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에 흐르는 피 블랙 캣(Black Cat) 21
프랜시스 파이필드 지음, 김수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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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여자가 호텔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을 우연히 찍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던 악명 높은 범죄자만을 변호해서 무죄로 풀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냉열한 변호사가 마지막 변호를 맡았던 릭 보이드의 사건이 종결된 직후 자살을 한다. 왜 메리언 시어러는 자살한 것일까? 모두의 궁금증과 사건은 그녀의 뒤를 따르게 된다. 

살면서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변호하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거 하나뿐이랴마는 증거가 분명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확실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가 더욱 놀라울 뿐인데 범죄자에게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고, 범죄자도 인권이 있고, 법이 유죄를 판결하지 않는 한 무죄라는 논리에 입각해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이 모두 이 작품 속 메리언 시어러같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메리언 시어러같은 자신의 성공과 사디스트적인 피해자를 공격하는데서 희열을 느껴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해자보다 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라니 법의 존재에 회의감마저 든다. 

메리언 시어러의 죽음 뒤 그녀의 유언을 집행하는 사무 변호사인 그녀의 친구 토머스는 그녀가 숨긴 재산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녀의 하나뿐인 혈육인 남동생 프랭크는 누나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해 꿈에 부풀어 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변호했던 릭 보이드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에 관한 불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토머스를 찾아 감언이설로 다시 그를 회유하려 든다. 여기에 토머스의 메리언에 대한 조사 의뢰를 받은 피터는 릭 보이드 사건때 검사측 변호사로 있었던 만큼 그 사건의 희생자 언니인 헨리에타에게 죄책감과 함께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메리언이 숨겨둔 것들을 찾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식을 동원하는 동안 메리언이 법정에서 얼마나 잔인한 변호사였는지를 법정 장면을 간간히 섞어서 보여주며 마지막에 그녀가 왜 자살해야만 했는지까지 그런 법정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헨리에타의 직업인 클래식 의복을 드라이 크리닝하는 것과 메리언에게 애인이 있었고 메리언이 클래식 복장을 입고 춤을 추거나 클래식 의복을 멋으로 입는 취미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연결고리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메리언의 클래식 복장에 대한 고상한 취미는 그녀의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 심리로 보여진다. 이것은 나약한 여성에 대한 공격성과 무관하지 않은 자기 과시 심리다. 하지만  헨리에타의 직업적이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관심은 한 여성의 강한 의지에 대한 표현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힘들고 무시하는 일이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행복을 느끼는 헨리에타를 통해 현대 여성과 현대인이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메리언과 헨리에타를 비교하게 작가는 만들고 있다. 

처음 메리언의 법정에서의 행동에 분노하고 피해자의 어리숙함과 이용당하는 것에 화가 나지만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잘 표현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헨리에타의 부모에 대한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작품을 읽게 만드는 호기심을 유발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살면서 잔인한 행동만을 한 메리언이 죽으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 점이 놀라웠다. 자신이 해결하고 죽을 수 있었을텐데 남에게 맡기다니 끝까지 변하지 않는 본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런 요소요소에 적절한 문제를 배치해서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조마조마함을 전달하고 있다.  

작가는 단순 명쾌하게 인물들의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 몇줄만 읽어도 캐릭터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게 쓰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더 복잡했더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더 잔인한 장면을 법정 장면을 통해 보여주며 릭 보이드의 행보를 통해 스릴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고 다른 작품과 다르게 현대적 폭력과 그로테스크한 면없이 추리소설적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만든 점은 높이 사고 싶다. 반전이라는 장치없이 전통적 추리소설의 영국적인 풍미가 전해 내려온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 여류 추리작가들의 계보를 잇는데 손색이 없는 작가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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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의 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4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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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4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기다림이 길었다. 얼마만에 만나는 마코토란 말인가. 이 젊은이의 장점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다는 점이다. 의뢰를 받건 사건을 감지하고 뛰어들던 돈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돈에 초연한 인생은 세상을 모르는 한심한 인생이거나 낙오자, 패배자로 보기 마련이지만 마코토는 그런 이들의 생각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어느 조그만 과일 가게 앞에서 상한 과일을 다듬는 청년을 그려본다. 그의 모습에서 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얼마전이라면 쯧쯧쯧, 좀 더 나은 일을 하지 젊은애가 왜 저런 일을 하고 있담? 이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년 새 세상은 변했고 이젠 그런 젊은이를 보면 참 젊은애가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도 변하고 있지만 모든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마코토같은 젊은이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런 젊은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이 시리즈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케부쿠로 동쪽 출구 라면 라인>은 마코토의 친구 다카시가 보스로 있는 G보이스에서 나와 라면 가게를 운영하는 쌍둥이 형제들의 라면집이 누군가의 악의적인 헛소문에 시달린다. 이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크 파크의 무보수 탐정 마코토가 범인 잡기에 나선다. 라면에 목숨 건 이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나 할까. 단순하지만 시대의 치열함과 인간의 삭막함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왈츠 포 베이비>는 우연히 추운 이케부쿠로의 겨울 밤을 걷던 마코토가 만나게 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그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건을 조사하다가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사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검은 보자기의 밤>은 우연히 가게에 썩은 과일을 얻으러 온 미얀마 소년을 알게 되면서 그 소년의 사연에 분노해서 학교도 못다니고 매춘을 강요당하는 소년을 구하는 이야기다. 남의 나라 이야기는 사실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어떤 일에도 연좌제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민주화 투쟁은 중요한 일이지만 어린 소년의 자유조차 지켜주지 못하고 이용하는 이가 말하는 민주화가 무엇일지 그것이 궁금하다. <전자의 별>은 역시 일본인도 자신들의 나라각 변태 천국이라는 건 아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신체 절단쇼라니. 그것을 보는 이들과 동영상을 사는 이들, 그리고 돈때문에 그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고리대금에 자식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판 아버지가 있었다. 모든 것이 돈 때문이라는 생각에 참 씁쓸해지는 이야기였다.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는 좋은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대부분이 소위 나쁜 사람들이다. 마코토가 어울리는 친구들도 갱들, 야쿠자 부하들이 주요 인물들이다. 마코토도 학창시절 한 주먹하던 솜씨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이분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사람에 속하는 이들이 한겹 벗겨보면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이 작품은 알려준다. 소위 세상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놈과 감추는 놈이 있을뿐이라고. 그래서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번듯한 곳만을 만들려다 지구를 파괴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듯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모두 각각의 사연을 안고 각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걸, 누구도 그들을 평가하거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난 이 작품을 보면서 꼭 마코토가 듣는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조금 내 일상이 여유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내게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일상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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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2-2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보는 시리즈입니다.
만나보아야겠네요.

물만두 2009-12-28 11:40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를 처음보신다니 놀라워요.
꼭 읽어보세요.

Mephistopheles 2009-12-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아는 마코토는 애니메이션 밖에 없다는..(아 나는 무식쟁이..~~)

물만두 2009-12-28 14:45   좋아요 0 | URL
메피님 에니로도 나왔을겁니다. 드라마도 나왔다던가 암튼 많이 나왔으니 그 마코토가 맞을겁니다^^

요구르트소녀 2009-12-29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께서 적으신 글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도 되고 제가 더욱더 추리소설을 좋아하게 만드네요!! 물만두님! 더욱더 좋은 글 적어주세요!!~

물만두 2009-12-29 19: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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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은행 강도에게도 룰이 있다. 그것이 바로 2분 법칙이다. 은행을 털러 들어가서 2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돈을 갖고 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2분이 넘으면 돈을 포기하고 달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2분을 넘기면 붙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작품은 두 명의 은행강도의 막무가네식 은행강도짓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도취되서 2분 법칙을 어기고 경찰이 출동하자 경찰과 총을 난사한 끝에 사망한다. 

여기 또 다른 전직 은행 강도가 출소를 하루 앞두고 있다. 그는 철저하게 2분 법칙을 지키던 남자였다. 하지만 딱 한번 지키지 못했고 그것으로 인해 잡히게 되었다. 이제 나이 마흔을 넘긴 그는 새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에게는 나가면 찾아야 하는 여자가 있고 아들이 있었다. 그와 달리 경찰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이. 그런데 그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이제 그의 목표는 바뀌었다. 그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찾는 것이다. 

작품은 한 남자의 뒤늦은 참회와 같은 아들을 위한 자신의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을 애잖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를 사사건건 가로막는 경찰들의 집요함과 홀먼이 찾는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여기에 홀먼을 감옥에 가게 만든 전직 FBI요원이었던 폴라드가 홀먼의 도움의 손길에 응하게 되면서 묘한 콤비를 탄생시킨다. 전직 범죄자와 전직 경찰이라는. 이들은 경찰의 모든 보도에 의문을 품으며 재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홀먼은 경찰에게, 폴라드는 FBI에게 경고를 받게 되고 심지어 협박과 린치,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이 숨기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홀먼의 아들은 어떤 사건에 휘말린 것인가? 점점 사건에 다다가면서 홀먼은 아들이 부패한 경찰이 아니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건 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아버지인 모양이다. 이건 홀먼이 근본적으로는 나쁜 인간이 아니기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만약 범죄자 아버지를 둔 경찰 아들이 서로 만나고 그 아버지가 결코 나아지지 않는 구제불능이라면 아들에게 아버지는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새 삶은 시작하기 힘들다. 힘든 만큼 노력이 필요하다. 홀먼의 어린 시절 소년원 친구 치가 자식을 위해 합법적 사업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돈 없는 자에게 돈은 유혹이다. 욕망이고 권력의 상징이다. 그래서 은행 강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강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한 날강도도 세상에는 많다. 이 작품에서처럼. 한쪽에서는 범죄자가 보통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보통 사람이 범죄자가 되려고 애를 쓴다. 어쩌면 이것은 변하지 않는 인간 욕망의 법칙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지막까지 작품은 은행강도의 2분 법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 2분 법칙은 작품 전체에 스릴과 서스펜스를 주고 있다. 등장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사건이 조금씩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날 때마다 긴장은 점점 고조되고 홀먼과 폴라드에게 몰입하게 된다. 예전에 좋아하던 범죄자 캐릭터가 있었다. 로렌스 샌더스의 <앤더슨의 테이프>에 등장한 주인공이다. 그 캐릭터보다 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말하고 싶은 캐릭터가 바로 맥스 홀먼이다.
 
아들의 장례식에서 범죄자 아버지라고 아들의 아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에서, 결혼했어야 하는 아들의 엄마 무덤에서 혹 아들이 자신을 닮아서 잘못된 길을 간 건 아닐까 자책하며 통곡하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스릴넘치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리치가 살아 아버지를 만났다면 아마도 아버지의 좋은 모습을 금방 발견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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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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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가 한을 품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 내 말이 틀리다 생각되면 이 작품을 보시길. 이 작품은 1994년 <프랑스 범죄 문학상>의 국내 부분 수상 작품이다. 아마도 독특한 구성에 많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말 그대로 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서 느끼는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 아닐까.  

아름답고 치밀한 복수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은 에드워드 램이 그의 친구 니콜라 파브리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그 복수는 니콜라 파브리가 철저하게 에드워드 램이 가진 작은 행복을 파괴한 것에 대한 답례일 뿐이다. 그는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에드워드가 가진 단 두 명의 친구와 의절하게 만들었고 그가 열정을 불태우던 문학에 대한 창작욕을 꺾었고 그가 생을 통해 단 한 명 사랑한 여인을 죽게 만들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친구로 말하면서 친구로 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에드워드의 열등감에 대한 표출일 뿐이고 시기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세상엔 너무도 많은 니콜라 파브리가 존재하고 또 너무도 많은 에드워드 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에드워드 램처럼 자신을 나타내어도 좋지 않을까. 물론 그 방법이 누군가를 살인하는 것이나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은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드워드 램의 방법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응징이었을 뿐이다. 또한 니콜라 파브리가 파멸한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원인이 있고 범죄자인 에드워드 램의 완전범죄와 행복 또한 그에게 걸 맞는 것이라 생각된다. 누가 세상이 공평하다고 했단 말인가.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그러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줘도 되지 않을까. 

한 남자가 평생을 두고 한 남자를 증오해서 복수할 날 만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도서 추리 소설이면서 완전 범죄의 대표적인 작품인 <지푸라기 여자>보다 더 완전 범죄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면서 문학적 완성도도 뛰어나서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단지 너무 쉽다는 것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복수가 이리 쉽다면 누군들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긴 그래서 픽션이겠지만 어쩌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한 실제로 있어 왔고. 반대적 의미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까미유 클로델의 작품을 훔쳤다고 의심받는 로댕, 그로 인해 평생 정신 병원에서 보낸 그녀, 아내의 뛰어난 머리를 훔친 아인시타인.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제자들이 만세를 불렀다던가.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사실이라면 누군가 한 명쯤은 복수를 했을 지 모를 일이고 자살한 자들이 많으니 어쩜 이런 사연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이 작품을 읽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아무튼 간만에 읽은 재미있는 프랑스 유머 가득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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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밀리언셀러 클럽 104
리 밴스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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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직장에서 보내고 있던 피터에게 경찰이 찾아와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당했음을 알린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에 적응할 사이도 없이 그는 보통 경찰 수사의 기본 원칙에 따라 남편이기에 첫번째 용의자가 된다. 경찰들은 다른 범인은 없고 오로지 그만이 범인이라고 단정하고 그의 뒤만 캔다. 그러다 그가 아내와 사이가 안좋다는 사실과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로 인해 그는 아내의 장례식에서도 쫓겨나고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이제 그에게는 오로지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아내가 소포를 가지러 갔다가 강도를 당했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려준다. 그 소포는 친구 안드레이에게서 온 것인데 그 소포가 사라졌다. 도대체 안드레이는 무슨 소포를 보냈고 그 소포는 왜 사라진 것일까? 그는 당장 안드레이를 찾아나서지만 그의 종적이 묘연하다. 

월스트리스의 투자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역사적 사건과 가정사를 드라마틱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아내 제나의 이상주의적인 모습에 반감을 품지만 그것에 매료된 너무도 현실주의자인 피터, 그리고 어린 시절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피터는 파파보이로 자라 아버지 말이 절대적인 남자다. 그렇다고 그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입양에 대한 생각은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까. 이런 세세하고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피터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어떤 과거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죽은 아내에 대한 뒤늦은 죄책감과 후회가 작품의 이야기를 담당하는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위험에 빠지고 혼자 힘으로 부딪히는 피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게속해서 살인 용의자로 쫓기다 국토안전부에 체포되어 그들의 심문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거기서 아내가 살해된 그 즈음 안드레이를 찾아 다녔다던 문신한 남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피터는 결국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이 사건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공을 들인 일이기 때문이다. 피터의 아버지 말은 그가 모두 믿었지만 결국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그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바람을 피운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고 피터에게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번지르르한 말이었을 뿐이다.  

작품은 금융만을 다루고 있지 않고 범죄 조직만을 다룬 것도 아니다. 신약 개발이라는 제약회사간의 다툼만을 다룬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무슨 2차 세계대전때 융단 폭격을 하는 거처럼 피터 앞에 그가 피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튀어 나온다. 여기에 친구 안드레이의 횡령 사건까지 알게 되고 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회장은 주주들 몰래 자신이 원하던 미술품 컬렉션을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데 누구도 그의 죄를 알지 못하고 알릴 수 없으니 죽을 맛이다. 어쩌면 모든 금융 위기들은 이런 웃선에서의 부정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크다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 작품은 단순히 피터의 좌충우돌 아내 살인범 찾기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을 보고 나서야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반환>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 참 어렵다. 그러니 톨스토이가 <고백>에서 '우리 삶에 있어서 변화는 우리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느 것이라기보다는 다르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하고 작품 속에서 그것을 인용한 것이리라. 겁저가 아형가 사안의 <낙화>가 생각났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 작품의 마지막을 읽고 책을 덮고 나니 부질없이 쥐고 있던 것, 꺠닫지 못한 것, 삶은 한순간이라는 사실, 그러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쓸쓸해진다. 정말 우리가 진정 반환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지막을 읽고 나서야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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