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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 돌파에 이어 한국영화 최고 관객 기록 경신에 도전하는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제작 이글픽쳐스 씨네월드)가 현재 버전에서 20분 가까이를 더한 인터내셔널 버전을 선보인다.

현재 상영중인 '왕의 남자'의 러닝타임은 119분. 제작사 측은 해외 수출과 영화제 등을 대비해 각종 삭제 장면들을 덧붙인 새로운 버전으로 영화를 재편집할 예정이다.

제작사 이글픽쳐스의 정진완 대표는 17일 "연산과 조선 궁중에 대한 설명, 당시 신하들과의 관계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추가해 새로운 버전을 선보이려 한다"며 "감독판, 완전판이기보다는 인터내셔널 버전의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을 배려하고, 개봉 당시 러닝타임 조절 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아쉽게 본편에 포함시키지 못했던 장면들을 추가한다는 것이 이번 재편집의 기본 방향.

10∼20분여가 추가된 인터내셔널 버전은 앞으로 출시될 '왕의 남자'의 DVD에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는 삭제 장면이 포함된 새로운 버전을 보고싶다는 수만 '왕남폐인'들의 기다림에도 부합할 수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정진완 대표는 2시간 40분짜리 버전이 준비되고 있다는 일각의 설에 대해서 "처음 촬영을 마치고 편집했을 떄가 2시간40분이었다. 거칠게 편집을 한 상태여서 완성본으로 그 전체를 공개할 계획은 없다"며 "인터내셔널 버전에 포함되지 못한 삭제장면 일부를 DVD에 포함시키는 방안은 논의중"이라고 전했다.

'왕의 남자' 제작진은 회의를 거쳐 다음주께 새로운 편집 및 믹싱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편 개봉 8주째를 맞은 '왕의 남자'는 지난 11일 1000만돌파에 힘입어 일부 온라인 예매사이트에서 예매율 1위에 복귀하는 등 식지않은 열기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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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2-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 삽입이 되는지..궁금하네요.
 


[뉴스엔 최윤정기자]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제작 이글픽쳐스,씨네월드)가 마침내 꿈의 숫자를 실현한다.

지난 해 12월29일 개봉된 이래 흥행 신드롬을 낳아온 ‘왕의 남자’가 11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다. 개봉 45일만에 이루는 위업이다. ‘왕의 남자’는 10일까지 99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으며 현재 300개가 넘는 스크린이 유지되고 있고 객석 점유율도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어 11일 오후께 1,000만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왕의 남자’의 1,000만 관객 돌파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은 한국영화 사상 3번째 기록이다. ‘실미도’는 2004년 2월 19일 개봉 58일만에 1,108만명을, ‘태극기 휘날리며’는 같은 해 3월14일 개봉 39일만에 1,174만명을 불러모으며 잇따라 1,000만 고지를 밟은 바 있다.

‘왕의 남자’가 1,000만을 달성하면서 남긴 남다른 의미를 정리해본다.

#흥행은 제작비 순이 아니다.
‘왕의 남자’는 최근 대형화한 한국영화의 제작비 규모와 거리가 먼 ‘저예산 영화’였다. 개봉 당시 맞붙었던 ‘청연’이나 ‘태풍’이 모두 100억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급 영화라면 ‘왕의 남자’ 순제작비는 ‘고작’ 40여억원. 1,000만 영화인 ‘실미도’가 82억원의 제작비를, 또 ‘태극기 휘날리며’가 147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것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결국 영화의 힘은 제작비순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서 나오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 영화의 의구심 해소.
‘왕의 남자’가 꿈의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하면서 그동안 한국영화계의 의구심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연 1,000만 영화가 또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팽배했던 게 사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한국영화가 다소 침체 분위기를 이어온 데다 2005년 개봉된 대작들이 잇따라 흥행의 고배를 마시며 위기론마저 대두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남자’가 이같은 의구심을 없애며 다시 한번 희망의 샘을 길어올렸다.

#스타시스템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희망.
2005년 대작들의 잇단 실패는 ‘스타시스템’의 실패론까지 낳았다. 그런 점에서 ‘왕의 남자’의 선전은 더욱 빛난다. 소위 ‘흥행 톱배우’ ‘큰 배우’로 분류되는 톱스타에 기대지 않은 배우 라인업이기 때문이다. 1,000만 배우로 등극할 주인공은 기존의 톱스타가 아니라 주로 연기력으로 평가받던 정진영감우성, 그리고 새롭게 기용한 신인 이준기다.

#관객 수용 범위 다각화.
영화가 500만 이상이 되려면 무엇보다 관객 수용 범위가 넓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왕의 남자’는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진 영화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리 간단했던 일은 아니다. 당초 영화계 그 누구도 ‘왕의 남자’가 젊은 관객 사이에서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이준기신드롬에 힘입어 젊은 관객을 불러들였고 권력 풍자적인 내용과 궁중 사극으로 중장년층까지 아울렀다.

#대작 콤플렉스 극복.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민족주의를 건드리는 남북 코드에 기댄 영화라면 ‘왕의 남자’는 색다른 주제와 색깔의 영화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은 이후 남북분단 코드의 영화를 양산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이런 시류를 과감히 벗어나 독자노선을 걸었다. 연극무대에서 원작을 가져온 ‘왕의 남자’는 폭군 연산 시절을 배경으로 두 광대의 이야기를 엮었다. 궁중사극이지만 인간의 기본 정서를 건드리며 시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와닿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원소스 멀티유즈.
지난해 최고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과 마찬가지로 ‘왕의 남자’는 연극 무대에서 원작을 가져온 작품. 좋은 작품이라면 다채로운 창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다.

#사극의 힘.
최근 TV에서 시작된 사극 열풍은 지난해부터 스크린으로도 옮겨 붙었다. 그러나 사극이란 장르의 한계에 부딪혀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물론 여기에도 젊은 관객의 힘이 부족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이준기라는 젊은 카드와 짜임새 있는 튼실한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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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13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주에는곡 왕의남자 보고파라

해적오리 2006-02-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객 1천만을 넘은 영화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ㅋ~ 제가 안 본 영화들이란 겁니다.

놀자 2006-02-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꼭 보셔야 합니다^^*
날나리님// 다른 영화는 몰라도 왕의남자는 꼭 보셔요!
전 두번 봤는데 지금 또 보고 싶다구요~~>ㅁ<
 

 
<왕의 남자>는 원작인 연극 [이 爾]에서 ‘what’을 그대로 가져왔으나 ‘how’는 99% 달라진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를 새로 쓰는 과정에서 몇 가지 다이아그램을 그려놓고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캐릭터간에 얽힌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구도다. 캐릭터의 관계를 북한산의 세 봉우리에 한번 비유해 보자. 백운대라는 봉우리가 연산(정진영)이라면, 그와 마주보고 있는 만경대가 광대 장생(감우성)이요, 백운대 옆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인수봉을 녹수(강성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연산’ 백운대와 ‘장생’ 만경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왕의 총애를 받았던 광대 공길(이준기)이며, 이 삼각산을 덮고 있는 구름이 연산의 내관이었던 처선(장항선)이다. 이는 <왕의 남자>가 단지 광대들의 서글픈 인생사 뿐 아니라, 촘촘하게 얽힌 정치 스릴러도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나. <왕의 남자>에는 세 가지 세상이 존재한다. 장생이 왕 노릇하는 광대들의 놀음판 소극, 궁 안에서 연산이 연출하는 중극, 이를 다 포함하는 것이 중종반정의 주도자인 성희안의 세상, 즉 대극인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런 다이아그램을 이해하면, <왕의 남자>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의 남자>는 누구의 시점으로 보는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다. 장생, 공길, 연산, 녹수 외에 처선과 육갑(유해진)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왕의 남자>가 부각시키는 인물은 ‘광대들의 왕'인 장생이다. “내 살다 살다 별별 잡놈을 다 봤는데, 이곳에 와서 잡놈 중에 잡놈을 하나 봤지.” 감히 왕 앞에서 ‘배틀 랩'을 구사하는 장생은, 권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캐릭터다. 권력지향적인 공길이 주인공인 연극에 비해, 영화는 광대 장생의 내적 갈등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준익 감독은 “민주주의란 높은 자와 낮은 자가 만날 때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높은 자와 낮은 자를 만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준익 감독은 높은 자를 낮은 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방법을 택했다. 장생이 없었다면 연산도 변화되지 못했을 터. 전작 <황산벌>에서도 높은 자를 한없이 낮추었던 이준익 감독은, 이번에도 연산을 장생의 위치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의 좌파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조선 역사상 가장 폭군으로 평가받은 연산과 천하디천한 광대의 만남. 이준익 감독의 표현을 따르자면, <왕의 남자>는 ‘매너 좋은 반골영화'다.
 
“10대들은 공길, 20~30대는 장생, 40대는 연산, 50~60대는 처선의 시점으로 볼 수 있는 영화.” 다양한 나이와 계급의 캐릭터가 공존하는 <왕의 남자>는, 그만큼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폭도 넓다. 그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바로 처선이다. 처선은 항상 주군을 따르는 인물이자, 광대들을 궁 안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언뜻 처선은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를 주도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이는 다 연산과 처선이 공모한 계획 하에 있었던 것이다. 처선은 광대들의 놀음판을 본 순간, 이들을 왕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시험대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투쟁에 있어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떠올린 것이다. 결국 처선이 한 역할은 광대놀음을 통해 신하들의 책임을 묻고 그들을 처단할 수 있도록 ‘공론화’를 시킨 것. 그러나 연산이 우발적으로 선왕의 후궁들과 할머니까지 죽이자, 처선과 연산의 공모체제는 깨지고 만다. 결국 처선은 죽을 위기에 처한 장생을 구해주고, 자신은 목을 매 자결한다. 이것이 왕을 저버릴 수도, 끝없는 피바람에 동조할 수도 없었던 처선의 운명이다.

“만약 왕께서도 웃지 않으시면 그땐 네 놈들의 목을 칠 것이다.” 처선의 경고를 받은 후, 광대들은 행여 왕이 웃지 않으면 어쩌나 간을 졸인다. 왕이 무표정으로 일관하자 분위기가 싸해질 무렵, 공길이 재치있게 애드립을 치자 연산은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연산은 정말 웃겨서 웃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게 전부 연산의 ‘쇼’였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연산은 광대들을 궁 안에 들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연산이 애초부터 웃어줄 수도 있었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는 뜸들이며 긴장감을 조성할 줄 아는, 광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여기서부터 연산과 처선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시작된다. 그는 툭 하면 공길을 처소에 불러 자신의 마더 콤플렉스를 보여준다. 술 한잔 걸친 상태에서 그림자극을 즐기며, 연민을 자극하는 눈물도 주르륵 흘린다. 이 장면은 연산이 공길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해 연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각, 희락원에서는 처선이 폐비 윤씨 소재의 경극을 하도록 장생을 구워삶고 있다. 순진한 광대들은 자신들의 경극이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을, 자신들이 정치적 음모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산은 공길에게 오직 계산된 부분만 보여줬을까? 물론 아니다. 연산은 녹수와 함께 “윗입, 아랫입” 하며 음탕한 놀이를 즐기지만, 이것도 잠시. 녹수의 요염한 육체와 호탕한 기질에서도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연극의 녹수는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정치적인 캐릭터인 반면, 영화 속의 녹수는 권력보다는 ‘연산’이라는 한 남자에 집중한다. 때문에 언젠가부터 부쩍 허공을 응시하는 연산을 보며, 뭔가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한다. 녹수가 결정적으로 화가 난 부분은 바로 경극 신. 어머니 폐비 윤씨를 연기하는 공길을 보며 연산의 감정은 점점 끓어오르고, 결국은 공길에게 달려가 “어머니!” 하고 외친다. 이를 기점으로, 이제껏 어머니 역할을 해왔던 녹수는 의미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때문에 어머니의 자리를 빼앗긴 녹수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홍내관과 함께 모필사건을 꾸미게 된다. 또 하나. 후에 연산이 공길의 마음이 떠난 것을 알고 녹수에게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보자. 연산은 말없이 녹수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고(마치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듯!), 녹수는 연산의 외도(?)를 추궁하지 않고 “미친 놈”이란 한 마디만 내뱉을 뿐이다. 이때 녹수는 그의 연인 뿐 아니라 어머니의 역할을 되찾은 셈이다. 한눈 팔다가 다시 돌아온 탕자의 어머니 말이다.
 
이제는 마지막 신을 한번 떠올려 보자. 밖에서는 중종반정군이 몰려오는 와중에 궁 안에서는 장생과 공길이 줄타기를 하고 있고, 이를 연산과 녹수가 음미하고 있다. 이때 연산은 더 이상 왕이 아니며, 초라한 개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아니, 오히려 그는 줄을 타고 있는 장생을 부러워한다. 귀한 자와 천한 자의 구별 없이, 오직 네 명의 광대들만이 존재하는 순간. 장생과 공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른 이 순간은, 모든 정치적인 구름이 걷히고 광대들만의 시간으로 박제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점프해서 설매재에서 꽹과리와 북을 치며 장님놀이를 하는 광대들을 비춘다. 이때는 눈이 멀었던 장생도 눈을 뜨고, 죽었던 육갑도 살아나 신명나게 놀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을 <자토이치 Zatoichi>의 탭 댄스 신처럼 내러티브와 무관한, 판타지 장면이라고 말한다. 비록 현실에서는 모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영화는 이렇게 길 위의 인생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나 거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존재론적인 대사가 들리는 그곳. 그곳은 마술적인 공간이자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곳이다.
 
<왕의 남자>는 한국영화에서는 처음으로 남사당패의 인생을 조명한 영화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영화 안에 자신의 아이디어는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무지했을 뿐, 우리의 전통적인 유산을 영화 안에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다만, <왕의 남자>에는 한국 뿐만 아니라 타국의 뿌리 깊은 전통들이 골고루 뒤섞여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무거나 갖다 붙인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좋은 것만 골라 붙여놓은 빈티지 사극”이라는 게 이준익 감독의 주장. <왕의 남자>에는 가장 중요한 놀이인 줄타기를 비롯해, 사물놀이, 땅재주 등 한국의 전통적인 놀이뿐 아니라, 러시아의 그림자놀이, 중국의 경극,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광대의 속성(연산은 햄릿과 리어왕을 섞어놓은 인물이다)과 에밀 쿠스트리차 영화의 마술적인 요소들이 골고루 녹아있다. 가장 한국적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보편적일 수 있는 궁중광대극 <왕의 남자>. 이 영화에는 “사극을 잘 만드는 나라가 영화강국”이라는 이준익 감독의 고민과 노력이 배어있다. 이런 고민이 계속된다면, <왕의 남자>의 성공을 넘어 ‘<황산벌> 3부작’을 완성하겠다는 감독의 꿈도 조만간 실현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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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2006-02-0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긴 한데,이건 완전히 '알고보면 좋은 게' 아니라 '보고나야 좋은 글'이네요.. 오히려 이런 글을 너무 많이 봐서 왕의 남자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글 잘봤습니다~^^

놀자 2006-02-09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말이 맞네요..안 본 상태에선 저말이 무슨말인지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저 글 보고 나면 영화보는데 재미도 반감 되겠어요~ 전 암튼 영화보기전에 아무 기사도 보지 않고 봤답니다..ㅎㅎ

모1 2006-02-0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0만에 가까워진다면서요??

모1 2006-02-0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연산군이란 것을 잘 모를 외국인에게는 재미가 없을꺼란..생각도 가끔씩 들어요. 외국영화제에갈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요.

놀자 2006-02-1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외국에서까지 인정받을 필요는 없지요..ㅎㅎ
이제 곧 천만이에요~~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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