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설치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든 생각은 아무래도 게리 슈테인가르트의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민음사, 2007)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망할 놈의 나라, 내지는 망하기로 작정한 나라가 MB의 대한민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의 '압수르디스탄' 수준이 아닐까. 어이없어 하면서 읽은 기사들 중 사설 하나와 진중권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1. 07) [사설]경제위기 확산된 뒤에야 설치된 ‘워룸’

비상경제정부 체제하의 상황실 노릇을 할 비상경제상황실이 어제 설치돼 가동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하루하루 급박하게 돌아가는 경제 상황을 점검하는 일종의 워룸(War Room)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정부 안팎에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황실 사무실을 전시(戰時)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청와대 지하 벙커에 두었다. 그러나 정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은 없고, 어딘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지 벌써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위기 초기, 그 위기가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지자 영국 등 몇몇 나라들이 워룸 같은 비상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바뀌는 금융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내 금융시장이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관련 업무를 총괄할 비상기구를 설치하기는커녕 부처별 각개약진과 혼선, 한 발 늦은 대책 등으로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그러던 정부가 금융시장이 얼마간 진정된 지금에서야 워룸을 운영한다고 하니, 뭔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뒷북치기 식으로 만든 기구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즉흥적인 업무 처리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달 전 이른바 신빈곤층 대책 마련을 지시했으나 신빈곤층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놓고 부처 간 논란만 빚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도 뒤죽박죽이다. 이 대통령이 연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자 지난해 말 정부 부처들은 2009년 업무계획을 통해 너도나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이때 나온 정부 부처들의 일자리 계획을 모두 합치면 43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실업자들의 절반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나 무슨 재원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새로 운영되는 비상경제상황실이 이런 전시성 계획이나 ‘뒤죽박죽’ 정책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노컷뉴스(08. 01. 07) 진중권 "녹색뉴딜? 군복이 녹색이면 군대는 환경단체?"  

▶ 진행 : 고성국 박사 (CBS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
▶ 출연 :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설치됐는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 한마디로 어이가 없죠. 서울이 지금 가자지구입니까. 이스라엘에 폭격을 맞고 있는 상황인가요. 그런 상황도 아닌데 왜 벙커로 들어가는지 모르겠고요. 이런 데서 우리는 집권층이 가지고 있는 구시대적 마인드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이 구사하는 수사법을 보면 정말 6,70년대의 남한 아니면 5,60년대의 북조선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예를 들어 집권하자마자 얼리버드 운동을 했는데 그건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을 연상시키고요. 대통령도 디지털 시대에 젊은이들을 향해서 에어컨 돌아가는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장 나가서 땀 흘리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이건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을 생각나게 하고, 또 정부와 여당에서 아주 공공연하게 속도전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속도전이야말로 전형적인 천리마정신인데요. 여당 대표도 공공연히 전국이 공사판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건 전쟁 직후의 전후복구사업을 연성시키거든요. 이걸 보면 정부여당의 마인드가 완전히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 지하벙커 문제는 청와대에 공간이 없어서 기존시설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던데요?   

= 그런 식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나와야 하는데 지금 지하상황실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레토릭이라는 게 제가 볼 땐 그런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정치적인 제스처가 있어서 자기들이 시시각각 전쟁 상황처럼 대응하고 있다는 발상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경제를 운용하는 걸 워게임 모델을 도입하는 게 굉장히 시대착오라고 생각합니다.  

▲ 경제위기상황실 운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도 그런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런데 이분들이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약간 일종의 문화적 이벤트로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랄까요. 언제는 위기였다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또다시 했다라고 했다가 굉장히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고요.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자체에 대해 대응하는 것도 있지만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라는 것들이야 왔다가 또 언젠가는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부분 전문가들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쯤 되면 경기가 다시 풀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군사용어까지 남발해가면서 호들갑을 떠는 게 맘에 안 들고요. 더 중요한 건 이분들이 나중에 경기가 풀리게 되면 그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상황실까지 설치해서 대응한 덕이 아니겠느냐고 자화자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정부가 어제 위기극복대책의 일환으로 녹색뉴딜을 발표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 군복이 녹색이라고 군대가 환경단체가 되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녹색이라는 게 원래 현 정권의 시장주의 코드와는 잘 안 맞는 색깔이거든요. 그런데 국제적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여온 건데,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파괴 때문에 세계 각 국에서 시장에 한계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까, 탄소배출을 제한한다든지. 그러다보니 할 수 없이 들여온 건데, 그 낱말을 들여다가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저탄소 에너지라면서 원자력을 강조한다든지 그런 식이라는 거죠. 그리고 녹색뉴딜이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콘크리트 공사 위주거든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 산 깎아서 콘크리트 치고 그 위에다 녹색그물 같은 걸 덮어두는 게 연상되더라고요.  

▲ 이번 녹색뉴딜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거든요?  

= 그런데 오바마의 그린뉴딜과 정부의 녹색뉴딜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오바마의 것은 최첨단 재생에너지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로 녹색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일자리들은 전문적이고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또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들도 대개 그런 식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져 있는데, 현 정권의 녹색뉴딜은 결국은 토목공사가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창출되는 일자리도 90% 이상이 건설일용직이고요. 또 공사가 끝나면 사라지는 일자리들인데요. 제가 볼 땐 경제에 대한 관념 자체가 너무 토목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50조라는 거금을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에 쏟아 붓는 걸로 보입니다. 사실 경기는 부양해야 할 필요가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 부문에서 일자리 창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50조라는 것도 결국 국민의 세금인데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고 전문적이고 우리 경제를 위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야가 극한대치상태를 벌이다가 합의를 했는데요. 여야합의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 저는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렇게 합의가 이뤄질 바에는 뭐 하러 그런 충돌을 해야 했느냐는 겁니다. 어차피 합의가 이뤄질 바라면 서로 예상이 되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강행하면 저쪽에서 물리적으로 저항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예측되는 결과들이 있는데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왜 매번 이런 것들을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여야 합의가 끝나고 나서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의원직 사퇴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 제가 볼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합의가 이뤄졌고요. 거기서 민노당이 계속 반발하다보니까 일종의 왕따를 시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민노당 의석이 작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이어지는 일종의 희생양 제의처럼. 물론 강기갑 의원이 잘못한 행위가 있는데 그것에 비해선 과도하게 중요성들을 부여하면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게 현명할까요?  

= 강기갑 대표가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분이 부상을 당하고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건 이해하지만 의원으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대국민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기갑 대표를 공적 1호라고 하면서 제명을 추진한다는 얘기까지 들리는데요. 제가 볼 때 강기갑 대표가 공적 1호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분들은 공적 0순위들입니다. 과거에, 또 현재에 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라는 거죠. 자기들도 의사당에서 분말소화기 쏘는 것도 폭력 아닌가요.  

▲ 여야 합의는 됐지만 한나라당 내에선 후폭풍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야당의 떼법에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굴복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만약 국회에서 다수당이 맘대로 한다면 굳이 총선한 다음에 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야당 의원들에게 뭐 하러 세비를 줍니까, 여당 의원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하면 되는 거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합의처리라는 용어도 있고 협의처리라는 용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절충하는 절차라는 게 그동안 국회에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 그런데 한나라당은 대선민심, 총선민심을 승복하라는 주장을 계속 하는데요?  

= 그럼 촛불민심도 승복해야죠. 지금 한나라당과 특히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나옵니까. 일본의 경우라면 내각의 사퇴, 내각을 다시 구성해야 할 정도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국민들이 대선 때 자기들을 뽑아줬다고 대선의 모든 공약을 다 동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논리적인 오류죠. 특히 대운하 같은 것들을 국민들이 그때 동의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방송법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여론은 다르게 나오고 있고요.  

09.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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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45   좋아요 0 | URL
원래 신자유주의,특히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뉴딜 반대파가 그 뿌리인데...그래서 우리나라 뉴라이트 경제학자인 이상돈(중앙대 교수)씨는 루스벨트 비판,뉴딜 비판에 몰두했지요.그런데 대통령이 뉴딜의 명성을 빌려 저렇게 나오니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뉴딜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그렇게 강조했거든요.

로쟈 2009-01-08 22:53   좋아요 0 | URL
기회주의적 비판이 아니었다면, MB식 뉴딜도 비판해야겠죠...
 

드디어, 자크 라캉의 세미나 시리즈가 출간되기 시작했다. 세미나 11권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새물결, 2008)이 타이틀이다. 출간일자는 작년으로 돼 있지만 배본은 최근에 된 듯싶다. 사실 이 세미나 시리즈는 수년 전부터 예고돼 있던 터이므로 출간 소식 자체가 놀랍진 않지만 과연 나오는 것인가란 의혹을 불식시켜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물꼬가 트인 만큼 나머지 세미나와 <에크리>까지도 곧 한국어본을 얻으면 좋겠다. 이걸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이제 숙제로 남는다. 

 

자세한 책소개는 상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출판사 소개를 참조하면 되겠다. 일부만 발췌하여 옮기면 이렇다.  

라캉의 세미나는 1953년 시작되어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행해졌으며, 매 해의 세미나를 제자이자 사위인 자크­알랭 밀레가 편집해 책으로 발간하고 있다. 출간되어야 할 권수는 27권이고 프랑스에서도 아직 모든 세미나가 출간되지 않고 계속 발간 중이다. 그렇다면 총 27권의 라캉 세미나들 중에서 ‘세미나 11권‘이 최초로 번역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73년에 발간된 ’세미나 11권’은 프랑스에서도 라캉의 세미나 가운데 최초로 출간된 것으로서, 1963~1964년에 행한 열한번째 ‘구술’ 세미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말하자면 ‘세미나 11권’은 라캉의 정신분석이 프랑스 정신분석학계뿐 아니라 프랑스 사상계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위치한 세미나이다. 

다른 한편 ‘세미나 11권’은 1950년대의 라캉과 일종의 ‘단절’을 시도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언어, 주체, 기표, 상징적인 것 등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들을 구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1950년대만 해도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면서 구조주의와 언어학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세미나 11권’에서 라캉은 ‘구조의 완결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게 되고, 그러면서 ‘실재’와 ‘대상 a’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미나 11권’은 라캉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의식을 개념화하고, 상징적인 것 너머의 것을 이론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세미나 11권은 진작에 영어로 번역돼 있으며 <세미나 11권 읽기>(1995)까지 출간돼 있다. 한국어본이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사실 여러 번역본과 주석을 참조하여 '교차적 읽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부득이 라캉의 미로를 헤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20세기의 가장 난해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론가의 한 사람을 한국어로 읽는 '모험'은 도전해볼 만하다.  

 

 

 

 

 

 

  

특히 이번 번역은 이미 <라캉과 정신의학>(민음사, 2002)과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2) 번역을 통해서 라캉주의에 대한 이해를 선보인 역자들이 맡고 있어서 안정감을 준다(짐작에 라캉의 언어를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역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하튼, 간만에 이론 읽기의 독서욕을 부추기는 '물건'이 나와서 반갑다(지난 연말에 나온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정도가 이에 견줄 수 있다)... 

09. 01. 07.  

Лакан Ж. Четыре основные понятия психоанализа. Семинары: Книга XI (1964). Кн.11

P.S. 참고로 러시아어로는 라캉의 세미나가 현재 여섯 권이 번역돼 있다. 그 중 11권은 지난 2004년에 출간됐다. 모스크바의 서점에서 기쁜 마음으로 집어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도 책상맡으로 옮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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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1-08 04:00   좋아요 0 | URL
오호, 드디어 나왔군요!!! 멀리서 반가운 소식 접하니 그 반가움이 더욱 배가됩니다.^^

로쟈 2009-01-08 22:52   좋아요 0 | URL
'멀리' 나가 계신가요?^^

푸른바다 2009-01-08 21:43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는 라깡의 다양한 개념들이 상당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적인 유희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라깡은 물론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등이 폭로하는 즉물적 현실 이면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진실에 물론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늘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9-01-08 22:52   좋아요 0 | URL
저도 라캉의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그는 자신을 직접 교주처럼 신비화하기도 했지요)지젝이 읽은 라캉이 흥미로워서, 그리고 '생산적'이어서 관심을 갖습니다..

yoonta 2009-01-08 23:55   좋아요 0 | URL
읽을수있는 리캉인지 아닌지..궁금하네요.
러시아에서는 라캉이 벌써 많이 번역되었나 봐요? 러시아어의 라캉이나 지젝번역들은 어떤가요?

로쟈 2009-01-08 23:59   좋아요 0 | URL
현재로선 최선의 번역이라고 봐야죠. 최상은 아니더라도. 라캉의 <에크리>도 아직 러시아어판이 없습니다. 세미나 6권과 <텔레비전>, <로마강연> 등이 소개돼 있어요. 지젝은 한국에서 더 많이 소개됐구요. 다만 <시차적 관점>은 러시아어판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어 번역을 제가 품평할 정도는 안되고요, 영어나 한국어가 막힐 때 독해에 도움은 줍니다...

Poissondavril 2009-01-09 09:1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교정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저의 본업은 번역이지만 워낙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사실은 역자들의 지명을 받아서...-_-;;) 교정에 참여했었습니다.
저 역시 현재 기대할 수 있는 번역으로서는 최선... 이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불어판, 영문판, 일어판을 모두 비교해가며 교정 작업을 했습니다. 제 작업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수정과 검토가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다만, 자크 알랭 밀레가 굉장히 까다로운 번역 원칙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독해가 녹록치 않을 겁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용어가 아니면 역주를 달 수도 없고, 정신분석학적 주요 개념에 대해 설명하거나 역자의 해설을 달 수도 없도록 모든 번역본들에 대해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있거든요. 독자들은 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건 역자나 출판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라캉의 세미나는 원래 그런 책이니까요.

로쟈 2009-01-09 21:37   좋아요 0 | URL
저도 <에크리> 교정에 참여할 뻔했습니다.^^ 그래도 <세미나>는 구술이어서 <에크리>보다는 사정이 나을 듯싶은데, 이게 계기가 되어 한국어 라캉이 연착륙하면 좋겠네요...

푸른바다 2009-01-09 00:13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동안 아주 머얼리 있었습니다. 한동안 한국 소식도 끊고 살았는데, 다시 접속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더 악화되 있어 모르는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로쟈님 덕분에 저도 지젝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긴 했으나 아직 가진 책이라곤 '삐딱하게 보기'밖에 없군요. 지젝이 기본 입장이 잘 기술되어 있다는 '이데올로기라는(의) 숭고한 대상'은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고, 다른 책들은 번역이 미심쩍다 하니 손이 안가고...

제 생각에 고전적인 사상들, 예를들어 유교, 불교, 플라톤 사상 등등은 비교적 뚜렷한 목적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유교는 성인되기를 추구하고, 불교는 해탈을, 플라톤 역시 단견(doxa)을 초월하는 에피스테메에 이르를 것을 주장합니다. 헤겔의 매력도 아마 '절대지'에 이르는 여정을 투박하나마 제시한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맑스를 존경하지만, 그는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삶의 여건의 개선에만 집중했을 뿐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관심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투박한 질문인지는 모르나 지젝이 철학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로쟈 2009-01-09 00:22   좋아요 0 | URL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http://blog.aladdin.co.kr/mramor/1545343 참조하시길...

글샘 2009-01-15 04:03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하우투리드 시리즈의 지젝이 쓴 라캉을 읽고 있는데요...
라캉은 너무 다양한 데서 개념들을 빌려다 혼용하는 통에...
저는 프로이트의 성도착적 개념도 맘에 안들지만, 거기서 더 나간 라캉을 읽기란 만만치가 않군요. 휴... 라캉을 제대로 읽을 날이 오긴 할까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15 09:19   좋아요 0 | URL
뭔가 도움이 된다면 읽는 것이죠. 누구 말대로 책이란 기계장치 같아서, 작동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제대로'보다 중요한 건 그 작동 유무 같습니다...
 

지난 연말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2008), <장기 20세기>(그린비, 2008) 등의 책이 출간된 조반니 아리기에 관해서는 몇 차례 포스트를 올려놓은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세계체제론의 계보를 짚어보는 기사도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01. 08) 14년전 ‘금융위기 예언’ 조반니 아리기 환한 조명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71·사진)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호황과 위기를 세계 패권의 순환이란 틀에서 분석한 그의 대표작 <장기 20세기>(그린비 펴냄)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펴냄)가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 때맞춰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덕분이다. 

 

미국의 신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1994년 펴낸 <장기 20세기>에서, 아리기는 당시 미국 경제의 부활이 세계 패권의 쇠퇴기에 등장하는 일시적 호황에 불과하며, 머잖아 최종적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앞선 네덜란드·영국 패권 쇠퇴기의 호황 국면과 비교해 제시함으로써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예언’은 14년이 흐른 지난해 가을 월스트리트발 금융 공황과 더불어 현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아리기는 1960년 밀라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좌파 노동운동과 연계된 ‘그람시 그룹’에서 활동했다. 1979년 미국 뉴욕주립대에 자리를 잡은 뒤에는 ‘세계체제론의 지휘부’ 격인 페르낭브로델센터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78), 안드레 군더 프랑크(1929~2005), 사미르 아민(77)과 함께 ‘세계체제론 4인방’으로 불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세계체제론이 주목을 받았던 1990년대 말에도 월러스틴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고, 10여년이 흐른 최근까지 10권이 넘는 저작과 100여편에 이르는 논문들 가운데 금융화와 미국 패권의 향방과 관련된 몇 개의 단편만 번역됐을 뿐이었다.  

최근 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장기 20세기>는 제목과 달리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장기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점에서 아리기의 작업은 월러스틴이 집필 중인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와 중첩된다. 다만 세계체제의 팽창과 순환을 설명하면서 월러스틴이 중시하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이나 중심-주변부의 수직적 분업 대신 ‘체계적 축적 순환’이라는 개념을 앞세운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리기에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네덜란드 패권기(17~18세기), 영국 패권기(19세기), 미국 패권기(20세기)를 거치며 진화해 왔는데, 각각의 시기는 패권국이 주도하는 독특한 축적체제를 갖는다. 이런 축적체제는 새로 등장한 패권국 안에서 형성돼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뒤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윤율 하락과 체제유지 비용의 증대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새로운 국가-기업 복합체가 주도하는 경쟁력 있는 축적체제로 대체된다. 

체계적 축적 순환에 대한 아리기의 분석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든 세계적 축적체제가 최종적 붕괴를 맞기 전 금융부문이 일시적으로 팽창하면서 ‘반짝 호황’을 누린다는 점이다. 축적체제가 활력을 잃게 되면 자본이 과잉축적되면서 생산·유통 부문의 이윤율이 금융수익률보다 하락하고, 유동자본을 얻으려는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그 결과 실물부문의 자본이 금융으로 이탈하면서 두 부문 모두에서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의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호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금융부문의 투기적 활황과 생산부문의 부분적 경쟁 완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기에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분석은 정보기술(IT) 거품과 과열된 주택경기 덕에 지탱되던 미국 금융호황이 최근 파국을 맞은 것에서도 입증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금융팽창이 경쟁력 있는 예비 패권국들로 자본을 이전시키면서 기존 패권국의 몰락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아리기가 보기에, 18세기와 19세기 금융팽창의 수혜국은 다음 시기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미국으로부터 패권을 넘겨받아 새로운 축적 순환을 주도할 주인공은 누구인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리기는 일본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경제권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새 급속히 성장한 중국 경제로 시선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최근 집필한 <장기 20세기>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아리기는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사이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금융자산을 획득했고, 동아시아와 그 너머에서까지 미국을 대체해 상업적 팽창과 경제 팽창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기술한다. 그런데 아리기가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2007년 펴낸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그는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사회주의 복지제도에 기반한 ‘노동 집약-에너지 절약적’ 축적체제로 규정하고, 이것을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식 축적체제를 대체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미래’로까지 격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아리기의 주장에 대한 서구 좌파학계의 평가는 냉담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지난해 11월 <교수신문>에 소개한 영미권 학자들의 반응은 아리기의 관점이 “초기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은 중국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대한 무지”(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에서 비롯된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적 가설”(마크 엘빈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명예교수)에 가깝다는 것이다.(이세영 기자) 

09.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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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39   좋아요 0 | URL
분과 사회과학을 뛰어넘어 역사학까지 아우르는 이런 학자들...문사철하는 이들의 꿈이죠.
저 도표를 보면서 정성진 씨가 화내겠군요.트로츠키는 왜 빠졌느냐고...

로쟈 2009-01-08 22:50   좋아요 0 | URL
문사철은 좀 다른데요.^^ 그 안에서도 '데이터(팩트)'를 다루는 이들이 있고, '언어(글)'을 다루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사회과학의 꿈일 텐데, '역사적 사회과학'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딸기 2009-01-08 22:01   좋아요 0 | URL
재닛 아부루고드도 안 보여요...

로쟈 2009-01-08 22:48   좋아요 0 | URL
'4인방' 중심이어선가 봅니다...

딸기 2009-01-08 22:0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유럽중심주의 절판이었는데... 다시 나왔나봐요?

로쟈 2009-01-08 22:47   좋아요 0 | URL
절판된 거 맞습니다. 개정판이 나올 거라고 하네요...

딸기 2009-01-12 16:32   좋아요 0 | URL
헤구구... 언제나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교과부가 '역사' 교과서에 이어서 '도덕' 교과서에까지 손을 댄다는 기사가 떴다.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실재' 취지는 그러한 부인의 제스처 속에 숨어/드러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도덕적으로 약점 없이 출범한 정권인 만큼 공직자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도덕'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성'이 문제인 정권인 만큼 도덕 교과서를 손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이미 걱정할 수준은 한참 지난 듯하다...   

한겨레(08. 01. 06) 교과부, 새 도덕교과서 ‘평화교육’ 통째 삭제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부터 중학생들이 쓸 새 도덕 교과서에서 ‘평화교육’ 부분을 삭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집필기준’을 갑자기 바꿔 집필자들과 출판사에 보냈다. 도덕 교사들과 집필자들은 “민족 통합과 통일을 강조하는 교육을 포기하고 옛 냉전시대의 안보교육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5일 교과부와 도덕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교과부는 기존의 ‘중학교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평화의 가치와 갈등 해결 태도 및 기술을 중심으로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접목시킨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한 ‘집필기준 수정안’을 지난달 새롭게 만들어 출판사 등에 보냈다. 기존의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은 옛 교육부가 교사와 관련 학회 등의 의견을 들어 2007년 8월 최종 확정한 것이다. 도덕 교과서는 2007년 2월 7차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었으며, 검정 교과서는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하려면 ‘집필기준’을 따라야 한다.

집필기준 수정안을 보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되”라는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다. 또 애초 기준에서 ‘새터민’과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쓰도록 한 것을 ‘북한 이탈 주민’으로만 쓰도록 했다.

북한에 대한 서술 기준도 대폭 수정됐다. 애초 집필기준에는 “남북한 간 체제의 차이와 경제적 우월성”을 구분하고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는 긍정적 측면도 포함해 균형 있게 기술”하며, “북한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과서 내용 체제를 구성한다”고 돼 있었으나, 이런 대목이 대부분 삭제됐다. 대신 수정안은 “남북한 간 차이와 북한 사회에 대해서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균형적으로 기술”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통일 환경의 변화에 대해 진술하고, 통일 대비 과제들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도록 했다. 김일성 항일무장투쟁과 주체사상의 경우 애초 기준에서는 역사적 증거 자료가 확인되면 언급할 수 있게 했지만, 수정안에서는 아예 다루지 못하게 했다.

현재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출판사별로 이미 집필이 끝나 검정 절차에 들어갔으며, 중학교 2~3학년용은 최근 집필이 시작됐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서울 상암중)은 “교과서가 냉전시대 북한을 바라보던 관점으로 돌아가고, 통일교육이 안보교육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남북 체제 차이를 인정한 민족 통합적 통일이 아닌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 흡수통일을 강조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시각’을 배제한 채 사실관계 위주로 기술하자는 의견이 있어 수정안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김소연 기자) 

한겨레(08. 01. 06) 거꾸로 가는 통일교육…체제 우월성 내세워 북한 적대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중순 만들어 고시한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기준 수정안’은 체제의 우월성을 내세워 북한을 적대시하는 등 옛 냉전시대의 통일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8월 마련된 집필기준을 근거로 도덕교과서 집필을 해온 저자들은 “어떻게 여론 수렴도 없이 이처럼 갑자기 내용을 바꿀 수 있느냐”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과부의 집필기준은 18쪽 분량으로, 중학교 1~3학년 공통 기준과 학년별 집필기준으로 나뉜다. 이번에 수정된 통일교육 영역은 △북한 사회에 대한 서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 △평화교육 시각 도입 등 8개 항목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평화교육’ 항목은 완전히 빠졌다. 평화교육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낮추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의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도입됐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는 “통일교육에서 평화교육을 빼자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일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서술 방향 지시는 남북관계의 성과를 부정하고, 우리의 우월성을 앞세워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평화통일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사안이고, 교육과정에도 ‘평화교육’이라는 용어가 없어 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한 교사는 “교과서를 쓰는 데 집필기준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라며 “기준에서 평화교육이 빠지면 교과서를 집필할 때 ‘평화교육’ 자체를 언급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집필기준 수정안은 북한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관점을 부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의 인권 문제와 남북한 차이에 대해 ‘객관적 사실’를 강조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잣대로 북한을 대하는 것은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칫 대결구도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집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집필기준을 수정하면서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자인 또다른 교사는 “전체적인 (교과서) 틀 구상이 끝났는데, 관점이 바뀐 집필기준이 고시되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은 “2007년 당시 교사·학자 등 7개 단체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평화교육 도입 등이 집필기준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번 수정안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용어변경 수준의 수정이기 때문에 따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김소연 정민영 기자)    

한겨레(08. 01. 06) [사설] 이번엔 ‘도덕 교과서’ 조작인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검인정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을 느닷없이 바꿔, 출판사들에 보냈다고 한다. 정부 직권으로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누더기로 만들더니, 이번엔 집필이 끝났거나 집필 중인 도덕 교과서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다시 쓰도록 한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의 집필기준에 따라야 채택되는 만큼 출판사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한다.

변경된 집필기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변경 절차와 배경이다. 교육부는 국정이던 도덕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2007년 8월 집필기준을 마련했다. 역사는 물론 윤리나 경제·사회 영역의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 평가가 존재하는 만큼, 이런 요소들을 반영하는 과정은 집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당시 교육부는 집필기준을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 교육 현장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번엔 어떤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이명박식 속도전’을 교과서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집중적으로 변경된 집필기준은 통일교육 영역이었는데,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5월 통일교육 지침서를 만들어 1만여 초중고교에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국정 체제에서 교사 참고용으로 배포됐을 뿐, 학계나 교육 현장,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과는 무관하다. 지침에 포함된 것은 오로지 정파적 시각으로 무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의견뿐이다.

변경된 내용도 국민 정서나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통일교육을 미래지향의 평화교육에서 냉전회귀의 대결교육으로 돌려놓은 게 고작이다. 북 체제와 변화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관점 대신, 안보 위협 요인으로서 북한, 실패한 체제로서의 북한 등 대결적 관점을 요구한 것이다. 학생에게 식민지 근대화론, 독재체제 불가피론, 냉전적 체제 대결론을 주입하려 했던 근현대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맥락이다.

검인정 제도는 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시각·해석·평가를 제시하고 학생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창의적 학습력을 키우려는 제도다. 이렇게 정치권력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른 시각과 해석을 강제하고 학생의 사고와 판단을 조작하려 하면서, 검인정 교과서를 표방하는 것은 사실상 사기다. 사기꾼 소리를 듣느니, 시대착오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국정 체제로 되돌리는 게 차라리 떳떳할지 모른다. 

09.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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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06 09:25   좋아요 0 | URL
하하 이런.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군요.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06 22:50   좋아요 0 | URL
아프님의 '교과서 이야기'가 아직 안 올라오네요. 재미있을 듯싶은데요.^^

마늘빵 2009-01-07 20:02   좋아요 0 | URL
쓰더라도 수위조절을 해야 해요. -_- 아직 발표도 안 난 교과서고, 회사에서 보면 안되니까요. 하하.

비로그인 2009-01-06 11:26   좋아요 0 | URL
고국의 어린 학생들이 걱정입니다.

로쟈 2009-01-06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학생들이야 어차피 별로 신경도 안 쓸 문제인데(역사도 그렇지만 교과서만 갖고 공부하는 건 아니니까요)저로선 이게 집권층과 관료층의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라서 우려스럽습니다. 하긴 '우려'할 단계도 지났죠...

무해한모리군 2009-01-06 11:51   좋아요 0 | URL
걍 교과서 만들어서 배포하지 왜 저럴까요?

로쟈 2009-01-06 22:53   좋아요 0 | URL
네, 정답입니다. 드라마도 알아서 만든다고 하니까. 조만간 교과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로그인 2009-01-06 23:06   좋아요 0 | URL
"우려할 단계도 지났다"고 하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군요. 조금 전, 아침 일찍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기 위해 딜러 서비스에 갔다 왔습니다. 대형 TV가 켜져 있는 대기실에서 몇몇 미국인들과 1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 TV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이 간간히 보도되고 있었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각자 책을 보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할 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TV에서 뉴욕 거리의 유태인 두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오바마가 이스라엘 폭격을 조금도 차질없이 전폭 지지할 것을 촉구하더군요. 아침부터 이런 광경을 보고 와서 그런지 로쟈 님의 댓글이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군요.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최근 출간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근간 예정인 '혁명' 관련서들에 대한 소식을 덧붙였다. 이미지를 찾다 보니 (지면기사에 쓰인 건 못 찾겠고 대신에) 레닌 포스터에 오바마의 얼굴을 붙인 것이 눈길을 끈다. 포스터에 씌어진 문구는 "레닌은 살았다, 레닌은 살아 있다, 레닌은 살아있을 것이다!"이다. 더불어 '1917년'은 '2008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2009년이다...

 

한겨레21(09. 01. 12) 혁명의 시대, 레닌을 생각한다

"레닌은 생각도 하지마!”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자들, 그러니까 반공 우파뿐만 아니라 급진 좌파까지도 공유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레닌에 대한 ‘사고금지’다. 2008년 5월 국내에도 소개된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펴냄)의 편저자 슬라보예 지젝이 레닌을 반복하려는 기획을 시도하면서 처음 접했던 반응이 빈정거리는 폭소였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마르크스는 좋다, 하지만 레닌이 뭔가?”라는 식이다. 그러한 반문이 전제로 하는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의 실패이며, 20세기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역사적 재앙이자, 독재로 치달은 현실 사회주의 실험의 원흉으로서의 레닌이다. 요컨대, 레닌은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소위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져온 실패이자 재앙이고 원흉이다. 이것이 혁명가 레닌에게 들씌워진 표준적 이미지다.    

 

‘레닌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는 구호를 내걸고 출간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펴냄)은 시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레닌에 대한 표준적이면서도 상투적인 이미지에 괄호를 치고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레닌과 러시아혁명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박노자 교수가 러시아혁명에 대해 강의한 2007년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그린비출판사의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 것이 2008년 7월이었다. ‘촛불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이 심포지엄의 타이틀이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발제자로 나선 세 명의 발표문과 현장 토론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보리스 카갈리츠키의 러시아 자본주의론과 루이 알튀세르의 레닌론 등이 보충되었다.     

이 모임의 형식이 ‘심포지엄’이라는 단어로 표현됐지만 러시아어로는 ‘소비에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발제자의 한 사람인 박노자 교수가 짚어주는 대로 소비에트란 원래 ‘조언’이란 뜻이며 러시아 혁명기의 소비에트란 무엇보다도 서로 조언을 주고받고 논의하는 기구이자 장소였다. 조언은 명령이 아니며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수평적 소통을 지향한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소비에트, 혹은 평의회가 촛불집회를 계기로 레닌을 재평가하기 위해 열렸던 셈이다. 그 ‘소비에트’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지금 레닌을 불러낸다는 것은 뼈아픈 실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실패 속에서 실패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다”는 발언 속에 집약돼 있다.   

‘레닌의 정치학에서 외부성의 문제’를 다룬 이진경 교수는 계급과 당, 국가와 혁명, 사회주의와 이행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외부성’의 사유가 레닌에게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리고  혁명적 정치 모두가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대해 외부적이고, 외부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보기에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국가장치를 이용해 국가장치를 사멸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 난감한 역설을 돌파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레닌은 외부성을 사유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관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점이다.   

한편, 조정환 다중네트워크 대표는 ‘제헌권력’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레닌을 다시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헌법에는 성문화된 헌법을 가리키는 형식적 헌법 외에 헌법을 제정하는 행위로서의 물질적 헌법이 있다. 이 경우 물질적 헌법이 형식적 헌법에 선행하며 더 우선적이다. 레닌은 이 두 가지 헌법의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1917년 2월 혁명 이후 사회주의의 물질적 헌법(프롤레타리아 독재)과 형식적 헌법(소비에트 헌법)의 쟁취를 주장한다. 하지만 1917년 7월 이후에는 제헌권력의 최종심을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로 귀속시키게 되며, 조 대표는 이것이 소련 사회주의는 물론 세계 사회주의 역사에 혼란과 불행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닌에게 배우기'는 '레닌을 극복하기'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박노자 교수는 레닌에게서 반자유주의적, 혹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이 소비에트의 시발은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위한 공장주와의 협상에 대표자를 내보낸 것에서 비롯한다. 소비에트는 혁명기에 볼셰비키들과 ‘협력’했지만 그들의 지도에 ‘순응’하지는 않았으며 특정 정당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되지도 않았다. 다른 볼셰비키들과 달리 레닌은 소비에트의 잠재력을 크게 평가하고 소비에트와의 동등한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박 교수가 보기에, 이러한 ‘민주주적인’ 레닌이야말로 정치가로서 그의 비범한 면모다. 하지만 내전으로 치달은 혁명 이후의 과격한 상황은 레닌으로 하여금 자신의 민주적인 원칙을 지킬 수 없도록 했고, 내전의 종료와 함께 소비에트 민주주의도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레닌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패와 좌절의 교훈을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되새길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이미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와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이닥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은 새로운 사회와 체제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이에 발맞추어 올해 출판계의 한 가지 화두는 ‘혁명’이 될 전망이다. 올해 프레시안북에서는 ‘레볼루션(Revolutions)’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체 10권 가운데 마오쩌둥의 <실천론․모순론>, 로베스피에르의 <덕치와 공포정치>, 호치민의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예수의 <가스펠>,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등이 1월 중 발간될 1차분에 포함될 예정이다. 그리고 도서출판 마티에서도 이번 봄에 슬라보예 지젝을 포함하여 에티엔 발리바르,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등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철학자들의 레닌론을 묶은 <레닌 재장전>(가제․Lenin Reloaded)을 출간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출판계에서만큼은 “혁명이 문 앞에 있다!”  

09. 01. 05.  

P.S. <지젝이 만난 레닌>에 대해 작년에 쓴 글은 '자본론보다 더 긴요한 책'(http://blog.aladin.co.kr/mramor/2146648)을 참조. 그리고 그린비출판사의 학술심포지엄 스케치는 출판사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296)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레닌과 미래의 혁명>은 레닌과 러시아혁명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흥미로운 독서를 제공한다. 전체 3부 가운데, 초심자라도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은 2부의 토론이다. 발제자들이 자신의 발표를 요약/정리해주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의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2부를 먼저 읽는 게 좋을 듯싶다. 가령 박노자 교수의 이런 비교는 어떤가. 

레닌의 생명력이 궁금하다면 1917년도, 혁명의 해에 레닌의 움직임들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나중에 레닌이 독재자란 비판을 받짐만, 1917년 10월까지만 해도 레닌은 모범적인 소비에트 민주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1917년 러시아의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이명박 정권하고 어떤 면에서 비슷하기도 했어요. 이명박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외부 권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임시정부는 자구책으로서 독일과의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연합국들의 채권 때문이죠.(...)   

지금 대한민국이 그것보다 국력 상태도 좋고, 여러 가지 점에서 당시 러시아처럼 파산 위기는 아니라고 할 수는 있죠.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미국 자본주의에 상당한 의존성을 보이고 있고, 또 그것이 대(對)국민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게 보이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보면 왠지 1917년의 임시정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시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다른 점은 전자에게는 이렇다 할 경찰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의경이 없었던 것이죠.(166-7쪽)  

흠, 말하자면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케렌스키에게는 이명박과는 달리 어청수가 없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얘기겠다...   

P.S.2. 대부분 그렇지만 마감에 쫓겨 원고를 넘긴 탓에 이번에도 제대로 퇴고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교열부에서 손을 봐준다는 점인데, 이번호 지면기사에서는 몇 가지 이견도 생겼다. 첫 문단에서 "그러한 반문 전제로 하는 레닌은"이 지면에서는 "그러한 반문 전제로 하는 레닌은"으로 수정됐는데, 나는 전자의 뜻으로 썼다. 그리고 고유명사 표기 두 가지. 지면에서는 '알튀세르'가 '알튀세'로, '호지민'이 '호찌민'으로 수정됐는데, 한겨레의 방침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거명한 책에서의 표기는 전자이며 내가 지지하는 쪽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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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닌 재장전' 예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1-14 12:13 
    2009년에 이어서 2010년에도 '1월의 책'은 '레닌'이다. 두툼한 분량의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부제는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아래가 원서의 표지이고, 번역본의 표지는 좀 크게 넣었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과  박노자 외,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에 이어
 
 
2009-01-06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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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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