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써 대략 이번 대선 출마자들이 정해진 듯하다. 후보 통합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현재 출마를 선언하거나 정당 후보로 선출된 이들끼리의 통합일 테니까 더이상의 '변수'는 없어 보인다. 자칭 '키보드 워리어' 한윤형군의 표현을 빌자면 "바야흐로 구렁이들의 전쟁이  도래했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005161917&s_menu=정치). 이번 대선이 지난 97년때보다 덜 흥미를 끄는 것은 경선 구도가 너무 뻔하게 굴러가는 탓이기도 하다. 한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율을 계속 얻는다면 경선의 의미가 무색해질 것은 뻔한 이치이다(물론 최종적으로는 50만표 안팎의 승부가 될 거라고도 하지만). 거꾸로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그 50% 지지율이다. 누가, 왜, 어떻게 그를 지지하는가? 그게 '반盧'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데, 박노자 교수가 그래도 설득력 있는 분석을 해놓았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자영업자들이다. 그리고 '1970년대 신화'이다.

한겨레21(07. 10. 09)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오슬로대학에서 ‘한국 사회·정치’ 수업을 할 때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 중의 하나는 극우적 색채가 강한 보수의 대표자 이명박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근대적 노동계급이 다 형성된데다 비정규직화와 같은 최근의 사회 재편으로 근로 인구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됐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 ‘부자들의 대표’가 계속 50% 안팎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은 필자에게 배우는 노르웨이 학생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는 미국 다음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과연 가장 보수적인 곳이 아닌가라고 묻는 이들도 있다.

△박정희를 떠올리게 하는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의 이미지, 박정희를 계승한 개발주의적 발상들은 이명박 대선후보의 주된 상징적·이념적 자산이다. 그가 선거에서 성공할 확률은 높지만, 그의 개발주의적 처방으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생 문제들을 어차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사진/ 연합 손대성)

독자적인 대중적 좌파 정당이 발달되지 못한 미국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 중심부 내지 준중심부 국가 중에서는 일본과 한국만큼 사회주의적 진보세력이 약하고 극우가 강한 데가 없다는 게 이 질문의 요지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총선에서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함께 약 12%의 표를 얻었으며, 한국에서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의 표를 얻었지만, 유럽에서는 좌파가 20∼30% 미만의 표를 얻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다 이명박이나 고이즈미 준이치로처럼 고정적으로 일부 노동자 사이에서까지 ‘선풍적 인기’를 누리는 극우 정치인을 찾기가 힘들다. 왜 하필이면 한국과 일본이 지구의 정치학적 지도에서 온건 좌파 지향의 유럽, 급속히 급진화돼가는 중·남미와 대조가 되는 상대적 ‘친미 보수 권역’을 이루게 됐는가?

노르웨이 5% 대 한국 34%

학계에서 자주 지적되는 한·일의 상대적 보수성의 원인 중 하나는, 자영업자 인구가 비교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북유럽 도시 풍경과 한국 도시 풍경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한국의 무수한 식당과 가게, 상가 건물들이다. 노르웨이 같으면 정반대다.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필자 입장이 난감해지는 이유는, 오슬로대학을 벗어나서 적어도 20분 정도 걸어야 비로소 괜찮은 식당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소규모 가게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소매업 시장의 99.3%를 네 개의 큰 독점 기업(체인점)이 독차지하는 노르웨이에서는 ‘가게를 내서 장사에 성공했다’는 유의 이야기는 이미 ‘머나먼 과거의 동화’ 취급을 받는다. 전체 비농업 부문 피고용자에 대비해 비농업 자영업자가 5%도 안 되는 노르웨이에서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안정된 소득의 임금 근로자들이 맹목적 ‘성장’보다 차라리 재분배 위주의 정책에 더 쉽게 합의한다.

반면에 무급 가족까지 포함해서 자영업자들이 전체 취업자의 34%를 이루는 한국이나 16%를 이루는 일본에서는, 당장의 자금 흐름이 문제가 돼 ‘경기 회복’을 약속하는 극우파의 감언이설에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생산 수단을 소유하면서도 착취 대상이란 자신과 가족, 몇 명의 아르바이트생 빼고 별로 없는 중간 규모 이하의 자영업자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으로 이중적 존재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진정한 자본가’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자신들과 몇 명의 주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기 변동에 따라 늘 도산 위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이 ‘변화가 없는 호경기’를 찾다 보니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주된 지지 기반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유럽 역사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운하 건설’을 위해 예산을 대대적으로 풀어 경기 부양을 도모한다고 해도, 적자를 보거나 월 평균 100만원 이하의 소득밖에 못 올리는 285만 명의 영세 자영업자(전체 자영업 인구의 약 37%)들의 사정이 과연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일 도산해 생계 기반을 잃을지도 모르면서 사는 이들로서는-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의 많은 영세업자들처럼- 차라리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좌파를 지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대 체인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이르는 지방 영세상인보다는 서울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민주노동당의 주된 지지 기반은 조직화된 숙련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지만, 일본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은 노동자의 지지까지도 부진해 거의 고학력자들의 표에 많이 의존한다. 늘 민중을 부르짖고 민중에 호소하는 좌파가, 민중의 많은 계층으로부터 고립돼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사회심리적 요인들이 크게 작용한다.

극단적 소극성 속에서도 ‘적하’된 것들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산업자본주의는, 영국에서는 거의 150∼160년 동안, 독일에서는 약 130∼140년 동안 발전돼왔지만 일본에서는 그 연륜이 90년에 불과하고 한국에서는 아예 30년밖에 안 된다. 후발 주자인 한·일에서 국가와 재벌 주도로 중화학공업 건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노동자들과 중간계층 소득 사이에 학력과 부동산 보유에 따르는 격차가 벌어지기도 하고 도·농 격차, 재벌과 중소기업 고용자 사이의 격차 등 온갖 불균형과 불평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배자들이 불가불 성장의 일부 과실들을 ‘밑’으로 전달시켜야만 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이는 노조들을 순치하고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이었으며, 한국에서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 상황에서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 정권이 민생 문제 해결의 시늉이라도 보여주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59년부터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고, 1961년에 농민과 자영업자까지 가입할 수 있는 국민연금을 완비하고, 1970∼80년대 정부의 총지출에서 복지 지출 비율을 거의 3배(1970년대 초반의 6%부터 1989년의 18%까지) 올리는 등 유럽식 사민주의자 없이도 복지사회의 기본은 마련됐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일선 노동자에게 장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연공서열식의 임금 인상 제도와 ‘능력에 따르는 승진’을 모토로 내세운 고과제도, 그리고 약 150만 고용자 가구가 살고 있는 저렴한 임대료의 사택(社宅) 제도를 만드는 등 우파 조합주의적 ‘노사 협력’의 분위기를 부추겼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는 일본의 복지제도가 유럽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가족과 같은 기업’은 어디까지나 개별 노동자의 무력함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을 호도하는 허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의 빈곤과 불안의 악몽을 보수주의자들의 집권 밑에서 벗어난 경험을 가진 일본 민중의 상당 부분이 자민당 정객들을 ‘시혜자’로 인식하는 것은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박정희가 일본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최저임금 제도 도입을 끝내 하지 않는 등 복지 부문에서 일본과 대조되는 극단적 소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그도 반독재운동의 대중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주도한 초고속 축적의 일부 과실이라도 ‘밑’으로 적하(滴下)해야 했다. 예컨대 1971∼84년 새마을운동에 정부가 투입한 예산은 약 4조원에 이르는 등 당시 경제 인구의 약 45%를 이루는 농민층에 대한 민심 무마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도·농 간의 소득 격차가 심했지만 정부가 쌀 수매가를 꾸준히 매년 10% 이상 올리고, 경제성장의 결과로 비농업 부문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상황에서 농촌에서 영세농가의 비율이 감소돼 ‘중농화’ 경향까지 나타났다. 물론 노동자의 실질임금 연례 증가의 폭(8%)은 중산계급 소득 증가율에 비해 부족했지만,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평균 한 달 식료품 비용을 넘어 공장에 다니는 사람에게 드디어 배불리 먹는 삶이라도 가능해진 것은 역시 초고속 개발 시절인 1970년이었다.

자기 땅 한 뼘이라도 갖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롱하듯이 1960∼70년대 내내(1972년과 1973년만 제외하고) 연평균 지가상승률이 25∼50% 정도를 기록해 부동산 보유자들이 안정된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의 통계에 의하면 부동산 보유자의 총수는 1100만 명 정도 됐다. 전 국민의 4분의 1은 건설 부문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토건 경제의 수혜자가 됐으며, 수혜자 반열에 끼지 못하는 상당수 노동자와 영세민들이 죽기 전에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보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게 된 것이다. 가난뱅이들이 박정희가 설계한 사회 모델을 혐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는 그들은 박정희 대신에 ‘능력이 없어서 남처럼 잘살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기만 했다.

문제는 대권 쟁취 그 다음

‘부자의 후보’ 이명박은 수많은 가난뱅이들의 표를 동원할 만한 상징적 자원, 즉 ‘박정희를 떠올리는 1970년대 자수성가형 경영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단순히 기아를 면한 것부터 지가 상승으로 떼돈을 벌어 대학 교육·취직 기회 확충으로 출세에 성공한 것까지 ‘수혜’ 정도가 다양하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은 1970년대에 빚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물질적 삶의 개선이 기반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거기에다가 애국주의부터 ‘실패자는 무능력자다’ 등의 성공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박정희 시절의 온갖 국가주의적·자본주의적 관념에 그대로 포섭되고 말았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종교, 지역, 계급, 고용형태별로 분열돼 고질화된 갈등 속에 고착돼 있는 한국 사회에 ‘1970년대의 신화’는 거의 유일한 통합 기제로 작동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이명박이 대권 쟁취에 성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1970년대는 초고속 개발과 함께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으며, 4∼5% 이상의 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진 오늘날에 이 불평등은 계속 악화일로로 심화됐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든 여권이 기적적으로 정권 유지를 이루어내든 앞으로 5∼10년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계급 갈등들이 폭발의 지점까지 확실히 갈 것이다. 그때에 가서 좌파 세력들이 노동계급과 영세민의 투쟁을 이끌어 이 사회에 믿을 만한 평등·복지적 대안을 제시해 국민적 신뢰를 받아야 우리가 비로소 죽은 독재자의 망령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미국, 일본과 함께 가장 보수적 사회’의 불명예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07. 10. 16.

P.S. 우연히도 아침에 읽은 강준만 교수의 칼럼 또한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박노자 교수의 칼럼은 '보완'하는 의미에서 같이 읽어둠 직하다.

한국일보(07. 10. 17)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가 최근 <한겨레 21>에 '가난한 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었다. 감사의 뜻으로 박 교수의 논지를 좀 보완해볼까 한다. 박 교수에게 배우는 노르웨이 학생들은 '극우적 색채가 강한 보수의 대표자 이명박'이 높은 지지를 받는 걸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며, 그래서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가장 보수적인 곳이 아닌가 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 질문에 공감하면서,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4%로 매우 높다는 점을 들었다. 자영업자는 경기변동에 따라 늘 도산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호경기를 선호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 유권자에 자기 정치성향 있는가
박 교수는 자영업자 비율이 7%대인 미국은 '특별한 경우'로 보면서 일본도 자영업자 비율이 16%로 비교적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일본의 16%는 영국의 12%나 독일의 11%에 비해 높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므로 한국의 높은 비율만 문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영업자들의 경기에 대한 민감성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는 타당한 일면이 있지만, 이는 지난 대선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 이전에 더욱 중요한 건 한국 유권자들이 과연 자기 이익 중심으로 정치적 성향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서구에서 통용되는 '진보-보수'의 그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다. 한국적 특수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치솟은 게 잘 말해주듯이, 남북분단은 꼭 보수의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높은 대외의존도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에 대한 수출ㆍ수입액의 비율이 88.6%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 운운하는 표현이 잘 말해주듯이, 한국인들은 높은 대외의존도에 대해 만성적인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 불안감을 보수적이라고 표현하기엔 처지가 너무 절박하고 상흔이 너무 깊다.

둘째, 반작용 쏠림현상이다. 한국인들은 정치 불신ㆍ냉소가 강해 '포지티브 투표'보다는 '네거티브 투표' 성향이 강하다. 지지보다는 반감 표현에 능하다는 뜻이다. 이명박 지지율은 꼭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 정권과 더불어 '3년짜리'를 '100년짜리'라고 사기친 세력을 처벌하는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 '서울공화국 체제'로 대변되는 1극 집중 구조가 자주 유발하는 쏠림이 일어난 것이다.

셋째, 높은 감성 의존도다. 감성이 이익 계산보다 앞선다. 위선을 필요 이상으로 혐오한다. 보수파가 하면 괜찮을 일도 개혁파나 진보파가 하면 펄펄 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한국 진보세력의 주요 구성원인 대기업 노조를 어떻게 생각할까?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의 다음과 같은 고언에 공감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다면, 과연 누구의 보수성을 탓해야 할까?

● 대외의존도와 쏠림 현상 때문
"민노당이나 민노총을 보자. 대한민국 1,500만 노동자의 10%도 안 되는 귀족형이다. 그 10%도 다 재벌기업, 보수기업, 공기업, 언론, 교사, 병원 등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종사자들이다. 1,000만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다. 1,000만 명에 육박한 비정규직을 위한 조직도 사실상 없다. 민노당, 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지만, 자기 것을 내놓으려고는 안 한다. 내 건 빼앗지 말고 소수에게, 권력자에게, 자본가에게 저들(비정규직)을 위해 더 내놓으라는 식이다. 유럽을 봐라. 자기 근무 시간 줄이고 하면서 같이 하지 않는가."(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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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rom 텅 빈 세상에 2007-10-19 13:15 
    위선을 필요 이상으로 혐오한다
 
 
biosculp 2007-10-17 12:29   좋아요 0 | URL
동의하기 힘든점이 초고속개발로 인해 극심한 불평등이라지만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부 이전이 상하 격차가 다른 어느 선진국보다 적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격차가 민주정부들어 더 심해졌고. 선진국의 경우 공무원이 비율로 우리보다 10% 높습니다. 자영업자 비율이 줄어든면 그비율 그대로 공무원으로(복지파트로)흡수 되는 꼴이죠.
지금 연금, 보험료 등등 따지면 세금으로 30%정도 내고 있고. 여기에 중산층들 자녀교육에 소득의 20%이상 들어가고 주거비 이자까지 합치면 선진국에 내는 세금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데요.
좌파우파애기 이전에 나라 운영 잘(이게 힘들지만)만 하면 극우인 명박이 아래에서도 잘 살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박노자 애기. 명료한것 같기는 한데 현실과 유리된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07-10-17 15:55   좋아요 0 | URL
강준만 교수의 칼럼도 옮겨놓았습니다.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현실과 유리'에서 그 현실은 '한국적 현실'일 테니까요...

마립간 2007-10-19 11:17   좋아요 0 | URL
일부의 글을 저의 서재로 옮깁니다.
 

간식을 먹으며 클릭해본 사이트에서 뜻밖의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기에 옮겨놓는다. 뭐 그래봐야 또 책 얘기지만 이번엔 블로그 얘기이기도 하다. '블로그 에세이'를 묶은 책이라고 하니까. <사야까의 한국고고씽>(미다스북스, 2007)의 저자는 고마츠 사야까라는 일본 학생이며 '내 눈으로 본 한국, 한국(http://sayaka.tistory.com)이란 블로그 운영자라 한다. 이미 500만명이나 다녀간 인기 블로그의 주인장이라고 해서 들어가 보니 현재 420만에 근접해가고 있다(그럼에도 대단한 방문자수임에는 틀림없다. 1일 방문자수만 해도 이곳의 10배 이상이다. 하니 연말쯤에나 30만에 턱걸이할 걸로 보이는 이 서재와는 비교가 안된다). 다들 '로쟈'는 몰라도 '사야까'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나만 빼고.) 기사가 길게 느껴지는 분은 막바로 책에서 인용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마다 생기는 일’ 같은 글꼭지를 읽어보시길. 거의 '사야까 콘서트'이다!..

세계일보(07. 10. 12) 500만명이 중독된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에 관한 보고서!!

'사야까의 한국고고씽’은 사야까라는 일본 처녀가 한국에 와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체험들을 특유의 솔직발랄하고 재치 있는 시선으로 풀어낸 한국문화에 관한 하나의 보고서이자 개인적 체험견문기 형식의 블로그 에세이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깜빡 속을 만큼 말솜씨는 물론이거니와 글솜씨도 뛰어난 저자 고마츠 사야까는 한국을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혼자만 가슴에 담아두기 싫어서 올해 여름부터 다음(Daum)에 블로그(sayaka.tistory.com)를 직접 만들어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사야까의 글은 연재하자마자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몰고 있는데, 그 인기는 블로그 개설 두 달 만에 500만 명 이상의 블로거를 열광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지금의 시대는 인터넷 개인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글과 그림과 영상들이 글로벌 시대의 주인공임을 일본에서 온 고마츠 사야까와 그의 블로그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수많은 독자들은 한일 간의 문화 체험을 통해 솔직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한일간의 가교역할을 하는 사야까에게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칭찬들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속살(‘문화적인 얼굴’)을 낱낱이 파헤치고 생생하게 그려낸 블로그 에세이!
최근 ‘미녀들의 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 적응이 화두로 되고 있다. 그만큼 이제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라 다민족이 모여 사는 21세기적 국가로서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외국에서 온 미녀들의 시선 속에 비춰지는 한국의 모습은 현상적이고 표피적인 면이 많이 존재한다.

그에 비해 ‘사야까의 한국 고고씽’의 저자 고마츠 사야까가 보여주는 한국 이야기에는 오히려 한국인들도 모르는 한국이 담겨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한국인만이 지닌 독특한 정서에 깊이 공감하고 그것에 큰 매력을 느껴 한국으로 온 외국인이다. 그래서 저자가 겪게 되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사건들도 비록 시선은 외국인의 시선이지만 정서는 한국의 정서에 깊이 닿아 있어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공감과 감동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식당에 가면 밑반찬을 한정 없이 주는 푸짐한 음식문화에서부터, 초대받은 한국 가정에서의 더할 나위 없는 융숭한 대접과 온가족의 환대문화,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은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앉지 않고 혹여 자리가 없는데 노약자가 타면 순식간에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도와주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나 나아가 일본 지하철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남을 구하는 한국인의 희생적인 정신, 또는 비디오가게의 주인아줌마나 목욕탕 아줌마 할 것 없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까지 질문을 해대는 한국인의 이웃사촌문화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한국인의 일상 속에 드러난 한국인의 ‘인간적 기질’과 ‘정의 문화’를 속살 그대로, 날 것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또한 이러한 문화적 속살에 대한 탐구와 해부는 긍정적인 모습에만 해당되지 않고, 부정적인 모습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 한국인들의 여성무시문화, 일요일에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며 방문하는 기독교의 과잉된 종교적 열정, 보신탕 집에서 나비탕으로 쓰려던 고양이를 파는 모습 등 한국인들의 먹고 마시고 노는 문화는 그녀의 순진하지만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시선 속에서 발가벗겨진다.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적나라한 문화적 비교 체험!
때문에 저자 특유의 재치 있고 예리한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과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일상에 속하는 숱한 일들이 외국인인 그녀에겐 하나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녀에겐 문화적 충격으로 느껴지면서 그 충격에 대해 솔직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접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본질적인 접근까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글을 통해 우리의 속모습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고 성찰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는 한국을 대하는 기본적인 ‘반성’의 자세가 담겨 있다.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일본인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흥분해도 그것의 역사적 연원을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이 한국인들에게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녀의 블로그에는 10년 전쯤 친한파였다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국을 비판하는 미즈노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실리지만 그녀는 언제나 정직하게 순수하게 한국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과 한국인, 한국의 문화에 관한 공부를 더 하려고 한다.

아울러 각 챕터마다 조금씩 실려 있는 블로거와 저자 사이에 오간 생생한 댓글들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짧은 대화 속에 한국과 일본의 정서적 차이, 한국인과 한국인 간의 정서적 감응 차이 등이 담겨 있어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 파트 뒤에는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난 평범하면서도 전형적인 일본 가정과 사회의 모습을 짧게나마 소개하고 있다. 정년퇴직을 한 뒤에 한국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부모님과 위로 두 명의 언니가 있는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막내로 살아가다 한국에 빠져 한국으로 건너온 사야까. 그리고 앞으로도 여건만 된다면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오래도록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야까의 일본에서의 일상이 짧게나마 담겨 있다. 그리고 책 맨 뒤에는 사야까의 어린 시절 사진과 한국에서 찍은 최근의 사진, 그리고 친필로 쓴 에필로그가 있어서 한 일본 여성의 내면 형성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주고 있다.

고마츠 사야까=1980년 동경에서 세 딸 가운데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깨끗한 향기를 풍기는 여성이 되라’는 뜻으로 ‘사야까(?香)’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전형적인 일본 가정에서 명랑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서 한 달 동안 홈스테이를 하면서 이국 문화를 접했고, 그때부터 ‘외국에서 일본어 교사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세이토쿠 대학 일문과에 다니다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면서 한국과 한국인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그 뒤 바로 한국으로 무작정 건너와 열심히 어학당을 다녔다. 결국 세이토쿠 대학을 중퇴하고 부산 대학교 일문과에 입학해 2007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5년 넘는 시간 동안 부산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부산 아지매들’에 버금가는 사투리를 구사한다. 축구는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하는 건 더 좋아한다. 박지성이 나오는 경기를 보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자 다음 날 수면부족에 허덕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장 불편한 건 바로 신호등의 길이. 다리가 짧은 사야까에게 안 좋다. 그리고 한국 군인의 종이가방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가 늘 궁금하다.

한국의 음식에도 빠져서 주 5일 동안 스트레이트로 삼겹살 먹는 걸 좋아하고, 청국장에 마요네즈를 발라서 먹는 걸 좋아하며, 김치를 너무 좋아해 이제는 케이크와 같이 먹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드디어 생마늘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내 눈으로 본 한국, 한국인’이라는 블로그(http://sayaka.tistory.com/)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정겨운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하는 꿈을 꾸며, 온라인 일본어 교육 사이트에서 교재를 개발하는 일을 하면서 어렸을 때의 꿈인 외국에서 일본 문화와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조정진기자)

■책 속에서
▲‘내 이름은 사회학과’ 중에서
10 시간 후 아직 머리가 빙 돌고 있는데 어떻게든 사진관까지 갔다. 내가 “사진 찾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하자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가 “학생 이름은 뭐예요?” 라고 물어봤다. “사야까입니다”라고 말하자, 아저씨는 “아, 사야까군요!” 하면서 사진 봉투를 건네주었다. 나는 빨리 그 사진을 보고 싶었지만 속이 안 좋아서 사진관 근처에 있는 돼지국밥집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수육백반을 시켜 해장했다.

집에 도착해서 사진을 꺼내 보니 분명히 혼자서 찍었는데 거기에는 학생들이 농활하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뭐야 이거~~!!!! 내 사진이 아니다~~~!!! “아저씨 잘못 줬네…”라고 하면서 봉투 이름을 보니까 거기에는 확실히 ‘사회학과’라고 적혀 있었다.
‘사야까’=‘사회학과’

사진관 아저씨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내가 들어도 헷갈리니까…
창피했지만 사진을 바꾸러 갔고 이 일로 한동안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아야했다…ㅠㅠ
내가 만약 사회학과에 입학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마다 생기는 일’ 중에서
‘혹시 한눈에 내가 일본인이라는 걸 안 걸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저씨는 일본 정부와 K 전 총리에 대해서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라디오에서도 K 전 총리의 이야기가 나와 아저씨는 더 열 받으면서 나한테 말했다. “아가씨! 일본놈들 진짜 나쁘지 않아요?” “이 일을 어떻게 하나?” 등등…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 내가 일본인이라는 걸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저씨 이야기에 오직 “예”라고만 말했다.

게다가 탄 지 한 5분 정도 지났는데도 아직 행선지조차 말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마침 아저씨는 “아! 죄송해요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말했다. ‘양정역까지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양정역’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양정역까지요’에는 받침이 세 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제일 어려워했던 ‘ㅇ’, ‘ㅇ’의 연속 받침 단어이다.

만약에 ‘양정역까지요’라고 말하면 분명히 발음이 이상해져서 ‘얀전여그까지요’라고 말해서 아저씨한테 들키고 만다. 나는 일부러 작은 목소리로 “얀전여그까지요”라고 말해 보았다. 아저씨는 아니나 다를까 “예?”라고 했다.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고민했다. 양정과 가까운 서면은 ‘소묜’, 냉정역은 ‘낸전여그’, 동래역는 ‘돈네여그’, 범내골역은 ‘보무내고를여그’, 부전역은 ‘부존여그’ 온통 받침 있는 역들뿐이었다.ㅠ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번엔 큰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아저씨! 부대까지요.(-_-)”

▲‘선생님 거시기에는 문제가 있어요’ 중에서
시트콤 장면…
서민정이 병원 진료실에 누워 의사 선생님한테 진찰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서민정이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선생님 거시기에는 문제가 있어요??”
“앗!! 저런!!!!”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근데 옆에 누워 있던 친구들은 화난 목소리로 대꾸할 뿐이었다.
“뭐야! 안 들리잖아~”
“지,,,지,,지금 이상한 말했다 아이~~가.”
“뭔데?”
둘 다 못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좀 안 보는 사이에 한국 방송이 이렇게 야하게 바뀌었나 싶어서 나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고 혼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고민…

분명히 서울말이니까 전라도 사투리의 뉘앙스는 아닐 것이고 사투리의 뉘앙스라면 말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럼 분명… 으으(-_-) 그런데 왜 친구들은 가만히 있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야 난 확실히 들었어. 서민정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변태네. 아니야 한국방송이 그렇게 변할 리가 없지… 아니지 그럼 내가 들은 건 뭐야?
그래도 여긴 한국인데… 아니지 케이블 TV에도 야한 게 꽤 나오니 이제 많이 바뀐 거야… 모야… 으으으… 도저히 모르겠다.

심각한 고민 끝에 과감히 친구들한테 작은 목소리로 “지금 서민정이 ‘거시기’라고 말했지?”라고 물어보자 친구 둘은 왕 썩소(-_^)를 나에게 날렸다.
둘은 몇 분간 말을 잇지 못했고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지금 서민정은 ‘선생님 보시기에는 문제가 있어요?’라고 말한 거야~!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꺄~ 사야까 저질~~”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도와주는 정신’ 중에서
나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인생에서 딱 한 번 치한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은 다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리칠 용기도 없었고 소리쳐 봤자 도와줄 사람도 없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억울해 할 수밖에 없었다.(-_-)
일본 만원 지하철에서 남자들은 치한으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양손을 만세 하는 것처럼 위로 올려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있다.

남자들은 자기 방어에만 필사적이라서 주위로는 눈을 돌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난 이런 게 대빵~ 부럽게 느껴진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사는 한국 여자들은 정말 행복하겠다.(^.^)
일본인들은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을 도와주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제까지 내가 본 한국인들은 위기 속에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 많았다.
어떨 때는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지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목숨을 걸고라도 도와준다.
그 대상이 일본인일지라도...........

http://home.nownuri.net/~gibson71/
한국어를 배운 뒤 가끔 가는 故 이수현 씨의 홈페이지입니다. 우리 일본인들은 이수현 씨의 그 정신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ㅠㅠ)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요즘 방문도 별로 없고 하늘에서 쓸쓸하겠어요.
여러분들도 가끔 방문하셔서 그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___^)

0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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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0-15 23:19   좋아요 0 | URL
"다들 '로쟈'는 몰라도 '사야까'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 이 바닥에서는 아프락사스는 몰라도 이상한게 아니지만 로쟈님을 모르면 이상한거에요. 이거라도 위안 삼으심이.

가봤더니 그 분 블로그 방문자 숫자도 그렇지만 글 하나에 달린 댓글 숫자가 완전 '혜교' 못지 않습니다. 다 읽지도 못할듯.

로쟈 2007-10-15 23:38   좋아요 0 | URL
블로그를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은 것에도 공감하기 어렵지만(저는 !나 ? 남발을 혐오하는 편이라)'블로그 시대'가 어떤 건지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책'은 좀 다르죠(500만명이 사야까의 책을 사진 않으니까).^^

마늘빵 2007-10-16 00: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걸 그대로 책으로 옮기면 문제가 확 달라지죠. 잡지 구석에 실릴 에피소드 같은건데 책으로 묶는건... -_-

릴케 현상 2007-10-16 00:28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번 펌질 해 봤던 사람이네요~

로쟈 2007-10-16 08:28   좋아요 0 | URL
알라딘 검색에는 뜨지 않던데요. 다른 블로그에 옮겨놓으신 듯.^^

람혼 2007-10-16 04:51   좋아요 0 | URL
저처럼 웹서핑에 '인색한' 사람도 알고 있는 블로거니, 정말 유명하다고 해야할 듯. 저 역시 '남발'은 혐오하는 편입니다만.^^

로쟈 2007-10-16 08:28   좋아요 0 | URL
제가 포털의 블로그들은 거의 클릭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저야 말로 수전노 수준이네요.^^

자꾸때리다 2007-10-16 16:09   좋아요 0 | URL
저는 로쟈님은 알아도 사야까는 모릅니다. (Mravinsky 에서 바꿨어요)

로쟈 2007-10-16 16:36   좋아요 0 | URL
Grimaud님은 정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소경 2007-10-18 21:00   좋아요 0 | URL
'한국 군인들의 종이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요거 보고 숨죽여 웃었습니다. ^^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널려 있지만 머리가 무겁다는 핑계로(마음이 무거운지도 모른다) '사는 법'에 대해서나 좀더 배워보도록 한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의 이어 읽기이다(지난번 읽기는 http://blog.aladin.co.kr/mramor/1627022). 실상은 이 책의 헌사와 관련하여 데리다와 크리스 하니에 관한 페이퍼를 지난주에 좀 쓰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남아공의 공산당원이자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였던 크리스 하니에게 바쳐진 책이다). 이런 페이퍼로 먹고 살지 않기에 간단히 요약해서 적는다.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주로 책의 내용을 풀어주는 일을 많이 하게 된다('강사lector'란 '읽는 사람'이자 '읽어주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연구자로서 쓰는 논문과 강사로서 맡게 되는 강의의 수신자(독자)는 각기 다르며 둘 사이에는 아직은 제거될 수 없는 간극이 놓여 있다(즉 '연구'와 '강의' 사이의 먼 거리가 현재 대학 교육의 현실이다). 가령 이 헌사의 첫문단에서 당신은 무엇을 읽는가?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 전제를 위한 한 부분, 우리는 항상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 정책)의 역사적 폭력을 하나의 환유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서도, 우리는 항상 아파르트헤이트가 지닌 폭력의 독특성을 통해,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폭력들을, 다양한 경로에 따라(응축, 전위, 표현이나 표상) 해독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분이자 원인, 결과, 증상, 사례로서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곳에서, 항상 이곳에서 -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가 어디서 바라보고 있든 - 집에서 좀더 가까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번역해준다. 무한한 책임, 곧 모든 형태의 떳떳한 양심에 대해 금지된 휴식."

어려운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이 문단이 뚯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수년 전 일이지만 신문의 만평을 해석해보라는 시험문제에 40%의 학생들만이 제대로 답안을 써냈다. 영상세대라고 하지만, 시사만화의 '독해'조차도 어려워하는 세대인 것이다!). 인문서의 독자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는 현실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내가 여전히 계몽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으로서 데리다의 독자가 300이 아닌 3000쯤 되면, 좁게 말해서 우리의 독서문화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로쟈'의 일거리가 떨어질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먼저 첫문장.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 전체를 위한 한 부분, 우리는 항상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 정책)의 역사적 폭력을 하나의 환유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 전체를 위한 한 부분'이 '환유(metonymy)'의 정의라는 걸 아는 독자라면 이 페이퍼는 더이상 읽지 않아도 된다. 남아공의 가혹했던 인종격리정책인 '아프르트헤이트'가 '역사적 폭력'인 것은 그것이 이미 종식된 과거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의 저항과 반발을 가져온 남아공 백인정부의 이 인종차별정책은 흔히 만델라의 정치적 역정과 병치되는데, 사전적 설명에 따르면 "1993년의 신헌법으로 흑인과 기타 인종집단에 참정권이 부여되고 1994년 다인종총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의장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남아프리카에서는 최초의 흑인정권이 탄생했으며 이로써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적 폭력'이다.

데리다는 이것이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 곧 '다른 폭력을 지칭하기 위한 폭력', '전체를 위한 한 부분', 곧 '폭력 전체를 지칭하기 위한 한 폭력'으로, 다시 말해서 다른 폭력과 폭력 일반에 대한 환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그럼으로써 고유명사로서의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차별적인 폭력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다. 두번째 문장이 뜻하는 바가 그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서도, 우리는 항상 아파르트헤이트가 지닌 폭력의 독특성을 통해,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폭력들을, 다양한 경로에 따라(응축, 전위, 표현이나 표상) 해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폭력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응축으로서, 전위로서, 표현이나 표상으로서 해독될 수 있다는 것. "아파르트헤이트가 지닌 폭력의 독특성"에서 '독특성'은 'singularity'의 번역이다. 들뢰즈 번역서들에서 '특이성'이라고 옮겨지고, 가라타니 고진은 '단독성'이라고 옮기는(애용하는!) 개념이다. 여기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소수 백인과 다수 유색인종의 관계를 지배했던 남아공의 특정한 정책'을 가리키기에 독특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즉 아파르트헤이트의 폭력은 딴데는 없고 남아공에만 있었다는 점에서 유일하지만 유사한 사례들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차별과 폭력은 세상 어디에나).

세번째 문장 "부분이자 원인, 결과, 증상, 사례로서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곳에서, 항상 이곳에서 -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가 어디서 바라보고 있든 - 집에서 좀더 가까운 아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번역해준다."는 두번째 문장을 한번 더 풀어준 것이다('번역해준다'는 '해독해준다'란 뜻으로 읽어도 된다). 요점은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이곳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 곧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란 얘기다. "남 얘기가 아니"라는 것(예컨대,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외모와 학력에 대한 우리 가까이의 차별들).

이러한 인식의 자연스런 귀결이 마지막 문장이다. "무한한 책임, 곧 모든 형태의 떳떳한 양심에 대해 금지된 휴식." 조금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무한책임의 주체이며, 떳떳한 양심을 갖고 있다면 우리에게 휴식은 없다."("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열심히 일하라!"인 것.) 레비나스식으로 말하면 이 윤리적 주체는 '그까이꺼 대충'의 주체가 아니라 '불면의 주체'이다(누가 자빠져 자는가?). 잠들 수 없는 나날들...

이러한 도입부에 이어지는 건 이 헌사가 씌어지기 바로 며칠 전, 곧 1993년 4월 10일 "한 명의 폴란드 이민자와 공범들"에 의해 암살된 크리스 하니에 대한 추모이다. 데리다는 그를 '공산주의자 그 자체', '공산주의자로서의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탁월한 공산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 중의 공산주의자'라는 뜻이다(역자가 요즘 유행하는 '코뮤니스트'란 번역어로 비껴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단지 '한 남자'의 죽음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징도 아니다. 그의 삶도 마찬가지며, 그것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언제나 명명하는 바"의 어떤 것이다(<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이 명령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아파르트헤이트 반대투쟁의 대중적인 영웅이었던 이 사람은, 모순에 빠져 있던(*내분에 빠진) 소수파 공산당에 다시 한번 헌신하기로 결정한 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고위직 자리를 그만두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서 자유롭게 된 나라에서 아마도 앞으로 그가 맡게 될 공식적인 정치적 역할, 심지어 정부 관료 역할 역시 포기한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위험스러운, 참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크리스 하니를 추모하고 이 강연을 그에게 바칠 수 있게 허락해 주기 바란다."

역시나 '사는 법'을 배울 시간은 부족하다(어서 다른 일들을 해야 한다). 한 문단만 인용하겠다: "산다는 것은, 말뜻만으로 볼 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아니며, 삶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삶이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오직 타자로부터, 죽음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타자로부터 삶의 가장자리에서, 내적인 가장자리 또는 외적인 가장자리에서, 그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타자에 의한 교육인 것이다."(10쪽) 데리다가 크리스 하니에게서 배우고 우리가 데리다에게서 배우는...

0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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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15 14:26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이런 거 눈에 잘 안 띄죠.^^;

2007-10-15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15 21:15   좋아요 0 | URL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네요.^^

marr 2007-10-1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일 데리다의 말처럼 모든 폭력이, 폭력 일반이 차이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것이라면 폭력의 근원이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차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는 현대 프랑스 철학이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로쟈님이 지적하고 있는 폭력의 문제를 "차이"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회에서, 서로 적대적인 계급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회에서 폭력은 권력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거죠. 권력은 "차이"에 근거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서, 사적 소유에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베리 레빈슨이 감독한 "폭로"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자신의 옛 연인이자 회사의 상관인 데미 무어에게 성희롱을 당합니다. 뭐 거의 성폭력 수준이죠.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게,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성)폭력이 단순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도 될까요? 마이클 더글라스의 변호를 맡은 여성 변호사의 한마디. "성폭력은 힘(power)의 과시다." 문제는 폭력이, 어떤 형태이건, 사회적 모순의 논리적 결과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차이”의 문제가 지엽적이라거나 덜 중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폭력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이 글이 떠오르는군요. 맑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프루동을 비판하기 위해 인용하는 글입니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최초의 근본개념을 명확히 해명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통치수단들이 연원하는 원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물을 그 근저에까지 파고들어갈 때, 우리는 모든 통치형태, 모든 사회적, 정치적 불공정은 현재의 지배적인 사회체제에서, 즉 현재 존재하고 있는 바의 소유제도에서 연원함을, 따라서 우리가 단 일격에 우리 시대의 불공정과 빈곤을 종말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사회의 현재 상태를 뿌리 째 전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이제까지 사람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상태와 같이 자연에 반하는 상태를, 그것들의 불평등의 원인은 그대로 존속하도록 내버려 두고도 현존하고 있는 불평등을 파괴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우리는 곧 통치란 결코 원인이 아니며 오히려 작용임을,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임을 보게 될 것이다. 즉, 한마디로말해 그것은 소유의 불평등의 산물이며, 또 이 소유의 불평등은 현존의 사회제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글의 저자인 Bray는 맑스의 언급에 따르면 오웬의 추종자이자 ‘노동화폐’이론을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사족이지만, 물론 Bray는 올바른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공상적인 방안으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 이거도 사족인데, 맑스는 누굴 칭찬하기 위해 그 사람의 글을 인용하는 데는 상당히 인색한 것 같습니다. 인용한 Bray의 글도 그가 양심을 가진 우직(愚直)한 사람이지만 그의 글은 부르주아의 환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로쟈 2007-10-16 00:30   좋아요 0 | URL
"만일 데리다의 말처럼 모든 폭력이, 폭력 일반이 차이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것이라면 폭력의 근원이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에서 '데리다의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요? '차이'라는 말은 데리다도 그렇고, 저도 본문에서 쓴 적이 없는 듯한데요. 아파르트헤이트의 '폭력'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법'에 의한 폭력)이었는데, '권력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marr 2007-10-1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제가 좀 일반화시킨 면이 있군요. 데리다의 "차이"개념을 로쟈님께서 쓰신 "고유명사로서의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차별적인 폭력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다."는 문장에 슬쩍 대입시켜봤습니다. 하지만, 데리다와 들뢰즈, 좀 더 나아가서 레비나스의 '차이'나 '타자'에 대한 관점이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의도적이든 아니든 비켜가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한 번 제기해봤습니다.

로쟈 2007-10-16 08:27   좋아요 0 | URL
'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은 데리다보다 들뢰즈를 타겟으로 하는 게 더 적합해보입니다(지젝의 비판이 있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비판을 기대하겠습니다...

람혼 2007-10-16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법을 배우기'의 한 방향은, 아마도 '읽는 법을 배우기' 혹은 '번역하는 법을 배우기'로부터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생들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문제는 미국의 학생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게 해당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예를 들어 저는 최근에 <이론 이후 삶>을 읽다가 실소와 동시에 분노까지 자아내게 만든 부분을 발견하였는데, 청중과의 일문일답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레비나스의 수혜를 받은] 데리다의 개념 "무한 책임"을 제대로 '독해/이해'하지 못하는 실로 '바보 같은' 질문들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이죠(뭐 그래서 또 '질문'이라는 것을 하고 '답변'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겠지만). 미국의 예를 들자면, 일반적으로 볼 때,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태어나 거의 모든 저명한 책들이 영어로 번역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언어'에 대한 이해의 한계가 그대로 '사상'에 대한 이해의 한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몹시 염려될 때가 있습니다. 문득 예전에 만났던 한 아랍인 청년이 제게 스치듯 던졌던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저의 질문: "너는 참 영어를 잘 하는구나. 왜 영어를 배우니?" 그의 대답: "소통하고 싶어서." 실로 '우문현답'이라는 사자성어에 값하는 대화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제게 사는 법을 배우기란 곧 읽는 법을 배우기, 번역하는 법을 배우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국어들에 대한 저의 많은 공부 욕심도 그러한 '증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부끄럽게도 아직 러시아어는 모릅니다만).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게 되는 페이퍼,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다섯 번째 문단에서 오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른 이름을 위한 한 이름, 전제를 위한 한 부분'이 '환유(metonymy)'의 정의라는 걸 아는 독자라면 이 페이퍼는 더이상 읽지 않아도 된다"에서 '전체(le tout)'가 '전제(présupposition)'로 오식된 경우입니다.

로쟈 2007-10-16 08:25   좋아요 0 | URL
가슴으로 읽게 되는 댓글입니다.^^ 러시아어까지 아신다면 거의 에코 수준이 되는 거 아닌가요?! 마지막에 지적하신 오타는 윗줄의 같은 오타를 고치면서 깜빡 했네요.^^;

딸기 2007-10-1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석을 못하는 대학생들이 문제가 아니라...
저정도면 한글 모르는 사람 or 번역기가 쓴 것으로 읽히는데요, 제 눈에는 ^^;;

로쟈 2007-10-16 17:15   좋아요 0 | URL
이론서들을 직역해놓으면 대개 상형문자화되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아 '10대 시인'을 선정했다고 한다(선정과정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420053984290.htm 참조). 그 리스트를 보니 선자들이 고심했다고는 하나 별로 '이변'이라 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이미 교과서에 다들 수록돼 있는 시인들이고 그들의 시이기 때문에(윤동주의 <서시> 대신에 <또다른 고향>이 대표시로 선정된 것 정도가 일반 독자들의 취향과 차이나는 것이겠다. 물론 서정주의 경우에도 <동천>보다 더 친숙한 건 <국화 옆에서>일 테고). 자료삼아 기사를 옮겨놓으면서 드는 생각은 차라리 11-20위까지의 시인들 명단이 궁금하다는 것. 생존 시인들까지도 포함해서. 오히려 그게 '진짜' 리스트가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한국일보(07. 10. 15) 한국 현대시 10대시인 뽑았다

1908년 최남선의 신시(新詩)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점으로 올해 100년을 맞은 한국 현대시사(詩史)의 대표 시인 10명은 누구일까. 한국시인협회(회장 오세영ㆍ이하 시협)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국문과 교수 10명에게 작고 시인을 대상으로 10대 시인 및 대표작 선정을 의뢰한 결과 김소월 <진달래꽃>,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 정지용 <유리창>,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 <풀>,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이상 <오감도>, 윤동주 <또다른 고향>, 박목월 <나그네>가 뽑혔다.

선정 작업은 평론가들이 각자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고 생각하는 작고 시인 10명과 시인별 대표작을 추천하고, 이들 후보군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10대 시인 및 대표작을 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문화 외적인 요소가 개입할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존 작가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선정 위원엔 최동호(고려대), 이숭원(서울여대), 정과리(연세대), 이광호(서울예대), 유성호(교원대), 오형엽(수원대), 방민호(서울대), 문혜원(아주대), 홍용희(경희사이버대), 이재복(한양대) 교수가 참여했다. 오세영 시협 회장은 "오늘날 시대정신이 선호하는 시인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아울러 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했다"며 선정 취지를 밝혔다.

10대 시인의 대표시는 11월24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릴 예정인 시예술 행사 '시인만세'에서 시 낭송, 음악, 무용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공연된다. 기획 및 총연출은 연극인 이윤택씨가 맡는다. 시협 창립 50주년 및 '시의 날' 제정 20주년 기념을 겸한 이번 행사는 한국일보, 시협, JEI재능교육이 공동 주최한다.(이훈성기자)

한국일보(07. 10. 15) [한국 현대사 10대 시인] <1>김소월

오늘부터 주 5회(월~금)씩 2주에 걸쳐 한국 현대시 100년을 빛낸 10대 시인의 대표시를 소개합니다. 선정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10명이 해설을 맡았습니다. 시 전문은 해당 시인의 정본(正本) 혹은 그에 준하는 작품집에 수록된 내용을 따르고 그 출처를 밝힙니다. <편집자 주>

진달래꽃
-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출처 : 권영빈 엮음, <김소월시전집>, 문학사상사, 2007 (*출처의 편자는 '권영빈'이 아니라 '권영민'이다.)

△1902년 평북 구성 출생. 본명 정식(廷湜) △1915년 오산학교 입학. 이곳에서 시 스승인 김억(金億)을 만남 △배재고보 졸업, 도쿄상대 중퇴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등 발표하며 데뷔 △1922년 <학생계>에 ‘진달래꽃’ 발표 △1924년 <영대>에 ‘산유화’ 발표 △1925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발간 △1934년 12월 음독 자살할 때까지 154편의 시를 남김

◆'진달래 꽃' 작품해설
1922년 <개벽>에 발표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남녀 간의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낡은 시가 아니다. 이 시는 1920년대라는 시대적 단위를 넘어서서 사랑의 보편성을 노래한 20세기 한국의 명시라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선 형식과 언어이다. 알려진 것처럼 7ㆍ5조 또는 3ㆍ4ㆍ·5음절의 3음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매연 3행 모두 12연의 기ㆍ승ㆍ전ㆍ결의 구조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미적 형식으로서 견고한 완결성이 이 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 어휘들 또한 시적인 완결성을 위해 긴밀하게 변주되어 하나의 명편이 탄생된 것이다.

다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전해 주는 절절한 호소력이다.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고 해서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 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곡진한 종결 어미들은 모두 이별의 정서를 절실하게 전하는데 있어서 유감이 없다. 남성도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는 이처럼 여성적인 어조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이 순간의 이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실 때’라고 분명히 화자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역겨워서 ‘가실 때’는 님이 가시는 미래의 그 어느 때이다.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이별의 슬픔을 예견하면서 사랑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의 묘미이다. 사랑의 기쁨을 직접적인 언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 한국인들이 우회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방식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시의 화자가 이별의 그 순간 눈물을 흘리느냐 흘리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이 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로 끝나고 있다. 이별을 부정하는 ‘아니 눈물’을 흘린다고 했으니 그것은 이별의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정의 눈물이 통곡의 눈물보다 더 깊은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을 김소월은 깨달았던 것이다. 김소월을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만든 작시법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최동호 문학평론가ㆍ고려대 교수)

0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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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0-16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투표 분위기일까요? ^^; 저는 제 성향(?)상 이상, 김수영, 김춘수에 한 표씩을 '행사'하고 싶습니다.^^

로쟈 2007-10-16 08:30   좋아요 0 | URL
분위기까지야... 10위까지의 랭킹은 다들 비슷할 거 같고, 각자의 취향이 드러나는 건 11-20위권에서가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20명 정도 꼽으려면 한국시의 애독자이기도 해야겠고...

릴케 현상 2007-10-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시인 선정과정에서 이렇게 나왔군요^^ --->김종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상화 김영랑 이육사 김현승 이용악 조지훈 신동엽 박재삼 기형도 등 이날 입에 오르내린 시인들은 이 중 누구를 최종 명단에 올리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적 성취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로쟈 2007-10-16 16:51   좋아요 0 | URL
새로운 이름들이 아니어서 좀 식상합니다.^^;

기인 2007-10-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등단연도는 아닌 것 같고, 1위부터 10위 순위인가 보죠? 헐;; 투표라.. 어렵네요;; 1위를 뽑는 것은 어렵고 20명 꼽는 것이 더 쉬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아마; 백석? ^^;

로쟈 2007-10-16 16:52   좋아요 0 | URL
사실 1-7명까지는 쉽게 견적이 나오는데, 그 이후 20위까지가 유동적인 듯하고 그래서 각자의 취행을 더 잘 반영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다시피 지난주에 발표된 올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에게 돌아갔다. 이미 10년쯤 전에 수상했더라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단골 후보였는데(미국 작가 필립 로스나 조이스 캐롤 오츠도 그런 식이다. 다들 오래 살아야겠다), 좀 미뤄진 탓에 올해 88세가 되는 최고령 수상작가가 됐다(2004년 옐리네크의 수상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던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작가로는 지난 1987년, 그러니까 딱 20년 전에 망명시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가 수상한 이래로 수상작가가 없어서 은근히 거명되기를 기대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레싱의 수상소감대로 "그들은 '언젠가 그 여자에게 상을 줘야 할텐데'라며 걱정했을" 테고, 이번에 그 걱정을 덜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레싱의 작품을 읽은 바 없다. <풀잎은 노래한다>(지학사, 1986) 등이 서점에 꽂혀 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한번도 손길이 간 적은 없다. 이유는 이 작가가 무얼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주파수를 맞출 수 없었던 것. 수상직후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기사들을 몇 개 읽어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아예 저렴한 소설 두 권을 주문했다(<황금 노트북>은 이달중에 다시 나온다고 한다). 내달에나 읽어볼 계획으로(노작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책은 모레나 받을 것 같고 미리 소개기사나 모아놓는다.

한겨레(07. 10. 13) 페미니즘 문학 선구자…사회성 짙은 소설 즐겨

다음주면 만으로 88살이 되는 도리스 레싱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중 최고령자에 해당한다. 1950년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하면서 시작된 그의 문학 경력은 어느새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신작을 발표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19년 지금의 이란에서 태어난 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성장한 레싱은 열네 살 이후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고 이후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면서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두 번 이혼한 뒤 1949년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지금 런던 교외 햄스테드에서 살고 있다.

백인 농부의 아내와 흑인 하인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인종 간 갈등을 비판한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보듯 초기의 레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들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와 흑인에 대한 억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1956년부터 남아공 입국이 거부되었다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이 무너지고 흑인 정부가 들어선 1995년에야 입국이 허용되었다. 또한 그는 1952년에 영국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1956년 헝가리 봉기를 계기로 탈당한 바 있는데, 이 무렵 그의 소설들은 진한 사회주의적 경향과 강렬한 반핵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레싱 문학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금 노트북>(1962)이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적 업적이며 남녀 관계에 관한 20세기적 관점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책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레싱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규정하는 데에 부정적이다.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남녀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해명이다. <황금 노트북>은 자서전적 (논)픽션과 노트, 수기, 일기 등이 다양하게 오가는가 하면 메타소설적 구성을 짜는 등 현란한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평민사에서 한때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으며, 도서출판 ‘뿔’에서 이달 중에 다시 나올 예정이다.

레싱의 숱한 작품 중에서도 한 젊은 여성이 테러 조직에 가담하는 이야기를 다룬 <선량한 테러리스트>(1985)는 테러와 반테러가 격돌하는 21세기 초 지금의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울림을 준다.
레싱은 근년 들어 본격문학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과학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문학계의 논쟁을 낳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마라와 단>(1999)과 2005년작인 그 속편 등의 과학소설에 대해서도 “인류를 원시적 상태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전지구적 재앙의 가능성이 도리스 레싱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녔던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07. 10. 13) 리얼리즘에서 SF까지… 펜을 마술봉처럼 휘둘러

노벨 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88)은 이란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자랐다. 대영제국의 몰락을 목도하고 반항적 에너지로 충만한 60년대를 온몸으로 견뎠다.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당대의 평론가들이 그녀를 존 오스번·아이리스 머독 같은 또래 작가들과 함께 ‘성난 청년들’(Angry Young Men)이라고 불렀다.

레싱은 1919년 10월 이란 바흐타란에서 은행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레싱이 여섯 살 때 일확천금을 꿈꾸며 짐바브웨로 이주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14세에 학교를 중퇴한 그녀는 보모·전화교환수·속기사·기자 등을 전전했다. 1949년 레싱은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을 데리고 런던에 이주했다.

데뷔작 ‘풀잎은 노래한다’(The Grass is Singing·1950)에 이어, 1952년부터 69년까지 ‘마사 퀘스트’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킨 ‘폭력의 아이들’(Children of Violence) 연작 다섯 편을 발표해 문명을 얻었다. 특히 연작 마지막 작품인 ‘네 개의 문이 있는 도시’(The Four- Gated City·1969)가 걸작으로 꼽힌다.

60년대에는 여류작가인 주인공 ‘아나 울프’가 인생을 성찰해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 ‘황금 노트북’(The Golden Notebook·1962)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소설은 정교한 구성을 보여준다. 자서전적 논픽션, 신문 기사, 수기, 일기 등 다채로운 형식을 소설에 도입했고, ‘소설 속에서 소설 쓰기’ 기법을 취했다.

1979년부터 84년까지 차례로 발표한 ‘아르고 선의 카노푸스: 기록(Canopus in Argo: Archives)’ 연작에서 레싱은 핵전쟁 이후 인류를 소재 삼아 SF까지 영역을 넓혔다. 80년대 이후에는 사실주의적인 소설로 돌아왔다. 당대의 좌파와 여성 운동가들을 풍자한 소설 ‘좋은 테러리스트’(The Good Terrorist·1985), 자서전 ‘내 살갗 아래서’(Under My Skin· 1994), 대영제국의 마지막 시기를 다룬 소설 ‘가장 달콤한 꿈’(The Sweetest Dream· 2001) 등이 근작이다.

레싱은 1952~56년 영국 공산당원이었고, 열렬한 반핵 운동가였다. 인종주의와 독재를 신랄하게 비판해 90년대까지 남아공·짐바브웨 정부의 ‘입국 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격렬한 청춘을 보낸 이 노대가는 그러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독일 DP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명해진 다음엔 너무 많이 주목을 받는다”며 “눈길을 받지 못하는 좋은 작가들이 많다”고 겸손해했다. 노벨상에 앞서 레싱은 서머싯 몸상, 메디치상 등을 받았다.(김수혜 기자)

07. 10. 15.

P.S.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하도 최근(노년)의 사진들만 뜨기에 작가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좀 찾아봤다(일련의 초상은 http://www.dorislessing.org/portraits.html 참조). 그 중 하나로 1962년 사진이니까 43살 때이다. 오르손에 담배를 꼬나들고 있는 모습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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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5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7-10-1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로쟈 2007-10-15 18:3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필라멘트 2007-10-1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상자 발표된지 몇일 지났는데 관련 포스트가 없길래, 혹시 로쟈님이 내심 기대했던 러시아 작가가 선정안됐다고 서운해서 그냥 패스하셨나 혼자 오해를 했었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작가 수상소식을 접한지도 꽤 오래됐네요. 이제 받을 때도 된 것도 같은데 몇년안에 받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2000년대 들어 영국작가들은 벌써 3명이나 수상했네요.

로쟈 2007-10-15 22:27   좋아요 0 | URL
레싱의 작품을 읽어본 게 없어서 좀 늦어진 것이죠.^^; 탈 만한 작가들이 수상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