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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12월 23일이 동지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젯밤 자정 뉴스를 보니 어제가 동지였다. 뒤늦게 지난 주말 사다놓은 즉석 팥죽을 먹어볼까 하다가 야식도 이미 먹은 터라 참아두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야 (맛은 없지만) 구색을 차리느라 '동지 팥죽'을 먹었다(해서 이 글은 죽먹은 힘으로 쓰는 것이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저 동지의 불빛 불빛 불빛'이란 시구였는데, 기형도(1960-1989)의 시 '위험한 가계 1969'에 나오는 것이다. 생각난 김에 몇 자 적어둔다.

 

 

 

 

제목 그대로 '위험한 家係-1969'는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어린시절 가족사에 대한 회상으로 구성돼 있다. 6개의 절로 돼 있는데, 동지의 불빛이 언급되는 건 맨마지막 절이다.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 혀. 어느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 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 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으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렇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전집>, 95쪽)

 

 

 

 

기형도의 많은 시들이 그의 유년시절과 불행한 가족사에 바쳐져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위험한 가계'는 그 사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그려내고/진술하고 있는 시인데, 그 시작은 아버지의 병환이다. 시의 서두에 진술된 대로,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92쪽) 그리고 이어진 건 이 가족의 '동지', 즉 '긴 밤'이고 '아주 추운 밤'이다(문득 일찍 겨울이 들이닥쳤다는 파키스탄의 지진 피해지역이 떠오른다). 유년의 화자가 희원하는 건 "우리가 모두 낫는 날" 곧,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고, 가족이 다시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올해처럼 눈이 많이 내렸다는 1969년 겨울의 일이다(물론 이번 호남지역의 폭설은 기상관측사상 '최악'이라고 기록된다지만).

 

 

 

 

시의 이 마지막 대목에서 유년의 화자는 그래도 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환한 가계'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해바라기 씨앗"처럼 웅크리고 자지만, 언젠가 "아주 큰 꽃"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거라고 다짐해보는 것이다. 언제가는 '용수철(spring)'처럼 튀어오를 '아주 큰 꽃'과 '환한 가계'!  

1968년하면 떠올려지는 건 '68혁명'이지만, 1969년이 내게 떠올려주는 건 한 시인의 불행한 가족사이다(그런데 이 구체적 가족사는 '그토록 쓰라린 삶'이라는 보편성을 상기/환기시켜주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게 시의 힘이고 문학의 힘이다). 시인의 요절 1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999년에 <전집>이 출간됐었는바, 우연찮게도 그건 이 시에서 제시된 가족사의 불행 30주년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그 1999년 12월 말에 나는 한 독서대학에서 기형도의 시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1969년의 겨울, 이후로 시인은 20년의 삶을 더 살았을 뿐이다. 그는 어머니께 '아주 큰 꽃'을 보여드렸을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기형도가 유년에 가졌던 꿈이 특이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가상'으로만 설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론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여타의 유년시들과 기형도의 시를 차별화시켜주는 것일 듯싶은데, 시에서 그 방법론은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라고 제시돼 있다. <전집>을 읽으면서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이지만, 기형도 특유의 '식물적' 상상력을 구성하는 핵심은 이 '모종'과 '전정'이다(내 견문에 이 '전정'에 최초로 주목한 비평가는 정과리이다. 기형도에 대한 그의 평문은 <무덤 속의 마젤란>(문학과지성사, 1999)의 가장 중요한 꼭지를 이룬다. 기형도에 관한 필수적인 참고문헌이지만, 나는 그가 이 '전정'을 기형도의 시적 세계관의 근간으로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모종'이란 다른 짝에 주목하지 않어서라고 생각한다).

전정(剪定)은 <전집>에 포함돼 있는 그의 일기 중 한 대목에 등장하는데(1982. 6. 16), 그는 먼저 '가치치기'란 뜻의 전문용어인 '전정(trimming)'을 정의하는바, "관수 재배에 있어서 균일한 발육과 수형(樹形)의 정리를 목적으로 가지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이 전정이다. 그것은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인간에게도 누구나 잎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서너 개 이상 있다. 그 개별적 가지들은 시간의 묶음이며 그 시차인 공간인 가지 안에는 석은 잎부러 부활해가는 잎, 돋는 잎 등이 달려 있다. 그 잎들은 나무의 물관, 체관의 관다발로부터 양분 및 수분을 공급받으며 또 외적인 요소, 즉 햇빛을 이용하여 녹색 동화작용을 일으켜 내적 에너지를 확충한다. 고로 잎은 나무(自我)와 햇빛(外界)의 유기적 매체이다. 개별 인간과 보편 세계의 이질성을 이어주는 것은 '동일인으로서의 인칭'이다. 우리는 그러한 인칭을 2인칭화(사랑, 친구, 가족)한다. 그러나 과수뿐 아니라 인간의 사육 기간 중에서 우리의 관계들 속에는 엄연히 칼날 같은 전정이 가해진다. 그것은 소극적으로 타의에 의한 단절의 전정과 적극적(주관성) 전정으로 구분한다."(<전집>, 321-2쪽)

 

  

 

 

이틀 전에 군대에 입대한 자신의 친구 조병준(내가 알기론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의 저자. 더불어, 성석제, 원재길 등이 일기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기형도의 절친한 친우들이었다)과의 관계(=가지)에 대한 상념을 채워나가고 있는 일기인데, 마지막 문단에는 이런 내용도 보인다: "자네가 보여준 믿음이나 우려는 정말 값진 것이므로. 너와의 가지는 나의 전정이 환상 그 밖으로의 소멸임을 내가 인식함으로써 톱날의 부위에서 벗어나야 함을 안다. 이러한 또 하나 나의 성찰이 순간적 긍휼이나 동정의 잔해로써 기억되지 않아야 함을 기원한다."(324쪽) 20대 대학생의 관념성(미숙함)이 엿보이는 문장이긴 한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기형도의 인식론적 구도이며, 그것은 '가지/전정(가치치기)'란 틀을 갖고 있다. 

그의 시들에서도 두드러지지만 다른 날짜의 일기들에서 빈번하게 출몰하는 식물성 은유들은 이 '가지/전정'의 틀이 기형도 세계인식과 언어운용의 '보편문법'이 아닌가란 생각마저 갖게 한다(오래 전 나는 '기형도의 보편문법'이란 제목의 평문을 기획했었다). 가령, "또 하나 내 청춘의 필름이여, 유리컵 속으로 곧게 뿌리를 내린 둥근 파의 유약함이여-"라거나 "기차 소리여, 나는 아예 네 앞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캄캄한 정전의 필라멘트였지. 아니 하나의 전율로서 소스라치는 일년초 식물이었는지 몰라." 같은 대목들이 그렇다.

이러한 기형도식 식물(나무)의 자기규정과 생존방식이란 무엇인가? (1)나는 식물/가지이다. (2)나는 열매/성장을 위해서 가지치기(=아픔, 상실, 희생)를 해야 한다. (3)나는 (가지)모종을 통해서 삶을 다시 회복한다. 여기서 핵심은 물론 전정(가치치기)모종(옮겨심기)이다. 이런 구도를 전제로 할 때, 앞에서 인용한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란 시구는 그가 어린날에 깨달은 '삶의 방법론'을 집약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읽을 경우, 그의 시 '식목제'의 다음과 마지막 대목이 보다 명료하게 와닿지 않는가?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들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튀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植木祭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여기서 인용한 대목의 "개별 인간과 보편 세계의 이질성을 이어주는 것은 '동일인으로서의 인칭'이다."라는 문장을 음미해보자. '개별 인간'과 '보편 세계'의 매개자로 기형도가 설정하고 있는 것이 '동일인으로서의 인칭', 곧 그가 '사랑, 친구, 가족'이라고 토를 달고 있는 '2인칭'이다. 그리고 이때의 2인칭이야말로 기형도적 세계의 핵심이다. 그것은 개별적 자아의 테두리 바깥으로 가지치기되는 존재이면서 아직 3인칭적 보편 세계로는 편입되지 않은 상태의 무엇을 지칭한다.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이란 시에서 그 2인칭은 고드름이란 형상으로 응집돼 있다: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라고 2칭으로 호명되는 그 고드름(그런 의미에서 기형도의 시는 '2인칭의 시'이며, 이것은 1인칭적 고백이나 3인칭적 묘사와는 차별적인 시이다).

흔히 처마밑에 매달려 있는 고드름은 문밖에서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서 있지만 결코 바깥세계로 '도주'하거나 하는 '즐거운 액체'의 형상이 아니다. 한 자리에 붙박혀/꽂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식물적이며, 공중에 매달린 '가지모종'을 연상시킨다. 기형도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어쩌면 강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정된 이후의 가지가 새로 모종되는 것처럼 어딘가에 꽂혀 뿌리를 내리고 싱싱한 줄기로 솟아올라 '불의 立像'이 되고자 하는 자기암시적 갈망이다. 하지만 그러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기정립을 현실화하기엔 그는 너무 연약한 '작은 이파리'였다(줄기가 아니라). 마치 이런 아버지의 운명을 따르는 것처럼: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다시 1969년으로 돌아가보자. 반장이었던 유년의 시인에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나서겠다고 하나, 시인은 만류한다: "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선생님은 말한다: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시인은 다시 말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후에 시인은 긴 방죽을 걸어오며 몇 번이고 책가방 속에 들어 있는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한다. 그리고는 풀밭에 잠시 '꽂혀서' 잠을 잔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강조는 나의 것)

'작은 씨앗들'이 '큰 꽃'을 피워내는 게 생명의 미스터리이고, 삶의 미스터리이다. 유년의 시인 또한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라고 대견스레 물을 때 그러한 미스터리를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과 의지를 동시에 피력한 것이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미스터리는 그가 "끝끝내 갈 수 없는 生의 僻地"였다. 그는 다만, "저 고단한 燈皮를 다 닦아내는 薄明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잠시 유예하던 '마지막 한 잎'이었기에...

05. 12. 23.

P.S. 이상이 내가 기형도의 시에 대해 갖고 있는 대략적인 구도(말하자면 '매트릭스')이다. 자세한 분석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나, 핵심적인 얘기는 갈무리돼 있다. 끝으로 초등학교인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그의 시를 옮겨놓는다. 어제 김춘수의 시를 다루며 '울다'란 동사 얘기를 했었는데, 나를 울리는 건 '밤새 울었다'류의 그런 상투형이 아니라 그냥 한 어린아이의 훌쩍거림이다(나는 딸아이를 몇 번 훌쩍거리게 한 기억이 있다. 그런 생각하면 나도 훌쩍거리고 싶어진다). 당신 또한 '유년의 윗목'에서 한번쯤 훌쩍거려보았다면, 시는 그냥 이와 다른 게 아니어도 무방할 것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 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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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저자로부터 <나의 우울한 모던보이>(창비, 2005)를 선물받고 가장 먼저 읽어본 건 3부에 실린 '구름과 장미의 나날'이란 글이다('술과 장미의 나날'이 아니다!). 김춘수(1922-2004)의 처녀시집 <구름과 장미>(1948)의 표제작인 '구름과 장미' 읽기인데, 작년 11월에 타계한, 한국시의 이 대표적 시인 한 분을 기억하는 겸해서 그의 글을 읽었고 이 글을 쓴다. 시인의 죽음에 기대어 그의 처녀작을 읽는다?

 

 

 

 

그게 억지스러운 일은 아닌 게 시인의 대담을 포함하고 있는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2001)에는 (이전에 지적한 바 있지만) 김춘수의 데뷔시집 <구름과 장미>가 <죽음과 장미>로 오기돼 있다(233쪽). 이러한 예기치 않은 우연/은유에 기대어 "저마다 사람은 임을 가졌으나/ 임은/ 구름과 장미 되어 오는 것"이라고 시작되는 시 '구름과 장미'의 후렴은 '죽음과 장미 되어 오는 것'으로 다시 읽을 수도 있는 것.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 릴케를 떠올린다면, '죽음과 장미'는 한편 그럴 듯한 커플이 되기도 한다.

해서, 작년에 나온 시인의 유고시집 <달개비꽃>(현대문학)이 이어서 김춘수의 시와 에세이 선집들이 올해에도 연이어 출간되었으나 거기에 동참한 바 없는 나는 나대로의 애도의 뜻을 이 자리에서 표하고자 한다. 그건 모든 시는 결코 아니지만 김춘수의 어떤 시들이 나를 즐겁게 했던 기억을 내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애도의 뜻을 담고 있는 페이퍼이지만 이 글은 '즐거운 책읽기'로 분류된다. 하긴 친구의 책을 읽는다는 건 살짝 흥분되면서도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1948년이면 김춘수의 나이 26살 때이고 청마 유치환의 서문을 달고 있는 이 처녀시집은 자비로 출판된 시집이다. 그러니까 이 글의 대상은 '원로 시인' 김춘수가 아니라 '새파란' 김춘수, 반세기가 넘어갈 그의 시의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한 '풋풋한' 청년시인 김춘수이다. 나 자신도 더듬어보아야 할 그런 시절의 시인. 그때 그는 이런 걸 써놓았다.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구름과 장미>의 맨앞에 실려 있다는 이 시는 시 자체보다는 제목의 상징성 때문에 자주 회자되는 시이다. 그 출처는 바로 김춘수 자신이며 이장욱도 곧장 인용하고 있는 대목에서 시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구름은 우리에게 아주 낯익은 말이지만, 장미는 낯선 말이다. 구름은 우리의 고전 시가에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장미는 전연 보이지가 않는다. 이른바 박래어다. 나의 내부는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구름을 보는 눈이 장미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구름은 감각으로 설명이 없이 나에게 부닥쳐왔지만, 장미는 관념으로 왔다."

인용한 대목은 이장욱의 책에서 재인용하지 않고 <김춘수 문학앨범>(웅진출판, 1995), 187쪽에서 인용했다('이른바 박래어다'라는 한 문장이 더 들어간다). 이 책은 김춘수 시의 독자라면 필히 소장할 만한 책인데, '앨범'인 만큼 연대기와 작품론, 자선 대표작들은 물론이고 시인과 관련한 사진자료들을 다수 싣고 있다. 시인의 서문에 따르면, "사진을 중심으로 한 이런 따위 문학앨범은 나 자신에게는 하나의 좋은 기념물이 되겠고, 나의 독자들께는 하나의 참고물 또는 흥밋거리가 되어 주리라고 기대해" 볼 만한 책이다. 이른바 종합선물세트 유형이다.   

이 인용에 대해서 이장욱은 시인의 발언을 시인 자신에게 되돌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이 시가 미당의 구름이나 릴케의 장미를 환기시킨다는 식으로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고 밝히면서 그가 원하는 건 '텅 빈 오독'이며, "이 잘못읽기로 그의 시적 편력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미리 단서를 단다. 요컨대, "구름과 장미의 나날. 이것은 그의 기나긴 시적 편력을 요약하고 있는 표현일는지도 모른다"(287쪽)는 것. "이 기나긴 시적 편력은 구름과 장미의 '사이', 혹은 구름과 장미의 '너머'에서 한 시인의 필생이 거쳐온 고투에 다름아니다"(288쪽)라는 것. 그의 생각을 조금 따라가보고, 나는 나 대로의 '오독'을 제시해보겠다.

"보편적 세계의 저 헛것으로 떠도는 관념(구름)들과 구체적 세계에 피고 지는 이 부질없는 실존(장미)에 대해서라면, 하긴 세상의 어느 시인이 하염없지 않았을 것인가. 그가 한때 머물렀던 무의미, 혹은 비대상의 시학이란 이 하염없는 자유에 다름아니었을는지도, 혹시 모른다. 이 하염없음에 자유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가 말했듯 허무의 산물이어서 역설적이다. 그것은 구름(관념)과 장미(세계) 어느 쪽에도 온전히 귀의하지 못했던 자의 비애일 터이다."(287-8쪽)

데뷔작이라 할 만한 한편의 시 읽기를 통해서 이렇듯 한 시인의 시적 편력 전체를 읽어내는 건 '오독'이란 전제하에서도 과감하며 경탄스럽다. 비록 그 시적 편력이 거의 완료된 시점(2001년)에 씌어진 글이어서 예언적이라기보다는 사후적인 성격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나에게 흥미로운 건 사실, 이러한 과감한/경탄스런 결론이 아니라 '잘못읽기'의 과정이다(어차피 죽음으로 마무리될 거라는 점에서 모든 생애는 '비애'의 정조를 지우지 못한다. 해서, 내 생각에 '비애'는 시인 김춘수만의 것은 아니다). 이장욱은 2연부터 읽어나간다(1연은 전제이지만 3연에서 반복되기에 뒤에 읽어도 무방하겠다).

눈뜨면

물 위에 구름을 담아보곤

밤엔 뜰 薔薇와 

마주앉아 울었노니

 

"시 속으로 바람은 불고 구름은 흘러간다. 구름은 눈뜨면 물 위에 담기는 부드러운 가상(假象)이다. 그것은 형태를 지니지 않아 만져지지 않으며, 그것은 수면에 스스로를 비추며 흘러갈 뿐이어서 인간의 규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름은 드러냄과 사라짐의 경계를 스스로 지우며 저 하늘에 유구하다. 그래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님은 구름이 되어 온다."

 

우선 1-2행에 대한 읽기인데, 공감할 만하지만, 구름과 장미에 대한 시인 자신의 규정과는 다소 어긋나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구름/장미를 낯익음/낯섬, 감각/관념의 짝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장욱은 구름을 '일부러' 가상관념으로 읽어낸다. 그건 물론 예고된 바대로의 '잘못읽기'이다(한데, 그는 어째서 이 '잘못읽기'를 통한 결론을 시인의 시적 편력에 대한 요약으로 제시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3-4행 읽기.

 

"장미는 밤의 뜰에 피어 그의 울음을 받아준다. 그것은 제 구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어둠속의 그를 위무하며, 그것은 그의 밤 그의 뜰에 피어 있는 바로 그 장미인 것이어서 허허로울 수 없다. 장미는 꽃 지는 계절에 지는 꽃잎들 속으로 흩어질 유한(有限)을 제 운명으로 지니지만, 그래도 님은 장미가 되어 온다."

 

앞에서 구름을 '부드러운 가상'으로 읽은 이장욱은 이번엔 '장미'를 '구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읽는다. 한데, 내가 읽기에 이 시에서 장미는 '그 장미'의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의 밤 그의 뜰에 피어 있는 바로 그 장미"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책에 실린 다른 글 '단 하나의 장미'에서 그가 적어놓은 바를 참조하면, 보통명사로서의 장미에 대해서 우리는 아름답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할 수 없으며,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은 '장미 일반'이 아니라 '바로 이 장미'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술'이라는 것은 삶과 세계를 끊임없이 '고유명사화'함으로써만 존속한다. 대상을 '고유명사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시인의 자질이다."(97쪽)

 

 

 

 

 

 

 

 

 

그 '고유명사화'가 '이미지화'가 환치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 내 생각에 김춘수는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현저하게 결여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이 장미'가 아니라 '장미'에 대해서 노래하며, 더 나아가 '꽃'에 대해서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유명사화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동의어이다"란 이어지는 단언에 기대어 말하자면, 김춘수는 사랑을 현저하게 결여하고 있는 시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시에서 '의미'까지 배제하려고 했던 시인이 사랑타령을 늘어놓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쨍한 사랑노래'야말로 反김춘수적이지 않을까? 유일한 예외라고 할 만한 것이 먼저 사별한 아내에게 바치는 시들을 모은 시집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 2001)일 듯싶은데, 그런 경우에도 내 기억에 시인은 단 한번도 아내의 이름(고유명사)를 시에서 호명하지 않았다. 아내는 '거울 속의 천사'로 이미지화되면서 오히려 일반화/추상회되었을 뿐이다.

 

해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장욱의 읽기가 그의 약속대로 '잘못읽기'라는 것.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장미로서의 님은 나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울고, 구름으로서의 님은 물 위에 가상으로 떠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구름과 장미의 대비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름을 물위에 담고 밤뜨락의 장미와 마주앉아 우는 자의 자세이다. 그가 기다리는 님은 구름과 장미가 되어 올 것이지만, 이것은 예정이나 필연 혹은 당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슬프고 한량없으니, 그 슬픔과 한량없음을 서술하는 동사들은 온전한 능동형으로 스스로를 견뎌내고 있다. 그는 하염없는 나날을 지나며 물위에 구름을 '담고' 장미와 '마주앉아 운다.'"(286-7쪽, 강조는 나의 것)

 

나는 장미의 구체성과 구름의 가상성이라는 대비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중요한 건 그러한 대비가 아니며 '우는 자의 자세'라고 하니까 굳이 더 캐묻지는 않도록 한다. 대신에 구름과 장미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자. 1연에서 '임은 구름과 장미 되어 오는 것'이라고 명료하게 전제돼 있지만, 이때 구름과 장미를 연결시켜주는 등위접속사 '과'는 연의 구조에 있어서도 병렬성을 낳는다. 해서 2연의 내용을 산문적으로 풀면, 이렇게 될 것이다.

 

(아침에) 눈뜨면 나는 (눈)물 위에 구름을 담아보곤 했다.

밤엔 뜰 장미와 마주앉아 울었다/울곤 했다.

 

'밤엔'이란 시간부사가 전제로 하는 것은 '아침에'이며 그것은 전제되는 것이기에 생략 가능하다. 그리고, 구름을 '물 위에' 담아본다라고 돼 있지만, 이때의 2행 문두의 '물'은 1행 문두에 나오는 '눈'과 호응하면서 쉽게 '눈물'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물 위에 담기는/비치는 구름이면서 나의 눈물에 맺히는 구름이기도 한 것. 그리고 그렇게 '눈물'을 떠올릴 때 우리는 4행의 '울었다'는 동사와 자연스럽게 조우할 수 있다. 3행에서 '뜰에 핀 장미' 대신에 왜 ('뜰장미'도 아닌) '뜰 장미'를 고집했을까? 나는 그것이 '눈면'의 '뜨'와 호응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시어의 경제를 위해서 공통되는 내용들이 생략되긴 했지만, 1-2행과 3-4행은 구문적으로, 의미론적으로 반복이며 이 경우 구름과 장미는 말 그대로 등가적이다(즉, '구름이거나 장미'가 아니라 '구름과 장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뭐고 장미는 뭔가? 시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구름은 우리의 고전 시가에 많이 나온다. 그럼 장미는? 서양의 현대시에 많이 나온다(특히 릴케의 시). 이런 식의 설명이 암시하는 것은 소재로서의 '구름'과 '장미'가 막바로 우리시와 서양시를 제유하고 있다는 것. '구름과 장미' 자체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시인-화자의) 임으로서의 구름과 장미는 바로 '시' 혹은 시의 뮤즈이며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고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임을 가졌으나 시인으로서 나의 임은 시, 즉 구름과 장미이다, 라는 게 내가 읽는 이 시의 1연이다. 여기서, 이장욱이 의도적으로 배제한 바이긴 하지만, "미당의 구름이나 릴케의 장미"가 다시 환기되는 건 불가피하다. 물론 이 경우 미당과 릴케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시인의 제유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의 2연은 낮이나 밤이나 임(=시) 생각을 했다는 것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는 자의 자세'를 이장욱은 강조했지만, 김춘수의 초기시들에서 '울다'란 동사는 마치 상투어처럼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령 '부재'라는 시에서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나 '길바닥'이란 시에서 "언덕에는 전봇대가 있고/ 전봇대 위에는/ 내 혼령의 까마귀가 한 마리/ 종일을 울고 있다" 같은 연, 그리고 잘 알려진 시 '꽃을 위한 서시'에서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같은 시구들을 대하자면, 이 '울음'은 서양시에서 "새들이 노래한다"를 "새들이 운다"라고 우리말로 옮길 때의 그 울음인 것이어서 '한량없긴' 하지만, '슬픈' 것은 아니다(그것이 슬픈 경우엔 "슬픈 소리로 울었다"라고 명시된다). 즉, 김춘수 시의 '울다'란 동사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건 어떤 태도이지 정조가 아니다. 이제 3연이다.   

 

참으로 뉘가 보았으랴?

하염없는 날일수록

하늘만 하였지만

임은 

구름과 薔薇 되어 오는 것

 

이장욱의 해설: "구름과 장미 사이에서 그는 중얼거린다. 저마다 사람은 님을 가졌으나, 참으로 누가 제 님을 보았을 것인가? 그는 저 온전한 님을 온전히 볼 수 없어서 구름과 장미 사이에서 망연할 것이지만, 결국 그 기다림의 자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염없는 날일수록/ 하늘만 하였지만"에서, 하늘'만'의 그 '만'이 비교급의 조사인지 유일함을 표시하는 조사인지를 우리는 확정할 수 없다. 다만 그와 더불어 50여년 전의 저 구름과 장미에서 오늘의 구름과 장미에까지 흘러갈밖에."(287쪽)

 

1행의 "참으로 뉘가 보았으랴?"에서 생략된 것은 목적어이다. 이장욱은 "참으로 누가 제 님을 보았을 것인가?"(=아무도 님을 보지 못했다)로 풀고 있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님을 그들 자신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라는 건 다소간 모순되는 진술이다. 내 생각에 이 '보다'란 동사의 목적어는 2연이고 2연의 '나'이다. 밤낮으로 님(=시)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고 울고 있는 '나'를 참으로 누가 보았을 것인가, 라는 것.

 

이어서 "(그리움이) 염없는 일수록/ 하늘만 하였[다]"는 건 이장욱의 지적대로 문법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모호한 표현이지만, 음성학적으론 '하-날'/'하늘'로 호응하기에 정당화된다. 즉, 그건 동어반복이다. '하늘만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은 단호하게 "구름과 장미 되어" 온다. 이건 사실의 확인이면서 시적 화자의 결의이다(시집 맨처음에 왔다면, 이 시는 '서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건 이미 충분히 암시되었지만 내가 이 시를 일종의 시에 대한 시, 즉 메타시로 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쯤에서 상기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김춘수가 우리시사에서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가장 강하면서도 분명한 자의식을 평생 유지했던 시인이라는 점이다. 내 견문으로 그는 가장 많은 분량을 '시론'들을 써낸 시인이다(낱권으로 7권이고 전집 2권 분량이다. 페이지수로는 1,200쪽 가량). 25살 이후에도 시론을 갖지 않고 시를 쓰는 시인들을 그는 '아마추어'라고 부르며 신뢰하지 않았다. 해서 내가 보고 읽기에 그는 이성적인 통제에 매우 능한 대표적인 지성파 시인으로서 감상성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평생 견지했다.

 

비록 이 시에서 '장미'란 시어가 등장하지만, 그때의 장미는 구체적인 꽃이라기보다는 '장미'라는 기표이고 추상이다(김춘수는 생화(生花)를 싫어한 조화(造花) 예찬론자였다). '하염없다'란 표현도 나오지만, 나는 그것이 '울다'와 마찬가지로 시적 상투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하염없는 날들이 흘러가고 그의 님은 아직도 구름과 장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형체 있는 것과 형체 없는 것, 만져지는 것과 만져지지 않는 것, 구체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그리고 결국에는 죄와 구원 사이."(290쪽)라는 이장욱의 지적에 유보적이다. 분명 '구름과 장미 사이'에 김춘수는 놓여 있지만, 그때 '구름과 장미'가 의미하는 바는 시의 전통이자 시의 테크닉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내부는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시인 자신의 해설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건 바로 이 문장이다. 그 금은 구름(=감각=전통)과 장미(관념=서양) 사이의 금이며, 김춘수라는 시인의 주체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가져오자면) '빗금쳐진 주체'로서, 그러니까 진정한 주체로서 정립시켜주는 금이다. 알려진 바대로, 그가 시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39년 일본에 유학을 가서 대입을 목적으로 학원에 다니던 시절 한 고서점에서 구해 읽을 일역판 릴케 시집을 발견하고서이다. 그리고, 이어서 만난 일본인 교수의 시론 강의에 매혹되어 그는 시인으로의 길에 들어선다(2002년에 나온 <쉰 한편의 悲歌>(현대문학)는 그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모델로 하여, '마침내' 그와 대결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그의 첫시집이 나온 것이 (그는 '의미에서 무의미까지'란 글에서는 1947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1948년이니까 대략 9년만의 일이다. 릴케의 시에 영감을 받아 시를 쓰게 됐지만(=의식) 한국어로 시를 써야 한다(=언어)는 자의식, 그것이 흔한 해석대로. '장미'와 '구름'이 의미하는 바이다. 나는 이러한 사정이 정서적으로 '비애'의 함축을 갖는다고 보지 않는다(비록 그가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를 견지했지만, 이때의 허무는 분명 비애와 구별된다). '구름과 장미의 나날'은 무의미시만큼이나 그리고 형이상학만큼이나 테크니컬하고 건조하다. 적어도 김춘수의 경우에는.

 

05. 12. 22.

 

P.S. 김춘수의 '구름과 장미'란 시에 대해서 나는 한번도 주목해 본 적이 없다(이 시에 대한 시인의 언급은 물론 유의미하지만). 따라서, 이장욱의 글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씌어지지 않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씌어졌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춘수의 초기시는 따로 있는데, 그건 'VOU'이다(아마도 내 친구와 나는 시에 대한 취향이 많이 다른 듯하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VOU라는 음향은 오전 열한시의 바다가 되기도 하고, 저녁 다섯시의 바다가 되기도 하다. 마음 즐거운 사람에게는 마음 즐거운 사람에게는 마음 즐거운 한 때가 되기도 하고, 마음 우울한 사람에게는 紫色의 아네모네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고 싶으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김춘수답지 않은 이런 시에는 다른 시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테크닉이 구사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때 '사랑하고 싶으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내게는 좋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시이다. 그러니 '구름과 장미'보다 나는 '자색의 아네모네'를 기꺼이 더 사랑해마지 않는 것이다...    

저마다 사람은 임을 가졌으나

임은

구름과 薔薇 되어 오는 것


눈뜨면

물 위에 구름을 담아보곤

밤엔 뜰 薔薇와 

마주앉아 울었노니


참으로 뉘가 보았으랴?

하염없는 날일수록

하늘만 하였지만

임은 

구름과 薔薇 되어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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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분석론'이란 부제를 가진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는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의 '처녀작'이다. 1969년에 책이 나왔으니까 1965년 그녀가 불가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지 4년만이며 그녀의 나이 28살 때의 일이다. 자신의 소설 제목대로 파리 지성계의 기라성 같은 '사무라이들' 틈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돋보이는데, 그걸 가능하게 했던 '필살기'가 바로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이었다(올해는 바흐친 탄생 110주년이자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토록 조용히 지나갈 수가!). 

<세미오티케>에는 바로 그녀가 바흐친을 서구 지식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유명한 논문 '말, 대화, 소설(Le mot, le dialogue, et le roman)'(1966-7)이 실려 있다.(이 텍스트의 우리말 번역은 2종이며 각각 <세미오티케>와 <바흐친과 문학이론>에 실려 있다. 전자는 불어 번역이고, 후자는 영역본의 중역이다. 나열된 이미지 중 세번째는 불어본이고, 네번째는 이 논문이 실려 있는 영어본 크리스테바 선집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이며, 마지막은 작년에 나온 러시아어본 크리스테바 선집이다. 이 다섯 가지 버전의 텍스트에 근거하여 이 글을 쓴다). 해서, 그것은 바흐친 입문 텍스트이지만 크리스테바 입문 텍스트이기도 하다. 젊은 날에 씌어진 탓에 패기만만하며 제법 난삽하다는 예비지식을 갖고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무엇을?

 

 

 

 

대부분의 우리말 크리스테바는 요령부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대개 불어본이나 영어본 등과 대조하지 않고서는 읽어나가기 힘들다). 그건 전문가의 번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데,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 <여성과 성스러움> 정도가 독해가능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세미오티케>에 실린 '말, 대화, 소설'도 마찬가지인데, 나로선 국내에서 이 텍스트를 완독한 이가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라고 짐작해본다. 사실, 내가 읽은 것도 얼마전 이 텍스트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기회'라기보단 내가 자발적으로 '강제'한 것이지만).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거지만, 출간소식에 반가움보다는 의혹을 더 많이 갖게 했던 <세미오티케> 역시 출간되지 않은 것만 못한 오역서이다. 이런 책을 내 돈 주고 산 이상 뒤늦게나마 그에 대한 대가를 두고두고 지불하도록 하겠다(돈주고 또 지불한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각주1)(국역본의 각주2)의 내용을 읽어본다(영역본은 이 각주의 내용이 약간 다르다. 영어권 독자들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 텍스트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텍스트는 미하일 바흐친의 저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적 문제>(모스크바, 1963)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모스크바, 1965)을 출발점으로 씌어졌다."(<세미오티케>, 105쪽) 여기서는 바흐친의 저작명부터가 오역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적 문제>는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문제>가 원제이며 우리말로는 같은 번역본이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정음사, 1989), <도스또예프스끼 창작론>(중앙대출판부, 2003)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품절된 상태(읽어야 할 책을 구할 수 없는 나라는 문명에 가까운가, 야만에 가까운가?). 해서, 이미지는 영역본을 띄워놓았다. 참고로 이 영역본 <도스토예프스키> 1984년판에 나왔다. 영어권에서 바흐친학을 선도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1968년에 나온 <라블레>이며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불역본 <도스토예프스키>는 크리스테바의 주도하에 1965년에 처음 소개됐다. 

그나마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 정도이다(불역본의 제목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이고, 영역본의 제목은 <라블레와 그의 세계>이다). 여하튼, <도스토예프스키>와 <라블레>가 바흐친의 주저이며 각각 20년대말과 30년대에 씌어졌지만, 1960년대 중반에서야 모스크바의 세계문학연구소(고리키연구소) 젊은 연구자들에게 '재발견'되어 (다시) 출간되기에 이른다. 그 젊은 연구자들이란 S. 보차로프와 V. 코쥐노프 등을 말하는데, 바흐친 사후에 두 사람이 갖고 있던 바흐친 저작권은 코쥐노프의 사망으로 현재는 보차로프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세르게이 보차로프가 러시아 바흐친학의 좌장이며 전집의 책임 편집자이다(바흐친 전집은 아직도 두어 권이 더 출간되어야 한다). 이 전집의 한국어판이 출간기획중인 것으로 알며, 초기 문학론 모음집인 <말의 미학>(길)은 근간 예정으로 돼 있다.

어쨌든 이어지는 문장: "그의 작업은 1930년대 소련의 언어와 문학 이론가들의 저작에 명백한 영향을 미쳤다(볼로쉬노프, 메드베제프). 그들은 담론의 여러 장르를 논한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전자는 <도스토예프스키론>, 후자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여기까지가 각주의 내용인데, 첫번째 문장은 맞는 번역이지만 크리스테바의 원문 자체가 약간 부정확하다. 아마도 글이 씌어진 1960년대 중반에 바흐친과 그의 저작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볼로쉬노프의 이름으로 나온 책 두 권 <프로이트주의>(1927)과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1929), 그리고 메드베제프의 책 <문예학의 형식적 방법>(1928)은 모두 1920년대의 저작이기 때문이다(이 시기에 출간된 바흐친의 저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 초판뿐이다). 하니 1930년대 언어학/문학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언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언급한 책들은 모두 국역본이 나와 있다).

사실 이 저작들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관한 논쟁은 바흐친학의 한 파트를 차지할 정도로 분분하지만 최근엔 바흐친의 저작으로 간주하거나 바흐친/볼로쉬노프, 바흐친/메드베제프 하는 식으로 병기해주는 게 보다 일반적이다. 바흐친은 보차로프와의 대담에서 이 책들의 저작권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다(그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단 바흐친의 저작으로 간주할 경우에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흐친이 볼로쉬노프나 메드베제프의 이념적 입장(마르크스주의)를 감안하여 책을 썼다는 것. 해서 러시아에서는 '가면을 쓴 바흐친'이란 표제로 책이 나와 있으며 바흐친 전집과는 별권이다.   

그런데, 내가 굵은 글씨로 처리한 "그들은 담론의 여러 장르를 논한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는 괄호안의 부연설명과 함께 전혀 뜬금없다. 불어본의 문장은 "Il travaille actuellement a un nouveau livre traitant des genres du discours."(강세부호 생략)이 전부이다. '그'(=바흐친)는 현재 담화(담론) 장르에 관한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으며, 언제 '내놓았다'는 말인가? 번역에도 '조작'이 있다면 이런 경우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여기서부터 역자는 이미 이 번역의 수준에 대해서 충분한 암시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본문의 첫 문장을 읽어보자: "'여러 인문과학'의 연구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과학적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를 밝혀줄 연구 구조의 층위 자체에서, 그러니까 인문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105쪽) 한마디로 '놀라운', 놀랍도록 뻔뻔한 문장이다. 요컨대, 인문과학의 연구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인문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의 유효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경우엔 차라리 영역본에 중역한 번역문이 상대적으로 정확한데, 옮겨보면 이렇다: "'인문'과학에서 과학적 접근의 실효성이 항상 도전을 받아왔다면, 그러한 도전이 연구 대상의 구조들, 즉 과학적인 것과는 다른 논리에 상응한다고 생각되는 구조들의 차원에서 최초로 제기되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바흐친과 문학이론>, 234쪽) 여기서 '도전하다'란 동사는 영역본의 'challenge'를 옮긴 것인데, 불어본에서는 영어 'contest'에 해당하는 'contester'란 동사이다. 즉, '이의를 제기하다', '반대하다'란 뜻의 동사가 쓰이고 있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인정하다'란 정반대의 뜻으로 옮겨질 수 있는지?(이 정도는 이제 '놀라운' 오역이 아니라 '익숙한' 오역인 것인가?)  

크리스테바가 여기서 과학과는 '다른 논리'로 지시하는 것은 시적 언어(=시어)의 논리이고 '역동적 그람(gramme dynamique)'의 논리이다. '그람'은 '글자들'을 생각하면 된다(기호로 다 환원되지 않고 남아있는 어떤 물질성이 그람이고 글자들이다). 이건 전문적인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어서 넘어가기로 한다. 얼마 안 넘어가서 나오는 문장을 보라. 두 가지 국역본을 영역본과 함께 제시한다(사실 이 대목은 영역본만으로는 모호했고 러시아어본을 참조하면서야 비로소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1)"구조분석이 그 대안으로 삼고 있는 러시아 형식주의가 쇠퇴할 때도 그 연구에 있어 문학이나 과학을 벗어난 문제 때문에 양자택일의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계속되었고, 최근 미하일 바흐친의 분석을 통해 그 연구가 결실을 보았다."(<세미오티케>, 106쪽)

(2)"현대 구조주의적 분석이 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형식주의도 문학과 과학을 넘어서서 추론이 노력을 멈추었을 때 그 자신 동일한 선택에 당면했다. 그래도 연구는 계속되었고, 최근에 그것은 미하일 바흐친의 업적에서 드러나고 있다."(<바흐친과 문학이론>, 235쪽)

(3)"Russian Formalism, in which contemporary structural analysis claims to have its source, was itself faced with identical alternatives when reasons beyond literature and science halted its endevors. Research was nonetheless carried on, recently coming to light in the work of Mikhail Bakhtin."(64쪽)

바로 앞 대목에서 크리스테바는 문학기호학의 두 가지 선택지(침묵하거나 다른 논리, 즉 시적 언어의 논리 모델을 세우거나)를 제시했었는데, 러시아 형식주의도 외압에 의해 이론적 작업이 중단될 때 그러한 동일한 선택지에 직면했었다는 게 대략적인 내용이다. (1)에서 (현대의) 구조분석이 '그 대안으로 삼고 있는'이란 표현은 불어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며 (2)처럼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정도의 뜻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1)'문학이나 과학을 벗어난 문제 때문에' (2)'문학과 과학을 넘어서서(beyond literature and science)'는 불어본의 'extra-literaires et extra-scientifiques'의 번역인데, '문학 외적, 학문(과학) 외적'이란 뜻이다. 1920년대 중후반 러시아 형식주의가 '문학 외적, 학문 외적인 이유들'로 탄압받음으로써 중단된 사태를 가리키는 것. 그러니 (2)에서도 'reasons'를 '추론'으로 옮긴 것은 잘못이며, 'its'가 받는 것은 '추론'이 아니라 '러시아 형식주의'이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러시아 형식주의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예비지식이 필요한 대목이며, 두 가지 국역본은 모두 정확한 이해에 미달하고 있다...

하여간에 이런 식으로 또 '부지하세월'의 읽기를 시도해야 한다. '말, 대화, 소설'의 끝장을 보려면 말이다(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거짓말'에 더 익숙해질 것이다). 대략적으로 보자면, <바흐친과 문학이론>의 중역이 <세미오티케>의 원어역보다는 낫지만 그 또한 꼼꼼한 읽기를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며 줄거리 정도만을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정도이다(238쪽 각주8)에서 '러시아 방언의 역사를 위하여'가 '러시아적 변증법의 역사를 위하여'란 식으로 거창하게 오역된 것도 희극적이다). 그러니 과연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05. 12. 21.

 

P.S. 겸사겸사 우리말 바흐친 입문서 두어 권을 적어둔다. 먼저, K. 클라크와 M. 홀퀴스트가 쓴 전기 <바흐친>(문학세계사, 1993). 두 공저자는 부부 학자인 걸로 안다. 알라딘에는 클라크가 미술학자 '케네스 클라크'로 기재돼 있는데 엉뚱한 오류이다. '카테리나 클라크(Katerina Clark)'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 연구자로 유명한데 홀퀴스트와 함께 바흐친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저는 1984년에 하바드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으며 1980년대 영어권 학계의 바흐친 열풍을 대변하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유감스러운 건 국역본이 완역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량 때문인지는 몰라도 몇 개의 장이 누락돼 있다. 책도 이미 품절된 상태인데, 제대로 된 완역본이 다시 나왔으면 싶다(바흐친은 이미 지나간 '유행'인가?).  

두번째 책은 츠베탕 토도로프의 <바흐찐: 문학사회학과 대화이론>(까치, 1987)이다. 불문학자 최현무 교수(소설가 최윤)의 번역이다. 불어본 원저 <미하일 바흐친: 대화주의 원칙>은 1981년에 나왔고 영역본은 <도스토예프스키 시학>, <미하칠 바흐친> 등과 함께 1984년에 나왔다(이미지는 영역본의 것이다. 한편으로 1984년은 영어권 바흐친 수용에 있어서 기념해 둘 만한 해이겠다). 국역본은 번역어 선택 등에서 이견의 여지를 남기지만 읽을 만하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분량이 아주 얆다는 것. 어느 해 여름인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카테리나 클라크의 연구서와 함께 토도로프의 영역본을 동네 독서실에서 읽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아마도 국역본 바흐친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혔을 법한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비, 1988). 영어권의 바흐친 열풍 덕분에 출간되었던 책인데, 1981년에 출간된 M. 홀퀴스트 편역의 바흐친 선집 <대화적 상상력(The dialogic imagination: Four Essays)>를 저본으로 하고 있다(국역본은 4편의 에세이 중에서 3편을 옮겨놓고 있다). 러시아어 원저는 1975년에 출간된 (보다 방대한) <문학과 미학의 문제들>이다. 이 책의 불역본은 <소설의 미학과 이론>이란 제목으로 1994년에 나왔다. <장편소설과 민중언어>는 중역본이지만(중역본이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았던 책이었는데, 요즘도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여하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런 정도가 바흐친에 입문하기 위해서라면  읽어두어야 할 책들이다. 러시아의 바흐친학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현재 기획중인 걸로 아는데, 아마도 1-2년쯤 후에 나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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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5-12-2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기대에 미달할 듯하군요. 이 일에만 매달릴 형편이 아니라서...

로쟈 2005-12-2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흐친 관련서들이 두어 권 더 나오면 바흐친 냄비가 다시 끓을까요?..

poiein 2010-10-0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테바에 대해서 알려고(이제사?) 왔는데 오히려 바흐친에 대해서 정보를 더 얻은 셈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연말이면 으레 그렇지만 할일은 많고 마음은 바쁘다(그렇지만 손은 더디다!). 정리할 일들 가운데는 좋은 일들도 있지만 궂은 일들도 있다. 가급적이면 연초부터 인상을 구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지겨운 책읽기'도 몰아서 해보도록 한다(좀 하다 보면 지치겠지만).

 

 

 

 

제일 먼저 브라이언 마수미의 <천 개의 고원 사용자 가이드>(접힙과펼침, 2005). 이미 품절된 책인지라(자체 품절?) 굳이 이런 자리에서 다룰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언젠가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지라 일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정리해둔다. 마수미(B. Massumi)는 <천 개의 고원>의 영역자이며, 당연히 영어권의 대표적인 들뢰지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가이드'의 원제는 'A User's Guide to Capitalism and Schizophrenia'(1992)이다. 그러니까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 가이드북인 셈이다. 가이드북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개성적이며 따라서 그닥 친절하지는 않다. 친절한 걸 원한다면 우리식 가이드북인 <노마디즘>(휴머니스트)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물론 이 가이드북의 대상은 <천 개의 고원>이 아니라 <천의 고원>이지만).

마수미의 책은 상당히 오래전에 복사해두었었는데, 이처럼 번역돼 나왔길래 반가웠다, 라고 쓰면 좋겠지만, 사실 반갑지 않았다. 역자의 전력에 비추어볼 때 제대로 된 번역서일 확률이 지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해서, 미덥지 않은 마음에 도서관에 주문이나 해두었었는데, 얼마전에 대출가능해졌고 내가 첫 대출자였다(궁금함보다는 주문에 대한 '책임감'에 떠밀려 대출했다). 고급스런 장정의 하드카바이긴 하지만, 역시나 읽어보는 시간이 아까운 오역서. 한데, 이건 역자 자신이 "이 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많은 오역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243쪽)라고 태연하게 밝혀놓고 있는 터여서 지적하기도 쑥스럽다(보통은 '혹 있을지도 모르는 오역은 역자의 책임이다'라고 적는다). 아아, 역자의 말은 겸양이나 아이러니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인 것이니!('오역의 희열'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번역을 감행하는 이유가 설명/이해되지 않는다.)

몇 걸음 뗄 것도 없이 첫 페이지부터 오역의 퍼레이드이다. 마수미의 책은 서문과 세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국역본은 네 개의 장으로 재구성하면서 'Pleasures of Philosophy'란 제목의 서문을 '희열'이란 장으로 옮겨놓았다. 해서,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은 고스란히 빠져있으면서 오역의 '희열'을 유감없이 제공해주는 번역문들을 약간만 맛보기로 한다(어차피 이해못할 철학이라면 즐기기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라는 식으로 좋게 생각한다면, 번역에 대해서 툴툴대는 나의 태도는 제법 옹졸한 것이 된다. 그러니 이런 얘기를 길게 늘어놓음으로써 나의 그 옹졸함을 굳이 더 과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원서의 첫 페이지 세번째 문단이 국역본의 두번째 페이지에는 이렇게 옮겨져 있다(문단이 나뉘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신분열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집니다. '철학'이 그 여러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저 일반적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출(bastard)로서의 철학입니다. 서출이 아닌 합법적 철학은 '전제군주의 그늘'에서 말하는 순수이성의 '관료주의'가 낳은 아들이며 제도(the state)의 역사적 복잡성이 만든 피조물입니다. 이러한 관료주의와 복잡성은 우리 정신의 내부에서 실제적으로 기능하는 절대 제도(the State)를 생산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정신분석은 주권적 판단의 담론이며, '건전한 논리'에 의해 합법적으로 인정된 안정적인 주체로서의 담론이며, 바위와 같이 견고한 담론이자, 백인우월주의적이며 '일반(universal)' 진리의 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유를 실재적 제도((the State)의 목적과 동일시하여 혹은 지배적 기호와 동일시하여 기존의 질서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프로세스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8쪽, 강조는 나의 것)

들뢰즈 철학에 대한 단정적인 서술이므로 밑줄긋기를 해볼 만한 대목처럼 읽히지만, 문제는 제멋대로의, 보다 정확히는 정반대로의 번역이라는 것. 원문은 이렇다: "Schizophrenia, like those 'suffering' from it, goes by many names. 'Philosophy' is one. Not just any philosophy. A bastard kind. Legitimate philosophy is the handiwork of 'bureaucrats' of pure reason who speak in 'the shadow of the despot' and are in historical complicity with the state. They invent 'a properly spiritual... absolute State that... effectively functions in the mind." Theirs is the discourse of sovereign judgment, of stable subjectivity legislated by 'good' sense, of rocklike identity, 'universal' truth, and (white male) justice. 'Thus the exercise of their thought is in conformity with the aims of the real State, with the dominant significations, and with the requirements of the established order."(1쪽)

처음 네 문장은 국역본의 번역도 오역에 속하지는 않는다. 나라면, "분열증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처럼, 여러 가지 이름으로 행해진다. '철학'은 그 중 하나이다. 그건 여타의 일반적인 철학이 아니다. 아주 개 같은 철학이다." 정도로 옮기겠다. '개 같은 철학'(A bastard kind of philsophy)은 철학에서의 분열증, 혹은 분열증적인 철학이 갖는 이름이고 양상이다. 이 '잡종 개' 같은 철학과 대척점에 놓이는 것이 '합법적 철학'이고 '국가 철학'이다(State를 역자는 '제도'라고 옮겼는데, 납득이 가지 않는다. 비록 '제도권 철학' 정도라면 '국가 철학'과 의미가 통할 수는 있지만). 이 합법적 철학은 순수이성의 '관료들'이 만들어낸 고안품이다(역자는 'bureaucrats'을 '관료주의'라고 옮김으로써 이후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그럴 경우 이후에 나오는 'they'가 무얼 받는 건지 오리무중이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개 같은 번역이 돼 버렸다). 

다섯번째 문장부터 다시 옮기면 이렇게 된다: "합법적인 철학이란 순수 이성의 '관료들'이 만들어낸 고안품이다. 그들은 '전제군주의 그늘' 속에서 말하며 역사적으로 국가 체제와는 공모관계에 있다. 그들은 '그러한 체제에 걸맞게 우리의 마음 속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정신의 절대 왕정(국가)을  발명해낸다.' 그들의 담론은 주권적 판단의 담론이며, '양식'에 의해서 합법화되는 안정된 주체성의 담론이고, 바위같이 확고한 자기동일성, '보편적' 진리, 그리고 (백인 남성적) 정의의 담론이다. '따라서, 그들의 사유를 실행한다는 것은 실제 국가의 목적들과 지배적인 대의들, 그리고 기존의 질서가 요구하는 사항들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합법적인 철학과 그로부터 분열증적으로 도주/탈주하고자 하는 들뢰즈/가타리의 '개 같은 철학'은 정반대의 철학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유를 실재적 제도(the State)의 목적과 동일시하여 혹은 지배적 기호와 동일시하여 기존의 질서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프로세스"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오직 역자만이 알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류의 오역이 국역본에는 모든 페이지에 걸쳐 출몰하며, 나로선 이 '희열들'을 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 맛만 보는 정도에서 다시 역자의 말로 넘어가는 이유이다.

"역자는 번역하는 다이어그램 기계입니다. 텍스트의 본질과 심오한 이해가 선행하지 않더라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개념의 전이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죠.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종이다발입니다."(242쪽) 한 대목만 지적했지만, 이 '종이다발'과 '텍스트의 본질과 심오한 이해'는 서로 무관하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암시되었을 것이다. 쑥쓰러운 것은 이 또한 역자의 계획(손바닥) 안에 다 포함돼 있다는 것. 그러니 '기계 번역'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이빨만 아픈 일이다.

 

 

 

 

마지막 역주에서의 충고: "이미 우리나라에 출간된 <천 개의 고원>, <안티오이디푸스>, <이성의 논리> 그리고 <차이와 반복> 등의 번역본의 페이지번호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수정본의 출간여부가 정해지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독자들은 우리말 번역본으로 돌려보내기보다는 영역본으로 돌려보내거나 불어원본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원본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통한 독자들의 즐거움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덱스의 키워드를 사용하여 번역본이 아닌 토종 철학자들의 저서로 돌아가는 방법을 적극 추천합니다."(244쪽)

역자가 <이성의 논리>라고 한 건 <의미의 논리>를 가리킨다. 역자가 언급하고 있는 국역본들이 비록 미흡한 대목들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역자가 논할 수준은 넘어선다(그러니 적반하장이다). 그럼에도 역자의 충고는 적어도 이 마수미의 책에서만큼은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나는 독자들이 원본(영어본)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원본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통한 독자들의 즐거움을 존중하기 때문"이다(이 비문은 나의 것이 아니며 오타도 아니다. 역자의 문장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역자가 풀서비스로 제공하는 희열에 어느 정도 몸을 푼 독자라면, 이제 '철학의 즐거움'은 다른 자리에서 맛보아야겠다. 이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다간 희열의 '괴물'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길('괴물monstrosity'은 마수미의 책 마지막 장의 제목이다)... 

05. 12. 19.

P.S. 귀가해야 하는 탓에 오늘은 여기까지만(마수미의 책은 내일 반납할 것이다). 조만간 몇 권의 '지겨운 책읽기'가 이어질 것이다(이 얼마나 지겨운 희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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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1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번역을 하는 건지...? 그리고 그 접힙펼침이라는 출판사와 역자와의 관계는 무엇일지.ㅎㅎㅎ

로쟈 2005-12-2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겹게 읽으시진 않겠지요?^^

palefire 2005-12-2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법한 오역시리즈군요. 저 책의 원전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데요. 다른 누군가 개정판을 내면야 좋겠지만 마수미의 그 다음책인 [Parables for the Virtual]은 정말로 번역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할 듯해요.
 

로이 잭슨의 <30분에 읽는 니체>(램덤하우스중앙, 2003)을 읽었는데(내가 읽은 건 2005년판 3쇄이다), 충실한 내용이고 좋은 번역이다. 이런 류의 책들 가운데에서는 '동급 최강'이 아닐까 싶다.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문예출판사, 2003)와 나란히 읽으면 좋을 듯싶다. 자프란스키의 책은 독일에서 2000년 니체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책이며 내가 읽은 대목들에서 번역도 막힘이 없다.  

 

자프란스키는 독일어권 최강의 철학자 전문 전기작가인데,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등의 저작을 갖고 있고(이 모두는 영역돼 있으며 나는 <하이데거>를 영역본으로 갖고 있다), 올해는 <쉴러>도 출간한 걸로 안다. 모두가 번역되어 마땅한 책들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니체>가 좀 팔려줘야 한다!).  

그의 에세이로는 <인간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필요로 하는가>(지호, 1998), <악 또는 자유의 드라마>(문예출판사, 2002)가 국내에 출간돼 있는데, 후자는 아직 안 읽었지만 전자는 내용 좋고 번역도 좋다. 해서 자프란스키를 읽자! 

한편, 영어권을 대표하는 니체 개론서로서 홀링데일의 <니체>(이제이북스, 2004)도 유용해 보이지만, 니체가 사랑했던 여인 '루 살로메'를 '루 잘로메'로 옮긴 탓에 눈밖에 나버렸다(명품은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거기에 무슨 '신념'이 걸려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권의 철학서를 낸 출판사의 작품 치고는 부주의해 보인다. 국내에서 나온 가장 종합적인 책은 백승영의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책세상, 2005)이다.

그건 그렇고, 잠시 짬을 낸 김에 <30분에 읽는 니체>에 대한 밑줄긋기를 해본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대목은 112-117쪽인바, "새로운 철학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와 "과연 진정한 세계가 있을까?"라는 두 개의 절로 돼 있다. 저자를 따라가 본다(나는 대부분의 책의 경우 읽기-따라가기가 그냥 모든 걸 말해준다고, 이해가능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사상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거의 대부분이 신이나 내세, 영원한 영혼 등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런 개념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며 연대기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만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세계관이 그런 것처럼 우리의 언어도 그렇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그러니까 언어의 '자명성'에 대해서 의심해보아야 하다는 것. 즉, 언어에 대해서도 현상학적 판단중지가 필요하다.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문법을 없애기 전에는 신도 없앨 수 없다'는 유명한 주장을 한다. 이런 견해는 후에 모든 언어가 석기 시대의 형이상학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러셀에 의해서도 제기된다. 우리가 보다 나은 철학을 원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니체의 이러한 통찰은 거듭 음미될 만한데, 언어(문법)과 형이상학(신) 간의 내적 커넥션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령 (하이데거에 따라) '3인칭 단수동사 현재형'에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서구 '형이상학'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러한 동사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은 언어, 가령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의 경우에는 문제의식이 온전하게 공유될 수 없다. 즉, 그건 '당신들의 형이상학'인 것. 그리스적 기원의 형이상학과 다른 형이상학이 구성될 수 있는 것은 아주 실제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언어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러시아어의 경우만 하더라도 존재동사(be동사)의 현재형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is/ist/est 대신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무(zero)형이다.

해서, 언어에 근거하자면, 러시아에는 서구와는 다른 종교, 다른 형이상학이 성립가능하며,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그건 한국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He is a student'를 '그는 학생이다'로 옮기고, 거기서 계사 'is'의 대응항으로 '이다'를 분석하는데, 그러한 대응의 불완전성만큼 서구의 계사존재론과 한국어의 존재론은 거리를 갖는다.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만큼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이 가능하다.

-"우리는 언어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그 언어가 만들어내는 허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 니체는 심지어 물리학의 언어조차도 인간의 필요에 부합하는 허구이며 해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원자와 같은 이론적 개념뿐만 아니라 모든 개념이 허구라고 말한다. 물체, 선, 표면, 원인과 결과 혹은 운동과 같은 개념은 모두 믿음의 산물이지 그 자체로는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니체의 원근법주의(관점주의)이다. 모든 것의 믿음의 문제이며 따라서 개종의 문제이다. 여기서 문득 니체는 흄을 떠올려주지 않는가? 

-"인과관계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흄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흄은 인과관계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건에 연결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과관계는 정신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주 필요한 것이다. 니체가 보이게 그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유용한 관습적 허구이다."(강조는 나의 것) 들뢰즈가 흄(1953)에서 니체(1962)로 건너뛰는 데에는 9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지만, 내가 보기엔 거기에 어떤 단절/비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다. 적어도 이 인과의 문제와 경험론적/실용주의적 태도를 흄과 니체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습관적인/관습적인 믿음과 개종의 문제 역시.    

 

 

  

 

 

 


 

-"니체는 어떤 경우에도 철학적 관념론을 채택하지 않았다. 즉 정신의 바깥에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말이다. 왜냐하면 니체는 정신의 바깥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그 세상은 질서 있고 구조화된 우주를 갈구하는 인간의 희망에 결코 부응하지 않는 아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 세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고사하고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니체는 칸트 철학의 유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특히 나이가 들면서 '진정한'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만 나는 좀 유보적이다. 설사 '칸트 철학의 유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니체 철학의 독창성을 구성하는 것은 (들뢰즈를 따라서) 칸트 철학과의 변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 잃어버린 세계'를 제안하는 니체-로티의 관점이 보다 더 니체답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로티가 니체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듀이의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과 등가의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도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관념 대신에 망치를 들고서 철학을 한 대장장이들이었던 것이다...

05. 11. 29. 

 

P.S. 참고로 데이비드 흄(1711-1776) 철학에 대한 기본사항 혹은 '교양상식'을 정리해둔다. 독일 사람 에드문트 야코비가 쓴 <클라시커50 철학가>(해냄, 2002)의 내용이다. 24세의 나이의 흄은 프랑스에서 <인성론>(<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세 권으로 된 이 책은 1739-40년에 간행되었다(그러니까 그의 나이 서른이 되기 전이다). 이것은 그의 일생에 있어서 최대의 업적으로 간주된다.

-"흄은 인식의 근거로서 오직 경험만을 인정한다. 그는 로크의 경험론을 출발점으로 하여 로크와 마찬가지로 직접적 '인상들'과 고정된 인상들에서 생겨난 '관념들'을 구분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물들의 실체를 감각들의 '묶음'일 뿐이라고 했던 버클리를 따름으로써 로크의 경험론을 극단으로 몰고간다. 버클리에게 있어 실체는 오직 지각하는 자아뿐이었다. 그러나 흄은 이 지각하는 자아조차도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자아의 내용이 변화무쌍한 감각 지각들일 뿐이라면 이것 역시 감각 지각들의 연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개념은 그저 사유의 유용한 보조 도구일 뿐이다."(151-2쪽, 강조는 나의 것)

이러한 흄의 자아관은 곧바로 니체의 자아관과도 연결되며 들뢰즈의 철학에서 가장 세련된 반향을 얻는다. 이른바 '흄-니체-들뢰즈 커넥션'이다. 인격체로서의 자아나 주체에 대한 들뢰즈의 공격은 젊은 시절 흄에 대한 그의 읽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이디푸스에 대항하여 안티오이디푸스를 내세우듯이, 그는 인칭적 사유에 대항하여 비인칭적 사유(혹은 4인칭적 사유)를 철학의 새로운 무대이자 역량으로 제시한다(들뢰즈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쉬운 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인과 관념에 대해서도 흄은 같은 입장을 취한다. 우리는 결코 경험을 통해 사건 A가 사건 B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없으며 단지 A 다음에 B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섭씨 100도로 가열하면 물이 끓는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이것이 인과 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제 태양이 졌기 때문에 태양이 떠오르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일 뿐이다... 지금까지 태양이 매일 떠올랐다고 해서 이것이 내일도 태양이 떠오르리라는 절대적 보장이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모든 것이 필연성에 따라 연속해서 생겨나는 창조의 질서라는 것도 증명될 수 없다. 그리하여 결국 이러한 질서를 창조한 자의 존재도 증명될 수 없다."(152쪽)

즉, 'A이므로 B'가 아니라 언제나 'A 그리고 다음에 B'라는 식이다. 여기서 A와 B를 묶어주는 것은 인과적 관계(논리)가 아니라 우연적인/습관적인 '접속'(커넥션)일 뿐이다. 이러한 회의론이 니체에게서 반복되고 있다는 건 앞에서 인용한 대로 로이 잭슨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전면적인 회의주의를 갖고 있었기에 영국에서는 니체가 그다지 반향을 얻어내지 못했던 것. 흄 자신의 평가는 이렇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공적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 존재하는 기존의 권력 관계를 바꿔놓은 데 있다고 흄은 생각했다. 그가 이성을 '감각의 시녀'로 만든 것은 한편으로는 극단적 경험론의 입장에서 그렇게 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위 '이성적인' 도덕률에서 감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인간과 육체에 보다 더 가까운 관계에 있는 감성의 우위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흄은 철저한 에피쿠로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에피쿠로스처럼 유물론을 이론적 토대로 하지 않고 감성의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쾌락주의로 나아갔다."(154쪽)

하면, 그가 미학이나 예술론 저작을 남기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이다. 그의 만년의 저작은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울산대출판부, 1998)인데, 들뢰즈는 그 '재담'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문필가'로서의 흄은 플라톤, 니체와 함께 서양 철학사를 통틀어서 톱클래스에 속한다. 이 레이스에서는 칸트가 중간 정도이며 그게 독일어인지 헤겔어인지 헷갈리는 헤겔이 꼴찌를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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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5-11-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자프란스키의 책은 정말정말 좋아요. 저는 또마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답니다. 그의 다른 책이 번역되지 않는 건 참으로 유감스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기, 로쟈님이 번역해 주시면 안될까요.☞☜

Joule 2005-11-2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나중에 두 권은 저도 아직 안 읽어본 책이라 정신없이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말씀 안해주셨으면 모르고 있었을 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땡쓰투 눌러드릴게요. :)

yoonta 2005-11-30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의 is/ist/est를 중심으로한 계사존재론이 문법적인 환각을 통해 실체론적 존재론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니체였지요..그런데 <흄은 인과관계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건에 연결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라는 님의 글을 통해서도 알수있듯이 계사존재론의 문법적 환각현상을 니체보다 먼저 인식한 사람은 흄이라고 볼수도 있을듯.

그리고 그들간의 유사성을 간파하고 계사에 의해 상상되어지는 허구적인 존재론에서 벋어나 계사를 "사건과 사건을 연결"시키는 접속사로 대체함으로써 초월론적 경험론을 구축하려한 들뢰즈에 의해 흄과 니체가 하나로 연결되었다고나 할까요..어쨋든 다시금 들뢰즈로 귀결되는군요..

이제 슬슬 님의 페이퍼가 들뢰즈의 흄에서 (들뢰즈의) 니체로 이동하시는것 같네요..^^

로쟈 2005-11-3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 저도 자프란스키의 책들이 더 나왔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광고도 하고 있구요.^^ 검은비님/ 30분이면 크로키하시는 시간보다는 오래 걸릴 듯.^^ yoonta님/ 들뢰즈의 경험론에 대한 페이퍼도 곧 쓰긴 해야겠네요. 그렇다고 너무 목빼진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책임 안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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