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빛이 있으라 하시메 빛이 생기고, 빛과 어둠을 나누메 낮과 밤이 되었다. 비비디바비디부, 라고 덧붙였는지 기록은 말해주지 않는다. ™ 등록이라도 해두시지… 여하간 성경의 '창세'가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TV를 통해 쏜 눈빛 만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 있는 마당에, 구태여 신이 입을 벌려 창조를 명할 이유가 뭔가? 말의 권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 역시 말을 한다. 신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성. 벌이 아무리 화려하고 정교한 춤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돌고래가 초음파로 낄낄 대며 농담을 해도, 그것은 언어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신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라는 노래가사는 심각한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말은 "빛이 생겨라!" / "빛이 있으라" / "Let there be light" / "光よ. あれ" 정도 되겠다. 하지만 그것은 신의 말씀. 그렇다면, 처음으로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무얼까? 성경에 기록된 아담 최초의 말은 이브를 향해 내뱉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셰익스피어의 조상 답다!)는 말이지만, 이미 아부지 하나님 손을 잡고 날짐승,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 주었으므로 첫 말은 아니다.

난생 처음 언어를 가진 생명이 탄생했다면,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게는 옹알이일 뿐이라도, 인류에게는 기나긴 수다 정도는 될 터. 그런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성경에 차마 기록할 수 없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방송에서라면 '삑' 처리를 했을, "아놔-" 같은 추임새가 동반되는, 인류가 오늘까지도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그런 말.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도 나오지 않던가. 묵시록을 걸어 창세기로 나아가는 부자의 여정에서.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뭐예요?
남자는 피가 섞인 가래를 길에 뱉어(삑삑삑)냈다. (삑삑) 오늘 아침에 (삑삑) 잠자리에서 일어난 거. (삑삑삑!)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다윈에 따르면 우리의 유전적 형제는 유인원, 보노보나 침팬지인데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 없음에도 인간 자식들만 제 잘났다고 떠들어 대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진화의 갈림길에서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 유인원 형제들과 인류. 그렇다면 과연 어느 순간에 인간은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믿어지는 '언어 능력'을 장착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어떻게 '진화'했을까? 다시 말해, 최초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언어 없이 생각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식능력과 언어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진화의 어느 과정에서 최초로 언어 능력을 획득한 친구들을. 무수한 이미지의 파편으로 이루어졌었을 그의 사고가, 오늘 우리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그 친구들은 서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을까? 언어능력이 없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금쯤 무섭고, 어리둥절하고, 의기양양하지만 초라한,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 되는데.

이것은 분명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언어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금지 되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인 촘스키 할아버지께서 '보편문법'이라는 한 단어로("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며, 그 능력은 보편문법과 함께 인간 유전자에 내장되어 있다") 모든 상황을 일축시켜 버리셨으니, 일종의 불문율이 될 수밖에. 말의 권능이란 때론 얼마나 강력한지!

하지만 인지과학자, 생물학자, 유전학자,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이제 언어의 진화는 탐구 가능한 학문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매력적인 연구 분야로 떠올랐고 한다. <언어의 진화>는 바로 그런 역사를, 그 과정 속에서 서로 대립해 온 여러 주장을, 그리고 그것들이 각각 모이고 다시 나뉘며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의 지평을 보여준다. 아주 쉽고, 흥미롭게.

직접 요리한 음식이 맛이 없듯, 내가 쓴 '책소개'는 언제나 재미 없지만, 이 글만 보고 <언어의 진화>를 포기하면 속상하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언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에 다름 아니고,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저 유명한 명제처럼, 인간과 함께 언어 역시 진화해 왔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서사적 구조들은 '언어의 진화'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이란 말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을 절로 떨리게 만드는.

혹시라도 '인간과 언어의 제문제'에 관심있는 당신을 위해 <언어의 진화>와 더불어 함께 바벨탑을 쌓을 몇 권의 책을 추천하자면
















* 바벨탑에 깔려 분열증세를 보인다 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만, 모쪼록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맨날 듣는 소리가 페이퍼 길게 쓰지 말라는 말이지만, 그래도 지젝 책은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실은, 할 말이 별로 많진 않다. 군침은 돌지만 손도 못대고 입맛만 다시는 참이기 때문인데, 첫머리에 써있는 지젝의 말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언젠가 내가 신나게 떠들고 있던 방 안에서 바디우의
(설상가상, 내가 빌려 준) 핸드폰 벨이 울린 적이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끄는 대신 공손하게 내 이야기를 끊고는
통화음이 잘 안 들린다며 좀 조용히 이야기해 줄 수 없냐고 했다.
이것이 진실한 우정의 행위가 아니라면 나는 뭐가 우정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바디우에게 헌사한다.

* 오른쪽에 있는 작은 표지는 최근에 출간된 바디우 입문서. (바디우 자신이 공인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함께 읽으면 더욱 좋아요♥


* 어느덧 가을, 어떤 책들 읽으시나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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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라의 생각
    from tzara's me2DAY 2009-09-09 18:35 
    '가을, 당신이 읽어야 할 최고의 인문교양서 <언어의 진화>' http://ow.ly/oBYl
 
 
2009-09-10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5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1 2009-09-1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문MD님의 길게 쓴 페이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지시가 있다는게 안타깝군요. 말씀하신 것 처럼 독서의 계절입니다. 눈 앞에 수 많은 책을 쌓아두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또한 가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람이 너무 좋아져서요.
추천해 주신 책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읽어 보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좋은 하루 되세요.

활자유랑자 2009-09-15 15:43   좋아요 0 | URL
하핫. 그런 '지시'가 있었던 것까지는 아니에요. :)
저도 요즘 정말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어서 죽겠어요 ㅜㅜ

뒷북소녀 2009-09-1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짧아지는 인문MD의 페이퍼가 아쉬운걸요!^^
문학MD가 가을 타는 사람에게 추천한 책과 함께 꼭 읽어볼게요. :)

활자유랑자 2009-09-18 00:57   좋아요 0 | URL
언젠가 꼭 스크롤바가 깨알 같아질 장문의 대하 페이퍼를...
가을 타는 사람이 직접 추천한 책이니까 틀림 없겠죠. :)

황주희 2009-09-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이퍼를 보면 그 사람의 70%는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지요.
긴 페이퍼이지만 재미있으므로 지지하지요.
장장익선(長長益善) 흐흐

활자유랑자 2009-09-18 00:59   좋아요 0 | URL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 따르면 100% 라던데...
아무래도 장황한 성격이라 장황하게 밖에는 설명이 안되나봐요. T.T

홍대 ㄱㄱ? 2009-09-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아주 귀엽네요.
홍대 ㄱㄱ?

활자유랑자 2009-09-28 16:56   좋아요 0 | URL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Pak Noja - in Dusseldorf Airport - face only - May 2008, 사진제공 : 박노자)


박노자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도서팀에 근무하고 있는 금정연이라고 합니다. 인문, 사회 분야를 담당하고 있어요. 먼저 인터뷰 메일이 조금 늦은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인터뷰는 저희에게 일종의 가외 업무거든요. MD란 이름처럼 merchandising, 즉 책을 판매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업무가 바빠 메일을 미룬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업무는 바빴지만 그와는 별개로, 도무지 질문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를 읽고, <후퇴하는 민주주의> 중 선생님의 강연 부분을 아무리 읽어도, 머릿속만 복잡해질 뿐 구체적으로 잡히는 질문은 없었어요. 너무 커다란 의문들, 도무지 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의문들 밖에. 그런 질문을 드리는 것은 물론 예의가 아니겠죠.

  실은, 이 인터뷰는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련의 사회적인 사건들이 오늘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저를 너무 괴롭게 했고 그와 동시에 생활인으로서의 하루하루가 저를 너무 지치게 했어요. 물론 많은 이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따라서 이런 말은 그저 유치한 투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투정을 부리기 싫었던 거예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업무(물론 가외업무지만)를 가장한 이메일을 통해서.

  그래서 실은, 직접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얼굴을 맞대면, 더 이상 생면부지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더듬더듬, 거대한 의문들의 꼬리라도 잡아 내어놓으면 무언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가외업무에 미숙한 MD라도,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아리아드네의 실을 더듬는 테세우스도 아니면서.

  그럼에도 이 설익은 질문들은 보내지겠지요. 속에서 끓고 있는 생각들, 의문들을 좀 덜어내야겠다는 생존본능과, 밥값은 해야겠다는 의무감과, 선생님이라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거라는 기대감이 공존하는 질문지가. 그래도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금 이상한 인터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따끔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정말 선생님께 숙제를 제출하는 기분이네요)

  고맙습니다.



알라딘 : 사회구조에 관한 담론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노자 : 저는 인간에게 그 어떤 정해진 “본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일개의 동물이지만 여타 동물들과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좀 다릅니다. 예컨대 보통 동물들은 동종을 죽이지 않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살인”이란 거의 그 역사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달리 그 존재의 유한성을 절감할 수도, 자기 자신을 상대화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의 능력도 자기 지양의 능력도 여타 동물에 비해 월등합니다. 결국 선 내지 악으로 인간을 유도하는 것은 복합적 의미의 “상황”이라고 봅니다.

알라딘 : 성악설, 성선설, 성무선악설 같은 고전적인 인간관 외에도, 뇌과학과 인지신경과학 등의 발달로 과격하게는 자유의지란 없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문, 사회과학과 함께 자연과학 분야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해당 분야에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인간의 이성은 믿음직한 도구가 아니’라는 관점이 팽배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주장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은 물론 절대진리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정말로 이런 주장들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박노자 : 인간의 이성의 한계란 몇 가지 엄연히 있습니다. 첫째, 감정, 특히 집단적 공포 내지 혐오 등이 개입되면 인간은 맹수 이상의 맹수가 됩니다. 둘째, 정보 보유량의 제한과 고정관념에 의해서 이성을 십분 활용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보통 시장경제 이외의 그 어떤 경제 시스템도 잘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우리의 모든 “이성적” 판단을 그 틀 안에서 하지만, 사실 이것도 하나의 고정관념입니다. 시장 경제에 대한 대안 관련의 정보 및 인식이 부족한 것입니다.

알라딘 : 책이 출간되고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찔할 정도로 커다란 사건들이 벌어졌습니다. (쌍용차, 미디어법 등) 그럼에도 분노한 ‘개인’들만이 존재하는 것은, 블로그에서 언급하신 그대로 ‘파편화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수전 손택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모든 매체들이 ‘클릭수’만을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들을 뽑아내는 사회에서 어쩌면 고통은 그저 소비되고 마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듦’의 정신이 사라진 대학생들의 예처럼,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세상을 사고할 새도 없이 경쟁의 장에 던져진 채 자본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미디어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경향에 불을 지피겠지요.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삶은 어떨까요? 자본을 매개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고, 자본 이외에는 욕망할 수 없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요?


박노자 : 모택동의 유명한 말 대로 “억압이 있는 곳에는 늘 저항이 있다”는 건 역사의 철칙입니다. 단, 억압의 강도와 종류에 따라서 저항의 방법도 천차만별이 됩니다. 예컨대 시위 등이 불가능한 북한에서는 유망, 국외 탈주, 불법 복제된 한국 내지 중국 비디오 시청 등은 주된 저항 방법으로 이해됩니다. 남한의 경우에도 자본의 질서에서 배제되거나 하위배치된 인간들은 분명히 가만히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앞으로 예컨대 지방대 학생들은 새로운 저항의 선봉에 설 듯합니다. 이 시스템에서 그들로서 비정규직조차 되기 힘들고, 이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노비 문서” (지방대 학력)에 의해서 어차피 평생이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컨대 실업자 박사나 시강 강사 등 자본주의적 앎의 질서에서 소외를 당한 이들은 앞으로 수유연구실과 같은 대안적 앎의 공간을 더 만들 가능성도 큽니다. 발버둥쳐서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는 건 인간 생명의 기본 원칙인데 말씀입니다.

알라딘 : 죽음은 이제 가장 좋은 상품이 되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요. 문제는, 애도조차 소비의 형태로 소비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엔 도대체 소비되지 않는 게 무엇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인문사회과학서적이라는 ‘상품’을 다루는 merchandiser로서 인문사회 분야의 침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상품’ 중에, 같은 돈을 주고 고민을 사들이려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은 돈이면 즉각적인 감동과 재미, 위로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아가, 인문사회과학서적의 어떤 독자층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의문을 인문사회서적을 구입하는 행위로서 소비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그런 책을 읽는 고행(?)을 통해, ‘나는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위안을 얻고 동시에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데 아무래도 불편할 생각들을 해소하는 것이지요.

조금 바꿔 말하자면, 정체성을 소비를 통해 구현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예술 영화를 보고 고급스러운 전시회를 찾아다니듯, 흔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을 구입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는 목적이 더 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요?


박노자 : 분명히 그런 부분은 있습니다. 노르웨이 사회만 해도 청소년 사이에서 촘스키를 읽고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지지 데모에 다니는 것을 괴장히 “쿨한” 행위로 통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문제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파악 등도 없이 “집단 정체성에 자기를 맞추어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지요. 미국에서 흔히 쓰는 표현대로, “반대의 상품화” (commercialization of protest)입니다.

여기에서는 예컨대 진보정당 등은 “진정한 반대의 조직자”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진보적인 인문교양서를 읽어 감동 받은 독자가 단순히 “나는 진보다”라는 의식을 단순히 자기 위안 내지 자기 차별화 전략으로만 삼지 않으려면 그 후에 진보정당이라든가 진보 단체 등에 가입하여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실, “활동”/”실천”이야말로 진보의 진정성의 시금석일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 프랑스 등과 달리 – 아직도 진보 정치 등을 쉽게 일상 속에서 접근하기가 힘들어서 문제입니다.

알라딘 : 스스로에게 위 질문을 던졌을 때 단숨에 ‘아니’라는 대답을 할 없었습니다. 아마도, 분야 및 직업의 특성상 너무 오래 그런 책들을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사실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 는 그저 변명일 뿐인 변명을 하면서.

그렇다면, 이 사회에 의문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하지만 생활을 위해 지금 갖고 있는 직업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되는 생활인으로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박노자 :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관심”이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지요. 진보적 NGO를 위해 약간의 금전적 기여를 한다든가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는 언론이나 그 언론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항의 전화 하나 건다든가… 작은 일 같지만 수천 명, 수만 명이 같이 하는 작은 일은 바로 큰 일이 됩니다. 그 “공동의 관심”의 영역이란 사라지면, 우리가 사회가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는 것은 바쁜 삶 속에서도 가능하지요. 

알라딘 : 저작권법이 강화 되었습니다. 아직 정확한 실체 없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소문들은(확인하고 싶었지만 다들 하는 말이 달라서) 개인의 블로그에 영화 스틸이나 노래 가사를 올리는 것도 위법이라고 하는데요.

얼마 전에, 한 게시판에서 불법음원에 대한 포스팅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이제 노래도 듣지 말라는 거냐”고 툴툴 거리자, 다른 분이 “노래는 안 들어도 안 죽는 거 아니냐. 돈 없으면 듣지 마라”고 댓글을 달았지요. 얼핏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가만히 생각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문화는 하나의 공공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러니까, 누구나 밥을 굶지 않는 사회가 옳은 사회 듯 누구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옳은 사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작권자의 권리 또한 보호해주는 것이 맞는 것 같고.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책의 저자라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노자 : 제 생각 같으면 공공 재정으로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물 등은 당연히 공공재임으로 저작권을 주장할 일은 없습니다. 예컨대 노르웨이 납세자 돈으로 운영되는 제 대학에서 제가 혈세로 이루어지는 노르웨이 학진의 연구비를 받아 논문을 썼으면 그 논문을 당연히 그냥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제 학교 사이트에 게재합니다. 학술저널에도 게재하지만, 그 저작권과 무관하게 공공재로 활용하자, 이것입니다. 그런데 공공 재정이 아닌 “시장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소설작가나 음악가 등은, 아무래도 저작권법을 뛰어넘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만약 어느 정도 살 만한 수입이 일단 확보되면 이 분들도 자신의 저작물을 공공재로 활용할 것을 권고할 수 있지만, 요구하기가 좀 힘듭니다. 시장 경제로서의 제약이지요.

알라딘 :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야 한다는 것에는 크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자본에 의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직장인으로서 상충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상품을 공급하는 A, B, C 라는 업체가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A와 B는 원가 절감을 단행하여 가격을 인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방식은 하청업체나 비정규직에게 부담을 돌리는 방식이죠. 그래도 신조가 있던 C 회사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으나, 점점 더 채산성이 악화됩니다.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내리거나, 혁신적인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회사는 문을 닫을 것입니다. 물론 혁신적인 방법은 찾을 수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 C 회사는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이때, C 회사에 다니는 직원은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박노자 : 이러한 상황이라면 “일체 직원의 동등한 자진적 임금 삭감 및 같은 비율로서의 기업주의 이윤 포기” 정도면 가장 정당할 듯합니다. 희생을 당하자면 기업주와 노동자들은 같은 비율로 희생을 치르고 (예컨대 15% 감봉 및 15% 이윤 포기), 다들 그대로 “정규직”으로 남는 것은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원칙상 과도한 출혈 경쟁, 부당한 단가 내리기 압력 등을 공정거래위원회 등 공공 기관에서 단속을 해서 행정지도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즉, 그러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게 해야지요.

알라딘 : 여전히 작은 회사에서 노조는 유명무실한 존재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직장인들에게 노조의 필요성을 말씀해 주세요.


박노자 : 노동력의 공급이 수요보다 늘 많은 통상적 노동시장에서는 노동력을 파는 노동자와 노동력을 사는 기업주는 원천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입니다.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표방할 만한 힘은 보통 없습니다.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수십만 명의 “예비노동군”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노조라는 연대 형식이 아니라면 노동자의 인생은 늘 “울면서 겨자먹기”입니다. 당하지 않으려면 노조를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알라딘 : 좋은 세상이 오기 위해선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과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오래도록 대치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노자 : 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 속에서 개인들도 바뀝니다. 예컨대 월남 전쟁 반대를 외치거나 흑인 시민 운동 투쟁을 전개했던 사람들을 지금 봐도 보통 알아볼 수 있지요. 투쟁 시절로부터 남은 “열정”, “관심” 남에 대한 “배려” 같은 걸 엿볼 수 있지요. 그런데 반동적인 보수화의 시대에 개인들도 잘 바뀌지 않아요.

알라딘 : “역사의 ‘진보’는 늘 인간의 ‘선’인가”라는 꼭지에 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에 대한 단평이 있습니다. “왕치아즈와의 섹스에 탐닉하게 된 반민족분자 리가 결국 선물 공세 등의 방법으로 왕치아즈로부터 자백을 끌어내”라는 부분에서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는데요.

반민족분자 리가 왕치아즈와의 섹스에 탐닉하게 되는 것은, 어떤 사랑의 절망적인 한 행태가 아니었을까요? 또한 선물 공세는, 자백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닌 반민족분자이지만 또한 장기판의 한 졸(말 정도 될까요?)일 뿐인 한 망가진 자신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모든 이들이 가련하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알량한 신념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미끼로 이용한 무능한 남자 쾅유민, 반민족분자로 악마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에는 무력한 남자 리, 격동의 시대 속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지만 이념과 사랑 모두에게 배신당한 왕치아즈. 이 세 명의 인물을 통해서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이.


박노자 : 네, 그 영화에서는 제가 바로 이 부분을 배웠어요. 순전한 피해자도 순전한 가해자도 없다는 사실, 폭력의 역사는 결국 가해자도 피해자로 만들고 선인에게도 악인되기를 강요한다는 사실… 반민족 분자도 결국 그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주인들에게 언제가 “팽”을 당하게 돼 있고, 중국 국민당도 “항일 저항”과 “독재”/”광적 민족주의”과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역사의 “복합성”을 배우게 하는 영화입니다. 흑백 역사관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되지요.

알라딘 : 직장 동료의 질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냉전과 사회주의 국가의 폐악을 목격한 당신은 자본주의 지배하의 북유럽식 사민주의가 현재로선 가장 인류에 적확한 차악으로서의 체제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 북유럽식 사민주의의 도입이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점거한 국내의 정치 현안을 고려해봤을 때 얼마만큼 적용이 가능하다고 여기는가?”

박노자 : 네, 노동자들이 진보 (사회주의적/사민주의적) 정당을 만들어서 사민주의 제도를 쟁취할 만한 힘을 갖기만 한다면 차라리 그러한 제도는 지금의 세계로서는 차악입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를 보면 아시겠지만 주변부 국가에서는 사민주의적 변혁 (무상 의료 등)을 쟁취하기 위해 거의 “혁명”에 버금가는 대중적 동원은 필요합니다. 준핵심부인 한국은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민주의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아요. 아주 힘든 투쟁의 결과죠.

알라딘 : 이번에는 다른 동료의 질문입니다. “백낙청씨가 이번에 책을 내면서 '한국에는 좌파의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했는데, 탈중심주의나 아나키 계열의 진보계열이라면 오히려 이 특징을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 같다. 좌파의 구심점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박노자 : 사상적으로야 당연히 좌파가 다원적일수록 좋지만 정치적으로는 구심점은 좀 필요합니다. 정치판에서는 “대중적 좌파 정당”이란 있으면 그래도 사민주의적 변혁을 향해서 한 발짝씩 나아가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런 게 없다면 “북구식 사회 꿈”을 꿀 수도 없지요. 그래서 다양한 변혁 지향적 개인 및 단체들은 그 차이를 계속 간직하는 채 “통일전선”쯤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할 듯합니다.

알라딘 : 분위기를 바꿔서, 좋아하는 밴드(음악)는?

박노자 : 저는 거의 고전 (클래식) 음악만 듣습니다. 와그너와 스크랴빈, 사티를 제일 좋아합니다.

알라딘 : 러시아어로 읽는 도스토예프스키(혹은 고골, 체호프, 톨스토이, 푸시킨, 투르게네프)는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는 것과 어떻게 다른 가요?

박노자 : 어감이라는 건 다르지요. 상당부분의 “러시아적 표현”들을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하기가 힘듭니다. 함의가 좀 달라서요. 물론 “한국적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의기 투합”, “비분강개”와 같은 표현들의 함의를 온전하게 담을 영어 내지 러어 번역어를 찾기가 힘들죠. 마찬가지로, 러시아어 “poshlost’” 같은 단어를 사전적으로 “속된”, “속물성”, “통속성” 등으로 옮길 수 있지만 “진짜 문화”와 “가짜 문화”를 구별케 하는 이 단어의 심층적 함의를 옮기기가 좀 힘듭니다. 사실, 자본주의 세계 소위 대중 문화의 99%는 이 “poshlost’”이라는 단어로밖에 성격 규정할 수 없습니다.

알라딘 : 마지막으로, 어쨌든, 그럼에도 이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박노자 : 세상의 역사에 좋은 시절이란 없습니다. 1980년대말까지의 독재 억압도 만만치 않았듯이, 오늘날의 자본의 억압도 사람을 거의 질식사시키는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이 결국 독재의 족쇄를 벗길 수 있었듯이 자본도 결코 불가항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싸워봅시다!

알라딘 :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 편집된 인터뷰는 9월 중 알라딘 저자 파일 란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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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수 2009-09-2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질문자나 답변자 모두 어쩌면 이렇게 편협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사회를 보는지 안타깝습니다.
자본주의제도나 현사회가 여러가지 문제를 갖고 있는것만은 사실이지만 이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군요...알라딘을 통해서 필요한 모든책을 구입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가끔씩 알라딘의 운영주체의 사상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요...오늘 이글을 보니 참으로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생각의 시계가 마치 1970년대 수준에 멈추어있는것은 아닌지...실망입니다....-.-;;

터앙 2009-10-08 15:1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운영주체의 사상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어떤데요... 자신과 맞지 않나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 사회인데... 자유는 반대자들을 위한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인정 못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2009-09-2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임대수님. 박노자님의 책을 읽어보셨다면 편협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사회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실텐데...위의 짧은 인터뷰가 모든걸 말할 수는 없는것이니까요. 제가 인터뷰를 보고 느낀 점은 현 상황을 타도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본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아울러 알라딘의 운영주체 사상이 바람직하다 싶어 좋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자본주의는 현재 대통령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돈만 있으면 된다는 사상에 대한 비판이라 생각되는데요.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책을 꼭 읽어봐야겠구나 싶습니다.

활자유랑자 2009-09-2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이 알라딘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편협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으신다니 아마 제 글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흠 님의 말씀처럼 한번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임대수 님의 기억에 '편협하고 왜곡된' 기억으로만 남기엔 아까운 책이라서요. 고맙습니다.

안중근 2009-10-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일들 중 하나는 국외자의 시건방진 참견일 것이다. 바둑을 둘 때 옆에서 쓸데없이 훈수하는 자들과 같은 것이다. 자신은 개관적인 제 3자로 존재하면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참견은 그야말로 꼴볼견이다.
사실 박노자라는 국외자가 어떤 인간인지는 잘 모른다. 아니 알고싶지도 않다. 저런 쓰레기인생 하나가 대한민국을 농단하는 자체가 정말 가소롭고도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박노자가 말하듯이 그렇게 모순만 가득찬 사회도 아니고, 척결해야 할 대상이 따로 존재하는 왜곡되고 막힌 사회도 아니다. 엄연히 세계질서 속의 선진그룹에 속하는 국가이고, 또 내부적 모순을 스스로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로 개선해 가려는 성숙함을 이미 익히고 있는 나라다. 참으로 어슬픈 지식 나부랭이로 우민을 농락하는 선동적 발언에 쓴 웃음이 나올 뿐이다.
박노자......당신 나라가 우리보다 앞섰다는 오만에서 빨리 벗어나라.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의 첫 걸음임을 명심하고.

lost paradise 2009-10-01 17: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너, 안중근의 이름에 먹칠하지마라, 걸레처럼 말할라면.

이놈의잉여 2010-03-09 17: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세계질서속의 선진그룹이라는 표현에서 웃으면 되나요? ㄲㄲㄲㄲㄲㄲ

활자유랑자 2009-10-0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의 국적은 한국입니다...

lost paradise 2009-10-01 18:1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인터뷴데요, 이론적만이 아닌 구체적인 현장에서 벌어질수있는 시장경제에서의 박노자가 생각하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대안등등. 흔히들 보수쪽에서 대안없는 비평이라고 비난들 쉽게 하니깐. 영화 색계에 대한 이해도 공감이 많이 됨. 어떤이가 그영화보고 내용없는 포르노처럼 평해서 첨에 안 볼려다 노느니 봤는데 극장을 나서면서 한참 가슴이 찡했슴.
다만 소신있으면서 한편 객관적이고 당당한 인터뷰어의 자세가 약간 아쉽군요. 근데 과외아닌가? 가외란 말이 자꾸 거슬리는데...내가 틀렸나?

활자유랑자 2009-10-06 17: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메일 인터뷰라서 사실 자세(?)를 잡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 가외 [加外]
[명사] 일정한 기준이나 정도의 밖. ‘표준 밖’, ‘필요 밖’, ‘한도 밖’으로 순화.

* 과외 [課外]
[명사] 정해진 학과 과정이나 근무 시간 이외.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말씀하신 것처럼 '과외'가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심정적으로는 역시 '가외'인 것 같아요. ;;
고맙습니다. :)

두돌아빠 2009-10-0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의 댓글 수준 참 불쌍해서 눈물이 다 나네요.
세상에는 별의별 생각을 가진 저자가 있을 것이고, 또 일부일지라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독자들의 알권리를 대변해서 그 사람에게 인터뷰를 청한 MD입장에서 나름 바쁠지도 모른 그 작가에게 일부러 감정자극할 엇지장 내지 선전포고할 이유가 없잔소.
박노자란 사람의 출신배경이 특이한 사람이고 그래서 나름 독특한 시각으로 한국을 보는 것이고,
그게 맘에 들면 책을 사보는 것이고, 맘에 안들면 그냥 넘어가면 될것을 박노자의 책을 판매하는 책방을
문제있는 책방으로 몰아붙이고, 박노자의 생각을 물어보는 인터뷰어를 빨간색옷입는 사람으로 치부할 정도라면
그냥 좋아하는 포르노사이트에서 좋아하는 체위의 사진이나 실컷 보시요, 어서~~~

두돌아빠 2009-10-0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마디만 더 붙이자면, 외국놈이 감놔라 배놔라한다는 식의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이야기좀 고마하시오. 우리집에 베인 냄새가 똥냄새인지 된장냄새인지는 바깥사람일수록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식대로 자주적으로 살테니 간섭마라는 말투는 오히려 북쪽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게 아닌가요.
한국축구를 4강으로 올린 히딩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통찰력을 갖춘 외국인의 조언과 시각을 잘만 소화해낸다면 엄청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수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폐쇄적인 닫힌 사회입니다. 2차대전을 일으켜 패망한 독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봅니다.사회주의도 마찬가지죠. 사상적 뿌리가 다르더라도 열린 사회가 된다면 북한이 저리도 독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순혈주의에 입각한 폐쇄적 민족주의가 판을 친다면 볼장 다 본 나라가 될 것입니다.
글로벌 환경에 맞춰 다양한 문화와 이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사회만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박노자의 주장은 입에는 써도 삼키면 큰 도움이 되는 보약이라고 봅니다. 더 나아가 박노자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이해수준은 애국을 논하기가 부끄러워 누가 진골한국인이고 누가 무늬만 한국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합니다.

임대수 2009-10-0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가 단 댓글에대해서 다시 댓글이 달릴줄은 몰랐는데...어쨌던..."타도"라는 단어보다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나는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사회를 (또는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물론 그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사람마다 제민족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점을 인정합니다.단지 위에서 언급된 사회,경제적인 여러 문제들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이 그러한문제들의 개선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지(그런 순수한 의도)에대해 의심이 간다는 것이지요...또한 위에 달린 댓글들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요즘 우리사회는 마치 현 정권의 정책이나 정권자체를 비방하는사람이 진보적인(또는 지식인)사람인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자본주의와 현직대통령이 돈만 있으면 된다는 사상이라고 말하셨는데...그런의견에는 정말 동의하기 어렵군요...

임대수 2009-10-0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국민들의 자유의사로 대다수의 지지를 통해 선출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그리고 전쟁의 폐허속에서 우리를 이만큼이나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도록 하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그런 우리의 대표를 "돈만 있으면 된다는"식으로 비방하는것은 "자기얼굴에 침밷기" 아닐까요?...물론 앞으로 박노자의 글을 읽어볼 생각입니다...그리고 댓글수준때문에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신 분은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렇게 비난한분과 별차이 없어보이는군요."좋아하는 포르노사이트"나 보라니요...참으로 입에담기에도 부끄럽군요.우리나라 댓글의 수준을 스스로 떨어뜨린다는점을 알아야할 것 입니다.우리사회는 현재 이념(사상)으로 넘쳐나고 있읍니다.지나치다 싶을 정도지요.정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일반국민들사이에 논의되고 있는것 같습니다.사실 좋은 사회란 일반인들이 정치 및 이념으로부터 무관심한(정치에 대해 무관심할 정도로 평화롭고 행복한)사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댓글을 달때 왜 본인의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본인을 정확히 밝히고 의견을 주장하면 좋겠읍니다.마치 숨어있는 사람들과 무의미한 대화를 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때가 있거든요...ㅎㅎㅎㅎ

활자유랑자 2009-10-0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목소리들이 좋아요.

나그네 2009-10-1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럽 국가들의 사회가 선진적인 것은 수 세기동안 이어온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며, 그 힘의 원류는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에 닿아있다. 그들은 긴 세월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사회시스템을 발전시키고 공동체가 잘 살 수 있는 구조를 쌓아 왔다. 우리가 못나서 지금 이꼴로 살고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을 그들의 사회와 일대일로 비교해 폄하하는 일은 역사를 보지 못한 자들의 편협한 견해이며 스스로를 비하하기를 즐기는 소인배들의 의견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려면 먼저 역사의 무게에 눌려 치열한 삶을 살다 가신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건 그 분들 삶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진보니 보수니 다들 자기가 옳다고 싸우는 걸로 잘난 척들 그만두고 화해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명박이 싫은 자들은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에 대해 공부하고,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왜 저사람들이 이명박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거울을 좀 봐야한다.

활자유랑자 2009-10-16 16:59   좋아요 0 | URL
네. 다만 '일대일로 비교해 폄하' 한다기 보단, 우리가 좀 더 좋은 사회를 살기 위해 그들을 '참고'할 수 있다, 정도 수준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일대일로 비교해 폄하하자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나그네 2009-10-1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필요조건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돈이다. 우리 경제 규모에서 의료, 교육, 노동(실업, 비정규직), 사회복지 모든 분야에 기본 수준을 맞추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하고 - 왜냐하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동료 비정규직을 위해 스스로 임금을 내릴 뜻이 전혀 없고, 선생님들이 무상 교육을 위해 그들의 임금 수준이나 교원 연금을 포기할 의사도 없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 아프면 평균이 아닌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원하고 또 그걸 욕할 순 없고, 공무원들이 일반 노동자 수준으로 임금이나 연금, 노동 조건을 완화(?)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세금으로 그 모든 걸 해야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색적인 철학의 차이가 있다. 내가 일해서 번 돈을 얼마나 나눌 것인가? 소득의 거의 절반을 가져가고, 직장을 잃어도 이전 임금의 70%를 준다면 모두가 만족할까? 나 같으면 부자 안하고 놀겠다. 늘 결론이 그렇게 나지만 모순은 제도에 있는게 아니라 우리 인간 안에 있다. 그 모순 덩어리 심리현실에 주목하고 반성해야지 제도나 체제에 문제가 있는 냥, 그걸 고치려 투쟁하고 또 그러면 뭐가 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선동으로 밖에 안 보인다. 미친 소리로 들릴 줄은 알지만 지금 자본주의로도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걸 원한다면...

전등사 2009-11-1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MD님 박노자 교수님 이메일 주소 좀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학교 교지를 만드는데 박노자 교수님 견해를 얻고자 하는데 이메일 주소를 구하기 힘들어서요. 답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활자유랑자 2009-11-16 13: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MD 입니다.
개인정보라서, 쉽게 알 수 있고 없고의 여부를 떠나, 제가 가르쳐드리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 박노자 교수님 블로그 주소를 링크합니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로스 클라반 : 오늘날 우리의 문명과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커트 보네거트 : 먼저, 왁자지껄한 텔레비전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중요해. 텔레비전에서 문제랍시고 떠들어 대는 것들, 마치 우리가 반드시 걱정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일들에서. 문학이야말로 관객들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 형식이 아닌가. 우리들은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대단히 잘 읽을 수 있어야하네. 아이러니를 느낄 정도로 읽어야 한단 말일세!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숨은 뜻까지 알아챌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박식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기를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란 말일세. 내가 <타임퀘이크>에서 말한 것처럼, 읽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사실 그건 불가능해. 문학이란 고작 26개의 표음 문자와, 열 개의 아라비안 숫자, 여덟 개 정도의 구두점을 독특하게 일렬로 줄 세우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물론 당신들처럼 인쇄된 책을 보고 머릿속으로 워털루 전쟁을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for God's sake!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미국인 중 1400만 명은 운전면허시험 원서를 작성할 만큼도 읽지 못한다네. 그러니 우리의 관객층은 넓을 수가 없어. 우리가 필요한 건 꽤나 숙달된 관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숙달된 관객이니... (관객들에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만큼 배워줘서 고맙소. [웃음]

- 커트 보네거트, 대담집 <Like shaking hands with God> 중에서
(* 주의 : 이 글은 긴데다 미괄식이므로 알라딘 관계자 혹은 출판 관계자 분들은 중반 이후부터 읽어주시기 바람)


팔자에 없는 북한산 야간산행(이라고 쓰고 행군이라고 읽는다)을 마치고 맞은 토요일 오후를 통째로 '쇼 음악*심', '스타골*벨 - 아이돌 특집', '무한*전 - 서바이벌 특집'을 보며 날려버린 (소위) 인문MD가 이런 말을 인용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입사 3주년이 되는 날. 

사실 책에서 면제(면'죄)되어 맘껏 TV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금요일 밤 해치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 덕이다. 왜,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는 것도 있지 않는가. '막장'을 파는 광부들 처럼 헤드랜턴을 켜고, 저녁 8시에서 새벽 3시까지 산을 탔는데, TV 좀 보는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래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생각외로. 인간은 때론 아주 깊고, 어두운 일들을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니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실은 8부 능선을 넘을 때 즈음에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나나나 나 나나나나나 나나나나… 한참을 흥얼거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인터*크 CM송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 자리에 부장님이 계셨다는 얘기를 했던가?)

바로 그 산, 새벽 한 시, 저 위 9부 능선에서, 누군가, 외쳤다. 

"허경영!"
뭐라고? 설마…

귀신이라도 만난듯 긴장한 내 달팽이관 속으로 파도처럼 쏟아지는 그 이름. 허경영경영경영 허경영경영경영… 아, 누군가 '시험합격을 / 살이 빠지기를 / 키가 크기를 / 예뻐지기를'(허경영 디지털 싱글 'Call Me' 참고) 그토록 바라는 것인가 싶어 순간 손발이 오그라들던 새벽 한 시, 북한산에서, 나는, 물었다.

어째서 삶은 이토록, 인간을 힘들게 하는지. 과연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집에 돌아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잠을 청하고 맞은 오후, 이미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LG의 경기를 돌려 보며, 1사 만루에 타석에 등장한 페타지니를 향해 속절 없이 "허경영!"을 외칠 뿐. 바로 그 순간 페타지니의 배트에 맞은 공이 담장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모습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도,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된 것을 확인하며 씁쓸하게 웃을 뿐. 그럴 뿐.

인생이라니, 세상에.


오래된 농담이에요. 음, 리조트에 할머니 둘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는 거죠.

"세상에, 여기 음식은 정말 끔찍해!"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말하기를, "그래 맞아, 게다가... 양까지 적어!"

그게 바로 내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에요. 외로움과 비참함,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차있는 데다가…
그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나버리죠.

- 앨비 싱어, <애니 홀> 중에서

조금 망설이던 나는, 다시 책을 집는다. 책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더이상 믿지 않아도. 너무 많은 책을, 너무 가볍게 읽어 버렸다는 생각이 눈을 찔러도.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여전히 누구도 내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같은 말을 해주지 않아서.

적어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거라는 위안 몇 조각을 손에 쥐고. 어쨌거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온 일이니까. 3년 넘게 연애해 본 사람들은 내 기분을 아마, 이해하겠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만큼 멍청해줘서 고맙소!"


(* 상단의 '주의'에 해당하신 분들은 여기서부터 읽으세요)


한 언어학자의 아마존 오지 마을 탐방기인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와 한 사회학자의 시카고 빈민촌 방문기인 <괴짜사회학>는 모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조우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한 책이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학문(사회학)과 다른 책이 깊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학문(언어학, 인류학)에도 불구하고 책들은 각각 '사회인'과 '문명인'이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성장담을 닮았다. '사회인' 혹은 '문명인'이라 이름 붙여진 인생이란 결국 '레디메이드 인생'에 다름 아니니까.

결국 오늘날 성장이란 우리가 깊숙히 지니고 있는 문명인의 프레임을 깨트리는 것. 공장에서 찍어내고, TV에서 광고하는 우리들의 행복과 사랑과 불행과 절망과 고통과 즐거움, 그러니까 인생을 넘어서는 무엇을 비로소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일 테니까. (그러니까, '입사식'으로 표현되는 교양소설의 전통은 이미 21세기에 유효하지 않단 말이다, 그것은 이제 성장도 뭣도 아니니까)

선교를 위해 아마존의 피다한 마을로 떠난 다니엘 에버렛. 언어학 전공을 살려 야만의 죄악에 빠져 있는 파다한 원주민들에게 '복음'의 빛을 선사하겠다는 열망에 들뜬다. 박사 논문을 위해 빈민가를 기웃거리던 수디르 벤카테시. 만성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그들을 분석, 사회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건 잠입에 성공한다. 

결국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은, 각자의 고귀한 '소명의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프레임을 '미개인' 혹은 '빈민'에게 이식하는 것일 뿐이었다. 지독한 폭력. 본의 아니게 오만한 문명인은 물론 이를 알지 못하고, 그저 벽에 부딪혀 괴로워하고 원망할 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가치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어렴풋한 자각이. 

<괴짜사회학>의 수디르는, 경찰차도 구급차도 오지 않는 '빈민의 섬'에서 통계자료를 들먹이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최신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다면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25퍼센트라는 것. 빈곤의 고리를 끊기위해 그들을 갱단 대신 학교에 보내야한다는 것. 그러자 주민 대표인 베일리 부인이 말한다.

"만약 자네 가족이 굶주리고 있고 내가 자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쩌겠나?" 당연히 가족들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학업을 미루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그에게 부인은 되묻는다. "하지만 자넨 학교에 다녀야 하잖아, 안 그런가? 그게 자네를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테니 말이야."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마가복음을 피다한 어로 번역하고, 자가발전기가 달린 카세트 플레이어까지 구입해 '오디오북'을 나누어주며 설교에 열을 올리던 다니엘은, 그럼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자 '간증'을 하기로 한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예수님을 알기 전의 삶에 대해 말한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술과 마약에 빠져 지냈으며, 새엄마의 자살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한 마디로, 얼마나 불행했는지.

'문명세계'에서 그랬듯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오! 주여!'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같은 찬양을 연발하기를 기다리던 다니엘은, 그러나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의 반응에 당황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엄마가 자살했다고? 우하하! 참 바보 같다. 피다한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아."

결국, 자신의 악덕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의도적인 방치 속에 빈곤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들은, 불러도 오지 않는 경찰차와 앰뷸런스 대신 갱단을 부르고, 갱단의 지배하에 돌아가는 지하경제를 통해 생활을 꾸려나갈 뿐이고, 그런 빈민가의 작동원리는, 근본적인 지점에서 수디르가 살아왔던 '사회 안쪽'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니엘 또한 마찬가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며, 죄의식도 없이 순간에 충실한, 누구도 자살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와 자칫하면 술과 마약에 유혹에 빠지고, 쉽게 목숨을 끊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 중에 도대체 어느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인지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회 혹은 문명과 조우한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며 점점 더 성장하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르다. 사회구조에 대해 별 다른 의문을 느끼지 못하던 중산층 사회학자 수디르는, 빈민 문제가 사회 때문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형제와 같은 유대를 느낀다. 하지먼 거기까지. 별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던 그는 완성한 논문을 쥐고 씁쓸하게 '사회 안 쪽'으로 복귀할 뿐. 하지만 선교하러 왔다가 신앙을 버리게 된 다니엘은 아래와 같은 꽤나 감동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실용적인 유용성만을 인정한다. 이들은 우리 머리 위에 천국이 있다고 믿지 않으며, 우리 발밑에 지옥이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이들은 죽음에 대해 어떠한 추상적인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절대자, 정의로움, 성스러움, 죄악, 소유와 같은 개념이 없다. 그러한 개념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다한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삶, 그러한 사회를 직접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 인류에게 더없이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삶은 참으로 매력적인 비전이다.

우리는 종교와 진리라는 가치를 버리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아니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피다한 사람들은 그것을 증명한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욕구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욕구는 대부분 문화가 달라도 똑같은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화는 말로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욕구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로 이러한 욕구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 그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따라서 어떠한 욕구도 쌓일 틈이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거의 모두 앓고 있는 걱정, 두려움, 좌절의 근원이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초월적인 존재, 보편적인 진리를 열망하지 않는다. 그러한 개념은 그들의 가치관 속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다. 피다한 사람들에게 진리란 물고기를 잡는 것, 노를 젓는 것, 아이들과 웃으며 노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말라리아로 죽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 때문에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신, 세상, 창조와 같은 개념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관념의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다른 기준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구성원들이 행복할수록 발전한 문화이고 불행할수록 미개한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피다한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한 문화이다. 억지처럼 들리는가? 걱정, 불안, 욕심, 두려움, 불만, 좌절, 세상을 모두 이해하고 말겠다는 아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지, 즐겁고 유쾌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한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라. 신이나 진리는 과연 무엇에다 쓸 것인가?

-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중에서

언젠가 존 레논이 노래했듯이.

상상해 봐요, 천국이 없다고
아주 쉬워요 일단 시도해 봐요
저 아래 지옥도 없고
우리 위에는 파란 하늘 뿐이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그저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이런 것들을 읽고 있으면, 방바닥에 누워 책을 통해 다른 인생과 간접조우를 시도할 뿐인 게으른 인문MD 조차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짜 좋은 게 뭐지?" 혹은
"How to be good?"

아마 커트 보네거트라면 이렇게 되물었겠지.

"짹짹?"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속한 사회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생활인이고. 아마존에 갈 일도, 빈민가에 잠입할 일도 없는 보통 사람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어쨌거나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 가는 것이다. 언제 사람 되나 싶어도, 제대로 좀 살고 싶어도… 아무 도리 없이.

그런 우리들에게 언제나처럼 피터 싱어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출근길마다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날씨가 더울 때면 가끔 연못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겨우 무릎까지 물이 차니 염려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춥고, 시간도 이르다. 그런데 연못에서 첨벙거리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어린아이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그 아이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 주위에 아무도 없나, 부모나 유모는? 하고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물 밖으로 겨우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수 있는 모양이다. 뛰어 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하지만 며칠 전에 산 새 신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양복도 젖고 진흙투성이가 되리라. 아이를 보호자에게 넘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틀림없이 지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자, 당신은?

피터 싱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겠다고 한단다. 큰 맘 먹고 장만한 양복과 새 신발을 버려도, 지각해서 월급이 깎여도. 아이를 구하는 일이 더 소중하므로. 싱어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지구상에 수많은 아이들이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단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버려둔 채 새 양복과 새 신발을 사는가?

뜨끔.

세상엔 끔찍한 부류와 비참한 부류가 있다고 생각해. 두 개의 카테고리가 있다고.
끔찍한 부류는, 이를테면, 말기환자 같은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맹인, 장애자..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 나한테 그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야.
그리고 비참한 부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지. 그게, 그게 다야.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비참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해.
비참하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니까.

- 앨비 싱어, <애니 홀> 중에서

가끔 비어있는 지갑을 바라보며, 곰곰 따져보다가 '이게 다 매달 나가는 기부금 때문이야'라고 생각해버리는, 비참함에 잠을 설치지만 운이 좋다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인간 되려면 한참 먼 인문MD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Special Thanks to










to 커트, 여전히 평안하시길
to 닉, 언제 술 한잔 해요
to 우디, 당신의 여름은 어때요?
to 존, 당신이 옳았어요 
to 허경영, 전화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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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8-19 15:17   좋아요 0 | URL
'육식'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된 비인간적 생산 및 유통구조 때문이니까요... ㅜㅜ
저도 사람입니다 ; (아직 좀 덜 되긴 했지만)

하이드 2009-08-1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이라면... 왜냐하면... 제가 그날 잠실 야구장의 중심에서 더 큰소리로 '허경영'을 외쳤거든요. 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허경영 .. 라는건 농담이고요. 엘팬이시군요.


활자유랑자 2009-08-19 15:17   좋아요 0 | URL
첫 닭이 울기 전에 엘팬임을 세 번 부정하겠습니다...

웽스북스 2009-08-1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에 알라딘 서재에서 만난 몇몇 분들과 맥주를 마셨어요. 아. 정확히는 네명이었는데,
알라딘 MD분들 얘기를 하면서...

- 나는 문학 MD 사랑해요
- 나는 종교/예술 MD 서재에 완전 자주 가잖아요
- 어, 나는 인문 MD가 쓰는 글 좋아해요-

막 이러고 있었답니다. 나머지 한명은 MD서재? 그런것도 있어? 였지만. ㅋㅋㅋㅋㅋㅋ
알라딘 사람들이 만나니 MD분들 얘기도 연예인 얘기하듯 하는구나 하면서 우리도 재밌어했지요 ㅎ
(참고로 넷다 여자라, 남자 MD분들의 인기가 높았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3년 되셨다는 이 글을 보니까, 갑자기 그 때의 대화를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글은 미괄식 구성인데, 저는 윗글이 더 재밌네요 짹짹
(참고로 저는 일주일에 세번쯤은 허경영을 외칩니다 ㅋㅋㅋㅋㅋ)

활자유랑자 2009-08-19 15:21   좋아요 0 | URL
아! 이런 민망한 일이;
문학MD 님에 대한 감정이 가장 세군요!
저도 사진을 바꿀까 봐요... 짹짹

외국소설/예술MD 2009-08-20 13:3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더 분발을.. 아니 영광.. 하하..;

삶은계란 2009-08-2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미를 듣고 있자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계란이 아니라 허경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활자유랑자 2009-08-20 18:25   좋아요 0 | URL
망설이지 말고, right now
...

개인적으로는 그 분, 참 세상 멋대로 사는구나, 부럽기도 해요.

딸기 2009-09-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 싱어의 책이 나왔군요. 음...
알라딘인문MD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오나... 글이 넘 재밌네요. 마구마구 보관함에 담고갑니다. ^^

활자유랑자 2009-09-15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냥... 책 파는 사람이죠 뭐. :)
 

얼마 전 업데이트 된 네*버 지식인의 서재(참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다)에서 김훈 선생의 인터뷰를 읽었다. 김훈은 자신의 서재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는 내 서재라기보다는 막장이에요. 막장.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데를 막장이라고 그러잖아요.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지요." 

저작권법도 강화된 마당에 이렇게 인용을 하고 있자니 조금 쫄리긴 하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실은 저 '막장'의 두 번째 뜻은 대학시절 내가 이미 써먹었던 것이다. 무료하던 복학생 시절, '막장'(요즘 쓰이는 그 뜻 그대로) 동무들과 순진한 1, 2학년들을 꼬셔 만든 연극학회의 이름이 바로 '인생막장™'이었다. 증거도 있다.

"지금은 ‘인생막장’이라는 학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명색이 국문과인데 연극 관련 학회가 없다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서 작년에 복학하면서 제가 만든 학회에요. 이름이 이상하다느니, 정말 막장 같다느니 하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학회원 26명으로 정원 130명인 국문과는 물론이고 인문대 내에서도 가장 큰 학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생막장’이란 이름은, ‘막장’의 두 번째 뜻 즉 ‘갱도의 끝에서 광물 등을 캐내는 행위’에서 따왔습니다.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삶의 끝에서 순전히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개척하자는 거창한 뜻을 담고 있지요. 연극과 영화를 보고, 세미나를 하면서 지금은 2학기 때 올릴 창작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 중에서. 알라딘 1급 극비문서고 보관) 

결국 130명 중 26명이 왕십리 보단 대학로에서 술 먹길 선호했다는 ㄷ뜻인데, 어쩐지 오그라드는 손발 때문에 자꾸 오타가 난다. 손가락이 오그라들다 못해 손바닥을 찌를 지경. 손끝이 무뎌진 탓으로 다행히 피는 나지 않고 있다. 그래. 결국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게 다 무뎌진 손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은 왜 무뎌지는가? 맨손으로 '막장' 짓을 했기 때문이다.  

음, 다시 말해야겠다.  

언제나 벽에 부딪히는 인생. 그래도 살겠다고 맨손으로 그 끝을 파온 탓이다. 29년 동안 그런 짓을 하다 보면 손톱에 때가 끼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쩐지 나는 '갱도의 끝에서 광물 등을 캐내는 행위'라는 국어사전의 뜻에서(국어사전 인용도 저작권 법에 걸리는가?) 어떤 도구도 생각할 수 없다. 나에게 그건 언제나 맨손을 뜻한다. 그리하여 '인생막장™'을 공포公布할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던가.  

"우리가 혼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파봐야 얼마나 파겠습니까? 그러니 혼자 파지 말고, 같이 팝시다"  

그래서 지금도, 이상한 이벤트를 올려 치고 나가려는 타서점 MD들에게 나는 (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같이 팝시다, 좀. 물론 이때 강세는 '좀'에 있다. (BGM : '좀'비 떼가 나타났네 - 타바코 쥬스)  

아… 바로 또 무뎌졌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마는 철저한 실증주의라니. (죄송합니다)  

네일 아트라도 받은 것처럼 가만히, 손끝을 들여다 보니 어쩐지 지독하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막장(2번뜻) 끝에 막장(인터넷 용어) 온다고 했던가.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지금껏, 내 마디가 굵은 손으로 파온 게 과연 무엇일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성나지 않았다. 조금 지쳤고, 그래서 그 막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조금 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파온 것들을. 회한 없이, 다른 무엇도 없이.  


물론 그것을 온전히 믿을 필요는 없다. '인생막장™' 1대 학회장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 중의 하나는 스타니슬랍스키 선생의 <배우 수업>이니까.  

언젠가의 나는 메쏘드 연기를 하는 연기파 배우를 꿈꿨고, 지금의 나는 메쏘드 연기를 하는 연기파 생활인이 되었다. 모두들 그렇듯이.


*

 내 가장 오랜 기억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세 살이나 네 살 무렵의 새벽. 진달래며 개나리가 가득한 배경에 멜빵에 청베레를 쓰고 있는 나와, 꽃들이 점처럼 박혀 있는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곱게 땋은 사촌 누이의 모습(지금은 모 출판사를 다니고 있고, 최근 1년간 살이 좀 쪘다). 군산. 외갓집의 뒷산이다. 사실 뒷산이란 표현이 얼마나 맞는 지는 모르겠다. 피난민인 외조부모가 살던 집은 그 자체가 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토끼 할아버지, 토끼 할머니라 불렀다.  

내 가장 오랜 극장의 추억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꾸러기 발명왕>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임에도 꽤나 영리해서, 비커와 스포이드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동물을 커다랗게 만드는 '성장촉진제'를 발명해 낸다. 집채만한 토끼를 타고 즐거워하던 홍만이. 외조부모는 결국 토끼를 잡아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앙고라 조끼를 선물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영원히 토끼 할아버지, 토끼 할머니로 남았고, 홍만이의 커다란 토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번째로 오래된 극장의 기억은 그로부터 3년 후, 엄마와 함께 외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동시상영관에서 케빈 코스트너의 <언터쳐블>과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대니 드비토의 <트윈스>를 보게 된 나는 세상 모든 규제의 무용성을 이미 알았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언터쳐블>은 일곱 살 짜리의 눈에도 단연 최고였으니까.

다시 사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사진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하여 내 가장 오랜 기억은 사진의 형태를 한 채로 다시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셈이다. 그것은 이중의 기억이고 엄밀히 말하면 가장 오랜 기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사진을 꺼내 보이며 어른들이 내게 했던 말들, 내가 그 사진을 보며 상상했던 것들, 그리고 다시 그 사진을 꺼내어 보던 때의 심상이 함께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가장 오랜 기억에 대한 추억이라 부른다.  

기억은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추억은 어떤 것을 추억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억이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말려진 나뭇잎 혹은 곶감처럼, 어떤 기억만이 추억이 될 수 있다. 때론 기억이 아닌 것이 추억되기도 한다. 다른 이의 추억을 빌어 온 경우가 그렇다. 그것을 우리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욕망은 결국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가장 오랜 기억을 추억하듯, 내가 다른 사람이기를 욕망한다. 그게 어떤 사람인지는 물론 기억나지 않는다. 

 

 

 

존 버거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버지는 만화가였다. 나는 만화책을 보며 한글을 깼다. 집에는 언제나 어깨동무, 소년중앙, 보물섬, 만화왕국 같은 잡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내 가장 오랜 만화책의 추억에서 하얀 카우보이와 검은 카우보이는 운명적인 대결을 펼친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검은 카우보이는 마지막 대결에서도 사악한 잔꾀를 굴려, 광활한 서부의 지는 해를 등지고 선다. 타는 듯한 역광에 당황한 하얀 카우보이는, 그럼에도 묵묵히 총을 꺼내 운명에 맞선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하얀 쪽. 닦고 조이고 기름친 하얀 카우보이의 길고 날렵한 권총에 햇빛이 반사 되며 순간적으로 검은 쪽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전설처럼 구전되어 오늘에 이른다.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노노노노노"라는 검은 카우보이의 마지막 절규가. 시간은 흐르고 관점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실은 하얀 쪽이 악당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을 곧잘 하게 된 이후로 마감일이 다가오면 전화통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아버지 안 계시니?"
"아빠 업뗘요"

그 어느 편집자도 내게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낼 수는 없었는데, 실은 바로 옆 방에서 파일롯 잉크에 펜을 담궈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연필로 그려진 밑그림을 잠자리표 지우개로 지우고 계셨지.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그린 만화 중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보물섬에 그렸던 "명탐정 셜록 홈즈" 뿐이다. 서핑 중에 찾아 낸 위 그림은 아버지의 것이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책일지는 너무 뻔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지만. 위인전.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인들은 생활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는 법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그에게 생활이 먼저였고 예술이 나중이었는지, 예술이 먼저였고 생활이 나중이었는지가. 생활을 위해 선택한 만화가 어느새 예술로 무섭게 다가온 것인지, 예술로 선택한 만화가 어느새 다가온 생계의 무게에 짓눌렸는지가 몹시도.    
   
 

 

 
이 친구라면 지금 내가 말한 것만 가지고도 자리에 앉아 그럴듯한 추리를 해내지 않을까?

 

 는 지금 황주리가 그린 김훈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황주리는 김훈을 리본이 달린 검은 중절모에 민소매 남방을 입은 불독으로 그리고 있다. 김훈은 그 밑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썼다.  

김훈을 개로 표현한 것이 황주리 씨의 선택인지 김훈의 요청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참 그럴듯 하다. 개는 슬프다. 개는 그 슬픔을 외면할 줄 모른다. 그럼에도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슬픔은 슬픔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늙은 개 같은 김훈 선생은…"  

나는 또한 11년 동안 나와 함께 자랐던 개 한 마리를 기억한다. 녀석의 이름은 꾀보였다. 그 이름이 정말로 어울리는 작은 바둑이. 그 이후로도 우리 집에 잠시 머물던 개들의 이름은 대부분 꾀보였다. 어떤 녀석도 1대 만큼 똑똑하지는 않았다. 다시 개가 생긴다면 녀석을 훈이라고 불러 볼 생각이다.

막내 외삼촌은 서점을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산골에서 도망치듯 상경한 삼촌은 여러 돈벌이를 전전한 끝에 결국 서점을 차렸다. 30년 전의 일이다. 집과 서점을 왕복하며 나는 자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월간지가 저물고 격주간지가 새롭게 부상했다. IQ 점프, 소년 챔프… 하지만 그 잡지들은 우리 집에 배달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챔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신 나는 선데이 서울을 보았다.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모리씨의 노랫말처럼. "Everyday is like Sunday!" 

신문수, 윤승운, 김수정, 김진 등의 이름이 기억난다. 그렇다고 만화책만 본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창비아동문고.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사자왕 형제의 모험>,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들을. 권정생 선생의 책은 사실 조금 황당했던 기억이 먼저다. 뭐 이런 이야기가 있나? 싶었으니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아버지가 '낭기열라'라는 제목의 만화로 연재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원작보다 못해 실망했다고 밖에…   

 

 

 


<즐거운 무민 가족> 시리즈는 정말로 즐거웠다. <꼬마 유령 캐스퍼>는 또 어떻고! 무슨 이유였는지 엄마가 생색내며 사주셨던 옛날 이야기 책들도 있었다. 세 권으로 된 책에서 '꾀보'라는 이름을 수없이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솝우화나 그림동화를 비롯한 세계명작동화는 물론이다. 그림책은 단 한 권도 읽은 기억이 없다.

뭐니뭐니 해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책은 지경사 어린이 문고로 나왔던 심경석 선생의 책이다. <대머리산>, <학교는 밤마다 이상해>, <배꼽장군> 같은 제목의 책들.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모험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노는 이야기를 나는 매일 읽었고, 밤이 깊었고, 엄마가 불을 끄면 이불 속에 손전등을 켜고 마저 읽었다. 지금은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불을 켜놓고 자고 있다.  

물론 21세기에는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똑똑해진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20세기의 어머니는 '영재' 보다는 '오복'을 더 중시하셨던 것이다. (아... 눈 좋은 건 오복이 아니구나. 하지만 엄마는 이빨도 잘 닦으라고 하셨단 말이다)

어머니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 나는 똑똑했고, 특히 이과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우리집에는 언제나 내 발명에 필요한 재료들이 넘쳐 났는데, 정기적으로 아버지가 전화기를 집어 던져주신 덕이다. 요즘말로 하면 '츤데레'. 과학상자 같은 건 사줄 생각도 안하는 무심한 아버지로 보이지만, 실은 부끄러워 하셨던 것이다. "너, 너, 너 발명하라고 전화기 집어던진 건 아냐!"

내 가장 위대한 발명은 부셔진 전화기의 꼬불꼬불한 선 끝에 끊어진 이어폰의 플러그를 연결했던 일이다. 어머니는 역시 잔소리를 했지만. 아마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본 에디슨 엄마도 속 좀 터졌을 거다.  

아무도 없는 오전을 틈타 나는 마침내 완성한 세기의 발명품을 들고 TV 앞에 섰다. 아침마당 같은 프로가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숨을 고르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야 했다. 나는 그 발명의 위대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런 생각을 왜 여태까지 아무도 못했을까?" 물론 천재는 흔한 것이 아니다.

한참이나 머뭇거린 나는 드디어 작은 손짓을 했다. 나에게는 작은 손짓일 뿐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손짓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내가 만든 수화기-이어폰을 14인치 금성TV의 단자에 꽂은 것이다. 그것은 이런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1. 수화기를 통해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도,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도 있다.
2. TV의 이어폰 단자에 이어폰을 꽂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말을 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3. 만약 말을 할 수 잇는 수화기를 그곳에 꼽으면 전화처럼 그곳에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태초에 신의 목소리를 들은 아담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는 당황할 TV 관계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인류에 대한 공헌과 인류애에 대한 믿음으로 억누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는 말했다. "아, 아, 들립니까?"   

그로부터 8년 후, 나는 문과에 진학해야만 했다.   

 

 

실은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이런 이야기였는데. 미안 꾀보.  


 학년에 접어 들며 읽는 책들이 조금은 다양해졌다. <논리야 놀자>를 읽으면서는 논리란 것이 정말 시시한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논리란 것이 결국엔 쥐를 구석으로 몰듯 다른 모든 가능성들을 제거한 채 하나의 답으로만 몰아가는 것 아닌가?" 물론 정확히 이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혜>, <빵장수 야곱> 같은 책들은 재미있었다. 아버지가 데려간 극장에서 쥐라기 공원을 보고 놀란 가슴은 소설 <쥐라기 공원>으로 진정할 수 있었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으스스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로빈 쿡을 선전했고, 누나들은 <닥터스>를 읽었으며, 아무도 내가 <7막 7장>을 읽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세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과 <재미있는 수학여행> 시리즈였다. 배꼽이 누워서 감자를 먹을 때 찍어 먹을 소금을 올려 놓기 위한 기관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놀람이란… 

 

 

 

 

중학교는 그야말로 질풍노도, 주변인, 제2의 탄생의 시기였다. 나는 그 말들을 1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배웠다. 도덕 교과서는 오히려 순진한 아이들을 주변인의 길로 꼬시고 있었다. 교과서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나는, '야설'과 미야자와 리에의 작품집 <산타페>를 택했다. '천사의 오후 3'니 '동급생'이니 하는 게임들도.  

나는 지금 거리를 두고 그 시기를, 5.25인치 디스켓에 담겨 있던 중학교 시절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부끄러운 일은 <7막 7장>을 읽은 일이다.

컴퓨터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헬로 PC"니 "마이컴"이니 하는 잡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삼촌네 서점에서 집어 오면 되었으니까. 그 일은 내게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사실을. 허리 높이까지 쌓인 잡지들 속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나는, 지금도 쌓이는 신간 사이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도대체, 왜 아무도 진작 내게 이런 말을 안해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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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8-0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의 저 이야기를 듣고, 저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음. 사실 조르바도 반갑지만.
심경석의 책을 읽고 자라셨다니. 아아. 같은 세대임이 물씬 느껴져서 이리 답글을 답니다. 저도, 안양 대동문고 계단에 앉아서 친구여 안녕 같은 책들 보면서 훌쩍이던 기억이 갑자기 스믈스믈. (주인공한테 편지로 독서기록장도 썼던 기억이. 하하하하 ;;;;)

활자유랑자 2009-08-12 10:57   좋아요 0 | URL
저는 한때는 시골로 전학가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은 무슨 책을 읽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때는 어린이MD였는데, 하하;

시끌북스 2009-08-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담당자님 글이 참 재미있네요. 매콤한듯 달콤하고, 상큼한듯 시큼하고.
인문과 역사를 좋아해서 열심히 보고 있지만 생각에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한듯해요.
덕분에 김훈선생님의 서재를 보게 되었네요..^^
자주 들르도록 할께요~

ps) 저도 네*버 지식인의 서재는....제목이 영...ㅋ

활자유랑자 2009-08-12 10: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종종 놀러 오세요~

낙타씨 2009-08-1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뚜벅뚜벅

활자유랑자 2009-08-12 10:54   좋아요 0 | URL
낙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2009-08-11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하루 2009-09-2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득키득 웃다가 7막 7장에선.. 저도 할말이 없다는ㅠ
하나 더 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여기서 나아가니 신화는 없다도;; 최악이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아버지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 '빵장수 야곱'을 제 손에 들려주셨더랍니다.
지금 끄집어내 보니 둘다 김영사 책이네요ㅋ

오늘 저녁을 먹으러 갔던 보쌈집이 하필 정신세계사 건물에 함께 있길래,
'성자가 된 청소부'를 떠올리고 웃었는데 말이죠..
여기 왔다가 반가운 책들 얘기가 줄줄 있길래 옛날 생각 하다갑니다 ^^
그 시절..90년에 나온 '배꼽'은 3,800원이었네요.. 후훗.

낼 알라딘 갑니다. 인문 MD님 뵈면 쪼끔 더 반갑겠는데요.. ㅋㅋ

활자유랑자 2009-09-28 16:52   좋아요 0 | URL
어느 집에나 그런 책 한 두 권은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엔 집에서 MB님의 <신화는 없다>를 발견하신 분이... 시간은 참 빠르고 지구는 잘도 돌아가네요.

mrs.m 2009-11-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등학교때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_+ 특히 <사자왕 형제의 모험>, 저는 지금도 가끔 읽는답니다. 무민 가족도 여전히 캐릭터로 제 옆에서 생활하고 있고~ ㅎ 그 후로 독서력도, 사고력도 전혀 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지 목소리도 그때와 변함이 없어 저는 아직까지도 "아빠 없떠요"를 할 수 있답니다. 나름 편리해요.

활자유랑자 2009-11-16 13:45   좋아요 0 | URL
옛말에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다던데...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나요? ㅜ_ㅠ 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나름 살만해요. 다만, 더 많은 이야기를!
 


요네하라 마리는 알라딘 편집팀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작가였다. 과거형을 쓴 것은 '편집팀'은 이미 '도서팀'이 되었고, 구성원들도 대부분 바뀐지 오래기 때문. 이런 사정과는 무관하게, 새로 출간된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여전히 좋다. 군침도는 음식과 당장이라도 친구에게 전화 걸어 '너, 이거 알아?'라며 얘기해주고 싶은 흥미로운 지식들이 맛깔나게 녹아있는 것이다.  

사실 책을 파는 일 중에 가장 힘든 부분은 좋은 책을 추천하는 일이다. 재미있다, 좋다, 읽어 보세요. 하지만 대개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마련이고, 관계를 의심하는 연인에게 필사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연인들은 이벤트를 하고, 책 또한 마찬가지.   

'좋다'는 말은 이미 위에서 했고, 출간 기념 이벤트 역시 진행되고 있으므로(여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미식 견문록>을 지니고 다니며 읽었던 지난 며칠 간, 내게 일어났던 '이상한 일'에 대해서. 그리 거창한 일은 아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인, 자질구레한 체험인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렇게 쓴다.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않아도 좋다. 어쨌거나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는 '좋다' 한 마디에 있으므로. 하지만 펼쳐진 부채살의 골처럼 때론 접혀 보이지 않는 일상의 이면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내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종 플루, A형 간염, 수족구병 등에 이어 세균성 장염이 유행이라고 한다. 신상 가득한 매장에서 쇼핑하는 기분으로, 고민 끝에 장염을 골랐다. 음주 습관과 식습관 등 내 스타일엔 역시 장염이 맞다는 의견에 그만 얇은 귀가 흔들렸다. 정확하게는 '불상의 바이러스성 창자 감염'. 그런데 왠걸, 유행이라면 언제나 한 발 빠른 문학MD님이 먼저 장염에 걸린 것이 아닌가. 게다가 풀옵션으로 입원에 90시간 금식까지! 기분이 상했지만 어쩔 순 없었다. 괜히 문학MD는 아닌 모양이다.  

물 대신 포*리스웨트를 마시며 며칠간 연명했다. 의학의 발달 보단 조금 더딘 속도로 나아지고 있는 참이었다. 요동치던 장들도 이제는 잠잠해지고. 그런데 식욕만은 어떻게 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처방전을 들고 세 번째로 약을 타러 간 날, 식전과 식후로 나뉜 약의 복용법을 설명하던 약사 할머니에게 "밥을 안먹으면 어떡하나요?"라고 묻자 빙긋 웃음과 함께 이렇게 답해주셨다. "글쎄,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뭐, 별 수 있나?" 아 네…  

약사 할머니의 말씀에 감명 받은 나는 <미식견문록>(마음산책, 2009)을 가방에 챙겼고, 출근하자마자 메신저 대화명을 이렇게 바꿨다. "술, 담배, 인터뷰, 남 좋은 일 안합니다" 솔직히 담배는 끊을 자신 없고, <미식견문록> 초반에 나온 보드카 얘기에 술이 조금 당기긴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별 수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메신저로 담배나 한 대 피자고 나를 꼬셔낸 문학MD님이 문득 옛이야기를 꺼냈다. 좋았던 시절, 술담배는 끝도 없이 하고 인터뷰와 남 좋은 일은 꿈도 안꾸던 그때. 장염은 그저 개가 걸리면 죽는 병이라고 알고 있던, 그럼에도 조심할 생각은 않던 그때 말이다. (그러고보니 장염에 걸리고도 죽지 않았다. 이젠 사람이 된 걸까?)  

문학MD는 내게 '간판' 이야기를 했고, 나는 '미끄럼틀'을 생각했다. 좋았던 시절, 만취상태에서 싸운 상대. 물론 '간판'과 '미끄럼틀'은 전혀 다른 것이어서, 그 사이에는 5년의 시차가 있었고 전혀 다른 두 여성이 연루되어 있었다. 나는 13년 전 얘기를 이제와서 꺼내냐고 불평했고, 문학MD님은 8년 전 얘기라고 퉁박을 줬다.

마침 저녁에 그 친구를 만나기로 했던 나는 살짝 놀랐다. 그러니까, 8년 전 나와 간판을 싸우게 했던 친구 A. 이런 종류의 동시성(coincidence)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빈정대던 문학MD님의 오해와는 달리 한때 나와 선배와 'bizarre love triangle'을 이루었던 그녀는 8년째 열애중이고, 나는 쿨하게도 그 둘과 '좋은 관계'로 남았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고, 하나의 간판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명복을 빕니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A는 종종 미식가임을 자처했다. 맛집으로 안내하라는 부탁을 들어준 적은 없지만, 언젠가 조금 색다른 '미식'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살짝 내비친적은 있다. 그때 내가 추천했던 출판사는 바로 마음산책이었다. 역시 마음산책이지, 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십리에는 비가 왔고, 우리는 찜닭을 먹었다. 반주도 없이, A는 교정을 하기 위해 사랑니를 뺀지 얼마 안되어 술을 못먹는다 했다, 텅 빈 가게에서 찜닭을 먹고 있자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찜닭이 처음 대중화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하늘은 넓고, 미소는 빛났으며 찜닭집은 언제나 만원이었던 그때. 당면을 뒤적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는데 후배 B에게 전화가 왔다. 이른 시간에 잔뜩 취한 녀석의 목소리가 한층 그리움을 키웠다. 한 때 왕십리 바닥에선 담배꽁초보다 이런 녀석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미래도시가 되어 버렸지만.

여자친구와 2시간 전에 헤어지고 혼자 실내포차에서 소주 2병을 마셨다는 B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부러 시간을 끌다 간 그곳에는, 알다시피 이런 경우에는 '시체'를 치우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 사이에 연락을 받고 온 후배 두 명이 더 있었다. A, B, C, D… 문득 시간 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비 오는 왕십리.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배는 술에 꼴았으며, 녀석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가 나왔으나, 실상은 욕을 하고 있는 중이다. 녀석도 질세라, 내게 욕을 한다.  

"형, 그거 알아요? 형이 X 같은거. 그래서 내 인생도 X 같지."
"그러니까 니 말은, 내 X 같은 면에 네가 영향을 받아서 너도 X 되었다는 거야?"
"그래, 그러니까 책임져"
"그래, 니 말대로 나는 X 같아. 그런데 내가 너를 책임진다면 난 더이상 X 같은 놈이 아니잖아? 그러니 나는 너를 책임질 수 없다."

영락 없는 8년 전 필름. 그래서 마시기 시작했다. 장 따위는 잊고. 이건 분명 꿈 아니면 '타임슬립time slip'이었으니까. (* 'Life on Mars' 참고) 죽을 때가 되었나 싶기도 했다. 죽기 전에 사람들은 과거가 눈앞에 펼쳐지는 일을 경험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소주병이 쌓여갈 무렵, 홍대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물론 나한테 온게 아니라 함께 있던 후배C(여, 28세)에게. 이래도 이게 과거가 아니라고? 택시를 타고 출발. 선배들은 취해 있었고, 소녀시대 이야기를 했으며(과거까지 장악해 버렸다!), 우리에게 '보드카 오렌지'(!)를 사줬다. 그리고… 그리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홍대 거리의 불빛만 아른거릴 뿐.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타임슬립'을 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게 꼬인 시공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기억이 끊긴 것이리라. 그래도 보드카 오렌지는 맛있었다.  

드카는 이렇게 생겼다.  (PPL 아님)



간여행을 마친 아침, 그 부작용으로 깨질듯한 머리를 안고 일어나 라면을 먹었다. 각각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집으로 출발하려던 차. 책상에 놓여 있던 책을 보고 후배가 말했다. "마리네?" 나는 되물었다. "친했어? 요즘 연락 되냐?"(* 요네하라 마리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후배가 대답했다. "거 왜, 형이 전에 나 준 <대단한 책>이 이 사람, 요네하라 마리 책 아니야?" 바로 그랬고, 나는 잽싸게 책을 가방에 넣었다. 부천까지는 먼 길이었으니까.  

영화는 5시부터, 약속은 1시에 있었다. 부천에 살고 있는 사촌누나(모출판사를 다니고 있음)를 오랜 만에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요네하라 마리를 읽으며 어느덧 몸에서 알콜이 빠져나가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낄낄 웃으며 책장을 넘기자 라면을 먹었음에도 살짝, 배가 고파왔다. 부천에 도착한 것은 2시 반이었다.

송내 역에서 서로를 발견한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못본 사이 몸무게가 *KG 은 늘어있었던 것이다. 반면 누나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 이 동네로 이사왔니?" 나는 그냥 비가 온다길래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었을 뿐인데.

'도가니'탕을 먹으며("진실을 결코 개들에게 던져줄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의 정을 나누던 중, 누나가 사랑니를 뽑고 교정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정을 시작하면서 식탐이 늘었다고. 주말에는 이모부가 하는 이것저것들을 토할 때까지 먹는다고도 했다. 이모부는 호텔 주방장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어린 시절, 방학이면 놀러갔던 이모댁. 가난한 우리 집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산해진미가 쌓여 있었으니 그 중에 압권은 역시 홈메이드 생선초밥이었다. 문득 누나가 출생의 비밀이라도 밝히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아빠… 다 일식 주방장인줄 알았잖아 그래서… 근데, 양식이었대… 엄마도 얼마 전에야 알았어…" 이런 일이 있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도가니탕은 무척이나 맛있었다. 아, 우리 모두 밥은 말아 먹지 않았다. 라면이나 생수 아닌 다른 국물에 불은 밥은 맛이 없으니.

무려 한 시간 삼십 분에 걸쳐 밥을 먹은 후, PiFan 극장에 닿았다. 그곳에서 장염이 다 나은 문학MD님을 만났다. 함께 본 것은 '반드시 크게 들을 것'. 락의 불모지 인천, 모텔촌 사이에 오아시스처럼 피어난 클럽 '루비살롱'과 밴드들의 이야기다. 어제 아른하게 과거를 걸으며 보았던 홍대의 불빛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는 모양.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그리고 이런 명대사도 존재한다.  



아 눈물 나서 혼났네.  

바람 불어 철제 의자가 날리는 살풍경한 그곳에서 한 편의 영화를 더 본 후 다시 지하철을 탔다. 막차 즈음한 지하철은 한산했고, 나는 다시 요네하라 마리를 읽었다. 덜컹덜컹, 낄낄, 덜컹덜컹, 낄낄. 늦은 밤엔 언제나 그렇듯 신도림에는 쉬이 열차가 오지 않았고, 열차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내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집에 가도 먹을 건 없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생각하며.  

결국 15분이 훌쩍 넘어서야 도착한 열차 덕에, 응암역에 내릴 즈음엔 이미 번역자 해설만 남기고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책장을 덮고 지하철 문을 나서는 순간 문득,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완결된 기분. 나는 아팠고 길을 떠났으며 첫 장을 펼쳤고, 이제 나았고 돌아왔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  

하하, 스스로 생각해도 허튼소리에 그저 헛웃음을 짓고 돌아온 집에는 낮에 다녀가신 엄마가 해놓은 두부전골이 기다리고 있었다.

러니까, 
엄마가 해준 밥보다 맛있는 밥은 없고 가끔씩 장염에 좋은 책도 있다는 얘기.
이 정도면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말을 믿을 수 있겠지?


*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떤 간판도 다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Also Avail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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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7-2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읽으면서야, '간판'과 '미끄럼틀'을 혼자 상대하신 걸 알았습니다. 다음엔 미끄럼틀 얘기도...^^

활자유랑자 2009-07-23 19:16   좋아요 0 | URL
그건 좀 낯뜨거운 얘기라서... 아마 인체자연발화 현상이 그런 거 아닐까요? 한여름에 술먹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던지...;

시끌북스 2009-07-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면서 미소가 번지는게 자연스러웠어요~ ㅋㅋ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니 일하는 아침 기분이 좋더군요.
인문과 역사를 사랑하고자 열심히 탐독중이지요. ^^

활자유랑자 2009-07-23 19:17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

mong 2009-07-2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도 인문MD님 서재에 오면 인문 생각은 안나고
퀴퀴한 자취방에서 무슨 사고를 칠까 궁리하는 공범이 된듯한 느낌이...
이유가 뭘까요

이유가 뭐건간에
고마워요 마리

활자유랑자 2009-07-23 19:19   좋아요 0 | URL
인문학 잘은 모르지만, 결국 사고를 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이유야 뭐건간에
저는 내일부터 2박 3일간 ** 락페스티벌에 '인문 스피릿'을 불사르러 이만 총총...
(괜히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었어요;)

라로 2009-07-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에 계신 몽님 덕분에 마리여사를 알게 되고 폭 빠지게 됐는데요,
고마워요 몽~
그런데 왜 이벤트를 이제야 하냐고요오????흑흑

이유가 뭐건 간에
다음엔 미끄럼틀 얘기도...좀,,,^^;

활자유랑자 2009-07-23 19:20   좋아요 0 | URL
마리 여사는 좀 더 사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장염에서 회복기라 아마 주말 동안에 '락페'에서 죽을 거 같아요.
그리하여 미끄럼틀 이야기는 무덤까지...;

섬연라라 2009-07-2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 이 동네로 이사왔니?" 나는 그냥 비가 온다길래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었을 뿐인데.
여기서 빵 터졌네요. ㅋㅋ

락페에서 살아돌아오셨나요? @_@



활자유랑자 2009-07-30 14:17   좋아요 0 | URL
아ㅜㅜ 돌아는 왔습니다. 그립고 꿈꾼거 같고 그래요. 3일 동안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방방 뛰는 기분이란. (보통 락페 때는 비가 왔었거든요;)

oscal2000 2009-07-30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책제목만보고 들어왔는데 마침 저자가 며칠전 읽고좋아하게된 요네하라마리씨라 깜짝 놀랐습니다.16년동안 함께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서 관련된 책만 미치도록 찾아읽다가 보게된 "인간수컷은 필요없어"에서의 소개에서는 분명 이런책제목이 없었거든요.글도 좋았지만, 갠적으로 그녀처럼 살다가면 얼마나좋을까,넘 빨리갔다..하고 관심많았는데,반가운 맘으로 읽어봐야겠네요.식후에 보라고해서 굉장히 잡다하거나 괴이한 미식얘기인줄 알았어요ㅋㅋ

활자유랑자 2009-07-30 14:18   좋아요 0 | URL
<미식견문록>은 신간이니까요. ㅎㅎ 식전에 읽으면 배가 고파서 눈물이 날지도 몰라요!

꿈꾸는 아이 2009-07-3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명언 가슴에 팍팍 와닿습니다.....

활자유랑자 2009-07-31 16:18   좋아요 0 | URL
우린... 안될까요? ;

비로그인 2009-08-1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드시 크게 들을 것' 다운받아놓은거 있어염? ㅋㅋ
마자요...
우린 존나 열심히 안하죠....--;
누구나 한번쯤 고딩때로 돌아간다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 가질거라 하지만, 난 언제나 단호하게 이야기해요...
그 세월을 또 살아야해? 싫엇!! 돌아가봤자...존나 열심히 살아야거나, 또 열심히 안살겠지...

활자유랑자 2009-08-13 04:24   좋아요 0 | URL
음... 어쩌죠 정말? ;

silktree 2009-08-30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재밌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응암역에 내릴 즈음엔' 부분에서 더..크게 크하하..미소지었죠.
저도 응암역에서 내리거든요.
책 선택합니다. 무엇보다도..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표지에 있어서요.

활자유랑자 2009-09-02 16:34   좋아요 0 | URL
앞으로 동네에서 험하게 놀면 안되겠네요 -_ㅜ

뒷북소녀 2009-09-17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너무 재밌어요!^^ MD님이 깔깔거리며 읽었듯이 저도 깔깔거리며 읽었어요.ㅋㅋ

활자유랑자 2009-09-18 00:56   좋아요 0 | URL
꺄르륵

알로하 2009-12-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인문 추천글 보다가 와봤는데 MD님 너무 재밌으시네요. 간만에 크게 웃었습니다. 요네하라 마리 요새 관심이 생겨서 보려는 중인데 더 기대되네요!

활자유랑자 2009-12-08 13:26   좋아요 0 | URL
마리 여사의 <문화편력기>가 출간 되었습니다! 막간 광고 ㅎㅎ

banil007 2009-12-1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위의 댓글을 보고 좌절했어요.
마리여사의 출간된 책을 전부 보고나서 'MD님 덕분에 최근 즐거웠어요!'라고 하려했는데;
<문화편력기>의 출간이라니요_ㅜ 아,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문화편력기까지 읽어버리고 쓸까..하는 오기가 피어올랐습니다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댓글의 욕구를ㅎ
'아아!정말이지 너무 기뻐서 미쳐 죽어버릴 것만 같은 상황인걸요!'ㅎ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ㅎ

활자유랑자 2009-12-13 04:31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요?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