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왕 - 제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18
조은이 지음, 유준재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경표의 성장은 썩 좋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달섬이 과연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달섬의 이야기를 빼고 경표의 몽유병을 학교생활에 담았다면, 또는 어린 시절이나 또 다른 일상생활로 전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 아이에게 상상력은 중요하다. 아이들은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표가 생선을 먹지 못하는 것이 키우던 물고기가 죽은데 원인이 있듯이 그 몽유병에서도 원인과 결과를 도출해 냈어야 했는데 그것이 부족해 보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참 오래 남는다. 어린 시절 동네 언니, 오빠 따라 왕파리를 잡아서 날개를 떼고 물위에 띄우고 놀았었다. 그 시절 놀 거리가 없었으니까 그랬었다. 그때는 그것이 파리의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그 기억이 내내 남아 파리만 보면 그때 내가 참 잔인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런 유년의 기억들, 친구들과 별거 아닌 일로 다투고 두고두고 마음에 남은 사람들 참 많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때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듯이 지금 우리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경표네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가 단편적으로만 등장한다. 그런 것의 세밀함이 아쉽다.

 

소년은 언젠가 자기만의 왕을 꿈꿀 것이다. 그 꿈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스스로 깨닫는 것도 좋지만 소년에게 작은 씨앗을 심어주는 것 또한 좋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씨앗을 나눠주고 있는지 내 유년과 더불어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1-11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뼈 모으는 소녀
믹 잭슨 지음, 문은실 옮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고를 때는 제목만 보고 추리소설이 아닐까 기대했었다. 가끔 나는 제목에 혹 하는 경향이 있다. 소녀가 뼈를 모은다는데 호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아니었다. 고딕 소설의 분위기를 그림에서 볼 수 있지만 딱 고딕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물론 고딕 소설다운 작품도 있다. 대부분은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 표지 맨 밑에 이런 문구가 있다. <그림형제의 동화적 상상력, 로알드 달 특유의 냉소, 에드어드 고리의 고딕풍 유머를 완벽하게 재현하다!> 동화적 상상력 있다. 냉소와 고딕풍 유머도 존재한다. 완벽한 재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형제나 로알드 달, 에드워드 고리 - 고리 작품은 하나도 안 읽어봐서 모르지만 - 와는 또 다른 작품들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지하실의 보트>같은 작품은 정년퇴직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든 작품이었다. 지하실의 보트가 노년, 죽음을 한참 남겨 놓고 무료하게 지내게 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냉정함을 돌아보게 한다. 그 많은 보트를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사회적 냉소를 보여주는 작품이지 않나 싶다.

 

<레피닥터>는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비를 되살리는 의료 기구를 골동품점에서 사게 된 소년이 나비를 살려내는 과정을 그린 작품과 그 마지막의 기묘함이 잘 어울렸다.

 

<피엇 자매>야말로 고딕소설 그 자체다. 이 작품의 기묘함은 읽어봐야만 한다. 물론 그렇다고 섬뜩한 건 아니다. 아니 섬뜩하지만 고딕소설이 다 그런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나 할까...

 

<외계인 납치사건>은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작품이다. 동화 같은 이 작품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대처할 교장 선생님이 단 한분이라도 우리나라에 있을지 참, 부러운 내용이었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강 건너기>는 로알드 달식의 유머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재미있다. 마지막에 가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장의사의 임기응변이란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뼈 모으는 소녀>는 표제작이지만 그다지 색다를 것은 없다. 단지 소녀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있으며 그것은 스스로 알아가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치유가 끝나면 다시 돌려놓을 거라는 것을 알려준다. 의미심장한 작품이라 만화로 다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둔자 구함>도 로알드 달식의 냉소가 들어있는 작품이다. 모두 가질 수는 없는 법이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열 작품 모두 나름 색다르고 좋았다. 내가 미쳐 그 뜻을 파악 못해 적을 수 없었던 단편도 있었고 단지 재미있는 작품, 생각할 작품, 약간 으스스한 작품 속에서 골고루 미식가처럼 여러 색깔의 작품을 맛봤다. 로알드 달과는 또 다른 좋은 작가의 작품을 만나 즐거웠다. 좋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똘이맘, 또또맘 2007-01-0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제작 외에도 많은 작품이 들어있군요. 속속들이 잘 파악을 해 주시니 책을 읽은 기분입니다. 이러다 읽은책이라고 떠들고 다니지는 않을런지... 쯧 ㅠ.ㅠ

물만두 2007-01-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이 아니라서 소개정도를 했습니다만 내용은 아니구요. 어떤 작품인지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moonnight 2007-01-03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스스한 분위기의 동화라니, 궁금해지네요.

물만두 2007-01-0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그다지 으스스하진 않은데 좋아요^^
 
내 무덤 푸르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133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랜만에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는다. 90년대 초에 나는 이 시인을 알았고 그때 이 시인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오래 기억만 하고 있었지 다시 잡지는 못했다. 이제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그때 내 청춘에 그의 시는 머리를 한 대 쾅 쥐어박는 느낌을 주었더랬다. 사랑 타령의 시들만, 곱게 쓰인 시들만 알던 내게 시가 이럴 수도 있다고, 아니 시란 이래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던 시인. 다시 보니 시인의 시는 이제 명치끝에 걸려 나를 체하게 한다. 시가 넘어가다 걸렸다. 목이 메고, 가슴이 막히고, 내 영혼이 바스라 지는 소리를 듣게 하고 공감할 수 있는 품을 준다.

 

그때 제기동에 대한 시가 있었더랬다. 나도 제기동에 살았더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느 골목 그와 내가 같이 걷지 않았을까, 언제 그 짧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같은 목욕탕에라도 갔었더라면 그이 때 한줌이라도 고이 모셔왔을 텐데 그랬더랬다.

 

이제 시인도 나이가 들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 스무 살 겨우 넘긴 아이는 없다. 마흔을 바라보는 늙은 아이가 있다. 그 마흔이라는 시가 와 닿는다. 내 마흔이 그러하므로.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
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는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
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아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병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나는 유리벽과 더불어 다시 떨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넓은 궁륭 같으리라 생각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겠지만 그래도 내게도 저버릴 수 없는 믿음과 희망이 있으므로. 시인과 내 생각이 닮아간다는 건 반가우면서도 이제 더는 누군가 내 귀싸대기 때려줄 이가 없다는 상실이다.

 

그 시대가 나도 좋을 줄 알았고 지금은 더 좋을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시인처럼 아니더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더 좋던 날들은 지난날들인 모양입니다. 당신이 더 좋았던 때도 아마 그때가 아니었을까 저어됩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지만 가슴 뛰는 첫사랑의 감정이 아님을 알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시가 명치에서 오래 머물다 설령 배설된다 하더라도 다시 집어 먹을 수 있기를, 그런 용기가 남아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당신의 시를 다시 읽으니 그래도 좋습니다. 그래도 참 좋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1-02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저도 그래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젠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인걸요^^ 님도요~

비로그인 2007-01-02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만두언니라 불러야 할까요? ^^)
드넓은 궁륭같은 평야에서 좋은 한 해 보내시기를...
저는 만두님의 리뷰에 또한 숨이 턱 막혀하고 갑니다.

물만두 2007-01-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시님 무어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손가는대로 쓰는 리뷰인걸요^^;;;

2007-01-07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1-0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시가 이해가 됩니다... 사실 씩씩하게 살게 하는 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막히게 하는 시라고 생각되거든요.
 
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결국 처음 읽으며 눈물을 흘리더니 마지막 덮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아, 이런... 처음 읽을 때는 츠요시에게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츠요시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용서하란 얘기도 하지 않겠다. 언제나 우발적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회가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절대적인 노력 다음에 오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고도 냉방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떨다가 한겨울 동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에 비하면 교도소에서 갇혔다고는 해도 밥 먹고, 잠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과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는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아는 녀석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다니 츠요시, 어리석은 녀석!

 

나오키의 삶을 보면서 살인자의 동생으로 살며 자신이 짓지 않은 죄로 차별을 받다니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차별은 그런 것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별별 차별이 다 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으로 차별받고,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낳았다고 차별받고, 가난하다고, 무능하다고,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차별받는다. 그리고 왕따를 당한다. 그러니 그런 차별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나쁜 녀석아! 형이 누구 때문에 죄를 지었는데 그 따위로 생각 하냐? 네가 형보다 똑똑하다면 먼저 형의 걱정을 덜어줬어야지.

 

츠요시의 편지와 나오키의 일상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츠요시의 편지가 너무 일상적이고 평온해서 오히려 나오키의 일상의 상황과 대조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이면에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와 그래도 몸부림이라도, 응석이라도 부릴 수 있는 자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차라리 반대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일에도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많은 지를 생각해보면 그저 말뿐인, 결코 행동할 수 없는 얘기다. 나도 그렇다. 책으로 보면 그러면 안 되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이런 일을 내가 겪게 된다면 그들의 이웃으로서 그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인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나 또한 피해 다닐 것이다.

 

죽은 피해자는 돌아오지 않고 살아갈 날이 많은 가해자는 그 날들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이 가족을 그리며 고통 속에 살면서 서서히 잊어간다 해도 가해자의 가족은 그러면 안 된다. 죄를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용서되거나 잊혀 진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잔인한 일일 테니까. 다음 생에서도 지난 생의 업을 갚아야 한다고 한다. 죄는 그렇게 내세에까지 연결되는 것인데 이생에서 조금이나마 더 고통스럽게 겪어야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혹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해자의 입장과 그 상황에 대해 글을 탁월하게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본 책들을 생각해보니 피해자와 탐정의 입장에서 쓴 글보다는 가해자의 입장과 가해자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피해자였다가 가해자로 바뀐 상황, 그러다 다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쳇바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소시민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모여 이 작품을 만들어낸 것 같다. 참, 어떻게 보면 독특하게 글을 쓰는 작가다.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발견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글 솜씨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 2007-01-02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3198837

물만두 2007-01-02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삼삼하게 감사드려요^^
 
내 나이 서른하나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인생에서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나이다. 그런데도 참 이야기가 많다. 서른한 살 여자들의 서른한 가지 이야기는 다른 듯 비슷하고 닮은 듯 조금씩 다르다. 아마 이 중 몇 가지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그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짧고 간단하게 전하고 있다. 마음에 와 닿기도 하고 또 그저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를 그리워한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을 했다. 내 나이 서른하나에 나는 무엇을 했나?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어느 정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성취할만한 나이이기도 하고 적당히 성숙함을 알만한 나이이기도 하고 또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열여덟에는 서른 해만 살다 가고 싶다고 일기장에 적었었다. 스물아홉에는 서른이 온다는 사실이 남들처럼 두려워서 바흐만의 <삼십 세>를 읽었다. 그리고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순식간에 내 나이들은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남과 다른 생활을 했기에 내가 올린 서른하나의 성과라면 적당한 포기와 적당한 희망, 아직도 혼자 할 수 있던 힘과 찾아다닐 곳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서른하나에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어떤 것을 알게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떤 나이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조차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요즘 세상에 늦은 것은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없다.

까마득했던 서른하나, 기억에 조차 없는 서른하나를 그래도 생각하게 해줘서 참 고마웠다. 내 서른하나는 묻혀 지나갔지만 남은 날들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리라. 또한 그 묻혀 지나간 서른하나가 있었기에 지금, 서른아홉의 내가 있고 무사히 마흔을 바라보게 되었음을 느낀다.

나이가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그리움과 추억이 쌓여 나를 만든다. 서른하나인 당신들은 어떤 것을 해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어떤 나이의 사람들도 그만큼 아름답다. 살아있고 살아감에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서른하나는 나를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고 서른하나가 안 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라 얘기해주고 싶다.

사람이 아름다운 건 어떤 나이에 어떤 모습으로 있느냐가 아니다. 어떤 나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그렇게 똑같이 봐줄 수 있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서른하나의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하고 싶다. 그때가 있어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고 침전된 그 수많았던 날들 하나하나에 사랑을 전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2-18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2-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축하드랴요^^

무스탕 2006-12-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문득 제가 서른한살엔 뭐를 했나 생각했더니..
12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둔 해가 서른하나 끝나는 날이었네요..
그 해.. 유난히도 바쁘고 힘들고 그 와중에 기쁜일도 슬픈일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이것 저것 많이 생각나는 아침시간입니다..
만두님. 감사함을 담아 땡큐에요~ ^^*

물만두 2006-12-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별말씀을요^^;;

DJ뽀스 2006-12-1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열독하고 있는 책입니다. 서른하나가 지난 지 얼마 안되었지만 내가 뭘 했나 기억이 안나네요.(청년치매) 읽은 거 중에선 정원이란 글이 기억에 남네요.

물만두 2006-12-1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스님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는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만두 2007-01-1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 하하하 그럴수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