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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 여섯 명의 작가가 바라본 한국인의 여섯 가지 공포
김다은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부제가 <여섯 명의 작가가 바라본 한국인의 여섯 가지 공포>다. 우리가 평소 느끼는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밀접한 것들 가운데 공포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쓰고자 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내가 원한 공포의 이야기, 밀도 있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실생활에서 이런 것이 더 쉬운 공포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다은의 <마담>이라는 작품은 거짓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다. 젊은 시절 자신의 과거를 속이고 결혼한 여자가 자신이 한때 룸사롱에 다녔다는 걸 남편이 안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과 사생활 노출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고 자신조차 용납할 수 없는 것을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노력의 대가가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공포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예수께서 죄 있는 자 돌로 쳐라 라고 하셨을 때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과 사회구조로 봐서는 자신의 거짓과 위선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돌을 던져 하나의 희생양을 만들고자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단적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공인이라는 이유로 과도하게 들춰내는 행동은 관음증과 더해서 어디선가 우리 내부에서 심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는 병리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박덕규의 <비밀의 방>은 좀 더 세련되게 썼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든 어떤 사회든 인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세 지향적이라는 건 공통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일등만능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스포츠 스타를 응원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도 언제나 금메달에 조명이 맞춰지는 것, 은메달이나 동메달 따기는 쉬운 줄 아는 것처럼 그들의 노력은 무시하는 현상들을 보면 꼭 다른 나라는 안 그런데 우리나라만 이라는 말이 따른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이미 일정 선에 도달했기 때문이고 우린 아직 그 선까지 가고 있는 과정이라 채찍질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의 근본은 따져보지 않은 채 그들만큼 크고 싶고 가지고 싶은 국민 모두의 마음과 정부의 부추김이 오늘의 사태까지 몰고 온 것이다.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올라야 하는 우리의 공포를 왜 우리는 아직도 인식 밖으로 애써 밀어내고 있는 것일까...
박성원의 <긴급피난>은 이 작품에서 내가 바란 공포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운전사고로 한 남자에게 구조된 남자, 그런데 남자는 그를 집에 데려가고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아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고립된 거라 생각하며 애써 납득하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남자는 사라지고 그의 앞에 펼쳐진 공포는... 결국 어떤 상황에 쳐하더라도 인간에게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겪을 공포를 생각하는 것이 타인이 겪을 공포를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고 당연하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정말 긴급피난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박철우의 <신라의 달밤>은 아파트에서 자주 일어나는 층간 소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무슨 공포가 되겠냐 싶겠지만 사회 문제가 될 만큼, 그리고 잦은 싸움과 고소, 살인까지 이어질 만큼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작은 소음도 참아내기 힘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경적을 울린 남자를 쏜 남자가 정당방위가 인정된 예도 있다. 너무하다 싶겠지만 그 남자가 판사 집 앞에서 매일 경적을 울렸다고 한다. 내가 내는 소리가 얼마나 심각하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 그 소리는 살인을 부를 수도 있는 위험한 공포 소리임을 명심하고 모두가 조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였다.
김나정의 <우리 모두 천사>는 입양된 아이, 고아원에 있는 아이,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그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입양은 공포일 수도 있다. 모두가 빨강머리 앤처럼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폐쇄적인 혈연과 가족 구성에 대한 맹목적 유대가 어떤 비극적 공포를 낳을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싶다. 천사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천사가 어떤 천사인지 알 수 있는 건 우리 마음에 들어 있다.
이정은의 <먹어 봐>는 한미FTA가 타결된 시점이라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나는 모르지만 조류독감이 한번 발생하면 뉴스에 어떤 것들이 올라오는지는 안다. 그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그 어떤 공포보다 더한 공포일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공포,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는 공포, 나이가 주는 공포,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다시 시작할 나이가 아닌 사람이라면 그것은 치명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다. 국민의 생존권에 대한 보호는 국가에 있는 것 아닌가. 국민의 생존권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와 정부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그 어떤 작품보다 사회성 있고 지금 우리가 읽고 지켜야 하는, 그래서 물리쳐야 하는 공포가 아닌가 생각된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인데 대비책이 없다는 사실이 더 공포다.
내가 생각한 공포 작품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용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6명의 작가가 끄집어낸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포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와 공포의 기원이나 구조의 양상에 대해서는 보여준 것이 없는 것 같다. 내용이 너무 짧았다. 또한 아주 세련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쯤 보고 생각할만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은 든다. 작품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내 안의 잠재하고 있는 공포를 생각해볼 기회가 된 것도. 이 단편들을 읽으며 그런 자신의 내면 속의 공포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