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신병주의 <이지함 평전>(글항아리, 2008)을 다루었다. 곧 기축년 새해를 맞게 되기에('기축년'은 음력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을 찾은 것인데, 정작 <토정비결>은 토정의 직접적인 저작은 아니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인데 조선 중기 정치적 혼란기에 '비결'류의 책들이 여럿 나왔다고. <남사고비결>, <북창비결>이 <토정비결>과 마찬가지로 민간에서 유행한 '예언서'였다고 한다. 여하튼 나로선 토정비결을 보는 셈치고 읽은 책이다(책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인터넷 토정비결을 봤는데, 두 곳의 운세가 서로 달랐다. 그냥 모른 체하기로 했다).  

 

시사IN(09. 01. 03) <토정비결>은 토정이 쓰지 않았다 

기축년(己丑年) 새해를 맞는 만큼 어김없이 토정비결을 찾아보는 이들이 많을 듯싶다. 무슨 사자성어처럼 쓰이지만 ‘토정비결’은 ‘토정의 비결’이란 뜻이다. 흙으로 지은 정자를 가리키는 ‘토정(土亭)’은 알다시피 이지함(1517-1578)의 호이니 고유명사다. <토정비결>은 이지함판 <시크릿>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 <시크릿>이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을 알려주려 한다면, <토정비결>은 자력구제가 가능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 한 해의 운세를 일러준다. 흥미로운 건 이지함이 상식과는 다르게 <토정비결>의 저자가 아니라는 사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토정비결>이 이지함 사후에 유행하지 않고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을 고려할 때 토정이란 이름을 빌려 썼을 거라는 얘기다. 그 이유로 저자는 이지함이 점술과 관상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 친숙한 민중 지향적 지식인이었다는 점을 든다.   

사화(士禍)의 회오리에서 한 발짝 비켜서 처사(處士)의 삶을 살다 갔지만 이지함은 세상을 잊은 채 현실을 외면한 은둔거사가 아니었다.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세력으로서 ‘처사형 학자’는 다양한 학문과 사상에 관심을 갖고서 민생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쓴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이지함 또한 천거를 받고 1573년에 포천현감에, 1578년에는 아산현감에 부임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정치적 이상을 펴보고자 했다. 

그의 핵심적인 사회 경제사상은 무엇이었나?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한 포천현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조정에 올린 상소문에서 그는 상․중․하 세 가지 대책을 제시한다. 상책은 국왕이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고, 중책은 국왕을 보좌하는 이조와 병조의 관리들이 청렴성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하책은 땅과 바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농업이 본업이던 사회에서 상업과 수공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지함은 덕이 본(本)이고 재물이 말(末)이지만 본말은 상호보완적이며,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리(利)’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앞선 그의 적극적인 국부 증대책과 해상 통상론은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18세기 북학파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지함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벼슬을 사직했다.  

<주역>에 따르면 변혁에는 시기와 지위와 능력이 필요하지만, 저자는 이지함의 경우 뛰어난 자질에도 불구하고 시기를 찾지 못했고 현감이라는 지위도 이상을 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평한다. 민중을 위한 ‘토정의 비결’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까? 

08. 12. 29. 

 

P.S. 원고를 쓰다가 찾아보니 이문구 선생의 소설 <토정 이지함>(랜덤하우스코리아, 2004)이 눈에 띄었다. 테마로 글을 쓴다면 읽어보고 싶다. 소설 토정비결 류 외에 김서윤의 <토정 이지함, 민중의 낙원을 꿈꾸다>(포럼, 2008)도 소설로 <이지함 평전>과 비슷한 면모를 다루고 있을 듯싶다. 사실 <이지함 평전>은 서두를 읽으면서 가졌던 기대치는 총족시켜주지 못한는 책이었다. 가령 저자가 그리고자 하는 이지함의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국부의 증대와 민생에 유용한 것이라면 어떤 산업도 개발해야 한다는 신념과 유통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근대 경제학자들의 논리와도 유사성을 갖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지함을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나아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경제 이론가이자 실천가라 칭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5쪽) 

이지함은 16세기의 개방적이고 다양한 학문 경향을 보여주는 핵심적 인물이며, 특히 적극적인 국부 증진책을 제시한 그의 사상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양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은 잘 알고 있으면서, 막상 우리 선조인 이지함이 애덤 스미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그러한 사상을 제시했던 사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애덤 스미스보다 앞선 시기에 적극적인 국부론을 주장하고 실천한 학자 이지함,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지함은 재평가되어야 할 인물이다.(15쪽)  

인용문만 놓고 보자면 이지함은 서양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에 견줄 만한, 아니 그보다 앞선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다. 하지만, 본론에서 이러한 주장에 대한 '입증'은 몇 가지 에피소드로 대체되고 있다. '북학 사상의 원조 이지함'에 대한 '본격 재조명'이라고 하기엔 미흡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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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개정안(개악법안)에 반대하는 MBC노조의 파업(전국언론노조의 파업으로 확산될 예정이라 한다) 때문에 지난 여름에 흘려보낸 책을 다시 책상맡에 갖다놓았다.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2008). '집단지성, 공영방송을 말하다'가 부제이고, 말 그대로 '집단지성' 편저로 돼 있다. 이미 현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1단계는 <와이티엔> <아리랑> 등의 사장을 특보단 출신으로 낙하산 임명하는 것, 2단계가 한국방송 사장 교체, 그리고 마지막 3단계가 문화방송 민영화"라는 것은 공공연한 기밀이었는데, 그렇게 다 노출된 시나리오를 이처럼 대놓고 철면피하게 밀어불일 줄은 몰랐다. 이런 게 '공구리 정신'인가? 여차하다간 그 공구리에 같이 파묻힐지도 모르겠다(그러니 '부탁해'는 너무 얌전한 부탁이다!). 늦게라도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08. 09) 위기의 공영방송, 당신이 지켜줘!  

2008년 4월29일 <문화방송>(MBC) ‘피디(PD) 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1편을 방영했고 그 며칠 뒤부터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이로써 ‘피디수첩’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면서 ‘68혁명’에 비견되고 브로드밴드(인터넷 광대역) 직접민주주의 실험의 선구로 칭송받는 역사적 사건인 촛불시위의 진원지가 됐다.  

하지만 아주 다른 시각도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조선일보> 7월7일치 ‘시론’에서 다우너 소와 아레사 빈슨의 죽음에 관한 피디수첩의 “모든 장면들은 허위로 드러났다”고 단정했다. 그는 이어 “그것은 무서울 만큼 교묘하게 계산된 공포와 선동의 메시지”였고 “사실과 주장, 진행자의 말실수와 오역 등이 적절하게 섞여 소름끼칠 만큼 잘 만들어진 거짓의 몽타주”였다고 다시 확언했다. “이러한 몽타주는 순진한 어린 학생들, 그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 가정주부들, 그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들을 선동”하였으며, 그 결과 “이성이 마비되었고, 분노가 치솟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우리 사회는 또다시 갈가리 찢긴 가운데 정부와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였다. 무엇보다도 진실이, 그리고 진정한 언론이 붕괴하려 하고 있다.”  

윤 교수 주장대로라면 촛불시위에 참가한 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한 방송사의 무서울 만큼 계산된 공포와 거짓 선동에 놀아난, 다른 아무런 정보도 주체적 판단력도 없는 맹목의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정부 신뢰 추락과 국가 위기 사태도 이 용납 못할 방송사가 내보낸 저주받을 단 하나의 ‘거짓 몽타주’ 프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정권의 횡포로부터 피디수첩을 지켜 달라고 호소한 피디들은 “자신의 잘못을 선동의 정치로 돌파하려는” 파렴치범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론이 무게를 갖는 것은 그게 바로 정부 뜻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펴냄)에서 이 시론을 인용하며 “현재 수사 중인”, 그리고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검찰의 논고문도 이처럼 과격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동적인 용어로 넘쳐나고 있다”며 “저널리즘의 윤리적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사안을 확대·과장한 이면에는 어떤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누가 정말 선동적이고 정치적인지를 묻고 있다. 그는 피디수첩 위법 논란과 관련된 주요 쟁점들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 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로 단정해서 한쪽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몰아갔는가.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인간광우병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 보도했는가. 피디수첩의 보도는 언론의 감시·견제 역할이라는 공적 권한을 넘어 의도적 왜곡 보도를 시도했는가. 그리하여 피디수첩은 과연 거짓의 몽타주인가. 이를 하나하나 검토한 김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추가협상까지의 과정, 장관고시의 성급함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모든 잘못을 ‘피디수첩’에 돌려 단죄하려 든 것은 윤 교수의 성급한 단견이 아닐까.” 한때 유행했던 빌 클린턴 어법을 약간 비틀어 김 교수의 속내를 표현한다면, “문제는 정부의 엉터리 협상과 처방이야, 바보들아!”쯤 될까.  

“조·중·동이 떠들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질의하고, 검찰이 수사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결정하는 기가 찬 공조체계”(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가 단죄하려는 것은 당연히 윤석민 교수가 아니라 그가 피디수첩에 덮어씌운 혐의들이다. 일방적이고 일사천리다. 공조체계가 노리는 것은 전면적 방송 장악이라는 게 이 책 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금 전 교수가 지적한 그 기가 찬 공조체계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피디수첩, 엠비시, 공영방송만을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니다. 인터넷과 네티즌, 촛불집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탈법적인 저질 우중, 폭력배, 폭도로 싸잡아 매도한다. 광고 보이콧 운동을 펼치는 소비자들을 고발하고, 인터넷 카페를 문닫게 한다. 마치 자신들이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선한 약자인 양, 나머지를 좌파, 빨갱이, 반사회·반정부·반국가 집단으로 내몬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을 정치와 언론 권력자들은 “‘10년 좌파세력의 저항’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들은 존재 여부도 불분명한 좌파, 까놓고 말해 ‘빨갱이’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실책과 범죄행위를 모두 빨갱이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1950년대에나 통했던 매카시 수법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놓으려 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많다. 상대를 다른 의견을 지닌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 이런 전면적인 권력투쟁의 파괴적인 영향이 곧 해일처럼 밀려올지도 모른다.  

<MBC, MB氏를 부탁해>는 바로 이런 현실을 대중들에게 보고하고 그들을 공영방송의 외부자가 아닌 핵심 당사자로 인정하면서 그들이 미디어 공공성 지키기와 발전을 위해 직접 행동의 주체로 나서도록 촉구하는 ‘공영방송 담론 대중화’ 기획, ‘엠비시에 관한 새로운 대중적 집단 글쓰기 실험’이다.  

따라서 외부의 적에 대한 항쟁만이 아니라 거리의 저널리스트들과 연대하라(김형진 미디어운동가), 거리의 민중성이 갖는 민족주의적 속성을 경계하라(민임동기 <미디어스> 기자), 시민민주주의와 결합하라(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엠비시 내부를 향한 주문들도 담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MB氏에게 엠비시를 부탁해선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한승동 선임기자)   



■ 정부의 언론장악 이래서 안된다 
“상식이 좌파로 공격당하는 이 비상식적 환경을 두고 볼 수 없었다.” <MBC, MB氏를 부탁해>를 전규찬 교수와 함께 기획한 ‘문화관찰자’ 완군(29·사진)씨는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국가기관을 총동원해도 <한국방송> 사장 한 사람 날릴 전망조차 불투명해지지 않았느냐. 어떤 정권도 언론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자충수다.” 왜 그렇게 볼까?  

“<한겨레>도 그렇지만 <문화방송>도 오너가 없는 회사다. 지난 10여년 방송인들이 콘텐츠를 생산할 때 간섭이나 외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 책 ‘닫는 글’에서 김현철 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지부 홍보국장이 얘기했듯이 그들은 자기 아이템에 대해 안팎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에겐 그게 상식이 돼 있다. 그런 그들을 이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윗선은 가능할지 몰라도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실무 성원들에겐 절대 불가능하다. 아직 정권의 간섭이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거기까지 가면 내부의 그들이 들고일어설 것이고 시민들이나 1인미디어 등 외부 지원세력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권의 목표는 그들 내부문건을 통해서도 드러났듯 명확하다. “1단계는 <와이티엔> <아리랑> 등의 사장을 특보단 출신으로 낙하산 임명하는 것, 2단계가 한국방송 사장 교체, 그리고 마지막 3단계가 문화방송 민영화다.”  

책을 기획한 건 지난 6월 중순. 그러니까 책은 기획한 지 달포 만에 초고속으로 제작 완료했다. “촛불시위 이후 문화방송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크게 호전되면서 책 만들 궁리를 했고, 문화방송 노조 쪽과도 한번 해 보자는 사전 교감을 했다. 전규찬 선생과 필진 섭외를 함께 했는데, 이미 많이 알려진 전문가들은 될수록 빼고 젊은 활동가들 중심으로 짰다. 모두 25명이 참여했다. ‘집단지성’을 통해 문화방송을 권력의 정치적 계산에서 지켜내고 더 좋은 방송으로 만들자, 문화방송의 공영성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내자, 문화방송한테서 우리한테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 그런 게 기획의도다.”(한승동 선임기자)  



■ 공영방송 민영화 이래서 안된다 
공영방송의 민영화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김동준(36·사진)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문답식으로 정리한다.  

1. 선진국과 비교해 공영방송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1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영국, 일본은 1공영체제지만 한국의 방송환경과 공영방송 운영방식은 이들 세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프랑스는 공영방송이 넷이나 되고 네덜란드는 셋, 독일과 스웨덴·벨기에·덴마크·스페인·포르투갈은 각각 둘씩이다.”  

2. 공영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니 축소해야 한다.
“궤변이다. 현재 조·중·동의 신문시장 점유율은 70% 수준이지만 뉴스프레임 형성과 논조 주도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중·동의 시장장악이 95%를 넘어선다. 공영방송은 조·중·동이 그나마 최소한의 저널리즘 흉내라도 낼 수 있도록 압박하는 구실을 한다.”  

3. 민영화로 경영합리화를 이룰 수 있다.
“이윤 창출만을 추구하여 서비스 질의 하락을 초래한다. 보수세력이 케이티(KT) 민영화로 얻을 수 있다고 그토록 강조한 ‘국익’은 어디로 갔나? 케이티 수익의 50%는 외국에 유출되고 있고 사원은 6만여명에서 3만여명으로 축소해 무려 3만여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4. 민영화를 통해 여러 공급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수용자 복지가 증진된다.
“오히려 프로그램 다양성이 훼손될 여지가 크다. 민영화가 콘텐츠 제작 주체의 증가나 다양화로 이어지기보다는 대중들과 광고주의 취향에 부합하는 상업적 프로그램만 양산한다. 드라마는 ‘불륜’ ‘삼각관계’라는 시청률 문법만 강조되는 쪽으로 획일화하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연성화한 외주제작 정책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  

5. 공공부문을 축소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다.
“신자유주의와 국제 금융자본에 굴복하는 거다. 민영화로 포항제철은 외국인이 전체 주식의 60% 안팎을 소유하게 됐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정부지분을 인수한 자본 역시 외국 금융자본이며, 주요 공기업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는 주체도 사실상 외국자본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큰 신문사와 재벌,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외국 미디어자본이 장악하게 될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08.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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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30 17:13   좋아요 0 | URL
조중동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는 많아요.촛불시위 때 조중동이 곧 망할 것 같았지만 이름없는 조중동 애독자들의 뒷심이 아직은 상당한 것 같아요.

로쟈 2008-12-31 01:21   좋아요 0 | URL
관성인지 무관심인지 그것도 아니면 (탁석산의 지적대로) 실용주의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애독'은 아닐 거라고 믿어봅니다...
 

2009년 1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는 그젠가 발표되었고, 내주에는 책을 골라둘 만한 여유가 없을 듯싶어서 미리 작성해놓기로 한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내년 전망이 밝지 않은 탓에 새해를 맞는 일이 전혀 기쁘지 않다(하긴 올해도 그랬다. 그리고 정말로 1년 동안 즐거운 일이 드물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겨울 동안의 일이 잘 마무리되어 '무사히' 봄을 맞게 되기만을 바라는 정도다(그게 새해 소망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1월도 12월만큼이나 금방 지나간다. 그 '없는' 시간에 읽을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까치, 2008)이다. 무슨 책인가? "어떤 책은 책의 내용을 알기도 전에 표지만 보고도 그 책이 좋아서 두 손으로 쓸어보게 되는 책이 있다.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그런 책이다.(...) 권태에 빠진 청년이 오후에 홍차와 곁들여 마들렌느를 먹다가 그 맛을 회상하며 소설의 단초를 풀어나가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는 미술관을 방불케 할 만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그림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수많은 회화들은 그저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흐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흐름을 주도한다. <스완씨 댁쪽으로>를 비롯해 7권의 책 속 그림과 관련된 대목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잃어버린 시간'이 '잃어버린 시절'로 바뀐 것은 '티내기'의 일종일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여하튼 더 친숙한 제목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그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이 책은 그 그림들을 프루스트의 원문과 같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일종의 '보너스'이고 '서플먼트'이겠다. 그걸 제대로 감상하려면, 물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먼저 손에 들어야겠고. 나는 책들이 다 박스에 들어가 있어서 '잃어버린 시간'보다 '잃어버린 박스'를 먼저 찾아야 할 형편이지만, <갇힌 여인>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어볼까도 한다.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민음사, 1997)과 이성복의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문학과지성사, 2004)도 마들렌 과자처럼 곁들여 읽을 만하다.   

 

7부작 중에 굳이 <갇힌 여인>을 거명한 것은 샹탈 애커만의 영화 <갇힌 여인>(2000)을 보기 위해서다. 이 영화에 대한 조금 고급한 해설은 이렇다. 

1970년대 초반에 루키노 비스콘티는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꽤 비장한 생각을 갖고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스크린 위로 옮겨내려는 작업에 착수했지만 결국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해롤드 핀터가 동참했던 조셉 로지의 뒤이은 ‘프루스트 프로젝트’도 실현에 이르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현대)영화는 알랭 레네의 예에서 보듯 프루스트로부터 신선한 자극과 심원한 배움을 드물지 않게 구해왔음에도 방대함과 심오함과 복잡함이 뒤엉킨 프루스트의 실지(實地)마저 감히 정복하진 못했다. 실제로 영화화 프로젝트에 돌입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미신에 가까운 두려움을 가졌었다는 비스콘티의 태도는 프루스트란 대작가를 곤혹스럽게 대하는 영화 자체의 전반적인 태도와 통하는 데가 있지 않나 싶다.  



영화가 프루스트에 대한 그 같은 두려움 혹은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최근의 일인데, 그 공로는 <되찾은 시간>(1999)의 라울 루이즈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폴커 슐뢴도르프의 <스완의 사랑>(1983)이 시기상으로는 앞선 프루스트 영화이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전반적으로는 밋밋한 이 코스튬 드라마에서 어떤 영화적 ‘성취’를 발견하긴 어렵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편을 빼어나게 각색한 이 영화에서 그는 프루스트의 다층적인 세계가 영화의 마술적인 힘과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영화’라는 이슈를 고려할 때 좀더 놀라워해야 할 ‘사건’은 루이즈의 선구자적인 영화가 나온 바로 다음해에 샹탈 애커만의 <갇힌 여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프루스트의 텍스트에 다가가는 쪽인 루이즈와 달리 그것을 영화감독이 자기쪽으로 끌고 오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애커만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5편에 해당하는 <갇힌 여인>(La Prisonniere)에서 핵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설정과 주제를 추출해내서 그것을 그녀 특유의 ‘내핍의 미학’ 안에 용해해 <갇힌 여인>(La Captive)이란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축조된, 프루스트 영화로는 믿을 수 없게 단순해 보이면서도 주제와 형식에의 과감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이 영화는 프루스트를 대하는 ‘다른’ 식의 창의적인 태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다.(홍성남_영화평론가)  

요는 한번 봐볼 만하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먼저 읽어보는 게 유익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어 완역본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한데 개인적으론 원로 불문학자 홍승오 선생의 번역을 고대하고 있다. 어디선가 읽은 바로는 정년 퇴임 이후에 이 작품의 번역을 필생의 과제로 삼겠다고 하신 까닭이다. 워낙 대작이라 과연 또다른 한국어본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2. 역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추천한 책은 김덕진의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푸른역사, 2008)이다. '17세기의 또다른 역사'라고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2441832). 전문가의 평은 이렇다. "흉년(凶年)의 원인은 대개 다섯 가지다. 한해(旱害:가뭄)·수해(水害)·냉해(冷害)·풍해(風害)·충해(蟲害)가 그것인데, 이중 한 두 가지만 겹쳐도 쑥대밭이 된다. 이 다섯 가지 재해가 한꺼번에 닥쳤을 때가 이 책에서 서술하는 현종 11년(1670)과 현종 12년(1671) 때였다. 이를 경신(庚辛)대기근이라고 부르는데, 현종 11년 봄 냉해(冷害)와 한해(旱害)가 밭농사를 망치더니 여름에는 수해가 논농사를 휩쓸었다. 겨우 살아남은 작물을 가을철의 풍해(風害)·충해(蟲害)·냉해가 다시 덮쳤다.(...) 2년에 걸친 대기근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뒤바꾸어 놓는지 ‘기근’이란 현미경을 통해 본 새로운 역사서다."   

이 '새로운 역사서'와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은 '기념비적인 역사서'이다. 짐작에 2008년에 나온 가장 중요한 한국사 책은 제임스 팔레의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산처럼, 2008)이 아닌가 싶다. 간략한 설명으론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나타난 경세사상을 초점으로 삼아 조선 후기 유교적 경세론의 실체를 추적해간" 책인데, 저자가 그런 길을 택한 건 "유형원이 17세기 조선 사회의 약점에 대한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분석을 쓴 조선의 첫 번째 학자로서 <반계수록>을 통해 조선의 유교적 사회의 본질과 복잡성을 파악하는 데 훌륭한 경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어제 팔레 교수의 <전통한국의 정치와 정책>(신원문화사, 1993)과 영어로 나온 <Views on Korean Social History(한국사회사에 대한 관점)>을 배송받았고, 지난주에는 미국의 한국학을 개관하는 글들을 좀 읽었다(한홍구 교수와 팔레 교수의 정년 기념대담도 포함된다). 몇 가지 이야깃거리들이 있는데, 기회를 봐서 1월에 풀어놓도록 하겠다(분량도 분량이지만 20년간의 노작인 <유교적 경세론>은 워낙 고가인지라 일단 1월에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값을 마련해야겠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청소년용이다. 김보일의 <14살 철학소년>(부멘토, 2008). 추천의 변은  이렇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 에세이. 엽서 분량의 짧은 글들 속에 재미와 교훈, 지식과 상상, 사례와 통찰이 깔끔하게 엮여있다. 이야기는 언제나 상식을 깨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무지개 색은 일곱 가지일까? 기생충은 쓸모가 없을까? 굶주림은 식량 부족 때문일까? 동물은 야만적인 존재일까? 앵무새 같이 통념을 내뱉기 쉬운 청소년에게 지혜의 세계에 눈뜨게 하는 물음이다. 돈키호테처럼 천방지축이기 쉬운 청소년에게는 바르고 올바른 생각의 무게를 일깨울 것이다. 성장기에 있는 중·고등학생에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주어야 할지를 늘 고민하는 국어교사의 역작이다." 

그런데 왜 하필 14살인가? 중1 나이다. 예전엔 17살(고1) 때 뭔가 결정하거나 결정되는 걸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하도 '선행'을 하니 이 또한 빨라진 모양이다(하긴 국제중 입시라는 것도 새로 생기지 않았나?). 찾아보니 열네살 때 인생의 진로도 결정해야 하고 토플도 만점 받아야 한다. 왜 사는지, 철학적 고민을 해볼 만한 나이다!  

 

잇대어 읽을 만한 철학서로는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가 있다. 국내에 3-4종의 번역이 나와 있는 듯싶고 그만큼 대중적이란 뜻도 된다. 개인적으론 제일 처음 읽은 철학서이기도 하다. 그래도 고3 때였던 듯싶은데, 요즘의 준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겠다. 뭐 늦더라도 꾸준한 것이 미덕이라면 나의 철학 성적표도 나쁘진 않아 보이지만...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으로 손호철 교수가 고른 것은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진정한 리더는 떠난후에 아름답다>(중앙북스, 2008)이다. 사실 내용이야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책이다. 즉, "<진정한 리더는 떠난 후에 아름답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은퇴 후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한 의미 있는 책이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세계를 평화롭게, 인류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백악관을 떠난 뒤 카터재단을 만들어 세계를 누벼온 그의 후반부의 인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감동을 주고 있다." 요는 우리의 '전직'들과 비교된다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카터의 퇴직 후 활동이 예외적인 것 아닌가? 게다가 그 자신이 재임시에는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79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카터는 내가 기억하는 첫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다('땅콩장수' 출신의 카터는 전임자인 포드를 누르고 당선됐는데, 그 이전이라면 정치에 관심을 갖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게 어느덧 30년 전 아닌가? 흠,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서도 30년을 더 산다는 건 좀 드문 일이지 싶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하는 경제/경영서는 유영만의 <내려가는 연습>(위즈덤하우스, 2008)이다. 제목만으로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데, 부제가 '경제빙하기의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이다. 아하, 싶은 책. 저자는 교육공학자이자 지식생태학자이고, "이 책은 지금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왜 그런 메시지가 필요한가? 현재 "1997년 말의 경제위기를 잘 버텨낸 사람조차 겁먹게 만들 정도의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747 노래를 부르던 어떤 이조차도 어제는 내년 상반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고 실토를 했다.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바로 지금 항복을 선언하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하기를 권한다. 오르려면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하라고 말한다." 좀 식상한 충고인데, 어떤 위로를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라면, <공황전야>(지안, 2008)의 현실을 보다 냉철하게 직시하고 <장기 20세기>(그린비, 2008)라는 추이와 전망을 살펴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내려가는 법? 사실, 지금은 내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추락하는 중이므로 중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착지' 아닐까?..   

6. 사회

흐흐,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르몽드 세계사>(휴머니스트, 2008)이다. 흐흐, 하고 웃음이 나온 건 지난주에 얻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데, "<르몽드 세계사>의 특징은 세계 각처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파편화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새의 눈(bird's eye)'이라는 거시적 안목으로 바라 볼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세계사”라는 제목이 붙여졌으되, 읽기와 보기라는 이원적 의사전달 형식에 기초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관류하는 인류사의 이모저모를 선별된 250개의 지도를 곁들인 104개의 핵심 키워드를 통해 간결히 설명하는 독특한 기획이 돋보이는 지리책이자 역사책이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고, 좋은 보교재다.  

사회분야 책 추천이 '지리책이자 역사책'에 대한 권유로 바뀌었는데, 내친 김에 보태자면 조반니 아리기와 비버리 실버의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2008)와 마르크 페로의 <새로운 세계사>(범우사, 1994)도 읽어볼 만하다. 페로의 책은 얼마전 <식민주의 흑서>(소나무, 2008)가 번역된 덕분에 챙겨두게 된 책인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부터 세계사의 여정을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돼 있다. 그가 편집한 <식민주의 흑서>는 하권까지 완간되면 기념으로 다룰 예정이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도 눈에 익은 책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 모음집 <과학이 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2008).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두고 소설가, 문학평론가, 과학철학자, 과학기자, 종교학자, 번역가, 물리학자, 화학자 등 과학 밖에 있는, 과학의 변경지대에 있는, 그리고 과학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진솔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30편의 에세이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가 발간하는 웹진 ‘크로스로드’에 실렸던 글들로 과학자는 연구자나 교육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감상이나 일화를, 인문학자는 최근의 지적 관심사에서 과학을 주제로 한 칼럼을 담았다." 참고로, 그 소설가는 김연수이고, 문학평론가는 김병익 선생이다.  

과학이 부르는 대로 가보면 펼쳐지는 장관이 있다. <현대과학의 풍경>(궁리, 2008)이다. 두 권짜리이고 값도 만만찮지만,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과학사의 흐름을 일람하는 데 좋은 책이다. 잠시 소개기사를 참고하면, "1권은 화학혁명, 에너지 보존, 다윈 혁명, 유전학, 대륙이동설, 20세기 물리학 등 17~20세기의 과학적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2권은 과학단체, 과학과 종교, 대중과학, 생물학과 이데올로기, 과학과 젠더 등 주제별로 현대 과학의 관심사를 다룬다. 애초에 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만큼 과학기술학, 과학사에 대한 학구적 관심과 이해가 있는 독자들에게 권할 만하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치 않은 전개방식과 다수의 번역자들이 편차를 보이는 번역투 문체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한국일보)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사이드의 <그림의 목소리>(아트북스, 2008). 무슨 책일까 궁금하게 만드는데, 이런 컨셉이라고 한다. "<그림의 목소리> 안에는 너무나 서로 다른 서른아홉 점의 작품들이 들어 있다.(...) 사이드는 그림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상상으로 그 장면을 희곡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주관적인 별도의 소설을 쓰기도 하고, 시적 이미지를 글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 글을 읽다보면 내가 본 시각과 작가가 본 시각이 매우 다르기도 하고 유사하기도 한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이 책은 그러한 비교 경험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도 불러일으키는 뜻밖의 효과가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목소리'를 다룬 예술 분야의 책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프랑스의 영화비평가이자 감독인 미셸 시옹의 <오디오-비전>(한나래, 2004)과 <영화의 목소리>(동문선, 2005)를 고른다. <영화와 소리>(민음사, 2000)까지 하면 '3종 세트'다. 이 분야에서는 독창적이면서 독보적이란 평을 듣는 책들이며 영어로도 번역돼 있다(찾아보니 시옹의 데이비드 린치론도 영역돼 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군!). 이렇게 생겨주신 분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에서의 목소리, 특히 보이스-오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거 '연구'하는 일로도 1월 한달은 모자라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꼽은 교양분야의 책은 '라이프 스토리'다. 고바야시 데루유키의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 2008). 제목에서 어림할 수 있는 대로,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는 교토의 다케시타 요시키 변호사의 라이프스토리다." '라이프 스토리'란 장르가 국내에선 아직 그렇게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지 않은 듯싶은데, '로스쿨' 준비서라고 하면 차라리 반응이 더 빠르겠다(준비생이 수만 명 아닌가?).  

주인공 고바야시는 누구인가? "1951년생, 우리 나이로 58세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정상이었다가 실명을 한 그는 한 때의 방황을 딛고 일어서 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사법시험 공부와 더불어 ‘점자 사법시험 실시’라는 초유의 사회운동도 함께 병행해야 했다. 게다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안마사의 일도 해야 했다. 우리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본 정부가 이런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점자 사법시험을 제정한 것이 1973년이다. 이후 아홉 차례의 도전 끝에 마침내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는 탄생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 사법시험 합격자가 탄생했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케시다 변호사보다 27년 늦었다."  

음, 그 '27년'이 한국과 일본의 격차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정권 들어서는 더 벌어졌겠다. 최근 시각 장애 합격자가 탄생한 것 말고 다른 지표는 모두 후퇴한 듯싶으니까. 대체복무제가 백지화된 걸 포함해서 말이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금태섭 변호사의 <디케의 눈>(궁리, 2008)과 한정우 현직 법률실장의 <변호사가 절대 알려주지 않는 31가지 진실>(한국경제신문, 2008)을 고른다. 금 변호사는 검사 시절인 2006년 한겨레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연재칼럼을 실었다가 열렬한 호응과 함께 내부의 '압력'을 받은 이력이 있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과)의 평에 따르면, "저자는 검사 생활을 접은 후 바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법의 '속살'을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 해왔다.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여덟 편의 재판을 소개한 <세상을 바꾼 법정>을 번역한 이후, 이번에는 책을 들고 나왔다. 이번 책에서 그는 국내외에 일어난 중요한 법적 사건과 자신이 검사와 변호사로 직접 겪은 경험들을 중심으로 쉬우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필치로 법과 세상을 이야기한다." 이 또한 로스쿨 준비생들의 필독서 아니겠는가.  

한 실장의 책은 전작인 <세 번만 읽어도 좋은 변호사를 만나 승소하는 법>(다산초당, 2006)과 <억울한 의료사고, 제대로 대처하는 법>(다산초당, 2007)에 이어서 '법률 소비자운동' 도움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어떻게 속이고 폭리를 취하는지 그 과정을 폭로하고, 올바른 법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법률문제들에 대해 속속들이 밝히고, 더 나은 법조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잘못 아는 법률상식과 더불어 현직 법률실장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정보와 사례를 담았다." 한다. '변호사가 말하지 않는 불쾌한 진실'을 공개하는 셈이니 거의 내부 고발자 수준 아닌가? 저자가 '전직'이 아니라 '현직'이란 점이 그래서 눈길을 끈다. 동업자들이 눈총이 심할 듯싶어서. 아무려나 억울하고 속 터지는 일들이 많을 성싶은 새해에 찾을 일이 많은 책이겠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10. 식민주의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식민주의'를 주제로 골랐다. 올해 주목할 만한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되면서, 그리고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에 자극을 받기도 해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내부 식민지이건, 외부 식민지이건 '식민주의적 상황'이란 여전히 유효한 현실인식의 틀인 듯싶고, 유럽 중심주의와도 맞물린 식민주의의 극복과 청산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다.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포스트식민주의) 관련서는 굉장히 많다. 일단은 마르크 페로가 편집한 <식민주의 흑사>(소나무, 2008), 제임스 블라우트의 <식민주의자의 세계모델>(성균관대출판부, 2008), 위르게 오스터함멜의 <식민주의>(역사비평사, 2006)를 골라놓는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2423241 참조).  

08. 12. 27.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스피노자의 <정치론>(갈무리, 2008)이다. 3종의 번역서가 있다는 얘기는 이미 소개한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483656). 미완성작이어서 아쉽긴 한데(특히나 '민주정'에 관한 장이 완결되지 않았다), 군주정과 귀족정에 대한 그의 사유에서 요긴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력이 있다면 네그리의 <전복적 스피노자>(그린비, 2005),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이제이북스, 2005) 등도 참조할 수 있겠다. 뒷표지의 문구대로라면, <정치론>은 "제국 시대의 전쟁과 권력에 맞선 절대적 민주주의 사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어쩌면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수호하거나 되찾기 위한 지침서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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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2-28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기의 <장기20세기>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도착했군요.

로쟈 2008-12-28 09:09   좋아요 0 | URL
네, 출간일이 성탄절이예요...

노이에자이트 2008-12-2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내 <전통한국의 정치와 정책>을 읽으시는군요.멋진 서평 기대하겠습니다.

로쟈 2008-12-29 08:12   좋아요 0 | URL
책이 절판될까봐 일단 손에 넣은 것이구요, 우선은 요지만 챙겨두었습니다. 읽는 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고요...

수유 2008-12-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책들은 흥미가 가는 책들이 많은데요...서점에 함 나가야것습니다.

2008-12-2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0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1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9-01-0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민주의 흑서] 실물 보신적 있으세요? 보신적 있으시다면 번역이나 도판이 로쟈님이 보시기에는 괜찮은지 좀 알려주세요. 촌구석에 살다보니 별 부탁을 다 합니다. 새해에도 귀찮게 해 드릴것 같군요. 그 대신에 새해 제가 가질 복까지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09-01-01 21:25   좋아요 0 | URL
책은 바로 구입했습니다. 도판은 많지 않구요, 번역은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 않았지만 괜찮은 듯싶습니다. 임지현 교수가 추천사까지 쓰기도 했고...
 

이번주 관심도서 중의 하나는 리처드 코치 등의 <서구의 자멸>(말글빛냄, 2009)이다. 발행일로는 2009년에 나온 책이다(이 주에는 그런 책들이 좀 된다). 코치는 성공학 지침서로 읽히는 <80/20 법칙>의 저자이기도 한데, 저자의 진의와 무관하게 '80/20' 사회를 떠올리게 하며 그러한 사회적 양극화에 뒤이어 '자멸'이 도래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그 책을 옮긴 공병호씨도 그렇게 생각할까?). 저자들은 '종말이냐 진화냐'라는 선택지를 제시하지만 나는 자꾸 '종말이냐 자살이냐'로 읽는다...

한국일보(08. 12. 27) 종말이냐 진화냐… 기로에 선 서구문명 

9ㆍ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은 "서구문명의 가치관은 파괴되었다. 자유와 인권, 인간성을 상징하던 위엄있는 두 개의 탑이 무너져내렸다. 연기처럼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과장된 정치적 선전일 뿐이다. 빌딩 두 개가 무너졌다고 문명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자멸>의 저자들은 테러 자체가 위협인 것이 아니라, 문명을 지탱해온 사상과 태도들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서구문명의 실상은 더 암울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80/20 법칙>의 저자인 리처드 코치와 영국 하원의원, 문화언론체육부장관을 지낸 크리스 스미스는 이 책 <서구의 자멸>에서 북미와 유럽, 호주에 걸쳐있는 서구문명이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해온 성공 요인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해 자멸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

저자들은 서구문명을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문명 가운데 가장 번성하게 만든 요인으로 그리스도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 6가지를 꼽았다. 이들은 이 6가지 핵심적인 신념과 행동패턴의 의미, 그것이 태동한 배경, 변천의 역사,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현재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밝혔다. 개인의 의무, 사랑에 중심을 둔 자기개선, 평등과 연민에 대한 헌신 등 그리스도교의 유산은 여전히 청신호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이었던 낙관주의는 쇠퇴했으며, 과학 발전의 과정에서 우주는 불확실하며 우리가 알 수 있는 목적이나 원리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학의 권위는 약화됐다.

또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지구의 생태균형은 심각하게 어지럽혀져 서구문명이 진화하지 않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면 그 가장 유력한 원인은 '생태적 자멸'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개인주의가 사회의 부유하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안겨주는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은 황신호를 깜박이게 한다. 서구인들의 냉소와 무관심으로 자유주의의 수준과 깊이가 사상 최저치에 가까운 것은 적신호다. 

서구는 지금 냉소주의와 이기주의, 무관심, 권력의 재집중 등으로 종말로 가느냐 아니면 용기의 회복, 서구문화에 대한 확신, 유럽인들의 단결 등으로 진화의 길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한국사회가 60년 동안 모델로 삼아온 서구사회를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책이다.(남경욱기자) 

08. 12. 27.   

P.S. 리뷰만 보아서는 통찰을 주는 책인지 서구문명 비판을 재탕하고 있는 식상한 책인지 얼른 식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들이 제시하는 서구 모델의 몇 가지 핵심에 대한 검토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시사가 되어줄 듯싶다. 덕분에 생각난 책은 수학자이자 '유나바머'로 잘 알려진 폭탄 테러리스트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의 <산업사회와 그 미래>(박영률출판사, 2006)이다. 그가 진단하는 산업사회의 미래가 곧 들이닥칠 한국의 미래와도 겹쳐지기 때문이다(청소년 버전으론 그냥 '동물농장'이고 '1984년'이다. 산업화되고 디지털화된 동원체제이고 전체주의다). '폭탄 테러'를 통해서라도 저지하려고 했을 만큼 암울한 미래다... 물론 반전이 없지는 않다. 아래 같은 기사를 읽으면 '종말이냐 자살이냐'의 선택지도 우선은 권력의 차지인 듯싶다(그들은 권력이 문명보다도 더 오래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겨레(08. 12. 27) 방송사에 ‘파업참가자 처리하라’ 사실상 으름장

정부 대변인인 신재민(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26일 전국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엄정대처 방침을 밝힌 것은 총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그는 애초 개인 일정을 이유로 취소했던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를 되살리면서 미리 준비한 메모를 꺼내 읽었다. 또 그는 자신의 발언이 “정부 안에서 교감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조율된 ‘준비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우선 그의 발언에는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가 강경대응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담겨 있다. 그는 이번 파업이 “노사간의 교섭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이번 파업에 대해 “언론노동자들의 신분과 지위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노동법상 합법 파업”이라고 주장한 것을 정면반박하며 ‘불법의 낙인’을 찍었다. 더 나아가 그는 “합법 파업은 보호해야 하지만 불법 파업은 엄정하고 단호히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경찰력 동원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또한 그의 발언에는 방송사 노조의 극한투쟁을 불러온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강행처리를 측면지원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는 “국회 입법을 둘러싸고 파업이 이뤄진 전례를 찾기는 거의 어렵다”며 언론관계법 처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충돌을 불사하면서까지 언론관계법을 강행처리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의지는 문화방송의 보도 태도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비판 속에 잘 드러났다. 그는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문화방송의 보도와 관련해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특정 방송사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하는 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매도하며 “엠비시 보도는 자기 회사 입장에 부합하는 내용이 많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정파적인 방송은 없다”고 비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방송법 개정에 반대 의사를 내비친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을 압박하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노조 등은 신 차관의 발언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이라고 일축했다. 채수현 정책실장은 “언론관련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한나라당 스스로 철회할 것”이라며 “언론노조는 총파업 수위를 최대치로 높여 모든 지·본부가 전면 제작거부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불법 파업 규정에 대해선 “방송구조의 큰 틀이 바뀌고 미디어산업이 재편되면 언론노동자들이 해고나 비정규직 전락 등에 직면할 수 있다”며 “그런데 어떻게 노사간의 교섭 대상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김재용 문화방송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신 차관이 문화방송 보도를 ‘정파적’이라고 문제 삼은 데 대해 “재벌과 조중동이 지상파 방송까지 장악하면 민주주의의 근본인 여론 다양성이 훼손되는데 어떻게 정파적 보도라고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신 차관이 파업 참가자에 대해 각 언론사 차원의 조처를 주문했지만, 문화방송 경영진은 이번 파업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어 회사 차원의 조처에 나설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 경우 다음 절차로 정부가 경찰을 투입해 파업 주동자 처벌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언론노조 쪽의 의지 또한 ‘결사항전’의 태세여서 충돌의 상처는 쉽게 헤아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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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27 18:12   좋아요 0 | URL
신재민 아저씨 무서워...조폭같이 생겼어요.

로쟈 2008-12-27 23:41   좋아요 0 | URL
인물들이 어째 다 그렇죠? 그렇게 변해가는 모양입니다...

jouissance 2008-12-27 19:18   좋아요 0 | URL
생긴거만 조폭이 아니라 하는 짓거리도 영락 조폭입니다. 조폭은 그래도 동네에서만 조폭 활동을 하지만 이 신종 조폭들은 온 나라를 대상으로 조폭 짓거리를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 조폭 떨거지들이 지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잘 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차라리 '연민'해 버리는 게 나을 듯 싶어요. 연민이라도 하지 않고는 남은 4년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서요. 저는 요즘 신문까지 취소했답니다. 원형탈모 생길 것 같아서...

로쟈 2008-12-27 23:43   좋아요 0 | URL
탈모는 주의하셔야죠.^^; 문제는 사시미를 든 놈들과 우리가 같은 방에 있다는 점이죠.--;
 

스피노자 <정치론>의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정치론>(갈무리, 2008). 처음엔 <신학-정치론>의 일부가 번역된 것인가 했는데, 예전에 <국가론>(서문당, 2001)이라고 소개된 책이다. 동서문화사판의 <에티카/정치론>도 최근에 다시 출간되어 졸지에 3종의 번역본을 거느리게 되었다(내가 그런 경우다). 예기치 않은 리뷰도 올라와 있어서 옮겨놓는다. 예기치 않았다는 건,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걸 깜박 잊은 때문이다. 어느새 2008년의 마지막 주말이다. 이 마지막 주에 나오는 책들이 주로 정치론이고 혁명론이다. 전운이 감도는 2009년을 미리 예고해주는 듯싶다(말미에 붙인 사진은 '미디어오늘'의 기사에서 가져왔다)... 

      

한겨레(08. 12. 27) 스피노자 “대중 분노케 한다면 국가 아니다

네덜란드 철학자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1632~1677)의 주저로는 <윤리학> <신학-정치론> <정치론> 세 종이 꼽힌다. 이 가운데 마지막 주저인 <정치론>이 새롭게 번역돼 나왔다. 새 번역본에는 주요 구절마다 옮긴이의 상세한 해설이 달렸다. 옮긴이 김호경 교수(서울장신대·신학)는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를 비롯해 스피노자 철학을 오늘의 사상으로 되살려내는 데 공헌을 한 현대 연구자들의 해석을 적극 참조해 해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의 해석을 통해 스피노자는 ‘전복적·급진적’ 사상가의 모습을 좀더 뚜렷이 드러낸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17세기는 근대국가의 태동기였다. 얼핏 보면 스피노자는 매우 관념적인 사유에 골몰했던 비현실적인 사람 같지만, 실상 그의 관심사는 삶의 구체적 지반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촘촘하게 짜인 논리의 그물로 삶의 문제를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해명하려고 했다. 그런 만큼 삶의 현실을 규정하는 정치의 문제도 그의 사상 속에서 해명되어야 했다.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핀 것이 <정치론>이다. 동시에 <정치론>은 먼저 저술된 <윤리학>과 <신학-정치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저작이다. <윤리학>이 자연이라는 총체적 세계 안에 인간을 배치하고 그 인간의 본성을 포착하는 저작이라면, <신학-정치론>에서는 신학과 함께 민주주의 문제가 탐구된다. <정치론>은 <윤리학>의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삼고 <신학-정치론>의 문제의식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 이 사유들을 응집하고 확장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국가의 세 형태로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을 제시하고 이들을 차례로 고찰한다. 스피노자는 세 정체가 다 나름대로 합리적 존재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근본적으로 민주정에 맞춰져 있다. 민주정이야말로 사람들의 본성을 가장 넓게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스피노자는 민주정 부분을 상세히 서술하지 못하고 폐병의 침탈을 받아 44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미완성 유작이다. 그렇지만 앞선 저작들과 연결지어 살필 때 그의 민주주의 정치이론은 어렵지 않게 구성될 수 있으며, 특히 인간과 국가의 본성을 설명한 <정치론> 전반부를 통해 그의 정치사상은 비교적 충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 

스피노자 사유의 출발점은 ‘코나투스’(conatus)다.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에게 ‘자기보존본능’이 내재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코나투스라고 부른다. 코나투스에는 정념과 이성이 함께 섞여 있다. 모든 인간은 이 코나투스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욕망이다. 이 욕망에 휘둘려 정념의 노예가 될 때 인간은 부자유 상태에 빠진다. 반대로 이성이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조절하면 그때 인간은 자유롭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욕망을 근절할 수는 없고, 욕망을 좋은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만이 가능하다. 욕망을 전환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이성이다.

인간이 욕망을 제거할 수 없다면 욕망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욕망을 날뛰게 하는, 사랑·미움·시기·분노 따위의 정념들 때문에 인간은 공동의 법이 없으면 갈등과 충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동의 법을 통해 공동의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자유를 누리려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 하는 데 있다. 스피노자는 국가도 인간과 같이 이성과 정념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본다. 국가가 이성의 명령을 따를 때 구성원의 보편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지만, 정념의 힘에 끌려가면 국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패덕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때 이 국가의 근본이 되는 것이 다중(대중)이다. 국가의 힘을 구성하는 것이 다중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목표도 다중의 평화와 자유다. 여기에 스피노자의 민주주의 사상이 배어 있다.

이 다중의 삶을 배반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의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 국가는 자신의 권력으로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정념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국가는 다중의 존경을 받지만, 이성적이지 못한 국가는 다중의 저항에 부닥친다. 그럴 때 국가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공포를 조장하는데, 공포는 결과적으로 국가 권력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다중이 소요를 일으키고 법을 경멸한다면 그 원인은 다중의 사악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사악함에 있다. “신민(국민)들의 부도덕과 무질서와 불복종은 국가에 원인이 있다.” 이 모든 혼란은 국가가 덕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스피노자는 특히 다중의 자율성과 능동성을 강조한다. “맹종하는 것만을 익힌 양떼처럼 신민들을 다루는 국가는, 국가라기보다는 황무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좋은 국가는 다중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이다.(고명섭 기자) 

08. 12. 26.    

P.S. "다중이 소요를 일으키고 법을 경멸한다면 그 원인은 다중의 사악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사악함에 있다. “신민(국민)들의 부도덕과 무질서와 불복종은 국가에 원인이 있다.” 이 모든 혼란은 국가가 덕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같은 대목에서 세밑을 맞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덕이 없다. 사악하고 포악하다. 이것은 국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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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7 0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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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7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7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7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시장미 2008-12-27 05:42   좋아요 0 | URL
따뜻하게 보내고 싶은 연말에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니네요. -_ㅠ

로쟈 2008-12-27 07:22   좋아요 0 | URL
새해 전망이 이렇게 어두운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거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12-27 18:07   좋아요 0 | URL
일본만 해도 우익인 산케이 요리우리 신문이 우리나라 조중동만큼의 구독률은 아닌데...한겨레나 경향 구독률은 아사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하기야 전라도에서도 조중동이 1위니까...그 정도 구독률이면 됐지,기어코 방송시장에까지 뛰어들려는 욕심은 참...거시기합니다.

로쟈 2008-12-27 23:37   좋아요 0 | URL
나름으로는 사활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죠. 지난달이간 분석기사로는 뛰어들어도 전망이 그다지 밝지는 않다던데요. 자금도 부족하고...

Mephistopheles 2008-12-27 18:31   좋아요 0 | URL
이건 뭐 정부는 마피아 같고...
경찰들은 마피아 밑에서 궂은 일 처리하는 행동대장 똘마니들 같고..에휴.

로쟈 2008-12-27 23:39   좋아요 0 | URL
국가기구의 정체가 원래 '마피아'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면은 있습니다. 잘만하면 '최악의 정권'으로 역사에 남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