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릴러문학 단편선 2 Miracle 4
강지영 외 지음 / 시작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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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인은 바쁘다. 쉴 틈이 없다. 경쟁이 치열하다. 낙오하면 큰 일이다. 패배하면 안된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니 마음의 여유는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점점 더 각박하고 '나'만 아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점들이 문제가 되어 뉴스 속 사건, 사고로 등장하고 있다. 스토커, 재산 욕심, 불신, 위축, 광기, 무차별 살인 등. 이런 소재들로 현대인들의 문제를, 한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장르 문학, 즉 추리, 스릴러 문학이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 현대인의 그림자를 조명하는 것이다. 

한국 스릴러 문학 단편선에 수록된 단편들도 이런 점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7월의 사람들>은 버스에 탄 많은 사연있는 사람들과 권총으로 버스를 납치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사람과 그 안에 자신이 훔친 국보급 문화재를 나두고 내려 택시로 쫓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붕괴>는 갑자기 붕괴된 건물 더미 아래에서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속 마음을 듣는 이야기다. <우리는 미쳐간다>는 사진을 찍으러 왔다 미친 여자와 친해지게 된 남자가 그 여자의 사연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숏컷>은 우연히 사람을 죽인 줄 알고 가뒀다가 그 사람이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된 소심남의 이야기다. <그림자놀이>는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는 여학교 근처에 있을 법한 ~맨을 도시괴담과 엮어 스릴러로 만든 이야기다. <위험한 오해>는 자신의 집에 먹을 것을 가져다 놓는 이상한 남자를 잡으려는 남자와 그 남자의 팬이 된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다.  

단순한 작품도 있고 기발한 작품도 있다. 조금 더 다듬었으면 하는 작품도 있고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다. 권정은의 붕괴는 여자 친구라는 한번쯤 접한 소재를 독특하지 않은 전개를 하면서 마지막의 반전을 통해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그러한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구나 여자들은 여자친구이기 때문이다. '나'와 '너'는 상대적 개념인 동시에 한 사람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니까. 방세현의 <위험한 오해>도 별 다를 것 없는 이야기지만 독특함으로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는 동시에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아는 지 묻고 있다.  

세상은 이제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 세대가 하던 말, '그 사람 참 법없이도 살 사람이지.'란 말의 의미를 잃었다. 그 사람 참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얘긴데 사람들은 이제 이 말은 사기당하기 좋은 사람, 피해입는 사람, 희생당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런 면을 속으로 삯이다가 어느 날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만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을 한다. '그 사람 착한 줄 알았더니 아주 몹쓸 사람이네.' 누군가는 그들을 그리 만들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크지만 사회는 혼자만으로 돌아가는 쳇바퀴가 아닌지라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럴때는 모두 빠져나간다. 그럴수록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한 오해가 쌓여 미쳐가게 되고 결국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추리소설, 스릴러 소설은 그런 점을 가장 임펙트있게 표현하는 장르다. 그것이 좀 과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읽기 힘든 면도 생길 수 있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공포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외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작품들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한국 스릴러 문학을 읽는 이유고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스릴러 문학, 한국 스릴러 작가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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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샷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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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육군에서 떠밀려 제대하게 된 뒤 미국 전역을 방랑하기 시작한 잭 리처. 집도 없고 전화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는 그는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찾기 힘든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던 삶에서 180도 바꾼 삶을 살겠다는 삶에 대한 반항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삶을 꿈꾸는 이들도 있으니 현대판 방랑자 잭 리처라고 부르고 싶다.  

그 잭 리처가 언제 등장하게 되는 지 의아하게도 사건은 그를 놔두고 시작한다. 무차별 총격인지 도심 한복판에서 누군가 작정하고 총을 쏘는 일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죽는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범인은 너무도 많은 증거를 남겨서 금방 잡힌다. 용의자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변호사에게 잭 리처를 불러 달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그 뒤 그는 교도소에서 맞아 뇌를 다치고 기억 상실에 걸린다. 잭 리처는 우연히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뉴스로 그 사건을 보고 제 발로 그를 찾아온다. 용의자의 적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용의자인 제임스 바는 군대에서 한번 그런 일을 벌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도착하자마자 사건은 그를 중심으로 다시 뒤틀리기 시작한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 말은 군인이라면 더욱 잘 알것이고 민간인일지라도 살아가는데 유용한 말이니 누구든 가슴 한켠에 넣어두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이 누구인지 모를 때가 있고, 나와 적을 비교해서 적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더 많고, 어설프게 사건을 확대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런 경우다. 잭 리처가 등장했을때 적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고자 했어야 한다. 이것이 이들의 첫번째 실수다. 가만히 나두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일을 들쑤셔서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두번째 실수다. 세번째 실수는 잭 리처를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 자체다. 

그에 비하면 잭 리처는 신중했고 과감했다. 그는 누가 적인지 알 때까지 기다렸다. 그를 적으로 만든 자를 철저하게 응징했다. 시작은 그와는 무관한 어린 여자의 죽음이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무고한 이의 죽음이다. 아마 전쟁을 겪은 군인이라면 아마 진저리가 날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과 꼭두각시놀이꾼의 가장 위에 있는 이가 누군지 아는 것이 실질적으로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만큼 영리하다. 이런 이를 적으로 돌리는 건 바보다. 난 잭 리처가 나타나면 그의 편에 서겠다. 아니면 그가 지나가도록 자리를 비켜주던가. 

세상에 완벽한 증거란 없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없는 것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우발적 범죄자가 아닌 계획범이라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무고한 사람이라면 알리바이에 일일이 촉각을 세우고 살지 않는 범이다. 그러니 완벽한 증거란 반대로 의심을 해봐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고 너무 완벽한 알리바이도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헌병으로 있었던 잭 리처는 이 일을 깨닫는다. 그는 군대에서 경찰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경찰처럼 생각하고 군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제임스 바가 자기 자신은 믿지 못해도 잭 리처를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위험한 순간에 처하면 가장 필요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미국은 정말 이렇게 총기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도 총기규제를 할 생각조차 안하니 참 대단한 나라다. 총기규제하면 나라가 흔들리는 모양이다. 뭐, 공화당 돈줄이 거기서 나온다고 하니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그로인해 리 차일드의 생생한 잭 리처 시리즈를 보게 된 건 고맙기는 하다.  

중요한 건 죄없는 자의 무죄를 밝히는 일이고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최소한 그런 일을 벌인 자들에게 철저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고. 앞의 1, 2편에 비해서 하드보일드적인 면은 좀 덜하지만 짜임새와 미스터리적 요소가 적절히 하드보일드와 결합되서 쿨한 방랑자, 잭 리처만의 액션 스릴러를 선사하고 있다. 잭 리처, 그는 정말 일당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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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리처는 멋지고 미국이 총기규제를 할 수 없는 걸 보면 마약이고 성매매고 못하는게 아니라 다 안하는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물만두 2010-01-29 14: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어느 나라나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겁니다.

pjy 2010-01-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땅에 떨어지는 도덕성,,더이상 떨어질곳도 없을텐데요..

물만두 2010-02-01 10:22   좋아요 0 | URL
전 인간에게 도덕성이 있기나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회색의 피터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6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초등학생이 몰카로 야한 사진찍어서 돈을 버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도 이해하기 힘든, 뉴스에서 듣고도 믿지 못할 일들이 마구마구 일어나고 있는데 그래도 스트리트 갱단 두목이 친구고 야쿠자 중간 보스가 친구인 마코토도 희한한 일이라고 말하면 세상 돌아가는게 버겁다고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회색 피터팬이 돌아다녀도 야수와 포옹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왜, 불행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꿈을 부수어야만 하는 것일까. - 라고 마코토는 한탄하는 일이 <야수와의 포옹>에서 일어난 일이다. 부모를 여의고 남매가 친적집을 전전하다가 성인이 되어 같이 살면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오빠가 강도를 만나 돈 3천엔 때문에 다리를 못쓰게 된다. 여동생은 마코토에게 복수를 의뢰하지만 그 범인의 사연을 듣고 보니 그 또한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왕따를 당해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 봄이 다시 찾아오듯이, 우리들의 마음에는 스스로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자연적 치유능력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 같이 여린 것을 어느 누가 일생 지니고 살아나갈 수 있겠는가. - 이 작품이, 이시리즈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여린 마음을 마코토가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우리네 인생사같은 고만고만한 일들이 마음에 와닿아 내 마음을 잘 간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산다. 또는 상처를 입히고 산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세상 속에서 이런 일은 알게, 혹은 모르게 일어난다. 그 상처가 복수를 생각할만큼 크기도 하고 그저 욕 한마디하고 잊어버릴 정도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든 상처준 사람은 잊어버려도 상처받은 사람은 잊지 않는다. 잊을 수 없기에 더 괴로운 것이다. 그들은 용서와 화해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평화, 내게 상처를 준 이가 그래도 어떤 사연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나를 상처입힌 자가 나와 같은 인간이기를, 사람의 탈을 쓴 야수가 아니기를 말이다. 세상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 살만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지 싶다. 그 여린 마음들이 강한 비바람에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세상에는 정도만 걷는 사람도 있고 약간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고 업수이 여길 수 있는 사람들도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이유가 있다. <역 앞 무허가 보육원>은 아이들을 늦은 밤에 맡겨야 하는 호스테스들의 아이들의 보육 현실과 어린 아이를 노리는 추악한 변태의 이야기다. 그리고 단지 수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변태 용의자로 몰린 청년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이들이 많을텐데 이들의 아이들은 지금 누가 보고 있을지, 누군가는 관심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키울 수나 있을런지. 

자, 이제 정치인들에게 보라고 하고 싶은 장면이 나왔다. 주목!!! <아케부쿠로 불사조 계획>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정화 작업을 한다고 모든 윤락업소에 철퇴를 내리고 외국인을 잡아가고 그렇게 해서 그곳 상권을 침체시키고 다른 합법을 가장한 윤락업소가 들어오게 만들어 악순환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마코토는 단순히 호스트에게 빠져 풍속업소까지 가게 된 언니를 구해달라는 여동생의 의뢰를 받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비정상적인 모의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같지 않은가? 뉴스에서 많이 접하던 내용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정치인들은 너무 가시적인 성과만을 보고 일을 한다. 그게 정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들 또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국민인데 말이다. 너무 쉽게 단속하고 너무 쉽게 부수고 너무 쉽게 몰아 낸다는 생각은 안드는가.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사냥꾼에게 몰이당하는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란 말이다. 내가 쇠 귀에 경 읽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지만 마코토도 한번쯤 정책을 세울 때 그 정책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가 없나 생각해달라고 하니 나도 좀 그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작은 사건에서 큰 사건까지 이야기는 다양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다. 사람!!! 그 거리에 누구든 사람이 산다는 것이다. 누구든 사람이 살지 않는 거리는 거리가 아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도,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단지 그렇게 두가지로만 나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회색지대가 있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단순할 수 있다면야 이 과일가게 청년이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않기에 오늘도 과일가게 청년 마코토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잽싸게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나쁜 짓을 하면서도 의뢰를 하는 곳이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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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1-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계속 나오는군요. 몰랐네요. 하긴 소재는 무궁무진할 거 같아요.

물만두 2010-01-27 10:17   좋아요 0 | URL
6권이 끝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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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익사체 한구가 발견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건에 빠져들 틈을 주지 않고 한 가족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다. 또 다른 아이 실종이라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미스터리한 익사체의 발견이 책의 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건지,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은 분명한데 작가의 무심한 시선은 깊숙히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자 '너는 모른다'를 가장 잘 반영하는 짧지만 강렬한 것이었음을 다 읽고 난 뒤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공들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현대의 가족 구성은 다양하다. 현대인의 정체성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주어진 것에 불평하는 건 자기만 손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괜히 유행일까. 가족을 태어나면서 내 마음에 드는 구성원으로 골라 태어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어쩔 수 없는 거에 자꾸 목을 매면 후회하는 건 본인뿐이라는 걸 등장 인물들이 질리도록 돌아가면서 되새김길하듯이 각인시키고 있다. 참, 이렇게 가족으로 만나기도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이정도면 나쁜 구성은 아닌데 불만은. 푸쉬킨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뭐 이 정도가 각각의 인물들에게 필요하지 않았나 싶은 작품이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 알지도 못한 채 아버지가 되어 돈만 벌어다주면 자기 할 일 다하는 거라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르게 은밀한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있고 한국에서 화교로 살며 눈치보는 일에 질려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무심으로 일관하는, 그러면서 대만에 있는 옛 애인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는 새엄마,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입고 애정결핍증 환자처럼 사랑에 목을 매며 자학하는 인생을 사는 큰 딸, 그림자처럼 살아가려 애쓰지만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서 방화를 일삼는 아들, 어리지만 집안 분위기와 태생적 수줍음으로 마음을 열지 않다가 사라지는 작은 딸. 작은 딸 유지의 실종으로 이들 가족의 문제는 표면에 드러나고 그러면서 서서히 가족의 모습을 갖춰가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가 실종되어 가족 구성원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아버지는 의심가는 이들이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탐정을 고용한다. 엄마는 여기저기 아이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정작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아이에게 고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빠는 그날 자신이 집에만 있었더라면 하고 자책에 빠져 전단지를 들고 돌아다닌다. 같이 살지 않는 의붓언니는 예전에 자신이 모의한 동생을 납치해서 아버지에게 돈을 뜯어내자는 것을 남자친구가 실행한 건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대만에서 엄마의 남자친구가 아이의 실종 소식에 다급하게 찾아온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고 그 물음에 깨닫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속을 뒤집어 보여준다고 한들 먼지 한톨까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고 다 안다고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가족이란 사랑하는 존재들이다. 믿음의 가장 최소 단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다. 그렇게 믿자구. 그 사랑을 토대로 아이를 낳고 기른다. 사랑과 믿음으로 부부는 하나가 되고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맨 몸을 보여주고 자신의 등을 보여주며 무방비 상태임을 언제나 드러낼 수 있는 이들이 가족이고 그렇게 쉴 수 있는 곳이 가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 많은 갑옷을 입고 보여주지 않은 채 그 갑옷에 짓눌리기고 있다. 자신이 갑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말이다. 

작품은 '너는 모른다'로 흠뻑 젖어 있다. 너는 모른다고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외친다. 그렇게 외칠거면 알 수 있게 속 좀 보여주고 살 일이지 너는 나를 모른다고 하소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는 너는 나를 알려고 해봤냐고 묻고 싶다. 자신도 보여주지 않고 남도 알려 하지 않는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부재를 겪고 있는 가족이 불쌍하다. 이해와 연민은 가슴에서 빼놓고 무심함과 상처주기만 남은 사람들처럼 가족이 남보다 못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떻게 어린 아이가 전화할 수도 없게 만드는 지. 적어도 엄마, 아빠, 언니, 오빠라면 위험에 빠졌을 때 전화할 수 있는 이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만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작품 안에는 가족 말고도 생각해볼 문제들이 내제되어 있다. 우선 우리는 이미 단일민족이 아니었다고 말하던 어떤 사회학자였나 인권운동가가 생각나는데 그의 주장의 근거가 바로 화교의 존재였다. 화교의 역사는 잘 모르겠지만 백년은 넘게 우리나라에 있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살게 한 이들이고 6.25전쟁이 일어났을때 이 땅을 위해 목숨 걸고 같이 싸운 같이 산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린 그들은 늘 이방인 취급했고 그들의 존재를 무시했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난다고 이제와서 단일민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고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우린 진작에 단일민족이라는 꼬리를 버렸어야 했다. 우리 이웃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을 배척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되는 단일민족이라면 그것은 추한 우리들의 자화상일뿐이다. 옥영과 밍의 대만인도 한국인도 아니게 되어버린 그들의 모습속에서, 유지를 왕따시키게 만드는 부모들의 모습속에서 잔인함을 본다.  

또 한가지 이 작품을 통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장기 기증에 대한 문제다. 아픈 내 자식은 소중하다. 하지만 내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이 어찌되든 상관없어서는 안된다. 어떻게라도 좋다는 건 정말 아니다. 모른 척 하면 안된다. 그로 인해 음성적 매매와 납치,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지켜주지 않는 어린 생명들은 누군가에 의해 끌려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로도 나왔었다. 아픈 딸을 위해 마춤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아 언니에게 기증을 해줬으면 하고 부모는 바라지만 아이는 거부한다는 내용의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보라. 그런 부모의 행동이 아픈 딸을 정말 잘 알고 한 행동인지를.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 이건 너는 모른다는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움추리지 않았을텐데 진짜 시련이 닥쳐야 인간은 삶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바라던 것들이 얼마나 덧없고 공허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 또한 없다. 산다는 건 그저 사는 것일뿐이다. 고슴도치처럼 제 몸을 부풀려 가시를 세워봐야 상대방이 상대를 안하면 헛수고라는 걸 민망해하며 알게 되듯이 그런 것이다. 인간관계의 본질을 따져봐야 별거 없다. 그래봐야 부부는 부부고 부모 자식간은 부모 자식이고 형제는 형제다. 그 굴레가 굴레든 축복이든 덫이든 관계는 살면서 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계에서 절대적 고립과 단절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생각하며 살기를. 인간 관계 꼬아봤자 나만 피곤하다. 너도 모르지만 나는 더 모르지 않는가.   

처음 사건은 마지막에 와서야 의문이 풀린다. 하지만 그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이들의 시련이 과연 진짜 시련이었을까 하는. 아버지는 이용을 당했다. 그는 그것을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경고조차 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경고만 했더라도 사건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게 끝일지 시작일지 책을 덮은 나는 모르겠다. 위험한 이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게 될지 모를 일이니까. 그러니 안타깝지만 이들의 <너는 모른다>는 현재진행형이고 독자인 나는 걱정이 될 뿐이다. 거기에 무심한 이들은 밍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고 있다. 정말 난 이들을 모르겠다. 언제까지 너만 모른다고 할지를. 나만 모르는 걸까. 작가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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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매혹의 미녀 연쇄살인범
첼시 케인 지음, 이미정 옮김 / 리버스맵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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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희대의 엽기적인 미녀 연쇄 살인마 그레첸 로웰와 그녀를 잡으려다 죽을 뻔하고 그녀에 의해 살아난 형사 아치 세리단이라는 두명의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레첸 로웰에 대해 질식의 작가 척 팔리니는 '한니발 렉터의 탄생 이래로 가장 매혹적이고 독창적인 연쇄살인마.'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보면 볼수록 토마스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시리즈와 닮았다. 마치 토마스 해리스에게 바치는 트리뷰트 작품같기도 하고 한니발 렉터를 오마쥬한 작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엽기적인 미녀 연쇄 살인마 그레첸 로웰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다. 살인에 아무런 가책도 없고 살인을 놀이처럼 하는 괴물이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아니라면 우린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괴물이 괴물이기때문에 선천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과후 살인자같은 연쇄 살인범, 죄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살인을 멈추지 않는 살인마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병들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괴물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무서운 것은 사이코패스든 병든 살인마든 우리 안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 이웃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구별하기 힘들고 구별이 가능하게 되었을때는 이미 그들이 사건을 저지르고 난 뒤라는 점이다. 

작품은 아치 세리단이 그레첸 로웰의 자수로 살아 남아 치료를 받은 뒤 2년이 흐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아치 세리단은 다시 등장한 '방과후 살인자'라는 어린 여고생만을 납치해서 살인하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복귀한다. 그리고 해럴드 기자 수잔 워드는 이 사건을 집중 보도하게 되고 아치 세리단을 기사로 쓰게 된다. 여기에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진행으로 작가는 세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첫번째로 아치 세리단 형사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그레첸 로웰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현재와 2년전 과거를 넘나들며 보여준다. 두번째는 기자 수잔 워드의 좌충우돌하는 삶의 방식과 기자 정신,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사건과 엮어가며 풀어내고 있다. 세번째는 그레첸 로웰이 유죄협상에 의해 사형을 면하고 아치에게만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들을 묻은 위치를 알려주며 그를 조종하려고 하는 이유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한니발 렉터 시리즈 1편과 그 유사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우선 방과후 살인자를 찾는 방식은 연쇄 살인범을 찾아내는 방식과 같다. 여기에 만신창이가 되어 지금도 약에 의존하는 형사의 존재는 아슬아슬하게 마음 졸이며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으로 보게 만들고 매스컴에 대한 사람들의 알 권리를 기자들이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지 아니면 명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 기자를 통해 짜증과 분노를 터트리게 된다. 하지만 매혹의 미녀 연쇄살인범이라 불리는 감옥에 갇혀있는 전대미문의 살인마에게는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아치의 말처럼 시한폭탄이 터질 것 같은, 아니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편이 기대된다. 본격적인 아치와 그레첸의 쫓고 쫓기는 혈전이 시작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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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1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굿모닝!! 요즘 리뷰가 많이 올라오니 좋군요. 뒤늦게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를요..

물만두 2010-01-19 11:00   좋아요 0 | URL
Manci님 좋은 아침입니다.
뭐, 일주일에 두편 올리고 있습니다.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아직 경인년은 아니니까 늦으신건 아니랍니다^^

pjy 2010-01-19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당장 장바구니가 무거워지는군요,,읽기도 전에 투를 기다리는건 힘든일이예요~^^

물만두 2010-01-20 10:28   좋아요 0 | URL
쬐송함다^^

카스피 2010-01-20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혹의 미녀 연쇄 살인마라.. 만두님의 리뷰를 보니 급 땡기는데요.근데 현실에서 의외로 여자 연쇄 살인범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물만두 2010-01-20 10:30   좋아요 0 | URL
간간히 있기는 했죠. 미국에서도 19세기에 있었고 요즘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구요. 남자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지만요^^;;; 사이코패스 비율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