 차갑게 맞이하는 방에서, 이렇게. 끝.


* 다음 페이퍼의 주제는 '근대 문학의 종언 - 한국 문학에 더이상 대작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 스티븐 J. 굴드 이론을 중심으로'가 될 예정이었지만 예고 없이 바뀔 예정입니다.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11) 먼댓글(2)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차라의 생각
    from tzara's me2DAY 2009-10-14 09:28 
    '시크한 당신, 게임이론을 읽어라! 혁명 혹은 협력에 대하여' http://ow.ly/ugw4
  2. 기이한 결탁의 고리 끊기 : 「생태요괴전」 중에서
    from 세상을 보는 검은 눈, Skyjet 2009-11-20 14:21 
    외로운 엄마와 점점 영악해진 딸의 관계, 근본적으로 이 기이한 결탁의 고리가 끊어져야 비로소 둘 다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편이 사회적으로도 건전하다. 그래야 딸들도 스스로 한 인격체가 되어, 돈의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기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엄마는 그럴 수가 없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외로운 엄마는 더욱더 딸에게 집착하고, 딸은 엄마와의 '스폰'..
 
 
로쟈 2009-10-1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 문학의 종언 - 한국 문학에 더이상 대작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예정대로 다뤄주시면 좋겠는데요.^^

활자유랑자 2009-10-21 18:24   좋아요 0 | URL
하하... 언젠가 그런 걸 쓸 공력이 될 날이... 오겠죠? ; 로쟈 님이 다뤄주세요~ :)

freesolo 2009-10-2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생님 책을 읽고 있지만 팃포탯 이론을 들으니 더 귀에 들어오는군요. 불쌍한 어린것들 ㅠ.ㅠ

활자유랑자 2009-10-21 18:24   좋아요 0 | URL
네. 마침 같은 시기에 나왔는데 읽다보니 두 권이 자연스레 겹치더라고요. ㅜ.ㅜ

모닥 2009-10-2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5개의 올디가 있는 사회에 5개의 팃포탯이 들어간다고 하자. 하나의 올디가 얻을 수 있는 점수는 (14*5) + (9*94) = 916 점이다.
올디끼리 게임했을때는 10점이므로 (14*5) + (10*94) = 1010점 아닌가요?

활자유랑자 2009-10-22 14:5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계산에 오류가 있었어요. -_-; (의도한 건 아닙니다)
좋은 지적 감사 드립니다.

alice1101 2009-11-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11-04 18:11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

리치킹 2010-01-0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10-01-07 17:45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새해에는 tit for tat

hsnskifk 2012-03-0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팃포탯이 가득한 사회로..ㅋ 재밌게 읽었어요 꼭 소개해주신 다은 책들도 읽어봐야겠네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빛이 있으라 하시메 빛이 생기고, 빛과 어둠을 나누메 낮과 밤이 되었다. 비비디바비디부, 라고 덧붙였는지 기록은 말해주지 않는다. ™ 등록이라도 해두시지… 여하간 성경의 '창세'가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TV를 통해 쏜 눈빛 만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 있는 마당에, 구태여 신이 입을 벌려 창조를 명할 이유가 뭔가? 말의 권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 역시 말을 한다. 신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성. 벌이 아무리 화려하고 정교한 춤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돌고래가 초음파로 낄낄 대며 농담을 해도, 그것은 언어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신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라는 노래가사는 심각한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말은 "빛이 생겨라!" / "빛이 있으라" / "Let there be light" / "光よ. あれ" 정도 되겠다. 하지만 그것은 신의 말씀. 그렇다면, 처음으로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무얼까? 성경에 기록된 아담 최초의 말은 이브를 향해 내뱉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셰익스피어의 조상 답다!)는 말이지만, 이미 아부지 하나님 손을 잡고 날짐승,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 주었으므로 첫 말은 아니다.

난생 처음 언어를 가진 생명이 탄생했다면,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게는 옹알이일 뿐이라도, 인류에게는 기나긴 수다 정도는 될 터. 그런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성경에 차마 기록할 수 없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방송에서라면 '삑' 처리를 했을, "아놔-" 같은 추임새가 동반되는, 인류가 오늘까지도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그런 말.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도 나오지 않던가. 묵시록을 걸어 창세기로 나아가는 부자의 여정에서.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뭐예요?
남자는 피가 섞인 가래를 길에 뱉어(삑삑삑)냈다. (삑삑) 오늘 아침에 (삑삑) 잠자리에서 일어난 거. (삑삑삑!)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다윈에 따르면 우리의 유전적 형제는 유인원, 보노보나 침팬지인데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 없음에도 인간 자식들만 제 잘났다고 떠들어 대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진화의 갈림길에서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 유인원 형제들과 인류. 그렇다면 과연 어느 순간에 인간은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믿어지는 '언어 능력'을 장착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어떻게 '진화'했을까? 다시 말해, 최초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언어 없이 생각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식능력과 언어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진화의 어느 과정에서 최초로 언어 능력을 획득한 친구들을. 무수한 이미지의 파편으로 이루어졌었을 그의 사고가, 오늘 우리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그 친구들은 서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을까? 언어능력이 없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금쯤 무섭고, 어리둥절하고, 의기양양하지만 초라한,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 되는데.

이것은 분명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언어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금지 되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인 촘스키 할아버지께서 '보편문법'이라는 한 단어로("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며, 그 능력은 보편문법과 함께 인간 유전자에 내장되어 있다") 모든 상황을 일축시켜 버리셨으니, 일종의 불문율이 될 수밖에. 말의 권능이란 때론 얼마나 강력한지!

하지만 인지과학자, 생물학자, 유전학자,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이제 언어의 진화는 탐구 가능한 학문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매력적인 연구 분야로 떠올랐고 한다. <언어의 진화>는 바로 그런 역사를, 그 과정 속에서 서로 대립해 온 여러 주장을, 그리고 그것들이 각각 모이고 다시 나뉘며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의 지평을 보여준다. 아주 쉽고, 흥미롭게.

직접 요리한 음식이 맛이 없듯, 내가 쓴 '책소개'는 언제나 재미 없지만, 이 글만 보고 <언어의 진화>를 포기하면 속상하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언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에 다름 아니고,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저 유명한 명제처럼, 인간과 함께 언어 역시 진화해 왔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서사적 구조들은 '언어의 진화'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이란 말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을 절로 떨리게 만드는.

혹시라도 '인간과 언어의 제문제'에 관심있는 당신을 위해 <언어의 진화>와 더불어 함께 바벨탑을 쌓을 몇 권의 책을 추천하자면
















* 바벨탑에 깔려 분열증세를 보인다 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만, 모쪼록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맨날 듣는 소리가 페이퍼 길게 쓰지 말라는 말이지만, 그래도 지젝 책은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실은, 할 말이 별로 많진 않다. 군침은 돌지만 손도 못대고 입맛만 다시는 참이기 때문인데, 첫머리에 써있는 지젝의 말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언젠가 내가 신나게 떠들고 있던 방 안에서 바디우의
(설상가상, 내가 빌려 준) 핸드폰 벨이 울린 적이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끄는 대신 공손하게 내 이야기를 끊고는
통화음이 잘 안 들린다며 좀 조용히 이야기해 줄 수 없냐고 했다.
이것이 진실한 우정의 행위가 아니라면 나는 뭐가 우정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바디우에게 헌사한다.

* 오른쪽에 있는 작은 표지는 최근에 출간된 바디우 입문서. (바디우 자신이 공인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함께 읽으면 더욱 좋아요♥


* 어느덧 가을, 어떤 책들 읽으시나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10) 먼댓글(1)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차라의 생각
    from tzara's me2DAY 2009-09-09 18:35 
    '가을, 당신이 읽어야 할 최고의 인문교양서 <언어의 진화>' http://ow.ly/oBYl
 
 
2009-09-10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5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1 2009-09-1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문MD님의 길게 쓴 페이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지시가 있다는게 안타깝군요. 말씀하신 것 처럼 독서의 계절입니다. 눈 앞에 수 많은 책을 쌓아두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또한 가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람이 너무 좋아져서요.
추천해 주신 책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읽어 보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좋은 하루 되세요.

활자유랑자 2009-09-15 15:43   좋아요 0 | URL
하핫. 그런 '지시'가 있었던 것까지는 아니에요. :)
저도 요즘 정말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어서 죽겠어요 ㅜㅜ

뒷북소녀 2009-09-1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짧아지는 인문MD의 페이퍼가 아쉬운걸요!^^
문학MD가 가을 타는 사람에게 추천한 책과 함께 꼭 읽어볼게요. :)

활자유랑자 2009-09-18 00:57   좋아요 0 | URL
언젠가 꼭 스크롤바가 깨알 같아질 장문의 대하 페이퍼를...
가을 타는 사람이 직접 추천한 책이니까 틀림 없겠죠. :)

황주희 2009-09-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이퍼를 보면 그 사람의 70%는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지요.
긴 페이퍼이지만 재미있으므로 지지하지요.
장장익선(長長益善) 흐흐

활자유랑자 2009-09-18 00:59   좋아요 0 | URL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 따르면 100% 라던데...
아무래도 장황한 성격이라 장황하게 밖에는 설명이 안되나봐요. T.T

홍대 ㄱㄱ? 2009-09-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아주 귀엽네요.
홍대 ㄱㄱ?

활자유랑자 2009-09-28 16:56   좋아요 0 | URL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로스 클라반 : 오늘날 우리의 문명과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커트 보네거트 : 먼저, 왁자지껄한 텔레비전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중요해. 텔레비전에서 문제랍시고 떠들어 대는 것들, 마치 우리가 반드시 걱정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일들에서. 문학이야말로 관객들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 형식이 아닌가. 우리들은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대단히 잘 읽을 수 있어야하네. 아이러니를 느낄 정도로 읽어야 한단 말일세!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숨은 뜻까지 알아챌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박식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기를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란 말일세. 내가 <타임퀘이크>에서 말한 것처럼, 읽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사실 그건 불가능해. 문학이란 고작 26개의 표음 문자와, 열 개의 아라비안 숫자, 여덟 개 정도의 구두점을 독특하게 일렬로 줄 세우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물론 당신들처럼 인쇄된 책을 보고 머릿속으로 워털루 전쟁을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for God's sake!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미국인 중 1400만 명은 운전면허시험 원서를 작성할 만큼도 읽지 못한다네. 그러니 우리의 관객층은 넓을 수가 없어. 우리가 필요한 건 꽤나 숙달된 관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숙달된 관객이니... (관객들에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만큼 배워줘서 고맙소. [웃음]

- 커트 보네거트, 대담집 <Like shaking hands with God> 중에서
(* 주의 : 이 글은 긴데다 미괄식이므로 알라딘 관계자 혹은 출판 관계자 분들은 중반 이후부터 읽어주시기 바람)


팔자에 없는 북한산 야간산행(이라고 쓰고 행군이라고 읽는다)을 마치고 맞은 토요일 오후를 통째로 '쇼 음악*심', '스타골*벨 - 아이돌 특집', '무한*전 - 서바이벌 특집'을 보며 날려버린 (소위) 인문MD가 이런 말을 인용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입사 3주년이 되는 날. 

사실 책에서 면제(면'죄)되어 맘껏 TV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금요일 밤 해치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 덕이다. 왜,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는 것도 있지 않는가. '막장'을 파는 광부들 처럼 헤드랜턴을 켜고, 저녁 8시에서 새벽 3시까지 산을 탔는데, TV 좀 보는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생각외로. 인간은 때론 아주 깊고, 어두운 일들을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니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실은 8부 능선을 넘을 때 즈음에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나나나 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 한참을 흥얼거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인터*크 CM송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 자리에 부장님이 계셨다는 얘기를 했던가?)

바로 그 산, 새벽 한 시, 저 위 9부 능선에서, 누군가, 외쳤다. 

"허경영!"
뭐라고? 설마…

귀신이라도 만난듯 긴장한 내 달팽이관 속으로 파도처럼 쏟아지는 그 이름. 허경영경영경영 허경영경영경영… 아, 누군가 '시험합격을 / 살이 빠지기를 / 키가 크기를 / 예뻐지기를'(허경영 디지털 싱글 'Call Me' 참고) 그토록 바라는 것인가 싶어 순간 손발이 오그라들던 새벽 한 시, 북한산에서, 나는, 물었다.

어째서 삶은 이토록, 인간을 힘들게 하는지. 과연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집에 돌아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잠을 청하고 맞은 오후, 이미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LG의 경기를 돌려 보며, 1사 만루에 타석에 등장한 페타지니를 향해 속절 없이 "허경영!"을 외칠 뿐. 바로 그 순간 페타지니의 배트에 맞은 공이 담장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모습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도,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된 것을 확인하며 씁쓸하게 웃을 뿐. 그럴 뿐.

인생이라니, 세상에.


오래된 농담이에요. 음, 리조트에 할머니 둘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거죠.

"세상에, 여기 음식은 정말 끔찍해!"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말하기를, "그래 맞아, 게다가... 양까지 적어!"

그게 바로 내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에요. 외로움과 비참함,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차있는 데다가…
그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나버리죠.

- 앨비 싱어, <애니 홀> 중에서

조금 망설이던 나는, 다시 책을 집는다. 책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더이상 믿지 않아도. 너무 많은 책을, 너무 가볍게 읽어 버렸다는 생각이 눈을 찔러도.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여전히 누구도 내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같은 말을 해주지 않아서.

적어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거라는 위안 몇 조각을 손에 쥐고. 어쨌거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온 일이니까. 3년 넘게 연애해 본 사람들은 내 기분을 아마, 이해하겠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만큼 멍청해줘서 고맙소!"


(* 상단의 '주의'에 해당하신 분들은 여기서부터 읽으세요)


한 언어학자의 아마존 오지 마을 탐방기인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와 한 사회학자의 시카고 빈민촌 방문기인 <괴짜사회학>는 모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조우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한 책이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학문(사회학)과 다른 책이 깊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학문(언어학, 인류학)에도 불구하고 책들은 각각 '사회인'과 '문명인'이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성장담을 닮았다. '사회인' 혹은 '문명인'이라 이름 붙여진 인생이란 결국 '레디메이드 인생'에 다름 아니니까.

결국 오늘날 성장이란 우리가 깊숙히 지니고 있는 문명인의 프레임을 깨트리는 것. 공장에서 찍어내고, TV에서 광고하는 우리들의 행복과 사랑과 불행과 절망과 고통과 즐거움, 그러니까 인생을 넘어서는 무엇을 비로소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일 테니까. (그러니까, '입사식'으로 표현되는 교양소설의 전통은 이미 21세기에 유효하지 않단 말이다, 그것은 이제 성장도 뭣도 아니니까)

선교를 위해 아마존의 피다한 마을로 떠난 다니엘 에버렛. 언어학 전공을 살려 야만의 죄악에 빠져 있는 파다한 원주민들에게 '복음'의 빛을 선사하겠다는 열망에 들뜬다. 박사 논문을 위해 빈민가를 기웃거리던 수디르 벤카테시. 만성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그들을 분석, 사회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건 잠입에 성공한다. 

결국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은, 각자의 고귀한 '소명의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프레임을 '미개인' 혹은 '빈민'에게 이식하는 것일 뿐이었다. 지독한 폭력. 본의 아니게 오만한 문명인은 물론 이를 알지 못하고, 그저 벽에 부딪혀 괴로워하고 원망할 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가치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어렴풋한 자각이. 

<괴짜사회학>의 수디르는, 경찰차도 구급차도 오지 않는 '빈민의 섬'에서 통계자료를 들먹이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최신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다면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25퍼센트라는 것. 빈곤의 고리를 끊기위해 그들을 갱단 대신 학교에 보내야한다는 것. 그러자 주민 대표인 베일리 부인이 말한다.

"만약 자네 가족이 굶주리고 있고 내가 자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쩌겠나?" 당연히 가족들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학업을 미루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그에게 부인은 되묻는다. "하지만 자넨 학교에 다녀야 하잖아, 안 그런가? 그게 자네를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테니 말이야."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마가복음을 피다한 어로 번역하고, 자가발전기가 달린 카세트 플레이어까지 구입해 '오디오북'을 나누어주며 설교에 열을 올리던 다니엘은, 그럼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자 '간증'을 하기로 한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예수님을 알기 전의 삶에 대해 말한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술과 마약에 빠져 지냈으며, 새엄마의 자살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한 마디로, 얼마나 불행했는지.

'문명세계'에서 그랬듯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오! 주여!'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같은 찬양을 연발하기를 기다리던 다니엘은, 그러나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의 반응에 당황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엄마가 자살했다고? 우하하! 참 바보 같다. 피다한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아."

결국, 자신의 악덕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의도적인 방치 속에 빈곤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들은, 불러도 오지 않는 경찰차와 앰뷸런스 대신 갱단을 부르고, 갱단의 지배하에 돌아가는 지하경제를 통해 생활을 꾸려나갈 뿐이고, 그런 빈민가의 작동원리는, 근본적인 지점에서 수디르가 살아왔던 '사회 안쪽'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니엘 또한 마찬가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며, 죄의식도 없이 순간에 충실한, 누구도 자살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와 자칫하면 술과 마약에 유혹에 빠지고, 쉽게 목숨을 끊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 중에 도대체 어느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인지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회 혹은 문명과 조우한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며 점점 더 성장하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르다. 사회구조에 대해 별 다른 의문을 느끼지 못하던 중산층 사회학자 수디르는, 빈민 문제가 사회 때문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형제와 같은 유대를 느낀다. 하지먼 거기까지. 별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던 그는 완성한 논문을 쥐고 씁쓸하게 '사회 안 쪽'으로 복귀할 뿐. 하지만 선교하러 왔다가 신앙을 버리게 된 다니엘은 아래와 같은 꽤나 감동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실용적인 유용성만을 인정한다. 이들은 우리 머리 위에 천국이 있다고 믿지 않으며, 우리 발밑에 지옥이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이들은 죽음에 대해 어떠한 추상적인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절대자, 정의로움, 성스러움, 죄악, 소유와 같은 개념이 없다. 그러한 개념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다한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삶, 그러한 사회를 직접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 인류에게 더없이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삶은 참으로 매력적인 비전이다.

우리는 종교와 진리라는 가치를 버리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아니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피다한 사람들은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욕구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욕구는 대부분 문화가 달라도 똑같은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화는 말로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욕구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로 이러한 욕구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 그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따라서 어떠한 욕구도 쌓일 틈이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거의 모두 앓고 있는 걱정, 두려움, 좌절의 근원이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초월적인 존재, 보편적인 진리를 열망하지 않는다. 그러한 개념은 그들의 가치관 속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다. 피다한 사람들에게 진리란 물고기를 잡는 것, 노를 젓는 것, 아이들과 웃으며 노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말라리아로 죽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 때문에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신, 세상, 창조와 같은 개념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관념의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다른 기준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구성원들이 행복할수록 발전한 문화이고 불행할수록 미개한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피다한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한 문화이다. 억지처럼 들리는가? 걱정, 불안, 욕심, 두려움, 불만, 좌절, 세상을 모두 이해하고 말겠다는 아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지, 즐겁고 유쾌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한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라. 신이나 진리는 과연 무엇에다 쓸 것인가?

-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중에서

언젠가 존 레논이 노래했듯이.

상상해 봐요, 천국이 없다고
아주 쉬워요 일단 시도해 봐요
저 아래 지옥도 없고
우리 위에는 파란 하늘 뿐이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그저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이런 것들을 읽고 있으면, 방바닥에 누워 책을 통해 다른 인생과 간접조우를 시도할 뿐인 게으른 인문MD 조차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짜 좋은 게 뭐지?" 혹은
"How to be good?"

아마 커트 보네거트라면 이렇게 되물었겠지.

"짹짹?"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속한 사회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생활인이고. 아마존에 갈 일도, 빈민가에 잠입할 일도 없는 보통 사람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어쨌거나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 가는 것이다. 언제 사람 되나 싶어도, 제대로 좀 살고 싶어도… 아무 도리 없이.

그런 우리들에게 언제나처럼 피터 싱어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출근길마다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날씨가 더울 때면 가끔 연못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겨우 무릎까지 물이 차니 염려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춥고, 시간도 이르다. 그런데 연못에서 첨벙거리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어린아이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그 아이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 주위에 아무도 없나, 부모나 유모는? 하고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물 밖으로 겨우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수 있는 모양이다. 뛰어 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하지만 며칠 전에 산 새 신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양복도 젖고 진흙투성이가 되리라. 아이를 보호자에게 넘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틀림없이 지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자, 당신은?

피터 싱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겠다고 한단다. 큰 맘 먹고 장만한 양복과 새 신발을 버려도, 지각해서 월급이 깎여도. 아이를 구하는 일이 더 소중하므로. 싱어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지구상에 수많은 아이들이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단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버려둔 채 새 양복과 새 신발을 사는가?

뜨끔.

세상엔 끔찍한 부류와 비참한 부류가 있다고 생각해. 두 개의 카테고리가 있다고.
끔찍한 부류는, 이를테면, 말기환자 같은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맹인, 장애자..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 나한테 그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야.
그리고 비참한 부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지. 그게, 그게 다야.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비참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해.
비참하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니까.

- 앨비 싱어, <애니 홀> 중에서

가끔 비어있는 지갑을 바라보며, 곰곰 따져보다가 '이게 다 매달 나가는 기부금 때문이야'라고 생각해버리는, 비참함에 잠을 설치지만 운이 좋다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인간 되려면 한참 먼 인문MD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Special Thanks to










to 커트, 여전히 평안하시길
to 닉, 언제 술 한잔 해요
to 우디, 당신의 여름은 어때요?
to 존, 당신이 옳았어요 
to 허경영, 전화할게요……………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8-1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8-19 15:17   좋아요 0 | URL
'육식'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된 비인간적 생산 및 유통구조 때문이니까요... ㅜㅜ
저도 사람입니다 ; (아직 좀 덜 되긴 했지만)

하이드 2009-08-1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이라면... 왜냐하면... 제가 그날 잠실 야구장의 중심에서 더 큰소리로 '허경영'을 외쳤거든요. 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 .. 라는건 농담이고요. 엘팬이시군요.


활자유랑자 2009-08-19 15:17   좋아요 0 | URL
첫 닭이 울기 전에 엘팬임을 세 번 부정하겠습니다...

웽스북스 2009-08-1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에 알라딘 서재에서 만난 몇몇 분들과 맥주를 마셨어요. 아. 정확히는 네명이었는데,
알라딘 MD분들 얘기를 하면서...

- 나는 문학 MD 사랑해요
- 나는 종교/예술 MD 서재에 완전 자주 가잖아요
- 어, 나는 인문 MD가 쓰는 글 좋아해요-

막 이러고 있었답니다. 나머지 한명은 MD서재? 그런것도 있어? 였지만. ㅋㅋㅋㅋㅋㅋ
알라딘 사람들이 만나니 MD분들 얘기도 연예인 얘기하듯 하는구나 하면서 우리도 재밌어했지요 ㅎ
(참고로 넷다 여자라, 남자 MD분들의 인기가 높았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3년 되셨다는 이 글을 보니까, 갑자기 그 때의 대화를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글은 미괄식 구성인데, 저는 윗글이 더 재밌네요 짹짹
(참고로 저는 일주일에 세번쯤은 허경영을 외칩니다 ㅋㅋㅋㅋㅋ)

활자유랑자 2009-08-19 15:21   좋아요 0 | URL
아! 이런 민망한 일이;
문학MD 님에 대한 감정이 가장 세군요!
저도 사진을 바꿀까 봐요... 짹짹

외국소설/예술MD 2009-08-20 13:3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더 분발을.. 아니 영광.. 하하..;

삶은계란 2009-08-2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미를 듣고 있자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계란이 아니라 허경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활자유랑자 2009-08-20 18:25   좋아요 0 | URL
망설이지 말고, right now
...

개인적으로는 그 분, 참 세상 멋대로 사는구나, 부럽기도 해요.

딸기 2009-09-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싱어의 책이 나왔군요. 음...
알라딘인문MD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오나... 글이 넘 재밌네요. 마구마구 보관함에 담고갑니다. ^^

활자유랑자 2009-09-15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냥... 책 파는 사람이죠 뭐.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