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waits > [펌.레디앙] 심상정 의원, "한미FTA 강행하면 제2의 6.10항쟁 직면할 것"

 

"한미FTA 강행하면 제2의 6.10항쟁 직면할 것"
심상정 경고, "미국 주법이 우선? 그럼 협상중단, 주법 공부나"

정부가 지금처럼 한미FTA 협상을 무리해서 강행하면 제2의 6.10 항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7일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에게 "현재 한미FTA 추진 과정을 보면 대내협상은 전무하고 사회세력간 민주적인 동의나 정치적인 이해의 조정과정도 전혀 없다"며 이 같이 경고했다.

심 의원은 이날 질의에서 한미FTA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미국식 경제 제도 도입과 양극화 해소라는 정부의 두 가지 목표가 서로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미국은 우리나라, 멕시코와 함께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라며 "FTA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할 생각이 있다면 양극화가 덜한 북유럽 모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따졌다.

심 의원은 정부의 정책들이 서로 어긋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6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보면 정부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의 자금을 활용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한미FTA 체결 후) 이들 금융기관들을 모두 민영화해버리면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정부의 안이한 협상 태도도 문제 삼았다. 그는 "정부가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한미FTA보다 미국의 주법이 우선한다고 되어 있다"며 "우리측 협상 대표들이 미국의 주법을 모두 파악하지 못한다면 협상을 당장 중단하고 미국 주법 공부부터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의 경우 미국의 노동관행이나 법규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배워가면서 협상하겠다"는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중대한 협상을 배워서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의원은 또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게 된 원죄는 IMF합의에 있다고 지적하고 한미FTA는 또 다른 국가소유, 또는 공공 소유 기관들의 매각을 강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질의에서 심 의원은 6일 발표된 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용에 대해서도 맹공했다.

심 의원은 "이것이 열린우리당의 정책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어 보인다"며 "한나라당, 그것도 한나라당의 가장 우파들이나 주장할 정책"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심 의원은 "현단계에서 확대 재정정책이나 출자총액제 폐지는 재벌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의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를 빗대 "서민을 이야기하면서 재벌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6년 07월 07일 (금) 17:03:40 정제혁 기자 jhjung@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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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끊이지 않는 논쟁 (조희연 선생님 홈페이지에 갔다가)

2005.3.2 (수) 18:55   동아일보   동아일보 기사보기
"[학술]임지현 vs 조희연 ‘박정희 논쟁’"
[동아일보]
조희연(49·사회학) 성공회대 교수와 임지현(46·역사학) 한양대 교수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놓고 지상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임 교수가 저서와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대중독재론’(지배자의 강압과 민중의 동의가 결합돼 독재가 출현했다는 입장)으로 평가하자, 조 교수가 계간 ‘역사비평’ 지난해 여름호에서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대중독재론이 대중의 순응적 침묵을 전면적이고 능동적 동의로 확대해석함으로써 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하는 보수 우익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 교수는 또 박정희 시대는 군대까지 동원해 유지됐으며 박 전 대통령이 최측근에게 암살된 것은 민중의 저항이 권력의 내부균열을 낳을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역사비평’ 지난해 가을호에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임 교수는 조 교수의 인식에는 민중을 영웅시하고 독재자를 악마시하는 도덕적 이원론이 작용하고 있다며, 대중독재론이 우익화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고 반박했다. 임 교수는 오히려 독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새로운 독재의 대두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소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대중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방식의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역사비평’ 올해 봄호를 통해 재반론을 폈다. 조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폭압과 저항을 강조하는 진보적 분석의 정반대의 지점(보수적 입장)으로 이동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는 또 사실상 박정희 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전까지 유지됐다고 주장하며 “박정희 독재에 대한 분석의 출발점을 6월 민주항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어 박정희 체제에 대한 현재의 동의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여름호에 다시 반론을 제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임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박정희 체제뿐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도 적용되는데, 조 교수가 대변하는 진보 진영에서는 박정희 체제만 문제 삼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의 과거사 청산과 맞물려 이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2005.3.3 (목) 09:16   서울신문   서울신문 기사보기
학계 일부 ‘脫 민족주의 수용론’ 눈길
[서울신문]최근 학계 논란의 중심에는 탈민족주의가 있다. 이 논란은 단지 학문적 논쟁에만 그치지 않는다. 논리의 순수성과는 별도로 ‘현재 정치’에 접속되면 보수주의와 뚜렷한 친화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핵심은 DJ정부 이래 집권한 ‘민족주의 좌파’에 대한 위기감과 반감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크게 다루는 자칭 ‘민족지’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논의 역시 비중있게 다루는 어색한 풍경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에서 다시 한양대 임지현 교수를 비판했다. 지난해 여름호부터 이어지고 있는 논쟁의 연장선상이다.

조 교수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임 교수가 박정희체제의 특수성을 외면한다는 데 있다. 서구의 몇몇 파시즘을 일반화한 뒤 박정희체제를 끼워맞추는 것은 ‘지적 종속’의 한 형태다. 이는 임 교수가 좁은 맥락의 비슷한 점에 집착,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부시-빈라덴’은 적대적 공범관계다. 하지만 ‘제국적 질서와 권력구조’를 놓치면 일면적인 해석에 그친다. 임 교수의 논지라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와 일본제국주의는 똑같다.‘반근대적 성격’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과거청산문제도 비슷하다. 나치재판을 마무리한 뒤 ‘몇몇 전범만 처벌해 독일 국민은 면죄부를 얻은 게 아니냐.’는 독일의 경험에서 뒤의 것만 임 교수가 따오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 제도적 과거청산마저 안 된 우리 상황은 지워져 있다. 조 교수가 “현재의 과거청산이 실패한다면 (임 교수 주장은)학문적 연구로 끝나버린다.”고 비판하는 까닭이다.

조 교수는 그러나 각주를 통해 박정희체제의 헤게모니를 과도하게 강조했다고 시인하는 등 임 교수의 논의가 지나친 좌파적 해석에 대한 ‘해독제’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한·중·일 3국의 근대사인식비교’ 학술대회에서도 최근 다시 일기 시작한 식민지근대화론 주장 가운데 일부분이 수용될 조짐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신주백 책임연구원은 한국 역사교과서의 일제시대 서술이 지나치게 ‘한국수탈론’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지주제 발달 등 한국의 대응이 빠진 데다 한국의 수탈만 있을 뿐 타이완과 만주의 사례는 없다.

도쿄대 마쓰모토 다케노리 교수 역시 식민시대 서술에서 수탈론 외의 서술은 찾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근대성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기존 역사연구에 대해 실증적 연구없이 ‘일제=악’이라는 도덕론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비춰볼 때 일제시대 중국의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중국 사회과학원 롱웨이무 부주간의 발표도 눈길을 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저작권자 (c) 서울신문사]

 

 조희연 선생은 역사를 ‘과거’를 소재로 한 ‘미래’를 향한 ‘현대’적 투쟁 이라고 말한다.
 신영복 선생 역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생환하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임지현 교수가 주장하는, 박정희 독재정권시절의 밑바탕을 대중의 지지라는 것에 우리는  수긍할 수 있는가?
 공포정치에 의해 내재화된 자기검열이 과연, 자발적인 동의 인가?
 푸꼬는 물론 대중이란 이중적이어서 저항하다가도 독재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게  과연 박정희 시절과 잘 어울리는 말인가?
<우리안의 파시즘, 임지현외, 삼인>

 독재자란 모두 악마라고 생각하는 굳어버린 도덕관념이라고 임교수가 탓을 하기엔, 그 시절 우리가 군과 경찰에 의해 흘렸던 피는 무엇인가.
박정희 향수는 사실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세대, 혹은 그러한 탄압을 실질적으로 받지 않았던- 루소의 표현에 따르면- 무지몽매한 민중들 아니었나?
일반의지(헌재)가 집합의지(국회)를 아직도 간단히 부러뜨리는 시대에서, 우리에게 이 사회계약을 파기할 권한은 없나?
하긴... 집합의지도 집합의지가 맞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임교수의 시선이 더 탐탁찮은 것은, 왜 역사를 끊어서 보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폭력이 아닌가? 헤게모니는 폭력이 아닌가?
거기에 장악된 민중은 과연 민중인가?
'자발적 지지'에 퇴색되어가는,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속에 있는 수많은 희생양의 목숨과 저항자들의 명예는 어디있는가?
과거를 청산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법적, 역사적 처벌이기도 하지만 권력에 힘없이 스러져간 넋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되살리는데에도 의의가 있다.

 

 

[사회과학논문] <당대비평,2001,봄>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논평 
 
 < 일상적 파시즘 다시읽기>를 읽고
김 동 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1. 임교수의 문제 제기에 일단은 공감한다. 임교수의 문제제기는 군부독재가 퇴진한 이후 이제 '합리적 지배'( 즉 자본의 지배)의 영역에 포섭되어 가는 한국 민중들의 의식과 실천 일반, 그리고 권위주의의 비판자였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운동가들을 나름대로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민주'와 '진보'를 대변한다고 자임했던 운동진영 내부의 반민주성, 귄위주의, 가부장주의 문제는 크게 문제거리가 된 바 있고, 민중들의 일상 생활의 영역에서 착근해 있는 권위주의와 군국주의 잔재 역시 90년대 초 들어서 본격적으로 부각된 바 있으며 필자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일련의 작업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의 계급론자, '민중메시아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비판자들에게 그러하였듯이 임교수 역시 때늦은 시점에서 80년대 식의 민중주의, 계급주의를 과도하게 단순화한 다음 그러한 가공의 대상을 향해 공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87년 6월 항쟁과 7,8월 대투쟁이 발생한지 14년이 지난 오늘 누구도 민중을 타자화하는 그러한 투박한 민중 메시아주의를 견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판은 시체에 칼을 들이대거나 허수아비를 보고 소리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일상적 파시즘론이 2001년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과학적 이해 혹은 한국 민중들과 운동가들의 의식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어떤 유관성(relevance)를 갖는지 다시 묻고 싶으며, 아울러 {당대비평}이 이 주제에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다루어야 할 정도로 시급한 쟁점인지 묻고 싶다.

2. 지배는 언제나 가시적인 폭력과 내면화된 동의를 수반하게 마련이고, 군부독재는 전자를 전면에 등장시킨 시기라면 정치적 민주화는 어떤 점에서건 후자의 측면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전기가 된다. 폭력이 전면화되고 가시화되는 시기라고 해서 민중들의 내면화된 복종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민중들의 내면화된 복종이 더욱 문제가 되는 시기에도 권력은 언제나 피지배자의의 일상생활의 통제를 통해서만 자신의 지배를 관철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권력은 사회, 문화적으로만 관철되는 것은 아니며 언제나 물리력을 배후에 깔고 있다. 2000년 여름 롯데호텔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전경들의 폭력은 80년 광주 사태의 재연이었다. 그것이 '일상'의 영역으로 지배권력의 행사가 변화된 시대의 우연하고 돌출적인 사건이었는가?
따라서 일상의 영역이 구조적 영역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밝히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제기는 자본주의 국가와 그 지배기구에 대한 오도된 설명에 도달하게 된다. 크게 보아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것은 서구 자본주의가 상당한 물질적인 성공을 거둔 70년대 이후 유럽의 신좌파의 역사학과 사회학에서 ( 하버마스의 '생활세계의 식민화' 논의,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스코트의 "일상투쟁"의 개념, 베링턴 무어의 "Injustice" 등의 저서) 충분히 제기된 바 있고, 그것은 정통좌파의 경제주의적 편향을 사회 혹은 문화 현상에 대해 새롭게 주목할 것을 제한하는 흐름들이다. 유럽의 신좌파의 지적 반성이 68년 혁명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일상으로의 관심 전이 역시 80년대적 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주의의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제기된 것과 유사한 맥락 속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6월 항쟁은 68혁명은 아니었다. 이것이 임 교수의 문제제기는 실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90년대 초에 민중운동, 민주화운동 진영을 향해 공개적으로 제기되었어야 할 것이 지금 제기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뒤늦은 점도 있고, 이론적으로 본다면 아직 분단체제 하의 억압기구나 억압적 법이 사라지지 않은 시점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탈맥락적인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다.

3. 한편에서의 수동성과 다른 편에서의 공격성을 가진 파시즘, 권위주의 체제 하의 민중의 행동 양상, 가부장제 사회에서 길들여진 남성들의 행동 양식에 대한 개념화는 '일상적 파시즘'의 개념이 없이도 충분히 비판될 수 있고, 또 해석 비판되어 온 바 있다. 임교수가 설명하는 오늘 민중들의 정서와 의식 속의 수동성과 보수성, 지식인들의 이중성과 일상에서의 보수성 등은 일상에서의 파시즘이라고 개념화하기보다는 오랜 왕조체제를 거치는 동안 침전된 전통적 보수주의가 군부독재 주도하의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통상 지배 체제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민중들을 지배자와 동일한 주체위치로 올려놓는 것이 어떤 점에서 오늘날 민중들의 의식과 행동의 특성을 잘 부각시켜줄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일상의 영역 혹은 코드 등의 개념이 하나의 문화현상 혹은 단순히 상부구조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매개하는 습관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것은 브로델이 말하는 사회변화의 장기지속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언어의 영역이자 사회학에서 말하는 일상적 실천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을 부르디외는 하비투스(habitus)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개념이 부르디외의 그것보다 더 현실 설명력이 있는가? 그냥 가부장주의와 군부독재에 길들여진 민중의 하비투스라 부르는 것이 더욱 정확한 것이 아니겠는가?
즉 일상적 파시즘론은 역사적 국면에서 나타난 파시즘의 개념을 너무 일반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1차 대전 이후 자유경쟁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혁명을 거치지 않는 후발자본주의 국가, 특히 농촌에서의 계급분화와 계급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지 못한 나라에서 나타난 바, 농민들의 권위주의적 정서와 후발자본주의의 위기가 맞물려서 나타난 역사정치적 지배체제를 설명하는 개념인데, 이것을 오늘의 수동적인 민중들의 의식과 태도 일반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게 본다면 모든 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복지국가가 자본의 지배가 내면화된 체제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복지국가 역시 변형된 파시즘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의 개념이 지나치게 넓은 외연을 가질 경우 그 개념의 유용성이 상실되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

4. 일상적 파시즘론은 실천적으로 허무주의와는 무관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많다. 단순히 개인의 윤리와 의식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광수 식의 민족개조론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으나, 유럽의 문화적 좌파들의 실천지향과 유사하게 자본주의 문화 비판론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파울로 프레이리 식의 민중 의식화의 대안이 제시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는 일단 현실분석이기 때문에 그 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어떤 문화적인 변혁론도 정치 경제적 변혁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운동의 패배를 다른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민중들도 문제있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다. 그러나 민중들이 주인으로서 행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본말을 전도시킨 것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즉 민중들이 자신의 생활세계의 체험을 통해 확립한 나름대로의 '합리성'(rationality)을 지식인이 설정하고 있는 민중의 이상적인 상태 혹은 지식인적인 관점에서의 '민중의 비합리성'의 기존으로 보는 것은 지식인, 사회과학자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충분히 제시해 주기도 어렵다. 새 주민등록증 신청 작업에 그렇게 자발적으로 동원된 민중들을 비판하기 이전에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이 왜 소수의 메아리가 되고있는지 먼저 반성할 일이다.

5. 한가지만 더 제안하면 그래도 한국에서 일상의 파시즘이 분명히 중요한 현실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서구의 급진적 페미니즘, 탈식민화 담론 등만 읽지 말고 일제 식민지 말기의 동원체제와 한국전쟁 기에 발생한 민간인학살에 관해서 알아야 한다. 파시즘과 유태인 학살에 동조한 독일 민중들이 오늘의 독일사회의 보수화의 주역이라면 한국사회에는 군사독재의 원조격인 식민지 지배와 전쟁체험이 사회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남의 경험에서 나온 이론을 받아들이는데는 그렇게 신속하면서 오늘의 우리가 겪은 현실이 과거 우리 조상들이 겪은 역사의 경로 속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는 그렇게 둔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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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열린우리당, 미래는 있는가 - 김욱 칼럼

열린우리당, 미래는 있는가 - 김욱 칼럼


개혁정치 아마추어들이 이 나라 정치구조의 진화를 최소한 20년 이상 퇴행시켰다. 1998년 정권교체 이후 맞이한 10년의 기회를 원위치 시켰으며, '노무현 학습효과'로 인해 앞으로 10년 이상 집권 기회를 못 가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태를 최악으로 악화시켰다. 노란 하늘이 아직 실감나지도 않을 것이고,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상태라면 두고 볼 것도 없다.

침몰하는 노무현 정부, 왜?

내가 위에서 개혁정치 아마추어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집권세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든 지지자들까지 포함한다. 아마추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혁만 부르짖으면 개혁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말을 바꾸면 집결세력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부르짖으면 개혁이 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역사상 그렇게 이루어진 개혁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지지세력 결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왜 지지세력 결집에 실패했는가? 정권을 만들어낸 전통적 지지세력의 확대가 아니라,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전통적 지지세력을 교체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 지지세력의 중심축인 호남이 수행해왔던 민주개혁의 역사적 정당성과 지위를 하루아침에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터무니없는 이데올로기는 개혁세력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개혁정치 아마추어들이 호남을 개혁의 토대로 삼아 호남과 개혁세력의 연대를 확대ㆍ강화하기보다는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을 없애야만 개혁이 확대ㆍ강화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청산대상이었다. 당연히 역사의 문제는 이렇게 제기됐다. 저항하는 호남이 사라지면 패권을 추구하는 영남도 사라질 것인가?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장밋빛 환상은 이런 것이었다.

"저는 이와 같은 것이 보기에 따라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민주당만 먼저 분열되고 한나라당은 당당하게 저렇게 서 있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되는 것 아니냐라는 불안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겠지만 그러나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역, 말하자면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자기 당의 결속을 유지해 왔던 그런 정치질서의 총체적 붕괴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인터넷 한겨레>, 2003년 9월 17일)

총체적 붕괴??!! 노 대통령의 '생각'이 만들어낸 참담한 현실을 좀 보라! 노 대통령의 장밋빛 환상 덕분에 한나라당은 공룡이 되어 돌아왔다. 그나마 공룡이 된 한나라당에 강철처럼 맞서 버텨낸 건 호남뿐이다. 개혁을 떠들던 장삼이사의 표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러니 호남이 누굴 믿겠는가!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상상했던 '지역관념 없는 개혁(?!)부동층'을 흡수해 다시 완벽하게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시키고 게임을 끝냈다.

도대체 이 엽기적인 실패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아니 그들이 책임의식이라도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은 이미 일정한 궤도 위에 올라와 있어 국민은 과거보다 여유 있는 입장에서 집권세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인터넷 중앙일보> 2006년 5월 15일)는 유시민 장관의 염장지르는 소리만 들린다. 이런 식이라면 "호남만 분열되고 오히려 고립"시킨 책임을 묻는 나의 시선은 호남근본주의자의 구시대적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지세력 분열, 이유는 있다

제발 이제 보고 싶은 환상만으로 세상을 규정하지 말고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좀 직시하기 바란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호남이라는 관념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도권의 상당수 호남 유권자는 한나라당에 기꺼이 투표했다. 이는 역사상 어떤 독재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라도 지역구도가 허물어졌으니 축하할 일인가? 호남이 그럴진대 DJP연대를 통해 가까워진 상당수 충청 유권자가 한나라당에 다시 귀환한 것도 당연했다.


처음부터 지지세력의 확고한 결집에 실패한 결과 개혁은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개혁에 피로함을 느낀 수도권 부동층도 다시 한나라당에 돌아섰다. 예정된 악순환이었다. 물론 여전히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진보세력은 민주노동당에 투표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영남 유권자는 당연히 한나라당에 투표한다. 자,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표는 어디에서 나올까?

과거를 이해하면 미래도 보인다. 노 대통령에게 지역문제는 실체가 있는 패권관계가 아닌 실체가 없는 감정적 허구다. 그래서 이 관점을 지지하는 친노 세력은 앞으로도 지역관점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일 따위는 속으로만 할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개혁이 미진해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으로 떠났으므로 개혁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열심히 뒷북을 칠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이 무책임하고 습관적인 구호가 정말이지 이젠 지겹다.

생각해보라. 만약 지방선거 결과가 미진한 개혁실패의 결과일 뿐이라면 왜 그들은 더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며 민주노동당으로 집결하지 않고 수구적인 한나라당으로 귀환했을까? 그리고 왜 미진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민들과는 달리 호남만이 압도적으로 한나라당을 거부하고 있을까? 지방선거 결과를 '지역패권문제 없는 개혁실패의 결과'만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전략실패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역사적 '무한지연책'일 뿐이다.

정치권의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 가능할까

한편, 좋게 말해 현실을 직시하는 혹은 나쁘게 말해 국회의원직 재창출만이 유일한 관심사인 그룹은 다시 통합을 부르짖으며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통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표현이야 다양하게 나오겠지만 결국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이 요체일 것이다. 얼핏 보기에 '반한나라당 연대'는 통합을 주장하는 호남중심의 '살자파'와 초심을 외치는 영남중심의 '몽환파'가 두말없이 합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두 정치세력은 절대로 '반한나라당 연대'에 쉽게 합의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반한나라당 연대'란 구체적으로 '영남인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세력의 결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주체는 다시 호남과 연대지역 그리고 개혁세력이 된다. 이 경우 호남이라는 지역 관념이 다시 등장할 것이고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개혁세력은 이를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상기하자. 노회찬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꿈의 리그'를 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층 복원'을 말했을 때 '창당 초심'으로 제동을 걸었으며, 문재인 전 수석은 '부산정권' 발언과 함께 '민주당과의 합당 반대'라는 노 대통령의 복심을 확인했다. 가치맹목적인 영남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그들에게 '반한나라당 연대'는 '역3당합당'이며 '도로난닝구'의 굴욕에 불과할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사람들,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가도 일종의 정치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영남인들은 한나라당에 열심히 투표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으므로 그들은 99마리의 양보다 더 중요한 길 잃은 1마리의 양이라고 믿는 사람들, 한나라당이 앞으로 백년을 지배하더라도 반한나라당 연대는 과거회귀일 뿐이라며 '관념으로 현실을 재단'하려는 사람들과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앞으로 열린우리당은 다수당으로 존속할 수 있을까? 없다! 그들의 통합논의는 동시에 분열논의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남개혁세력=꼬마민주당=양비론=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호남을 표찍는 도구로 사용하면서 영남에 정의를 구걸하려 했던 열린우리당의 몽환적 정치실험은 분명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아직 살아 있다. 다만 앞으로도 '그들 분파'가 역사와 싸울 무기가 '양비론'이라는 사실이 유감일 뿐이다.

미래를 말하기 전, 현실부터 직시해야

덧붙여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울산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민주노동당도 호남에 관한 한 '노무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열린우리당의 양비론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한나라당을 반개혁ㆍ수구정당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바로 그 반개혁ㆍ수구정당을 노동계급보다도 더 철저히 거부하는 차별지역 호남과의 연대를 거부한다. 연대는커녕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의 극복이 곧 그들이 융성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는 노동 '계급'이든, 식민 '지역'이든, 피지배 '인종'이든 피차별 '여성'이든 약자들과의 연대가 모든 정치투쟁의 필연적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는 전 세계 진보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기이한 사태다. 나는 이 유래 없는 사태를 자랑하는 이 나라 개혁ㆍ진보세력의 이데올로기가 한없이 부끄럽다. 개혁ㆍ진보세력에 의한 호남 해체가 아닌 호남과 개혁ㆍ진보세력의 연대만이 한나라당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상식을 믿기에 그렇다.

이 모든 위선적 정의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결과만 좋았다면 정의는 역사의 숙제로 남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다. 한나라당으로 발현되는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에 '무릎 꿇고 반항하는' 식의 영남개혁세력의 이 사이비 개혁정치는 호남을 개혁 이데올로기와 철저히 분리시켰으며, 그 분리된 호남은 다시 불가피하게 양분되어 소수로의 전락을 자초했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노무현 식 개혁정치'의 참담한 실패로 귀결됐다.

한 마디로 열린우리당의 비참한 몰락은 아주 오래된 논쟁, 즉 '호남 없는 개혁'이 가능한가에 대한 역사경험적인 냉혹한 응답이다. 니체를 인용하면 병자가 된 열린우리당은 "예전에 자신이 탐닉했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환상들을 경멸과 함께 상기"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추동해왔던 호남과 개혁세력의 미래는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깨달은 바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정도를 걷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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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펌/민소] KTX, '동지'와 '연대'로 싸워온 100일

 

KTX, '동지'와 '연대'로 싸워온 100일
"녹록치 않지만 동지들이 있어 할 수 있죠. 끝장을 봐야죠"
정웅재 기자    메일보내기  

  

△여전히 환한 웃음을 잃지 않은 승무원들. 정당한 투쟁이기에 "끝장을 보겠다."라고 말한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8일 KTX 승무원들의 투쟁이 100일을 맞았다.
  
  상시적이고 핵심적인 업무이기에 업무위탁 방식이 아닌 철도공사가 직접고용하라는 상식적이고 정당한 요구에 철도공사는 270여 명 정리해고로 답했다. 그리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3월 1일 350여 명이 시작한 파업투쟁. 일부는 복귀하고, 일부는 지쳐 포기하고 200여 명이 남았다. 이들에게 지난 100일은 육체적ㆍ정신적으로 녹록치 않은 시간이었다.
  
  녹록치 않았던 100일, 힘이 된 것은 '동지'와 '연대'
  
  그 시간동안 힘이 된 것은 이 투쟁 전에는 몰랐던 '동지'와 '연대'였다. 나의 일 처럼 여기고 연대해 힘을 주는 동지들,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가 너무나 정당하다고 확신하기에 KTX 승무원들은 "끝장을 보겠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지난 100일 녹록치 않은 투쟁이었다. 그 시간동안 힘이 된 것은 함께 싸우는 승무원들과 항상 연대해 힘을 보태주는 동지들이었다. 공공연맹 소속의 한 노조가 투쟁기금을 모아 전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KTX 투쟁 승리 문화제'가 열린 8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 농성장에서 승무원들을 만났다.
  
  양혜영(27. 1기 승무원) 서울KTX열차승무지부 교선부장은 "저희들이 토론을 하다보면 모든 얘기가 (여기서) 그만 둘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요."라며 "지금 남아있는 승무원들은 같이 시작했으면 같이 끝내야 한다는 마음들"이라고 전했다.
  
  강 아무개(28. 1기) 승무원. 장기화 되는 투쟁이 힘들거나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에 "지금 이렇게 (투쟁)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껴보거나 불안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라며 "(오히려) 신랑한테 잘 못 해 주고 가정에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해요."라고 답했다.
  
  작년 11월에 결혼해 아직 신혼인 강 승무원. 그는 "신랑이 내색은 안 하지만 투쟁이 장기화되며 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라면서도 "그래도 이 투쟁은 계속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마침 옆에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농성장을 방문해 다른 여승무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 승무원은 그들을 가리키며 "(우리와 똑같은 일이)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되풀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네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다 투사들이에요" "끝장을 봐야죠"
  
  부산KTX열차승무지부 소속의 곽우선(28. 1기) 승무원. 그도 "이길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여유롭게 끝까지 하려구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저희가 투쟁 시작한 지 일주일 됐을 때 이 투쟁이 100일 까지 갈 수도 있다고 해서 웃어 넘겼는데 어느새 100일이네요. 지금은 다 투사들이 됐어요. 집에 한번 씩 다녀올 때마다 부모님도 초반에는 못 가게(파업대오에 복귀 못하도록) 막으시더니 잘못된 현실을 이해하시면서 부터는 대견하다고 하세요. 오늘 아침 아빠가 문자도 보내주셨어요."
  
  "우선아 잘잤어..백일기념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비가와서 어떻게 해. 밥먹었어. 아빠.
  
  
△100일동안 노고가 많았다는 아빠의 응원메세지. "우선아 잘잤어..백일기념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비가와서 어떡해. 밥 먹었어."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박미라(26. 2기) 승무원은 "싸움이 녹록치는 않지만 우리 투쟁이 이어지는 것은 많은 연대단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싸움이 정당하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자리를 지켜왔지만 혼자였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에요."
  
  그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면서도 그래도 "끝장을 봐야죠."라고 강조했다.
  
  한뎃잠, 단식, 강제연행 등 KTX 승무원들은 지난 투쟁 과정이 사실 힘든 시간이었다고 하면서도, 이 싸움 포기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가 너무나 정당하기 때문에.
  
  이날 문화제를 진행하며 KTX 승무원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팔뚝질을 하며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끝가지 투쟁하자."라고 외쳤다.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어깨 걸고 웃으면서 함께 가자"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KTX 율동패가 힘찬 율동을 선 보였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다시 고객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KTX 승무원"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한 승무원의 어머니가 딸과 함께 'KTX 투쟁 승리 문화제'에 함께 하고 있다. 요즘 KTX 투쟁 현장에선 10여 명의 열성 어머니들을 항상 만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정당한 딸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어머니들은 "철도공사는 우리 딸들만이 아니라 가정도 망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가정에 다시 웃음꽃이 필 날은 언제올까?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006년06월09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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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월드컵, 일주일 전.

지금쯤 저의 편지를 기다릴 분들이 꽤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또 앞뒤가 맞지 않을 글을 쓰고야 맙니다.  긴 글을 쓸 시간도 없고, 이런 저런 분석들은 신문방송과 인터넷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을 듣고보는 준 개최국 수준인 대한민국에 있으니 짧게(?) 저의 핵심만 요약해보겠습니다. 

금번 대표팀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1. 이동국이 없다

이동국이 없다는 것은, 황선홍이 없는 2002년 대표팀을 의미합니다. 경험있고 필살기가 있는 타겟맨의 부재는, 한국축구가 거의 모든 팀의 선수들과 비교해 개인기가 달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장 없는 고아원에 비유할만 합니다. 

거친 상대의 중원에서 압박당하고 밀릴 때, 패스할 곳이 없어 당황스러울 때, 우리 대표팀은 거의 걷어내듯 타겟맨으로 공을 차냈고 타겟맨은 이렇게 공을 차기 편한 위치를 항상 잡고, 수비수를 등지고 몸싸움을 해대며 공간을 확보하고 받은 공을 키핑해 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2002년의 순간순간들을 보시면, 황선홍 없는 대표팀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정말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핌 베어백은 세레소 오사카에서 황선홍을 찾아내고서는 히딩크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지요. 

"우리가 찾던 그 선수가 바로 여기 있어요!" 
2006년 이동국은 바로 그 역할을 할 선수로 성장해 있었고, 2002년 월드컵 이후 박항서, 코엘류, 본 프레레, 아드보카드 감독이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센터포워드 주전이었습니다. 그 선수가 부상으로 탈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황선홍 없이 도전해야 했던 98년 프랑스월드컵의 차범근 대표팀과 동일한 "비상상황"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네덜란드 = 프랑스, 쟁쟁하던 멕시코 = 스위스, 쉽지 않던 벨기에 = 토고로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은 저의 비관론일까요?

안정환은 차라리 박지성 스타일의 선수입니다. 

안정환이 가장 빛났던 시절은 2002년 월드컵이 아니라, 그가 미드필더로 부산대우에서 활약할 때였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경기 내내 헤매다가 헤딩슛 두 방으로 국제스타가 되기 훨씬 전인 1999년부터 안정환은 국내 최고의 미드필더, 새도우 스트라이커였습니다. 

이운재가 가장 무서워했던 돌파와 슛을 가졌던 그는, 그 빛나는 포지션을 포기한 이후로 별로 빛을 못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멋진 선수가 왜 원톱 스트라이커 자리를 고집하는지! 

그는 한국의 지단이 될 수 있었는데, 이미 박지성에게 그 자리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제가 기대할 선수는 차선책인 조재진입니다.

 

▶ 타겟맨이 경기의 흐름을 결정한다 - 조재진의 활약을 기대해보며...

2. 박지성도 없다

경험있는 유럽리그 선수들, 그 중에서도 박지성의 존재는 우리에게 든든한 믿음을 줍니다.그렇게 믿게끔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을 보면서, 저는 이 역설을 말합니다...박지성도 없다.

이미 노출된 플레이메이커란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을 2002년의 지단, 피구에게서 우리는 보았습니다.박지성은 집중 마크 대상이어서 그의 소속팀에서 하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드보카드 감독이 아마도 유럽팀과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왼쪽 윙포워드로 쓸지도 모르는데, 화내지는 마십시오, 저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지성이 있기 위해서는 원톱 타겟맨이 박지성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동국의 부상 이후에 투톱체제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축구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었는데 바로 이런 상황, 박지성이 집중 마크 대상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놓고 볼 때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의견입니다.

아드보카드 감독은 그런 실험을 할 여유가 없었고, 원톱 타겟맨도 부실해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이 똑똑하다면 자신에게 쏠린 상대수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결국 박지성이 없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공격을 해야한다 -  박지성을 그저 세워놓고 뛰라... 

3. 너무 긴장하고 있다

2002년 대회의 빚이랄까,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몇번의 평가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강한 압박을 받을 경우 주변의 동료에게 패스하고 다시 받는 것보다는

후방으로 길게 패스해 안전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평가전이라 좀 모험적이어도 되었겠지만 지나치게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별로 성공한 적이 없었던 유럽에서의 월드컵은 항상 시차가 문제였습니다. 

이번 대회에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선경기는 한국시간으로 저녁 10시 새벽 4시에 벌어집니다. 

16강전은 모두 새벽 4시일 정도로 국내선수의 경우에는 운동하기가 매우 열악한 시간대입니다. 

비록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표팀 전체의 시차적응이 문제인 상태입니다.


시차는 긴장감과 결합해 체력과 판단력 저하를 불러옵니다. 

이것은 집중력과 순발력 저하를 동반하며, 실수가 발생하면 당황하게 만들고 경기 주도에 대한 책임감을 떨어뜨립니다. 

해결방법은 역시 정신력, 그 중에서도 투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대표팀에서 이 부분을 챙겨줄 선수가 너무 없습니다. 리더가 좀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이운재가 이걸 하기는 포지션에 제약이 있습니다. 

2002년의 홍명보와 비교하기에는 최진철은 너무 점잖습니다. 

김남일은 리더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해, 이을용에게 유상철과 비교되는 리더역할을 기대해봅니다. 

근데, 이 친구 너무 쑥맥이라...

▶ 심신이 고달픈 새벽경기에서는 리더가 경기의 흐름을 결정한다 - 이을용의 활약을 기대해보며...

4. 조직력의 다른 말은?  

개인기가 부족한 우리 대표팀은 조직력으로 승부한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런데 개인기가 강한 팀은 조직력이 약할까요?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개인기가 강할수록 조직력도 더 강해집니다. 

개인기가 트래핑이나 드리블이라고 착각하는 한국의 축구팬에게는 조직력이 개인기와 상대가 되는 말로 들리겠지만, 아니올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얼 믿고 조직력이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박종환의 벌떼축구를 조직력의 축구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당장 조직력하면 연상되는 것은 박종환의 청소년팀과 히딩크의 2002년 팀입니다. 

두 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박종환의 83년 청소년대표팀은 약속된 공격플레이로 유명하고 

히딩크의 2002년 국가대표팀은 처절한 압박으로 유명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공격은 약속대로 하고, 수비는 처절한 압박으로 하는 것. 

이것이 한국 대표팀이 추구해야할 조직력의 실체입니다.  

조직력의 다른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성이고, 그것은 부지런함이고, 그것은 체력이고, 그것은 속도입니다. 

조직력이라는 것이 개인기처럼 눈에 띄는 것으로 나타나려면 

역시 체력과 속도가 담보되어야 하며 체력과 속도라는 면에서조차 밀리면 우리보다 개인기가 강한 팀을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체력과 속도가 밀리는 조직력은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2002년과 달리 주구장창 합숙훈련을 하고 자기 나라에서 경기를 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는 

2006 월드컵은 정말로 선수들 개개인이 정신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치 98년 월드컵 예선의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 전... 감독이 현장에서 해임당하고 

선수들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각오로, 최소한 전패를 면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싸웠던 

그 정도의 정신력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조직력은 정신력이다 -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전패할 수 있다.

제 예상은 이렇습니다.

토고와의 경기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토고는 동네축구를 하는 팀입니다, 잘하는 몇 명이 대부분의 경기를 이끌어가는...)

그러나 나머지 두 경기는 전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우리가 이미 아는 팀이고, 스위스는 오히려 프랑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스위스와 중국의 평가전을 보고 느낀 것은...

거칠고, 압도적이고, 지치지 않고, 공격적이며, 쉴 새 없이 밀어붙이는데다 잔재주까지 있는 팀이었습니다.

거기다 스위스는 독일말을 쓰는 사람들이 태반인 반 독일입니다. 홈구장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어려운 상대를 맞아 선전해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6.6.6.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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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의 오랜 지인 짱구박사님의 작품입니다.
원래 축구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인데 마침 이번 월드컵을 위해 좋은 분석글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저자가 동의해주신바 알라디너분들이 읽도록 여기 올립니다.
가나전 보고 나서 16강도 희망 없다고 기죽은 분들께 다시 희망을 담아 대표님에게 보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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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6-06-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괜찮은데요.축구를 2002년도 전부터 보신 분인지는 의심이 가네요.저 같은 경우는 축구에 대해서 열광은 하지않지만,꾸준히 본 상황에서 다른 의견이네요.
이동국에 대해서 요즈음 평가가 좋은데 그전에는 황선홍처럼 국제적인 시합에서는 인정을 받지못했습니다.뭐라고 할까? 강팀에게는 이상하게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황선홍의 경우 나중에 명예회복을 해서 그렇지 90년대초반에 강팀하고 할때는 축구팬들 사이에 뻥축구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골징크스가 있었습니다.이동국도 마찬가지고요.스위스가 프랑스보다 강하다. 이것은 최근의 경기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ㅡ_ㅡ 스위스는 요즈음 떠서 그렇지,프랑스에 비해서 한수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안정환의 경우 2002년도에 행운인 것 같은 결정골들을 넣어서 발탁한 것도 있을겁니다.(개인적으로는 별로지만,전에는 이동국보다는 알아주는 선수였죠.) 그리고 아직은 미숙하지만,박주영을 주목하면 좋을 것 같네요.^^ 토고가 동네축구라 그것도 동의하기는 어렵지만,그래도 좋은 글 봤습니다.

사마천 2006-06-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은 아니고 짱구박사님이라고 축구 애호가 글이라 소개드린 것입니다. 하여간 서로 논의하면서 즐거움 키우면 좋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