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기고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7/12/021162000200712200690024.html). 겸사겸사 어제의 대선을 겨냥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87년 민주항쟁(혹은 87년 체제) 20주년을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인 감회를 적은 것이기도 하다(기사는 주로 무페의 민주주의론에 할애돼 있지만). 서두와 말미에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잠시 인용했는데, 알다시피 80년대 대학가에서(혹은 술자리에서) 자주 불리던 노래이다. 최근에 알게 된 건 이 노래를 당시 김광석씨가 불렀다는 것(짐작엔 노찾사 시절의 김광석이니 '새파란' 가수 김광석이기도 하다). 동영상(http://www.youtube.com/watch?v=YlEUdII-EGk)과 같이 음미해볼 만하다. 그리고 묻어둘 만하다.

 

한겨레21(07. 12. 20) 더 많은 목마름이 필요하다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숨죽여 흐느끼며” 남몰래 적던 이름이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그의 만세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랬던가 싶은 기억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적은 이름이 ‘민주주의’였고 우리가 부르던 만세가 “민주주의여 만세”였다. 그리고 20년, 어느새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묻는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를.

그러자니 먼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물어야겠다. 혹은 한 정치철학자를 따라서 ‘민주주의 혁명’이 무엇인가를. 클로드 르포르에 따르면 민주주의 혁명이란 권력의 자리를 ‘텅 빈 장소’로 만든 사회적 제도의 새로운 기원이다. 이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 우리는 5년에 한 번씩 그 텅 빈 자리에 앉혀놓을 권력의 대행자를 뽑아왔다. 간혹 못해먹겠다고 푸념도 늘어놓는 자리이지만 한꺼번에 열두 명이나 나서서 좀 앉게 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역설의 자리는 어떻게 마련되고 또 유지되는 것인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의 물꼬를 튼 바 있던 샹탈 무페의 이어지는 두 저작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 펴냄)과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펴냄)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와 ‘민주주의의 역설’에 새삼 주목하도록 해준다. 먼저, 그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사회의 특정 분야를 지칭하는 ‘정치’(politics)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 자체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와 함께 생각하고 슈미트에 반대하여 생각하고 슈미트의 비판에 맞서 그의 통찰을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무페가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는 이는 독일의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이다. 그런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적과 친구를 가르는 것이다. 즉,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가를 판별하고 구분하는 것이다. 한데 이것이 어째서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 되는가? 어떤 수준이든 간에 자기 정체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나’와 대립되는 ‘타자’가 먼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려면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불가피하다. 즉, ‘그들’이라는 외부는 ‘우리’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그래서 ‘구성적 외부’라고 부른다). 이때 ‘그들-우리’ 관계는 정치에서 자연스레 ‘적-친구’ 관계로 전화된다. 이 적-친구 관계의 갈등과 적대는 항구적인 것이기에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회적 객관성은 이러한 관계와 조건의 산물이기에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회적 행위자는 자신의 의견과 주장이 갖는 특수성과 한계를 인정할 때 더 ‘민주적’이 될 수 있다. 민주적 사회는 사회적 관계의 완벽한 조화가 실현된 사회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승리’나 ‘행복’은 가능하지 않으며, 그것을 말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기만이다. 민주적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적 행위자도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승인을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권력과 적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서 권력 관계의 실재를 인정하며 그것을 변형해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하는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프로젝트이다(다만 덧붙이자면, 우리의 ‘적’에는 ‘적대적인 적’과 ‘우호적인 적’이 있어서 ‘그들-우리’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만이 아니라 경합적 관계도 형성하며 이를 통해 ‘경합적 다원주의’로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된다). 대선은 그런 민주주의의 경연장이다. 샹탈 무페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협은 적대감이 아니라 합리성과 중립성을 가장한 합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타는 목마름’이고 ‘치 떨리는 노여움’이다.

07. 12. 20.

P.S.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목마름'과 '노여움'의 대상은 어제 패배을 안은 '진보'진영쪽이다. 자칭 87년 민주화의 주역들이자 그 시대정신을 계승한 이들이지만 진정한 계승은 언제나 '배반'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점에는 눈을 감은 채 (최소한) 지난 5년을 보낸 듯하다('배반'하기 위해 '계승'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절망의 골도 열망만큼이나 깊어진 만큼, 적대의 전선 또한 다시 짜여져야겠다. '민주 vs 반민주'의 구도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전선은 복수적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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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2-21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한 어조 속에 숨겨진 열정의 언어를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감사한 글이었습니다. 정의(定義/正義)에 관한 하나의 '지침'으로, 마음 속에 담아갑니다.^^

로쟈 2007-12-21 09:34   좋아요 0 | URL
그냥 '감회' 정도입니다. '지침'까지야.^^;

李潤映 2007-12-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역정을 생각하니 또 감회가 새롭군요. 아마도 이러한 역정속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 타는 목마름이고 치 떨리는 노여움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이면에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인간이 이룩한 사회와 국가의 이면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준 치밀함과 주도 면밀함을 생각을 한다면, 인류의 민주주의에 대한 긴 여정이 보여주는 이중주에 또한 신비로움까지도 느껴진다는 생각입니다.적과 친구의 이중성에 대한 존재적 성찰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가 겪어야 하는 과정은 타는 목마름과 치떨리는 노여움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일 거란 생각도 드는군요.

로쟈 2007-12-22 01:43   좋아요 0 | URL
김지하의 시는 사실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다시 쓴 것인데, 저는 두 시 간의 상호텍스트성과 함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긴장 관계를 묶어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가졌더랬습니다. 실상 기사에서는 그런 뜻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의 역설과 역정에 대한 생각도 나중에 같이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후배가 올해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문혜진 시인의 <검은 표범 여인>(민음사, 2007)을 보여주길래 몇 편 읽다가 요즘은 또 '노골적인' 시들이 유행인가 싶어 관련기사를 검색해봤다(시인의 첫번째 시집은 <질 나쁜 연애>였다!). 마광수의 관능적인지 관념적인지 헷갈리는 시들과는 분명 다른 유형이긴 하다. 한편으론 여성시인이 '섹스'에 대해서 쓸 때 독자-비평가들은 왜 관대해지거나 무장해제되는지 궁금하다(여성의 몸속에 우주와 존재의 비밀이 있다고요? 설마!).

가령 표제작의 서두는 이렇다: "낯선 여행지에서 어깨에 표범 문신을 한 소년을 따라가 하루 종일 뒹굴고 싶어 가장 추운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섹스를 나누다 프러시아의 스켄헤드에게 끌려가 두들겨 맞아도 좋겠어." 단편적인 예이긴 하나 마광수의 시만큼 헷갈린다(더불어 성욕은 진정한 욕망의 알리바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또한 '원초적 관능'과 대한 상투적 판타지는 아닌지. 조금 아찔한 시들도 있다. 가령 '홍어'의 세번재 연: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코는 곤두서고/ 아랫도리가 아릿하다"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를 맡아보지 못해서 이게 실감인지 관념인지 헷갈리지만 여하튼 전철에서 펴놓고 읽지 못할 시집이 한권 더 생긴 건 분명하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조선일보(07. 12. 10) 여성의 몸속에 우주와 존재의 비밀이…

여성의 몸을 통해 우주와 존재의 비밀을 노래하는 여성시인들이 연말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젖을 물린다/ 방심한 짐승의 눈빛으로/ 달콤한 젖내에 겨워 가장 작고 예민한 입술의 애무를 받으며/(중략)/생장점이 극에 달했을 때/ 우주는 스스로를 반복한다/ 순환의 리듬이/ 세상의 경전을 살찌우는 동안/ 몸속 유전자의 기억은/ 피를 흘리며 날고기를 씹는다’(문혜진의 시 ‘야생의 책’ 부분)

최근 제2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문혜진(31)시인은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적 여성시와는 다른 새로운 여성시의 관능적 상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심사위원들(최승호 남진우 서동욱)로부터 받았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를 도발적인 언어로 공격하거나, 여성을 풍요로운 대지의 상징으로 예찬해 온 기존 여성시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 “여성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비근한 일상에서 시가 시작되더라도 곧 까마득한 시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진다”고 평가한 시인·평론가 남진우는 “여성의 육체적 심연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쓰인 시답게 이 시인의 시는 관능적이면서도 문명 저편의 야성의 부름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49편의 수상작들 중에서 ‘내 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그곳에 홍어가 산다// 극렬한 쾌락의 절정/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로 시작하는 시 ‘홍어’도 화제작이다. 홍어를 매개로 한 후각과 미각을 통해 욕망과 죽음에 대한 본능을 선명하게 환기시킨 이 시는 음식과 허기를 연결시키면서 결국 육체성을 지닌 존재의 허무와 비애를 강렬하게 형상화한다.

이미 현대문학상, 육사시문학상을 받은 2000년대의 스타 시인 김선우는 11일 오후 5시 ‘문학의 집 서울’에서 제9회 천상병 시상(詩賞)을 받는다. 수상작은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시집의 제목이 된 시는 벌써 네티즌들의 애송시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대가 밀어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전문)

‘여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성적인 상상력의 내면풍경을 한 단계 승화시킨 진전된 세계가 있다’(심사위원 신경림 박정희 정호승 방민호)는 수상자 선정 이유에 걸맞게 김선우의 시집은 관능적인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감각의 세계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존재의 깊은 울림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노래로 전한다.(박해현 기자)

07.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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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7-12-2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사위원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신경림, 정호승등 김선우 좋아하게 생겼습니다. 이 시인 <도화아래잠들다> 읽어보며 그 도저한 여성적 관념성에 떨떠름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그걸로 이름값 좀 하나 싶습니다. 다루는 소재에 비해 글 다루는 섬세함이나 언어적 감각은 떨어지는 여자 시인정도의 평가. 여담삼아, 이 시인 시들 강조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얼굴모델같은 이 시인얼굴 사진을 멋들어지게 뽑아 붙여놓더군요.요즘은 문인들도 얼굴이나 연출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나 봅니다.
문혜진의 시들은 몇편 읽어보니 김언희 이상의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헌데 '홍어' 저거 남자시인이 썼으면 무슨 뒷담화를 들을지...


로쟈 2007-12-21 10:20   좋아요 0 | URL
"헌데 '홍어' 저거 남자시인이 썼으면 무슨 뒷담화를 들을지"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qualia 2007-12-2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의 암종 조중동을 인용하시다니, 저으기 우려스럽고 실망스럽습니다. 이렇게 조중동 기사를 계속 인용하신다면, 나중엔 조중동 측에서 “인터넷 논객 로쟈” 하는 식으로 기사 써주고, 로쟈 님께서도 급기야는 민족의 암덩어리 조중동에 (자의반 타의반!) 기고까지 하시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있는”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자커니 하면서 인맥/연줄 맺는 것이 아주 전형적인 방식 아닙니까. 조중동에서는 한겨레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원고료를 준다지요. 저들은 지식인을 “매수”해서 그들만의 수구 기득권층으로 끌어들여 자신들의 더러운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데에 아주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공을 들이죠. 그런 매수 공작에 한국의 소위 지식인이란 명찰을 달고 있는 수많은 “위장” 지식인들이 기꺼이 “매명”을 하고, 조중동의 간특한 이데올로기적 음모에 “부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대학교수들, 작가들 따위를 진정한 지식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님께서는 얼마 전에 암종 조선일보 측에서 주관하는 제28회 청룡영화제에 《밀양》의 출품을 거부하셨습니다. “작가 = 지식인”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궁극적으로 인간 최고의 덕목인 “진리, 정의, 양심”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가 아닌가요? 진정으로 고뇌하고 비판하는 존재로서의 참 지식인은, 저 거짓과 왜곡과 위선과 기만과 증오로 일관하는 조중동에 절대로 빌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로쟈 2007-12-22 00:58   좋아요 0 | URL
qualia님의 민족주의는 존경할 만하지만 이 시집에 대한 다른 리뷰를 발견할 수 없네요. 시가 또 뭐 대수냐, 고 하시면 할말은 없지만. 아시다시피 한국사회에서 인적으로 조중동이나 한겨레나 먼 거리에 있는 건 아닙니다(기자들은 그냥 기자죠. 다른 건 사주들이고). 더불어 조중동의 독자나 이명박 지지자들이 다 '민족의 암종'인 것도 아니고 통칭하여 '삼성'이 반민족기업인 것도 아니지요. 이문구 선생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 상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그를 비판했던 독자들도 있었죠. 저는 물론 이창동 감독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이문구 선생보다 더 존경하는 건 아닙니다. 고귀함은 존경받을 만한 것이지만 현실에 뿌리박을 수 있는 건 아니죠. '진정한 지식인'으로 누굴 염두에 두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지식인은 동시에 '오류의 인간'이라는 것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정의상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지식인이 아니란 것도)...

qualia 2007-12-24 07:24   좋아요 0 | URL
[더불어 조중동의 독자나 이명박 지지자들이 다 '민족의 암종'인 것도 아니고 통칭하여 '삼성'이 반민족기업인 것도 아니지요.]

당연한 말, 하나 마나한 말 아닙니까? qualia가 언제 저런 말 했던가요? 저런 말을 시치미 뚝 떼고 지어 넣음으로써, 마치 qualia가 (터무니없이) 조중동의 일반 독자나 일반 지지자들을 모두 '민족의 암종'으로 규정한 것처럼, 이곳을 찾는 독자들한테 부정적으로 각인시키려 하시는군요.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고교생도 수능 논술에서 예문과는 동떨어진 얘기를 저런 식으로 엉뚱하게 갖다 붙이면, 낙방인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한 존재의 진실과 양심을 왜곡하는 “불의”는 참기 힘듭니다.

로쟈 2007-12-24 08:46   좋아요 0 | URL
qualia님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1)조중동은 악이다, (2)따라서 조중동에 빌붙은 것은 '전의, 진리, 양심'에 위배되는 악이다, 아닌가요? 그때 '조중동'의 존재 자체는 무엇이 유지시키는 것인가요? 조중동이 암종이면 그것을 키우는 '숙주'는 무엇인가요? 독자의 문제도 걸려 있다는 건 기본 아닙니까? 게다가 "로쟈님께서도 급기야는 민족의 암덩어리 조중동에 기고까지 하시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비약은 고교 논술 수준에서는 허용되는 것인가요? '부정적인 각인'이란 말을 쓰셨는데, '위장 지식인'들의 '매명'이니 뭐니 하는 게 저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참 지식인은 조중동에 절대로 빌붙을 수는 없다'는 전제가 암시하는 바는 뭔가요? 본인이 무어라고 썼는지 기억나지 않으시면 다시 읽어보기 바랍니다...

2007-12-22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2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필라멘트 2007-12-2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문객들의 인문학적 소양에 보탬을 주려고, 오늘도 편견없이 인문학이나 문학작품에 대한 리뷰를 소개해주는 로쟈님이야말로 더 '민족'적으로 보이는데요. 저는 40억을 기부한 김장훈이야말로 진정한 급진좌파이고, 반대로 노동운동한다면서 챙길 거 다 챙기는 관념적 노동운동가들이야말로 꼴통 보수우파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에 대한 그 순수한 열망이 혹시 현실을 외면한, 민족 이데올로기라는 관념에 갇힌 몽상적 순수함은 아닐런지.. 조중동 독자들이나, 이명박 지지자들이나, 삼성 근무자들을 다 민족 암종의 부역자들이라고 규정하려는 어떤 분의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시회내에서 증오와 분열을 양산하는 일이 아닐런지..

정치란 적대와 우정의 원리에 귀환한다지만 그 적대라는 불가피한 현상도 '이해'라는 프레임안에서라야 정당함을 갖는다고 봅니다. 적대가 증오라는 감정으로 환원되어 표출된다면, 예컨대 프랑스 혁명당시의 군중들의 귀족들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복수의 형태로, 또한 권력자적 입장에서 광주학살이나 유고의 인종청소와 같은 잔인한 대응의 형태로 표출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정치적인 것이죠. 진보든 보수든 서로의 존재가치를 '이해'하는 적대적 관계가 되는 데서 정치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건 단순히 타협하고 적당히 합의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 대선에서 과거 노무현씨를 찍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명박씨를 찍었다는데, 이런 표심의 이동은 민주 vs. 반민주라는 기존의 구도가 폐기되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변화의 징표일 것입니다. 중도실용주의로 이동한 과거 노무현지지자들의 변화를 놓고, 암종의 무리들의 '변심' 정도로 격하되어서는 안되리라 봅니다. 과거 노무현씨를 찍었다가 이번엔 이명박씨를 찍은 저도 그중의 한 사람이구요. 사회여건이나 정치구도도 이제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들뢰즈식의 생성기계로 변해가는 겁니다. 순수함은 잃지 않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그런 민족주의를 꿈꿔볼까 합니다.

로쟈 2007-12-22 15:40   좋아요 0 | URL
'민족적'이란 표현을 남용하시는 거 같습니다.^^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기껏해야 '한국어 공동체'이고, 보다 구체적으론 불가피하게 한국어로 책을 읽어야 하는 '동류들' 정도입니다. 이번 대선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진단들이 제시됐지만, 문제는 유권자(민심)이 아니라 참여정부와 중도/진보진영이었다는 데 모아지는 것 같고 저도 거기에 동감합니다...

qualia 2007-12-24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라멘트 님, 처음 뵙겠습니다. 좀더 좋은 상황/자리에서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필라멘트 님의 글을 읽어보니, 필라멘트 님께서는 (에두루긴 했지만) 저를 은근슬쩍 지칭하면서, 저 qualia가 하지도 않은 말을 그럴 듯하게 날조하고 짜맞춰 간접 비난 (비슷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필라멘트 님의 결정적인 실수이며, 필라멘트 님의 “무의식”에 도사린 악의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필라멘트 님 자신께서 쓰신 날조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런 투의 날조문은 전형적인 “조중동식 왜곡/음해 수법”과 딱 닮아 있습니다.

[조중동 독자들이나, 이명박 지지자들이나, 삼성 근무자들을 다 민족 암종의 부역자들이라고 규정하려는 어떤 분의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시회내에서 증오와 분열을 양산하는 일이 아닐런지..]

qualia가 어디 저런 따위의 날조된 터무니없는 망발을 하던가요? 두 눈 똑바로 뜨시고 qualia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왜 멀쩡한 독자들이나 지지자들이나 근무자들을 끌어들입니까?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필라멘트 님 윗글의 기본 원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 근거없이 저 qualia와 독자/지지자/근무자들을 편가르지 마십시오.

위 인용문은 필라멘트 님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완전한 날조로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필라멘트 님 자신의 생각이고, 사상이고, 가치관이고, 세계관이고, 사고방식이고, 행동기준이고, 유전인자일 뿐입니다.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필라멘트 님 혼자 무슨 말씀을 하시든 참견 안 합니다. 다만, 필라멘트 님의 그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고견을 펼치시는 데에, 앞으로 괜히 애먼 사람 엮어넣지 마시기 바랍니다. 필라멘트 님의 날조와 왜곡 때문에 남의 진실과 양심이 심대하게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필라멘트 2007-12-2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qualia님^^
저는 평소 댓글도 잘 안달고, 논쟁같은 것도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뜻하지 않게 댓글을 달아 님의 심기를 많이 건드렸나 봅니다. 저의 댓글은 엄밀히 말해 님의 글에 대한 비난이라기 보다, 또다른 시각과 견해에 대한 필요를 느껴 올렸던 것입니다. 물론 님의 댓글이 촉발제의 역할을 했지만.

제 댓글 중 "조중동 독자들이나, 이명박 지지자들이나, 삼성근무자들을 다 민족 암종의 부역자들이라 규정하려는 어떤 분의.."란 대목이 님에게 문제가 되신 것 같습니다. 이 대목은 님의 지적대로 제가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제 나름대로 유추한 저의 생각 맞습니다. 님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 아니었길래 그래서 인용부호를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좀 더 세밀히 "내가 유추해보건대.." 라는 말을 미리 덧붙였더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일단, 마치 님의 직접적인 언급처럼 비춰지게 한 이 점, 저의 세밀하지 못한 소치라 인정합니다.^^

다만 qualia님의 댓글을 쭉~ 읽어보면 위의 유추가 전혀 근거없는 건 아니란 생각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제 글에 대한 님의 반박대로라면, 조중동 독자나 이명박 지지자들, 삼성에 근무하며 충성하는 사람들을 조중동과 이명박과 삼성과는 별개로 생각하며 이들을 다 싸잡아 비난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들은 위에 로쟈님도 언급하셨지만 다 수구의 더러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본체에 빌붙어 공생하는 숙주들 아닙니까. 로쟈님이 정치성 글을 스크랩한 것도 아니고 정치와는 무관한, 그냥 시인의 새시집 서평 정도를 옮겨온 걸 가지고 마치 진리를 배신한, 지식인으로서 해선 안되는 행동을 한 것처럼 분노하시는 님의 극단적인 모습을 통해 충분히 가능한 유추인 것입니다.

그 어떤 수구보수 세력과도 연관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님의 그 순수한 열정은 높이 삽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조중동을 반대하고 증오해야만, 이명박을 반대해야만 순수해지고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는 님의 그 순수에는 왠지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수구꼴통신문인 조선일보에서 정치와 무관한 글 조차도 스크랩하지말아야 참지식인일 수 있다는 님의 태도에서 혹 너무 이분법적 사고에 함몰되어있는 분이 아닐까, 저의 오버(?)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조선일보 독자들, 이번에 이명박 찍은 사람들.. 님은 수구세력의 한패거리로 생각 안하시는지요. 정말 별개로 생각하신다면 로쟈님의 시집서평 인용 정도에 분노하시는 님의 단호한 태도와는 뭔가 앞 뒤가 좀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조선일보 안봅니다. 또한 조선일보에 대해서 님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조중동 참 문제 많은 신문들입니다. 조갑제.. 참 갑갑한 수구꼴통이죠. 저는 이번에 이명박을 찍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실망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노무현을 찍었던 저로서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그냥 눈감아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명박을 찍었던 것입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만큼 저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실을 좀 수용한다는 쪽이죠.

아무튼 조중동과, 조중동 독자들을 다 싸잡아 생각하지는 않으신다니 그나마 제가 오해를 한 것 같고 제가 님을 너무 편협하게 생각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댓글들을 통해서 오해들도 조금씩 수정해 나가게 되는 거지요. 아무튼 다음에는 qualia님과 제가 서로 공감하고 일치하는 이슈에서 다시 만나, 좀 더 좋은 분위기를 함께 공유하는 기회를 갖기를 기대해봅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아무쪼록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랍니다.^^
 

낮에 노만 주이슨의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3)를 봤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록 오페라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리스도 최후의 7일간을 연극 형식으로 선보인다." 70년대풍의 음악과 춤, 그리고 헤어스타일 등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내주쯤에 떠올려보려고 했던 개인적인 '예수 읽기' 리스트를 조금 일찍 만들어둔다. 보아하니 아이도 성탄카드를 오늘 사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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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정아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7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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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시나 이 주제에 관하여 가장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책.
예수- 신이 된 인간인가 인간이 된 신인가
드니 프리케르 지음, 최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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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문용으로 가장 적합해 보인다. 분량도 만만하고.
예수의 생애
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최명관 옮김 / 훈복문화사 / 2003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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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르낭은 예수의 이상은 찬양하면서도 그의 신성은 부정했는데, 이 때문에 도스토에프스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르낭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반박이라고도 불린다.
예수 후 예수
제롬 프리외르.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이상용 옮김 / 한언출판사 / 2006년 1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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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도서관에서나 대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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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써 즐찾이 1500명이 되었다. 지난 9월에 1300명 돌파를 '기념'하는 페이퍼를 적은 일이 있으니까 넉 달만이다. 인터넷세상을 뒤져보면 총방문자수가 백만 단위로 나가는 블로그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32만명을 조금 넘어서고 있는 현재의 방문자수나 1500명의 즐찾수가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다만 즐찾수에 비하면 알아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긴 한다.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먹물' 동네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기록해두는 건 이 '서재질'을 하면서 올해 염두에 둔 목표를 채운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리뷰: 84
마이리스트: 45TOP3 
마이페이퍼: 1525TOP1 
즐겨찾기등록: 1500명

물론 연초부터 이런 목표를 가졌던 건 아니고 아마도 여름쯤이나 돼서야 연말까지는 이 정도 수치에 도달하겠구나란 생각을 해본 것 같다(30만과 1500). 하니 올해의 남은 열흘 동안은 서재의 문을 닫아도 좋겠지만, 딱히 갈 데도 없고 해서 하던 일들은 계속 해나갈 것이다(적어놓고 보니 멋쩍은 소리군). 대신에 조촐한 '기념'으로 그냥 페이퍼 하나 정도만 만들어둔다. 오래전에 쓴 시 '개살구나무'를 옮겨놓으면서(그러고 보니 제 철도 아니군)...  

개살구나무

개살구나무는 마침내
삶이 풋풋했습니다

정오의 햇살 하나하나가
개살구나무의 꽃잎에 먼저 닿으려고
길게 목을 빼었습니다.
개살구나무 꽃들 살짝 얼굴 가리고
진땀 빼며 달려오는 햇살 하나하나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겠지요
해서 개살구나무에는
새침한 햇무리가 이사를 온 듯했습니다
초저녁 샛별이 저만치 산보를 나와도
개살구나무 햇무리는 정말
눈치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서른 날이 가고
개살구나무 꽃들은 저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같았습니다
개살구나무 꽃들은 저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우리도 알 건 다 알지요!)
바람만 불어도 호드득
달빛만 고와도 호드득
참 잔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또 서른 날이 가고
아, 이게 무엇일까요?
개살구나무 곳곳에
주렁주렁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빛 좋은 개살구가 말이죠
그리하여 세상은 온통
빛 좋은 개살구들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래 그걸 바라다보는 우리 마음도
풋풋하기 짝이 없었는데요,
혹 우리도 前生에는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여튼 개살구나무는 마침내
삶이 눈부셨습니다
(세상에 무얼 더 바랄 것인지요?)


P.S. '개살구나무'에 관한 자료를 잠시 찾다보니 정민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2006)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고담준론을 일삼는, 세상에 더없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옛사람의 글귀를 훔쳐 짜깁기하여 남의 눈을 속이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는 공부는 죽어도 하려들지 않는다. 고상한 체 우아를 떨지만, 막상 어렵사리 과거에 급제해서 일선 행정을 맡기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공문서 작성도 못하고, 재정업무나 소송 또는 재판을 맡기면 허수아비처럼 앉아 아랫사람의 눈치나 보면서 전례만 따진다. 국방의 엄무는 아예 감당할 엄두조차 못낸다.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다. 잘난 체는 저혼자 다 하지만 쓸 만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헛똑똑이들이다."(313쪽)

고시공부에 뜻을 둔 적이 없으므로 여기서 다산이 비판하는 '빛 좋은 개살구'와 스스로를 동일시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나는 군대에서나 조교시절 '공문서 작성'에 유능했다) 마지막 문장이 좀 걸리긴 한다. "잘난 체는 저혼자 다 하지만 쓸 만한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는 헛똑똑이"이라는 게 어쩐지 귀에 익기 때문이다(물른 대부분 귓전으로 흘려보냈다). 그나마 '훌륭한 사기꾼' 신세라도 면하려면 스스로를 경계하는 수밖에 없겠다. 다산(정민)의 일갈을 조금 더 들어보자.

"하나마나한 허접스런 공부, 쓰나마나한 시답잖은 이야기, 대충 읽어보면 속내가 다 들여다보이는 한심한 글, 이런 것은 시간낭비요 출판공해일 뿐이다.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그 힘으로 남까지 감염시키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공부'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그 힘으로 남까지 감염시키는 공부' 정도는 앞으로도 애써 노력해봐야겠다. 우리도 전생에는 다 빛 좋은 개살구들이었으므로 이번 생에는 딴 욕심부리지 말고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P.S.2. 알라딘 기네스 자료가 올라왔길래 관련항목만 옮겨온다(http://blog.aladin.co.kr/zigi/1768979). 역시나 순위에 오른 건 방문자수와 즐찾수, 그리고 페이퍼수이다.

2. 올 한 해에 방문자 수가 제일 많은 서재 (2007/9/3 ~ 12/9)

- 로쟈님의 로쟈의 저공비행 : 65089
- 마라토너님의 서재 : 60072
- 보슬비님의 하늘을 읽다... : 34553
- 하이드님의 litte miss coffee : 29724
- 물만두님의 만두의 추리 책방 : 28165
- 대전복수동정지윤님의 순리를 따라 바른 길을 가고자... : 25970
- 울보님의 내딸에게 힘이 되어주는 엄마의방 : 25300
- 마노아님의 비우고 채우기 : 25141
- 아프락사스님의 자유를 찾아서 : 24151
- 이매지님의 Baker street 2218 : 22322

11. 가장 많은 마이페이퍼를 쓴 알라디너

- 무화과나무님 : 1287편
- 마노아님 : 1052편
- 샤랄라님 : 793편
- 이매지님 : 762편
- 로쟈님 : 721편
- 아프락사스님 : 689편
- 뽀송이님 : 660편
- santaclausly님 : 616편
- 올리브님 : 526편

16. 올 한 해에 즐겨찾기 많이 된 서재

- 로쟈님의 로쟈의 저공비행 : 578
- 바람구두님의 바람소리 쓸쓸한, 風簫軒 : 219
- 물만두님의 만두의 추리책방 : 189
- 체셔고양2님의 그대도 아직 내가 그리운가요... : 189
- 아프락사스님의 자유를 찾아서 : 188
- 마태우스님의 처음처럼이 있는 서재: 168
- 혜경님의 처녀자리의 책방 : 164
- 나귀님의 나귀: 162
- 하이드님의 little miss coffee : 155
- 딸기님의 텅빈 책꽂이 : 141

25. 가장 많이 즐겨찾기(찜)된 마이페이퍼

- 향기로운님의 페이퍼에서 음악 올리기 : 14
- 세실님의 성인을 위한 상황별 도서목록 : 7
- Apple님의 열대야도 잊을수 있는 멋진 책들. : 6
- Mephistopheles님의 향기로운님... : 6
- 로쟈님의 마르크스와 막스 브라더스 : 6
- 로쟈님의 장한나와 러시아문학 : 6
- 로쟈님의 불교와 파시즘의 기묘한 만남 : 6
- 마냐님의 어떤 남자의 꿈 : 6
- 따우님의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동영상 내 컴퓨터에 저장하는 법 : 6
- 로쟈님의 한나 아렌트의 삶과 세계사랑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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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07-12-1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 새로운 거 배우는 걸 참 좋아하는데, 더욱 힘이 되었습니다.

로쟈 2007-12-19 00:01   좋아요 0 | URL
군자호학이라고 했지요.^^

깐따삐야 2007-12-1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이신 로쟈님. 부탁이 있어요. 쟁여두신 시 많으시죠? 자주자주 올려주세요. 네? ^^

로쟈 2007-12-19 00:48   좋아요 0 | URL
자주 올리고 있는데요.^^;

깐따삐야 2007-12-19 00:55   좋아요 0 | URL
털썩~ 눼.-_- 로쟈님 무셔.

로쟈 2007-12-19 01:13   좋아요 0 | URL
아, '자주자주'에는 못 미치긴 합니다.^^;

소경 2007-12-19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보니 어릴적 남의 집 개살구 나무아래 살구를 노리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 제 버릇 남 못주나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

로쟈 2007-12-19 08:43   좋아요 0 | URL
감사. 다 빛 좋은 개살구이지만.^^

마늘빵 2007-12-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성같이 등장한 로쟈님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한해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로쟈 2007-12-19 20:01   좋아요 0 | URL
이런, 저는 알라딘 '원주민'인데요. '혜성같이'라 하심은??..

마늘빵 2007-12-19 23:03   좋아요 0 | URL
-_-a 앗. 그건 그전엔 있으신지 몰랐는데 올해 어느 순간부터 파바박 눈에 띄셨다는.

로쟈 2007-12-19 23:43   좋아요 0 | URL
제가 작년까지는 너무 '조용히' 지냈었나 봅니다(일설에는 알라딘의 '4대천왕'이었는데).^^
 

'2007 한국문학 지형도'를 살펴보는 기사가 눈에 띄기에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부제대로 '주요문학상 37종 수상자로 분석해 본 2007 한국문학 지형도'이다.

한국일보(07. 12. 19) 10년차 이하 신예작가·장편소설로 중심 이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운영된 문학상 수는 166개다. 올해는 이보다 늘어 18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문학상은 공식 제정 절차가 없어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렵고, 이 중 공신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유수의 문학상들이 누구의 품에 돌아갔는지를 살피는 것은 한국 문단의 지형을 그려보는 데에 여전히 유용하다. 시, 소설 부문의 명망 있는 문학상 37종(통합운영 9종, 시 14종, 소설 14종)을 선별, 올 한 해의 수상 현황을 분석해봤다.

■ 신진작가의 약진
올해는 작년에 비해 등단 10년차 이하, 30대 신진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작년 신진 작가 수상은 소설가 정이현(35)씨의 현대문학상 수상이 유일했다. 올해는 손택수(37) 시인이 이수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잇따라 받은 것을 비롯, 소설가 편혜영 윤성희 박민규, 시인 문혜진 박성우씨가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등단 12년차인 김선우(37) 시인은 육사시문학상 신인상, 천상병시상을 받았고, 1993년 나란히 등단한 30대 소설가 김연수, 김경욱씨도 수상 경력을 늘렸다. 젊은 작가들의 활발한 창작 활동이 문단의 호평을 얻어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40대 이상, 등단 15년차 이상의 중견 및 중진 작가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쉰 살에 등단한 늦깎이 시인 문인수(62)씨는 최다 상금의 시상(詩賞)인 미당문학상을 비롯,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 3관왕에 오르며 물오른 필력을 뽐냈고, 소설가 윤후명, 구효서씨도 각각 2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김광규, 이수익, 김명인 시인의 수상은 60대의 관록을 보여줬고, 김정환(53) 시인은 등단 27년만에 첫 문학상을 받았다.

■ 개성있는 장편 속속 등장
올해 소설 부문 문학상은 공모상을 중심으로 중단편에서 장편으로 대거 무게중심을 옮겼다. 창비는 창비장편소설상을 제정해 첫 수상자를 냈고, 민음사가 주관하는 오늘의작가상은 심사 대상을 장편으로 한정했다. 올해 소설상 상금을 5,000만원으로 올린 대산문학상은 내년부터 장편만 심사하기로 했다. 이런 ‘장편 우대’ 분위기 속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59), 공지영(44)씨는 올들어 부쩍 평단의 관심을 받으면서 각각 장편 <남한산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수상작에 올렸다.

유수 문학상들이 대부분 무난한 수상자 선정을 한데 비해, 장편 공모상에선 화제의 수상자들이 많았다. 수려한 외모로도 관심을 끈 오늘의작가상 수상자 이홍(29)씨는 한 남자와 세 여자의 ‘발칙한’ 연애소설로 칙릿(20, 30대 도시여성 취향의 문학)의 첨단 트렌드를 보여줬고,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서진(32)씨는 영상문법을 과감히 도입한 개성있는 장편을 선보였다. 등단 작가들이 주로 수상했던 문학동네소설상이 “단편 한 번 써본 적 없다”는 주부 김진규(38)씨에게 돌아간 일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됐다.(이훈성기자)


0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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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7-12-1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요' 문학상들만 추려냈는데도 저렇게 상이 많단 말입니까;;; 한국문학 잘 안 팔린다더니 정작 상금은 적지 않아 보이네요.

로쟈 2007-12-19 00:02   좋아요 0 | URL
문학상이 가장 많는 나라는? 이란 퀴즈문제가 있다면, 저는 '한국'을 찍겠습니다...

로쟈 2007-12-19 20:02   좋아요 0 | URL
거긴 동네마다 상이 있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