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되는 분량을 두고 오래 뜸을 들이는 것도 별스러운 것이어서 마저 해치우기로 한다. 우리가 가장 바쁠 때 가장 많은 일을 한다는 속설에 의지해 보면서. 어제는 프로이트-라캉 카페에서 소개받은 지젝 관련 글을 읽었는데, 지젝의 근황과 최근의 사생활이 비교적 자세하게 드러나 있어서 흥미로웠다. 지젝을 이해하는 데, 아니 이해하기 시작하는 데 아주 요긴해 보이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미친 척하고 요약/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아니, 그 전에 찾아서들 읽어보시면 되겠고, 어느 분이 먼저 요약/정리해주시면 더욱 좋겠지만...



-데리다 인터뷰로 넘어와서, 대담자의 다음 질문은 좀 어리숙하다(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인지).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 둘은 서로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이건 원문의 "They aren't heterogeneous."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아무래도 논리상 맞지 않는다. 뒤에 나오는 내용을 고려해 보건데, '그 둘은 서로 이질적입니다'가 돼야 할 거 같다. 아마도 녹음된 구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오타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They are heterogeneous."라고 말했을 것이고, 그래야 말이 맞다. 데리다의 영어발음이 부정확했거나 필사자의 청력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해서 이어지는 대목은, "그래서 당신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아무런 지혜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번역하면서 계속 께름직했는데, 결론은 오타일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 "지식과 행위 사이에는 심연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심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능한 한 더 많이 알고자 하는 노력이 방해받는 건 아닙니다. 철학, 즉 필로소피아는 지혜에 대한 사랑입니다. 필리아가 사랑이고 소피아가 지혜죠. 따라서 지혜에의 의무가 바로 철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전적으로 지식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능한한 많은 것을 알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결정의 순간에 내가 가진 지식으로부터 어떤 비약을 감행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지혜가 문제되는 건 행위이다. 즉 지식과 행위(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이에는 심연이 있고, 철학은 그 지혜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 데리다의 주장이다, 고 나는 생각한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이런 얘기는 좀 고리타분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목들은 재미있다. 그리고 데리다의 '사생활'이 조금씩 내비친다. "1967년에 출간한 책들 덕분에 당신은 더 행복해졌습니까?" 나로선 좀 예기치 못한 질문이다.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데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는 매우 활동적이고 정력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만약에 내가 20세때 누군가 지금 나이인 72세에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말해줬다면, 나는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나는 아주 병약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반에 반만 하더라도 쓰러졌을 겁니다. 그 작업(책)이 얻어낸 호응이 내게 지금과 같은 에너지를 준 것이죠. 사람들은 저와 제 작업을 관대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만약 그런 관대함이 없었더라면 확신하건데, 나는 진작에 주저앉았을 겁니다."

-그 다음 뜬금없는 질문. "왜 여성 철학자는 없는 걸까요?"(그런데, 왜 여성 대법관은 없는 겁니까?) 페미니즘에 대한 데리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다.

-" 왜냐하면 철학적 담론이란 건 자체가 여성과 아이들, 동물과 노예 들을 주변화하고, 억압하고,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조직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철학적 담론의 구조입니다. 그걸 부인하는 건 어리석은 것이죠. 따라서 당연히 위대한 여성 철학자는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여성 사상가들은 있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철학이란 건 여러 사고양식 중에서 대단히 특별한 사고양식의 하나(일뿐)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변화되어 가는 역사적 국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건 거창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많은 저작들이 남근중심주의의 해체와 관련돼 있습니다. 자화자찬하자면, 나는 그러한 문제를 최초로 철학적 담론의 중심에 놓은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한 억압은 특히 남근중심주의의 철학적 근저에 끈질기게 남아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는 페미니즘 문화의 동맹군입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몇몇 선언적인 주장들에 대해서는 유보적입니다. 단순히 위계를 뒤엎는다든가 관습적으로 남성적인 행동으로 간주돼 왔던 가장 부정적 측면들을 여성들이 전유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저작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오해는 무엇입니까?"

-"그건 나를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텍스트는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적인 니힐리스트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그러한 오독은 35년전에 시작되었고 이젠 깨뜨리기도 어렵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언어적이며 우리가 언어에 갇혀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나는 정반대를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로고스중심주의에 대한 해체는 모든 것이 언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러한 철학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내 책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내가 긍정과 신앙을 고집스레 주장하며, 내가 읽은 텍스트들을 전적으로 존경한다는 점을 이해할 겁니다."
-"타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살인의 충동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살인충동은 제거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물로서의 인간(human animal)의 한 부분이니까요. 동물로서의 인간은 잔인하며, 타자의 고통으로부터 쾌락을 얻습니다. 그건 제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인에의 권리는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철학과 사유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즉 이 제거될 수 없는 충동을 제어하는 것이죠. 잔인성과 공격성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변형시킬 수는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쓸 때 그러한 활동엔 공격성도 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 공경성을 뭔가 유용한 것으로 변형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공격성은 살인보다 흥미로운 어떤 것으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실제로 살인하지 않고도 죽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도 나는 타자를 (다른 방식으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격적이라는 것은 그렇게 천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조훈현이나 유창혁의 공격바둑을 생각해 보라. 박지은의 공격적인 드라이브샷, 전성기 박찬호의 공격적인 피칭, 홍세화나 박노자의 공격적인 글쓰기 등등...)

-"영토나 소유권 등의 개념들이 인간들간의 갈등의 뿌리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관념들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왜 우리는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요?"(이건 달라이라마에게 질문해야 하는 거 아닐까?)

-"수세기동안 도시는 교역의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더불어 이젠 더이상 그렇지 않죠. 장소의 정치학은 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한 친구가 최근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오늘날 탈영토화하거나 가상화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건 예루살렘과 석유이다, 라고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석유에 의존해 살고 있습니다. 비록 그런 상황이 변화할 수는 있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석유가 고갈된다면?) 모든 사회가 붕괴될 것입니다(이 부분의 번역은 원문을 확인해 주셨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건 유럽보다도 미국에서 더 큰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항상 미국에서는 더 문제가 됩니다. 거기엔 분명한 이유들이 있고요."

-"과거가 사람들에게 쉽게 고통이나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지요?"(이 또한 멍청한 질문에 속한다.)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내 경우엔 다행스럽게도 나는 과거와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조차도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꺼이 나의 삶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이 일어났던 그대로 끝없이 반복되는 걸 수용할 수 있습니다. 즉 영원회귀를 말이죠."(답변은 똑똑하다.)

-"요즘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우문의 퍼레이드다.)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적이고, 공적이고, 정치적인 일들이 나에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과 함께 끊임없이 의식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고,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입니다.(영화 <데리다>에도 나오는 그의 백발과 눈가의 주름들을 떠올려 보라.) 인생은 짧습니다. 나는 항상 내게 남아있는 시간들에 민감합니다. 그리고 비록 이건 내가 어릴 때부터 죽 그래왔던 성향이긴 하지만, 72세가 되면 문젠 좀 심각해집니다. 아직까지는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거 같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자각이 나의 모든 사유에 침윤돼 있습니다.(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후기 데리다는 상당히 실존주의적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끔찍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내 마음속에서도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죽음의 충격(terror)에 비해 주변적(alongside)입니다."(우리도 72세가 된다! 될까?...)

-드디어 마지막 질문. "당신은 언제 어른이 되었습니까?"(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이다. 내가 읽은 어떤 인터뷰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질문!)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나는 항상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나이를 가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 가지 나이를 갖고 다닙니다. 내 나이 스무살때, 나는 내가 이미 늙었고 너무 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일흔 둘)은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엔 멜랑콜리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마음속으론 아직 젊다고 느끼지만, 나는 객관적으론 내가 더이상 젊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다니는 세번째 나이는, 이건 내가 프랑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데, 내가 막 책을 출간하기 시작하던 나이입니다. 그때가 35세, 서른 다섯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한창 작업하던 때의 문화적 환경(cultural world) 속에서 35세로 멈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죠. 왜냐하면, 나는 많은 분야에서, 좀 많은 책을 출간한 늙고 저명한 철학자로 간주되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내가 이제 막 책을 출간하기 시작한 신출내기 저자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글쎄, 꽤 전도유망한 녀석이군.""

마지막 질문에 대한 데리다의 답변은 감동적이다. 여러 시간을 이 인터뷰 번역에 쏟아부은 것도 이 마지막 답변을 여러 사람과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모른다. 이 인터뷰의 원래 제목도 '자크 데리다의 세 가지 나이(The Three Ages of Jacques Derrida)'이다. '데리다의 사생활'이란 타이틀이 크게 빗나간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영화 <데리다>에서 데리다는 나이가 들면서 같이 늙어가는 '손'과 나이를 먹지 않는 '눈'에 대해서 아주 흥미로워하는 듯한 표정(그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야기한다)으로 얘기한 바 있다. 그 데리다가 이젠 73세, 일흔 셋이다. 103세까지 장수했던 가다머에 견주면, 아직 30년의 세월이 남았다.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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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쓴 글을 여기에 옮겨둔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발췌 번역하고 있는 글은 2002년의 글이다...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점심시간이라 빈둥거리고 있다(너무 일찍 점심을 먹은 탓에). 자투리 시간이 난 김에 엊저녁에 읽은 데리다의 대담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지에 작년 11월 둘째주에 실린 건데, 그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것. 대담자는 Kristine Mckenna이고, 분량은 A4지 3쪽 반이다. 어제 퇴근길에 전철에서 읽으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작년에 본 영화 <데리다>를 떠올리며) 시간이 나면 완역이라도 하고 싶지만, 요즘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해서 흥미로운 부분만 요약한다.  

대담의 첫머리에는 그의 약력이 소개되고 있다. 스페인계 유대인 가계인 데리다는 잘 알다시피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다. 10살 때 비시치하의 반유대인 정책 때문에 학교에서 쫒겨나는데, 사유는 나중에야 담임으로부터 듣게 된다. 19세에 고등사범에 들어가기 위해 파리로 가고 두 번인가의 낙방끝에 프랑스 수재들의 전당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아내인 마거릿 오쿠튀리에(Marguerite Aucouturier)를 만난다(아주 고전적이지만, 고등사범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정신분석의가 된다. 영화 <데리다>에는 이들 부부의 사생활이 잠깐 비치는데, (눈치를 보니)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둔 것 같다. 1952-56년까지 고등사범에 다니면서 주로 후설과 하이데거를 읽는 데 전념한다(그가 초기에 인정받은 것은 유망한 현상학자로서였다). 하바드 장학생에 선발되어 5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며 6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소르본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결혼을 한 건 1957년. 어디에선가 읽은 건데, 하바드에서 그는 조이스를 발견하고 탐독한다(그의 제임스 조이스론은 그 읽기의 경험에서 얻어진다).  

 

철학자로서 데뷔하게 되는 건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고 거기에 장문을 서문을 붙인 책을 출간하면서부터이다. 이게 1962년이다. 그리고는 1967년에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를 한꺼번에 출간하면서 철학적 담론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 그는 현재까지 45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이 책들은 2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1986년부터 어바인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방문교수로도 일하고 있으며, 이 대학에는 데리다 문서고(아카이브)가 1990년에 설치됐다(영화 <데리다>에 자세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데리다는 처음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진에 찍힌 자신의 이미지가 불편했기 때문에. 하지만 학술계의 저명인사가 되면서 점점 더 저널리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의 컨트롤이 힘들어지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찍은/찍힌 영화에 대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럼면서 질문을 던진다. "한 철학자가 반드시 전기를 가져야만 합니까?"

"어떻게 철학자는 전기를 안 가질 수 있나요? 어떻게 당신은 한 철학자의 삶으로부터 그의 저작들을 분리시킬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자는 다시 반문하고,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영화 <데리다>에 얼마간 주어져 있다. 당신은 이해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철학자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즉 철학자들은 자신의 삶은 주변적이거나 우연적인 걸로 간주했다. 자주 드는 예이지만,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아리스토텔레스 강의를 예로 든 바 있다(그는 태어나서 사유했고, 그리고 죽었다는 식. 모든 철학자의 전기/생애는 그걸로 끝이다. 중요한 건 사유의 내용이니까).

그 다음 질문이 바로, 철학자의 전기로부터 자연스레 도출되는 거지만, 철학자의 사생활, 성생활에 대한 것이다. 질문자는 영화 <데리다>의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면서("당신이 존경하는 철학자들과 대담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란 질문에 데리다는 "그들의 성생활"이라고 답한다. 왜나면, "그건 그들이 말하지 않은 거니까.") 영화속 질문자의 짓궂은 질문. "그럼, 당신의 성생활은 어떠한가?" 여기에 대해 데리다는 답변을 거절/유보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거기엔 어떤 한계/금지가 있는 것인가?

사실 영화속에서도 데리다는 유사한 답변을 하는데, 그건 카메라 앞에서 게다가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이루어진 그 대담에서는 자신의 가장 사적인 삶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 또 그런 즉석문답식으로는 제대로/잘 말할 수 없다는 것. 데리다는 말도 잘하지만, 사실 그의 장기는 글쓰기이다. 그는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어하고, 또 사실 여러 차례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남겨놓고 있기도 하다. 그가 거명하고 있는 책들은 <조종>(1974), <우편엽서>(1980) <고백Circumfession>(1991) 등이다. 이 책들은, 데리다에 의하면, 상당히 자전적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종교와 신앙에 관한 것(데리다는 종교에 관한 글들도 상당수 발표한 바 있고, 이것들은 에 묶여 있기도 하다). "당신은 신을 언제 처음 체험해 봤는가?" 혹은 "당신이 처음 신을 만났던 체험을 떠올릴 수 있는가?" 데리다는 먼저 신에 대한 관습적인 정의(당신이 껴안을embrace 없는 존재)를 유지하면,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릴적 경험한 유대교회당과 거기서 울려퍼지던 음악에 대해서 얘기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습관적인/존경이 결여된 신앙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의 나이가 13세이다. 그리고 그때 처음 읽기 시작한 니체에 푹 빠져들게 되고, 니체와 루소는 그의 신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일기가 온통 니체와 루소에 대한 인용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고백한다. 비록 니체가 격렬하게 루소를 비판했지만, 그는 그 둘을 모두 사랑했고, 자기 안에 있는 이 둘을 어떻게 하면 화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다음 질문은 하이데거와 관련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의 인터뷰(그러나 1976년 그의 사후에 비로소 공개된 인터뷰)에서 하이데거는 "니체 이후의 철학은 인류의 장래에 아무런 도움도, 희망도 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제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 당신도 동의하는가?

"나는 신(a god)이란 말은 쓰지 않겠다. 하지만, 이 진술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건 하이데거가 반종교적(anti-religious)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고 있는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 아니다. 그가 가리키는 신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다. 그는 누군가가 간절히 고대하는 바에 대해 신이란 이름을 부여한다. 즉 누군든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구원할 이는 신이란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진술이 구원에의 희망을 부추기는 것이라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인가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라면, 그리고 우리가 그 도래할 자를 환대해야만 한다는 뜻이라면, 나는 동의한다. 이것이 내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이라고 기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본성적으로 메시아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뭔가 일어나기를 항상 고대한다. 심지어 우리가 아무런 희망없는 상태에 놓여있을지라도 어떤 기대감을 갖는 것은 시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희망없음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뭔가 좋은 일의, 우리를 사랑해줄 이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그런 뜻의 얘기를 한 거라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2차 대전에 관한 질문. 30년생이니까 데리다는 소년시절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다. 그때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데리다는 견딜 만했다고 답한다. 그건 비교의 문제이기도 한데, 알제리의 유대인은 적어도 (유럽)대륙의 유대인들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알제리에도 반유태주의는 있었지만, 독일인도, 수용소도, 유대인 집단이주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심리적인 외상은 갖게 되죠. 만약에 당신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서 쫓겨난다면, 그 일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계속. 론 로젠바움이 쓴 <히틀러 해명Explaining Hitler>(1998)에서 저자는 '의미'야말로 히틀러의 최대 희생자였다고 말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합적 의미로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도 동의하는가? 이에 대한 데리다의 대답은 유보적이다. 그는 거기에 답하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하며, 그 문젠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철학이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데리다의 답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건 정치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제기된 것이기도 한데, 철학과 정치는 서로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삶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존재들이며, 그래서 다른 동물들보다 우리 자신을 우위에 놓는다. 나는 동물(성)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철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동물이 아니며 우리 삶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우리가 이 문제의 해답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다 번역하다간 오후 시간을 다 잡아먹겠다. 내용이 좀 길어진 관계로 (하)편에서 마저 정리하도록 하겠다. 양해하시길...

덧붙임: 대담자가 말하는 하이데거의 인터뷰는 우리말로 완역/소개돼 있다. 하이데거에 관한 훌륭한 사이트인 http://holzweg.netian.com/index.htm로 가보시기 바란다. 오래전에 들러봤던 사이트이고, 생각해 보니까 번역문도 훑어봤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역시나 Word님이 일깨워준 정보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1966년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이다. 따라서 본문중에 내가 "2차 대전 직후"라고 한 건 "2차 대전 이후"로 수정했다(영어로는 'shortly after'이다). 데리다의 인터뷰와 관련된 부분만 옮겨온다(번역은 장승규님).

슈피겔
좋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개별 인간이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강제의 그물 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혹은 철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또는 철학이 개인이나 여러 개인들을 특정한 행동으로 이끌어 양자가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이데거
짧게 그러나 오랜 숙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철학은 세계의 현재 상태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이 것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적인 사고와 노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사유와 시작을 통해 신의 출현이나 몰락 속에서 신의 부재를 예비하는 것이다. 부재 하는 신 앞에서 우리는 몰락한다.

슈피겔
당신의 사유와 그러한 신의 도래(到來) 사이에 어떤 하나의 연관이 존재하는가? 당신이 보기에 일종의 인과관계가 거기에 놓였는가? 당신은 우리가 신을 다시 불러내 사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이데거
우리가 신을 다시 불러내 사유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기다림의 예비를 일깨울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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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겨레신문의 '책과 사람'에서는 지난해 정년은퇴한 백낙청 교수의 사진과 함께 창비에서 정년기념논총으로 나온 <지구화시대의 영문학>을 소개하고 있다(나는 책을 그제 서점에서 봤지만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다). 책은 후학들의 글모음인데, 백교수의 소위 '주체적 영문학 연구'에 대한 권두논문인 윤지관 교수의 "분단체제하에서 영문학하기"가 리뷰에는 잠깐 소개돼 있다. 요컨대, "영문학 연구는 민족문학 운동의 일환"이며, "민족의 구체적 현실, 특히 분단체제 아래서 고통받는 민중의 현실에서 영문학을 연구할 때 새로운 사유전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백 교수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문학관은 민족문학을 지지하는 (영문학뿐만 아니라) 외국문학 연구자들에겐 '중핵'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영문학 연구가 '분단체제하에서 일문학하기"보다 얼마만큼 더 실제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민족/민중의 현실'이 걸려 있으므로, 모더니즘이 배격되고 리얼리즘이 맹신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인데, 그 리얼리즘은 사실, 문학이 아니어도 고전이 아니어도 무방하며, 아니 오히려 굳이 문학이 아니고 고전이 아닐 때 더욱 생생한 것이지 않을까? 이것은 '위기' 이후에 톨스토이가 러시아민중을 위한 (문학을 넘어선) '문학행위'를 주장할 때 부딪쳤던 것과 마찬가지의 곤경, 곧 아포리아이다.

 

 

 

 



사실, 백교수는 러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도 아니고) <부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서양 명작의 주체적 이해를 위하여'란 식의 부제를 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같은 톨스토이라 하더라도, '문학주의'에 속하는(그래서 톨스토이가 부정하게 되는) <안나 카레니나>는 '주체적'으로 다루기가 힘들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시리즈를 통해서, 영문학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비평을 부분적으로 시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문학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는지. 로렌스 전공자이지만, 아직도 로렌스 문학의 '주체적 읽기'는 미래의 것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는지(개별 논문은 있지만, 아직 단행본을 내지는 않았다).

사실 '주체적 영문학 연구'라는 것은 그간에 어떤 이념형으로서 잘 기능해오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실행가능한 일은 아니다. 먼저, 제도적으로. 과연 영미에서 '주체적 영문학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한국 민족과 민중을 위한 영문학 연구로 말이다. 하다못해 영미의 노동자/민중이나 피억압 유색인종들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그러한 현실을 고려하면서 영문학 작품들을 읽고 이해하고 그에 대한 '논문'을 과연 얼마나 실감나게 쓸 수 있을까? 탈식민주의가 있지 않느냐고?

고작 탈식민주의와 백교수의 문학론을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백교수가 영문학의 작품들을 해체하고 부정하는 탈식민주의적 독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문학 작품들이 이루어낸 성과는 성과대로 수용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백교수가 말하는 주체적 독법"이라니까. 사실 이 정도면, 영문학 연구의 끝 아니가? 더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 뭐가 또 있을까? 이러한 탁월한 안목과 성취가 세계 영문학계에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들의 옹졸하고 편협한 시야 탓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으로서의 '독법'은 있지만 '읽기'는 빈곤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 작품의 성과는 수용하면서 그 한계는 극복하는 지혜로운 읽기, 그리하여 한 작품을 종결짓는 읽기가 어떻게 현전할 수 있겠는가? 거기서 작품은 '지혜'가 개입하기 위한, 그리고 '지혜'에 의해서 지양되어야 할 어떤 매개로서, 올라간 후에 버려져야 할 사다리로서, 소위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한 읽기의 현전은 그리스도의 재림만큼이나 강렬한 열망과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바,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족문학론이 이론으로서 질긴 생명력은 유지하며 모든 담론 위의 담론으로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마치 '정의'처럼 도달할 수 없는 이념이기에 그러하다.

같은 리뷰에서 "백낙청의 사유의 또다른 특징은 평론가 임규찬씨의 말대로 초기에 만들어놓은 이론적 틀이 견고하게 지속되는 보기드문 경우에 속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진단되는데, 당위성의 자리에 놓여 있는 이론이 백전불패일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이미 완벽하기에 변증법적 지양과 자기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보완될 뿐이고, 업그레이드될 뿐이다. 그래서, 1960년대말의 '시민문학론'에서 70년대의 민족문학론, 그리고 90년대의 근대극복론까지 "그의 생각의 근본틀이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런 거까지 굳이 나쁘다고 비판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보기에 따라선 아주 대단한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한 당위로서의 ‘주체적 영문학’이나 ‘민족문학론’이 결국엔 ‘말하기에 좋은 것(good to talk)’ 정도가 아닐까라는 의혹을 갖는다. 그리고 그건, 진정한 행위가 아니라 행위를 가장한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한동안 논란거리가 됐지만, 창비는 조선일보와 사이가 나쁘지 않다. 창비 편집위원들이 조선일보와 자연스레 인터뷰도 하고, 조선일보에선 간접 책광고도 해주고 하는 식이다.

이번 논문집 발간을 주도한 영문과 교수들이 주축이 된 영미문학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윤지관 교수가 지난번에 번역평가사업 발표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고, 이로 인해서 내부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윤교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한국사회에서의 세상사(the way things go)이다. 그래서, 대학교수들의 ‘진보적 문학이론’과 ‘문학행위’란 건, 내가 보기에, 대학 혹은 학문이라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오버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강준만이 맨날 하는 얘기지만, 그런 의미에서라도 강단 좌파를 신뢰하는 데에는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그건 일종의 '모험'이다).

흔히 386세대로 80년대 후반 대학가 시위를 주도했던 많은 ‘친구들’(동창들이 다 친구라면) 가운데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번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 위해서 줄서 있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만, 이 액티브한 ‘녀석들’은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지혜론’을 주창하는 백낙청 교수에 따르면(그걸 정리한 고명섭 기자에 따르면) “지혜야말로 지식과 과학이 넘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전망을 열어줄 수 있으며, 문학과 예술은 그 최고의 수준에 이를 경우, 심미적 쾌락이나 개인적 만족을 넘어 그 진리의 세계를 체험하게 해준다. 그 진리 체험이 현실변혁과 내적으로 연결돼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의 전망’은 꿈도 못 꾸면서 여전히 지식과 과학이나, 그리고 철학이나 넘겨다보는 나로선 그러한 ‘진리의 세계’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나는 ‘상식주의자’이다). 다만, 나도 가끔은 삶의 지혜를 터득하곤 하는데, 행위와 행동과 제스처가 다르다는 것을 터득하는 것은 그런 지혜의 하나이다...

 

 

 

 

덧붙임: 인터넷서점에서 제공하는 목차에 따르면, 책에서는 D. H. '로렌스'를 '로런스'로 표기하고 있다. 이미 창비에선 로렌스의 <목사의 딸들>까지 백낙청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한바 있는데, 웬 난데없는 '로런스'인가? 로렌스에 대한 주체적인 이해의 결실이 '로런스'인가? 혹은 로렌스에 대한 현실변혁의 결과가 '로런스'인가? 인터넷서점에서 잘못 타이핑한 게 아니라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쓸데없는 데 시간낭비들을 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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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3-0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근래 읽은 글 중 가장 유쾌한 글입니다.

로쟈 2004-03-0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읽어보니 유쾌하군요...
 

 

 

 

 

최근에 나온 교양과학서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스티븐 핀커의 <빈 서판 Blank Slate>(사이언스북스) 이다.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에 이어서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의 두번째 권이다. 시리즈의 이름이 말해주는 바대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이 책은 무려 9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원서도 500쪽 가량된다). 

 

 

 

 

촘스키만큼 유명한 이 언어학자 혹은 인지과학자의 책들은 <언어 본능>(그린비, 1998)이 번역돼 있지만, 더 많이 번역소개될 필요가 있다. 다니엘 데넷과 함께 '핀커의 모든 책'이라 할 만큼 그의 책들은 수준있는 지식과 교양, 그리고 유익한 문제의식으로 넘쳐난다. 이런 교양서들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똑똑해진 것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니 읽을 도리밖에(물론 분량에 대해선 할말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책이 번역중이라는 소식을 접한바 있기 때문에 책의 출간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출간소식이 반갑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좀 찜찜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건 책값(40,000원)보다는 책제목 때문이다. 물론 책값이 원서보다 두배 가까이 비싼 건 부담스럽지만(원서의 경우 핀커의 모든 책은 염가본이 나와 있고, 또 중고로는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로크의 tabula rasa를 의역했다는 blank slate를 꼭 '빈 서판'으로 옮겨야 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제목은 책의 얼굴이거늘).

잘 아는 바대로, 타불라 라사(혹은 창비식 표기로 '타불라 라싸')는 '백지(상태)'란 뜻이고, 모든 철학교양서 및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러니 그냥 '타불라 라사'라고 하든가(이게 차라리 '서판'이란 말보다는 친숙하다), '백지(상태)'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서판'은 글씨를 쓰는 판이 아니라, 글씨를 쓸 종이를 깔아놓기 위한 판을 말한다. 이게 원의에 맞는 것인지도 좀 의심스럽지만, 그럴 경우에라도 '글씨판' 같은 말 대신에, 잘 쓰지 않는 '서판'을 번역어로 선택한 것은 아쉽다.

영한사전에 slate는 글쓰기용 '석판'으로 돼 있는데, 이럴 경우 이 '석판'은 '서판'과는 다른 것이다(전자는 글씨를 쓰는 판이고, 후자는 글씨를 쓰기 위한 판이다). 요컨대, 오역의 범주에 들어갈 소지가 있다. 이것이 내가 이 제목에 대해 찜찜해 하며 유감스러워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이 책을 거명할 때 매번 '빈 서판'이라고 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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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용어 중 jouissance는 그간에 '향락' '희열' 등이 사용됐지만, 홍준기의주장 이후(<라캉의 재탄생>, 102-3쪽) '향유'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아진 듯하다(jouissance는 바르트도 사용하는 용어인데, 라캉과 바르트 중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연배로 봐선 바르트가 빌어온 거 같기도 하고. 영어로 라캉의 jouissnace는 보통 enjoyment로 번역하며, 바르트의 jouissance는 enjoyment도 쓰지만, 더 자주 눈에 띄는 건 bliss이다.)

 

 

 


물론 최근에는 상식적인 '쾌락'을 번역어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라캉에 대해서 좀 안다는 이들로부터 욕을 먹기 십상이다), 기본적으론 그것이 pleasure와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쾌락'이 pleasure의 번역어로서 거의 굳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지 jouissance의 번역어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여기서 jouissance의 번역어가 갖춰야 할 최소조건을 추출할 수 있는바, 첫째는 pleasure(쾌락)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쾌락원칙을 넘어선 '과도한' 쾌락이란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준기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주이상스의 번역어는 (1)고통 속의 쾌락 (2)죽음의 충동과 결합된 쾌락 (3)법적 개념인 용익권과의 연관성이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그가 제안/고집하는 것이 '향유'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데, 홍준기는 (3)번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1), (2)번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말 '향유(享有)'는 '누려서 가짐'이란 뜻으로 원래 성적인 뉘앙스가 거의 없는 말이다. '자유와 풍요를 향유하다'라고 할 때처럼, 그것은 보통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풍족하게 소유하여 즐긴다란 의미를 갖는다. 즉, 거기에는 '고통'이나 '죽음'과의 의미론적 연관성이 희박하다. 만약에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다면, '모든 국민이 자유와 풍요를 향유하는 사회'와 같은 '국가적' 캐치프레이즈는 넌센스가 될 것이다.

또 하나 '향유'란 말은 '소유'와의 연관성 때문에 계급적인 뉘앙스를 갖는 말이다. '향유'란 말에서 내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리석 욕조에서 거품목욕하거나 명품쇼핑에 나선 여피족들인데, 거기에 어떤 '고통 속의 쾌락'이 있는 것인지(정말 비명을 지르며 목욕하고, 아주 괴로워하며 '이거 얼마나 하나?'라고 묻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법적인 뉘앙스를 살려서 우리가 '삶을 향유할 권리'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기 삶을 망치고 패가망신할 권리'란 뜻으로 새기는 것인지?

원래 법학을 전공했던 홍준기로선 '법적 개념'과의 연관성 운운하며, '향유'를 제시할 때,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서 자신을 위치시키며 자신의 기득권을 얼마나 '향유'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향유에는 어떠한 '고통'도 부재하다는 점에서, 나는 '향유'라는 번역어가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부족한 건 법학이나 정신분석학 공부가 아니라 국어 공부이다.

주이상스의 번역어로 내가 선호하는 것은 '향락'인데, 물론 그것이 완벽한 번역어이기 때문은 아니다(거듭 말하지만, 번역의 조건은 번역의 불가능성이다). 하지만, 내가 앞에서 내세운 두 가지 최소조건을 향락은 충족시킨다. 즉 (소유를 연상시키는) 향유와는 달리, (쾌락과 운을 맞추는) 향락은 쾌락과 구별되는 짝개념으로서 유용하다(나는 사실 '희열'에도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향락'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향락'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고통 속의 쾌락' '죽음 충동과 결합된 쾌락'의 의미를 여러 후보들 가운데 가장 잘 전달한다는 것이다.'향락산업'이란 말에도 암시되어 있듯이('향유산업'이나 '희열산업'은 없지만), 그것은 어떤 지나친/과도한 쾌락 추구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즉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과도한 쾌락으로서의 향락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나는 '향유'가 그런 뉘앙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오역을 향유하는 번역서 <향락의 전이>의 최대 기여는 '향락'이란 번역어를 보다 익숙하게 만든 거라고 나는 생각하며, 주이상스의 번역어로 '향락'을 지지한다. '향유'를 고집하는 이들이 어떤 반론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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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2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서평이나 글을 볼때마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번역의 오류를 집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음! 로쟈님의 글이 출판사에 흘러들어가서 앞으로 나오는 책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아니면 직접 번역계로 투신한다면, 로쟈님의 번역서는 다 사서 볼 용의가 있다.

로쟈 2004-02-2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번역서들을 내야겠네요^^ 사실 제가 오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데 좀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건 분통이 터져서입니다. 보통 1-2만원 이상하는 고가의 인문 번역서들을 사서 읽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고, 게다가 그 원인이 엉터리 번역에 있다고 하면 정말 분통터질 일이지요(책은 환불도 안되고!). 우리식 출판관행이 단기간에 바뀔 리는 없겠지만, 하여간에 싸울 건 싸우고 얻을 건 얻어야겠습니다. 독자의 제몫찾기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