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가서 새 키보드를 사다가 교체했다. 아직 손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어떤 키는 세게 눌러야 한다) 타이핑이 더디다. 연습삼아 페이퍼를 올려둔다. 민속학자 주강현 씨가 <등대> <적도의 침묵> 등의 묵직한 책들을 펴내며 해양학으로 관심을 넓혀나간 줄은 알고 있었는데 제주대 석좌교수가 된 줄은 몰랐다. 그의 학문적 이력을 짚어보고 있는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8. 12. 06) '학문의 바다’ 넘나들다 ‘바다의 학문’으로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어느 정도 관심을 갖는 분야가 민속이지만 민속학자 중에 스타는 드물다. 거의 유일한 민속학의 간판이라면 주강현(52)씨를 꼽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그가 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과 함께 우리 땅 우리 문화에 대한 재발견 바람을 일으키며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이후 민속학 관련 책을 줄줄이 쏟아내며 주씨는 국내 대표적인 민속학자로 활동해왔다.

이 주강현씨가 올해 새로운 기록을 하나 세웠다. 교수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대학 석좌교수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제주대 석좌교수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석좌교수로 임용된 분야가 정확히 민속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전문가’로 석좌교수가 된 것이다.

주 교수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바다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 스스로 20여년 자신을 수식했던 민속학자라는 타이틀을 거부한다. 이제는 ‘바다학자’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한다. 2012년 열리는 여수엑스포 전략기획위원으로 바다올림픽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잡지 <해양과 문화>의 편집과 해양수산부 통폐합 반대 등 바다와 관련한 분야와 이슈에는 그의 이름이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이런 변신은 그가 오래전부터 바다를 자기의 새로운 연구 주제로 삼고 투자해온 덕분이다. 전국 농어촌을 돌아다니며 80~90년대를 보낸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바다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관해기> <돌살> <등대> <독도견문록> <적도의 침묵> 등이 이어졌다. 그동안 3면이 바다, 바다가 살길이란 인식은 높았지만 실제 바다를 인문학의 대상으로, 콘텐츠의 연원으로 바라본 학자는 없었다. 민속에서 출발해 바다를 연구의 ‘블루 오션’으로 삼은 주 교수는 요즘 물 만난 고기처럼 바다라는 주제를 누비고 있다. 만나자마자 그는 바다 이야기를 정신없이 풀어놓았다.

-여수엑스포 준비에 한창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요?

“유치 때부터 해양문화 전문가로 활동해왔고, 지금은 마스터플랜을 짜는 데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엑스포란 것이 원래 제국주의의 산물 아니겠습니까? 1993년 대전엑스포는 군사정권 시절 증산주의 권위주의 개념의 소산이었습니다. 이번 여수엑스포는 문명적으로 생태적으로 가려고 합니다. 주제도 그래서 태평양의 해양문명을 보여주는 해양문명관의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주제도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입니다.”

-화끈하게 보여주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 풍토에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생태주의적인 사고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혀 좌파 개념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유연한 젊은 공무원들이 호응을 해준 덕분에 해양문명관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해양엑스포는 반가웠겠지만 해양수산부가 건설부에 통폐합된 것은 안타까웠겠습니다.

“바다는 통합행정으로 가야 합니다. 수산은 농림부가, 바다는 국토해양부가 맡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운하 파려고 그렇게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3면이 바다인데 운하가 무슨 짓입니까.”

-이제는 민속학자라기보다는 해양민속학자라고 해야겠네요.

“저는 이제 민속학자 아닙니다. 해양학자입니다.”

민속과 바다가 따로 떼려야 뗄 수 없을텐데도 그는 잘라 말했다. 그만큼 학문과 활동 모두를 바다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그러면 왜 이렇게 변신을 결심하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 3면이 바다인데 바다에 관심을 안 갖는 것이 이상하죠. 민속학에서도 바다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레비스트로스 등 유명한 인류학자들은 바다와 섬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인류학자들을 대신해서 우리나라와 전세계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는 겁니다.”

-무슨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바다는 에너지입니다. 수심 5천미터에 떠 있는 태평양의 과학기지에서 해저면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장엄했습니다. 그때 바다 위에서 고독을 뛰어넘는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다. 바다로 전파된 문명의 역사에 대한 갈증이 솟구쳤습니다.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전개를 써내려간 프랑스의 페르낭 브로델처럼 되자, 한국의 브로델이 되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후 주 교수는 자비로 전국 바다는 물론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다닐수록 바다가 서구 제국주의의 시각으로 덧칠돼 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쓴 책이 폴리네시아 사람 시각으로 남태평양 해양문명사를 다룬 최근작 <적도의 침묵>이다.

-<적도의 침묵>에서 ‘태평양은 태평하지 않다’고 쓰셨던데요.

서양 학자들은 제국주의 관점에서 원주민들이 미개하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혜를 베푼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서양 항구도시에 있는 해양박물관에 가 보면 대항해시대 인종학살에 대해서는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습니다. 원주민 시각에서 보면 대항해시대는 수탈의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원주민 중심으로 기술된 태평양의 해양문명사는 없습니다. 직접 배 타고 남태평양 섬에 가서 원주민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태평양은 태평하지 않다고 쓴 겁니다.”

-연구비 지원이라도 받는지요?

돈 받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힘들어요. 소설가한테 1억원 주고 ‘좋은 소설 써봐라’ 그러면 좋은 소설이 나올까요? 그리고 한국 학자가 폴리네시아인 관점으로 문명사 쓴다고 하면 어느 재단에서 돈을 주겠습니까. 책 써서 번 돈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거죠. 일찍 대학교수가 돼서 민속학 논문만 썼다면 이런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골프나 치고 있었겠죠.”

주 교수는 교수직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교수가 못 된 것이 “남의 밥그릇을 넘보지 않는다는 학계의 불문율을 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국문학에 멈춰 있던 민속학에 역사학의 개념을 도입했고 더 나아가 인류학과 해양학의 범주까지 넘나들다 보니 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책도 많이 쓰고 활동도 활발한데 교수 임용이 안 된 이유가 뭐였습니까?

지적 풍토가 거지 같은 나라죠. 학계는 자기 밥그릇 깨는 걸 싫어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복합 학문을 했습니다. 국문학과 사학과를 넘나들었죠. 그래서 제 활동에 대해 디스카운트를 많이 당했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것은 학문이고 현장에서 발로 뛰어 만든 저술은 학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느라고 게릴라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강사가 노예 같은 처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가 바다학자로서 ‘찜’한 주제가 바로 독도다. 최근 펴낸 <독도견문록>은 그의 학문 범주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500쪽이 넘는 두툼한 독도견문록은 독도와 울릉도의 역사와 민속뿐 아니라 지질, 식생, 토양, 기후 등을 망라하고 있다. 14차례나 독도와 울릉도를 직접 찾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민속학자가 아닌 지리학 생태학에 밝은 해양학자로서의 변신을 느낄 수 있다.

-<독도견문록>을 보면 독도를 여러 각도에서 접근한 것 같습니다.

“바다를 연구하는 것은 환경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군사문제, 식생, 지리학, 생물학, 신화학까지 연결됩니다. 거의 대책이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에요. 정말 화두가 큽니다. 그런 생각과 자료를 정리한 것이 <독도견문록>입니다. 독도는 보통 섬이 아닙니다. 신성하고 강인한 섬이죠. 460만년 전에 형성된 독도는 수심 2천미터부터 솟아 있는 조그만 화산섬이 아니라 거대한 대륙입니다. 독도를 조그만 섬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입니다.”

-일본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바다를 등한시했죠?

“일본은 1914년 남양군도청을 만들고 남양군도(미크로네시아)를 신탁통치했습니다. 일본의 해양 야욕은 무서울 정도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바다를 거의 안 챙겼습니다. 고려시대까지 중국과 왕성한 무역을 했는데 명나라 주원장이 집권하면서 중국 남쪽의 수군을 가장 무서워했죠. 그래서 아예 바다에 널빤지 하나 못 뜨게 했습니다. 조선은 그걸 그대로 따라했죠.”

-바다는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민족은 바다로 나가면 승리했지만 바다를 포기하면서 식민지가 됐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다산 정약용이 <경세유표>에서 해도경영론을 썼어요. 유배지에서 바다를 본 그는 ‘버려진 섬들을 관리하면 보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다의 가치를 본 것이죠. 우리나라는 분단돼 있어 대륙과 떨어진 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바다를 깊게 생각해야 하는데 운하나 파려고 하고 있고…. 일본의 한반도 침탈은 바다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생가가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 해변을 걸으면서 이들의 100년이 넘는 야욕을 곱씹어 봤습니다. 일본과의 해양 영토 전쟁은 끝난 게 아닙니다.”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실겁니까?

세계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스물네 곳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항구는 인문학적 지평을 확장해줍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죠. 하멜 표류기는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게 아닙니다. 하멜이 처음 떠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돼 조선을 탈출해 돌아간 네덜란드에서 끝납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해양학은 지금까지 서양인이 한 것입니다. 우리 식대로 접근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바다를 잊어버린 우리 민족에게 바다를 돌려주고 싶습니다.”(권은중 기자)

08,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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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7 17:1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강단학문에 맺힌 한이 많군요.그런데 학문 경계를 넘는 분야를 학제간 연구라고 해서 하고 있는 것도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로쟈 2008-12-07 17:41   좋아요 0 | URL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서 같이 밥 먹는 걸 '학제간 연구'라고 하지요. 자연계열에서는 혹 성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문사회쪽은 '시늉'이라고 합니다. '학제간 연구'라고 해야 연구비 지원이 되는 탓에...

드팀전 2008-12-08 10: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페이퍼를 보니 갑자기 <적도의 침묵>에 관심이 갑니다. 지적 풍토가 거지같다는 말에...잘은 모르지만...대학 사회를 늘상 삐죽거리면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웃음이 나옵니다...

로쟈 2008-12-08 21:28   좋아요 0 | URL
대학사회도 점점 재미없어져 가고 있어요...
 

지난주 방한 강연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소설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10여 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작가는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소설을 쓰며 유창한 러시아어로 우크라이나 문학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강연을 했다. <펭귄의 우울>과 <펭귄의 실종> 두 권을 '12월의 읽을 만한 책'에 올려놓기도 했으므로 조만간 시간을 내 읽어볼 참이다(러시아어본도 참고할 수 있을 듯싶다).

경향신문(08. 12. 06) 고독한 작가와 우울한 펭귄…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

“‘펭귄’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집단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어쩔 줄 모르고 불안을 느끼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펭귄의 우울> <펭귄의 실종>을 낸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47·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쿠르코프는 2일부터 7일까지 한국작가회의에서 주최하는 ‘세계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국내 러시아문학 전공자들과 독자들에게 현대 우크라이나 문학에 대해 강연한다. 그의 소설은 소련 해체 이후 동유럽 사회의 혼란상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2006년 <펭귄의 우울>이 먼저 우리나라에 소개됐고, 최근 후속작 <펭귄의 실종>이 출간됐다.

<펭귄의 우울>은 쿠르코프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우울증에 걸린 펭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우크라이나 사회와 정치를 유머있게 풍자해 인기를 끈 이 책은 영어·프랑스어·일어 등 30여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250만부가 팔렸다.

경제난에 빠진 동물원이 굶주린 동물들을 방출하면서 펭귄 미샤는 소설가 빅토르의 집으로 오게 된다. 미샤는 우울증과 심장병에 걸렸다. 펭귄은 어느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잃어버린 동유럽 사람들의 자화상이며, 펭귄과 빅토르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장편소설 하나 쓰지 못한 그저그런 작가인 빅토르는 어느날 신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조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빅토르는 자신이 임의로 작성한 조문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대한 음모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추리소설 형식을 띠면서도 소설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보다는 부패와 폭력에 무감각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치중한다. 빅토르는 자신을 죄어오는 음모를 느끼면서도 굳이 그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쿠르코프는 빅토르가 소련 이후 사회의 전형적인 ‘신생아’라고 말한다. “빅토르는 소련 시절 반체제적이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방향성을 잃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전형적인 인간입니다. 저도 빅토르와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형제는 반체제 인사였고 스스로도 소련에 반대했지만 정작 소련이 붕괴되니 혼란을 겪은 거죠.”

'집단’이라는 안정된 우리를 잃어버린 이들은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낸다. 빅토르는 펭귄과 함께 우연히 함께 지내게 된 소녀 소냐와 유모 니나와 함께 그럴듯한 가족을 이루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펭귄의 우울>에서 빅토르는 펭귄을 남극으로 다시 돌려보내려고 하다가 스스로 남극으로 떠나버린다. 그런 그가 후속작 <펭귄의 실종>을 통해 남극에서 다시 돌아온다. 잃어버린 펭귄 미샤를 찾아 남극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키예프, 모스크바, 전쟁지역인 체첸을 종횡무진하는 빅토르의 여행 이야기 속에 한층 강화된 블랙유머와 풍자를 풀어놓는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혼란스럽고 부정부패가 판치고 있습니다. 문학의 역할은 사람들을 제정신으로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정치가나 선동가들에 의해 조종당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문학이 해야 합니다.”

춥고 흐린 우크라이나의 날씨, 추위를 이기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코냑과 진한 커피 등 동유럽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묘미다.(이영경기자)

08.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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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챙겨둘 만한 교양과학서는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트레스>(사이언스북스, 2008)이다(알라딘에는 뇌과학서로 분류돼 있다). 원제는 '왜 얼룩말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을까’(Why zebras don’t get ulcers). 부제가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이고, '모든 것'에 합당하게 7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이것도 필독해야 한다면 스트레스 받겠다!). 그냥 주섬주섬 읽는 게 좋을 만한 책인데, 요점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장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므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부모들이 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스트레스 덜 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한겨레(08. 12. 06) 스트레스는 아이들 성장도 멈추게 한다

사랑하는 13살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여인은 몇년 동안 앓아 누울 정도로 절망과 비탄에 빠졌다. 또 다른 6살 난 아들한테는 무관심했다. 둘째아들이 어느 날 방으로 들어오자 그는 죽은 큰 아들로 착각해 말한다. “데이비드, 너로구나. 그런데 네가 어떻게? 오, 너밖에 없어.” 그런 일은 반복됐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큰 아들이 자라서 타락하지도 않고, 순수한 소년의 상태로 죽었다는 거였다. 살아남은 아들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성장을 멈췄다. 어른이 돼서도 150cm밖에 자라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 소년이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피터팬>의 작가 J. M. 배리였다. 스트레스성 왜소 발육증의 예로 회자되는 이야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덜 큰다는 내용이다.

스트레스는 만사 공공의 적. 아이의 발육은 물론 성인의 성욕도 감퇴시킨다. 여성은 배란불순·유산을, 남성은 발기부전을 부른다. 또한 면역력이 억제돼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것도 모른 채 돌진하는 병사처럼 고통을 느끼는 능력도 둔화된다. 감각은 변화한다. 공포영화를 볼 때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그런 경우다.

스트레스 전문가인 지은이 로버트 새폴스키 박사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바나를 예로 든다. 햇볕이 따스한 오후, 간식으로 뭘 먹을까 생각하며 초원을 거닌다. 숲 속 과일나무가 문득 떠오른다. 숲 언저리에 발을 디딘 순간 나무 밑에서 낮잠 자는 사자와 부닥친다. 비상상황.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기 위해 심장박동이 증가하면서 다리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가 마구 공급된다.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연기된다. 스트레스는 우리 목숨을 지켜주는 ‘좋은 친구’였다. 문제는 ‘초원을 달리던 시대’에서 ‘장기간에 걸쳐 집값을 값아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기화·만성화되어 병을 부르는 ‘나쁜 적’이 되었다는 것.

유의점은 스트레스 강도는 통제 또는 예측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보다 비행기 타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거나, 지독한 치과치료에서 “두 번만 하면 끝나요”라는 귀띔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사이에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게 그 예증이다.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함께 나눌 수 있느냐의 여부도 주요 변인이다. 직장의 사슬을 떠올리면 이해된다. 윗사람 비위를 맞추면서 생기는 욕구불만을 부하직원한테 터뜨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자는 ‘능력 있는 직장인’. 괴롭힘을 받아 위궤양으로 고생하면서 동료의 어깨에 기대어 울거나 잡아주는 손과 위로의 말 한마디에서 위안을 받는 자는 ‘무능력 진상’으로 찍히는 따위.

해결책은 스트레스의 속성에 이미 내재돼 있다. 요체는 스스로 진심으로 원해서 상황을 바꾸는 것이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관리법은 아주 평범하다. “소비자의 20%가 소비자 80%의 불평을 제기한다”는 원칙 적용하기. 첫 단추 20%가 스트레스의 80%를 경감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길거리에 서서 텔레토비의 대사 읊조리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신체의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발현될까. 스트레스원이 생기거나 그런 일을 생각하면 뇌의 아래부분인 시상하부가 반응한다. 부신피질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CRH)은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을 방출하게 하고 그것은 핏줄을 통해 부신에 이르러 스트레스로 인한 체내변화를 일으키는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방출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스트레스 받는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것까지 시시콜콜 속속들이 말한다. 그래서 책이 무척 두껍다.(임종업 선임기자)

08. 12. 06.

P.S. 흠, 찾아보니 <우리개 스트레스 없이 키우기>(보누스, 2008)란 책도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물론 '좋은 친구'로서 우리에게 필요하다지만 아이들을 요즘처럼 '스트레스 만땅'으로 키우는 건 반성해볼 일이다.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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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6 16:06   좋아요 0 | URL
강아지나 고양이 좋아하세요? 좋아한다면 무슨 종류인가요?

로쟈 2008-12-06 19:22   좋아요 0 | URL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06 22:28   좋아요 0 | URL
어....대한민국 1%에 속하시네요. 대체로 좋아하던데...귀여워요.한 번 이뻐해 보세요.몽글몽글 토실토실...혹시 털 알레르기가 있나요?

로쟈 2008-12-07 08:28   좋아요 0 | URL
아파트에 사는 동안은 어렵지 않을까요? 도시에 사는 개나 고양이를 보는 것도 별로 흡족한 일은 아니고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7 17:02   좋아요 0 | URL
아파트에 살면 햄스터나 고슴도치가 좋지요.개나 고양이는 좀 실례를 하는 통에...

로쟈 2008-12-07 17:09   좋아요 0 | URL
책도 제대로 간수를 못하는 형편인지라..^^;
 

이번주 역사 분야의 책으로 눈길을 끄는 건 김덕진 교수의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푸른역사, 2008)이다. '우리가 몰랐던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가 그 부제. 18세기 조선사 출판붐이 19세기로 내려오고, 17세기로 올라가는 식으로 번져가는 듯한 양상이다. <대기근>은 1670년 경신 대기근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과거 배운/읽은 한국사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몰랐던' 역사이며 새롭게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다. 중고생들이 읽는다면 역사를 보는 시야를 조금 일찍부터 넓힐 수 있겠다.

경향신문(08. 12. 06) 17세기 ‘기후재앙’ 조선 정치판 뒤흔들다

1670년 새해 첫날. 서울 하늘에 속은 붉고 겉은 푸른 햇무리가 관측됐다. 사흘 뒤엔 달무리가, 이후 한 달간은 햇무리와 달무리가 관측됐고 저녁에 보이던 금성이 대낮에 보였다. 현종은 큰일이 닥칠 것이라 했고 신하들은 위망(危亡)과 쇠란(衰亂)의 징조라고 했다. 1월10일에는 붉은색 유성이 나타났다. 2월에는 꼬리가 18m나 되는 적색 유성이 굉음을 내며 빛을 발산했다. 유성우가 관측됐으며 평안도 중화에는 운석이 떨어졌다. 잦은 유성우로 태양은 빛을 잃었고 낮에도 하늘은 어두침침했다.

봄이 되었지만 우박과 눈비가 섞여 오고, 서리가 내렸다. 천둥·번개가 쳐서 벼락맞아 죽은 이들과 가축이 속출했고 고목과 건물이 부서지고 불탔다. 윤달 2월부터 가뭄이 본격화됐고 4월에는 냉해가, 5~7월에는 우박이 쉬지 않고 내렸다. 늦여름에는 물난리가 나고 가을에는 폭설이 쏟아졌다. 봄가뭄과 여름냉해, 수해에 풍해, 충해까지 겹쳐 작물피해가 속출했다. 게다가 1670년 내내 전국 곳곳에서 끊임없이 지진이 발생했다.

조선사에서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은 유래없는 대재앙의 시기였다. 경신대기근(庚辛大饑饉)이라 했다. 유독 이 두 해 동안에는 이상 기상현상이 속출했고 이로 인해 식량수급이 원활치 못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100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가재정이 파탄났다. 치안부재로 도둑질과 살상이 빈번했다. 자연변란의 조짐이 보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예언사상도 등장했다.

순식간에 나라를 마비시킨 경신대기근은 이른바 소빙하기에 일어났다. 소빙하기는 빙하기와 간빙하기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지구의 역사에서 대략 서기 1300년에서 1850년을 이른다. 17세기를 전후한 이상 기상현상은 조선뿐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유럽에서도 재해로 인한 기근이 발생했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등을 쓴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을 비롯해 서구의 고고학자와 기후사학자들은 일찌감치 소빙하기가 인류에 끼친 영향을 주목했다.

이 책은 조선의 소빙하기를 본격적으로 주목한 책이다. 사학계가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등을 통해 소빙기의 실체를 밝히는 기초연구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터이지만, 저자는 진휼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대기근에 대한 연구를 한 차원 높여 전개한다.

전란과 북벌론, 반정, 예송, 환국, 대동법, 진휼청, 반란 등 17세기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 대기근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례없는 기후변화는 정치판도를 바꿔놓았고 사회의 구조와 산업의 양상도 바꿔놓았다. 서인과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났던 남인들은 토지세 감면, 군사비 감축, 군포면제, 부채탕감 등 갖은 민생정책을 내놓으며 임금의 마음을 붙들었고 정권을 잡았다. 역병과 허기를 면하기 위해 백성들이 이동하면서 지역별 인구밀도가 달라지고 사회기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했다. 백성구제를 위한 납속과 공명첩의 발행이 성행하면서, 재력이 있으면 더 높은 신분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예송논쟁으로 대표되던 암흑의 17세기는 실은 ‘변화와 역동의 시기’였다. 다음 세기 ‘영·정조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7세기 대기근으로 빚어진 모순을 수습하면서 사회안전망이 새로이 갖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17세기의 생활상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사료를 곁들여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체가 연방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윤민용기자)

08. 12. 06.

P.S. 17세기 관련서로는 최근 김성환 교수의 <17세기 자연철학>(그린비, 2008)도 출간됐다. 이 분야의 전공자가 드물 듯싶은데, 예기치않게 나온 묵직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세기 자연 철학은 자연 변증법 때문에 관심이 싹텄다. 1980년대 한국 사회와 학계에 마르크스가 나타났다. 피가 끓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철학 연구자는 마르크스의 사회 철학에 몰렸다. 나는 다른 길을 찾았다. 자연 변증법이 보였다. 그러나 너무 낡았다. 제대로 뜯어 고치려면 과학을 알아야 했다. 과학의 역사부터 공부했다. 새 자연 변증법을 만드는 게 목표였고 17세기 자연 철학의 기계론은 타깃이었다. 적을 아는 데 20년 걸렸다. 아직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적을 존경한다. 이 마음을 책에 담는다.”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보다도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를 나는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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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키보드(자판)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할일은 줄었지만(!) 꽤나 불편하다.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기사 하나를 옮겨오는 데 몇십 분이 걸리는 식이니 말이다. 하는 수없이 노트북에서 마무리를 한다. 이번주 예술분야 신간들 가운데 한 권만 꼽으라면 내가 고를 책은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민음사, 2008)이다. '조지아 오키프'란 이름이 생소한 이라도 그녀의 '커다란 꽃 그림'은 낯익을 것이다. 그녀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는 예전에 '조지아 오키프와 산타페'(http://blog.aladin.co.kr/mramor/912676)란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사진작가이며 오키프의 남편이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에게 영감을 준 모델로 출발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게 된다고.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이다. 이번에 나온 책 <풀 블룸>(원제) 덕분에 그녀의 예술과 생애에 대해 풀 스케일로 들여다볼 수 있겠다...    

문화일보(08. 12. 05) 사진모델서 화가로… ‘美모더니즘의 女神’

#1.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키프로스의 왕이 있다. 뛰어난 조각가이기도 한 피그말리온은 어느날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하고 나서 그만 그 조각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조각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피그말리온이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아틀리에로 돌아와 조각에 입을 맞추자 조각은 사람이 돼 걸어 내려왔다. 이 여성이 갈라테아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미국의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가 갈라테아라고 하면 그를 발견한 사진작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피그말리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키프는 아름다운 갈라테아에 멈추지 않고 한 사람의 예술가로 자립, “사물의 지극한 단순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미국 모더니즘의 개척자가 됐다. 오키프는 194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부터 1950년대와 1960년대 하드에지, 팝아트, 옵아트,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미국 모더니즘 양식들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오키프가 숨진 뒤 2001년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620만달러(당시 62억여원)로 팔려 여성 화가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스티글리츠가 찍은 오키프의 손은 2006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147만2000달러(당시 15억여원)로 사진경매가 최고를 기록했다.



이 책은 저자가 10년에 걸쳐 수십명을 인터뷰하고 그에 관한 수천통의 편지 등을 읽고 쓴 오키프의 전기다. 이 책에 따르면 오키프는 엄청난 고통, 전문가로서의 실패와 정서적 좌절과 행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지혜를 갖고 있는 여성이었다.

#2. 1908년 미국 뉴욕 예술계 명사였던 스티글리츠의 291화랑은 마티스, 브랑쿠시, 세잔, 피카소 등을 미국에 처음 소개한 진보적인 화랑이었다. 1915년 시골뜨기 화가 지망생 오키프가 찾아와 스티글리츠에게 수채화 추상화를 보여줬다. 스티글리츠는 “드디어 회화사에 진정한 여성 화가가 나타났다”고 격찬했다.

오키프는 화가가 되기 위해 아버지뻘 나이의 유부남이었으나 자신을 알아준 스티글리츠와 결혼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2년동안 200점이 넘는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1921년 전시를 통해 오키프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오히려 감수성이 강한 여신이면서 연약한 성적 대상으로 연출된 스티글리츠의 이미지에 가려져 버렸다.



#3. 이 책의 원제는 ‘풀 블룸(Full Bloom·만개·滿開):조지아 오키프의 예술과 생애’다. 오키프가 본격적으로 포착한 것은 만개한 꽃이다. 그는 꽃의 여성적 이미지에서 강렬한 전복적 의미를 추적했다. 그의 활짝 핀 꽃은 프로이트적 성적 의미를 넘어 남성의 시기와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예술은 뉴욕의 스티글리츠를 떠나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홀로 칩거, 천착한 해골이다.

오키프는 골반뼈 그림에 대해 “뼈의 구멍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였을 때 나는 골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볼 때 구멍 안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것은 모든 인간의 파괴가 끝난 후에도 언제나 거기에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김승현기자)

08.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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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판 프리다 칼로군요.스티글리츠는 앵글로 색슨 이름은 아닌 것 같고...조상이 누구일까요?

로쟈 2008-12-06 19:22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도 서양 이름엔 별로 감이 없어서... 독일이나 그 주변 같기도 하고요...

개츠비 2008-12-0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이책의 표지가 진중권 선생님의 <성의 미학>과
똑같은데요? 전 <성의 미학>인줄 알았는데 딱보고...ㅋㅋ

로쟈 2008-12-07 08: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책의 표지로도 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