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미스터리가 아니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목이 약간 미스터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을 보기로 했다. 표본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왠지 모르게 섬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표본을 하는 곳에 사이다 공장에서 약지의 살점을 잃어버리고 상경한 한 어린 여인이 취직을 한다. 그곳 주인은 지하의 표본실에서 주로 표본을 한다. 그곳은 본래 여성전용아파트였지만 이제는 나이 든 두 할머니가 살 뿐 나머지 공간은 모두 표본을 보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여인은 취직한 지 얼마 안 돼서 남자에게 까만 구두를 선물 받는다. 하지만 그 구두는 발에 너무 딱 맞아 마치 그녀의 족쇄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녀는 결코 그 구두를 벗을 생각을 못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여인의 불안한 심리가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구두라는 족쇄와 표본이라는 영원한 틀은 일종의 포기를 뜻한다.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불안해하느니 눈을 감고 잡아먹히겠다는 항복의 표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상처를 잊기 위한 수단밖에 안 된다. 그것을 상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어떤 것을 영원히 가둬두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서 잊고 싶을 때도 있고 또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가두기도 한다. 그 가둠은 어떤 것이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치유가 아닌 상처를 더 벌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적당함을 모르는 인간의 마음은 가끔 이런 괴리를 낳는다. 약지의 표본 같은 상처의 제물을.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에 사랑이 있고 영화 같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약한 인간의 포기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인데. 만약 더 나이 많고 세상 경험 많은 성숙한 여인이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 지를 생각해보면 미숙의 표본이라고 하고 싶을 뿐이다.

또 다른 작품 <육각형의 작은 방>은 어른 동화 같은 작품이다.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 풀기라고나 할까 이런 방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이 가엾다는 생각만 든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두면 병이 된다. 그래서 어디엔가 그것을 풀어내야 한다. 그런 방을 찾게 된 한 여인의 이야기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세상이라면 이런 방 하나 있는 것도 괜찮겠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들어주는 이 없는 방에서 혼자 모노드라마 한편을 찍고 나온다 한들 그것이 진짜 상처의 치유 방법일까? 그것보다는 말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 노력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점점 고립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 개운치 않다. 아무리 잘 표현했다 해도 말이다.

 

상처의 치유가 아닌 덧나게 하는 두 작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室)과 방(房) 사이에 상처만이 부유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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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의 알약
슈테피 폰 볼프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은 픽션이다. 역사는 소설로 재해석된다. 그러므로 역사도 픽션일 수 있다. 꼭 역사를 정설로 쓰거나 교육적으로 쓰거나 그럴 이유는 없다. 역사를 내 맘대로 섞어서 한 곳에 모아 비빔밥처럼 버무려 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작가가 그러고 싶다는데, 그리고 그것이 기발하고 재미있다면 상관없다.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피임약을 개발한 릴리안은 그로 인해 마녀로 몰려 함께 만든 여인과 그 피임약을 먹은 친구와 도망을 가게 되는데 어릴 적 친구인 형리와 성의 광대, 시식시종이 그들을 도와준다. 거기다 그들이 다니는 곳마다 사람들이 늘어 백작의 부인이 따라오지를 않나, 페스트에 걸리자 페니실린이 등장하지를 않나 루터와 로빈 훗, 영국의 앤 왕비와 거기에 보티첼리와 모비 딕까지 등장하는 점입가경의 사건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다니 참 놀랍기까지 하다.

16세기 마녀라고만 소리치면 죽일 수 있었던 시대였고 아이는 생기는 데로 나아야 했고 백성이 결혼을 하면 그 마을을 다스리는 백작이 초야권을 주장했던 시대니 그 시대 누군가는 릴리안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다 죽은 여인도 많았을 것이고 그래도 아이를 낳아야 했던 이유는 노동력의 착취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높은 성의 부자와 성직자는 잘 먹고 사치스럽게 살았을 테고 그것이 쌓이고 싸여 그 뒤 세상은 달라지지만 아직까지 그때나 지금이나 딱히 더 나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마녀사냥은 또 다른 이름으로 계속 되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여전히 심하고 피임약이야 있지만 그래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이 이야기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블랙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지금도 존재하는 수많은 릴리안들은 그래도 여전히 릴리안처럼 행동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피임약만이 문제가 아니니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할밖에 할 말이 없다. 릴리안이 선사한 여행과 웃음이 책을 덮은 뒤에는 별로 즐겁지 않다. 고래나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님 또 고래를 찾아 완행열차타고 동해 바다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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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7-07-0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보니 재미있겠는데요. 읽을 책 또 하나 추가!!

물만두 2007-07-08 11:37   좋아요 0 | URL
폭소만발인 건 확실합니다^^

다락방 2007-07-0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거 잼나겠는데요. 간만에 보관함으로 이동 :)

물만두 2007-07-08 14:08   좋아요 0 | URL
뒤죽박죽 코믹 역사 환타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chika 2007-07-0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깐요... 만두언냐 리뷰나 페이퍼나... 읽기가 싫다니깐요! 책값만 나가게 하고오~ ㅠ.ㅠ

물만두 2007-07-08 22: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내 서재 발도장을 안찍는건 아니겠쥐~^^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가 돌아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라부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된 것 같다. 하긴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가는 환자가 있다면 그 환자가 주인공이지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환자가 없다면 그가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했다는 듯 작가는 이제야 이라부를 약간 떨어져서 있게 하고 환자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색다르긴 하지만 재미는 반감되었다. 그리고 감동도 별로다.

 

<구단주>는 한 거대 신문사 회장이자 유명 야구 구단의 구단주가 겪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 젊은 사람도 그렇지만 아무 것도 없는 폐허의 땅에 이루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오늘날 번듯하게 이루어낸 분들이라면 쉽게 물러나서 나보다 더 잘할 인재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물러나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 옛날처럼 폐허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룬 사람은 이룬 업적에, 가진 사람은 지닌 것의 무게에 눌리게 마련이고 그것에 묶여 절대 한번 올라간 곳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내려오기 힘든 법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매일 보고 듣고 한다. 정치인들이 한번 잡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할 때, 경제인이 제 멋대로 주식차익을 얻거나 심지어는 학계 인사들이 논문조차 위조한 것이 들통 났을 때 그들은 그것이 모두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더 큰 뜻이 있어서인 냥,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 원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건만. 이라부가 사회에 일침을 놓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라부란 인물도 아버지의 든든한 후광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인물이니까. 그러니 좀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지점에서 제 발로 내려오는 모습 좀 보여주기를. 꼭 너무 높이 올라가서 추락하고 그때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려주는 대도 바보도 아니면서 코피 터지고야 사라지니 차라리 이라부는 귀여운 바보로나 보이지 바보가 바보가 아니라고 화를 내면 그것처럼 추한 것이 없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

 

<안퐁맨>은 딱 보는 순간 라이브도어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빨리빨리 후유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잘하면 청년 알츠하이머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잖아도 나이 들면 받아쓰기 실력 줄어드는데 그거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비합리적이니 얼마 살다 죽을 건가? 뭐든지 적당하지 않으면 화를 부르게 되어 있다. 합리적인 것이나 논리적인 것이 무조건 좋다는 건 좋다는 것일 뿐 옳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좋은 건 자기만 좋은 거지 남도 좋은 건 아니고. 그런데 작가는 라이브도어가 이기길 바란 모양이다. 사실 나도 라이브도어가 이기길 바랐다. 공룡과 도마뱀이 싸우면 도마뱀을 응원하는 게 당연하게 보여서... 그건 변화를 바라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인자가 있어 끊임없이 전진을 외치게 하는 거 아닌가도 싶다. 변화는 당연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하자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카리스마 직업>은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난리인 동안 열풍이 소재다. 그런데 적당히 어려보이는 건 괜찮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 나이 든 분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도 없다거나 흰머리 없이 까만 머린데 얼굴은 주름살이 가득하다거나 보여 지는 곳은 젊어 보이는데 우연히 보게 된 숨겨진 곳은 나이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뭐, 그렇게 살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으로 산다는 게 사는 건지 자신들도 아마 회의가 들 것이다. 그래도 성형은 점점 필수가 되어가고 있으니 거기에 운동 중독에 식이장애까지... 현대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질병이 우울증이 될 거라는 말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얘기 보는 것도 우울하다.

 

<면장 선거>는 작은 섬에서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결국 모든 건 가진 자에게서 나온다. 없는 자는 약게 굴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곧 대통령 선거다. 설마 정치인에게 아직까지 도덕심이나 공명정대, 청빈 같은 허황된 것을 바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치 안한다. 이 작품을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경로당 노인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누가 되었든 우리 마을, 우리 사회, 우리 국가가 잘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된다. 그 자리에 누가 올라 피 튀기게 싸우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가위바위보만도 못한 선거판인데... 하지만 읽고 나니 아주 찝찝하다.

 

변한 이라부가 등장한 내용이 사실 마음에 썩 드는 건 아니다. 결국 신경정신과라는 곳도 있는 사람 드나드는 곳이었고 전편만한 속편 영화 없다는 말처럼 <공중그네>나 <인더풀>보다 못한 내용이었다. 재미 면에서도 말하고자 작가가 선택한 소재면에서도 그렇고. 그냥 이라부 한 번 더 만났음에 만족할 그런 작품이었다. 이제 이라부는 그만 나오는 게 낫겠다. 더 이상 신선한 매력이 없다. 떠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제 이라부는 그만 떠날 때인 것 같다. 작가도 <구단주>에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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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당첨되어 어제 받았거든요. 전 오쿠다 히데오는 이작품이 처음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오히려 나중에 읽는거니 재밌게 읽을 수 있겠죠?

물만두 2007-06-26 10:5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홍수맘 2007-06-2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젠 이라부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까요?

물만두 2007-06-26 10:53   좋아요 0 | URL
저는 작별의 심정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ㅠ.ㅠ

울보 2007-06-2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전 그래도 아마 또 출간되면 다시 살것같아요,왜 그냥 끌림으로,

물만두 2007-06-26 12:28   좋아요 0 | URL
울보님 그게 시리즈를 읽는 독자의 운명입니다. 저두요 ㅜ.ㅜ

jedai2000 2007-06-2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진 전 재미있더군요. <면장선거>편에서는 무지 웃었는데, 그 공무원이 좀 불쌍하기도 하더라구요 ^^

물만두 2007-06-26 12:29   좋아요 0 | URL
저도 웃기는 웃었는데 웃고나니 좀 씁쓸한게 뒷맛이 영 개운하지가 않더라구요^^:;;

전호인 2007-06-2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한번 읽어봐야 겠는 데요. 여기에도 하얀 젖가슴을 내놓은 간호사가 나올라나.ㅋㅋ
(마음은 콩밭이라니까...ㅉㅉ)

물만두 2007-06-26 17:16   좋아요 0 | URL
나옵니다. 카리스마가 좀 더 있고 분량도 좀 더 있습니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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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쿄 변두리 마호로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다다라는 남자가 심부름집을 하고 있다. 무엇이든 의뢰를 하면 들어주는 곳이라고 무슨 흥신소 같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말 그대로 잡다한 것들, 애완견 돌봐주기, 정원 가꾸면서 버스 운행횟수를 속이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아이를 학원에서 데려오기, 심지어는 새 남친이 생겨 옛 남친과 헤어지고 싶은 여자에게서 옛 남친 헤어지게 해주기도 한다. 더 이상한 아들인척하고 어머니 문병가기도 한다.

어느 날 다다는 고등학교 동창 교텐을 만난다. 그런데 그 몰골이 심상치 않다. 건강 슬리퍼를 신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니. 갈 곳 없는 교텐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며 다다는 그렇게 말을 시키고 싶어 장난을 치다가 자신이 교텐의 새끼손가락을 다치게 했는데 이렇게 말이 많은 남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고 교텐은 다다가 심부름집을 하는 것을 의아해한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 두 남자는 함께 있으면서 좀 더 과격한 심부름을 맡게 된다.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 상처를 인간은 끊임없이 핥으면서 살아간다. 그것은 후회고 그리움이고 자기 연민이고 자기 학대다. 하지만 희망 없는 인생 또한 없다. 자신이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일뿐이다. 그런 사람도 늘 희망을, 찾아올 행복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산다는 자체가 그런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다와 교텐처럼 또는 루루처럼 산다고 해도 상관없다. 더 근사한 삶도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 어쨌든 내가 발을 들인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누군가는 세상을 쉽게 살고 누군가는 세상을 어렵게 산다. 누군가는 다다처럼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고 누군가는 교텐처럼 더부살이를 하면서도 뻔뻔하게 산다. 그럼 좀 어떤가? 인생은 아직 많이 남았고 봐주고 살 수 있을 때 서로를 봐주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사막을 혼자 건너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혼자 건너겠지만 대부분은 무리지어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어가며 건넌다.

쉽지만 쉬운 얘기는 아니다. 그런 얘기를 쉽고 간단하게 쓰고 있다. 가벼움 속에 무거움을 담아내는 기교가 있다. 그 무거움을 독자에게 맡긴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작가는 책을 독자와 함께 공감하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재미있으면서 인생과 친구, 가족과 이웃에 대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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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6-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메인 페이지에서 눈에 띄어 기억을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리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일단, 님의 리뷰를 보니 합격입니다. ^^.

물만두 2007-06-25 13:19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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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접하는 이사카 코타로의 단편집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러시 라이프>라든가 <사신 치바>도 어떻게 보면 단편들의 모음 같이 여겨져 그렇게 낯설지 않다. 또한 구로사와가 등장하는 작품이 두 작품이나 되다보니 딱히 단편집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색다른 이사카식의 작품을 접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동물원의 엔진>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회상이 물고기라면 과거의 아련함이 오늘 두 어깨에 기댄 두 생명을 지킬 힘이 되었을 게 틀림없다고. 그 과거의 밤중에 동물원에 있던 친구와 선배는 이제 사라지고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때 외로움 속에서 가진 것 아무 것도 없는 한 남자가 그래도 잃지 않았던 한가지만은 간직하고 있었음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물음보다 살아감 자체가 급급한 현대인에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나라면 그렇게 못할 테니까. 세상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해주기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꺼지지 않는 엔진도 있다는 것은 이사카가 늘 말하고자 하는 다양한 삶에 대한 표현이다.

 

<새크리파이스>는 구로사와가 등장하는 단편이다. 직업은 빈집털이고 부업으로 탐정을 하는 구로사와는 악당은 아니지만 자신이 악당임을 자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매력적인 작은 악당이라고나 할까. 그가 한 남자를 찾아간 오지 마을에서 전해져 오는 풍습은 한 사람을 동굴에 가두는 기괴한 풍습이다. 으스스한 그 풍습보다 거대한 세계화속에서 그나마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과거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어쨌든 비밀이 있건 말건 간에 중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물고기가 사는 바다라면 그 바다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거대한 고래만이 몇 마리 헤엄치고 있는 바다가 과연 진정한 바다일지, 그런 바다를 우리가 원하고 있는 건지 생각해볼 일이다.

 

<피쉬스토리>는 표제작이자 독특한 전개 방식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영어로 피쉬스토리는 허풍이라는 뜻도 된다고 하는데 허풍 같은 얘기 전개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작가의 이야기가 물고기라면 그 오밀조밀한 참신함 때문에 읽지 않고 넘어갈 독자는 없지 않을까 싶다. 한번 이사카 월드에 빠진 독자라면 말이다.

 

<포테이토칩>도 구로사와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누군가 자살을 한다는 전화를 빈집털이를 하러 간 집에서 들었을 때 어떤 멍청한 빈집털이범이 기린을 타고 가겠다며 자살하려는 여자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마무라는 진짜 한 생명을 그렇게 구한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자식으로 가진 어머니가 불쌍해서. 하지만 이런 아들이 있는 어머니는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속으로 알지 않을까. 어떤 번듯하고 내세울만한 직업을 가졌지만 고약한 성격의 아들보다야 이런 마음을 가진 아들이 더 좋겠다 싶은데 내가 부모가 아니니 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물고기라면 그 물고기가 헤엄칠 만큼 넓은 바다는 전 우주를 합친 것보다 더 클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니까.

 

네 편의 작품이 모두 마음에 든다. 마음에 남는다. 노래의 빈 간주 사이에서 누군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노래보다 뜻있는 노래가 없듯이 어떤 작품을 읽느냐가 아닌 그 작품을 읽고 내가 무엇을 느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 속에서 작가가 무엇을 전하려 했든지 간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읽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가 그저 바닥에서 누워 잠만 자는 노숙자라 할지라도. 내가 이사카 코타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까닭이다. 그것이 단지 작가의 터무니없는 허풍, fish story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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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7-06-1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가 멋져요.
이사카코타로는 읽어보고 싶어요.

물만두 2007-06-17 12:18   좋아요 0 | URL
건우와연우님 감사합니다^^ 읽어보세요. 좋아요~

이매지 2007-06-1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카고타로는 가벼운 듯 하면서도 뭔가 무게감이 있기도 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괜찮은 것 같아요^^

물만두 2007-06-17 15:47   좋아요 0 | URL
러시라이프 연장선에서 보면 좋을 것 같은 작품이라 더 좋네요^^

아영엄마 2007-06-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로사와가 등장하는 단편도 있다구요~. 저는 온다리쿠보다 이사카 코타로가 더 취향에 맞는 것 같아요. ^^

물만두 2007-06-18 10:19   좋아요 0 | URL
저도 이사카 코타로가 더 좋아요^^

302moon 2007-06-1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면서도, 끌리면서도, 계속 외면해왔는데(-_-), 이번 피쉬 스토리로 확실히 잡혀버렸어요. (웃음) 소설, 정말 좋았죠! 어설픈 리뷰를 즉각 쓰게 될 정도였어요. ~

물만두 2007-06-18 10:21   좋아요 0 | URL
이사카 월드에 빠지신거 환영합니다^^

coolcat75 2007-12-03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러시 라이프 읽고 있는데...이미 이사카의 팬이 되버렸어요~~~
이 단편집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물만두 2007-12-03 10:36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근데 이사카의 작품은 많이 읽으면 약간 질리는 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