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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 최고의 미술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이주헌씨가  러시아 관련서를 쓰고 있다는 소식은 지난 8월에 접한 바 있다: "요즘에는 러시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집풀중이다. 트레챠코프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미술관들과 그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이 조만간 이씨의 책목록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한겨레' 08. 11) 그 '예정'이 이제 '완료형'이 되었다. 그의 책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학고재, 2006)이 출간된 것이다. 한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속으로 '올해의 책들'을 꼽고 있던 차였는데, 때마침 러시아 관련서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짐작에 이 책은 러시아 미술에 관한 가장 자세하고 친절한 '매뉴얼'이 될 것이다(개인적으론 재작년에 둘러본 러시아 미술관들을 다시 되새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일단 발빠른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2. 22) 러시아미술은 ‘혁명문학’이다

러시아는 문학의 나라, 음악의 나라, 혁명의 나라다. 1917년 일어난 10월 혁명은 20세기 역사의 향배를 결정지었다. 알렉산드르 푸슈킨에서부터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레프 톨스토이를 거쳐 막심 고리키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학은 세계 문학의 젖줄이고 우리에게도 친숙하기 그지없다. 페테르 차이코프스키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는 우리 음악처럼 가깝다. 심지어는 스탈린 시대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도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러시아 미술은 어떤가? 바실리 칸딘스키와 마르크 샤갈이 있지만 이들은 서유럽에서 활동한 화가들이다. 러시아 땅에서 러시아 민중과 호흡을 함께한 러시아 화가들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리가 알지 못할 뿐 거대한 미술의 보고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가 쓴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은 동토 깊숙이 숨어 한번도 전모를 내보이지 않던 러시아 미술을 지면에 초대해 그들의 장대한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들게 해주는 책이다.(*아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미술관'. 동상은 시인 푸슈킨의 동상이다)

여러 권의 전작에서 이미 미술 안내자로서 역량을 보여준 바 있는 지은이는 러시아의 정치·문화 쌍두마차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독자의 시선을 끌고 들어간다. 두 도시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 에르미타슈(*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슈킨 박물관으로 하여 미술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고도 남을 만한 곳이다. 에르미타슈와 푸슈킨 박물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자>에서부터 앙리 마티스의 <춤>에 이르기까지 서구 미술사의 걸작 가운데 상당수를 품고 있다. 러시아 회화만이 지닌 고유한 정취를 느끼려면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지은이의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도 이 두 미술관이다.

지은이의 설명을 빌리면 러시아 회화는 문학적 특성이 강하다. 그림의 형식 못지않게 내용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뜻이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이야기가 화면 전체를 가로지른다. 러시아 회화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파가 1871년 결성돼 50년이나 지속된 ‘이동파’다. 이동파라는 이름은 참여 화가들이 수도를 떠나 지방 도시를 돌며 전시회를 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변방의 민중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려 한 이 화가들의 노력은 현실에 눈을 돌려 사회를 변혁하려는 의지의 소산이기도 했다. 이들의 의지는 역사화라는 장르에서 탐스런 결실을 얻었는데, 그 미적 성취를 보여주는 한 경우가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의 작품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1887)다.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는 것은 17세기 러시아 정교의 대분열이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교권을 확장하려 러시아 교회 전례를 뒤바꾸자 전통을 중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반기를 들었다. 교권 확장은 러시아 정교의 우두머리인 차르의 중압집권적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반대파에는 차르의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귀족 계급이 포함돼 있었다. 차르 중심의 신교도와 귀족 중심의 구교도는 끝까지 맞섰다. 차르는 결국 반대파를 파문하고 주동자를 화형에 처했다. 2만명의 구교도가 분신자살로 격렬히 저항했다. 구교도의 반차르 저항 정신은 이후 수백년 동안 도도히 흐를 반역의 저류가 됐다.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는 이 반대파의 저항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모로조바는 차르에 맞서다 수도원에 유폐돼 삶을 마감한 역사적 인물이다. “화가는 이 순교자를 세상의 어떤 징벌로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하늘을 향해 치켜뜬 그의 눈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쇠사슬에 묶인 이 귀족 여성 주위에서 민중들이 눈물을 흘린다. 구교도와 민중이 내적으로 결속돼 있음을 보여주는 이 역사화는 당대 현실을 향한 정치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수리코프와 함께 이동파를 대표했던 화가 일랴 레핀(1844~1930)은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역사화 속에 담았다. 그의 작품 <어느 선동가의 체포>(1880~1889)는 1877년 열린 ‘193인 재판’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귀족층·지주층의 자식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인민 봉기와 차르 전복을 기도했던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 운동은 러시아 혁명사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1970년대에 정점에 이른 이들의 활동은 대대적 체포와 ‘193인 재판’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이후 혁명운동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레핀의 그림은 이 시기에 체포된 젊은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상기된 얼굴의 운동가는 결코 비굴하게 선처를 호소하거나 절망하여 좌절할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상 언젠가 이 수고와 희생의 결실을 보릭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열정과 믿음으로 부릅 뜬 눈은 200년 전 차르에 대항했던 구교도 여성 귀족의 눈과 겹친다. 그렇게 러시아 미술에는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흐른다.(고명섭 기자)

06. 12. 22.

 

 

 

 

P.S. 러시아 미술사에 관한 참고자료로는 조토프의 <러시아미술사>(동문선, 1996)가 있다. '그림책'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그냥 소장도서로 분류해놓고 있다. 현대미술을 전반적으로 다룬 책으론 캐밀러 그레이의 <위대한 실험: 러시아미술 1963-1922>(시공사, 2001)이 유익하며 유일하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을 읽으면서 참조할 만하다. 원서는 1962년에 나왔으며 영어로 된 저작으론 '고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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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미술은 거의 처음 접합니다.
오.. 아름답군요.
멋진 러시아 그림을 감상하게 해주신
로쟈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추천!!


로쟈 2006-12-2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감사받을 일은 아니구요, 저자의 노고와 발품이 고마운 것이지요...

린(隣) 2006-12-2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겨레에서 본 기산데 또 깔끔하게 퍼갈 수 있게 올려놓으셨군요.^^
고전문학전집이 있는 집이 다 그렇듯이 제게 문학은 톨스토이나 도스토에프스키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고교시절 고리키의 영향도 지대했지만, 재수하고 나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며 조소와 부끄러움이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대로부터 이제 나는 너무나 멀어져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지요.
러시아 음악은 너무 좋아하는데 레핀 말곤 러시아 미술에 대핸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미국이 아님 유럽에 너무 경도돼 있어요.
뜬금없지만, 로쟈님 같은 분이 들뢰즈가 자주 언급하는 '체스토프' 같은 이의 책을 번역하심 좋으련만.. 그냥 해 본 소린 거 아시죠?

로쟈 2006-12-2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자꾸 다운돼서 하나 교체했습니다. 들뢰즈가 자주 언급하는 철학자는 '셰스토프'이고 국내에 번역서가 있습니다('비극의 철학' 등). 제가 갖고 있는 선집도 두 권 분량 정도이고, 물론 어디서 지원해준다면 번역을 궁리해볼 수도 있습니다.^^

린(隣) 2006-12-2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발음 여쭤볼까 했는데, 역시 틀렸군요. 번역서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하고, 번역도 생각이 있다시니 반갑군요. 명성을 더 쌓아서 지원받길 기다리겠슴다.^^

로쟈 2006-12-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지적한 적이 있는데, <차이와 반복> 국역본에 잘못 표기돼 있습니다. 그게 불어로는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로선, 보다 적합한 다른 분이 먼저 번역해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최근에 읽은 러시아 관련 외신들 대부분이 부정적이거나 불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가 자원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제국'의 면모를 되찾아가는 이면에서 푸틴을 권력의 정점으로 한 구 KGB 파벌의 득세와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한 관료-과두부유층 집단(올리가르히)의 전횡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한 친구의 말을 빌면,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절을 포함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귀족사회'인 모양이다.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로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은 동시대 러시아의 여러 징후들 속에서도 감지된다. 모스크바의 오스토젠카 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새로운(?) '계급전쟁'(이미 '계급투쟁'이 아니다!)은 한갓 에피소드일까(우리의 '철거민 전쟁'과도 무관하지 않은 에피소드이다. 차이라면 러시아에서는 법적인 권리조차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외신을 요약하고 있는 국내기사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의 원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12. 20) 러시아 모스크바 원주민-신흥갑부 ‘계급전쟁’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인근 오스토젠카구에는 ‘공산당 선언’을 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동상이 서 있다. 요즘 이 동상 주변으로 이곳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시당국이 부자들을 위해 재개발을 추진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들이 이주 보따리를 싸야 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15년전만 해도 공산주의의 중심이었던 모스크바의 도심에서 원주민과 신흥 부자들 사이에 새로운 계급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 서쪽지역 오스토젠카구 히코프로 3가에 사는 주민들은 지난 9월부터 엥겔스 동상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5월 시 당국이 부유층들을 위한 최고급 주거지역을 짓기 위해 낡은 아파트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당국이 모스크바 남쪽 외곽 부토보에 이주용 아파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 반발을 무마하지 못했다. 부토보가 모스크바에서 지하철로 1시간이나 떨어진 데다 1930년대 말 스탈린 시절 1천만명의 유대인들과 한인들이 학살돼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오스토젠카는 모스크바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으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주거지였다. 지금 이곳에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떼돈을 번 신흥 갑부들의 자금과 낡고 우중충한 건물을 대신해 최신식 건물을 들이겠다는 시 당국의 의지가 맞물려 수백만달러짜리 펜트하우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오스토젠카 외에도 트베르스카야 등 도시 서쪽지역에는 ‘골든 마일’ 재개발 사업이 진행중이다.



신흥 갑부들을 위한 아파트는 철통 보안과 각종 편의시설을 자랑한다. 아파트값은 ㎡당 1만달러(평당 약 3천만원)가 넘어서는데도 없어서 못팔 정도다. 부동산업자인 게오르기 자구로프는 “돈과 권력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이 지역 부동산을 매입하고 있다”며 “신흥 부자들에게 1백만~2백만달러는 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부자들에게 ‘사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에 절대 우위를 차지한다.

재개발 붐은 러시아 부동산업자들에게 큰 돈벌이 기회가 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 RGI 인터내셔널은 이달초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지난 10월 RGI인터내셔널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오스토젠카에 사는 주민들은 당국과 개발업자들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 경제신문 코메르산트가 연방 반독점 감독원이 킬코프 페레록 3가 개발 사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폭로했지만 개발은 중단되지 않았다. 모스크바시 관계자는 오스토젠카의 항의는 ‘지역 이기주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모스크바 소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가고 있으며 주민들과 개발업자·시 당국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각종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유명 성형외과 의사가 청부살인업자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19일 이같은 오스토젠카의 분위기를 안톤 체호프의 소설 ‘벚꽃동산’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소설이 아니라 드라마이다. 원기사에도 '소설'이란 언급은 없다.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소설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이다. 기자들이 점점 용감해지고 있다). 이 소설은 신분제 파괴 이후 제정 러시아가 맞은 혼란한 사회상을 그렸다. 사회적 혼란을 겪는 오늘의 러시아에 부동산 문제가 계급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김정선 기자) *아래는 모스크바의 유명한 구세주 성당과 모스크바강을 끼고 있는 오스토젠카 구역의 야경.

The gold domes of Christ the Savior Cathedral were built in the 19th century, destroyed by Stalin and rebuilt in the 1990s. ( Misha Japaridz/The Associated Press)

A class struggle on Moscow's Golden Mile

Locals fight a luxury housing project fueled by oil money

By Sophia Kishkovsky

MOSCOW: The statue of Friedrich Engels that graces one of central Moscow's most prestigious neighborhoods has not been of much use to any but pigeons in recent years. But Engels, co-author of "The Communist Manifesto," was a handy rallying point not long ago for some residents of that neighborhood, Ostozhenka, who were protesting its transformation into a hotbed of luxury housing thanks to an oil-fueled real estate boom.

"Leave Us Alone," read banners unfurled by the protesters in September. That cry is also the name of their movement, spurred by the latest luxury housing project, slated for the site of an apartment building in which some of them still live, at Khilkov Pereulok 3.

The gold domes of Christ the Savior Cathedral, built in the 19th century, destroyed by Stalin and rebuilt in the 1990s just as the district began to take off, overlook the area. Ostozhenka, once home to many artists and intellectuals, is now known in the parlance of real estate agents and their wealthy clients as the Golden Mile. Its winding lanes are now home to modern multimillion-dollar penthouses, Ferraris, gourmet restaurants and bizarre crimes: Last year a celebrity plastic surgeon was stabbed by roller skaters, and later died, in what appeared to be a contract killing.

The neighborhood's rise is only one of many morality tales of money, power and real estate now playing out across post-Soviet Russia. In recent months, incidents included an elderly Moscow couple who had been evicted from their home and were camping in the yard of their old apartment building, which was slated for demolition to make way for new construction, and villagers being pushed from their homes on the edge of Moscow to make way for high-rises.

In both cases, residents were infuriated by orders to move to apartments in Yuzhnoye Butovo, a district that is near a former Stalinist killing field and an hour from central Moscow by subway. They are still fighting the orders. The fight continues in Ostozhenka as well. "The Golden Mile is the most brilliant business project in post-Soviet Russia," Denis Litoshik said in November at one of the neighborhood's upscale coffee shops.

Litoshik, 27, has a personal stake in its transformation: He lived, until recently, at Khilkov Pereulok 3, and he is a leader of Leave Us Alone. As a journalist for the business newspaper Vedomosti, he is awed by what he says is a reported price tag on apartments going up next door to his former home: $33,000 a square meter, or $3,000 a square foot. "They're not selling drugs, but they're making much more money," he said of developers who have converged on Ostozhenka. But a few buildings, some ramshackle, some solidly middle class, hinder a complete makeover.

One of those is Khilkov Pereulok 3. Litoshik lived there with his wife and their baby until the city authorities issued a decree in May declaring the building subject to demolition to make way for new construction, even though the 19th-century building was overhauled in the 1960s and renovated again in the past few years.

Litoshik said he and other residents had been pressured by officials and developers to leave. Fearing that the building could be burned down, as sometimes happens across Russia when new construction has been slated, he moved away and began to fight. This month, the business daily Kommersant reported that the federal anti- monopoly watchdog had deemed the plans for Khilkov Pereulok 3 illegal, but that ruling could yet be challenged and may not halt the development. Sergei Tsoi, press secretary for the mayor, Yuri Luzhkov, was quoted by Kommersant earlier this year as calling the Ostozhenka protesters' actions "egoism."

Ostozhenka stood virtually untouched until the late 1990s, frozen in time by a Soviet decree that called for the construction of a vast Lenin-topped Palace of Soviets in place of the razed Christ the Savior Cathedral. It was never built, but the plan was never revoked; a swimming pool was instead built on the site. Ostozhenka figured in Mikhail Bulgakov's surrealist novel, "The Master and Margarita," which gave the Russian language its ultimate real estate catch phrase: "The housing problem has corrupted them."

Bulgakov depicted the early Soviet years, when aristocratic abodes were forcibly transformed into communal apartments for the masses, with shared bathrooms, kitchens and secrets. Now new money is squeezing out the remaining kommunalki, as the communal apartments were called.

Aleksandr Khosenkov, 56, lives in a friend's communal flat. "I live here, but all the streets have been renamed — I can't find the houses," he said. "It doesn't matter if a person has a Mercedes. Their soul should matter, not their car."

Georgy Dzagurov, general director of Penny Lane Realty, offers properties in Ostozhenka. "Practically anyone who is powerful has bought there," he said, adding that "$1 million or $2 million is nothing for them."

In October, Morgan Stanley announced its purchase of a stake in RGI International, owned by Boris Kuzinez, a developer whose ultramodern buildings are credited with transforming Ostozhenka into Billionaires' Row. RGI's Web site, posted in time for its London Stock Exchange initial public offering earlier this month, lists Khilkov 3 among its projects.

While describing his clients only as "mostly businessmen, bankers, in oil and metals," Kuzinez acknowledged an oligarch's need for the right milieu. "It's hard for oligarchs to live in a regular building," he said.

Maksim, a banker, though not an oligarch, declined to give his last name but agreed to show his sleek two-bedroom apartment in an a Kuzinez development. "There are guards everywhere," he said. "Filtered water, central air-conditioning, good parking. The main thing is it's homogenous. This is a plus."

Litoshik, wearied by battle, is accepting a buyout of $800,000 for his apartment, or more than $10,000 per square meter. A victory, he said, because in Russia a fair price is almost miraculous. A loss, he said, because "we never wanted to sell our apartment."

It is a story that has been familiar to generations of Russians, both before and after the Soviet era. "Khilkov 3 is 'The Cherry Orchard 2,'" Litoshik said, referring to Chekhov's play about — what else? — money, real estate and the squeezing out of one class by another.(06. 12. 18)

06. 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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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련 국내기사는 대부분 (1)북핵 (2)에너지 (3)테러에 집중돼 있는 듯하다. 우리의 관심과 맞닿아 있는 탓이겠다(하긴 어제는 러시아의 곰들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가 이유라고). 예전에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에 관한 페이퍼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오마이뉴스에 '러시아 에너지'의 근황에 관한 기사에 올라와 있어서 옮겨놓는다. 같이 읽어볼 만한 관련서들이 많지는 않은데, 요는 에너지 주권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러시아 제국'은 무엇보다도 '에너지 제국'이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06. 11. 23) 에너지의 힘... 러시아가 돌아왔다

러시아가 돌아왔다. 과거의 '핵'을 버리고 신무기인 '에너지'로 무장했다. 소련 붕괴 이후 '종이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던 과거의 러시아는 어디를 둘러봐도 없다. 소련이 붕괴했을 때 유럽연합은 언젠가 러시아가 다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올초 러시아는 유럽연합에 잊을 수 없는 새해 선물(?)을 선사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가격협상 논쟁을 벌이다 급기야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을 일시 중단했다. 가스중단은 우크라이나에 한정되어 우려했던 '비상사태'는 없었지만, 수송관이 우크라이나를 지나 유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의미는 분명했다.

이후 유럽연합은 해결해야 할 최선의 문제로 '에너지 독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게 되자, 유럽연합은 에너지 부문의 자유시장 관계를 규정하는 '에너지 헌장' 문제를 부각시켜 러시아에 대응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이외의 국가에 대한 가스 수송망 자유 이용을 위한 국제 에너지 헌장의 비준을 요구했다(러시아는 1994년에 서명은 했지만, 현재까지 비준을 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 "EU는 이중잣대를 버려라"

러시아 측 입장은 간단하다. 러시아에게는 불공정하고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비준일 뿐이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진출하면 투자와 국제화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러시아가 유럽연합에 진출하면 러시아 독점기업의 시장 확대'라는 이중잣대를 버리고 러시아에게도 공정한 기회와 게임의 룰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한 예로 최근 러시아 국영가스기업 가즈프롬은 영국의 에너지 회사 센트리카(Centrica)를 인수-합병하려다 영국정부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난 22일 러시아 외무장관인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러시아는 에너지 헌장에 비준하지 않겠다, 이에 대해 이미 러시아는 여러 차례 밝혔다"고 말했다. 러시아에게 가스는 '피'와 같은, 가스 수송관은 '핏줄'과도 같은 존재이다.

한편, 세계 시가총액 톱10에 진입한 러시아 에너지 독점기업 '가즈프롬'은 인수-합병과 투자에 집중하며 에너지 분야와 가스 파이프라인 확대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5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가즈프롬의 올해 9월까지의 순이익은 작년보다 무려 76.6%나 증가한 약 2360억 루블(약 90억달러)이라고 한다.



러시아 '가즈프롬' 제국 탄생

가즈프롬은 유럽연합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다. 유럽연합에 약 25%의 가스(러시아 가스 수출의 약 67%)를 수출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가스분쟁 사태의 중심에 서있었다. 가즈프롬의 경영진은 모두 푸틴의 최측근들이고 회사의 전략과 비전은 러시아 에너지 정책을 대변한다.

석유와는 달리 수송관을 통해 들어오는 가스는 유럽연합을 러시아에 더욱 더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가즈프롬과 발트해를 통해 독일로 들어오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미래의 안전한 가스 보급망을 확보했고 프랑스는 제2의 가스공급자인 알제리와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원자력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이끌어가는 프랑스와 독일의 이런 발빠른 전략과 책략은 러시아 가스에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과 발틱국가들에게 위기와 배신감을 가져다 주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폴란드의 입장을 대변하듯, 폴란드 국방부 장관은 러-독 가스관 사업(Nord Stream)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독-소 불가침 조약)이라고 비꼬아 불렀다.



독-러 공동가스관 사업 = 독-소 불가침조약?

한편, 오는 24일 유럽연합 25개 회원국들은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유럽연합·러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그런데 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폴란드가 자국의 육류 제품에 대한 러시아의 금수조치를 이유로 유럽연합·러시아 정상회담에 보이콧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의 규정은 회원국 전원의 동의하에만 러시아와 새 협약을 체결할 수가 있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폴란드를 설득하는 입장이고 의견 차이로 대립하는 모습마저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야를 포함한 전략적 파트너십이 적극 필요한 상황에서 폴란드의 돌출 행위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편 폴란드의 이번 행동은 유럽연합내에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유럽연합의 분열과 대립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2일 대통령 보좌관 세르게이 야스트르젬브스키는 기자회견을 통해 폴란드의 딴지를 이렇게 비꼬아 말했다. "유럽연합은 자신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러시아로서는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은 최근 러시아의 '여기자 살해 사건'과 영국에서의 '전 KGB요원의 독살사건'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테러를 자행한다고 러시아를 비난하며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유럽연합의 이중잣대를 비난하고 있다.

중요한 건 유럽연합의 어떤 공세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에너지 국유화 정책과 강한 러시아 건설은 전세계에 '러시아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위협적이고 지능적인 무기를 가지고 돌아온 러시아 제국은 부활하고 있다.(정인고 기자)

06.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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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스토예프스키 탄생 185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가는 1821년 11월 11일 빈민구제병원의 의사였던 미하일 도스토예프스키와 마리야 도스토예프스카야의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그는 1881년 2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해마다 '빼빼로 데이'가 그의 생일이니만큼 기억하기도 편하다. 기념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작가의 초상화로는 가장 유명한 바실리 페로프의 초상화(1872)를 아래에 옮겨놓는다.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별달리 준비한 것도 없어서 도스토예프스키 '입문'으로 읽을 만한 책들을 몇 권 나열해본다. <30분에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물론 가장 쉽고 짧은 입문서가 되겠다(하지만 얄팍한 정보나 나열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문제거리를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되겠다. 그리고 얀코 라브린과 콘스탄틴 모출스키의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전이다(앙드레 지드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도 시중에는 나와 있다. E. H 카의 전기는 절판됐다). 후자는 세밀한 작품해설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교양서를 겸한다. 그리고 두번째 아내였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회고록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그와 삶을 같이했던 이의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위대한 건 작가로서이다.

 

 

 

 

어쨌거나 잠시 도스토에프스키 문학에 대해서 명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11월의 하루이다.

06. 11. 11.

P.S. 보다 자세한 도스토예프스키 이야기는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란 페이퍼를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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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손 2006-11-1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출스키 책에 10월 30일이라고 되어있는 걸 저는 종이에 적어놓아서 로쟈님이 잘못 쓰셨나 잠깐 어리둥절했습니다만 하하 러시아라는 걸 깜빡했습니다.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11-11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H.카의 전기를 몇 달 전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했다죠.
아, 오늘은 또 키에르케고르가 고인이 된 날이기도 하더군요.
(우연히 YTN 뉴스에서 본 사실)

로쟈 2006-11-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융아님/ 어디선가 본 사진인데요.^^ 구력 10월 30일인지라 지금의 달력으론 11월 11일입니다. 10월혁명 기념일이 11월 7일인 것도 그 때문이구요...
연랑님/ 카의 전기는 제 기억에 홍성사판도 있고 기린원판도 있지요? 키에르케고르는 요즘 <불안의 개념>을 읽을 만만의 준비를 해놓고 있는데, 시간은 잘 안 나네요(--;)...
 

밀린 원고 때문에 대학원 MT도 따라나서지 못하고 집안에 죽치고 있다. 이런 날은 적당한 긴장상태에 있게 되는데, 그러한 긴장에 맞멎는 '배짱' 때문에 한편으론 여유롭기까지 하다(그 배짱의 유일한 근거는 원고를 쓰지 못한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뒷북성' 기사를 읽게 됐는데,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란 학술쟁점 기사가 그것이고, 작년말 교수신문 기사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교수신문에 자주 들락거리진 않았나 보다). '자료'의 가치가 있어서 보관해놓도록 한다.

교수신문(05. 12. 20)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모델이 '러시아'라는 특이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근대사)는 최근 출판된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선인 刊)란 책에 실린 한 논문에서 "대한제국의 국제는 그 전제성으로 볼 때 러시아 차르 체제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라는 논문에서 "대한제국이 추진한 황제권 강화는 민국이념을 계승한 것이라거나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제를 본떴다기보다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통계승설과 일본모방설에 강한 의구심을 표출했다.허 교수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러시아에 기대어 등장한 황제국 대한제국의 모델이 제정 러시아였음은 자명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문장으로라면 황제권이 강하다는 형태적 유사성, 정치활동을 억압했다는 식의 전권적 지배, 급할 때 도와준 강국의 국가지배체제를 당연히 본받지 않았겠느냐는 식의 추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 교수가 동원하는 것은 주한 러시아 공사 스파에르의 보고서가 전부다. 스파에르가 "고종의 충신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여지없이 미국화 되어버린 서재필의 산물인 독립협회는 반러 활동을 전개하는 일본과 영국 공사관의 괴뢰"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를 근거로 "고종의 독립협회 해산에는 러시아 측의 암묵적 지지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이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으로 무사히 돌입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방패막이 이상의 존재였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사료나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허 교수의 논문에서는 그것이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빈약한 근거로 왜 허 교수는 이런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것은 교수신문에서 지난해 벌어졌던 '고종시대 논쟁'에서 '광무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대한제국'을 이끈 고종은 영정조의 민국이념을 계승한 개명군주라는 이태진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고종이 밀려오는 외세에 대응해 동도서기론을 취했던 이유에 대해 이태진 교수는 "고종은 서양의 입헌군주제나 입헌공화제에 대해 소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섣불리 이를 모방하기보다 선왕들이 추구한 민국정치 이념을 계승해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내실있는 왕정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허 교수는 "과연 군주 중심의 동도서기론적 대응이 민국이념이라는 자기역사의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었을까"라는 회의를 표한다. 그는 "민국이념을 계승하였다는 사진속의 고종황제는 어째서 차르의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일까"라고 계속 따진다.

이 질문은 그럴싸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공식복장이 그랬다면 그것은 은연중 고종의 지향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적 차원의 겉치레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그간 대한제국의 성립에 영향을 준 국가모델을 명치유신을 거친 일본에 국한해서 논의해온 측면을 지적한 부분은 새로운 역사적 변수를 도입해 좀더 꼼꼼하고 종합적인 시야를 확보하자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러시아 모방설을 대한제국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고 있어 아쉽다. 즉, 러시아는 모델로 삼을 만한 게 못된다는 것. 그는 이승만의 저서인 '독립졍신'에 러시아가 아주 저급한 국가로 취급되고 있는 걸 예로 들며 "당시 서구중심주의자들이 러시아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음에 비해, 고종은 그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비밀경찰이 사회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보수적 반동 전제정치가 강화된 알렉산드리(*알렉산드르) 3세의 시대"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부조적 방식에 대해서는 '고종시대 논쟁' 중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고, 전제군주 등 유사성을 부각시켜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방식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허 교수의 논문은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상황이나 내적 동기 등을 밝혀내지 못한채 단지 '왜 러시아는 논하지 않나'라는 착상에 의존하면서 유사성을 지나치게 발견하려고 노력한 듯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결국 허 교수가 골인하는 것은 대한제국이 근대국민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고종과 그 측근세력이 차르체제를 '잠재모델'로 만든 대한제국은 국민을 국가를 담당하는 주체가 아니라, 백성을 신민으로 잠자게 하려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20년 가까이 대한제국 정치구조를 연구해온 서영희 한국산업대 교수(한국사)는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독특한 주장인데 나는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델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한국사) 또한 "읽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만약 사료나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이 국민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허 교수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이 서구 근대국가의 일반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국가가 아니라고 본다. 문명화의 정도, 통합기제의 유무, 국가간의 대등관계 등에서 볼 때 '택'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 명치 이래 일본의 문명개화는 "서구 근대와 일본 고대의 유착"이며 "서구근대가 오역, 날조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헌법과 의회, 삼권분립 등의 정체를 갖추고 있었기게 일본적 국민국가 정도는 된다는 주장을 한다.

비서구권의 역사진행을 서구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틀 속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이제 '선택'과 '관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허 교수뿐 아니라 이 결여태를 상정하는 학자들은 비서구권 국가들이 '번역'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캐치 업' 근대화를 걸어갔다고 보고 있다.

이 때 '번역'이라는 어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문명권에서 비문명권으로 지식이 흘러들어간 방식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번역'이라는 수사는 매우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번역=이식'이고, 더 세분화시켜봤자 번역->번안->통언어적 실천(토착화)인 셈이다. 하지만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를 '미메시스'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미메시스는 상호적인 것, 즉 상호모방이다. 번역에서는 원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미메시스는 그와 달리 원래의 대상에는 없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 최종적인 과정으로 포함된다. 

물론 예술에서 주로 쓰이는 이 미메시스의 개념을 역사과정에 확장시켜 대입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으나, 서구의 결여태로서 비서구사를 규명하려는 논의구조가 왜 아포리아인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기자의 아이디어는 책 한 권을 쓸 만한 주장이다. '무리'가 아닌 걸 보여준다면 주목할 만한 업적이 되지 않을까?).

대한제국이 '진정한' 근대국민국가가 아니었다고 결론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대한제국이 진정한 국민국가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룰 때 그 반박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서구와 역사과정이 다르고, 국가 구성원들의 사회화과정, 교육정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 조선이라는 특수한 왕조가 어찌어찌 당시의 대세를 따라 국체를 바꿔보려 했었던들 어찌 '진정한' 서구를 이루었을 것인가가 진정한 의문이다.

차라리 "외세가 없었다면 대한제국은 어떤 제3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그나마 과거사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서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따라서 대한제국이 일본, 러시아와 청국, 미국 등 어느 한 나라를 모델로 삼았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조선이라는 그릇에 이들을 해체재구성하는 혼성모방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손쉬우면서도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강성민 기자)

06. 11. 10.

 

 

 

 

P.S.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 교수와의 역사 대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이다. 그 대담에서는 '건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이 '쟁점'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지만,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러시아는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러시아쪽 사료들을 검토/분석할 수 있는 연구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안다. 국문학도/국사학도들이 일본과 중국쪽 사료 못지 않게 러시아쪽 사료들도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해방공간에 관한 사료들이 그러한데) 우리가 몰랐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는 건 아닌가...

P.S.2. 동향기사에 대한 허동현 교수의 반론도 게재되었던 걸 뒤늦게 발견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마저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6. 01. 06) ‘강한 주장 약한 사료’(교수신문 제384호)에 답한다

제정 러시아의 차르체제가 대한제국 광무황제가 꿈꾼 개혁모델이었다는 필자의 견해(「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 선인, 2005)에 대해 “강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사료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강성민 기자의 논평은 정당하다. 허나 대한제국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기존 연구 모두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가설의 등장은 역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존의 연구는 개화파, 농민(민중), 국왕, 그리고 일본 중 누구를 근대 개혁의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광무개혁”의 실재를 부정하는 신용하 교수는 개화파를, “광무개혁”은 호평하면서도 대한제국은 “의사절대왕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김용섭 교수는 농민을, 대한제국이 주체적 근대 국민국가였다고 본 이태진 교수는 국왕을,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광무개혁”의 근대성을 부정한 이영훈 교수는 일본을 근대화의 주체로 본다. 강 기자의 논평에 힘을 실어 준 서영희 ․ 주진오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서 교수는 국왕을, 주 교수는 농민을 개혁의 주체로 보는 쪽에 서있는 것 같다.

시민사회와 산업화를 이룬 오늘 그 “발전”의 뿌리를 놓고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과 경제사학계의 식민지근대화론이 평행선을 달린다. 외세를 배격한 민족의 자주를 강조하는 대한제국 높이기는 과거사에 대한 성찰일까?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 떠넘기는 과오 감추기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고 개화기의 근대화 노력을 외면하며 오늘 우리가 이룬 경제성장의 뿌리를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대한제국 때리기도 정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종래 연구 동향을 일별할 때, 필자가 품은 의문은 다음과 같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을, “온건” 개화파는 중국을, 친미 개화파는 미국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고종과 주변세력은 갑신정변 실패이후 청국을, 그리고 아관파천 이후 러일전쟁 전까지 일본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왜 그들은 러시아에 의지하려고만 하고 러시아를 개혁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일본이 자국의 제도를 모델로 한 갑오경장을 유도했듯이, 러시아도 삼국간섭 이후 자국을 모델로 한 조선의 개혁을 이끌어 내려하지는 않았을까? 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민족”과 “자주”를 오용하는 국수적 성격의 대한제국과 고종황제 띠우기에 보이는 맹점을 지적하려는 데 그 주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잠정적 결론 하나는 대한제국은 그 개혁모델로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연명하던 허울만 남은 제국인 대한제국은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추후 실증적 작업이 뒷받침될 때 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필자는 웨베르 주한 러시아공사가 아관파천 때 의정부를 다시 설치한 것에 대해 "고종이 러시아의 국무회의(Gosudarstvennyi Sovet) 절목을 참고하여 부활시켰다"고 보고한 러시아 문서를 찾았다. “강한 주장”을 입증하는 충실한 사료가 앞으로 속속 발견될 전망이다.

허나 필자는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로 보았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차라리 졸고가 개화기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한 원인을 찾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근대화 예정론"에 불과하다고 평한다면 수긍이 간다. 물론 근대화란 역사적 필수가 아닌 하나의 가능성 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근대 기획의 문제는 근대 자체를 비판하여 넘어서려는 탈근대의 문제와 구별되어야 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근대 기획―식민지 근대 극복과 하나 되는 국민국가 수립―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傳言만으로 一針을 주신 주진오, 서영희 교수께 감히 졸고 일독 후 가편을 청한다.(허동현 / 경희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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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1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이 가장 이해하기 쉬웠어요.(>_<)

로쟈 2006-11-10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추신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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