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희극' <갈매기>가 정초에 무대에 올려진다는 소식이다. 전세계에서 <햄릿> 다음으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라고 하니까 드문 일도 아니며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다만 국내에서 공연되는 <갈매기>를 본 적이 없어서 얼마간 흥미는 갖게 된다. 공연기간이 짧아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매일경제(07. 01. 11) 안톤 체호프 `갈매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인간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면서 자신에게만은 철저히 몰두한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가 한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그의 정의는 탁월하다.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하고 싶어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하는, 상대에게 진정으로 뭔가를 주는 데는 지독히 서툴면서 자신은 의지하고 기대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인 까닭이다.

극단 여백(대표 오경환) 창단 10주년 기념작 '갈매기'는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잘 그린 연극이다. 모자 관계인 여배우 아르카지나와 작가 지망생 코스차, 아르카지나의 애인인 소설가 트리고린, 배우 지망생 니나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통해 자기애에 빠져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사랑에도 서툰 인간의 모습을 고찰한다.



'갈매기'는 '세 자매' '벚꽃동산' '바냐 아저씨'와 더불어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하나. 명확한 사건이나 주제가 없어 난해한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체호프 서거 100주년이었던 2004년부터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극단에 의해 여러 차례 공연된 바 있어 연극 애호가들에게는 익숙한 작품이다.

평범하고 하찮기까지 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의 진실을 섬뜩할 만치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 '갈매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품 번안과 연출을 맡은 오경환 대표는 "'갈매기'는 우리가 얼마나 끔찍하게 삶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선종남 유준원 박현미 박찬국 정선철 이보영 등이 출연한다. 16~21일 대학로 우석레퍼토리극장. 2만~2만5000원. (02)762-0810(노현 기자)

07. 01. 14.

Чехо в театре - Чайка
 
P.S.  사진은 극단의 동료들에게 <갈매기>를 읽어주고 있는 안톤 체호프(가운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1-14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4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글쎄요, 체홉의 작품으로는 들어본 바가 없는데요(제가 두루 알지는 못하지만). 체홉의 작품으로는 좀 '쎈' 설정 같기도 하구요(일단 누굴 죽이고 하는 얘기가 그의 취향은 아니라서요). 체홉의 작품이라면 놀랄 일이지만, 아무래도 후자쪽 같습니다...

릴케 현상 2007-01-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매기는 연영과 애들이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아 보고 싶네염
 

러시아 관련 해외칼럼을 읽고 옮겨놓는다. 한 러시아 언론인의 기명칼럼이 특약으로 게재된 것인데, 러시아인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인 2008년 대선에 대한 우려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는 중산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그 우려의 근거이다. 하긴 푸틴이 대통령에 재선되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2004년부터어 이미 2008년 대선 전망이 러시아에서는 심심찮은 화제거리였다. 2007년에는 그 윤곽이 가려질 수 있을까? 이 칼럼이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러시아 이야기'가 될 듯하다. 기사의 원문도 아래에 옮겨놓았다. 아래는 지난 푸틴의 재선 직후부터 3선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前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경향신문(06. 12. 30) 러시아 중산층의 '정치 무관심'

보통 이맘때면 다가올 한 해를 설계하느라 분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2007년이 아닌 2008년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 과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언하는 것처럼 2008년 대통령 임기 만료 이후 권좌에서 물러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만일 정말 물러난다면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 그 후계자는 크렘린 내부에서 발탁될 것인가, 아니면 외부 인사일까?

푸틴이 (퇴임 이후) 최종 조정자 및 의사결정자의 지위를 버리지 않는 한, 격렬한 분쟁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 권력과 부가 분리되지 않고, 모든 정부 기관들이 독립성을 잃어버린 환경에서 최상층부의 권력이동은 폭력적인 재분배로 귀결된다. 따라서 기득권의 유지나 확대를 원하는 정치 엘리트들은 권력 변화에 사활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반면 대중은 리더십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 국민의 45%는 푸틴이 후계자를 지명하고, 그가 새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가하면 25%는 푸틴이 헌법을 개정해 세번째 임기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나든 권력이동이 최상층부에 의해 결정되고 투표로 추인될 것이라는 걸 대중은 알고 있다.

입법부내 정파 간 균형도 크렘린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동안 집권 세력은 의원 선거 등을 지속적으로 통제했다. 이에 따라 집권층이 원하지 않는 세력이 내년 12월 의회에 진출할 기회는 없다. 러시아의 보통사람들은 정치에서 배제돼 있으며, 즉각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론인 암살 등에 대해서도 ‘사업상의 파트너들’에 의해 살해됐을 것으로 믿으면서도 도통 무심하기만 하다.

러시아에서 국가와 국민 간 괴리는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최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은 더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 국민의 삶은 석유와 가스를 팔아 번 돈으로 공산주의 몰락 이후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정부가 독재로 치닫고 있지만 더 순응적으로 변하고 있다. 반정부 세력은 정부의 핍박보다도 대중의 무관심에 당황해 한다. 선거 결과가 사전 각본대로 나타날 것이기에 대중은 투표하지 않으려 한다. 대중의 정치참여는 자리를 보전하고 재산을 늘리려는 러시아 관료들에게 장애가 될 뿐이다.

누군가 최근 러시아의 모순된 경향을 중산층의 형성과 함께 급속한 관료제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정부의 강화로 설명한 적이 있다. 새로 싹을 틔우는 러시아 중산층은 크렘린의 경제 정책을 개탄하지만 만연한 부패, 사법부 조정, 법치 및 민주주의의 실종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들은 정부에 해명이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당분간 삶은 현재의 모습대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2008년의 평화로운 권력이양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대중으로부터가 아니라 권력층 내부에서 생겨날 것이다. 만약 러시아의 중산층이 호시절에 안주해 정치적 무관심을 계속해서 키워간다면은 장차 권력이 관료제에서 포퓰리스트 세력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게 될 것이다.(마샤 리프먼/ 러시아 언론인)

The moscow mystery of 2008

Usually at this time of year, people are obsessed with what the coming year will bring. But in Russia, the real uncertainty concerns 2008, not 2007. Indeed, one can boil Russian politics down to one issue nowadays: Will President Vladimir Putin stay on as president after 2008, despite repeatedly stating that he won’t? And if he indeed steps down, whom will he groom as his replacement? Will his chosen successor belong to one of the Kremlin’s feuding factions? Or will he pick an “outsider”?

Unless Putin maintains his stature as the country’s ultimate arbiter and decision-taker, there is a high risk of fierce infighting. In an environment where power and property are inseparable and all government institutions are emasculated, a major transfer of authority at the top may lead to violent redistribution. Thus, resolving these questions is vital for Russia’s political elites who are anxious to preserve the current perks and gain more.

As for the public, the vast majority appears resigned to accepting whatever is arranged by the leadership. Fully 45% of Russians believe that Putin will name a successor, and that this person will become the new president. Almost a quarter believe that the constitution will be changed so that Putin can have a third term. Either way, it is almost universally understood that the transfer of presidential authority is masterminded at the top and endorsed at the ballot box. The balance of forces in the legislature, too, will be determined by the Kremlin. Over the past years the configuration of the political parties and the election legislation have been repeatedly modified so as to suit the interests of the ruling elite. As a result unwanted forces have no chance in next December’s parliamentary election.

Alienated from politics, ordinary Russians are indifferent to everything that does not immediately affect them, and do not seek to hold anyone accountable. They were not bothered by the journalist Anna Politkovskaya’s recent murder or the assassination of Andrey Kozlov, first deputy chairman of the central bank, or the implications of Alexander Litvinenko’s poisoning (a majority in a recent poll said he was killed by his “business partners”).

The alienation between the state and the people has a long tradition in Russia, and so does public apathy. But these days the apathy is reinforced by improved living standards. Thanks to windfall revenues from oil and gas, Russians live better than ever in the postcommunist times. Moreover, it may be argued that never in Russian history has the proportion of those who enjoy reasonably decent lifestyles been as high as it is today. As a result, people have become even more compliant in the face of increasingly autocratic governance.

Of course, there are plenty of reasons to complain, and people may grumble, but they won’t come together to oppose the status quo. Marginal political groups and figures who stage protests increasingly find themselves confronting official pressure and even harassment ? all the more reason for the broad public to turn away from them.

Since the election results are preordained, many may simply not vote. In fact, today’s Russian state barely has a reason to muster active support. On the contrary, public participation is seen as an obstacle to the goals pursued by the bureaucracy: self-perpetuation and expanding control over lucrative assets. If any among the Russian elite ever nursed modernizing ambitions, they have abandoned them, for without public participation, modernization is a fallacy.

Instead, the Kremlin increasingly draws on the conservative, Soviet-style electorate as its power base, while alienating the advanced, the entrepreneurial, and the best educated. Stephen Jennings, the chairman of the board of Renaissance Capital, an investment group with a decade of experience in Russia, recently noted the country’s “contradictory trends”: the emergence of a “burgeoning middle class” alongside a “highly centralized government, breeding a new class of state oligarchs and a mushrooming bureaucracy.”

The problem is that Russia’s best and brightest, which Jennings praised for “high management skills, professionalism, productivity, and social and economic ambition,” don’t seem to mind their alienation from policy-making. They may resent the Kremlin’s economic policies, but they put up with Russia’s rampant corruption and its disgraceful ratings in competitiveness indices, just as they put up with the general erosion of democracy, manipulation of the judiciary, and weak law enforcement. Like their less advanced compatriots, they don’t seek to hold the government accountable or call for change. For the time being, life is good enough as it is.

Thus, if there is any threat to a smooth transition in 2008, or a risk of subsequent destabilization, it may stem from infighting at the top, not from the public. Optimists hope that at some point Russia’s burgeoning middle class will assume responsibility for Russia’s future and demand a radical improvement in governance. But what would trigger a shift from passive compliance to active public participation?

If good times breed political apathy, and bad policies lead to a socioeconomic decline, Russia’s best and brightest may find themselves outstripped by populist forces.

06. 12. 31.

 

 

 

 

P.S. 러시아의 정치사상사와 현정치에 관한 책들 역시 기대만큼 풍족하지 않다(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들에 한정하면 더더욱). 저널적인 차원에서라도 기대와 관심에 부응하는 책들이 나왔으면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2-31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2-3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감사합니다. 내년에 허리가 좀 펴질 만한 책들을 골라보겠습니다.^^ 혹은 앞으로는 책을 누워서 보심이...
 

지난달인가 MBC에서 창사특집 다큐멘터러로 '러시아 혁명' 편을 방송한다는 얘기를 후배로부터 들었지만 결국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강의자료로도 요긴할 듯싶어서 녹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흐지부지됐다. 오마이뉴스에 이 다큐를 직접 제작한 한홍석 PD와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길래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특집다큐는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보든가 해야겠다. 다큐에서 공개된 아래 사진은 박헌영과 그의 딸 박비비안나라고.  

오마이뉴스(06. 12. 28) "왜 러시아 혁명이냐고? 분단국이니까"

2006년이 저무는 시간,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올해도 TV의 위력은 대한민국에서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도 친숙한 매체로 TV는 자리했다. 온갖 종류의 드라마뿐 아니라 월드컵 축구 등을 전달한 TV는 여전히 사랑받은 매체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TV에서 어땠을까? 보통 야심한 밤에 편성되는 시간표가 웅변적으로 말해주듯,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소위 시사 교양물들은 우리나라 TV의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우리 문화적 역량의 지표로 다큐멘터리가 자리매김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한 예가 지난 11월 21일부터 12월 17일까지 근 한 달간 M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5부작 <세계를 뒤흔든 순간- 러시아 혁명(한홍석 연출)>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17년 혁명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 그리고 그 혁명이 다다른 곳까지를 객관적이고 다채롭게 담아냈다. 깊이와 재미는 물론이고, 충실한 자료화면, 고증을 통한 역사 재연, 4개국을 넘나들며 직접 따온 다양한 역사학자들의 해설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두루 갖춘 빼어난 수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혁명>의 진가는 우리의 시각으로 '러시아 혁명'을 조명했다는 데 있다. 19세기 말 몰락해가던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국가가 국민에게 가하는 끔찍한 테러가 만연하던 스탈린 시대까지, 그 먼 북구의 땅에도 '우리'는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의 꿈을 꾸며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대회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또 소련의 각 지역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우리 동포들이 스탈린 숙청의 희생물로 스러졌다. 박헌영의 딸은 아직도 그곳에 살며 아버지를 추억한다.

그런데 소련이 사라진 지금, 신자유시대를 사는 21세기의 우리에게 '러시아 혁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대미문의 노동자 혁명이었던 '러시아 혁명'의 이상은 본산지에서조차 실패했는데 말이다. 재미있고 내용도 알찬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러시아 혁명'의 교훈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신자유경제 체제와 분단 체제라는 두 짐을 걸머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년간의 기획, 세 대륙을 돌며 100일에 걸쳐 진행한 촬영, 그리고 지난 두 달 반을 '노가다' 모드로 편집실에 틀어박혀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주인공, 한홍석 PD를 지난 12월 19일 오후 서울 남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러시아 혁명>이 종영되고 이틀 후다. 다음은 한홍석 PD와 나눈 일문일답.

- 대장정을 끝낸 소회는?
"아직도 끝났다는 실감이 안 난다. 너무 큰 주제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맡았다는 생각이 든다. 반응도 아직 잘 모르겠다. 편집실에서만 두 달 반을 지내서 시청자들 반응은커녕 동료들의 반응도 아직 모른다."

- 이 다큐멘터리를 자평한다면.
"정치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정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청자들에 대한 서비스라 생각한다. 이걸 보고 이 주제에 흥미를 느껴 전문적인 관심까지 두게 된다면 좋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성상 빠진 부분들이 안타깝다. 정말 많이 촬영했는데…. 러시아 문화·사회 문제 쪽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시간 제약 때문에, 그리고 현실의 제약 때문에 완성본에 결국 포함하지 못한 것들이 안타깝다."

- 이 작품을 기획하며 세웠던 목표나 의도는 무엇인가?
"이전에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다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러시아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제까지 미국 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다. 우리의 분단 체제를 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0~50대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그들은 젊은 시절 러시아 혁명에 대해 많이 듣고 읽었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책으로만 읽었던 트로츠키가 이렇게 생겼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 이런 사건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40~50대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웃음). 실제로 <러시아 혁명>을 40~50대들이 많이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재미'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역사는 재미있는데, 이제 '재미'가 뭔지도 헷갈리지 않은가.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고자 '장르 실험'을 했다. 러시아 현지 배우들을 출연시켜 역사를 재연했다. 역사를 좀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것이 이제까지 전 세계적으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실험적 형식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현지 배우들을 고용해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역사상 처음이다."

- <러시아 혁명>을 만들기 전과 만든 후, 러시아 혁명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게 된 지점이 있는지.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 다양한 가치는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아직도 효용성이 있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은 몰락했지만 사회주의 이상이나 평등에 대한 이상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러시아 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지고지선의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지금 러시아에서 아직도 구소련 체제를 그리워하고 그 때의 좋은 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들이 반동적이어서가 아니다."

- 매편 폭넓은 학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러시아·영국·미국 학자들 수십 명이 등장했는데.
"섭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연락을 취하면 그쪽에서 놀라고는 했다. '왜 한국에서 러시아 혁명을?'이라며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나는 항상 설명했다. '우리는 아직 분단국이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금방 이해하고 인터뷰에 응했다.

방송국 게시판에 보면 '왜 러시아 혁명을 다루면서 러시아 학자들보다 영미 학자들이 더 많으냐'고 불평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이유는 이렇다. 러시아는 소련 체제를 거치며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관변학풍이 심했다. 그에 비하면 영미 학계에서는 지난 몇십 년간 광범위하게 축적된 객관적, 역사적 학문 전통이 있다. 대가도 그쪽에 분포되어 있고. 그들은 우리와 인터뷰를 아주 즐겼다. 소련이 붕괴한 후 영미권에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 요즘 침체해 있었던 터라 우리와 인터뷰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 그 학자들을 전부 다 직접 만났나?
"그렇다. 미국 학자들의 경우는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학자들을 만나느라 미국을 횡단했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 보스턴으로 나왔다. 미국 학자들은 쉬웠다. 연락만 되면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쉽게 인터뷰에 응했다. 도리어 러시아 학자들 중에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미국 학자들은 인터뷰를 즐기면서 진행했다. 그들은 말을 시키면 자기가 즐거워서 마구 말을 하는데 보고 있으면 흥이 날 정도였다."



- 박헌영의 딸이 구소련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떻게 찾아냈나?
"사실 박헌영 딸에 대한 소식은 몇 년 전 국내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래서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외에도 스탈린 딸을 만나 인터뷰를 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연락처까지 알아내 다섯 번인가 부탁을 했지만,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됐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우리와 인터뷰하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 총5부 중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평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4부가 가장 인상적이다. 관심도 가장 많았고. 4부는 러시아 혁명 후 진행된 소련의 산업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국가와 노동자 간의 갈등은 그치지 않았다.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다."

- 차기 작품도 기대된다. 어떤 걸 구상하는지.
"구소련과 한국 전쟁을 묶어서 다뤄보고 싶다. 가제는 '스탈린과 한국전쟁: 1945-1953'. 러시아에서 한국 전쟁 관련 비밀문서들이 요즘 많이 공개되고 있다. 이걸 바탕으로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청자 요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나는 요구한다!). MBC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그것이 사회 공익에 얼마나 기여 하는가도 보지만 시청률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은 시청자가 원하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드라마 왕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라마가 강세고 세계사 시리즈 같은 교양물은 점점 위축되고 약화하여가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윤새라-조경국 기자)

06. 12. 29.





 

 

P.S. 인터뷰의 마지막 대목이 흥미를 끈다. '스탈린과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것. 시청자의 요구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요구해줄 수 있다. 러시아쪽 자료들이 다수 공개되고 있는 걸로 알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된다(재작년 러시아 체류시에는 러시아 TV에서 제작한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를 잠시 볼 수 있었다. 김일성 정권의 성립과정에 러시아가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를 생존하고 있는 고위 관계자들 인터뷰와 함께 자세히 보여주었었다).

한편, 러시아 혁명에 관한 자료/도서들은 얼마간 나와 있다. 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사>(풀무질, 2003-4)를 아직 갖고 있지 않은데, 그게 좀 아쉽군. 거기에다 따져보니까 러시아쪽 시각의 혁명사 소개는 빈곤한 듯하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러시아혁명과 스탈린시대에 대한 관련서들은 러시아나 영미권에서 차고 넘친다. 가장 정평있는 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권 저작으론 <공산주의>(을유문화사, 2006)의 저자인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 교수의 <러시아 혁명사> 같은 책들이 기본서로 번역/소개되면 좋겠다('간략한 역사'라고는 하지만 430쪽이 넘는 분량이다). 왜냐고? 우린 아직 분단국이니까...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렌티우스 2006-12-29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강력히 요청합니다. 이거 MBC에 '스탈린과 한국전쟁' 다큐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라도 해야 할까요... 여튼 정말 간만에 보는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가 만든' 좋은 다큐인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하네요...^^

기인 2006-12-29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퍼갑니다.^^ 이 다큐 다운받아서 봐야겠네요.

로쟈 2006-12-3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내년엔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알라딘의 힘'을 보여줘야 할까요.^^

sb 2006-12-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MBC에 [다시보기] 서비스가 있습니다. 저도 제때 보지 못해서 이제서야 봤지요. 한번 정리하려던 참에 반가운 글입니다.

로쟈 2006-12-3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료' 다시보기인가요?^^

aporia 2006-12-3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글을 보고, 왠일이야 하며 우선 1편 다운해서 봤습니다. 소장할 가치도 있을듯해서...

유료이기 하지만  "http://www.wedisk.co.kr/" 참고하시길^^


sb 2006-12-31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C의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유료서비스이지요. 한편 보는데 500원입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world/russia/index.html"

aporia 2006-12-3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디스크 광고같아 좀- 거시기하네요. 용량이 큰 2/3편(70케시)을 제외하고는 각 40케시네요. 넘 ~ 알찬 정보죠.ㅋ

로쟈 2006-12-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아무려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거니까 다행입니다...
 

'이시대 최고의 미술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이주헌씨가  러시아 관련서를 쓰고 있다는 소식은 지난 8월에 접한 바 있다: "요즘에는 러시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집풀중이다. 트레챠코프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미술관들과 그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이 조만간 이씨의 책목록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한겨레' 08. 11) 그 '예정'이 이제 '완료형'이 되었다. 그의 책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학고재, 2006)이 출간된 것이다. 한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속으로 '올해의 책들'을 꼽고 있던 차였는데, 때마침 러시아 관련서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짐작에 이 책은 러시아 미술에 관한 가장 자세하고 친절한 '매뉴얼'이 될 것이다(개인적으론 재작년에 둘러본 러시아 미술관들을 다시 되새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일단 발빠른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2. 22) 러시아미술은 ‘혁명문학’이다

러시아는 문학의 나라, 음악의 나라, 혁명의 나라다. 1917년 일어난 10월 혁명은 20세기 역사의 향배를 결정지었다. 알렉산드르 푸슈킨에서부터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레프 톨스토이를 거쳐 막심 고리키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학은 세계 문학의 젖줄이고 우리에게도 친숙하기 그지없다. 페테르 차이코프스키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는 우리 음악처럼 가깝다. 심지어는 스탈린 시대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도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러시아 미술은 어떤가? 바실리 칸딘스키와 마르크 샤갈이 있지만 이들은 서유럽에서 활동한 화가들이다. 러시아 땅에서 러시아 민중과 호흡을 함께한 러시아 화가들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리가 알지 못할 뿐 거대한 미술의 보고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가 쓴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은 동토 깊숙이 숨어 한번도 전모를 내보이지 않던 러시아 미술을 지면에 초대해 그들의 장대한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들게 해주는 책이다.(*아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미술관'. 동상은 시인 푸슈킨의 동상이다)

여러 권의 전작에서 이미 미술 안내자로서 역량을 보여준 바 있는 지은이는 러시아의 정치·문화 쌍두마차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독자의 시선을 끌고 들어간다. 두 도시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 에르미타슈(*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슈킨 박물관으로 하여 미술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고도 남을 만한 곳이다. 에르미타슈와 푸슈킨 박물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자>에서부터 앙리 마티스의 <춤>에 이르기까지 서구 미술사의 걸작 가운데 상당수를 품고 있다. 러시아 회화만이 지닌 고유한 정취를 느끼려면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지은이의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도 이 두 미술관이다.

지은이의 설명을 빌리면 러시아 회화는 문학적 특성이 강하다. 그림의 형식 못지않게 내용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뜻이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이야기가 화면 전체를 가로지른다. 러시아 회화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파가 1871년 결성돼 50년이나 지속된 ‘이동파’다. 이동파라는 이름은 참여 화가들이 수도를 떠나 지방 도시를 돌며 전시회를 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변방의 민중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려 한 이 화가들의 노력은 현실에 눈을 돌려 사회를 변혁하려는 의지의 소산이기도 했다. 이들의 의지는 역사화라는 장르에서 탐스런 결실을 얻었는데, 그 미적 성취를 보여주는 한 경우가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의 작품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1887)다.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는 것은 17세기 러시아 정교의 대분열이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교권을 확장하려 러시아 교회 전례를 뒤바꾸자 전통을 중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반기를 들었다. 교권 확장은 러시아 정교의 우두머리인 차르의 중압집권적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반대파에는 차르의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귀족 계급이 포함돼 있었다. 차르 중심의 신교도와 귀족 중심의 구교도는 끝까지 맞섰다. 차르는 결국 반대파를 파문하고 주동자를 화형에 처했다. 2만명의 구교도가 분신자살로 격렬히 저항했다. 구교도의 반차르 저항 정신은 이후 수백년 동안 도도히 흐를 반역의 저류가 됐다.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이 반대파의 저항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모로조바는 차르에 맞서다 수도원에 유폐돼 삶을 마감한 역사적 인물이다. “화가는 이 순교자를 세상의 어떤 징벌로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하늘을 향해 치켜뜬 그의 눈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쇠사슬에 묶인 이 귀족 여성 주위에서 민중들이 눈물을 흘린다. 구교도와 민중이 내적으로 결속돼 있음을 보여주는 이 역사화는 당대 현실을 향한 정치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수리코프와 함께 이동파를 대표했던 화가 일랴 레핀(1844~1930)은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역사화 속에 담았다. 그의 작품 <어느 선동가의 체포>(1880~1889)는 1877년 열린 ‘193인 재판’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귀족층·지주층의 자식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인민 봉기와 차르 전복을 기도했던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 운동은 러시아 혁명사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1970년대에 정점에 이른 이들의 활동은 대대적 체포와 ‘193인 재판’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이후 혁명운동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레핀의 그림은 이 시기에 체포된 젊은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상기된 얼굴의 운동가는 결코 비굴하게 선처를 호소하거나 절망하여 좌절할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상 언젠가 이 수고와 희생의 결실을 보릭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열정과 믿음으로 부릅 뜬 눈은 200년 전 차르에 대항했던 구교도 여성 귀족의 눈과 겹친다. 그렇게 러시아 미술에는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흐른다.(고명섭 기자)

06. 12. 22.

 

 

 

 

P.S. 러시아 미술사에 관한 참고자료로는 조토프의 <러시아미술사>(동문선, 1996)가 있다. '그림책'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그냥 소장도서로 분류해놓고 있다. 현대미술을 전반적으로 다룬 책으론 캐밀러 그레이의 <위대한 실험: 러시아미술 1963-1922>(시공사, 2001)이 유익하며 유일하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을 읽으면서 참조할 만하다. 원서는 1962년에 나왔으며 영어로 된 저작으론 '고전'에 속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2-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미술은 거의 처음 접합니다.
오.. 아름답군요.
멋진 러시아 그림을 감상하게 해주신
로쟈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추천!!


로쟈 2006-12-2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감사받을 일은 아니구요, 저자의 노고와 발품이 고마운 것이지요...

린(隣) 2006-12-2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겨레에서 본 기산데 또 깔끔하게 퍼갈 수 있게 올려놓으셨군요.^^
고전문학전집이 있는 집이 다 그렇듯이 제게 문학은 톨스토이나 도스토에프스키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고교시절 고리키의 영향도 지대했지만, 재수하고 나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며 조소와 부끄러움이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대로부터 이제 나는 너무나 멀어져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지요.
러시아 음악은 너무 좋아하는데 레핀 말곤 러시아 미술에 대핸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미국이 아님 유럽에 너무 경도돼 있어요.
뜬금없지만, 로쟈님 같은 분이 들뢰즈가 자주 언급하는 '체스토프' 같은 이의 책을 번역하심 좋으련만.. 그냥 해 본 소린 거 아시죠?

로쟈 2006-12-2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자꾸 다운돼서 하나 교체했습니다. 들뢰즈가 자주 언급하는 철학자는 '셰스토프'이고 국내에 번역서가 있습니다('비극의 철학' 등). 제가 갖고 있는 선집도 두 권 분량 정도이고, 물론 어디서 지원해준다면 번역을 궁리해볼 수도 있습니다.^^

린(隣) 2006-12-2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발음 여쭤볼까 했는데, 역시 틀렸군요. 번역서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하고, 번역도 생각이 있다시니 반갑군요. 명성을 더 쌓아서 지원받길 기다리겠슴다.^^

로쟈 2006-12-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지적한 적이 있는데, <차이와 반복> 국역본에 잘못 표기돼 있습니다. 그게 불어로는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로선, 보다 적합한 다른 분이 먼저 번역해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최근에 읽은 러시아 관련 외신들 대부분이 부정적이거나 불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가 자원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제국'의 면모를 되찾아가는 이면에서 푸틴을 권력의 정점으로 한 구 KGB 파벌의 득세와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한 관료-과두부유층 집단(올리가르히)의 전횡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한 친구의 말을 빌면,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절을 포함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귀족사회'인 모양이다.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로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은 동시대 러시아의 여러 징후들 속에서도 감지된다. 모스크바의 오스토젠카 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새로운(?) '계급전쟁'(이미 '계급투쟁'이 아니다!)은 한갓 에피소드일까(우리의 '철거민 전쟁'과도 무관하지 않은 에피소드이다. 차이라면 러시아에서는 법적인 권리조차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외신을 요약하고 있는 국내기사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의 원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12. 20) 러시아 모스크바 원주민-신흥갑부 ‘계급전쟁’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인근 오스토젠카구에는 ‘공산당 선언’을 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동상이 서 있다. 요즘 이 동상 주변으로 이곳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시당국이 부자들을 위해 재개발을 추진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들이 이주 보따리를 싸야 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15년전만 해도 공산주의의 중심이었던 모스크바의 도심에서 원주민과 신흥 부자들 사이에 새로운 계급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 서쪽지역 오스토젠카구 히코프로 3가에 사는 주민들은 지난 9월부터 엥겔스 동상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5월 시 당국이 부유층들을 위한 최고급 주거지역을 짓기 위해 낡은 아파트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당국이 모스크바 남쪽 외곽 부토보에 이주용 아파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 반발을 무마하지 못했다. 부토보가 모스크바에서 지하철로 1시간이나 떨어진 데다 1930년대 말 스탈린 시절 1천만명의 유대인들과 한인들이 학살돼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오스토젠카는 모스크바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주거지였다. 지금 이곳에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떼돈을 번 신흥 갑부들의 자금과 낡고 우중충한 건물을 대신해 최신식 건물을 들이겠다는 시 당국의 의지가 맞물려 수백만달러짜리 펜트하우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오스토젠카 외에도 트베르스카야 등 도시 서쪽지역에는 ‘골든 마일’ 재개발 사업이 진행중이다.



신흥 갑부들을 위한 아파트는 철통 보안과 각종 편의시설을 자랑한다. 아파트값은 ㎡당 1만달러(평당 약 3천만원)가 넘어서는데도 없어서 못팔 정도다. 부동산업자인 게오르기 자구로프는 “돈과 권력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이 지역 부동산을 매입하고 있다”며 “신흥 부자들에게 1백만~2백만달러는 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부자들에게 ‘사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에 절대 우위를 차지한다.

재개발 붐은 러시아 부동산업자들에게 큰 돈벌이 기회가 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 RGI 인터내셔널은 이달초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지난 10월 RGI인터내셔널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오스토젠카에 사는 주민들은 당국과 개발업자들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 경제신문 코메르산트가 연방 반독점 감독원이 킬코프 페레록 3가 개발 사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폭로했지만 개발은 중단되지 않았다. 모스크바시 관계자는 오스토젠카의 항의는 ‘지역 이기주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모스크바 소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가고 있으며 주민들과 개발업자·시 당국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각종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유명 성형외과 의사가 청부살인업자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19일 이같은 오스토젠카의 분위기를 안톤 체호프의 소설 ‘벚꽃동산’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소설이 아니라 드라마이다. 원기사에도 '소설'이란 언급은 없다.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소설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이다. 기자들이 점점 용감해지고 있다). 이 소설은 신분제 파괴 이후 제정 러시아가 맞은 혼란한 사회상을 그렸다. 사회적 혼란을 겪는 오늘의 러시아에 부동산 문제가 계급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김정선 기자) *아래는 모스크바의 유명한 구세주 성당과 모스크바강을 끼고 있는 오스토젠카 구역의 야경.

The gold domes of Christ the Savior Cathedral were built in the 19th century, destroyed by Stalin and rebuilt in the 1990s. ( Misha Japaridz/The Associated Press)

A class struggle on Moscow's Golden Mile

Locals fight a luxury housing project fueled by oil money

By Sophia Kishkovsky

MOSCOW: The statue of Friedrich Engels that graces one of central Moscow's most prestigious neighborhoods has not been of much use to any but pigeons in recent years. But Engels, co-author of "The Communist Manifesto," was a handy rallying point not long ago for some residents of that neighborhood, Ostozhenka, who were protesting its transformation into a hotbed of luxury housing thanks to an oil-fueled real estate boom.

"Leave Us Alone," read banners unfurled by the protesters in September. That cry is also the name of their movement, spurred by the latest luxury housing project, slated for the site of an apartment building in which some of them still live, at Khilkov Pereulok 3.

The gold domes of Christ the Savior Cathedral, built in the 19th century, destroyed by Stalin and rebuilt in the 1990s just as the district began to take off, overlook the area. Ostozhenka, once home to many artists and intellectuals, is now known in the parlance of real estate agents and their wealthy clients as the Golden Mile. Its winding lanes are now home to modern multimillion-dollar penthouses, Ferraris, gourmet restaurants and bizarre crimes: Last year a celebrity plastic surgeon was stabbed by roller skaters, and later died, in what appeared to be a contract killing.

The neighborhood's rise is only one of many morality tales of money, power and real estate now playing out across post-Soviet Russia. In recent months, incidents included an elderly Moscow couple who had been evicted from their home and were camping in the yard of their old apartment building, which was slated for demolition to make way for new construction, and villagers being pushed from their homes on the edge of Moscow to make way for high-rises.

In both cases, residents were infuriated by orders to move to apartments in Yuzhnoye Butovo, a district that is near a former Stalinist killing field and an hour from central Moscow by subway. They are still fighting the orders. The fight continues in Ostozhenka as well. "The Golden Mile is the most brilliant business project in post-Soviet Russia," Denis Litoshik said in November at one of the neighborhood's upscale coffee shops.

Litoshik, 27, has a personal stake in its transformation: He lived, until recently, at Khilkov Pereulok 3, and he is a leader of Leave Us Alone. As a journalist for the business newspaper Vedomosti, he is awed by what he says is a reported price tag on apartments going up next door to his former home: $33,000 a square meter, or $3,000 a square foot. "They're not selling drugs, but they're making much more money," he said of developers who have converged on Ostozhenka. But a few buildings, some ramshackle, some solidly middle class, hinder a complete makeover.

One of those is Khilkov Pereulok 3. Litoshik lived there with his wife and their baby until the city authorities issued a decree in May declaring the building subject to demolition to make way for new construction, even though the 19th-century building was overhauled in the 1960s and renovated again in the past few years.

Litoshik said he and other residents had been pressured by officials and developers to leave. Fearing that the building could be burned down, as sometimes happens across Russia when new construction has been slated, he moved away and began to fight. This month, the business daily Kommersant reported that the federal anti- monopoly watchdog had deemed the plans for Khilkov Pereulok 3 illegal, but that ruling could yet be challenged and may not halt the development. Sergei Tsoi, press secretary for the mayor, Yuri Luzhkov, was quoted by Kommersant earlier this year as calling the Ostozhenka protesters' actions "egoism."

Ostozhenka stood virtually untouched until the late 1990s, frozen in time by a Soviet decree that called for the construction of a vast Lenin-topped Palace of Soviets in place of the razed Christ the Savior Cathedral. It was never built, but the plan was never revoked; a swimming pool was instead built on the site. Ostozhenka figured in Mikhail Bulgakov's surrealist novel, "The Master and Margarita," which gave the Russian language its ultimate real estate catch phrase: "The housing problem has corrupted them."

Bulgakov depicted the early Soviet years, when aristocratic abodes were forcibly transformed into communal apartments for the masses, with shared bathrooms, kitchens and secrets. Now new money is squeezing out the remaining kommunalki, as the communal apartments were called.

Aleksandr Khosenkov, 56, lives in a friend's communal flat. "I live here, but all the streets have been renamed — I can't find the houses," he said. "It doesn't matter if a person has a Mercedes. Their soul should matter, not their car."

Georgy Dzagurov, general director of Penny Lane Realty, offers properties in Ostozhenka. "Practically anyone who is powerful has bought there," he said, adding that "$1 million or $2 million is nothing for them."

In October, Morgan Stanley announced its purchase of a stake in RGI International, owned by Boris Kuzinez, a developer whose ultramodern buildings are credited with transforming Ostozhenka into Billionaires' Row. RGI's Web site, posted in time for its London Stock Exchange initial public offering earlier this month, lists Khilkov 3 among its projects.

While describing his clients only as "mostly businessmen, bankers, in oil and metals," Kuzinez acknowledged an oligarch's need for the right milieu. "It's hard for oligarchs to live in a regular building," he said.

Maksim, a banker, though not an oligarch, declined to give his last name but agreed to show his sleek two-bedroom apartment in an a Kuzinez development. "There are guards everywhere," he said. "Filtered water, central air-conditioning, good parking. The main thing is it's homogenous. This is a plus."

Litoshik, wearied by battle, is accepting a buyout of $800,000 for his apartment, or more than $10,000 per square meter. A victory, he said, because in Russia a fair price is almost miraculous. A loss, he said, because "we never wanted to sell our apartment."

It is a story that has been familiar to generations of Russians, both before and after the Soviet era. "Khilkov 3 is 'The Cherry Orchard 2,'" Litoshik said, referring to Chekhov's play about — what else? — money, real estate and the squeezing out of one class by another.(06. 12. 18)

06. 12. 2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