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시마 1
히로카네 겐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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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과장이 부장이 되고 다시 이사까지 올라가게되었다. 기업의 별이라는 이사, 중국사업을 담당하는 중책을 맡게된 시마의 모습을 보기 기대했는데 작가도 아직 부담이 되었는지 갑자기 사원시절으로 돌아간 작품을 만들어버렸다. 형식은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스타일인데 상당히 보수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마가 입사할 당시 72년경은 학생운동이 막바지까지 달해 산장에서 무력투쟁의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해외로 나가 팔레스타인 해방, 요도호 납치 등 여러곳으로 퍼져나간다. 시마는 물론 정치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자세로 나온다. 시마과장을 보면 시마가 학생때 데모에 참여한 장면이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여간 여기서 작가의 입장은 강경 보수다.

시마과장에서 우리는 과장으로서 시마의 주변뿐 아니라 멀리 전세계를 오가며 시마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장과 이사 등 고위직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업 전체 나아가 일본 샐러리맨 전체의 모습을 보는 묘미가 있었다. 시마라는 개인이 아니라 과장이라는 지위가 실무자로서 그러한 활동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사원은 그냥 시키는대로 기어다니는 모습이 대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 점에서 재미는 좀 떨어진다고 하겠다. 여자 문제는 여전히 그때부터 밝히는 자세로 나온다.

시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볼만 하지만 전작의 명성만큼 달하기는 좀 부족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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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묵시록 카이지 1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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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마디로 말해서 사회의 냉혹한 실체를 알게 해주는 만화다.

작가는 여러가지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성, 특히 약점에 대해서 적나라 하게 드러낸다.

돈에 대한 갈망 하지만 여기에 지극히 약한 마음. 돈 앞에서 서로를 쉽게 배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이지에게 연대보증을 씌워서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한걸음 나아가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구제해주었는대도 불구하고 돈 앞에서 다시 배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비웃으면서 배의 주인께서는 사람들은 흔히 사죄한다고 말하지만 진심이 부족하기에 그 부족한 진심을 몸으로 표현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철판위에 얼굴을 들이대서 영원히 낙인이 찍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미안하다 다음에는 잘해야지 하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경우가 많다. 금연에 대한 약속도 마찬가지다. 3일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면에서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 우러러 나와야 한다는 말은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리네카와에 대한 비판도 통렬했다. 끝마무리가 시원찮으면 남의 위에 서지 못한다는 것 또한 조직의 진리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무리를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카이지에게 손가락을 잘리게 만든 게임에서 보여주는 솜씨도 놀랍다. 승자란 항상 이기도록 만들어 놓고 게임한다는 설명도 배울 점이 많다. 주식 특히 선물옵션의 경우는 승자의 논리가 강하다. 강한 세력에게는 무언가 뛰어난 점이 있고 일반사람들이 공평한 기회, 나도 할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공정한 게임 운영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소리 없이 돈을 갈취해간다. 바로 카이지가 당한 것 같은 수법으로 말이다.

카이지는 이런 냉정한 논리속에서 인간미를 보여주는 존재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지만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보다 직시하여 그렇게 험한 꼴을 당하지 말라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참고로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카드빚 통제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지금 현실에서 카이지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모습들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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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지음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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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기획이다.

작가 허영만의 삶, 작품활동, 주변의 평가 들을 두루 모아 만들었다.

한때 공장만화로 대본소를 도배하면서 불어난 양을 감당 못하게 눈에 띄게 떨어지던 질 나쁜 만화 양산이 결국 한국만화의 가치를 떨어뜨릴 때 과감히 다시 작가 개인의 개성으로 돌아간 작가 허영만에게 독자들은 감사로 보답한다. 각 장르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결국 타짜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식객은 맛의 달인에 비견할 만한 좋은 작품들을 가지게 되었다.

원소스 멀티유즈가 컨텐츠 산업의 특징이라면 허영만의 작품이 영화와 캐릭터로 진출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직 충분히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노력이 늘어나며 점차 이익이 불어나는 산업화의 단계로 다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만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관심을 가져볼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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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1
박하 글, 허영만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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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만화는 뭔가 다르다.

남들 하지 않는 소재들을 다루고 사실성을 가득 담은 표현으로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감동 만큼이나 아쉬움이 많다.

주인공의 독특한 매력에 푹 빠져보았지만 마지막의 결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너무 치졸하다. 사회로부터 일탈, 그것도 당당한 자유선언을 하던 주인공의 모습은 반대로 제도의 추악함을 여러모로 드러내보인다. 동생친구 돈을 받고도 제대로 변호하지 않는 일류대 나온 변호사, 물신주의에 빠져 성적, 일류대학으로 자녀를 몰아붙이다가 결국 그 자녀가 지하철에서 자살하게 만드는 부모, 약자에게는 무지 강한 법 그러나 엄청 불공평한 권력의 모습.

이런 현실에 대해 과감하게 주먹 하나 휘두르면서 맞서는 주인공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결말은 적어도 너무 아쉽게도 그러한 권력과 제도에 푹 빠져서 복종하면서 끝나고 만다.

이렇게 된데에는 무엇보다 한국 만화의 표현의 자유가 미약하다는 점을 들수 밖에 없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에 나오는 치졸한 수준의 검사들이 자신의 잣대로 예술에 대한 아무런 감각없이 칼날을 들이대다보니 결과적으로 일본만화에서 보여주는 수준 높은 사실성이나 다양한 소재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최종 결과는 한국만화 산업의 퇴보고 역으로 일본만화의 범람이다. 무릇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든 쟁취되어야 하고 그것이 곧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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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8-1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한 말씀이지만 ,결말은 외압없이 박하작가가 깊이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왜 불행한 결말이냐?!"라고 반문했답니다. 우리나라에서 못배우고 가진 것 없는 젊은이가 그렇게라도 살면 다행이라면서요.
그래서 저는 그 씁쓸한 엔딩에 더욱 여운이 남더라구요.
어쨌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_^

사마천 2004-08-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생츄어리, 은과 금을 보면 주인공들이 단순한 야쿠자나 대금업자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머리를 쓰며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하지만 허영만씨의 만화는 도입은 있되 거기서 그냥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근래 나온 타짜나 식객은 그런 면에서 훨씬 낫지만 이전의 벽 같은 작품은 더더욱 결말이 허무하고 진행이 단조롭습니다.
 

정치 9단

 

이 작품의 작가는 <시마과장>으로 유명한 히로카네 겐시다. <시마과장>을 보고 마음에 들어 이 작품에 손댄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거부감을 많이 느낀채 책을 덮는다. 자위대 합법화는 기본이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남경학살도 과대평가 되었다는 등 우경화한 일본의 목소리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그래도 여기서 덮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먼저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가 원래 리얼리즘을 기본 원칙으로 가져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마과장>이 재미있었던 것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 혹은 우리가 속해있는 현실세계의 보이지 않는 면을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일본의 현실 정치를 대상으로 유사한 작업을 한 것이다. 대략 6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을 인터뷰했을 정도로 충실한 기초조사를 했기에 정치9단에 담겨있는 목소리는 결코 어느 만화가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오늘 일본을 끌고 가려는 우익 전체의 꿈이라고 봐야 한다. 작가는 이 만화의 독자로 상정한 대상은 일본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층에게 일본의 정치란 무엇인가 또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치기 위한 의도를 분명히 보인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발자크가 소설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듯이 이 작품 또한 일본 자체의 속살을 들추어 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로 보고 의의를 찾는다면 충분히 읽고 생각해볼 만한 만화다.

 

작품에 담겨 있는 많은 사건들 중 상당수는 실제 일본 내에서 발생한 것들을 큰 가감없이 채용했다. 일본의 정치개혁,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과 뒷거래,여자공무원을 통해 정보를 빼내서 폭로한 기자에 대한 유죄선고,빌린 자금을 가지고 주식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들인 사건, 여인들과의 스캔들로 연이어 사임하는 것 또한 뒷 이야기와 폭로 등등 대부분 실제 발생한 사건들이다. 참고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은과 금>에서도 같은 시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비교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정치인에 대한 묘사는 <은과 금>쪽이 훨씬 더럽다는 듯 나타내진다.

반면 북한과 미국,중국 등 소재를 바깥에서 찾은 부분에 있어서는 허구가 매우 많다. 작가의 극적 긴장을 높이고 지향하는 이상을 드러내느라 작위적인 설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쪽 내용을 짚어보면 잇단 스캔들로 집권 자민당이 붕괴하는 것에서부터 신당 창당, 소선거구제 도입을 통한 정계개편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보수정당들의 경쟁까지 큰 흐름이 보여진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냉전의 붕괴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다. 오랫동안 대치해오던 동과 서의 전선이 무너지고 평화가 오게 된 결과는 무엇보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소련이야 원래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참여해서 일방 선전포고 하고는 북방 열도를 점거해버렸고 이것이 문제되어 아직 일본과는 아예 평화협정도 맺지 않은 상태다. 냉전 기간 내내 일본은 소련으로부터의 핵공격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일본의 사상 자유화에 의해 일본은 적색노조 및 전공투 등 오랜 사상투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사회당과 공산당이라는 두 좌파 정당이 서로 경쟁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사회당은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북한,소련 등과의 교류를 통해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적 압박을 줄이는 외교적 역할을 수행해야 전체적인 국익을 도모해왔다. 평화 애호세력이라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고 한편으로는 이해를 구해서 전쟁에서의 피해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냉전이 끝나고 소련과 북한의 역할이 대폭 줄어든 시점에서 사회당 또한 역할을 잃어갔다. 전세계적인 이데올로기 전쟁의 승패가 분명해지자 이들 정당이 가졌던 이상 또한 힘을 잃어가게 되었다. 덕분에 계속 되는 선거에서 사회당 등 좌파계열 정당의 몰락은 매우 뚜렷하게 되었다. 작품에서 나오듯 사회당의 우파계열은 급속히 우경화되어 탈당해 신당에 동참하게 된다. 남아 있던 좌파는 후일 자민당과 연합정권을 구성해보지만 점차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반대편에서의 압력도 커졌다. 미국이 일본에게 과거의 동맹국 입장이 아니라 경제 전쟁의 경쟁자로 간주하고 무역흑자 축소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작품에 잠깐 언급되는 플라자합의는 노골적으로 일본의 자동차 수출을 자율규제하고 엔을 높여 수출경쟁력을 축소시키는 미국의 경제 간섭이 관철된 것이다. 이른바 미국과의 관계 재조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요구되었다.

 

미국과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일본은 자기 스스로 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재무장을 막고 있는 것은 맥아더가 전쟁 직후 만들어준 평화헌법이라는 구조다. 이 헌법의 기초에 대한 공략이 우파로부터 착실하게 나오게 된다. 작품 중 카지가 듣고 말하고 하는 내용은 이러한 우경화의 맥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독도에 대한 생각도 일본의 주장과 한국의 주장을 대비시키는 카지의 접근은 사뭇 겸손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정식 문제는 역시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납치, 땅굴 발견, 핵수송선 납치 등 북한의 여러 모습은 매우 작위적이다. 왜 이렇게 북한에 집착하는가 하는 질문은 한국 독자들일수록 던지고 싶을 것이다. 답은 먼저 소련이라는 주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다른 대상을 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냉전이 끝난 상태에서 군축 요구를 막기 위해 악의축과 불량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었듯이 일본 또한 자신의 적을 가까운 북한에서 찾게되었다.

이 만화처럼 작위적이지는 않아도 실제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발사는 일본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되었고 일본인 납치 사건은 양국의 대립에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

 

이렇게 허구적일까 하면서 만화를 비웃어도 거기에는 부끄러운 진실도 담겨 있다. 먼저 한국 정부가 당시 북한에 대한 일본의 식량지원을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이 식량난을 맞아 일본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자 당시 YS 정부는 먼저 자신에게 사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총력을 기울여 중국과 일본 등 여러나라에게 북한을 지원하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다녔다. 이는 국제적 망신으로 여겨졌고 외교이 실패로서 지금도 부끄러운 일로 생각된다.

북한의 일본 주민 납치도 한편으로 보면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원조다. 대사관 직원까지 포함된 납치단이 70년대 김대중을 동경에서 납치해 한국으로 데려간 사건은 지금도 일본에게 약점 잡혀 있는 사건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일들이지만 분명 대한민국 정부가 벌인 일들이다. 이런 걸 보면 일본에서 한국을 왜 그렇게도 하찮게 보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작품에서 그려낸 일본의 세계는 오늘 다시 보아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고이즈미의 행동에도 나온다. 고이즈미가 수상이 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의원만의 선거에서 벗어나 직접 청년당원들에 대한 호소를 통해 더 많은 득표를 한점도 이 만화에 나온다. 특히 신사참배, 자위대활동 범위 확대 등에 매우 적극적이 된 것도 만화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고이즈미가 인질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을 보면 역시 이 만화에서 수상이 직접 방문하여 인질 구하기에 나서는 장면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여기서 정치와 사회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자. 일본의 정치는 수상을 뽑을 수 있는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집단을 유지하고 적당히 돈과 권력을 나누어 주어 세력을 유지하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수상이라는 자리가 임기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늘 합종연횡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항상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한편 기업을 대상으로 그린 <시마부장>을 보면 사장을 이사들이 호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이 일하는 부하들에 의해서 사장이 선출된다는 제도는 상당히 특이하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공통점이 나타난다. 즉 국가의 정치, 회사의 경영 그리고 가정 모두가 다 하나의 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가 가정의 확대판이라는 논리가 다시 확인된다.

 

작품의 디테일에 대한 작가의 노력은 여러모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창당 자금으로 50억을 선뜻 빌려주는 증권왕은 실제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 고레가와 긴조로 증권으로 수천억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기타 야쿠자, 정치가의 여인, 유권자들의 모습, 후원회 등 여러 곳에서 작품의 사실성을 높인다.

또 외국 중 미국의 뉴욕이나 워싱턴은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하나의 예로 뉴욕 방문중에는 노부라는 레스토랑 까지 나오는데 실제 이곳은 로버트 드 니로와 일본 요리사 노부가 같이 합작한 곳으로 노부의 책이 최근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미국에 대해서는 레스토랑 하나 그리는데도 이렇게 상세하게 노력하지만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지극히 무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한 평균적인 일본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러한 태도는 히로카네의 다른 작품에서도 똑 같이 나온다. 대표작 <시마과장>을 보면 한국과 중국에 대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단 한컷도 묘사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작가가 굳이 다른 일본인과 다르게 반한,반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이 만화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단지 일본이라는 사회 자체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따름이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투자에서 한국보다 한참 늦었다. 대신 동남아에는 치중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오늘 한국이 일본의 전자산업을 따라 잡게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중국은 동남아보다 생산성이 월등히 높다. 그걸 알면서도 일본이 투자를 늦추게 한 것은 역시 민족간의 감정 문제다. 그 감정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이유 또한 이 만화가 잘 보여주고 ㅣ있다.

일본 내에서는 너무나 쉽게 머리 숙이는 수상이지만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머리를 뻣뻣하게 세우게 된다. 중국에 가서 남경대학살에 대해 죽은 사람이 30만이 아니라 최대 20만 정도라는 주장이나 그 사건 얼마전 일본인 100여명이 중국 사람에게 죽은 것과 비교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실제 현실정치에서도 중국에 대고 직접 맞대응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작품에서는 이를 자유롭게 주장한다.

모든 일은 전쟁에서 벌어진 일이고 당시 전쟁은 일본만 일으킨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비록 힘이 약해 졌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태도다. 이래서는 도저히 서로 상대는 하고 있지만 독일과는 달리 존경 받기는 어렵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하겠다고 유엔에 가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그들이지만 가장 첫걸음으로 이웃들에게서 아무런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 일본의 모순 된 모습이다. 작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본 정치의 여러 모습들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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