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정부수립 60주년' 기획기사 꼭지들을 읽었다. 최근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건국신화 만들기'에 '지배 엘리트의 승리만 있고 민중의 피나는 투쟁은 없다'란 지적에서 바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벤야민의 역사주의 비판이다. 그가 보기에 역사주의는 승자들의 역사만을 기록한다. 반면에 역사적 유물론은 패자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며 그들을 상기하는 것이다(벤야민의 경고는 따라서 진보주의적 역사관으로는 파시즘에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벤야민의 유명한 경구이지만, 승자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다(그러니까 일면 부듯하더라도 양식이 있다면 큰소리로 떠들 것까지는 없는 역사다). 저들의 이승만 건국신화나 북한의 김일성 건국신화나 그러고 보면 한 통속이다. '기적의 역사' '승리의 역사'를 내세우지만 역사관에서만큼은 서로 식별되지 않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경향신문(08. 08. 19) 이승만 건국에서 성공 씨앗 찾는 뉴라이트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가 추진 중인 ‘건국신화 만들기’가 위험한 것은 현대사를 바라보는 몇 가지 인식틀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한국 현대사가 예정된 성공을 위해 걸어온 과정으로 본다. ‘기적의 역사’ ‘승리의 역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이러한 ‘역사 결정론’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이승만의 건국에서 이미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공의 씨앗이 배태돼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이승만의 건국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적화된 공산국가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라는 우익의 인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최근 극우 논객 조갑제씨가 했던 “박태환의 올림픽 우승은 이승만, 박정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 잘 보여준다.

역사 결정론은 한국 현대사가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이제 선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단계론’으로 이어진다. 해방 직후 공산화와 북한의 침략을 이겨내고 건국을 달성했고, 이를 토대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그렇게 해서 성장한 중산층이 물적 토대가 돼 민주화까지 성취했으니, 이제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다시 제2의 산업화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이 도식의 레이더 망에 잡히지 않는 모든 것은 역사에서 배제된다는 데 있다. 가령 1948년 제헌헌법의 균등 교육, 토지 균분 등 사회주의적 요소들과 친일파 처벌이라는 민족주의적 의제는 좌우 갈등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정부 차원에서 사라져버렸다. 진짜 건국 정신은 여기에 있는데도 이 정부와 뉴라이트는 그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주류 무대에서는 사라진 듯 했지만 끊임없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의 의제로 남아 이후 87년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는 토대가 됐고, 한국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데 기여해오고 있다.

산업화가 먼저 있었기에 민주화가 가능했다거나 둘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었다는 주장도 그런 점에서 사후 합리화의 성격이 짙다. 민주화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누군가가 ‘빨갱이’로 지목돼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배제될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문제 제기하며 실천하려 노력했던 가치이며 그 결과로 민주화도 가능했다. 산업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민주화를 한 것이 아니다. 산업화가 일어나기 전의 4·19가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도 참여했다는 6·3 항쟁이 그렇다.

신주백 국민대 연구교수(한국현대사)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는 이승만이 4·19 혁명에 의해 쫓겨난 일을 정면에서 주목할 수 없으며, 만주국군의 중위였던 박정희 같은 엘리트 장교 가운데 민족의 운명보다 일본의 운명과 자신의 미래를 동일시했던 반민족적인 성실한 기회주의자가 여럿 있었다는 점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 역사관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배 엘리트 중심의 역사관, 승리의 사관이라는 점이다. 이는 현대사 논쟁이라고 하면 늘 이승만, 박정희 등의 정치 지도자 얘기로만 이뤄지는 것과도 관계있다. 여공과 식모, 건설노동자, 농민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또 짓밟힌 민초들의 삶은 간단히 무시해버리거나 그저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넣는 정도의 인식이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한국현대사)는 “역사란 다양한 가능성의 갈등과 그 역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라며 “여러 가능성들 중 현실화된 한 가지 가능성만 보고 희생된 다른 가능성들과 그로 인한 갈등을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식의 역사 인식은 과거를 현재에 종속시키려는 태도”라고 말했다.(손제민기자)

08. 08. 19.

 

 


 

P.S. 오늘 읽은 기사의 나머지 두 꼭지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체성과 건국신화 만들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808181834035)와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의 위험한 현대사 인식'(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808181839225) 이다. 기사에서도 참고자료가 밝혀져 있지만, 이 주제와 관련하여 네 권만 꼽자면, 박찬표의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7), 참여사회연구소가 기획한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 2007), 그리고 서중석 교수의 <한국 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 2007)과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펴낸 <건국 60년의 재인식>(기파랑, 2008)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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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19 20:54   좋아요 0 | URL
이명박 정권은 수순을 원칙적으로 잘 밟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제가 부디 오해하거나 잘못 본 것으로 확인되길 바라지만
이 생생한 현실이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로쟈 2008-08-19 22:56   좋아요 0 | URL
이번주 시사잡지들은 모두 인천공항 민영화 플랜을 다루고 있더군요. 그걸 읽으며 '무서운 놈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19   좋아요 0 | URL
이번 주에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의 최근 글을 읽으며 그들의 건국론을 파악해 보고 있습니다.특히 이승만 살리기와 관련해서 보고 있습니다.제 서재에 그 감상을 올릴까 생각중인데 상상 외로 읽을 분량이 많군요.

로쟈 2008-08-20 23:22   좋아요 0 | URL
돈 주고 사서 읽을 생각은 없는지라 노이에자이트님의 감상이나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미리 옮겨놓는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정리한 글이다(사실 벤야민의 글은 '역사철학테제'란 별칭이 더 잘 들어맞는 텍스트이다). 분량상 자세하게 적을 수는 없었으므로 '희미한 정리'라고 해야겠다. 물론 내 몫은 텍스트를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어떤 흥미를 유도하는 것이기에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겠다. 한겨레가 고집하는 '베냐민'이란 표기가 이번 만큼은 '벤야민'에 양보한 것도 개인적으로 흥미롭다...

한겨레21(08. 08. 26) 어떤 희미한 메시아적 힘

흔히 벤야민의 ‘마지막 텍스트’로 불리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가 <발터 벤야민 선집5>(길 펴냄)에 포함되어 새로 번역돼 나왔다. 예전에 반성완 편역의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 ‘역사철학테제’라고 옮겨졌던 글이다. 18개의 단장(테제)과 2개의 부기로 이루어진 짧은 글이지만 그의 역사관 혹은 역사철학을 집약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압축적인 만큼 편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관련 노트들’도 이번에 번역되어 읽기에 도움을 준다.

먼저, 벤야민은 자신의 역사관을 한 전설적인 자동기계에 비유한다. 이것은 서양장기를 두는 기계장치인데, 터키복장의 인형이 장기판 앞에 앉아서 상대방의 수에 응수하며 매번 승리한다. 신기해 보이지만 실상은 장기의 명수인 꼽추 난쟁이가 장치 안에 들어앉아서 인형의 손을 조종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벤야민이 이 기계장치의 인형을 ‘역사적 유물론’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는 신학을 그 왜소하고 흉측한 꼽추 난쟁이에 비유한다. 즉 역사적 유물론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자기편으로 고용하여 거느려야 한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분명 그의 역사관은 ‘역사적 유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한데 그 역사적 유물론은 유대교적 메시아주의와 한패이다. 그런 점에서 통상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난다.

‘신학과 결합한 역사적 유물론’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구원의 관념을 등장시킬 때이다. 특이한 것은 이 구원이 미래가 아닌 과거로부터 온다는 점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과거는 그것을 구원으로 지시하는 어떤 은밀한 지침을 지니고 있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예전에 다른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갔던 바람이다. 우리가 귀 기울여 듣는 목소리 속에는 이젠 침묵해버린 목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우리가 구애하는 여인들에게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자매들의 모습이 들어 있다. 그렇게 과거의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놓여 있으며 앞서간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함께 주어져 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러한 약속과 메시아적 힘을 발견하는 자이다. 때문에 과거의 역사가 원래 어떠했는가를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식의 역사주의는 역사적 유물론과 거리가 멀다. 그와 달리 “역사적 유물론의 중요한 과제는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다.” 

역사를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역사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은 보편적 세계사 서술 같은 대목에서다. 거기서 보편사의 방법론은 그저 가산(加算)적이다. 역사주의적 역사서술은 연속적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이런저런 사실의 더미를 긁어모으는 일에 바쳐진다. 반면에 역사적 유물론자에게 역사서술은 하나의 구성이다. 그 구성의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이다. 이 ‘지금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지칭하는 ‘현재’가 아니라 그러한 연속체를 무효화한 시간이다. 따라서 멈춰진 시간이며 정지해버린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가 직선적인 시간을 따라서 진보한다는 진보주의적 관념과도 이별한다. 벤야민에게 ‘진보’란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1920)에서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과거의 잔해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시키려고 하는 천사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세찬 폭풍, 곧 훼방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역사의 천사, 곧 역사적 유물론자는 특정한 사건 속에서 메시아적 정지의 표지를 발견하고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하려 애쓴다. 그럼으로써 균질하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과정을 폭파시키고자 한다. 벤야민의 비유에 따르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주의라는 유곽에서 ‘옛날 옛적에’ 하는 창녀에게 몸을 던지는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긴다. 그 자신은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하기에 충분한 정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1830년 7혁 혁명 때 파리 곳곳에서는 시계탑의 시계를 향해 사람들이 총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혁명이란 시간의 정지이며 새로운 시간의 도입이기에 그렇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다.

08. 08. 18.

 

 

 

 

P.S. 두 종의 우리말 번역본과 함께 내가 참고한 것은 영어본 <선집>(4권), 그리고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2)이다. 지젝은 20쪽(235-255)에 걸쳐서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가 갖는 함의를 자세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준다. 참고로, 240쪽에 인용된 벤야민 텍스트에서 '사적(史的) 주체'는 'historical subject'의 번역인데, 원문 자체가 'historical object'의 오식으로 보인다. '(역)사적 대상'이라고 옮겨야 할 듯싶다. 그리고 245쪽에서 언급되고 있는 메를로퐁티의 <휴머니즘과 공포>는 <휴머니즘과 테러>로 옮기는 게 낫겠고, 255쪽에서 '현실 민주주의(real democracy)'는 '진정한 민주주의' 내지는 '진짜 민주주의'로 옮기는 게 좋겠다. 변질과 부패 가능성을 제거한 '순수한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젝이 보기에 그러한 순수한, 리얼한 민주주의는 비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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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의 조건과 인민생활 문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02 00:26 
    내일자 경향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윤곽을 잡고 2시 가까이에 보낸 원고이다. 말미에 나오는 호손의 말은 어제 잠깐 훑어본 다니엘(대니얼) 네틀의 <행복의 심리학>(와이즈북, 2006)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성격의 탄생>(와이즈북, 2009)도 그의 책이다.   경향신문(10. 02. 02) [문화와 세상]행복은 나비와 같다   “행복한
 
 
sommer 2008-08-19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야민의 이 테제를 읽고 나서 한참 뒤에 어렸을 때 보았던 '이상한 나라의 폴'을 그의 역사철학으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이 들더군요. 특히나 그의 '정지의 변증법(Dialektik des Stillstandes)'은 폴이 현재의 위기의 순간 혹은 결정의 순간마다 현재시간을 정지시키고, 피폐하기 짝이 없는 현실의 그 곳을 빠져나와 마왕에게 잡혀있던 리나/과거의 상을 구하려 떠나고 실패하는 반복된 구조를 떠올리게 합니다. 숄렘의 언급에 대한 기억이 맞다면, 역사의 천사는 짧은 순간 노래 부르기 위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거의 깨진 상들로 통하는 출구 혹은 그것의 시각화 같은 게 아닐까 가늠해 봅니다.

로쟈 2008-08-19 15:07   좋아요 0 | URL
어렴풋이만 기억이 나는 만화인데, 재미있는 해석입니다.^^

yoonta 2008-08-20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로쟈님 이번 번역본은 반성완본과 비교해서 어떻던가요?

로쟈 2008-08-20 23:21   좋아요 0 | URL
원고 쓰는 데 주안점을 두고 읽은지라 자세히 대조해보진 않았습니다. 몇몇 어휘 선택에서의 차이를 빼면 큰 차이는 없는 듯싶은데요...
 

지난주말 한겨레에 실린 강명관 교수의 '고금변증설'을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4576.html).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이란 제목 자체가 이미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 안 그래도 오늘 시사IN의 사회면에서 기륭전자 두 노조원의 단식 농성이 60일이 넘었다는 기사를 읽고(그게 가능하다니!) '대단한 한국사회!'란 말을 속으로 되뇌어야 했다(필자인 김현진씨처럼 동조 단식은 못하고 점심 한끼만을 굶었다). "누가 굶으라고 했냐?"가 사측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보다 선명한 '계급의식'(일상어로는 '악'이라고 한다)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하지만 생각하면 슬프다. 단식밖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인지?)...

한겨레(08. 08. 16)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

흔히 옛날 문헌을 읽고 인용하지만 그 진위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 같은 관찬 문헌은 어떤 정파, 혹은 당파가 실록을 편찬하느냐에 따라 기록의 출입이 적지 않고, 사건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다르다. 문헌에 남은 것이라 해서 모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옛 문헌 중에서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고문서를 들 수 있다. 이것도 조작이 가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래도 고문서는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친다.

예전에 고문서를 연구한 책이나, 고문서를 모은 책을 훑어보곤 했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그중 내 눈길을 가장 끈 문서는 ‘자매문기’(自賣文記)란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남에게 파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문서’라는 뜻이다. 한두 가지 실례를 보자. 1862년 1월 서른한 살 된 사내 심성옥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 복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자식들을 50냥을 받고 원진사 집에 팔고, 자매문기를 작성한다. 문서 끝에는 차후에 만약 자신의 친척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서를 증거로 내세우라는 말도 붙어 있다.

이 문서는 최승희 교수의 <한국고문서연구>에 나오는 것이다. 같은 책에는 자매문서 몇 장이 더 실려 있다. 1869년에 작성된 문서를 보면, 이미봉이란 사내가 흉년에 먹고살 방도가 없어서 자신과 자신의 딸을 돈 15냥에 아산군수를 지낸 김씨 양반에게 팔고 있다. 인신매매는 어떤 사회나 중죄인데, 이 경우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내와 자식, 여기에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까지 모두 노비로 팔아먹고 있으니, 중죄 중의 중죄라 할 것이다.

이런 중죄를 저지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빈곤 때문이었다. 이런 부류의 자매문기가 적잖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가난에 시달리다가 자신과 가족을 부유한 사람에게 노비로 파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더 들어보자. 1731년에 작성된 자매문기에, 한영이란 사람은 굶주리고 얼어 죽을 지경이 되자 자신의 11살 된 딸 분절이를 아무 대가 없이 김귀일이란 사람에게 노비로 넘겨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1832년의 정정옥은 어머니의 장례 비용을 마련한다며 자기 아내와 자식을 돈 8냥과 쌀 한 섬을 받고 팔아넘기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노비로 파는 사람은 당연히 양민이다. 이들이 만약 경작할 토지가 있다면, 당연히 자신과 가족을 팔지 않을 것이다. 농민이 토지를 잃고 쫓겨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소수 양반지주의 토지 집적이었다. 박지원이 ‘한민명전의’에서 역설하고 있듯,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바닥나면, 나라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라의 기민(飢民) 구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하던 땅문서를 부잣집에 넘기고 곡식을 받아 연명한다. 이 기회에 부자들은 얼마 안 되는 곡식으로 안방에다 토지 문서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흉년이 들면 팔 것도 없고, 빚은 쌓이고 해서 땅을 떠나고, 마침내 자신과 가족을 파는 처참한 지경으로 전락하는 것이 농민의 운명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이 문제를 사회개혁의 핵심으로 생각했다. 경작하는 농민이 토지를 보유하는 것, 농민이 토지를 떠나지 않음으로 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실학자들 최대의 관심이었다. 이익이나 박지원이 농민에게 일정한 토지를 분배해 주고 강력한 법을 제정해 그 토지는 절대 매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견해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왜냐?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흡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바로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개혁이 될 리 만무했던 것이다.

토지를 헐값에 양반에게 건네준 양민은 마침내 자신의 신체와 영혼까지 양반 지주들에게 넘긴다. 그들은 자신의 몰락이 모순된 양반 지배체제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당장 자신과 가족을 사들인 양반지주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이들의 은혜가 아니라면, 굶주려 산골짜기나 들판에 뒹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사회에는 노비제도 같은 후진적 제도는 없다. 자신과 가족을 파는 사람도 없다. 대신 노동력 외에 다른 수단이 없어 오직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자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문제는 그 노동력을 구매하겠다는 쪽이다. 옛날 양반들이 굶주린 백성을 노비로 사들이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였듯, 이제 자본은 노동력을 사들이거나 말거나 자유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젊은이가 도서관마다 넘치고, 자기 노동력을 제값에 팔지 못하고 궁핍에 전전긍긍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수백만 명이다. 그들의 모습에 살기 위해 스스로를 팔아야 했던 조선시대 농민의 모습이 겹친다.

정치가 소수층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술책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먼 산에 난 불을 바라보듯 왜 딴청으로 일관하시는가. 비정규직의 애절한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없으니, 날마다 신문이며 방송에 이 문제의 해결에 골몰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보여야 하겠지만, 그런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무엇인지를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는 분들은 모쪼록 답을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강명관/ 부산대 교수 한문학)

08.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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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8-08-18 20:25   좋아요 0 | URL
노조원의 건강(혹은 목숨) 같은 게 쓸 만한 협상 카드가 될 거 같지 않아요.
저들이 겁낼 만한 걸 내걸어야 하는데, 눈도 깜짝 안 하잖아요.
정말 다른 방도는 없는 걸까요..

로쟈 2008-08-18 23: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궁금합니다...

마늘빵 2008-08-18 22:29   좋아요 0 | URL
-_- 투쟁하고 시위하는 우리가 손해볼 짓은 안하는게 좋을거 같아요. 이런거 안 먹힌지 오래됐죠. 우리는 저들이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있을거라 전제를 깔고 시작하지만, 그 전제가 잘못됐다는 걸 항상 뒤늦게 깨닫습니다. 너무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거죠. 양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건 아니란걸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처럼 말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주변에 깔렸어요.

로쟈 2008-08-18 23:25   좋아요 0 | URL
네, 양심을 기대할 일은 아닌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8 23:2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나라당의 든든한 핵심지지층이기도 합니다.그러니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현상을 즐기는 거죠.

로쟈 2008-08-18 23:24   좋아요 0 | URL
자영업자들은 그렇다고 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그런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9 00:16   좋아요 0 | URL
예.그렇답니다.어제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집권 15년 언론의 위기라는 KBS스페셜을 보니 거기도 택시운전사가 경제를 살릴 거라면서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한다고 말하더군요.

로쟈 2008-08-19 15:09   좋아요 0 | URL
그건 그럴 수 있겠는데요, 비정규적 노동자가 한나라당의 '핵심지지층'이라는 통계를 보셨나 해서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48   좋아요 0 | URL
서울의 모 기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이가 알려준 겁니다.그리고 경향신문이 지금도 특집기획으로 내고 있습니다만 올 초에도 비정규직에 대해 계급배반 투표를 하는 대표적인 직업군이라고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하지만 이런 현상은 거의 세계 보편이라고 봅니다.그래서 레이코프의 책이 우리나라 정계에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봅니다.
 

'오역의 현실과 번역의 길'(http://blog.aladin.co.kr/mramor/2246155)에 덧붙였던 글인데, 분량이 길어져서 따로 제목을 붙인다. <권력과 지성인>(창, 1996)과 <저항의 인문학>(마티, 2008)의 몇몇 오역에 대한 코멘트이다.



먼저, <권력과 지성인>의 오역 한 대목만 지적한다(제목의 '지성인'도 '지식인'이라고 옮겨져야 한다). 영국 BBC의 리스(Reith) 강좌(1993년)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내가 관심을 갖는 대목은 4장 '전문직업인과 아마추어'이다('전문가와 아마추어'라고 옮기고 싶다). 책에 대한 요약은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있는집, 2003)의 1부 3장을 참조.

 

 

 

 

사이드는 서두에서 국내에도 많이 소개돼 있는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 레지(스) 드브레(번역본은 '레기 드브레이 Regis Debray'라고 옮겼다)의 <교사, 작가, 명사: 프랑스의 지식인들>(1979)의 내용을 따라가는데, 드브레에 따르면 20세기 프랑스 지성사는 지식인들의 주 활동무대를 기준으로 몇 단계로 나뉜다. 1880-1930년까지는 소르본느대학이 활동거점이었고 대부분의 지식인이 대학교수였다. 그리고 1930년 이후 대략 1960년까지는 '신프랑스평론' 같은 출판사/잡지가 활동의 주무대가 된다. 이에 대한 서술이다.



"대락 1960년까지 사르트르, 드 보바르, 까뮈, 모리악, 지드, 말로와 같은 저술가들은 제한 없는 영역에 걸치는 저술활동, 자유에 대한 신조, 그리고 1960년대 이전에 있었던 성직자적 엄숙성이라는 것과, 그러한 것과 대조적인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요란스러운 광고의 중간쯤 성격을 지닌 그들의 담론으로 인해 사실상 교수직을 박탈당한 지식인 계층이었다."(118-9쪽)

사르트르 등의 저술가들이 "사실상 교수직을 박탈당한 지식인 계층이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원문은 이렇다: "Until roughly 1960, such writers as Sartre, de Beauvoir  ... were in effect the intelligentsia who had superseded the professorate because of ..." 즉 대학 바깥의 지식인이었던 이들이 1930년까지 대세를 이루던 교수들, 곧 강단 지식인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걸 번역본처럼 엉뚱하게 옮겨놓으면 "잘못된 번역서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엉터리로 아느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번역서'란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특히나 저작료까지 지불한 번역서일 경우엔 오히려 수용에 '걸림돌'이 된다(오늘도 조금 보다가 한숨을 내쉰 지젝의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같은 경우가 유감스럽게도 드물지 않다). 사이드의 지식인론을 집약하고 있는, 때문에 분량에 비해서 상당히 유익한 <지식인의 표상>이 제대로 다시 번역되기를 바란다...



말이 나온 김에, 사이드가 생각하는 인문학과 인문주의에 대한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저항의 인문학>(마티, 2008)에서도 몇몇 오역들은 교정되면 좋겠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본문 첫 페이지의 이런 대목: "세 번째로는, 비서구 문화권에서 성장한 경계인이자, 사이문화인bicultural인 제가 보통의 토박이 미국인이나 '서구인'으로 불리는 이들에 비해 관점이나 전통 같은 것에 특히 민감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17쪽) 원문은 "Thirdly, I grew up in a non-Western culture, and, as someone who is amphibious or bicultural, I am especially aware, I think, of perspectives and traditions other than those commonly thought of as uniquely American or 'Western'."

이 책 역시 미국의 문화와 인문주의 등을 주제로 한 2000년과 2003년의 연중 강연들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인문주의의 영역'을 테마로 한 첫 강연문에서 사이드는 자신이 '미국의 인문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를 몇 가지 든다. 인용문은 그 세번째 이유인데, '에드워드 사이드'란 특이한 이름이 암시해주듯이('에드워드'는 영국의 황태자 '에드워드'를 딴 것이고 그의 아랍인 성이 '사이드'이다) 그가 영국 지배하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아랍인(팔레스타인인)이면서 예루살렘과 카이로(이집트)의 영어 학교를 다니고 미국대학에서 영문학 교수가 된 자신의 성장배경이 그것이다. 자신이 '경계인'이고 '바이컬추럴'('2개 국어 사용자'를 뜻하는 '바이링구얼'을 떠올려보라)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서구 외에 다른 전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것.

번역문은 "'those commonly thought of as uniquely American or 'Western'" 다음에 'perspectives and traditions'가 생략돼 있다는 걸 놓침으로써 '독특하게 미국적이거나 서구적이라고 간주되는 관점이나 전통"을 "보통의 토박이 미국인이나 '서구인'으로 불리는 이들에 비해"라고 오역했다. 사이드가 말하는 것은 그러한 관점이나 전통 이외의(other than) 관점이나 전통에 대해서도 자신이 특별히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예컨대, 그는 '아랍문화'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미국인'이다!). 때문에 그의 관심은 "미국 인문주의의 유럽적 선조들 그리고 서구의 시야 '바깥'으로 여겨지는 것이나 그 바깥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오역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신뢰를 잠식한다(사실 사이드를 번역하는 일은 어렵다. 그의 문장들은 나도 별로 즐기는 편이 못된다). 또 다른 사례로 동료교수이자 비평가 라이오넬 트릴링(1905-1975)에 대한 언급('리오넬 트릴링 Lionel Trilling'이라고 옮긴 것에서 역자가 '초면'이란 걸 알 수 있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트릴링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거의 없다. 찾아보니 아주 옛날에 <문학과 사회>(을유문화사, 1960)가 번역된 정도('라이오넬 트리링'으로 표기됐고, 역자는 양병탁). <자유로운 상상력(The Liberal Imagination)>의 번역이다(두산백과사전을 따른 제목인데, '진보적 상상력'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제 말년의 동료인 리오넬 트릴링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컬럼비아의 인문학 수업은 학생들에게 독해의 상식적 기초를 제공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으며, 후에 학생들이 읽은 책들을 잊어버린다 하더라도(많은 학생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적어도 같은 책을 잊어버리는 셈 아니겠냐고 말입니다."(20쪽)

여기서 "제 말년의 동료 리오넬 트릴링"은 "my late colleague Lionel Trilling"을 옮긴 것인데, 'late'는 '고(故)'란 뜻이다. 나라면, "제 동료였던 고(故) 트릴링 선생님"이라고 옮기고 싶다. 그리고 '상식적 기초'라고 옮긴 건 '공통의 기초(common basis)'를 잘못 옮긴 것이다. 트릴링이 말하기를, 대학의 인문학 강좌가 학생들에게 공통의 독서목록을 제시하므로 나중에 학생들이 읽은 책을 다 잊어먹더라도 '똑같은 책'을 잊어먹은 것이 아니겠는가?(이게 교양교육의 의의다!).

"이 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사회과학이나 과학 분야의 기술적인 글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읽지 말자는 주장에 반하는 말이었으므로 따르지 않을 도리는 없었습니다."(20쪽) 원문은 "This did not strike me as an overpowering argument, but, as opposed to not reading anything except technical literature in the social sciences and sciences, it was compelling nevertheless."(4쪽)

이 대목에서 'overpowering'을 그냥 '인상적' 정도로 옮긴 것은 인상적이지 않다. '반대주장을 압도할 만한'이란 뜻이다. 어떤 반대주장인가? 인문학 무용론 내지는 교양교육 무용론이겠다. 중간의 삽입구를 제거하면, 이 문장은 This did not strike me as an overpowering argument, but it was compelling nevertheless."로 요약된다. 트릴링의 주장은 overpowering 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compelling 하기는 했다는 것. 번역문에는 이런 대구가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다시 옮기면, "그것은 제가 보기에 인문학을 옹호하는 압도할 만한 주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전문서만 읽으면 된다는 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내세웠던 트릴링은 어떤 인문주의를 실천했나? "그들 가운데 몇몇 -특히 트릴링- 은 자주 자유주의적 인문주의에 비판적이었으며, 때로는 불온하게, 물론 세간의 이목이나 그들의 학계 동료와 학생들의 의견이 그랬었다는 것이지만, 전문용어나 과도한 전문가주의 없이 인문주의적 삶이 닿을 수 있는 가장 풍요롭고 가장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21쪽) 원문은 "Some of them -Trilling in particular- frequently spoke critically about liberal humanism, sometimes even disquietingly, although in the public eye and in the opinion of their academic colleagues and students, they represented the humanistic life, without jargon or undue professionalism, at its richest and most intense."

컬럼비아대학출판부 주최의 강좌였던 만큼 컬럼비아대학의 인문학 전통에 대한 '자화자찬'이 좀 들어간 대목인데, 트릴링을 필두로 컬럼비아'학파'의 경향을 지목하고 있다. 말의 좋은 의미에서 '보수적'이고 '고지식했다'고 이해된다. '자유주의적 인문주의(liberal humanism)'는 자유분방하면서 관용적인 인문주의겠다. 가령 청바지를 입고 인문학을 강의한다든가, 교양 독서목록에 최신 문학작품을 집어넣는다든가 하는. 트릴링 등은 그런 태도에 대해서 자주 비판적이었다는 것. 그런 보수적 태도와 '불온하게'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disquietingly'는 내가 읽기엔 '걱정스러울 정도로'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disquietingly'는 앞에 나오는 'spoke'에 걸린다(로카드님이 지적해주셨다). 

다시 옮기면, "특히 트릴링 선생님을 비롯하여 몇 분은 자주, 심지어 걱정스러울 정도로 자유주의적 인문주의에 대해 비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또 대학 동료나 학생들이 생각하기에는 전문용어 들먹이기나 같잖은 전문가주의와는 거리가 먼, 가장 풍요로우면서도 가장 강렬한 인문주의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흠, 이젠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인문주의적 삶'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드문 것 아닌가 싶다(전문용어나 들먹이면서 같잖은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이들은 드물지 않지만)... 

08. 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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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8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ose가 perspectives and traditions를 받는 대명사고 그 뒤의 thought는 분사인가요?

로쟈 2008-08-18 23:23   좋아요 0 | URL
네, 명사라면 복수형이 와야겠죠...
 

지난주에 필요 때문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창, 1996)을 뒤적거렸는데, 이미 알고 있었던 바이지만 한심한 오역들이 속출하여 짜증스러웠다. 원제가 '지식인의 표상(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s)'이지만 '오역의 표상'이라고 해도 무방한 책이다. 이에 대한 맛보기 지적은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있는집, 2003)의 1부 3장을 참조할 수 있다. 책은 서경식 교수도 '영향과 격려를 많이 받은 책'이라고 토로하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938368), 한국어로 이 책을 읽고 영향과 격려를 받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참고로, 일본어본과 중국어본의 제목은 모두 <지식분자론>이다). 젊은 세대가 어제의 야구 한일전에서처럼 일본을 '이기고자' 한다면 이런 대목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혹시나 해서 서평을 검색해보니 수년 전 <말>지의 기사가 뜨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제목 그대로 '구조화된 졸속 번역, 부실한 한국 인문학'에 대한 지적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유효하다는 게 씁쓸하다.  

말(2001년 2월호) 구조화된 졸속 번역, 부실한 한국 인문학

최근 대학원생들이 발간한 무크지 <모색>은 사제지간이 아니라 도제가 되어버린 대학원생의 실태, 그리고 교수와 학생간 침묵의 카르텔을 폭로했다. "번역을 제자들에게 시키는 것은 그나마 애교로 봐줄 만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글, 논문, 심지어 책까지 대부분을 제자들이 집필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천만원짜리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수행한 대학원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수고비 명목의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허리 아래' 이야기는 누구도 공개하지 않듯, 이 공공연한 비밀은 지금껏 우리 모두를 '비밀결사대'로 만들었다. 결사대란 한사코 비밀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해 현실의 상처부위가 내뿜는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 폭로했다. 몇 사람(필경 폭로한 사람이리라)이 다칠 테고 문제의 교수는 도덕적인 질책으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도의적 책임을 지고 교수직에서 물러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뒷말이 나올 것은 뻔하다. "왜 나만 갖고 이러냐. 그런 교수가 어디 한둘이냐." 맞다.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한둘이 아닌 상황을 만드는 문화 혹은 구조'로 옮아간다.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대역비리는 공모적인 것이 아니라 착취관계에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석박사과정 학생 가운데 지도교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느긋한' 처지는 거의 없다. 출신학교가 평생을 따라다니고, 이후 학문적 행로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순종주의' 풍토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양 철학자 김상봉씨는 이런 현실에서 건실한 학술번역이 나올 수 없다고 꼬집는다. "박사 후 연구원 과정에 지원한 제자에게 지도교수가 학술서적 대역을 요구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의 장래를 쥐고 있는 교수의 요구를 부당하다 해서 거절할 수 없는 입장으로 난처해하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학생이 책임 있는 번역을 하리라 보기는 힘듭니다."

"왜 나만.... 어디 그런 교수가 한둘이냐"
지난해 언론과 여론을 들끓게 했던 영어공용어화론의 중심에 있던 소설가 복거일씨는 "모국어와 이별한다는 것은 당장은 쓰라린 일이지만, '큰마음 먹고' 후손을 위해서 한국어를 버리자"고 진심 어린 걱정을 털어놓았다. 영어에 주눅들어 있는 이들에게는 다만 '엽기적인' 농담으로 들리겠지만, 논쟁의 거품을 걷으면 언어기능주의의 뼈대가 드러난다. 당시 복거일씨의 주장에 『신동아』2000년 9월호에 반론을 제기했던 정시호 교수(경북대 독어교육과)가 "언어를 '가지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학술서적의 번역을, 해당 외국어를 '좀 하는' 학생들에게 맡긴 교수들은 언어기능주의자라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혹은 그들이 '나쁜' 교수이기 때문인가. 그런 면도 없지 않다. 만약 '학자적 양심'이란 것이 있다면 최소한의 양심이 없는 교수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학전공 C교수가 십 수년 전에 출간한 『위대한 법사상가들』은 일본어로 된 논문을 학생들에게 번역시켜 출간했다는 사실은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다. 자연히 오역 투성이에 한글도 아닌 일본어식 표현이 곳곳에서 튀어나오지만, 이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C교수는 최근에도 번역서를 자신의 저작으로 둔갑시키는 등 학자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학계의 평가가 이미 퍼져 있다.

오역문제가 공론화된 사례는 물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도서출판 창. 1996)이 번역상의 오류로 인해 완전히 재번역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을 번역해 국내에 사이드를 최초로 소개한 박홍규 교수(영남대 법학과)는 지난 1996년 『교수신문』 지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오역사례를 나열하고 재번역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공동번역자인 당시 전모 서경대 교수와 서모 고려대 강사의 반론도 있었다. 지상논쟁은 끝났고, 오역사례는 회자되고 이슈를 낳아 책임 있는 학술번역의 중요성은 학계에 어느 정도 환기되었다.(실제 번역을 맡았던 이는 이름이 실렸던 교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역으로만 따지자면 우리 시대의 스승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학문적 존경의 최상급에 위치한 고 함석헌 선생 역시, 일본어 중역으로 인한 과실의 표적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니, 오역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선생의 간디와 칼릴 지브란 번역본은, 일어 외에는 다른 언어를 배운 적 없는 해방 이전 식민지 시대에 공부했던 60, 70년대 지식인들의 공통된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지금껏 검증된 결정적인 오역사례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에서 'trade union'을 '노동조합'이 아니라 '무역협회'로 번역한 경우는 번역작업이 사회현실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 가장 희극적인 사례이다.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에서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one-dimentional man)이 '평면적 인간'으로, 제랄드 그라프의 '문학에 대항하는 문학(Literature against itself)'이 '자신이 적이 되어가는 문학'으로 오역되는 등, 이들 오역의 심각함은 원서가 갖는 날카로운 현장감과 정치성이 두루뭉수리로 희석되어 버리는 데 있다.

잘못된 번역서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유종호 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는 번역의 기술적인 어려움에 주목하기도 한다. "출판사에서 다급하게 요구해서 졸속으로 번역되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하는 경우 일어와 영어 중역으로 번역을 망치는 경우도 있지만, 번역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도 간과할 수 없지요."

하지만 '번역은 반역'이라는 문학작품 번역의 원초적 불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번역이 어렵다는 사실에 호소하기에는 국내 학술서 번역의 오류는 이미 정도를 넘어서 있는 실정이다. 인문학 강의실에서 교재로 번역서를 쓰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토로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고, 번역서를 '해독'하다 결국 원서를 찾아 확인절차를 거치는 낭비는 흔한 사례이다.

번역은 반역 아닌 졸역, 오역인 현실
오역과 졸역의 문제가 영세한 우리의 출판현황과 얽혀 있다는 지적은 비약이 아니다. 특히 인문학 번역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번역되기 일쑤다. 자연히 번역자는 출판사와의 게임에서 제2의 창작자가 아닌 '계약직 노동자'에 불과한 위상을 갖게 될 뿐이다. 굵직한 오역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현대미학사' 역시 그러한데, 전문적인 학술서의 경우 번역자에게 출판의 대가로 인세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저작권 로열티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윤건차 교수의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당대)를 번역한 장화경 성공희대 교수는 번역자가 대접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출판사에서는 두꺼운 학술서적을 두세달 만에 번역해달라고 합니다. 그런 경우엔 꼼꼼히 번역하기 힘들어요. 게다가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한 학술서적의 번역료를 형편없는 인세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재판을 찍을 때 인세를 챙겨주질 않는 일도 있습니다."

최근 한 일본문학 전문번역가는 출판사가 15일만에 책 번역을 요구하는 황당한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판사를 악덕기업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출판사와 번역자 모두 척박한 학문현실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학술서적은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의무구매하도록 돼 있다. 책값이 비싸고 소장에 적합한 도서관용 하드커버와, 저렴하고 휴대하기 편한 시장판매용 소프트커버의 두 종류로 출판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어떻든 미국의 학술전문 출판사는 좋은 책만 출간한다면 '싸고 빠른' 번역자에게 맡겨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몰두하지 않아도 적자는 면한다.

번역에 손놓고 있는 교수들에게 일말의 면죄부가 있다면, 그건 번역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학계의 풍토다. 니체의 저서를 영어로 번역한 월터 카우프만이 니체 전문학자로, 롤랑 바르트를 영어로 옮긴 수잔 손탁이 미국에서 바르트에 관해 일가를 이뤘다고 인정받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우리나라에도 리처드 로티를 줄곧 번역해온 김동식 육사 교수가 있지만, 김 교수의 작업을 학문적인 성과로 인정하기보다는 성가시고 고된 작업을 대신 해내서 감사하다는 정도이다.

오역문제를 지적해온 박홍규 교수는 일본과 비교하면서 번역작업의 학문적 가치를 재차 역설한다. "일본에서는 산스크리트어같이 희귀한 언어로 된 저서나 경전의 번역이 탁월할 때는 석박사 학위 논문으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책임 있는 번역판이 구비돼 있기 때문에 원전을 인용할 때도 번역서의 페이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번역물이 '지적인 공유재산'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지요."

박교수는 졸속한 국내 번역실태에 분기탱천 '번역 윤리'를 언급하고, 급기야 '번역감시단'을 만들자는 주장을 펼칠 만큼 졸역으로 인한 지적태만과 허위의식이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우리말이 학문언어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이미 학계에 팽배해 있다. 김상봉씨는 우리말이 근대적인 학문언어로 성장하는 계기를 번역작업의 활성화에서 찾고 있다. "번역은 우리말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장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모국어의 발전이라고까지 봅니다. 졸속한 번역은 우리말을 발음기호로 전락시켰습니다. 가능한 한 우리말을 개발하려고 애쓰고 끊임없이 학문적인 말을 길러내는 것이 철학(인문학}에서 번역작업이 할 일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가 지난해 발간되면서 그간 잠수해 있던 문제의식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번역의 문제조차 근대성이라는 체에 걸러야 하며, 알다시피 우리의 근대라는 체는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번역자 임성모 씨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는 서구, 중국, 일본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 말하자면 '삼중 번역된' 근대"다. 지금에 와서야 '저항으로서의 번역'(윤지관)이 회자되지만, 그것 역시 삼중 번역된 근대의 상처를 끌어안고 시작해야 할 프로젝트다.



주체적 번역으로 근대성 이룬 일본
반면 일본은 서양 근대의 산물을 일찌감치 철저히 번역해 모방했다. 그 결과 이제 주체적 모방으로 나아가는 활주로를 뚫어낸 것이다. 일본사상사 전공자인 강재언 교수의 구분법에 의하면, 18세기 초반에 네덜란드어 번역으로 난학(蘭學)이 활성화된 사실을 두고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의 갈림길이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2백년 번역 역사를 거치면서 일본은 근대를 형성하고 완성했으며, 번역에서도 '주체적 번역'이라는 역설적인 단어의 배합을 허용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를 증명하듯 얼마 전에는 한 학자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마치 소설처럼 번역해 대단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랜 번역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번역을 괄시하면서 원서와 저자의 권위를 숭배하는 국내 학계에서는 언간생심 생각지도 못할 시도다.

이제 오역(욕?)의 역사를 마감할 시기라는 의식은 합의에 이르렀다. 한길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처럼 정전들을 '번역'하여 우리의 고전으로 '변형' 시키는 기초작업이 절실하다. 학문 식민주의, 원서 숭배를 벗어나면서 창조의길을 모색하는 출발점은 오히려 철저히 '번역의 시대'를 겪어내는 데 있다. 그것만이 서구 근대의 오류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학술번역의 막중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이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보며 다시 새길 교훈이다.

제도적으로 학술번역을 육성할 필요도 있다. 다행히 그런 움직임도 미약하나마 포착된다. 학술진흥재단에서는 올해 번역지원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교육부에서 지난달 초 발표한 '2001 학술연구 지원 기본계획'에 따르면 동서양 학술 명저와 고전 번역사업 지원비가 10억원으로 확대됐다. 다만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섣부른 당위를 내세워 우리 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에만 집중투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제도 바깥에서 가능한 것이 인문학이므로 제도적 개선은 출발이 될지언정 도착점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이옥진기자)

08. 08. 17.

P.S. 이후의 상황과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재작년에 나온 박상익 교수의 <번역은 반역인가>(푸른역사, 2006)를 연속해서 참조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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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epeak 2008-08-1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 교수의 저작 목록이 제법 긴데 몇 개 읽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다양한 주제를 놓고 요약 정리한 수준밖에 되지 않던데, 저런 사정이 있었군요..

로쟈 2008-08-17 23:53   좋아요 0 | URL
법학 교재들의 표절 시비도 있었지요...

book소리 2019-01-13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제목의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각각 출간했더군요. 이런 경우 괜찮은 책이라 훗날 다시 출간했거나 이전 책이 번역상 문제가 있어서 번역을 다시하여 재출간 했을 거 같아 두 책을 동시에 펼쳐두고 비교해보면 재밌겠다 싶어 둘다 책꽂이에서 꺼내 들었습니다. 98년 아무 곳이나 펼치고 몇 줄 읽었는데 제가 영어문장을 읽고 이해했을 때의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것이라는 대명사를 그대로 옮긴다거나 더욱 더 추구한다 같은 부분에서는 도대체 무얼 더 추구하는가 싶어 추구의 대상을 앞뒤로 수색했네요. 그래서 같은 부분을 12년 판에서 찾아보고 다른 부분도 이런 방식으로 몇 군데 비교읽기를 해보니 처음엔 거친 번역에 실망했다가 나중에는 원서를 구해서 직접 해석해보고 두 권과 비교해보면 영어실력이 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번역을 꼼꼼하게 하고, 자국어로 글을 잘 엮어 내는 문화가 확고히 자리 잡을 때야 비로소 한국의 학문 역량이 세계와 견줄 준비가 될 것 같습니다. 번역자에게만 문제가 있다면 번역자만 비판하면 되는데 번역 관련 전반적인 토대가 문제라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될 거 같다는 게 문제죠. 영어 강의를 한다느니 외국인 학생을 유치한다느니 등등의 억지 코스프레 글로벌 대학을 운운하는 거 보면 처음에는 씁쓸하다가 종국에는 쓸쓸해지더군요. 카우프만이 여러 생각이 들게 하다가 로 선생님 블로그까지 오게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