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덮고 나서 이 책을 과연 이렇게 빨리 읽어도 될까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감상을 써도 될까도 생각했다. 그녀의 발자국에서는 잉크 맛이 났고 그녀가 사라진 뒤에 잉크는 투명해졌다. 하지만 그 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여자는 왜 책으로 스며들어와 페이지를 넘기고 다니는 길목마다 나타나 거구의 몸을 쩔뚝거리며 잔향을 남겼던 것일까. 아니 그 여자는 왜 프라하 거리를 돌아다닌 것이고 이제 사라져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지금 이 땅에도 그 여자가 다니고 있음을 느꼈다. 같은 여자일 것이다. 가장 낮고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스럽고 비참했던 누군가의 눈물을 옷자락마다 담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땅이 또 어디 있으랴.


이 땅에도 그녀는 있다. 유태인 거리에서 빵 한 덩어리를 끼고 오던 길에 나치의 총에 맞아 죽은 작가의 숨결을 느끼게 하듯이 팔레스타인 거리에서 내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외치다 이스라엘군의 총알에 아들을 감싸고 죽은 이의 눈물과 한도 거둬야 하고 이라크에도, 미국에도 그 어디에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머물 곳은 하나의 책 속의 페이지가 아니듯 그녀는 그 누구만의 것도 아니고 그 어떤 한 곳에만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억이 살아있는 한, 우리의 기억이 망각이란 이름으로 사라지는 한 그녀는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나타날 것이며 거리를 돌아다닐 것이다. 못 보는 자들에게는 결코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 연민의 프리즘은 모든 곳, 모든 삶, 모든 살 속을 들여다 보고 파내고 긁어 모은다. 그리고 다시 보여준다.

 

그리고 신이 쌓은 담이 견고할수록 아니 인간이 그 담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수록 그녀의 몸은 더욱 거대해질 것이다. 거두는 이 없는 눈물과 남루한 삶의 조각조각이 살이 타는 냄새를 옷자락에 품어야 하므로.


‘나 여기 있습니다.’라고 외치기보다는 ‘잊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그녀를 만나면 그녀의 옷자락을 무겁게 하는 이들의 존재를 또 다른 이가 품을 수 있기를, 그래서 그녀의 몸이 더는 자라지 않고 그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싶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고 나 또한 그 옷자락 속으로 언젠가는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 아는 이들을 그 옷자락 속에서 보게 되리라는 상념에 이 서울 한복판에서 목 놓아 울고 싶어졌다.


그녀는 어쩌면 이 도시 어딘가에서 걸어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욱 쩔뚝거리며 더욱 남루해진 모습으로... 그녀가 이 도시를 품에 안고 잠시만이라도 얼러줄 수 있을까. 잠시만이라도 이 비루한 인생들을 위해서... 그래주기를...

 

언젠가 다시 한 번 꼭 한자 한자, 그녀의 잉크 냄새를 킁킁거리며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다. 아직 나는 작가가 말하는 의도도, 그 여자의 정체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지 못한다고 해서 울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 내 글도 사라짐을 당할 테니 말이다.

 

78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이 문장으로 졸필의 마지막을 대신하고자 한다. 나 역시 언제나 피라미드를 생각할때 파라오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피라미드를 만드느라 힘들어 죽어간 많은 무명씨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역사의 몸은 깊은 바다 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어서 그 터진 살 속에 수없이 많은 조가비, 해초, 산호, 그리고 온갖 바다 속 꽃들이 박힌 익사자의 몸과도 같다. 그래서 그 살이 더 많이 터지면 터질수록 더 많은 조가비들과 조개 껍데기 꽃들과 응고된 눈물과 피가 번식하는 것이다. 그 살이 더 많이 부대끼고 훼손당하면 당할수록 그 상처들에는 무수한 눈들과 입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주인들과 강자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역사를 만드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역사를 견디고 역사에 희생된 모든 약자들, 무명의 모든 하층민들, 익사자들이 죽어가듯이 지상의 거처를, 지상의 아름다움을, 하늘과 빛과 바람의 공간을 동시에 다 빼앗긴 채 그 역사로 인하여 죽은 자들이니까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ng 2006-05-1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이 책을 담은지 여러날이 지났어요
이제 주문하기...를 누르라고 만두님이 재촉하시는군요 ^^

물만두 2006-05-1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저는 어려웠지만 님은 더 잘 읽으시고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플레져 2006-05-1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만두님 리뷰, 너무 좋아요. 78쪽 문장들은... 아프네요.
욕심나는 책이지만 일단 갖고 있는 거라도 다 읽어야 하기에 보관함으로. 흑.

물만두 2006-05-17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서 좋았는데 제 수준에 너무 고차원적이었답니다 ㅠ.ㅠ;;;
 
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이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책장을 열자 한 남자가 나사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가정교사의 일기, 수기처럼 쓰인 책이 펼쳐져서 액자 소설이라 생각했다.


한 가정교사가 남매가 있는 집에 취직을 하게 된다. 부모를 잃고 삼촌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은 하지만 삼촌은 돈만 대며 떨어져 살고 시골에서 가정부와 하인들과 가정교사와 함께 사는 방식으로 길들여졌다. 가정교사가 들어오고 나서 남매의 오빠인 아이가 기숙학교에서 퇴학당해 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정교사는 그 집에서 두 명의 유령을 목격하게 되고 그 유령들이 사악하다는 걸 파악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아이들을 그들로부터 지키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그녀와 가정부는 손을 잡고 유령에게서 아이들을 떼어내려 하지만 아이들의 완강한 저항과 당돌한 행동에 당황하게 된다.


이 작품이 솔직히 무서운 유령이 등장하는 호러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마지막 갑자기 막을 내리듯 끝나는 점도 이상하고 정작 어떤 진전도, 가정교사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는 마치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 끊임없이 다음 장을 펼치게 만든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가정교사는 진짜 유령을 본 것일까? 아님 가정교사의 환상이 만들어낸 것일까? 무엇보다 이 작품이 기묘한 것은 아이들이 너무도 착하게 그려지는 동시에 암묵적으로 유령과 소통하는 기묘함을 풍겨 더욱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점은 가정교사의 관점에서만 서술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발생한다. 자극이 있다면 가정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일 뿐이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다. 진짜, 가짜를 판명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가정교사와 아이들 간에 그 어떤 소통도 없다는 점이다. 가정교사와 아이들은 대화하지 않는다. 그런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찌 보면 이 작품의 핵심일지 모른다. 가장 긴밀해야 할 사이로 부모를 잃고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엄마 같아야 할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 보여 지는 모습은 마치 <레베카>에서 가정부가 아무것도 모른 체 집의 안주인이 된 어린 마님을 좌지우지하려는 그런 모습과 흡사하다.


이것이 내가 본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이었다. 전혀 무섭지 않으면서 더 이상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작품. 사실 유령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산길에서 만났을 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공포는 이런 공포가 아닐까 싶다. 가정교사와 아이들의 물과 기름 같은 관계에서 빚어지는 공포. 언제나 맑고 천진한 모습으로만 보여 지는 아이들의 그림자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가정교사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공포.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보여 질 뿐이다. 보이는 게 아니라 보여 진다고 보여준다. 가정교사, 가정부, 아이들, 실체 없이 단 한번 등장하는 고용주인 삼촌까지. 그러니 처음에 남자가 책 한 권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보여 지고 보여주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단지 우리 몫이며 공포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듯!


작가의 기교에 탄복할 뿐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상만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기발함이 시대 배경과 어우러져 한편의 고딕소설의 백미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참, 고딕소설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이 시대에도 통할 참신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자꾸만 그 가정교사는 검은 드레스를 입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빛나는 아이들의 미소가 사악하게 변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앞에서는 천진하고 뒤돌아 웃을 때는 악의적인... 여름밤에 상상하며 읽으면 딱이다. 조명도 촛불로 하고 말이다. 바람으로 창문이 덜컹대면... 제발 소리는 지르지 말기를. 소리 지르면 당신만 더 무서워질지 모른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06-05-1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무서워요~~~아무것도 안 보여주면서 상상 속에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다니...
에그..나같이 겁많은 사람은 발발 떨겠지만,
그래서! 추리소설로서는 더 재미있겠네요!

물만두 2006-05-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이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는데 스멀스멀한 기묘함은 있습니다.

Kitty 2006-05-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못읽겠네요 ㅠ_ㅠ 혼자사는데 무서운거 읽으면 죽음입니다 ㅠ_ㅠ

물만두 2006-05-1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 그렇게 무섭다기 보다는 기이하다고 하는게 더 나을 겁니다. 그리고 무서운 거 못보는 제가 밤에 봤다면 괜찮을 겁니다^^:;;

Apple 2006-05-1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이상해서 공포스럽죠~ 사실 귀신얘기는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등장인물들이 너무 수상해서 무서웠다는...
보고나서 한동안 정신이 멍했던 기분이 들었던 책이예요.

물만두 2006-05-1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플님 제 얘기가 바로 그겁니다^^

물만두 2006-05-11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나그네 2006-07-2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는 아직 못읽었고 오늘 교육방송에서하는 드라마는 보았습니다.
참 이해하기힘든 작품인데 분위기나 이야기흐름은 영화 디 아더스가 연상되더군요
그리고 그전의 영화 뒤돌아보지마라나 호주영화 행인록에서의 소풍에 이작품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게 느껴집니다.
또 레베카의작가도 이작품에서 많은 영향을받은거같고 선배격인 제인에어와도 분위기가 닮은듯하네요
하긴 외떨어진 교회의 대저택과 음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국문학의 중요한 모티브이긴하지만요
어찌되었든 책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드라마상으로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어서 책을읽으면 이해하기가 조금 낫겠죠?

물만두 2006-07-2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그네님 책을 봐도 이해하긴 조금 힘든데 나름 그냥 독자들이 각자 해석하는게 낫지 싶어요. 따지면 머리 아프고요. 그래도 저도 읽으면서 레베카 연상했는데... 녹화 잘했나 점검해야겠어요^^ 저는 녹화해서 볼 생각이었거든요^^
 
스킵 -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다 읽은 뒤 감히 왜라고 물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왜가 통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라고 묻는 순간 이 작품의 순수함과 마리코의 삶에 대한 열정은 빛이 바래져서 남루해져 버린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왜 라는 내 안의 물음을 던져버렸다.


책을 읽다보면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어땠을까? 잠을 자기 전에 분명 열일곱 살이었는데 깨어나 보니 마흔이 넘은 아줌마에 동갑의 딸에 남편까지 있는 황당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면? 그리고 학교 선생님으로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매 순간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지지 않기 위해 열심일 수 있을까? 과장이라고 하기엔 마리코의 순수함이 너무 맑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한번은 부딪치게 마련인 장애물을 이런 식으로 과감하게 넘어보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이다. 매 시간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안다. 성실히 살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돌아 지난날들을 회상해보면 늘 아쉽고 안타깝고 아깝게 생각되어 다시 한 번 그 시간이 돌아온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되뇐다.


마리코의 머리에 왜란 없다. 그런 생각보다 지금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늘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 어느 순간이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어제를 한탄하지 말고 오늘을 열심히 살라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마리코는 ‘아자’하고 외치는 것 같다. 마리코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고 인정하기 싫지만 숨을 수도 없다. 자기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사라진 이십 오년이라는 세월보다 그녀 앞에 놓인 이십 오년에 충실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마리코말고도 그녀의 딸이면서 동갑으로 어느 날 나타난 엄마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도와주는 미야코도 대단하다. 이제는 사라진 예전의 엄마를 그분이라 부르며 현재 엄마 안의 열일곱 살 동갑내기인 마리코를 이해해준다. 지금 말을 하지 않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많은 이 또래 아이들이 있는 부모와 자식들은 이 책을 같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가 같은 나이라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애써보길. 그럼 아마도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단절은 이해의 부제에서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리코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열일곱 살이라고 하며 자신을 낯선 아저씨처럼 생각하는데도 그는 아내의 마음이 어떻든지 그녀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녀가 자신에게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한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서로에게 이런 존재여야 한다. 이런 존재만이 가족이라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이다. 낯선 감정보다는 우리에게 이런 것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순수함을 만들어내는 열정이, 삶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나누는 깊이가.

 

'어제라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라는 시간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게는 지금이 존재한다.' 이것이 마리코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던진 말이다.


이제 책을 덮고 생각한다. 내 안에 마리코를 끌어내자고. 내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강인하며 순수하고 맑은 마리코가. 내가 잊고 살았던 그녀가 지금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찾아 나서야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마다에게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마리코를 찾는 일이 아닐까 싶다. Skip! Skip! Skip! 가볍게 뛰면서 나아가보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레져 2006-05-0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리뷰는 skip 할 수 없어 꼼꼼이 읽었습니다 ^^
보관함에 일단 직행.
제게도 이런 마리코가 필요해요, 지금...흑.

mong 2006-05-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읽어야 할것 같아요 ;;;

물만두 2006-05-0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안 읽으심 후회하실겁니다^^
몽님 읽어보세요^^

BRINY 2006-05-2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언제 Kitamura Kaoru의 SKIP이 다 번역되어 나왔드랬죠? 이거 3부작 무지 좋아하는데~

물만두 2006-05-2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이제 보시다니요~^^
 
목 매달린 여우의 숲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종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작품을 처음 접할 때 자연적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표지와 제목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작품은 왜? 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읽게 했다. 왜 제목이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일까?


그건 단순하게 숲 속에 자리를 잡게 된 범죄 동업자를 피해 도망 온 금괴 도둑과 모의 전쟁 훈련 도중 우연히 그 도둑을 본 술 주정뱅이 소령이 무급 휴직을 하고 그를 찾아와서 숲속의 오두막에서 동거를 하게 되고 그곳에 다시 양로원으로 데려가려던 사회복지사에게서 도망을 친 사미족 노파가 오면서 그 숲에서 여우가 많으니 덫을 놓아 잡으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들은 숲에 여우를 잡을 덫을 놓고 그 숲을 <목 매달린 여우의 숲>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도둑이 가지고 온 금괴로 생활을 한다.


이 작품의 아이러니한 유머는 도둑이 공범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자 금괴를 나눠주기 싫어 마치 자기는 정당하게 금괴를 가질 만한 사람이고 그들은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대목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술주정뱅이 소령이 막무가내 모의 전투를 순식간에 승리로 장식하는 장면 또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사미족 노파에게 아흔살 생일 축하를 빙자해서 온 사람들은 웃음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미족이라 부르지만 라프족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나라 백과사전에도 사미족은 없지만 라프족은 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자신들의 종족 이름조차도 남들이 부여한 데로 불려야 하는 처지가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는 수많은 소수 종족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팠다.


하지만 할머니는 대번에 오두막에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내는 일상을 담담하게 보낸다. 그것이 평범한 일상이라면 말이지만. 심각한 것이 너무 없이 쉽게 풀려서 오히려 심각하게 보여 지는 작품이다. 과연 이 작품을 재미만으로 볼 수 있을지. 내 눈에는 산다는 건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게 되면 자연적으로 술술 풀리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져 씁쓸했다.


파실리나식 유머는 그 덫에 하필이면 독일어로 쓴 ‘만일 당신이 사람이라면 이 덫을 조심하십시오. 매우 위험합니다.라고 쓴 것과 그 덫에 예견한 것처럼 마지막에 독일들만 걸랴들었다는 것에서 절정을 달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아직도 유럽인들의 독일인들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일본인을 생각할 때 느끼는 것만큼 깊다는 것을 말하는 듯 느껴졌다. 총리가 무릎을 꿇었음에도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그들의 모습에서 이 책이 일본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면 일본인들은 무엇을 느낄지가 궁금하다.

 

또한 오백마르크를 물고 가서 이름이 오백마르크가 된 어린 여우가 어미가 되어 새끼를 열마리 낳았다며 이제 오천마르크가 되었으니 숲을 보존하는데 이보다 더 유익하고 남는 장사가 어디있냐는 말은 그야말로 기발하기까지 하다. 그 어떤 구호보다 좋았는데 그럼 왜 벌목으로 숲을 망치는 것은 안되고 여우를 덫으로 잡는 건 허용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일종의 자연의 매카니즘이다. 사슴이 너무 많으면 일정량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범죄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정하게 감옥에 보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슴에게도 오백마르크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주인공이 아니니 안된 일이다. 뭐, 사는게 그런건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싶다.


우리에게는 핀란드는 아주 먼 나라다. 그래서 그들 식 유머는 낯설다. 하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 내보이는 작가의 글 속에서 비범한 단면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뭐, 이런 삶도 있어도 상관없겠지... 세상에 똑같은 삶이 꼭 필요한 건, 똑같은 가치관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계속 주목해보고 싶다. 다음에 출간될 작품이 <독을 끓이는 여자>라는 또 입맛 당기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노동절이다. 노동이라는 말이 이상하다고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쉬는 날이다. 그들은 왜 노동을 할까? 왜 우리는 일을 할까? 그것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싶어서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것이 내 집 마련이다. 내 집... 이제는 시절이 하수상하여 평생을 일해도 어느 곳에서는 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는 꿈... 우리는 이렇게 살지는 않았다. 예전에 우리는 작은 집에, 비가 세는 단칸방에 살아도 웃으며 꿈을 꾸며 살았다. 내일은 해가 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며 다시 한 번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책에는 저자는 어린 시절의 집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부터 옛 사람들의 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적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그때는 참으로 행복했었다고. 무엇이 행복했을까?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에, 그리워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어른들은 모두 이런 말씀들을 하곤 한다. 그때는 참 좋았다고.


우리 집은 이 책에도 나오지만 하꼬방이었다. 집 두 채를 지은이가 욕심을 부려 한 채로 만들어 방이 열다섯 개였다. 그 집은 여름에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비가 새서 그릇들을 죄다 바쳐 놓아야 했고, 겨울이면 너무 추워 자리끼도 꽁꽁 얼던 집이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는 단 한 번도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잔 적이 없었다. 방방마다도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고 심지어 여름이면 방문을 열고 자기도 했다. 그래도 도둑 한번 안 들었고 장독대며 연탄 광을 공동으로 쓰면서도 다툼 한번 없었다. 내 것 네 것보다는 가져가고 채워 주고 의당 그러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살았다. 그 집에서 이십 이년을 살았는데 그 세월 동안 변한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이 변하니 집도 변하는 것이었다. 그 작은 방에 살면서도 아끼고 모아서 내 집 마련해서 나가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열심히 사는 것보다 머리 굴려 한탕 하려는 사람들, 일 안하고 편히 살려는 사람들이 모이니 분열이 일어나고 싸움이 잦아졌다.


세월이 변하는 건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변하니 집이 변하고 그 집에 부여하는 가치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 때는 누구네 집은 부자 집에 아파트 평수가 몇 평이고 자가용은 뭘 몰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생부터 그런 말을 하고 임대 아파트니 민영 아파트니 하며 편을 가르고 한다고 한다. 모두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다.


우린 어른들에게 그런 것을 배우고 자라지 않았는데 왜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게 되었을까? 집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정신이 숨 쉰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정신이 바르지 않은데 그 안에 아무리 좋은 것을 들여놔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집의 크고 작음이라든가 옛것과 새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집에 살든지 그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행복이 없다면 아무리 큰 집에서 부유한 것들을 지니고 살아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의 커다란 집에 고래가 있든, 상어가 있든 간에 그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겠는가. 아무리 작은 단칸방에서라도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형제가 서로 우애 있어 가족이 행복하다면 고대광실이 부러울 것인가 말이다.


우리의 집에서 지금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가치관들. 그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호화 평수의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들어선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지. 저마다 욕심을 조금씩 줄이고 저마다 조금씩 양보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 사회가 구성이 되고 발전되지 않는 한, 그리고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옛집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 우리의 그림자를 한번 보자. 그 그림자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아이 2006-05-0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우리 그림자를 한번 보자"... 내일 아침 출근길에 제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네요.

물만두 2006-05-04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 아우 ^^;;;

스파피필름 2006-05-02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추천 꾹-

치유 2006-05-0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 겠네요..

물만두 2006-05-0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피필름님, 배꽃님 읽어보세요^^

로드무비 2006-05-0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리뷰 좋은데요?
저도 오늘 쓸 건데, 어떻게 풀어나갈까나?
추천!^^

물만두 2006-05-0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로드무비님과 비교되면 으, 속상해요 ㅠ.ㅠ

2006-05-04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