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맨
크리스틴 스팍스 지음, 성귀수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떤 사람은 없었을까? 기구한 운명의 장난에 의해 고통 속에 죽어간 이가 존 메릭 단 한명일까? 그의 실제 삶을 미화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후기를 읽고 들었다. 이 작품은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쓴 최루성 픽션이다.

존 메릭이 그 전 삶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 괴물쇼라는 것이 있었고 그 괴물쇼에는 여러 기형을 가진 사람들이 출연했음을 알고 있다. 샴쌍둥이들이라던가, 왜소증을 가진 소위 난장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털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과 남녀추니까지, 우리가 지금은 병명으로 입증된 병을, 유전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생계를 위해 그곳에서 자신을 보여주고 돈을 벌었다. 그래도 그것은 일종의 연예 사업이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주인이었다면 말이다.

이 작품에는 그런 존 메릭과 비슷한 괴물쇼에 자발적으로 출연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그도 자발적으로 괴물쇼에 출연했던 인물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그는 피자발적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또한 사실에서도 그는 착취를 당했다고 하니 그 부분에서 박사처럼 동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 대접 못 받는 사람이 단순히 외모가 흉측하다고 기피가 되는 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엘리펀트맨만이 부각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시대 전혀 보지 못했던 의학적 사례를 접한 의사가 그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접근했고 이용했으며 양심의 가책으로 그에게 동정심을 보였으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의사들은 그런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해서든지 남기고 싶어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술이 발전을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도 박사는 그 뒤 명성을 얻었고 엘리펀트맨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단순히 시기심이 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처럼 진짜 그 의사가 엘리펀트맨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엘리펀트맨은 어느 누구보다 외모는 비극적으로 생겼지만 정신과 마음만은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이 또한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프다는 것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는 감기만 조금 걸려고 가라앉고 짜증내고 그런다. 그런 것을 아는 데 기형뿐 아니라 그것이 고통이 되어 간다면 성격에 영향을 안준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보통 인간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그가 뒤늦게 외친 "나는 짐승이 아니야. 나는 인간이야!"는 더 일찍 터트렸어야 할 분노였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작품 속에서 비춰지고 있는 것은 현실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 가를 알려준다. 그를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이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품에 공주가 등장해서 그의 곁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의사의 힘만으로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의학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를 보호할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역설이다. 동화처럼 꾸민 작품이고 진부함을 지닌 작품이지만 그래도 메시지는 확실하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건은 인간의 독자적 의지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모두가 나서서 이루어야 할 일이라고. 여기에 예외는 없다고. 이것이 엘리펀트맨이 지금의 시대에 다시 등장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점이며 아마도 작가도 비극적인 생애를 산 한 인간의 삶을 흥미위주로 쓴 것이 아니라면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라 생각된다.

이 작품은 겨울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읽을 만한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주위에 엘리펀트맨이 있다면 당신과 당신의 자녀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드러낼 것인지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친구 중에 장애 아동이 있다면 어떻게 하라고 말할 것인가? 주름 제거 수술이나 아이들이 쌍꺼풀 수술하는 돈으로 화상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비장애인으로 태어나도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우리나라는 낙태를 불법으로 정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낙태가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조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유전적 질환이 있는 태아는 낙태가 허용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엘리펀트맨은 태어날 수 없는, 태어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말이 되는가? 이런 법이 있는 나라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점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한 사람이 불행한 삶을 살다 갔다. 자의에서가 아니라 태어났을 때 그에게 주어진 신체적 조건 때문에. 그런 사람은 이제 엘리펀트맨으로 끝나면 안 되는 것일까? 계속 우리가 인간으로써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 가를 생각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면을 자꾸만 보여줘야 하겠는가?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크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보다 실천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인간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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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와 함께 겨울방학때 읽어볼게요.

물만두 2006-11-1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세요.

jedai2000 2006-11-2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잘 봤어요. 겨울방학은 없지만 꼭 읽어보겠습니다. ^^

물만두 2006-11-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흙, 리뷰 올리고 보니 참 말이 안되게 쓴 거 같아요. 너무 흥분했었나봅니다 ㅜ.ㅜ

기인 2006-12-0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화같고 진부한게 너무 화났어요. 너무 좋은 소재를 가지고 유치하게 만든 느낌이랄까. 엘리펀트맨을 오히려 모독하는 듯한. 쩝. 정말 인간의 추악한 면이랄까, 본질적인 측면까지는 접근을 못한 것 같아서 넘 아쉬웠어요. 읽으면서 제 추악한 면모를 반성하게끔 하는 대목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분 뿐이고. 너무나 설정된 스토리-라인에 집착하는 모습이라니.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소설'인데 말이죠. 쩝;

물만두 2006-12-0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저도 그부분이 너무 좀 그랬습니다. 아쉬운 작가의 필력이라고 해야겠죠.
 
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 이제 그만 하기로 해요.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기로 해요.

우리 살았다고 생각하지 말기로 해요.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마음, 이젠 접기로 해요.

인간에게 존엄성이 있다는 그 거짓말이 사실인 것처럼 믿었던 어리석음을 털어버려요.

언제나 인간의 역사는 늘 그랬었죠. 한 순간 바꿨다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달라졌다고, 쟁취했다고, 성공했다고 느꼈다면 그건 그때의 잠깐 지나치는 바람의 속삭임, 눈가림에 좋은 폭죽의 아름다움에 눈멀고 귀 막혔었기 때문이랍니다.

변한 건 없어요. 세상엔 언제나 두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합니다.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모든 걸 누리며 입가에 미소 띠고 자비를 베푸는 얼굴로 살아가는 자와 죽지 못해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 산 자와 죽은 자...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착한 가면은 쓰고 있기 말기로 해요.

미안하지만 세상은 기만과 거짓뿐이랍니다.

우리는 속고 속이는 존재들이죠. 아내와 남편이, 부모와 자식이, 경영자가 노동자를, 사회가 시민을,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속죠.

그러니 우리 더 이상 속지 말기로 해요.

더 이상 당하지 말기로 해요.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지 않는다면 누구를 대신해서 싸우지 말기로 해요.

우리에겐 기저귀 하나 사 주지 못할 아이가 있거든요.

우리에겐 나이 들고 자식 빚보증 선 부모가 있잖아요.

우리,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로 해요.

우린 노동의 노예, 시간의 노예, 경영자의 노예, 국가의 노예들이랍니다.

노예가 노예가 아니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만약 아직도 그것이 있고, 만약 제 생각이 틀렸다면요.

비 오는 날, 서로 안고 울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추위에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저 바깥으로 내몰린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정말 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나요?

이 책이 감동적인 휴먼 드라만가요?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은 정말 노동자를 위해서만 노동 운동을 하고 파업을 하시나요?

비정규직 직원들은 왜 더 많아지는 걸까요?

청년 실업은 왜 늘어나죠?

이 책의 뒤에 좋은 책이라고 추천사를 쓰신 분들은 그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그러니 우리 이제 양심도 버리기로 해요.

욕심껏 우리 스스로만을 위해 살기로 해요.

아무도 이러는 우리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깃발을 높이 들면 들수록 돌을 던지라는 신호가 될 겁니다.

미안합니다.

세상에 모두 다 같이 잘 살 그런 유토피아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속지 말고 속이기로 해요.

기만당하지 말고 기만하기로 해요.

배 터지게 우리만 잘 먹기로 해요.

더 이상 우리 죽지 못해 살지는 말기로 해요.

그것이 비록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일이 된다고 해도 밟히는 것보다는 낫답니다.

우리 더 이상 루디와 달리아는 잊기로 해요.

푸쉬킨의 말도 다시는 되 뇌이지 말기로 해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아뇨. 삶이 우리를 속인다면 두 배로 속이기로 해요.

슬프도록 놔두지 말기로 해요.

분노해서 터트려버려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정말 하나도, 하나도 없으니까요...

이 작품은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깁니다.

이 작품은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존재하는 이야깁니다.

이 작품은 결코 픽션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일들의 단면일 뿐입니다.

인간과 함께 소멸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인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이야기!

가슴 아프더라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작품도 있음을 알게 해주는, 인간이라면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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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5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5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1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1445님 쓰는 게 어렵지는 않다니까요 .ㅜ.ㅜ
속삭이신 1446님 눈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2006-11-15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15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하루(春) 2006-11-1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리뷰 제목이 길어진 거예요? 제목만 읽어도 배불러요. ^^;;

물만두 2006-11-1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원래 장황하게 그래졌어요. 간단하게 하면 식상할 것 같아서... 몰라요 ㅜ.ㅜ

stella.K 2006-11-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 읽으셨군요! 장하십니다. 저는 미끄러졌습니다. 되면 일부러라도 읽어 볼려고 했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요원할 듯싶네요. ㅜ.ㅜ

물만두 2006-11-16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읽어보심이 좋으실텐데요^^;;;

비로그인 2006-11-1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생각이 많다가, 뒷표지를 보는 순간 머리가 휑하니 비어버리는 책이 아닌가 싶네요..후후.. 뭐, 책에 둘러진 띠부터가 이미 반동(?!)적이긴 했습니다만;;;

물만두 2006-11-1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왈츠님 띵하죠ㅡㅡ;;;

2006-11-16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17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정말 좋은 작품에 혹여 제 서평이 누가 될까봐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님의 마음이 더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복한 식탁
세오 마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이 가끔 멍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아니 어렸을 때도 느낀 거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엄마, 아버지가 덜 힘든 건 아니다. 자식인 사람들도 나름대로 힘들지만 생각해보고 겪어보면 부모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자리인지를 알게 된다.

 

사와코의 집은 독특한 집안이다. 아빠의 자살 사건 이후 자책감에 힘들어 하던 엄마는 집을 나가서 따로 살면서 왕래를 하고, 아빠는 아빠 자격을 내놓고 입시 준비를 선언한다. 머리 좋고 공부 잘했던 오빠는 대학 진학을 안 하고 농부가 되었고 그 중에서 사와코는 평범한 학생이며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이들은 전혀 충돌이 없다. 충돌이 없는 집이라 더 문제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폭력적으로 폭발하는 것보다 가정의 유기적인 해체와 자발적인 스스로의 문제 해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것이 낯설지만 가정의 해체와 심각한 폭력성이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의 접근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서상 안 맞겠지만.

 

어쩜 이런 모순된 가정이었기 때문에 사와코는 평범한 오우라를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전혀 독특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 아이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닐까.

 

사와코는 다시 한 번 시련을 만나지만 또 극복한다. 그리고 해체된 가정은 복구를 시작한다. 그런 해체가 있었기에 그 자리에 대한 소중함과 책임 회피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함께 낯선 곳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난 어쩔 줄 몰라 아버지한테 의지했지만 아버지도 그곳이 처음이라 아무 것도 모르셨고 당황하셨다. 그때 알았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어른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라는 걸. 아버지는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나도 처음 와서 모르겠는데?”그때 아는 척, 어른의 권위를 지키려 하셨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 말씀이 아직까지 내 맘에 남아 있는 것은 가족이란 어른과 아이의 집합이 아니라 모르는 것은 서로 알려주며 공유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울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지키고 베풀기만 하고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보호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의 모습이 우리가 지향하는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민망하게 마지막에 울고 말았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신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띠지의 문구에 콧방귀를 꼈는데 참... 눈물이 흘렀다. 사와코와 사와코의 가정이 행복해져서,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만, 행복한 식탁에서 진정하게 오붓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간결하면서도 썩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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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3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1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똘이맘, 또또맘 2006-11-1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식탁'은 보통의 가족들에게도 꼭 필요한 모습이겠죠 ^^ 요즘은 가족 모두가 모여앉아 밥 한끼 먹는것도 큰 행사가 되어버렸다니깐요. 제각기 바쁘니.... 하루에 한끼라도 다 함께 둘러 앉아 행복할수 있다면 ...그것만큼 가족을 결속시키는일도 없을것 같네요.

2006-11-13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또또맘님 그게 쉽지 않으니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하는거겠죠.
속삭이신님 네^^

씩씩하니 2006-11-1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괜찮다니....추천 꾹,,장바구니 담아둡니다,,
전 이런 책 좋아요,,,후에 가슴 훈훈해져서,,눈물 한방울,,그런 책이요...
어른이 되어서, 엄마가 되어서,,아이 앞에서,,부족한 모습 보여야할 때가 정말 많은거 같애요,,,그런 부담을 덜어야,,부모와 자식으로서만이 아닌 어떤 인간관계로서 바람직하게 관계가 자리를 잡겠지요....

물만두 2006-11-1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감사합니다^^ 마지막은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리^^;;;

플레져 2006-11-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마지막에 울었으면 좋겠는데요? ^^
별 네개라... 흠... 유혹적입니다. 세 개면 패스할라고 했는데 ㅎㅎ

물만두 2006-11-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저 아심서~ 제가 별 세개준게 별로 없다지요^^:;;
 
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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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벨상을 탄 작가의 작품은 안 읽는 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도 <나의 나무 아래서>인가 하는 작품 한편밖에 읽은 것이 없다. 그 작품도 읽으려고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어쩌다 이 작품을 읽게 되었을까?


그것은 작품 속에서 처음 시작되고 작품의 큰 흐름이 되는 저자의 처남의 자살 사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영화감독이라는 위치에 나이가 예순이 넘은 남자가 단순히 스캔들 때문에 억울하다고 자살을 선택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궁금했다. 나는 그 미스터리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처남이기 이전에 오랜 동안 함께 했던 친구이기도 한 고로의 자살 이후 유명한 작가인 고기토는 매스컴에 시달리다 못해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 암묵적 폭력 같은 매스컴 앞에 또 한 번 마주하게 된다. 베를린으로 쿼런틴하게 된 이유는 고로가 유언처럼 남긴 테이프를 고기토가 듣는 것을 부인 치카시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저쪽, 바깥 세계 너머로 간 친구와 소통하는 유일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고기토는 어쩔 수 없이 봉인해두었던 소년 시절의 기억을 풀어 놓으려 한다. 그것은 그가 열일곱, 고로가 열여덟에 겪었던 일이다. 또 한 치카시가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것으로 인해 변했고 치카시는 그것으로 인해 고로가 체인지링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갑작스런 화자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고기토와 고로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짐작하게만 한다. 폭력적이었을 거라는. 그들의 인생이 폭력에 휘둘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폭력의 시작점이었을 거라는 점만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식은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곳에서 살게 하고 산자는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아가자고 체인지링을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고로의 ‘그것’을 알 수 없기는 고기토도 마찬가지니 치카시가 화자가 되든 상관은 없다. 그렇다면 이 또 다른 화자 체인지링은 고로에 대한 고기토의 마침표 없는 회상에 치카시가 찍는 마침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기토가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 속에서도 그에게 체인지링을 이야기해주던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으니 체인지링이란 어쩌면 여성의 전유물이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가슴 속에 묻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누구나 변화를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치카시에 대한 고로의 마음이다. 첫 아들을 낳을 때 아름다운 오빠를 다시 낳을 거라 생각하고 또 다시 다른 여자에게 고로심기를 결심한 누이동생의 마음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를 향한 어쩔 수 없는 마음 같다. 우상이었다고 해도 좋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희망이다.


언젠가 한 아이가 암에 걸렸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한다. “엄마, 내가 죽으면 다시 나를 낳아줘.”이 작품을 덮으며 그 아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바깥 세계로 갈수밖에 없는 아이의 절실함과 함께 체인지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라도 다시 한 번 못다 한 삶을 살고 싶은 어린 아이의 마음이 이 작품 속의 폭력에 의해 자기 파괴로 맞서고 다시 그 파편 주어 담기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보다 더 와 닿는다.


결국 내가 읽고자했던 미스터리는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그건 미스터리인체로 남겨두어야 할 것인 모양이다. 남편은 부서진 인간을 고치는 일로 완성된 인간 만들기를 하고 아내는 부서진 인간을 체인지링으로 믿고 새로운 탄생으로 또 다른 체인지링을 감행하려 한다. 부부가 같은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도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작품에서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로가 고기토에게 백년에 대한 의미를 고기토의 나이와 고기토의 아들 나이를 합쳐서 말하는 장면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가 합쳐서 백 살이었다. 부자는 합쳐서 백년을 서로를 완성해가며 나아갔다. 이것이 바뀐 아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 체인지링을 꿈꾸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체인지링을 모르는 지도 모르겠다. 무에서 유의 근원적 창조와 유에서 유의 변화의 차이가 체인지링일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는 그 체인지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든 불완전한 우리는 완벽과 체인지링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인생의 목표도 아니다. 다만 살아감 자체가 그런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절망과 희망은 늘 반복되는 일이다. 큰 틀에서 봐도 작은 틀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때론 그것으로 묻어두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담아 온 것을 풀어내는 것도 또 다른 묻어두기의 다름이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나아가는 것도 묻어두기일 뿐이다. 이 작품은 고로 묻기 그 자체였다. 아직 가슴속에서 묻지 못했던 것까지. 하지만 완전히는 여전히 아닐 것이다.


나는 체인지링을 행복에 대한 환상의 대체물로 보고 싶지 않다. 희망의 메시지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의 이어짐이 끝없는 생명의 탄생에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죽음에서 탄생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체인지링이 아니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죽은 고로가 원한 것이 자신에 대한 이런 체인지링이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작가에게 묻고 싶다. 왜 체인지링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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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1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0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점점 리뷰쓰기 힘들어요. 이해력도 떨어지고 말만 많아지고 걱정입니다 ㅜ.ㅜ

똘이맘, 또또맘 2006-11-0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춤볼냐~ 리뷰읽으랴 ~ 숨찬니다. 헥헥 되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만두님 책방에서...

물만두 2006-11-0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또또맘님 쬐쏭함다^^;;;

2006-11-02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11-0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그러면서 또 읽어야 하는 저는 정말 죽겠습니다 ㅡㅡ;;;

sayonara 2006-11-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들 자꾸만 속삭이시는지... ^^;
체인지링은 새로 나온 컬러링인가... 아님 휴대폰이 나오는 스릴러인가 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노벨 문학상 작가들과 친하지 않아서...
그들의 깊이있는 문학성이 오히려 장황함으로 느껴질 정도로 소양이 낮은가 봅니다.
그래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만은 좋더라구요. ^_^

물만두 2006-11-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저도 안친하죠. 뭔가 미스터리스러운건가 싶어 봤어요^^;;; 저는 토니 모리슨은 좋았어요.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며 작가는 왜 이런 소재로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전작들과는 너무 다른 색깔을 보여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냥 쓰인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반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난감한 문제였다.

 

이 책이 픽션이면서도 그다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뭐, 소설을 공감하면서 읽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한 번도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백수 15년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 내용은 내게 그저 소설일 뿐이고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읽는 중간 중간 직장을 다니는 동생에게 이런 사람이 있느냐, 어떠냐, 이런 일은 일어나느냐를 물어보았다.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띠동갑>을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 여자가 아니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든, 나이 어린 여자든 또는 여자든 남자든 모두 잘생기고 호감 가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와 함께 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있으면 어떤가. 무슨 깨달음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한 여름 시원한 꿈이라도 꾸어본다면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처럼 좋게 끝난다면 말이다.

 

<히로>는 세상에 이런 남자가 많으면 좋겠지만 이것도 정말 말 그대로 맞는 사람이어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 맞으면 이것도 문제니까. 맞는 사람과 서로 맞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안 맞는 사람과의 불협화음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다면 말이지만.

 

<걸(GIRL)>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나는 한 번도 걸이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의 발랄함이 무기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그것으로 우대를 받는다거나 해본 적도 없었고 또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좋다. 눈치 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좋아 보인다. 어차피 한번 사는 세상인데 나이에 연연하고 결혼에 연연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면서 산다는 건 무엇보다 피곤한 일이니까. 그리고 우린 모두 마음속에 자신을 풀어 놓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중요한 건 걸(GIRL)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이 하느냐 못하느냐다.

 

<아파트>는 그 안의 여자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수동적인 남자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 초점이 아닌가 싶다. 남자들의 편 가르기가 심한 아직도 남성중심의 회사에서 남자들은 그곳에서도 주눅 들어 살아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가 단순히 가정이라던가 하는 일차원적인 문제에 한정된 것은 아니겠지만 산다는 건 모두 그렇게 몸부림치는 것이라는 것, 명품 하나에 안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에 안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씩 서로 이해하라고 사이를 좁혀주는 작가의 모습에서 언뜻 이라부가 보인다.

 

<워킹맘>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동정은 사양하지만 현실은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약간 기대는 것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기댈 수 있는 품을 만들어주는 그 사회가 부럽다. 우린 아마 이런 모습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이 작품이 가장 부러웠다.

 

생활은 생각과 다를 것이다. 소설은 현실과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드라마 작가가 이런 비현실적인 내용이 어디 있냐고 시청자가 항의하니까 내 주변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라고 했다는 생각이 났다. 이런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많으니 이런 사람들도 분면 존재하겠지. 어쩜 많은 여자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지막은 언제나 타협하고 화해하고 회복하고 좋게 악수하고 끝낸다.

 

작가는 그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름 이해하고 측은지심으로 산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  저기서 그런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것이 마치 자신이 이라부인 것처럼 쓴 것 같기도 하다. 언뜻언뜻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그 여자들 안에서 남자들도 보인다. 모두가 안쓰러운 존재인 것을... 그저 한 세상 좋게 살면 되는 것이고 이 여자들은 알아서 잘 살겠지. 나는 내 삶이나 잘 살아보자.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역시 이 작가 사람 마음의 병을 고칠 줄 아는 이라부 같은 작가다.

 

우울하고 생활이 심드렁한 사람들에게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보라고 권해야겠다. 어떤 작품이든 어떻게든 일단 우울함은 날려준다. 이 작가만의 대단한 매력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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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6-10-3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은 4개시군요ㅎㅎ

물만두 2006-10-3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 제 별 세개는 다른 분 별 1개 정도의 가치라고나 할까요^^ㅋㅋ

똘이맘, 또또맘 2006-10-3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함을 날려주는 책이라~ 한번 읽어봐야 겠군요. 우울하진 않지만, 기분 좋아지는 책이 좋잖아요 ^^. 님 좋은 하루 되세요.

물만두 2006-10-3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또또맘님 네,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노아 2006-10-3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리뷰가 더 좋아요^^

물만두 2006-10-30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무슨 말씀을요^^:;;

씩씩하니 2006-10-3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킹맘에서,,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한번 보구 싶은걸요...
워킹하다보면 원체 여자의 적이 여자였던 적이 많아서리...
혹자는 여자들의 그런 마음이..남자들이 만들어낸 편견의 함정으로 여자들이 빠져든거다라고 하드라구요.....ㅎㅎㅎ
근대..일단 우울함을 날려준다는 점에서,,,별 4개를 주신거 아닐까요?
전 우울해지는 책은 딱 질색이거든요,,ㅋㅋㅋ

물만두 2006-10-3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말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한다면 누구든 적이 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작가가 썼더라는 얘기죠^^ㅋㅋ

동그라미 2006-10-3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잘지내고 계시지요? 님 덕분에 재미있는 추리를 많이보게 되어 좋아요. 리뷰 좋으네요 행복하세요

카페인중독 2006-10-3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남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또 내 자신까지 있는그대로 보며 다르든 같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될텐데...그죠? ^^

물만두 2006-10-3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그라미님 오랜만입니다^^ 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카페인중독님 그게 참 쉽지 않아요^^;;;

거친아이 2006-10-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만두님의 공감 리뷰를 보니까, 더 보고 싶소~^^

물만두 2006-10-30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공감보다는 재미있더군요^^

2006-10-30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10-3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리뷰 읽으니 글씨체가 달라졌어요!!
언제적 야그냐고 반문한다면..거,,,,거시기 말에요
한 번 봐줘요. 요새 나 겁나게 바뻤고, 힘들어서 입술에 물집까지 생겼다우
어멋, 왜 엄살?
몰라요. 그래도 오쿠다 히데오 기억하고 갑니다. 숭숭~

물만두 2006-10-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성님 그게 제 글씨가 읽기 어렵다고 하셔서 바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