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한겨레에서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릴레이 기고를 스크랩해놓는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 사태를 신자유주의의 '거픔'이 터진 것으로 규정하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얻어야 하는 교훈에 대해서 짚어주고 있는 칼럼이다. 경제전문가들조차도 이번 사태의 끝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하니(당연히 임기응변식 처방 외에 마땅한 대책도 제시되지 않을 터이다) 두고볼 밖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예언대로 본격적인 '이행기' 모드로 진입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겨레(08. 10. 01) [특별 릴레이 기고] 신자유주의 ‘거품’이 터졌다

미국 금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 투입 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됐다. 최악의 금융 위기가 크나큰 경제위기로 확대됐다. 경제는 이제 막 길고 캄캄한 터널로 진입했다. 언제 어떻게 그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확실한 것은 터널 속의 세월은 길고 추울 것이며, 그 출구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거품에 있었다. 오랫동안 주식과 부동산에 조성된 거품이 지난 8월부터 계속 터지고 있다. 거품이 터짐으로써, 개인과 금융기관이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개인소비가 줄고 기업의 수익이 격감했다. 약 일주일 동안 미국전역에서 회사채 발행이 한 건도 없는 상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떤 미국 국회의원의 말을 빌린다면, 미국경제는 곧 심장의 고동이 멈춰질 지경이었다. 우선 심장마비는 막아야 하기 때문에, 7000억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나온 것이다.


미국은 원래, 금융에 관해서는 보수적인 나라였다. 미국 사람들은 원래 흥청망청하는 국민이 아니다. 그런 미국에 왜 이런 거품이 생겼는가. 그 이유는 1980년대 말부터 경제정책의 중점이 ‘메인스트리트’로부터 ‘월스트리트’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월가출신 인물이 계속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지켰다. 재무장관도 월가 출신이 많았다. 경제정책의 기조는 월가의 이익이 되도록, 가급적 유동성을 많이 공급하여 자산시장을 부추겼다. 종래 경제정책의 중점이었던 산업구조, 국제수지, 사회보장, 서민생활 등은 사각지대로 물러났다.

월가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금융에 대한 기본을 망각했다. 원래 금융업이란 남의 돈을 가지고 차질없이 운영해야 하는 기업이다. 때문에 좋은 금융가는 보수적이어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월가 사람들은 너무 자유롭게 자기 이익만 챙겼다. 그러다가 이번의 덜컥수에 걸렸다.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은 최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금융에 작동해야 경제가 잘 된다는 말을 했다. 19년이나 중앙은행 총재직을 지킨 사람이 이런 글을 쓰다니,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였다. 아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소련이 망한 후로 1990년대 미국에는 장밋빛 도취감이 감돌았다. 이제, 전쟁과 혼란의 역사는 끝났다, 자유방임을 하면 다 잘 된다,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 경상수지 적자 따위는 문제 없다, 기업은 주가를 올리면 된다, 이런 식이었다.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 작은 정부면 그만이라는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에 확산됐다. 남미, 아시아, 러시아 등의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월가의 금융꾼들은 많은 이익을 챙겼다.

아! 그러나, 인간의 시야는 짧은데 비해 세상은 빨리 변한다. 환락이 지나치면, 비애가 온다. 미국경제가 부메랑 효과를 맞았다. 개도국이나 맞아야 할 ‘국제통화기금(IMF) 폭탄’을 미국이 맞은 셈이다.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했다. 5대 투자은행이 거의 다 몰락했다.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에이아이지(AIG)가 ‘구제’를 받았다.

문제는 장래이다.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다. ‘구’자유주의의 난맥을 처리한 1930년대 ‘뉴딜’식 정책이 나올 것인가. 그 가능성은 원래는 없었다고 나는 보았지만, 이제는 모종의 ‘뉴’ 뉴딜이 불가피해진 것도 같다. ‘신’자유주의는, 많은 자유주의자들의 뜻과는 달리 숨통이 막혀버렸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가지고는 경제의 실물부문의 문제들, 이를테면,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 0%의 개인 저축, 70년대 이후로 실질적인 증가 없는 근로자 소득, 의료혜택 없는 4700만 미국인, 깊어가는 양극화 등의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다.

7000억달러는 미국 당국이 가지는 마지막 카드였다. 그것은 사실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미봉책으로 붕괴된 시스템을 살려낼 수는 없었다. 사실 7000억 달러를 가지고 충분할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의회도 모르고 있었다. 매케인도 오바마도 이 카드에 찬성했다. 앞으로의 경제에 대한 아무런 의견도 그들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미의 금융모델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를 위해 우선 미국이 바른 길을 찾기 바란다. 심리적인 공황을 벗어나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심기일전, 상상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각론은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 총론은 명백하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못 쓴다. 미국도 이 과정을 졸업했다. 둘째, 나라가 잘되자면,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잘돼 있어야 한다. 민간이 정부를 대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셋째,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넷째, 금융가는 용감해서는 안 된다. 지나친 이노베이션을 해서도 안 된다.(조순/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 부총리)

08.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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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8-10-01 10:00   좋아요 0 | URL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이 사람은 천상 학자인데 왜 정치판에 뛰어들어 그 험한 꼴들을 봤나 싶은 거예요. '원로'만이 쓸 수 있는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분석이 참 좋네요. 고맙습니다.

로쟈 2008-10-01 20:27   좋아요 0 | URL
인간 자체가 정치적 동물이라면 '정치판'이 따로 있는 건 아닐 테지요. 한국어의 '정치'란 그냥 권모술수의 동의어가 돼버렸지만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1 22:26   좋아요 0 | URL
그린스펀도 아담 스미스를 중학교 사회교과서로만 배웠나 보군요.

로쟈 2008-10-01 22:34   좋아요 0 | URL
저금리 기조 때문에 부실 대출이 급증했다고 하니까 그린스펀도 면책 대상은 아니죠...

노이에자이트 2008-10-01 23:13   좋아요 0 | URL
미국 플로리다 어느 동네는 완전히 유령마을이 되었더군요.빈 집에 차압딱지 붙은 집 투성이...그나마 사람사는 집도 이사갈 준비를 하는데...이러려고 소련을 무너뜨렸나요?

로쟈 2008-10-02 22:22   좋아요 0 | URL
미국도 무너지는 거겠죠...
 

오전에 예기치않게 병원에서 시간을 죽이게 됐다. 빈손으로 TV만 바라보는 건 불쾌한 일이어서 부랴부랴 편의점에서 신문을 사들고 와 꼼꼼하게(!) 읽었다(그래도 시간이 남아 여성지까지 들췄지만). 그 중 마음에 든 칼럼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원전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다시 읽으며 미국 금융위기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오늘의 빅뉴스는 미국의 금융구제안이 하원에서 부결됐다는 소식이어서 타결을 전제로 한 아침신문의 기사들이 '어제' 신문의 기사가 돼버렸다).    

경향신문(08. 09. 30) 맥베스의 ‘보이지 않는 손’

김정환 시인이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에 나섰다. 그 첫 결실이 지난달 5권짜리로 나왔다. 4대 비극 가운데 나는 ‘맥베스’부터 손을 댔다. 인간의 야망과 탐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빠른 템포로 보여주기도 하거니와,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상황 탓이기도 했다. 월가의 이른바 금융공학의 ‘천재’들과 정부가 끼어들지 말아야 시장의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목청을 높여온 시장 만능주의자들이 ‘탈(脫)규제’의 신주단지로 떠받들다가 막상 위기가 터지니까 보이지 않게 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그 첫 발설자인 맥베스의 육성을 김 시인의 번역으로 다시 듣고 싶었던 것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에 혹해 던컨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지만, 예언대로 제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고 던컨의 아들에게 복수의 죽임을 당한다는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맥베스는 역모에 동참한 친구 뱅쿼의 아들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은 두려워해 이들 부자를 살해하려 자객을 보내는데,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모르는 게 좋아, 내 여보는, 나중에 박수만 치면 돼”라며 이렇게 말한다.

- 이기심에 대한 파멸이 原典 -

“오라, 눈꺼풀 꿰매는 밤, 가려다오, 목도리로, 가여운 날의 부드러운 두 눈을, 그리고 피비리고 보이지 않는 네 손으로 말살하고 갈가리 찢어라, 그 위대한 생명의 임대 계약을, 그것이 나를 계속 창백하게 하노니. …나쁘게 시작된 일은 나쁜 짓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노니.”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말이라며 경제를 안다는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전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국내 산업의 지원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을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된다…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목적을 증진시키게 된다”고 했다. 탈규제론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누적돼 결국 더 나은 사회가 된다’며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 만능주의의 제단(祭壇)에 모셔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 존 케이는 이게 잘못이라고 꼬집는다. 셰익스피어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원을 스미스의 책에서 찾으려 하거나, 현대 경제를 이해하는데 그의 말을 끌어다 쓰는 것은 실수”라고 잘라 말한다. ‘도덕감정론’을 쓴 윤리학자이자 셰익스피어의 팬이었던 스미스는 인간의 마음이 나쁜 것에 물들기 쉽다고 보았던 만큼 자유주의를 찬양하기 위해 이 말을 쓰지도 않았을뿐더러, 맥베스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진시키기는커녕 자신까지 파멸로 이끈다는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월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렇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신주단지는 헛것이었지만, 맥베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규제를 피해가며 첨단 금융공학을 통해 고위험 고수익의 복합 금융상품을 팔아 재미를 봤던 투자은행들이 몰락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규제 받지 않는 이기심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봉사한 것이 아니라, 탐욕의 종점이 언제나 비극일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 美금융위기도 ‘탐욕의 종말’ -

실물을 뒷받침해 경제를 돌리는 도구이어야 할 금융이 ‘몸통을 흔드는 꼬리’가 된 것이 ‘금융 무정부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데 국제사회에 이견은 없다. 금융뿐 아니라 경제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수리가 필요하다는 게 금융선진국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런데 우리 정부만 규제개혁 속도론을 외치며 워싱턴과 월가 사람들이 용도폐기한 신주단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400년 전의 셰익스피어를 다시 불러내고, 맥베스의 피비리고 보이지 않는 손을 지금 읽어야 한다며 슬그머니 번역을 내놓은 김 시인의 혜안이 돋보일 뿐이다.(유병선|논설위원)

08.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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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AV 2008-10-01 08:49   좋아요 0 | URL
'원전읽기'의 중요성이랄까요, 혹은 유사-과학(공학)이고 싶거나, 지식-권력이고 싶은 경제학사 없는 경제학의 한계랄까요? 아무튼 『도덕감정론』은 커녕 『국부론』도 읽지 않는 경제학자들을 비꼬던 『아담 스미스 구하기』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로쟈 2008-10-01 20:24   좋아요 0 | URL
안 읽어도 생색을 낼 수 있나 봅니다.^^;
 

이번주 시사인에 실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2008)에 대한 것이다. 몇몇 책을 두고서 내내 저울질하다가 결국은 지난주 목요일에 배송받은 이 책을 부랴부랴 읽고서 작성한 글이다. 분량상 요지만을 나대로 간추렸는데,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진단서이자 고발장이다. 저자 자신의 표현을 빌면 '한국인을 위한 사회경제학'이나 '우석훈식으로 본 한국경제론'. 그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지만 나는 맨 처음으로 읽는 게 전체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결론을 미리 알면 싱거우려나)...

시사IN(08. 10. 04) 대한민국 경제 살릴 '위대한 선택'은?

‘희망’ 대신에 ‘명랑’을 말하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펴냄)이 출간됐다. 작년 여름에 나온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해 그가 쏟아낸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자 대단원을 장식하는 책이다. “하나의 불행이 끝나면 더 큰 불행이 온다”는 저자의 상황인식을 전제로 썼기에 이 시리즈에는 ‘공포 경제학’이란 별칭도 붙었다. 요즘 같아선 실감나는 공포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 대통령’ 이명박의 재임기간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이다. 그리고 만약 일본이 1990년대 겪은 것과 같은 장기 불황을 겪는다면 한국이 파시즘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도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면서 주거공간에서부터 교육환경에 이르기까지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은 차츰 공고하게 분리돼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듯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반화하면서 탄생하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레비아탄’, 곧 ‘괴물’이다. 이 괴물의 다른 이름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이다.

한국사회에서 이 괴물의 탄생은 2007년 ‘경제’란 구호와 함께 국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함으로써 빚어진 일이 아니다. 우석훈의 진단으로는 2004년 혹은 2005년 사이에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한국경제 자체는 지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부자 되세요”란 덕담이 오가던 시기에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경제’라는 한마디밖에 모르는 좀비로 변해감과 동시에 한국의 국민경제는 죽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늦게라도 돌이키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도래할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는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국가이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MB파시즘’이다.

이제라도 정상적인 국가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석훈은 비록 상황은 절박하지만 그래도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좁은 길”이 살짝 열려 있다며 명랑하게 충고해준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의 요체는 ‘제3부문’이다. 경제학에서 제1부문이란 기업을 말한다. 그리고 제2부문이 가리키는 건 정부 혹은 국가라는 공공 부문이다. 저자의 도식에 따르면, 이 제2부문이 제1부문을 자기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사회주의(혹은 ‘국가독점 자본주의’)이며, 거꾸로 제1부문이 오히려 정부를 장악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좌파, 우파라는 이념적 견해는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정해졌다. 하지만 ‘명랑 좌파’ 우석훈의 대안은 제3부문이다. 이것은 국가나 대기업에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부문인데, 경제학에서도 잘 이론화되어 있지 않기에 ‘사회적 경제’ ‘증여의 경제’ ‘연대의 경제’ 따위로 불린다. 경제학자로서 우석훈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사이의 선진국 국민경제란 바로 제3부문이 활성화돼 있는 국민경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이 제3부문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 제3부문을 형성하는 경로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교기관 같은 전통적인 사회기관이 생활협동조합의 ‘구심점’이 되어 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에서 주로 그런 것처럼 대기업들이 공적이면서 사회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혹은 독일의 경우처럼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제3부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장기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경제, 그리고 국민경제의 생태학적 전환이 가능해지리라고 우석훈은 전망한다. 그러한 전망은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위대한 선택’을 통해서이다.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는 위대한 선택이란 국민들이 경제에 대한 취향과 사회적 행동을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의 수만큼 물려줄 30평짜리 아파트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집이 없거나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기에 달려 있다.

08. 09. 29.

P.S. 지면기사에 맞게 초고의 몇몇 대목을 수정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의 '30평짜리 아파트'는 그대로 두었다. 책에 그렇게 적혀 있을 뿐더러 지면기사에서처럼 99m2라고 적는 것이 좀 어색해서다(나는 그런 식의 도량형 통일을 '선진화'라고 부르는 것이 못마땅하다). 개인적으로 <괴물의 탄생>을 지난 여름에 나온 <촌놈들의 제국주의>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잔뜩 우울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을 재미있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May humor be with you...'라고 저자가 명랑하게 기원하고 있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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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다 보니 낯익은 유명인사들의 부음도 자주 접하게 된다. 현지시간으로는 엊그제(26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배우 폴 뉴먼의 경우도 내겐 '낯익은' 유명인사다. 부음기사에서 그가 1925년생이었다는 걸 알고는 잠시 놀랐다. '멋진 악당' 혹은 '멋진 중년'을 상징하는 배우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기억에는 많이 잡아줘도 60대에서 멈춘 배우이건만). 그의 명복을 빌면서 부음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 1969년 만들어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한 폴 뉴먼(왼쪽)과 로버트 레드포드

한겨레(08. 09. 29) 행동하는 ‘멋진 악당’ 천상의 무대로

깊고 푸른 눈을 가진 인자한 얼굴의 노 신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봐 마이클. 눈을 크게 뜨고 보게!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인생이고, 끌고 온 인생이야.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거지.”(<로드 투 퍼디션> 중에서)

26일(현지시각) 숨진 할리우드의 노 신사 폴 뉴먼은 50여 년의 연기 인생 속에서 늘 세계와 불화하는 ‘악당’이자 ‘반 영웅’이었다. 1963년 <허드>에서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위해 병든 소를 파는 이중적인 인간 ‘허드’를 연기했고, 67년 <폭력탈옥>에서는 삐딱하고 쿨한 자기 파괴적인 죄수 ‘루크’를 맡았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는 유쾌한 은행털이 강도 ‘부치 캐시디’로 열연을 펼쳤다.

2002년, <로드 투 퍼디션>에서 77살의 노 배우는 젊은 톰 행크스를 앞에 놓고 1930년대 시카고 암흑가의 냉혈한 보스 ‘존 루니’를 섬뜩하게 재현해 낸다. <뉴욕타임즈>는 27일 인터넷판에서 그를 “어떤 배우도 그만큼 불완전한 인간을 많이 연기하진 못했다”고 평했다.

뉴먼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인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으며, 인권을 적극 옹호했다. 그래서 리처드 닉슨의 ‘블랙리스트’(enemies list)에 오르기도 했는데, 뉴먼을 이를 두고 자주 “내가 이룬 가장 자랑스런 성취”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 스콧이 78년 알콜과 약물 과용으로 숨지자 ‘스콧 뉴먼 재단’을 설립하고 약물 반대 영화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또 1982년 만든 ‘뉴먼즈 오운’이라는 식품회사가 크게 성공하자, 여기서 번 수익금 2억달러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했다. 암과 같은 큰 질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여름 캠프도 만들었으며, 항암 치료 탓에 머리털이 빠진 아이들을 위해 카우보이 모자를 직접 골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뉴먼은 또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를 여러 번 석권한 훌륭한 카레이서기도 했다.

뉴먼은 열정적인 배우였고, 행동하는 양심이었으며, 무엇보다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부부는 성명을 내어 “미국의 아이콘이자 박애주의자, 어린이들을 위한 챔피언이었다”고 그를 기렸다.(길윤형기자)

 

경향신문(08. 09. 29) [여적]폴 뉴먼

영화사상 최고의 ‘라스트 신’을 꼽으라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우선 떠올리게 된다. 1969년 개봉된 이 영화는 1890년대 전설적 갱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다. 현금수송 열차와 은행을 터는 강도 행각을 벌이면서도 인간적 냄새를 풍기는 두 젊은이는 탄광촌 은신처에서 군대에 포위되자 ‘이번엔 호주로 가자’고 다짐하며 권총을 치켜들고 뛰쳐나온다. 순간 화면이 정지되고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의 갱 영화이지만 인간미와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폴 뉴먼이 암 투병 끝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스팅’ ‘상처뿐인 영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허슬러’ ‘컬러 오브 머니’ 등 숱한 화제작으로 이름을 떨친 그의 강렬하고도 우수에 찬 푸른 눈은 반항적 젊은이, 차가운 승부사, 정의로운 중년, 관조적인 노년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낳으며 세계인들의 심금을 흔들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뉴먼은 더욱 멋진 매력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그는 ‘초현실적 기업 모델’을 창시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1982년 설립한 ‘뉴먼즈 오운’이 그것이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친환경 드레싱을 제조·판매하는 이 회사는 초기 자본금 1만2000달러에 첫해 수익만 92만달러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다음해 수익금 10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뉴먼은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최근까지 미국과 해외에 기부한 금액은 2억2000만달러(약 2200억원). 이밖에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산골짜기 캠프를 미국 31개주와 해외 28개국에 건설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레스토랑 경영에 나서는 등 나눔과 베풂의 삶에 정열을 바쳤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고 있다지만, 뉴먼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투철한 원칙과 신념을 가진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송충식 논설실장)

08. 09. 28.

P.S. '폴 뉴먼'하면 <내일을 향해 쏴라>나 <스팅> 같은 영화를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개인적으론 장년의 그가 신예 톰 크루즈와 주연했던 영화 <컬러 오브 머니>(1986)의 인상도 강하다. 극장에서 폴 뉴먼을 본 최초의 영화였던 듯하다. 폴 뉴먼이란 배우의 존재감을 대형 스크린에서 맛보게 해준 영화(http://www.youtube.com/watch?v=U9rGDYjVr0c). 감독은 마틴 스코시즈였다. 그러고 보니 그맘때는 나도 당구를 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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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2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삶을 살단 간 배우군요.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라는 구절이 콕! 박히네요.

로쟈 2008-09-28 22:44   좋아요 0 | URL
네, 있는 사람들이 탐욕만 버린다면 좀 멋지게 사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조선인 2008-09-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로쟈 2008-09-29 22:33   좋아요 0 | URL
젊었을 때는 톰 크루즈보다 더 멋있더군요...

비연 2008-09-2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아가셨군요. 명복을 빕니다. 로쟈님의 브리핑으로 그의 생애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네요. 이제, 그 옛날 제 마음에 추억으로 남겨진 명장면 속의 배우들이 하나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로쟈 2008-09-29 22:32   좋아요 0 | URL
한 세대가 가는 거 같습니다...

sophia49 2008-10-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제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올려주신 폴 뉴먼의 이야기...넘 좋아요.

로쟈 2008-10-16 21:18   좋아요 0 | URL
네, 이건 제가 책사랑에 안 옮겨놓았던가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지난주 신간 중에 앤드류 달비의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2008) 같은 책은 단박에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두었지만(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읽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 !쿵족 여성의 삶을 다룬 <니사>(삼인출판사, 2008)나 교양과학서 <보살핌>(사이언스북스, 2008)은 '읽고 싶은 책'이지만 당장에는 여유를 갖기는 어려운 책이다(하여 '그림의 책'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뷰들을 옮겨놓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를 갈면서까지는 아니겠으나 속은 조금 쓰리다...

한국일보(08. 09. 27) 아프리카 '!쿵'族 여인들이 사는법

"대개 일생 동안 두 번 이상 결혼하며, 적어도 한 번은 장기간의 결혼을 경험한다. 이혼으로 결혼이 깨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이혼은 보통 결혼 첫 몇년 사이 아이가 생기기 이전에 여성 쪽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187쪽)

이혼과 동거가 다반사처럼 돼가는 이곳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오지인 칼리하리 사막 북부의 흑인 부족 '!쿵' 족의 생활을 손금 보듯 기록한 인류학의 고전 <니사> 중 한 구절이다. '!쿵'이란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나타내는 음성기호(!)를 사용해 표현한 아프리카의 독특한 발성법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이혼이 자유로운 !쿵족이지만 첫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남은 일생동안 자녀를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이 책은 '서구 문명'이라는 형식은 세계의 극히 작은 일부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인류학적 연구의 보고다. 서구 문명과 전혀 다른 세계를, 현지인들의 시각으로 올곧게 재현한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에게도 문화의 형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다. 책은 구미 사회의 대격동기였던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전문가들이 펼친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토대로 1981년 출간됐다.

저자는 여성주의의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 일, 정체성 등 여성성의 문제에 씨름하는 젊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그들과 나눈 수백여건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니사'는 그 중 특히 입심 좋은 여인의 이름이다.

이 책은 인류학 민족지의 모범을 구현한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오랫동안 무시돼온 토착민ㆍ문맹자ㆍ여성의 입장에 충실, 세계를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저자가 현지인들의 바람대로 담배를 줄 것인지, 인터뷰에 응한 대가로 돈을 줘야 하는지, 고유 문화를 보존한다면서 알게 모르게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 등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보편성은 특수성과 어떻게 결합하는가? 예를 들어 섹스 문제를 보자. "!쿵 사람들은 사람이 섹스에 굶주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365쪽) 거기 대한 책의 풀이는 이러하다. "식량 자원을 예측하기 힘들고 식량이 끊임없는 관심사인 사람들" 특유의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자인 남편의 현지조사를 따라 현장에 갔다가 원주민들의 삶에 매료돼 이 책을 썼다. 1990년 다시 니사를 만나러 현지에 갔던 저자는 장시간의 인터뷰를 남겼다. 그러나 1996년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 기록은 2000년에야 <니사에게 다시 가 보니>라는 유작으로 빛을 보았다.(장병욱기자)

문화일보(08. 09. 26) 인간 본성은… 따뜻하다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의학연구자 엘지 위도슨은 식생활이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에 들어갔다. 고아원 두 곳을 택해 한 곳에만 6개월간 빵과 잼 등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추가로 식품을 지원받지 않은 A고아원의 아이들은 잘 자란 반면, 식품을 지원받은 B고아원의 아이들은 거의 자라지 않은 것. 머리를 갸웃거리며 위도슨은 그 다음 6개월간 두 고아원의 조건을 바꿨다.

연구 결과는 또다시 연구자를 놀라게 했다. 더 이상 추가 식품을 지원받지 못한 B고아원의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 반면, 새롭게 지원받은 A고아원 아이들의 성장은 오히려 둔화되었다. 위도슨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고아원에 대한 직접 조사를 벌였고, 원인을 알아냈다. 이유는 식품이 아니라 원장이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 B고아원의 원장은 엄격하고 강압적인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6개월 후 A고아원으로 옮긴 것. 추가 식품의 지원 여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이 달라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원장의 강압적인 양육태도가 아이들 성장을 방해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런데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인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힘에 대한 인정을 넘어 보살핌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보살핌 본성론’의 출발은 두 가지 과학, 사회적 흐름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인간의 공격성,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 사회는 전쟁터라는 ‘투쟁’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살핌을 여성의 모성애와 연결시키고 모성애를 여성의 활동을 옥죄는 이데올로기 기제로 작용시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보살핌 본능을 ‘스트레스 상황’을 통해 설명한다.

즉 기존의 공격적인 인간 본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도피해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살핌의 본성이 작용,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어울려 보살피는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미와 아기의 강렬한 애착부터 차모임, 계모임 등 문화권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여성들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각종 모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보살피려는 인간 본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적의 위협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비해 여성, 특히 어머니는 자식들을 품에 안고 오히려 침착하게 다독이며 애정을 쏟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은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반면, 여성은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육아, 결혼, 사회생활 등을 넘나들며 보살핌의 본능을 추적한 뒤, 결국 인간이 태곳적부터 지니고 있는 보살핌 본성을 사회적 시스템화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긍정적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최현미기자)

08. 09. 28.

 

 

 

 

 

 

P.S. '쿵족'이 아니라 '!쿵족'이다. 예전에 인류학 관련서를 읽다가 '!쿵'이란 표기 때문에 인상에 남았던 부족이라서 이번에 출간된 <니사>가 반갑다. 언젠가는 나폴레옹 샤농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와 함께 꼭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다(오래전부터 미뤄놓은 '숙제'다). 한편, 셸리 테일러의 '보살핌 본성' 혹은 '보살핌 본능'이 떠올리게 해주는 책은 '보살핌의 윤리'에 관한 것들이다. 얼른 생각나는 건 한국현상학회에서 펴낸 <보살핌의 현상학>(철학과현실사, 2002). 레비나스의 윤리학 등이 다뤄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미 절판된 것으로 나오는데, 캐롤 길리건의 유명한 책 <다른 목소리로>(동녘, 1997).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도덕적 정향이 각기 다르게 설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성 대신에 관계지향성을 내세우는 여성은 '보살핌'에 더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보살핌>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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