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동생네에 오면서 내가 들고 온 책은 요즘 필요 때문에 들춰보는 책인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이다. 아예 도서관에서 원서까지 대출했는데, 펭귄북 사이즈의 허름한 포켓북이어서 좀 의외였다. 내가 주의해서 읽은 건 4장 '왜 살인자가 되었는가'와 6장 '범죄 유형의 두 얼굴'이다. 시간이 되는 만큼 읽은 내용에 대해서 정리해둘 작정이다.


먼저, '왜 살인자가 되었는가?', 라고 제목이 붙어있지만 원서의 장제목은 'Childhoods of Violence'이다. '폭력에 물든 어린시절'쯤 될까? 살인범들의 유년기가 대개 가정폭력으로 얼룩져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국역본은 이를 효과적으로 의역하고 있다(절제목들 또한 국역본에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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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레슬러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란 물음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지? 바로 고갱의 그림(1897) 제목이기도 하다(그림은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여준다). "고갱의 유명한 작품에 나오는 이 세 가지 큰 질문은 내가 1970년 후반부터 살인범들을 만나보면서 면담 때마다 주제로 삼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들이 살인마가 된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서 살인범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었다."(137쪽)
레슬러는 FBI의 '범죄인 성격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복역중인(번역본엔 '북역 중인'으로 돼 있다. 북역?) 살인범 36명과 만나서 면접조사를 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작성된 결과보고서는 살인범에 관한 연구로는 유례가 없으면서도 가장 방대하고 치밀하며 완성도 높은 연구라고 한다. 그가 살인자들의 성장환경과 성격에 대해 지적하는 대목들은 이런 '데이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이 상식은 이후에 물론 많이 교정됐지만) 대부분의 살인범들은 가난한 결손가정 출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능의 경우에도 "연구 대상이었던 36명중 IQ가 90미만인 사람이 7명 있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정상 범주에 들었으며, 그중 11명은 120이 넘었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 "겉보기에는 정상적일지 몰라도 이 가정들은 사실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연구 대상 중 절반은 직계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었고, 부모가 범죄행위에 연루된 적이 있는 경우도 절반이 넘었다. 가족 중에 술이나 약물을 남용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거의 70퍼센트에 달했다. 게다가 모두 어린시절에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이들 모두가 정신과 전문의들이 '성불능자'라고 부르는, 다른 성인과 교감하며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139쪽)

'다른 성인과 교감하며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때 '성숙한 관계'란 물론 '성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성인과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성불능자(sexually dysfunctional adults)'는 살인자들이 성에 대한 극도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과 연관해서 주의를 요한다.
이어서 다루어지는 건 가정환경이다. 레슬러는 두 단계로 나누는데, 상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여러 연구에 따르면 출생후 6-7세까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른은 어머니이며, 이 시기에 아이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한 살인범들의 경우 어머니와의 관계는 한결같이 차갑고 냉담하며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다."(강조는 나의 것)

흔히 말하는 인격형성기의 '애정겹핍'이 되겠다. 유아기때의 애착관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애정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경우에 아이의 사회적 인격 형성은 치명적인 장애를 수반하게 되며 그 대가는 단지 당사자와 가족에게만 지불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결국 남은 평생 동안 그 결핍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무고한 생명을 여럿 앗아갔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영영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남겼으므로, 사회 역시 고통받게 된 셈이다."(139쪽)

중요한 것은 정서적 학대가 신체적 학대 못지 않게 아이에게 치명적이며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는 때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아이를 방치하지 말라'가 아니겠는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자신의 아들들 네 명을 모두 제 손으로 양육하지 않았으며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는 아예 하인으로 부려먹는다. 그가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그가 한번 죽은 것은 그의 목숨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0-6세 아동의 최대 과제는 사회화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의 적절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라서 살인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어머니가 소홀한 탓이지만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140쪽)





물론 부모가 무관심하더라도 다른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정성껏 돌봐준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카라마조프의 세 형제, 드미트리와 이반, 그리고 알료샤(알렉세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친인척의 도움으로 (비록 알료샤를 제외하곤 아버지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사회적인 인격으로 성장하지는 않은 것도 한 가지 예이다. 하지만, 그런 이차 보호망마저 부재하다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의의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즉 "가족에 대한 아이의 애착은 훗날 아이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인정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살인범들이 자란 가정에서는 부모의 냉담함을 상쇄시켜줄 수도 있는 형제자매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또한 거의 전무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 아이들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 대한 애착을 발전시킬 수도 없는 상태에서 점점 더 외롭고 고독해져갔다."(142쪽)
어머니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은 물론 아버지이다. "잠재적인 살인범들은 8-12세 사이의 시기에 외톨이로 굳어지며, 고립은 그들의 정신적 발달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을 외톨이로 만드는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빈자리다... (물론) 아버지 없이 자란 소년이라고 해도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로 자라나는 이른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로 자란 사람들의 경우 8-12세 사이의 기간이 결정적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바로 이 시기, 다시 말해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오게 될 때가 많다."(14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