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마지막 날에 출발하는 '만선'의 첫머리는 '입시과학'에 질려 과학에 학을 뗀 모든 이들을 위한 과학책이다. '읽을 책이 없어!'라고 투정 부리는 인문/역사 독자들을 '우아하고 감상적인' 과학의 세계로 안내할 쾌속정 같은 느낌? (사실 인문/역사에도 읽을 책은 많다… 정말이지 책은 언제나 많다)

"이 책을 누가 읽어야 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필요 없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이시대 지식인의 필독서다.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전문 분야나 관심사에 무관하게 이 책을 꼭 한번 읽기를 권한다.  

나는 물리학이 어렵다고 하는 신화를 믿지 않는 사람이며 물리학에 대한 기본 이해가 21세기의 필수 교양이라고 믿는 사람이면서도 지금까지는 늘 물리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를 소개하라면 말문이 막혀 왔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저하지 않고 권할 만한 책이 생겼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커다란 기쁨이다."  - 장회익,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장회익 교수가 다소 격하게 추천하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바로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냉소와 의심을 콩팥처럼 달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열렬한 추천사에 오히려 의구심을 품을 법도 하지만 '지식인'은 커녕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알라딘인문MD의 눈에도 '단 한 권의 물리학 입문서'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책이다.  

굳이 거친 비유를 하자면 물리학계의 <미학 오디세이>라고 해야 할까. 난해하고 복잡하다고만 '알려져 있는' 현대 물리학의 여러 개념들을 입문자의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는 이 책의 최대 매력은, 결코 과학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은 저자의 넓고 깊은 시선과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말'에 있다. '해학과 재치가 어우러진 생생한 과학이야기'라는 부제가 썩 어울리는 것.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는 인류 4천년의 과학사를 다룬다. 가장 대중적인 '과학사' 책일 <거의 모든 것의 역사>처럼 웃기진 않지만, 거의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는 멋진 도판들이 과학의 진보를 위해 노력했던 인류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과학 전문 저자들이 간결하게 풀어낸 글맛은 <로드>와 <융>으로 올해의 번역서 2관왕을 차지한 정영목이 옮겼다.

함께 읽으면 좋을 또 하나의 과학사는 <현대 과학의 풍경>이다. "과학사를 다룬 책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과학혁명기 이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해 전공자들에게도 자칫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근현대 과학사의 여러 주제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권은 17세기 '과학혁명'부터 21세기의 '인간과학'까지의 역사를, 2권은 여러 시대를 포괄해서 조명해야 할 과학사의 주요 주제들을 다룬다.

"그래도 난 가볍고 웃기는 책이 좋아!"라고 외치실 분들을 위해서는 <벌들의 화두>를 골랐다. '곤충에 미친' 곤충학자들의 삶을 '여자 에드워드 윌슨'이라 불린다는 메이 R. 베렌바움의 신랄하고도 재치 넘치는 필치로 만날 수 있다. 옮긴이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명한 곤충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와 그의 제자인 권은비. 적절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첫째로 유명한 곤충학자는 앙리 파브르, 두 번째는 CSI의 길 그리섬 반장이다…)

 

 

 

 

 

 

 

더 나은 2009년을 꿈꾸는 책들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환경, 젠더, 자본(혹은 경제) 그리고 혁명!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공산주의의 등장과 몰락, 민주주의의 확산 등 굵직한 사건들로 채워졌던 20세기를 에릭 홉스봄은 일찍이 '극단의 세기'라 표현했지만, 인류 이외의 종이 역사를 돌아본다면 20세기는 아마 '오염의 세기'라고 기록되지 않을까? 그만큼 우리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지구의 생태계를 오염시켰으니.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 수 없다.   

맨닐 교수는 조용하고 회의적이며 공평하고 또한 자기비판적이기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에서는 단 한 줄의 과장 어구와 도착적 생태주의나 환경주의 천년왕국설도 찾아볼 수 없다. 거만하거나 또는 과학적 엄정성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저작을 완성했다. -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메스토 (Felipe Fernadez-Armesto), '인디펜던트' 

'퀴어 이론의 창시자이자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도 출간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그녀의 출세작이라고 하니 사실 늦은 감이 있는 출간. 그렇지만 이제 새해도 밝고 하니 훈훈한 마음으로 이제라도 번역 되어 다행이라고 말해야겠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는 인터뷰집이다. "경제, 경제!"하는 이야기는 2008년에도 지겹도록 들었지만 2009년에 대한 딱히 나은 전망도 찾아 볼 수 없으니 "'새로운 사회는 가능한가?' 한국경제의 희망찾기",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가가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위기와 전망"이란 문구를 달고 있는 이 책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론'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김수행 교수와 인터뷰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지승호가 만났으니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할까?

'혁명'을 부르는 이름 레닌이 돌아왔다. "자본주의 위기 시대에 레닌과 러시아 혁명을 다시 생각한다", "레닌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 "레닌의 철학과 러시아혁명을 통해 본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라는 문구를 앞뒤 표지에 달고 있는 <레닌과 미래의 혁명>의 표지는 빨갛기도 하다… 박노자, 이진경, 조정환 등 쟁쟁한 필자들의 글과 대담, 루이 알튀세르의 '레닌과 철학' 등으로 구성 되었다.  

 

 

 

 

 

 

 

심리학 관련 도서가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2008년이기에 2009년에도 그럴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심리학 책을 찾게되는 심리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불안' 때문이 아닐까. (영화배우 장동건 역시 TV에 출현, 올 해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두 권의 책 중 하나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꼽았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매출이…

2009년도 여전히 불안하다면 <불안, 그 두 얼굴의 심리학>이 좋겠다. 스트레스가 그렇듯 불안 또한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불안 때문에 일상생활을 영휘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불안 덕분에 인류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불안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로는 괴테, 브레히트, 베케트, 카프카 등이 있다고) 그렇다면 문제는 불안을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 바로 그 부분을 짚어주는 책은 일종의 "불안 사용 설명서"라 할만 하다.

다소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는 <심리학의 모든 것>은 심리학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직장생활과 인간 관계, 건강 등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를 다루는 "심리학 사용 설명서"다. 심리학의 기본 개념들을 '인문 교양서' 답게 다루며, 그것을 바탕으로 행복한 삶을 위한 '심리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길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은 50권의 심리학 도서들을 안내해주는 일종의 서평집이다. 심리학의 흐름을 주요 심리학자나 주요 심리학 서적을 통해 짚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딱딱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깜냥으로 심리학 이론을 소화해서 전달함으로써 생기는 '겉핥기적' 문제를 극복하고, 원전을 직접 읽도록 안내한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라고 하겠다. 프로이트, 융은 물론 아들러, 파블로프, 프랑클, 스키너 등 중요한 책들은 거의 다 담겼다.

<나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는 2005년에 출간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저자 로렌 슬레이터의 자전적 에세이다. 간질 발작과 거짓말 충동에 사로잡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묻는 '거짓말을 사랑한 어느 심리학자의 고백'은 꽤나 도발적이다. 엄밀한 심리학 서적은 아니지만 심리학자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란 점에서 같이 분류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번엔 역사로 눈길을 돌려 보자. 해마다 한번쯤은 듣게 되는 그 이름, '토정 이지함'의 평전이 눈에 띈다. <맹꽁이 서당>과 <토정비결>로만 그 이름을 듣던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알라딘인문MD는 그를 그저 '기인'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터. 책은 그 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이지함의 삶과 사상을 복원함으로써 그런 오해를 풀려는 시도라고 한다. (한 가지만 스포일 하자면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쓴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세상에!)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는 "13여 년 세월 동안 한국문화사와 종교사상사, 고구려 고분벽화, 동아시아 천문사상가에 대한 9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에 매진한 저자"가 "고구려 별자리 벽화 중 중요한 별자리들을 일일이 모사도와 개념도 등으로 재현해 보여주면서 고구려 별자리의 체계와 의미를 이해하고 밝혀낸" 책이다. 굉장히 특이하고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신화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

5권을 끝으로 <한국사傳>이 완결 되었다는 소식도 전한다. 12월에 출간된 4권은 '무너진 왕실의 화려한 귀환'라는 부제로 왕실의 인물 여덟 명을 새롭게 조명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진정한 승자들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5권에서는 '진정한 승자'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으나 사실은 기억해야 할 진정한 승자 여덟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미지는 5권 출간과 함께 만들어진 세트.  

그리고 여기 또다시 등장한 '혁명'! <혁명 만세! Vive La Revolution>가 다루고 있는 것은 원제에서도 느껴지듯 '프랑스대혁명'이지만 놀랍게도 저자는 '영국'의 '코메디언'이다! (이 짧은 문장에 느낌표가 세 번이나 들어갔다!) 여러모로 독특한 이 책에 앞서는 걱정은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의 경우처럼) '비전문가의 편협한 관점'이겠지만, '혁명6부작 코메디'(!)를 진행할 정도로 지적인 저자는 (영국인들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무엇보다, 진짜 웃기다!   

 

 

 

 

 

 

 

이번에는 철학서다. <진중권의 이매진>은 사실 철학서라고 하긴 조금 힘들지 모르겠지만,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판매의 최전선에 선 MD의 선택이다… 씨네21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책은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영화비평이 아니다". 진중권은 이것을 '담론의 놀이'라고 하는데,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을 읽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끌고 오는 이 책에 부적절한 설명은 아니겠다. 2008년의 스타 진중권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정치론>과 <영구 평화론>은 윤리 시간에 자주 들었던 스피노자와 칸트의 책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스피노자의 이번 <정치론>이 특이한 이유는 상세한 해설에 있다. 책의 앞이나 뒤에 붙어 있는 해설이 아니라 본문의 각 문단마다 상세히 기록된 해설이 번역의 노고를 짐작케 한다.  

<영구 평화론>은 이번이 초역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지에 당당하게 '개정판'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수님은 무슨 연유로 매주 영어로 된 이 텍스트를 번역하는 숙제를 내주셨던 걸까?) 오랜 기억이라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꽤나 생각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와 함께 읽으면 좋을듯 하다)  

"들뢰즈 이후의 철학적 성과를 집성하고 있는" 리좀 총서의 여섯 번째 책은 <들뢰즈, 유동의 철학>이다. "들뢰즈의 전작에 걸쳐있는 철학적 사유의 흐름을 그린 독창적인 입문서"라고. 저자인 우노 구니이치는 파리 제8대학에서 직접 들뢰즈의 사사를 받았다고 하니 의미있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정우 교수가 함께 옮겼다.  

 

 

 

 

 

 


오늘 마지막으로 담은 책은 하나의 소망을 담고 있다. 2009년에는 "속임수의 문화가 팽배한 이 난세에 답하려 했지만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술이나 마시지는 말았으면"하는 그런 소박한 바람.  

<치팅 컬처>는 극단적인 자유 시장경제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이기는 게 장땡인' 문화를 가감 없이 고발하는 책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속이는 사회는 결국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사회다. 모두들 속이지 않고 사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저 녀석은 속이는데 나만 속이지 않으면 뒤쳐지는 거 아냐?"라는 불안을 숨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마지막에 제시하는 세 가지 대안은 고려해 볼만 하겠다.  

<난세에 답하다>는 "사기 전문가"(<치팅 컬처>와 결합 되어 조금 묘하게 읽히긴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 전문가를 뜻한다…)인 저자 김영수가 EBS 32회 특강으로 진행했던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다양한 인물들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사기>를 통해 21세기를 읽는 저자의 깊이 있는 시선이 돋보인다.  

버나드 쇼의 그 유명한 묘비명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을 제목으로 한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는 묘비명을 모은 책이다. 명언집 처럼 단순히 묘비명 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각 묘비명 마다 해당 인물에 대한 짤막한 평을 달았다.  (2007년에 나왔던 <묘비명>이란 책의 개정판이다)

버나드 쇼, 이소룡, 노스트라다무스, 헨리 필딩, 데카르트, 칸트, 헤밍웨이, 랭보, 키츠, 예이츠 등 외국의 인물들 뿐 아니라 정약전, 천상병, 정몽주 등 국내 인물들의 묘비명을 함께 담은 것이 특징. 책 앞머리에 실린 묘비 사진도 재미있다. 최고의 묘비명은 이거다.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생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1937년 정축 3월 3일 미시, 여기 백일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드링킹> 역시 2004년에 출간 되었던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의 개정판이다. ('Drinking : A Love Story'라는 원제를 생각하면 구판의 제목도 나쁘진 않았던 듯) 좋은 책이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되지 못했던 책들이 새롭게 단장하고 재출시 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제목 그대로 알콜 중독자의 자기 고백이자 갱생기인 이 책의 매력은 저자 캐롤라인 냅의 거침없는 묘사와 삐뚤어진 유머. 사회적으론 성공했지만 내면으론 알콜 없이 하루도 살 수 없었던 저자는, 결국 중독을 극복해내지만 2003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이 인생의 아이러니가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술을 끊으려거든 담배도 끊어라"

(개인적으로는 요즘 엉망이 된 몸 덕분에 '보약'이 아닌 '한약'을 먹고 있고 금주중인데, 그래도 술자리에는 꼬박꼬박 불려 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난생 처음 술자리에서 몸 핑계로 술을 안먹고 있는 셈인데 흥미로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1. 사람들이 형이라고 부른다 : 한 잔, 두 잔 거절하다 보면 어느새 연배 높으신 과장 부장님들이 "행님, 그라지 말고 술먹쟈?"라고 회유하는 것
2. 술자리가 절정에 오르면 욕을 먹는다 : 욕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냥 밑도 끝도 없는 육두문자에서 인생설교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웃긴 것은, 술 먹지 않고 술 자리에서 노는 게 오히려 더 재밌다는 거다! 그런데 담배는 아직…)

2008년은 여기까지 입니다.  


*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헛소리를 많이 했네요. 괄호 안의 글들은 정말 괄호 안의 글들로만 읽어 주시길…
* 어느덧 2008년도 끝이 났네요. (마지막날 8시까지 회사에 남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MD도 있으니) 부디 힘내시고 2009년에는 모두 행복하시길.
* 2008년 마지막 배가 이렇게 출발하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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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1-01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 담아가요~ MD님 2009년도 그득그득 만선입니다~! ㅎㅎ

복 많이 받으셔요~

활자유랑자 2009-01-05 13:52   좋아요 0 | URL
벌써 2009년도 5일이나 지났네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다짐하는 1人…
복 많이 받으세요 ^^

하루(春) 2009-01-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크게 웃고 갑니다. 여긴 아직 2008년의 마지막 날 저녁이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활자유랑자 2009-01-05 13:52   좋아요 0 | URL
2009년엔 더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tarla 2009-01-0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오늘은 특히나 많이 웃었습니다. 으하하; <최무영 교수의...> 이 책 정말 좋더군요.

활자유랑자 2009-01-05 13:53   좋아요 0 | URL
starla 님도 <starla의...> 책 한 권 써주세요! :)

kds4953 2009-01-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이 정말 재미있네요. 지금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읽고 있는데 다음에 볼 책들도 많아서 좋네요~ㅋ

활자유랑자 2009-01-21 10:32   좋아요 0 | URL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보면서 킬킬대던 기억이 나네요. 빌 브라이슨 같은 익살꾼 좋아요. 고맙습니다. :)
 

 "<르몽드 세계사>는 잘 와닿지 않는 제목이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 키워드는 사실 '아틀라스'다.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아틀라스 세계사>처럼 지도들을 통해 세계사를 풀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굳이 '아틀라스'라고 붙이지 않은 출판사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지도엔 아무 관심도 없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전혀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정교한 지도와 도표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 11월 25일, '이번 주도 만선' 중에서

언젠가 이 서재를 통해서도 소개 되었던 <르몽드 세계사>가 많은 사랑을 받으며 12월 19일 현재, 알라딘 역사분야 베스트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각지의 선생님들이 <르몽드 세계사>에 대한 추천사를 보내 주셨네요. 과연 현장의 선생님들은 이 책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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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태능고등학교 김육훈 선생님


"예측 불가능한 세상, 역사에 길을 묻는 수밖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우리 삶 전체를 옥죄어온다. 도대체 하고 많은 국제전문가와 경제 금융전문가는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내 삶을 내가 주관할 수 없을 때처럼 허망한 적은 없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 자산이 반토막이 되고 내 미래가 난도질당한 다음에야 문득 깨닫는다. “우린 정말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구나.”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이런 때일수록 역사에 길을 물을 수밖에 없다. 추세가 어땠는지, 변화가 이룩한 성과가 무엇이며, 해결해야 할 어떤 과제를 남겼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를 대면하기 위해 역사의 신에게 지혜를 묻는 《르몽드 세계사 -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지구적 이슈와 쟁점들》은 그래서 반갑다.

《르몽드(Le Monde)》는 ‘세계’란 뜻의 제호를 가진 대표적인 프랑스 언론매체이고, 《르몽드 세계사》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는 언론관으로 오랜 세월 국제사회를 관찰한 결과를 담고 있는 책이다. 힘의 질서에 주눅들지 않고 세계를 관찰하고, 배경을 들추어보기 위해 탐색한 결과들로, 그 내용을 보면 우리시대의 위기 징후를 정당하게 포착하면서도,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몽드 세계사》는 ‘진실’을 강조하는 《르몽드》의 언론관이 현상에 대한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의 결과 얻어지는 통찰력을 통해서 실현됨을 분명히 보여준다.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한 수많은 지도와 도표들이 이러한 진실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 세련된 지도제작술 덕분에 세계는 우리 뇌리에 하나의 이미지로 깊이 각인된다.

우리에게 열쇠가 없다면 집 안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가 인식하고자 하는 세계 또한 열쇳말이 없다면 가까이 하기 어렵다. 《르몽드 세계사》는 수많은 사건과 사실을 지역과 연도별로 마구 늘어놓은 여느 역사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세계’를 인식 대상으로 삼고, 이 복잡하고 역동적인 세계에 다가설 수 있는 104개의 열쇳말을 준비했다. 〈귀환 불능지점에 다가선 지구온난화〉, 〈도전받는 미국의 헤게모니〉, 〈국제이주의 지경학적 현실〉, 〈투기에 빠진 연기금〉, 〈중동의 석유, 물, 그리고 전략〉, 〈동양의 화려한 귀환〉과 같은 글을 읽노라면 바야흐로 우리는 스스로 문을 열고 세계를 대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 작고 인구가 적은 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함께 이상을 이야기하며 협력하여 공동의 미래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꿈은 노자 시대에도 현실이 되기 어려웠으나, 그와 같은 꿈을 꾼 자들이 없었다면 그 이후 삶이 어땠을까도 자명하다. 우리시대를 정면에서 바라보려는 분들, 무엇보다 진실된 시선으로 우리시대 세계를 인식하려는 분들, 함께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려는 노력을 가치 없다 치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김육훈(<살아있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저자, 서울 태능고등학교 교사) 



#2 서울 용문중학교 김민수 선생님  

 "세계사 공부의 열쇠는 지도, 이제 이 책을 펼쳐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의 붕괴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비틀거림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는 세계화된 오늘날의 현실을 단편적이고 치명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일부일 뿐이다. 몇 해 전부터 ‘세계화’를 논하는 수많은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최근에 나온 《르몽드 세계사》는 오늘날의 세계화와 세계화된 지구촌의 공통 해결 과제, 그리고 세계 각 지역 간의 갈등과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집이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더 상호의존적인 세계의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 이해 교육의 선봉에 선 교과목은 ‘세계지리’와 ‘세계사’라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지금의 세계를 직시하기에는 교과서의 지면도 부족하고, 심층적인 자료도 많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들 부족함을 지리부도나 역사부도를 활용하여 간극을 메우려 애를 쓰지만, 부도책들 역시 별로 친절하지 못하다. 단순하게 제작된 지도와 이미지 자료가 죽 나열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르몽드 세계사》는 지리부도와 역사부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고 본다. 명확한 주제 설정, 그리고 그 주제를 부각하는 시각화된 지도와 통계자료, 깊이 있는 설명, 꼼꼼한 자료, 그리고 참고 웹사이트의 출처까지도 밝히고 있어서 현행 세계사와 세계지리 교육, 그중에서도 특히 현대 세계사 부분을 보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게끔 도와주는 친절한 책이다. 현재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환경문제와 변화하는 지정학, 세계화의 명암, 끊임없이 형태를 달리하는 분쟁, 그리고 세계 변화의 핵심으로 작용하는 아시아 지역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독자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머리말로 들어 있는 〈세계라는 무대〉를 제일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글은 오늘날의 경제와 생태, 무역과 군사활동, 환경과 사회운동, 역사와 인간의 갈등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의 관계와 그 상호작용을 밝히기 위해서 ‘지도’라는 도구를 사용한 배경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지도’라는 매체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론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 지도만큼 공간에 대한 관계맺음을 잘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는 없다. 이 책에서 지도는 연구자료이자 결과물인 복잡한 통계자료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또한 공간과 공간 간의 이해관계를 다양한 색상, 다각적인 방향, 경계를 표시한 선과 면적을 차지하는 부피감으로 버라이어티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간을 표현한 지도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갈등이 아닌 ‘연속성’의 측면에서 강조하면서, 그 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시간을 표현한 지도는 예측가능한 ‘미래’를 제시한다.

‘지도’로 표현한 세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효과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지도에 표현된 공간의 구성원으로서 ‘지구촌 문제의 이해와 해결’이라는 과제를 부여함으로써 모순적인 현실 공간에 대한 참여 욕구를 부여하고 있다. 요지경같이 복잡한 세상에 대한 본질적인 해석의 열쇠는 지도에 있었다. 이제 그 지도를 펼쳐보자!

                                                                                              - 김민수(서울 용문중학교 교사)


#3 서울 중동중학교 최병천 선생님 

 "오직 ‘진실’을 향해 질주하는 지성들의 치열함에 경의를"


지도는 예술처럼 세계를 제작하는 방식 중 하나다. 인간은 지도를 통해 그들이 본 사실과 원하는 사실을 절묘하게 혼합해가며 미래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여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야심차게 기획한 책이 한 권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바라보는 세계는 인간으로 인하여 위험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책마다 가득 찬 지도는 그 위기들을 기록한 인간 욕망의 지도에 다름 아니다. 책은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망가진 지역과 분쟁 지역이 정확히 어디쯤 붙어 있는지, 어떤 이유로 인해 ‘환경오염지대, 분쟁지대’라고 불리게 됐는지 소상히 설명함과 동시에, “여기 이런 문제가 정말로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온전히 우리의 책임이다”라는 깨달음을 제공한다.

비록 세계사라는 이름이 붙었더라도 원제가 아틀라스임을 감안해보면 이 책이 공간적 배경에서 지리적 관점으로 쓰였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어, ‘르몽드 세계지리’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참신한 지성’이라 불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집필진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여러 사안들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현대 사회를 한층 정연하고 겸허한 시야로 직시하게끔 만든다. 질주하는 지성들이 오로지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할 각오”로 쓴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도 이들의 치열함에 감탄하고, 이 책을 집어 든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최병천(전국지리교사연합회 회장, 서울 중동중학교 교사) 

 * 소중한 원고를 제공해주신 세 분 선생님들과 휴머니스트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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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영 2009-07-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저도 가지고 있습니다.사고 싶어서 구입했지만 아직 저에게는 힘들더군요.

저 좀 도와주세요.미국의 대학 교수의 이메일 1000개가 필요합니다.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정말 너무 절박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책 읽는 건 이럴 때 쓰라고 읽는 거 아닌가요?

제발 도와주세요...

시끌북스 2009-08-1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사에 흥미가 많아서 저 책도 서점에서 보았습니다만...거대한 덩치가..저를 크윽~ 크윽~
그래도 읽어보렵니다. 책이 책일뿐이지 저에게 뎀비진 않겠지요~ ㅋㅋ
얼른 로마인 이야기를 다 읽어야 하는데...ㅋㅋ
 

 

 

 

 

 

 

 

오늘 첫머리에 오른 책들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그건 아마도 이런 모양이 될 것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바로 탐욕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모아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을 통해 미래를 위한 경제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세상은 치유 될 수 있을 것(힐 더 월드)이다."

사실 오늘 이 페이퍼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게 다다. 이 다음은 주석일 뿐.

<탐욕의 시대>가 벌써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물론 장 지글러의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널리 읽히고 있긴 하지만 (<블랙 스완>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에 의하면) 도서의 '성공 여부'는 '극단의 세계'에 속하는 일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미 팔린 후에는 모두들 분석을 내놓는다. 그게 바로 블랙 스완이다!)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전작에 비해 더 방대하고 깊이 있는 영역을 다루고 있는 <탐욕의 시대>는, 그런 이유에서인지 유럽 현지에서는 훨씬 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칠십 중반의 나이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는 장 지글러의 열정과 깊이 있는 시선, 현실의 추악한 이면, 그럼에도 존재하는 희망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은 "세계의 끝에 놓는 다리 : 자본주의와 환경, 위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세계로"란 원제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번역서 제목에는 '환경'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40년간 환경 운동에 투신해온 저자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고발하며, 환경경제학과 환경정치학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제임스 구스타브 스페스의 주장은 전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 모두 논리적으로 지각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의심 없이 살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번역서의 부제는 참 좋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이니까.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이런 상상은 어떨까? 우리가 기분전환을 위해 먹는 달콤한 초콜릿이 실은 머나먼 이국 어느 어린 아이의 피와 땀, 나아가 '살'이라면. 불행하게도 이건 어느 몽상가의 기분 나쁜 상상이 아니다. 현실인 것이다.

"그들에게 말해주세요. 당신들이 초콜릿을 먹을 때, 당신들은 초콜릿이 아닌 우리들의 살을 먹고 있다고."
-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서 노예 노동을 했던 빈센트 (<Heal the World> 본문 52쪽에서)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www.uhic.org)에서 만드는 월간 'UE'의 컨텐츠를 묶은 <힐 더 월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그것을 채우고 있는 일상적인 물건들 뒤안에 있는, 나쁜 꿈인 것도 같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상상 같기도 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 마치 <지식 e>를 보듯, 그런 불편한 진실을 감각적으로 전해준다.

이쯤에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노래, 'Heal the World'의 가사를 떠올려 보자. "세상을 치유해요 /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요 / 당신과 나와 '인류전체'를 위한 /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 당신이 삶을 이미 누리고 있다면 / 이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요 / 당신과 나를 위한" (이 가사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for you and for me and the entire human race 다)

비록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자신의 인생조차 구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실이 그 노래의 의미까지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와 '나'를 넘어 '인류 전체'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같은 것. (<힐 더 월드>의 수익금은 영구적으로 국제아동돕기연합의 구호활동에 기부된다)

 

 

 

 

 

 

 

노암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이 재출간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저작이지만, 기존 번역본이 '가독성 없는 번역'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재출간을 알리는 마음이 반갑다. 책 내용을 다시 말하기 보단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를 적어 본다 :

* 2권으로 출간 되었던 것이 1권으로 합본 되었다. (무려 1077 페이지다!)
* 번역자가 바뀌어 책 전체를 새롭게 번역했다.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고 가독성을 높였다고)
* 옮긴이의 글에 촘스키가 최근에 강연한 내용들을 발췌 번역해 실었다.

촘스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미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9.11 이후의 미국을 나치 독일과 피노체트 치하 칠레의 파시즘, 전체주의와 비교한 나오미 울프의 책은 <미국의 종말>이란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부시 집권 이후 '민주주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미국을 심도 깊게 비판한 이 책이 과연 '오바마 시대'에도 얼마만큼의 유효성을 가지게 될지는 당분간 '괄호 안'에 넣어야 할 문제겠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식민주의 흑서>를 이쯤에 겹쳐 보는 것이 커다란 비약은 아니겠다. 어쨌거나 '제국'에는 '식민지'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역사학 잡지 '아날Annales'의 마르크 페로가 책임편집한 책은 '흑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벌어진 '식민주의 잔혹사'를 가감 없이 폭로한다.

합리적 문화를 가진 서구에서만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다는 '서구예외주의적' 시각, 그에 동반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수탈론'을 넘어 '지구촌 역사의 시각'에서 식민 시대를 재해석한 책은 임지현 교수의 말마따나 '식민주의와 식민지 민족운동의 대결 구도'에 갇혀 있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노파심에서 몇 마디 덧붙이자면 :

* 묵직한 주제와 표지에도 불구, 신문기사 재판문 등의 사료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꽤나 '재미있게' 읽힌다(!). 
* 책을 구입하면 검은 표지에 하얀 손얼룩 같은 자국을 볼 수 있는데, 그건 MD의 손때가 아니라 검은 배경에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는 黑書라는 글자다(;). (웹 이미지에서는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희미하다)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조서선양살인이의'가 아니다)를 마지막에 끼워 넣은 것은 사실 약간 억지다. 제목 그대로 1882년에서 1910년 사이에 조선을 거쳐갔던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조선의 풍속을 담고 있는 책이니까. 당시의 사진이나 삽화가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책은 에피소드 별로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교양역사서다. 하지만 '우월한 서구와 미개한 조선'이 내면화된 그들의 시각이 때론 불편할 때도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식민주의 흑서> 다음에 온 이유다.

 

 

 

 

 

 

 

올 초 출간 되어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한국 근.현대사>에서 근대사 부분을 삭제하고 문제가 된 표현들의 수위를 조정해서 새로 나왔다는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현대사>와  '현대사 전공자들의 공동연구로 진행된 한국 민주화운동사 총정리판'이라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한국민주화운동사>를 같이 놓고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런 게 악취미일까?)

이 두 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잇는 다리라면 역시 김기협이 제격이겠다. '보수=수구꼴통, 진보=좌파빨갱이'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종석과 함께 '중간 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가 <밖에서 본 한국史>에 이어 출간한 역사 에세이 두번째 책은 제목부터 <뉴라이트 비판>이니, 꽤나 흥미로운 배열이 되었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있는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서평' 제목은 "역사책? 글쎄다, 교과서? 아니다"다. 하하하;)

"뉴라이트 하는 짓을 접하다 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의문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강연을 부탁하지만 나 또한 진심으로 궁금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김기협 선생께서 좋은 안내서로 실마리를 풀어주신다. 뉴라이트들, 그리고 그들의 난데없는 발작에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 한홍구

<좌우파가 논쟁하는 대한민국사 62>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한림대 교수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보고 기분 나쁜 사람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민족주의자에게도 사대주의자에게도, 그리고 주류에게도 비주류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책이다. 하지만 좌파에게도 욕먹고 우파에게도 욕먹는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성공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

 

 

 

 

 

 

 

원래는 "자신의 정치적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세요!"라고 할 작정이었는데 놓고 보니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는 않다.

<박정희 정부의 선택>은 평가가 극심하게 엇갈리는 박정희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한.미.일 관계 및 한국 정부 내의 정치 역학,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반응을 한.미.일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인 저자가 분석한 책이다. 아무래도 극단만을 오고가는 내부의 담론 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은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노무현시대의 구체적인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진보'라는 단어는 너무 오.남용 되며, 모두들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다른 단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노무현 시대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는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경제와 평화에 관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대전략"이다.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는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이자 현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주대환의 "도발적 사유의 면모가 담겨져 있는 솔직한 정치 시평"이다. '말하는' 것이 좋은지 '사색'이 좋은지는 어쨌거나 취향의 문제다.

(* 노란색 바탕 안에 담긴 부분은 모두 알라딘 책소개를 인용한 것이다)

 

 

 

 

사회과학 문고 시리즈 2종이 동시에 출간 되었다. 책세상의 '비타 악티바' 시리즈와 삶이보이는창의 '삶창문고'가 그것. (출판계가 어렵다 말도 뒷얘기도 많지만, 그럼에도 멀리 보고 이런 시리즈를 기획, 출간 하는 출판사들이 있다)

'개념사 시리즈'를 표방하는 비타 악티바는 '실천하는 삶'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사회의 역사와 조응해온 개념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주체적인 삶과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기획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다섯 권과, 그것을 모은 세트(특가세트로 낱권 보다 저렴하다)가 나왔으며 계속해서 나올 예정이다. 국내 저자들이 쉽게 풀어쓴 개념사로 대학초년생부터 성인까지 두루 읽을 만한 좋은 시리즈.

"'지금-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대안의 상상력을 통해 노동 문제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기획된" 삶창문고는<한국 노동 운동사 1, 2>와 <노동법> 이라는 출간 목록에서 확인되듯 좀 더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역시 일반인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여졌다. (<노동법>에서는 그동안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원숭이도 이해할수 있을' 제목에서 보여지듯 자본론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마르크스를 닮은 세 명의 학생이 원숭이 선생의 지도로 '자본론'을 배운다는 구성이 재미있다. 책 뒤에 실린 김수행 교수의 추천사를 옮겨 본다.

"이 작은 책이 3000쪽에 달하는 <자본론> 세 권을 모두 다룰 뿐 아니라 독점과 제국주의, 그리고 새로운 세상까지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필자의 설명이 매우 짧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강의를 한 것 같고 청중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본론>과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터득한 것 같다. 매우 훌륭한 입문서임에 틀림없다." -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자본론> 번역)

얼마 전 도서팀 워크숍을 다녀 오는 길에 속초 해수욕장에 들른 일이 있다. 백사장에는 군사 작전 지역이라는 팻말과 함께 "여러 분의 아들, 형제가 근무하고 있습니다"라며 이런저런 경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은 바로 그런 우리의 아들, 형제를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군의문사'에 관한 책이다. 유족들의 입으로 듣는 그 사연들에 한 번 가슴 아프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에 두 번 가슴 아프게 하는 책이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는 알리슨 슈바르처 여사의 책이다. <아주 작은 차이> 이후 30년, 알리스 슈바르처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외적인 해방이 성큼성큼 돌진한 반면, 내적 해방이 여전히 총총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대답은 물론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몫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댄 길모어의 <우리가 미디어다>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거대 언론은 뉴스에 대한 독점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제 '풀뿌리 저널리스트'들이 직접 뉴스를 생산한다는 이 책의 전제를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중권의 "왜 때려요? 왜 때립니까?"가 어떻게 아프리카를 통해 실시간 중계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책은 단지 그런 현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 즉 누구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여건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룰 잠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개인용 테크놀로지가 갖는 긍정적인 잠재력과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을 수 있는 수많은 장애물에 대해 설명하며 결국 독자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직접행동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의미 심장하다. 언론 장악, 방송 장악 ('시도' 혹은 '의혹'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을 잊었다) 등 일련의 사태들 속에서 "우리가 미디어다"는 말은 어떤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에서도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 오늘은 사회과학 특집이 되어 버렸네요. (역사도 있지만;) 정작 '전공'인 인문서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주로… ㅜㅜ
* 지난 주에 "스트레스 특집"을 쓰고 한의원에 갔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 누적, 체력 고갈, 만성 피로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아온 1人… 앞으로는 약 꼬박꼬박 먹으면서 일과시간에 배를 보낼 예정입니다! ;;;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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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의 생각
    from sanghyun's me2DAY 2008-12-18 10:13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바로 탐욕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모아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을 통해 미래를 위한 경제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세상은 치유 될 수 있을 것(힐 더 월드)이다. from here
 
 
2008-12-18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arla 2008-12-24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great juxtaposition!

활자유랑자 2008-12-26 17:26   좋아요 2 | URL
앗, 과찬의 말씀을! (왠지 super furry animals의 "Juxtapozed With U"가 BGM으로 나올듯하다는…) 조금 이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상그레 2008-12-29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Oh.. 나의 사랑 촘스키, 촘스키를 읽으면서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번역에 대한 악평이 그냥 악평이 아니었나보죠? 찾아보니까 유달승 교수님이 번역하셨던데, 요즘 한겨레에서 중동이야기 연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코맥 매카시의 문장보다 길게 늘어져서 가독성이 떨어지기는 하덥니다. (그분이 번역하신 -는 읽어보지 않았으니..) 아무튼 꼬마 안경쓴게 귀여워서 클릭했다가 촘스키의 신간을 알고가게 되어 기쁩니다 :)

활자유랑자 2008-12-30 18:32   좋아요 2 | URL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지원이나 학술적 작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가 문제라는 말씀들을 하시던데. 책파는/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쪼록 좋은 책이 좋은 번역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냥 소박한 생각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비로그인 2009-02-01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요즘 자본1권을 보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막막했는데 덕분에 좋은 책 알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들 잊지 말고 많이 소개해 주세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_^

활자유랑자 2009-02-05 17:26   좋아요 2 | URL
별로 많지 않은 분량으로 굉장히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새벽 2시, 당신은 침대에 누워 있다. 내일은 결정적인 회의나 발표, 시험과 같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때문에 당신은 오늘 밤 충분히 쉬어야 하는데도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

천천히 깊은 숨을 들이마시거나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떠올리며 긴장을 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당장 잠들지 못하면 내 경력은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돈다. 그래서 그대로 누운 채 점점 더 긴장감이 더해 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2시 30분경에 당신은 머릿속을 파고드는 완전히 다른 일련의 새로운 생각들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 온갖 걱정과 더불어, 당신은 갑자기 옆구리에 느껴지기 시작한 불분명한 통증, 최근 들어 느끼는 피로감, 잦은 두통 등에 생각이 미친다.

'이건 병이야, 난 죽을 병에 걸린 거야! 아, 왜 이런 증상들을 진작 알지 못했을까? 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왜 의사를 찾지 않았을까?'라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다.

새벽 2시 30분에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나는 내가 뇌종양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미국 현지에서 "제인 구달에다 코미디언을 섞으면, 새폴스키처럼 글을 쓸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로버트 새폴스키의 고백에는 분명 엄살이 섞여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할 뿐 아니라,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트레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에, 그, 스트레스는 STRESS겠죠"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지만. (김훈은 이런 동어반복이야말로 언어와 사고를 병들게 한다고 했다!)

직설적인 제목과 자극적이며 동시에 심층적인(?) 표지를 가진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나의 친애하는 적"(My Dear Enemy)이 아닐까. 아무리 "워커홀릭에 빠진 차가운 도시 남자(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라고 할지라도, 스트레스 없는 '현대 생활'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지긋지긋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현대)인간의 조건'이라면, 피하기 보단 알아야 할 터.

그만큼 스트레스가 "좋다 / 나쁘다 / 이용해라 / 없으면 치매걸린다" 등등 다양한 연구결과도 말도 많지만, 정작 스트레스가 정확히 무엇이고,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같은 강도의 스트레스라도 개개인에게 어떻게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등을 '과학적'으로(동시에 흥미롭게) 전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접근으로 쓸모 있는 해결을 찾기는 요원할 터. 하여 쌓이는 오해들, 잘못된 상식들, 당면한 패배.

결국 뻣뻣한 목으로 오늘 밤도 잠못드는 당신, 동어반복을 끝내고 싶은 당신, "꽉 쥐어짜는 삶 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직면한 당신이 집어들어야 할 한 권의 책. 바로 <스트레스>다.

* 이 책은 분명 생물시간에나 들었음직한 (심지어는 그때도 듣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듣지 못했던) 용어들이 난무하는 과학 책이고, 몽롱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가볍고 달콤한 위안을 주는 책이 아니다. 참고로 30년 동안 스트레스를 연구해 오신 신경 내분비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저자 새폴스키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은 '이 책 말고 <디팩 초프라 박사의 스스로 배우는 건강법'을 샀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하며 위에 나온 용어들에 압도당했거나 겁이 나는가? 제발 호르몬 이름을 외우려는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중요한 호르몬들은 앞으로 자주 언급될 것이고, 당신은 곧 편안하고 정확하게 일상적인 대화 또는 좋아하는 사촌의 생일 카드에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끼워 넣게 될 것이다. 내 말을 믿어라."

* 당신의 스트레스 지수가 궁금하다면 '세브란스 건강증진센터'에서 제공하는 '스트레스 측정 테스트'를 권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문명인'이라면, 그 결과에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이 책을 사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해야겠다. <식량 전쟁>은 책 뒷표지에 써있듯 "지구상에 아직도 광범위한 기아가 존재함에도 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농작물 유통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유통업체를 만들고 지배하는 것은 누구인가? 위의 모든 질문들은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묻는 책이다.

오랫동안 식량주권 문제를 연구해온 저자 라즈 파텔이 보기에 비만과 기아는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세계의 기아를 근절한다면 비만과 심장 질환을 예뱡할 수도 있다는 좀 더 근원적인 층위의 주장이다. 왜곡된 유통구조를 통해 이득을 챙기는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장악한 '생산 그물'이 기아와 비만 모두의 원인이기 때문. 이 책이 고발하는 것은 그런 유통업체들의 악덕이지만 결국 우리의 악덕이기도 하다. 우리의 의심 없는 소비가 그들을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 "이 책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화나게 하고, 일깨워주는 등 다양한 것을 알게 해준다"는 인디펜던트 지의 서평처럼, 이 책은 분명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아닐까. 참고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의 새 책 <탐욕의 시대>가 출간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일단 다음 주로;)

만약 당신이 <식량 전쟁>의 논의에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문명화'된 '차가운 도시인'이라면 <6도의 악몽>은 어떨까? KBS와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을 통해 방송 되었던 무시무시한 다큐멘터리 '지구 온난화 6도의 악몽'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이미 다큐를 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정말로 끔찍한 이야기다.

개체의 멸종, 나아가 종의 멸종이란 살아있는 생명에게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커다란 스트레스겠지만 고맙게도 인간은 적응과 망각의 동물. 환경오염 특히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아무리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들 '프릭쇼freakshow'도 한 두 번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자극적인 영상과 정보들이 넘치는 시대, 개인의 삶을 적절히 영위하기 힘든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화석 연료의 고갈 또는 화석 연료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 같은 시나리오보다는 눈앞의 기름값이 걱정일 수밖에.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구 멸망까지 필요한 것은 딱 6도의 온도 상승일 뿐인 것이다.

- 1도 상승 :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작은 동식물들이 슬며시 멸종한다. 미국의 대평원을 비롯한 기존의 곡창지대들이 파멸하고, 식료품 값의 국제적 상승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기 시작한다. 흙을 붙잡아줄 식물이 줄어들면서 모래폭풍이 내륙 곳곳을 유린한다. 산호초가 붕괴되고 극지대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저지대들과 섬나라들이 침몰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모든 재앙의 시작이다.

- 2도 상승 : 비를 동반하는 몬순 기후의 성격이 변하면서 초거대 가뭄이 발생한다. 더위에 지친 노인들이 수력발전소의 가동중단으로 정전된 집에서 죽어간다. 농업은 붕괴되고, 실직한 사람들에게는 물 한 병 사마시는 것도 고통이다. 높은 산의 빙설 같은 수원의 고갈로 물 또한 귀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새로운 북극 항로가 열리지만, 미래의 인류는 북극곰이 보고 싶으면 반드시 동물원에 가야한다.

- 3도 상승 : 더위로 인해 인간 생존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저수지의 물이 증발하고, 굶주림과 거주지의 사막화가 곳곳에서 빈발한다. 건조해진 아마존 우림지대에 사상 최악의 화재가 발생, 숲 전체가 전멸한다. 해안 지역은 '슈퍼허리케인'에 파괴되고, 열대 지역은 벌레들에게 점령된다. 뜨겁고 메마른, 혹은 침수된 지역의 주민들이 식량과 살 곳을 찾아 대이동을 개시하고, 가난한 나라의 고통 받는 사람들과 '원인을 제공한'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갈등한다.

- 4도 상승 : 거대한 제방이나 방벽도 소용없이, 바다에 면한 모든 지역이 수몰되고, 불어난 바닷물에 생활터전을 잃은 수억 명이 피난길에 오르기 시작한다. 해안 지역 파멸에 따른 경제력 손실과 사회불안 때문에 재건은 고사하고, 난민이 된 사람들을 부양하거나 새로운 거주구역을 건설하는 일마저 요원하다. 한국에서도 강수량이 4분의 1정도 늘어나지만, 육지의 기온도 상승하여 땅이 건조하다. 비교적 시원한 북쪽 지역사회가 피난 온 남쪽 사람들로 붐비면서 법과 질서가 무너진다.

- 5도 상승 : 지구를 둘러싼 가뭄의 띠가 확산,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도 건조대에 편입된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분출되고, 이로 인해 해양사면이 붕괴되어 거대한 파도를 동반한 쓰나미도 발생한다. 국제 무역 시스템은 소멸되고, 자본시장도 붕괴하면서 대공황이 일어난다. 북극권을 확보하려는 중국과 미국이 러시아와 캐나다를 침공하고, 식량과 물을 확보하려는 생존자들 간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다.

- 6도 상승 : 갑작스런 심한 온실 상태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동식물이 죽어간다. 해수면이 뜨거워져 바닷물의 흐름과 순환이 중단되고, 메탄하이드레이트 구름이 폭발할 때마다 그 밑의 생물이 증발한다. 죽은 동식물의 사체가 썩으면서 유독한 황화수소도 발생한다. 오존층은 완전히 파괴, 지표면에 방사되는 자외선의 양이 크게 늘어난다. 바야흐로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된다.

* 이상 모두 <6도의 악몽> 중에서 인용

 이 모든 것을 그저 흥미진진한 재난영화 혹은 SF영화의 시놉으로 읽는다면 당신이야말로 최고의 '문명인'이다. 참고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에 따르면, 지구는 이번 세기 말까지 최대 6℃까지 온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내일도 모르는데 이번 세기는 너무 멀다, 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1~2도만 해도 충분히 고통스럽지 않을까? 물론 이 시나리오대로 된다는 보장은 사실 없다. 아무리 과학적 근거를 탄탄히 쌓아도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니까. 작은 가능성, 압도적 파멸. 선택은?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도무지 와닿지 않는 '현실적인' 당신이라면. 좋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결혼제국>은 어떨까? 일본의 30대 비혼여성을 집중 분석하고 있는 책의 키워드는 꽤나 자극적이다. 모라토리엄 증후군, 섹스 프렌드, 비혼, 성의 유효 기간, 여여 격차, 명품신앙, 젠더 게임 등등.

책은 일본의 30대 비혼여성을 적당한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인생 설계를 미루는 "결혼 대기조"이자, 실제로 결혼할 만한 남자는 이미 결혼을 해 불륜 시장에 발담그고 있는 "애인 예비군"이라 규정한다. (이들은 또한 '서브프라임 매리지'의 세대이기도 하다!) '나쁜 남자'들이 유포해 온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를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해온 그들은 이 가부장제(결혼제국)의 어쩔 수 없는 포로(혹은 노예)인 것이다.

일본의 여성주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하라주쿠 상담소 소장 노부타 사요코가 공격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결혼제국'이고 요구하는 것은 여성들이 이런 '결혼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꿈꾸는 것은 좀 더 건강하고 평등한 새로운 관계다. 물론 이 책은 두 저자의 '거침 없는' 대담집이니 오히려 술술 읽힌다. 가독성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는 말. 그렇다면 여기에서 스트레스 받을 사람은 다음과 같다.

1) 마초 남성 2) 그럼에도 결혼제국에 입성하고 싶은 미혼 남녀 3) 결혼제국이 잘못되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지만 발빼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기혼 남녀 4) 국가의 내일과 그 안녕과 '생산성'을 위해 불철주야 고민하시는 어르신들 5) 새로운 관계가 도대체 뭘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 그럼 "골드미스" 님들은 어떨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늘 스트레스 종합세트의 마지막 책은 <포스트 민주주의>다.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도 좋겠다. "신자유주의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흔히들 신자유주의의 공세 이후 민주주의가 약화 되었다고도, 후퇴 했다고도 하지만 저자 콜린 크라우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포스트 민주주의'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책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국민의 보편적 요구보다 기업 엘리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소위 말하는 '대의제의 딜레마'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시대'에 계급 관계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정당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붕괴, 더이상 정치가 계급 관계를 대변하지 못하고 다국적 기업이 강력한 제도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는 남아 포스트 민주주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좌측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집권 후 이해불가의 행동을 남발하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다)

"이 책은 '포스트민주주의'를 경제에서의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정치 현상을 설명하는 서술적 개념으로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 금민, 정치인

"'명박산성'을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지난 시기 노동자 계급이 맡았던 역할을 지금은 누가 이어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물음들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으로 답하고 있다."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그렇다면 이 책에 스트레스 받아야 사람은 누굴까? 바로, '포스트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기업, 정치계의 소위 사회 엘리트 계층은 빼도록 해요. 예우 차원에서…) 다른 것을 꿈꾸는 일은, 실은 꽤나 힘든 일이니.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건 물론 안좋으니,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연말이면 흔히 나오는 '감성 에세이' 같은 제목과 표지를 하고 있지만 실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의 회고록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이자 세상 누구보다 많은 자식들의 어머니로 여든을 살아온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한국 노동 운동의 역사이고, 무엇보다 생생한 한국의 현대사다. 그것들을 옮기기 위해서는 육백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함께 먹고 자고 때론 다투며 마침내 담아낸 이 한 권의 책에 더이상 수식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하여, 그저 한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이소선은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중간 중간 내게 물었다.
"내가 재장 피우고, 엄마 말 안 듣고 하는 이야기도 책에다 쓸라고 그라냐?"
"재밌잖아요."
"뭐가 재밌냐. 남들이 나를 보면 뭐라 하겠냐."
"엄마가 언제 남들 눈 생각하며 살았어?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지. 그게 이소선 아니야?"
"그렇지.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았지. 내가 우리 엄마한테 참 못되게 굴었어."

박실마을 앞산에서 금호강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이 나는지 이소선의 눈이 촉촉해진다. 이소선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안경을 자주 닦는다. 눈이 젖어 오면 안경에도 성에가 끼나 보다.

이소선은 운 적이 없다고 한다. 태일이가 죽고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울지 않았기에 청계노조를 만들 수 있었고, 이제껏 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소선과 한 밥상에서 밥을 먹기 전에는, 이소선과 한방에서 잠을 자기 전에는, 나도 이소선은 절대 눈물 같은 걸 흘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소선은 울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역사의 이방인들>은 '단일민족'인 한민족의 역사 속에 '끼어 든' 이방인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어제의 이방인들은 또한 오늘의 우리 자신이므로, 결국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의 탈신화화 작업이다. 중국인, 일본인, 북방 유목민족 뿐 아니라 아랍인들이 어떻게 한민족에 섞이고, 배제당하고 그럼에도 다시 한민족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탐구.

가장 흥미로운 예는 '백정'이다. 흔히 도축업자 정도로 알고 있는 조선시대 최하층민 백정이, 실은 유목민족의 후예로 '유랑'이라는 그들 고유의 생활방식을 조선왕조에 의해 억압당하고 사회 주변부로 배제된 존재라는 것. 어쨌거나 이들 역시 지금은 '한민족'의 당당한 선조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 여전히 우리 속에 내제된 그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책.

* 지난 주에 소개한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도 같이 읽으면 기쁨은 두 배…

11월 30일 ~ 12월 8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도 출간. 국내에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몇 개 대학에서 진행된 공개강연이 발딛을 틈 없이 찼다는 뉴스를 생각하면 조금 부족한 숫자인 것 같기도. (들리는 말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하면 사람 별로 안모인다고…) 뒷표지의 문구가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어 옮긴다.

교육학 신화는 지능을 열등한 지능과 우월한 지능으로 분할한다. 교육 논리가 전제하는 근본적인 '불평등'과 그에 대한 무지한 자들의 '동의'야말로 지적 능력을 실행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교육의 문제를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철학적.정치적 문제로 옮겨 사유한 랑시에르의 지적 모험!

'우등과 열등으로 이분하는 교육학의 신화'라면 우리도 익숙하다. 고등학교 시절 우열 분반 이동수업 같은 것. 수학B 반에서 만화책을 읽던 기억 같은 것. 그렇다면 랑시에르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이란 무엇인가? '옮긴이의 말'에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역시 옮기기로. (사실 이것도 뒷표지에 있다)

무지한 스승이란 무엇인가? 무지한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알지 못하는 스승이다. 그는 어떤 앎도 전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의 앎의 원인이 되는 스승이다. 그는 불평등을 축소하는 수단들을 조정한다고 자처하는 불평등의 사유를 모르는 스승이다.

그렇다면 굉장히 훌륭한 스승 되겠다. 랑시에르는 이런 아이디어를 19세기의 조제프 자코토에게서 빌려 온다. 네덜란드로 망명할 수 밖에 없었던 자코토가 프랑스 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되면서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 선생'과 '프랑스어를 모르는 네덜란드 학생'의 기묘한 조합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어의 기초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텔레마코스의 모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을 건네며 스스로 익혀볼 것은 주문한 것.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 알았다면 학교가 당장 뒤집힐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던 셈. 하지만 진정으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프랑스어로 써보라는 자코토의 주문에 학생들은 '작가 수준'의 프랑스어로 작문을 했던 것! (이쯤에서 문득 '영어몰입교육'이 떠오르는 것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무지한 스승'인 것이다. '똑똑한 스승'이 넘치는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책.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캠프힐에서 온 편지>를 함께 읽는 것도 좋겠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아줌마'가 그것에 한계를 느끼고 불혹의 나이에 독일에 유학을 떠난다. '발도르프 교육'을 배우기 위해서. 전인적 교육, 평등한 학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발도르프 교육학에 눈 뜬 그녀가 다시 발길을 옮긴 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버딘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 '캠프힐'. 아름답고 작은 공동체에 매료된 그녀는 한국에 발도르프 특수학교와 또 다른 '캠프힐'을 만들기를 꿈꾸며 이 책을 쓴다.

'다름'을 보여주는 이런 시도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같은 의미에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좋아한다) 모두가 똑같이 살고 있을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지도자'도, '이념 제공자'도 아닌 스스로가 오직 스스로를 위해서 '다름'을 살아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학원비, 과외비 허리가 휘고 애도 불쌍하지만 남들 다 하니까 부모된 도리로 뼈빠지게 부양하는 거 말고. 적어도, 그것 말고도 다른 삶이 가능한 사회였으면 좋겠다.

 

 

 

 

 

 

 

셰익스피어도 말했듯이 "끝이 좋으면 다 좋"으므로, 마무리는 아름답게 해야겠다. 역사와 예술의 향취에 흠뻑 젖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선물 세트, 라고 소개하면 적절할까. 르네상스 시대의 세 거장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삶을 그린 평전이 동시에 출간된 것이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의 저자인 정진국이 직접 외국의 고서점들에서 '발굴', 번역했다.

표지를 이렇게 한 자리에 놓으니 보기에 참 좋다. 내가 알베르 카뮈였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부러워한다.깊어가는 겨울밤, 따뜻한 방바닥에 굳은 배를 대고 이 책들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그러나 풍요로운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스크롤의 압박이;;; <스트레스>라는 책으로 시작 - 쓰는 이의 스트레스 - 읽는 이의 스트레스. 홍MD님의 경제경영 신간브리핑의 한 대목을 빌자면 "이런 걸 삼위일체라고 하나요?"
* 괴로워도 슬퍼도 스트레스를 받아도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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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MD 2008-12-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MD님 브라보~~

케모마일 2008-12-10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트레스 지수..30... 평균치가..14.....ㅎㅎ
걍 죽어갸 겠네..

활자유랑자 2008-12-1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영MD 님 / 옆자리에서 댓글 달자니 좀 쑥스럽네요 ;

케모마일 님 / 따뜻한 케모마일이라도 한 잔 하시면서... 스트레스를...; (저는 23점 밖에 안되네요;)

루체오페르 2008-12-1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 역시나 항상 좋습니다.^^

짱규 2008-12-1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야 멋져여~~굿^^

활자유랑자 2008-12-1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체오페르 님, 짱규 님 / 고맙습니다. 다음 번에는... '베터'로 ;
 


클루지 [klooji]
* 서투른 또는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 고장 나기 쉬운 애물단지 컴퓨터


'클루지'란 낯선 단어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 책을 설명하기 위해선 표지에 적힌 위와 같은 말뜻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공정하게 말한다면 '서투르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한 해결책', '고장 나기 쉽지만 버릴 수 없는 애물단지 컴퓨터' 정도가 적절할듯.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23세의 나이에 MIT에서 스티븐 핀커의 지도 하에 뇌와 인지과학 박사 학위를 땄다는(...) 저자 개리 마커스의 주장에 따르면 '클루지'한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단적인 예로, 수많은 사람들이 요통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한 개의 척추가 몸의 무게를 지탱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네발에서 직립을 하게 되면서 선택된 진화의 '임시변통(클루지)'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의 몸은 물론이고 우리의 마음 역시 '클루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으로써의 합리적 이성 따위는, 말그대로 믿음에 불과하다는 뜻. 저자는 기억, 신념, 선택, 언어, 행복 등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들을 탐구하며 그처럼 도발적인 주장을 증명해 낸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비판은 아니며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진정으로 멋진 일들은 '클루지'에서 시작하기도 하니까.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 위기상황에서 멋지게 탈출하는 맥가이버처럼!) 제목, 표지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새로운 통찰이 가득한 멋진 책이다.

"나는 개리 마커스의 놀라운 업적 덕분에 인간의 정신 활동을 가능하게 한 생물학적 토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 노암 촘스키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은 '민족'이라는 '만들어진 전통'을 탐구하는 책이다. 민족 정체성이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나 음식을 먹는 습관에서부터 관광,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과 대중문화를 통해 표현되며 그렇게 강화된 그것은 다시 우리에게 학습, 내면화 된다는 것. 하여 민족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또한 세계화를 통해 소멸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 어느 '민족'보다 '민족'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민족'임을 감안하면, 재미를 넘어 '필요'한 책이라 하겠다.

앙드레 고르는 우리에게 아내와의 동반 자살이라는 '스캔들'과 <D에게 쓰는 편지>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이름이다. 하지만 '사상가이자 언론인'이라는 이력으로 볼 때, 그의 '전공'에 관련된 책으로는 <에콜로지카> 첫 책이라고 해야하겠다.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라는 부제에서 보이는 문제 의식을 담은 7개의 글을 가려 담은 고르 입문서. (고르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맥마피아>는 출판평론가 조성일 선생의 말에 의하면 올 4월 출간 되었던 <나쁜 기업>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합법적인 기업들의 양지에서의 악행을 그린 책이 <나쁜기업>이라면, 음지의 기업(=마피아)들의 악행을 그린 책이 바로 <맥마피아>"라는 것. 꽤나 적절한 설명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이 자유화 되며 지하경제 또한 급성장, 전세계 GDP의 약 20퍼센트가 정부의 묵인하에 '그들'의 손안에 있다는 저자의 고발은 꽤나 충격적이다. (그야말로 '맥'도날드 이상이다) 자극적일 수도 있는 책의 내용이 단순한 '선정주의'에 그치지 않는 것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300여 명의 갱스터들을 인터뷰하며 '목숨을 걸고' 책을 쓴 저자의 노력 덕분. 파이낸셜 타임스, 골드만삭스 2008년 올해의 비즈니스 북으로 선정 되기도.

"뛰어난 탐구정신을 보여주는 이 매력적인 이야기 속에서 글레니는 발칸 반도를 분석했던 그 정열로 범죄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다. 그는 세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운영하는 국제 범죄조직을 해부하고, 지하 범죄 세계가 글로벌리제이션으로부터 이득을 보고 또 그것에 기여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일찍이 발자크는 말했다. "커다란 재산 뒤에는 커다란 범죄가 있다." 미샤 글레니는 우리 현대인들을 위하여 이 잠언의 타당성을 새롭게 조명했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

 

 

 

 

 

 

 

지난 5월에 출간 되었던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에 이어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가 출간 되었다. 전자가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이자, 젠더·인종·계급·문화의 정치학에 관한 다수의 비평서를 집필한 문화비평가, 교육가, 영문학자"(알라딘 저자소개 중)인 벨훅스의 '문화비평가'로서의 저작이라면,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번 책은 '교육가'로서의 책이라고 하겠다.

기존 제도권 교육을 혁신하고 좀 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을 고민하는 벨 훅스는 그 방법으로서 '흥excitement'을 제시한다. 흥은 경계를 넘어가자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교육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요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많은 책이다.

<체 게바라 파울르 프레이리 혁명의 교육학> 역시 교육에 관련된 책이지만 조금 낯설다. '체 게바라'와 '교육학'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피터 맥라렌은 그들이 공유한 신념을 주목한다. 인간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공부를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신념이 '교육학'과 연결되는 것이다. 책은 그들의 삶을 통해 그 신념을 풀어내며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짚는다. (개인적으로는 차고 넘치는 '교육 혁명'이 아니라, '혁명의 교육학'이라는 제목이 좋다)

사실 <공산당 선언>에 대해 첨언할 것은 별로 없다. 강유원 번역이라는 것 외엔. 다만 알라딘 DB에 11월 7일에 등록되어 현재는 절판이라고 표기된 정가 9000원의 책과, 11월 24일에 등록되어 판매중인 정가 8000원의 책이 함께 있는 이유는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전자에는 '홉스봄, 1998년 Modern Edition 서문'이 있고 후자에는 없다. 1천원의 가격은 딱 그 페이지 수 만큼이다. (저작권 문제로 빠지게 되었다고)

<과학이 나를 부른다>는 김연수, 고병권, 정진홍, 김용석, 정영목, 정재승 등 각계의 지식인 30인이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답한 글을 모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과학적인 것이 문학적이다'라는 제목의 김연수 작가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우연이겠지만, 얼마 전에 나온 김훈 선생의 <바다의 기별> 중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은 세상을 과학적으로 볼 줄 모른다는. 소설도 역시 주변을 '과학적'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그 말에는 적극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과학/정서의 이분법이 떠오르거나 괜한 거부감이 든다면, 이 책을 보시라)


* 원래 오늘은 '표지와 제목이 책에 있어서 갖는 존재적 지위에 대한 고찰'을 쓰려 했으나(…) 다음 기회에 써야 겠네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물론 개인적 취향으로, <클루지> 표지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요;)
* 눈이 잔뜩 온다는 예보가 있던데 과연 아침부터 흐리네요. 눈이 와도, 책들을 싣고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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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8-12-0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댓글 님 / 앗,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08-12-06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8-12-0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댓글 님 /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