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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 이제 그만 하기로 해요.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기로 해요.
우리 살았다고 생각하지 말기로 해요.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마음, 이젠 접기로 해요.
인간에게 존엄성이 있다는 그 거짓말이 사실인 것처럼 믿었던 어리석음을 털어버려요.
언제나 인간의 역사는 늘 그랬었죠. 한 순간 바꿨다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달라졌다고, 쟁취했다고, 성공했다고 느꼈다면 그건 그때의 잠깐 지나치는 바람의 속삭임, 눈가림에 좋은 폭죽의 아름다움에 눈멀고 귀 막혔었기 때문이랍니다.
변한 건 없어요. 세상엔 언제나 두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합니다.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모든 걸 누리며 입가에 미소 띠고 자비를 베푸는 얼굴로 살아가는 자와 죽지 못해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 산 자와 죽은 자...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착한 가면은 쓰고 있기 말기로 해요.
미안하지만 세상은 기만과 거짓뿐이랍니다.
우리는 속고 속이는 존재들이죠. 아내와 남편이, 부모와 자식이, 경영자가 노동자를, 사회가 시민을,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속죠.
그러니 우리 더 이상 속지 말기로 해요.
더 이상 당하지 말기로 해요.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지 않는다면 누구를 대신해서 싸우지 말기로 해요.
우리에겐 기저귀 하나 사 주지 못할 아이가 있거든요.
우리에겐 나이 들고 자식 빚보증 선 부모가 있잖아요.
우리,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로 해요.
우린 노동의 노예, 시간의 노예, 경영자의 노예, 국가의 노예들이랍니다.
노예가 노예가 아니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만약 아직도 그것이 있고, 만약 제 생각이 틀렸다면요.
비 오는 날, 서로 안고 울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추위에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저 바깥으로 내몰린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정말 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나요?
이 책이 감동적인 휴먼 드라만가요?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은 정말 노동자를 위해서만 노동 운동을 하고 파업을 하시나요?
비정규직 직원들은 왜 더 많아지는 걸까요?
청년 실업은 왜 늘어나죠?
이 책의 뒤에 좋은 책이라고 추천사를 쓰신 분들은 그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그러니 우리 이제 양심도 버리기로 해요.
욕심껏 우리 스스로만을 위해 살기로 해요.
아무도 이러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깃발을 높이 들면 들수록 돌을 던지라는 신호가 될 겁니다.
미안합니다.
세상에 모두 다 같이 잘 살 그런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속지 말고 속이기로 해요.
기만당하지 말고 기만하기로 해요.
배 터지게 우리만 잘 먹기로 해요.
더 이상 우리 죽지 못해 살지는 말기로 해요.
그것이 비록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일이 된다고 해도 밟히는 것보다는 낫답니다.
우리 더 이상 루디와 달리아는 잊기로 해요.
푸쉬킨의 말도 다시는 되 뇌이지 말기로 해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아뇨. 삶이 우리를 속인다면 두 배로 속이기로 해요.
슬프도록 놔두지 말기로 해요.
분노해서 터트려버려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정말 하나도, 하나도 없으니까요...
이 작품은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깁니다.
이 작품은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존재하는 이야깁니다.
이 작품은 결코 픽션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일들의 단면일 뿐입니다.
인간과 함께 소멸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인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이야기!
가슴 아프더라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작품도 있음을 알게 해주는, 인간이라면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