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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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이다. 역시 작가는 데뷔작에서부터 과햑으로 증명하기 힘든 소재, 그런 것들이 주는 공포가 일상 생활에서 또는 비일상적 사건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다중 인격을 다룬 작품이다. 다중 인격을 가진, 즉 13개의 인격을 가진 소녀 치히로와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으로 인해 가출하게 된 유카리가 한신 대지진때 만나면서 시작된다. 

다중인격을 알게 된 유카리는 치히로를 걱정하며 그녀의 상담 교사를 찾아가기에 이르고 그러면서 치히로 안에 있는 인격 중 지진으로 인해 13번째 인격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 인격의 이름은 이소라, 비밀에 쌓여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인격인데 유카리는 그 인격에서 살기를 감지하며 그 인격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치히로가 어떤 이유로 다중인격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여기에 이해하기 힘든 치히로 주변에서 치히로를 괴롭히던 이들이 돌연사하는 일이 발생하자 유카리는 치히로의 13번째 인격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감시하게 된다. 

다중인격은 진짜라고도 하고 가짜라고도 하는 말이 많은 증상이다. 해리성 인격장애라고 불러야 맞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보편적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콘트롤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분출되는 현상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얌전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화가 나서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 보통 '안 그러던 사람이 변했다.', '마치 딴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런 것으로 이해하면 좀 쉽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다중인격에 대한 미스터리는 계속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한가지 초능력과 비슷한 인간의 마음을 읽는 엠파스라는 능력에 대해 나오는데 다중인격과 이 초능력이 합쳐져서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게 되는 공포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신 대지진이라는 자연이 준 공포가 좀 더 사실적으로 배경에 묘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유카리를 통해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심어주는 공포는 만만치 않다. 역시 기시 유스케는 데뷔작부터 남달랐던 것 같다. 기이한 일로 시작해서 기이한 공포를 남기고 끝나는 책을 덮은 뒤 으스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공포와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기이한 공포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다양한 공포의 체험장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숙부내외와 살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받은 치히로의 삶과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을 가졌지만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어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되고 급기야는 가족의 냉대와 따돌림속에 집을 나와 험한 일을 하며 살게 된 유카리의 삶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공포다. 여기에 한신 대지진이라는 자연이 준 공포가 더해지고 인간의 탐욕이라는 공포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공포스런 괴물이 탄생하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껴야 하는 공포는 우리의 무심함이라는 공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다운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세계를 알려면 필히 봐야 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가 <검은집>이라는 호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소설을 보여준 뒤 청춘 소설같은 느낌의 <푸른 불꽃>으로 혼란에 빠지게 했다가 <천사의 속삭임>이라는 호러 작품으로 귀환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들의 베이스에는 어두운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각기 다른 소재에 따라 각기 다른 인물을 만나 다른 모습으로 보여질뿐 근본적인 작가의 호러에 대한 탐구는 변함이 없음을 나는 오히려 그의 데뷔작을 읽고 깨닫는다. 약간은 허술한 듯하기도 하지만 공포만은 살아있는 데뷔작다운 신인 기시 유스케의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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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15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진짜 공포는 늘 사람들이 만드는 관계속에 있는듯 합니다.

물만두 2010-01-15 13:34   좋아요 1 | URL
그걸 잘 표현하는 작가가 기시 유스케라 생각됩니다.
 
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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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 다섯권 중 세번째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스릴 넘치는, 신성한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첫사랑이었지만 패트릭이 앤지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앤지가 패트릭 친구와 결혼하면서 서로 파트너이자 친구로만 지내던 남녀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기본 구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 의뢰를 받는 켄지가 간단한 의뢰라고 생각하고 덥석 받아오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거대한 사건이 숨어 있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음모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늘 그들은 위험에 빠지고 총을 쏘게 되고 부바의 도움을 받게 된다.  

도대체 이 시리즈가 왜 켄지&제나로 시리즈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켄지가 쓸모 있는 점은 좀 더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과 허우대가 멀쩡해 보인다는 점, 그리고 다른 탐정들과 마찬가지로 말하나는 잘한다는 점뿐인데 말이다. 이번 사건도 켄지는 별로 한 일이 없고 결정적일 때 그를 구한 건 부바와 앤지였다. 부바가 감옥에 들어가서 나 정말 켄지가 너무 걱정됐었는데 부바의 빈자리를 앤지가 차지했다. 좀 뭐가 바뀐거 같지 않나??? 응? 켄지, 말을 해보라고~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재벌이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켄지와 제나로에게 의뢰를 한다. 그의 딸 데지레가 실종된 건 그녀의 엄마가 살해당하고 하마터면 아버지마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데 다시 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심한 우울증에 걸리더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켄지의 탐정 스승이기도 한 제이 베커가 사건을 맡았었는데 그마저 실종됐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난번 사건의 여파로 한동안 쉬고 있었는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거기에다 거대한 수수료에 혹해서 사건을 맡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데지레의 발자취를 따라, 제이 베커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슬픔 치료소이라는 희한한 사이비 종교단체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점점 크게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제목이 신성한 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의 신성한 관계는 부부의 관계다. 그 관계가 신성하지 못하면 신성해야할 가정이 불행해진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있다. 마치 삼강오륜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게 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옳은 가치관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그리고 사제지간도 신성해야 한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고.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 또한 같다. 이 작품에는 이런 신성해야 할 관계들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망가져 우리 시대를 핏빛으로 물들이고 그늘지게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제대로 잘 보이게 작가는 잘 조절하며 사건의 큰틀과 작은 틀을 짜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제대로 된 관계를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켄지와 제나로와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말이다. 

또한 명예가 인간에게 있었던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물론 이것은 신성한 관계 안에 포함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름 다른 방면에서 되새겨 보고 싶었다. 인간이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 왔는데 명예는 무슨.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는 세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명예라면 명예고 예의라면 예의를 지키는 자가 여기 있다. 바로 패트릭 켄지. 의리의 사나이. 부바가 인정하는 친구. 누구든지 친구로 삼으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을 인간. 그래서 이 시리즈가 특별한 것이고 주인공이 켄지인 것이다. 그가 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도, 부바보다 잘났다고 잘난체를 해도, 사건에 뛰어들어 해결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명성은 자기가 차지하는 경향이 내게는 보이더라도 용서가 되는 것이다. 그가 의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 안에서 항상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멋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타고난 밥그릇의 크기를 아는 인물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이런 세상에 자기 그릇에 맞게 행동하는 그를 보며 이 작품에 감탄한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탐정은 바로 이런 탐정이기 때문이다. 뭐, 나도 켄지같은 친구가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단, 부바가 반드시 같이 와야 한다. 그러니까 원 플러스 원 상품이라면 부바가 정품이고 켄지가 옵션이라는... 켄지, 미안하다. 난 아무리 그래도 부바가 좋다.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비슷비슷한 소재들을 선택해서 작품을 쓰면서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면과 함께 픽션적이고 환상적인 면을 공유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에서만 보더라도 명탐정 제이 베커를 통해 탐정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탐정은 두뇌가 누구처럼 뇌세포 하나하나가 몽땅 탐정 기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탐정적인 부분과 인간적인 면이 공존한다는 걸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은 진실과 거짓, 위와 아래가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내가 보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앤지는 말한다. 의심하게 만드는 가운데 진실을 심어주고 포장하지 않은 인간미를 드러내게 만드는 점, 그리고 거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점이 그의 작품을 대단하게 보게 한다.  

그런 시리즈가 다섯 작품밖에 안된다니 너무 아쉽다. 뒤죽박죽 출판되었지만 이제 다 출판되었다. 읽을 작품, 다음을 기약할 작품이 없다는 얘기다. 아, 아쉽게 부바와 이렇게 작별하게 되는구나. 나는 왜 켄지와 제나로와의 이별보다 부바와의 이별이 더 안타까운건지. 그런고로 데니스 루헤인은 여섯번째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반드시 써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빨리 써라. 마지막 작품 나온지 십년도 더 지났다. 그리고 부바의 활약상을 좀 더 많이 보여주기를 바란다. 켄지&제나로&부바 시리즈로 더욱 강력하게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겠다.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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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0-01-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바부바~ 꼭 나오는 시리즈였으면 좋겠어요~

물만두 2010-01-12 13:36   좋아요 0 | URL
네, 작가를 압박하고 싶어요.

lazydevil 2010-01-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바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번외편은 어떨까요?

물만두 2010-01-20 15:19   좋아요 0 | URL
그거 좋습니다. 번외편... 그러다 좋으면 부바 시리즈로 만들구요^^

[그장소] 2015-01-25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부바만오고 켄지는 안올때의 문제점..사건의뢰가 없다.
없는 빈방에서 놀고있네요. 이렇게나..오래 되었나..싶고..신기합니다.내내 안녕 하시기를..여전히 상위에 링크된 물만두님의 전적을 보며 아..아직도 읽으것은 널려있구나..그럽니다.그런데..엄살이라니..누가 보지 않아도 좋을 얘기를 하는것.그런 곳이 있어서 저는 좋은데 물만두님은 귀찮을까요? 거기서 주무시다가..저때문에 ..아아..귀찮아..이러며 깨는건 아닐지..
근데..왜.눈물이 나려고 하지. 힘든가봐요.제가..요즈음.참 감정 컨트롤이 안되요.어떻게 견디었냐고..물어보면..몹쓸것..하겠죠?
당신에겐 없는..시간을 살고 있으면서..미안해요.그래도..대답없는 곳에 남겨지는 이 시간이 소중한걸 알아요.
좋은책..또 건져서 가요. 자꾸 책욕심 그만 내야 하는데..큰일...ㅎㅎㅎ 그럼..거기서도..굿나잇..!
 
자살 반대 클럽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5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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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빙판에 넘어진 사람들은 짜증이 났겠지만 아이들은 눈밭을 좋아라 뒹굴렀을 것이다. 하나의 자연 현상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사건이 넘쳐나겠는가. 뭐, 그 사연, 사건들을 살펴보면 비슷비슷해서 놀라게 될 때도 있지만 그게 사람이라는 동물이 사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마코토가 사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스카우트 맨 블루스>는 각종 윤락업소에 여자들을 스카우트해주는 스카우트의 달인을 만나 마코토가 한 수 배워볼까 하다가 사건에 끼어들게 되는 이야기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디면 지뢰를 밟게 되는 것이 세상이다. 내가 지뢰를 밟았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스카우트맨을 좋아한다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지 알면서 그런 일을 해야만 그를 만날 수 있기에 자처해서 윤락업소 스카우트맨을 찾아갔다가 곤경에 빠지게 된 순진한 웨이트레스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여기에 이제는 한물 간 스타가 야쿠자에게 협박당하는 <전설 속의 별>의 내용 또한 본 듯한 이야기다. 소설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죽음에 이르는 완구>는 중국 하청업체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 회사를 찾아 온 중국 여자를 도와주는 안타까운 이야기다. 월드컵의 해가 돌아왔다. 또 사람들은 축구공을 만드는 저임급과 아동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언니가 죽은 것이 살해됐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70년대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돈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에서 누군가는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그런 돈을, 누군가의 피에 젖은 돈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코토의 기도처럼 내가 사는 물건에 누군가의 처절한 피가 아닌 공정한 댓가가 지불되었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그건 그저 구매자, 소수의 소비자들이 마음 편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가 싶다. 눈가리고 아웅이거나 못 본체하는 거 아닐까.  

<자살 반대 클럽>은 자살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 운영자를 잡기위해 마코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다.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살면서 행복하기만 해서 사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다 자위하거나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라 생각되는 어떤 것을 맛보기 위해 끈질기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살을 하는 건 자유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찰라의 순간에 자살을 막아 그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자살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죽으면 슬퍼할 가족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할 수 있겠는가. 산다는 건 별거 아니다. 별게 아니라서 죽겠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거 아닌 삶이 혹 아는가 끝까지 살아 나가는 동안 무언가 좋은 걸 발견하게 될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기에 사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는가. 이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말이다. 

이시다 이라는 마코토를 통해 내 마음을 파고 든다. 단타를 치는데 장타만큼의 위력이 있다. 그게 이 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 시리즈의 매력이다. 나는 오늘도 마코토처럼 하늘 한번 보지 못하고 저녁을 맞이했다. 쌓인 눈조차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떠랴. 그런 것은 봤다 쳐도 좋은 것을. 마코토가 앉아서 보는 하늘이 보여 좋은 게 아니고 그가 걷는 거리가 보여서 좋은게 아니듯 현실과 픽션 모두 내 마음을 어루 만져주면 그만인 것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삶이 무료한 사람들에게 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의 해결사, 과일가게 아들이자 칼럼도 쓰는 마코토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그가 아마도 당신의 문제도 해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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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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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추리소설이 선전하고 있다. 스웨덴 추리소설은 예전에도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가 나왔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 뒤로 좀 뜸하더니 요새 다시 나오고 있다.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날씨와 색다른 독특함을 아무래도 주목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추리소설이 주는 추리소설로서의 기본을 눈여겨보게 된다. 다른 것들은 겻가지일뿐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작품 어촌 마을 피엘바카라는 곳을 배경으로한 사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찰의 조사, 작은 마을 특유의 답답함과 전통적 시골스러움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알렉스라는 미모의 여인이 사체로 발견된다. 알렉스의 시신은 그녀의 25년전 친구 에리카가 보게 된다. 전기 작가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향에 돌아오게 된 에리카는 아직도 어린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갑작스런 절교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알렉스의 부모는 부고 기사를 부탁하고 이에 에리카는 알렉스에 대해 더 알고자 주변을 기웃거린다. 

피엘바카의 경찰인 에리카의 어린 시절 친구 파트리크는 이 사건을 수사하는 책임을 맡아 조사하던 중 경찰서에 온 에리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조사를 하고 에리카는 파트리크에게 자기가 조사한 것들을 알려주며 하나의 살인 사건과 25년전 실종 사건과의 관계, 어울리지 않는 상류층 부인이 된 알렉스와 알코올중독자이지만 화가이기도 한 안데르스와의 기묘한 관계, 그리고 살해된 알렉스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해서 밝혀나가며 작은 마을이 품고 있는 거대하고 잔인한 비밀에 다가간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친하게 지내는 작은 마을일수록 어떤 문제가 생기면 쉬쉬하고 덮어두기는 경향이 있다. 또 그러는 것이 쉽기도 하고. 사람이 사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는 인종이나, 국적, 종교 등 모든 것을 초월해서 같으니 그것 또한 참 희한한 일이다. 작품은 작은 마을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사정을 하나 하나 잘 풀어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기에 에리카와 파트리크의 로맨스라는 양념을 더해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좀 허무한 감을 준다. 

극적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너무 마무리를 급하게 한 것 같이 느껴진다. 아직 에리카의 동생 안나의 문제도 남아 있고 또 율리아의 문제도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사람살이의 일부분으로 보여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거기에 처음 살인자로 지목된 안데르스의 알리바이를 잘못 알려준 이웃에 대한 문제는 그냥 넘어갔다. 큰 틀에서 보자면 생략해도 좋을거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모든 것을 긴장하면서 본 나는 마지막에 맥이 빠져버렸다. 그건 어쩌면 파헤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파헤친 탓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된 파트리크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더 큰 공포가 시한폭탄처럼 걸어다니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 해볼 수 없는 그런 막막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작품이다. 범죄는 어떻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범죄자가 눈에 보이고 눈으로 보아 판단된다면 그는 범죄자가 아니다. 범죄자는 눈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위험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안나처럼 폭력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범죄는 계속 가정에서부터 자라게 방치하는 거라는 걸 깨닫기를 바란다. 만약 안나가 게속 남편에게 맞고 살고 아이들까지 맞고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니까. 얼음의 차가운 표면만 보지 말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그 얼음 아래 숨어있는 더 냉기 가득한 범죄를 보라고. 그것은 바로 우리 옆에서 냉기를 뿜어내고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듯한 작품이었다. 

스웨덴 특유의 마을 특색을 잘 담아내고 있으면서 마지막은 그래도 유머러스하게 에일레르트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뜬금없으면서도 한 노인의 집념의 승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이래서 어떻게 세상을 사나 싶다가도 살게 되는 게 아니냐고, 세상 살 만하다고 작가가 마지막에 윙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얼음같은 차가운 세상에 한 줄기 따사로운 햇빛같은 조화를 이뤄주는 씬 스틸러, 에일레르트 아저씨 화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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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1-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이제야 읽었군요.
난 이 책 좀 그렇드라구요.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건드려만 주고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게 없었어요.
내가 보는 게 문제가 있었나? 암튼요...

물만두 2010-01-04 11:51   좋아요 0 | URL
마지막이 좀 그랬죠? 하지만 확실하게 하기에는 소재가 그랬죠. 또 이런 문제는 이 작품처럼 되기가 더 현실적이다 싶기도 하구요. 픽션이 픽션답지 않아 재미는 반감됐지만 대신 생각할 여지는 남겨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뭐 마지막에는 유머도 있었구요.
 
명탐정 홈즈걸 1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 1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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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서점 나들이는 9살때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동네 서점에 간 거였다. 거기에서 아버지는 내게 톨스토이 아동용 전집을 사주셨고 동생에게는 팝업북을 사주셨다. 나는 물론 바보 이반이 나오는 내 책은 보지도 않고 동생 팝업북을 같이 보며 신데렐라 호박 마차, 과자로 만든 집을 움직이며 놀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아홉살 어린 나이에 동네 서점은 큰 대형서점처럼 보였고 그 많은 책들이 보물처럼 느껴졌더랬다. 아마 그속에도 명탐정 홈즈나 홈즈걸이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쯤 그분들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겠지만. 

정말  서점에서는 어떤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단편들로 구성된 책이다. 이야기는 세후도 서점의 베테랑 정직원이지만 서점에서 하는 일 이외에는 순발력과 추리력이 떨어져 사건만 맡게 되는 교코와 아르바이트생이지만 교코에게 사건이 의뢰되면 명석한 머리를 가진 다에가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명탐정 홈즈걸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탐정이 별건가 사건을 해결하면 탐정이지라고 생각하면 다에 탐정과 다에를 탐정으로 일하게 만드는 단 두명뿐이지만 우두머리라고나 할까 뭐 그런 존재인 서점이라는 곳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교코 언니의 활약상이 조화를 이루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교코를 왓슨 박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왓슨 박사가 사건의 의뢰를 맡는 건 아니니까. 무조건 홈즈와 왓슨이라는 콤비의 조합을 만들려는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싶다. 차라리 분업, 각기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에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교코니까 말이다. 

모두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지만 <판다는 속삭인다>는 서점과 미스터리의 조화를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었다. 병을 앓고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가 어떤 책을 사다 달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마치 암호같아서 무슨 책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교코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누구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때 다에가 추리를 한다. 서점이 있는 동네를 생각한다. 그리고 서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 서점들은 어쩌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내야만 하는 그런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병 든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책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사냥터에서, 그대가 손을 흔드네>는 이십년 전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갑자기 만화책을 보고 사라져 그 딸이 교코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십년 전 일이 밝혀지는 이야기다. <배달 빨간 모자>는 고지식한 아르바이트 직원이 배달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미용실에서는 배달한 잡지에 이상한 종이가 들어 있어 손님을 화나게 만들어 곤란을 겪게 되어 주변 상가들이 염려하던 중 엉뚱하게 사건이 해결되는 이야기다. <여섯 번째 메시지>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서점 직원에게 도움을 받아 사다 준 책이 마음에 들어 인사 온 여자에게 그런 직원이 없어 그 직원 찾기에 나서는 이야기다. 도대체 서점 직원이 아니면서 서점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디스플레이 리플레이>는 코너를 디스플레이해서 콘테스트를 하려던 중 한 만화가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디스플레이에 누군가 악의적 장난을 쳐서 범인을 잡는 이야기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 동네 서점이라고 말할 오프라인 서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나는 온라인 서점을 동네 서점처럼 생각하지만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상점과 상점이 소통하고 여러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곳을 잃어간다는 점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서점에 다니던 생각이 난다. 정말 책 이름, 저자를 몰라도 내용을 이야기하면 찾아주던 직원이 달인처럼 신기했고 어디 있는지 몰라 찾아달라고 하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 쉽게 찾아주던 베테랑 직원을 본 적도 있엇다.  

그 시절 책 한권 사서 서점 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읽던 여유로움은 얼마나 즐거운 기쁨이었는지 잊었었다. 이 책은 그런 우리가 너무 바빠 놓치고 있는 여유로운 아날로그적 책이 있는 곳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어 좋았다. 서점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그때 마시던 에스프레소 향기가 나는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고 가까운 서점, 동네 서점 나들이라도 하는 건 어떨지. 아마 즐거운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을까 싶다. 서점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미스터리 이야기를 읽으며 서점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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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2-3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이 리뷰가 올해 마지막 올리는 리뷰는 아니겠소?
올해도 줄기차게 읽었구료.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읽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료.^^

물만두 2009-12-30 11:0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아마도 그렇게 되지 싶습니다.
그런다고 했는데 모자란 거 같아요 ㅜ.ㅜ
감사합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스탕 2009-12-3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즈는 요즘 큰녀석 지성이가 한참 관심을 갖는 캐랙터라지요 ^^
만두님. 건강 잘 살피시고 새해에 더 자주 뵙도록 해요, 우리.
복 많이 넘치도록 받으시고요~ ^^*

물만두 2009-12-30 14:00   좋아요 0 | URL
지성이에게 한국 추리의 미래가 달렸군요^^
많은 지원 부탁드려용.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3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올한해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물만두 2009-12-30 14:01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울보 2009-12-30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
내년에는 그동안 뜸했던 알라딘서재지기님들이 모두 모였으면 좋겠구요,
님의 재미난 이야기도 더 많이 듣고 싶어요,
그때가 좋았는데 ,,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물만두 2009-12-31 10:32   좋아요 0 | URL
울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 기력이 쇠하여 어쩔수가 없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soyo12 2009-12-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런 서점 꼭 가보고 싶어요.^.~

물만두 2009-12-31 10:32   좋아요 0 | URL
동네에 있었음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