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에밀 시오랑(E. M. Cioran, 1911-1995)에 대한 글을 몇 마디 적고자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계속 미루어졌었다(밀린 일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 <독설의 팡세>(문학동네, 2004, 원제는 '고뇌의 삼단논법' 정도)을 다른 책을 대출하기 위해서 부득이 오늘 반납해야 했다. 해서, 아쉬운 마음에 몇 가지 메모만을 남겨둔다(세번째 이미지는 <고뇌의 삼단논법> 불어본(1952)이고, 네번째는 <존재의 유혹> 영역본, 그리고 마지막은 손택의 에세이집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Styles of Radical Will)>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Cogito ergo Boom)"는 물론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비튼 것인데, 이 새로운 명제의 출처는 수잔 손택의 시오랑론 '반(反)자기 사고 - 찌오런에 관한 고찰'(<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에 수록돼 있다)이다. 지나가는 김에 덧붙이자면, 국역본에서 '시오랑'이 루마니아 원음에 따라 '찌오런'이라고 표기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원음주의'의 환상에 대해서는 자주 지적한 바 있다). 루마니아 태생이긴 하지만, 20대에 파리로 건너와 그가 평생을 산 곳은 프랑스 파리이며 이후에 대부분의 에세이도 루마니아어가 아닌 새로 배운 '불어'로 썼기 때문이다('외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 시오랑 자신이 비통해 했지만). 게다가 다른 번역본들과의 일관성 문제도 있다. 참고로 러시아어본들에서는 '시오란' 혹은 '쵸란'이라고 표기한다.

 

손택의 에세이는 영역본 <존재에의 유혹> 서문으로 씌어졌는데,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글이 영어권 최초의 본격적인 시오랑론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의 제목이, 시오랑의 세계를 잘 요약해준다고 판단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가 근대철학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면, 시오랑이 미덥잖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코기토의 불철저성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의 잘못은 너무 참을 만하다는 것이다."(<독설의 팡세>, 39쪽) 사유를 철저하게 극단에까지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존재'를 통과하여 의당 '폭발'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가령, 칸트의 비판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아포리아들을 하루만 물고 늘어져보아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것이다. 세계는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얼 사유할 수 있는가? 아이가 아이였을 때 흔히들 묻곤 하는 '왜 나는 나이고 너가 아닌가?'란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대답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가? 어떤 원리로부터 연역되는 가능한 철학적 귀결들을 그냥/마냥 참아낼 수 있는가?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철학의 참을 만함'을 더이상 참지 못할 때, 우리는 '폭발'한다.

 

Emil Mihai (Michel) Cioran

 

때문에, 시오랑의 아포리즘들은 어떤 사유의 응집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폭발의 잔재로서 읽혀야 한다. 즉, 그의 아포리즘들이 지시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종말로서의 폭발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철학자, 에세이스트'라는 백과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말하자면, '시오랑, 혹은 폐허의 철학자'로 이름붙일 수 있을까? 마치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폐허의 한가운데 놓였던 피아니스트 스필만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1979/2001)의 한 장면. 하긴 그는 하루하루를 묵시록적 예언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매일 최후의 심판이 내일이라고 약속해주는 나의 광기. 그 자비심이 없다면 나는 한 나절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45쪽)   

 

 

시오랑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내 기억에 1990년대 초반쯤 계간 <작가세계> 특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대번에 그의 아포리즘들에 끌렸고, 곧이어 출간된 <절망의 맨끝에서>(에디터, 1994; 강, 1997), <내 생일날의 고독>(에디터, 1994) 등도 반가운 마음에 사서 읽었다. 한데, 시오랑론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한국어 번역본들은 대부분 제목의 선정에서부터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불어본들을 읽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90년대 후반 이후로 영역본들이 많이 나와 있길래 작년말에 도서관에 대거 주문을 넣은 것 정도가 나의 성의 표시이다. 3권의 러시아어본도 갖고 있는데, 모음집이어서 작품수로는 7-8권 가량이다. 대부분이 아포리즘집 형태인 만큼 시오랑의 책들은 두껍지 않다).

 

가령, <독설의 팡세>도 비록 그런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손 치더라도 원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며, <내 생일날의 고독>은 원제가 '태어남의 잘못(=불편)'에 대하여'이고,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이땅, 1992) 혹은 <동구로 띄우는 편지>(이땅, 1990)의 원제는 <역사와 유토피아>이다.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산수야, 1995)의 원제가 <고백과 저주>라는 걸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니 수면제 대용이 아니라면(실제로 시오랑은 거의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국역본들을 읽고 제대로 된 시오랑론을 쓴다는 건 치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아직 시오랑에 대한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빚을 다 탕감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변명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를 가지고 모두 입막음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진 또다른 빚은 '눈물의 일반이론'에 관한 것인데, 예전에 같은 제목으로 역시나 '변명'에 해당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10년쯤 전의 일이다. 부분적으로 따라가본다.

 

 

"나는 울고 싶은데 神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나는 의사가 와서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아내가 울고 있다고 말할까봐 불안하다. 나는 그녀에게 가지 않겠다. 내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내 어린것은 온갖 것을 보고 듣는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키라를 사랑한다. 내 어린 키라는 자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애 역시 내가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내게 내가 잘 잤는지의 여부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언제나 잘 잔다고 말해준다. 나는 무얼 써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神은 내게 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결함을 지녔다. 나는 인간이다. 神이 아니다. 나는 神이 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춤을 추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시를 쓰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이것이야말로 내 생의 목표이다."(니진스키, <고백>) 

 

∴ ∴ ∴


 

 

"드디어 관에 뚜껑이 덮였다. 못이 꽝꽝 박히고 짐마차에 실렸다. 마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 데까지밖엔 전송하지 않았다.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말은 속보로 달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뒤를 쫓아가면서 어이어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뛰어서 쫓아가느라고 그 울음소리는 몹시 떨렸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집으려고 멈추어서지도 않았다. 비가 그의 맨머리를 적셨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마차의 이쪽저쪽을 겅중겅중 뛰어서 왔다갔다했다. 낡아빠진 프록코트의 옷자락은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호주머니란 호주머니에서는 책들이 비죽이 기어나오고 무슨 책인지 커다란 것이 한 권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이 가련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쉴새없이 호주머니에서 진창으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불러 세워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가르쳐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마차 뒤를 쫓아갔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들러붙더니 함께 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 ∴ ∴

능글맞기도 하지만 괜히 잘 우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을 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이 두 러시아인 댄서/작가에게 힘입은 것이라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 사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런 그들의 정서가 나에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다지 잘 우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에 대한 고백으로서의 울음이 우리 생의 첫 발성(언어)이었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동받는다. 외롭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우리가 이 근원의 장소를 찾아가고 이 원초적 정념에 호소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무받는다.

 

 

예컨대, <파리, 텍사스>(1984)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정이 파탄나자 트래비스는 자신이 잉태되었던 바로 그 근원의 장소로서 '파리'(프랑스의 파리가 아니라 텍사스의 파리이다)를 찾아 사진 한 장을 들고 황량한 텍사스 사막을 헤맨다. 그의 그런 행위에 의해 물리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공간이 '파리 Paris/텍사스 Texas'로 분절된다. 이 분절은 성(聖)/속(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미론적이고 구제론적인 것이다. 이 고질적인 의미론/구제론은 아주 인간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이다. 우리는 그리 돼먹은 듯하다.

∴ ∴ ∴

 

"나는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눈물들은 생각들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눈물과 마찬가지로 쓰라리지 않을까?" 이것은 루마니아의 작가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둔 그는 1937년 파리로 건너가서 이후 죽을 때까지 인근의 창녀들이 야밤에도 소란을 피우는 싸구려 호텔 다락방에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철학을 그만둔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칸트와 피히테, 쇼펜하우어, 베르그송을 읽으면서 철학을 제외하곤 시에도 무관심했던 그는 남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어떤 주제를 고를까 고심했다. 그리고는 진부하면서 뭔가 독특한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지도교수에게 달려갔다. "'눈물의 일반이론'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참고문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겠나." 이에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논문의 근거가 되니까요." 그는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고, 그는 그 순간 철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다.

 

그의 말: "나는 철학이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철학은 인간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각자의 운명속으로 내팽개치고 마는 것이다."

∴ ∴ ∴

나는 언젠가 나 자신이 그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오랑이 포기한 '눈물의 일반이론'이란 것. 현재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 '눈물의 일반이론'을 위한 연습이고 밑그림이라는 생각도 한다. 거꾸로 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에 근거한다.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는 철학의 무능력 자체는 바로 우리의 무능력을 닮은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을?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진 각자의 운명(시오랑은 해체de-composition라고 부른다. 이 해체가 그의 글쓰기 양식을 규정한다.) 속에서, 각자의 눈물 속에서 의미있는 일반이론, 즉 연대(solidarity)를 끌어내는 일 말이다. 개인의 울음을 집단의 통곡으로 바꿔놓는 일 말이다.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예상태이다.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다만, 시오랑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이고, 무언가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사기의 표시이다."(37쪽) 그러니 나의 우유부단이 죄악이 될 수는 없겠다. 바로 앞에서 시오랑의 철학도 시절 일화를 소개했는데, 출처를 따진다면 바로 <독설의 팡세>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다른 역자의 번역이기에 전문 인용해보겠다(내용은 비교해 보시길).

 

경험부족으로 철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던 나이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특이한 주제를 원했다. 그것을 찾았다고 믿었을 때 나는 서둘러 스승에게 알렸다. "눈물에 대한 일반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수준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군. 그러나 참고문헌을 찾기 곤란할 텐데." "상관없습니다. 역사의 권위가 뒷받침해줄 것입니다." 나는 무례하고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조급한 스승이 내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을 때, 나는 내 안에서 그의 제자를 죽이기로 결심했다.(51-2쪽)

 

 

비록 계획했던 '눈물의 일반이론'은 아직 못 쓰고 있지만, 나는 전공관련으로 논문을 쓸 때마다 시오랑의 일화를 되새기곤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것(시오랑과 달리 나는 참고문헌도 열심히 찾는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란 주제의 시오랑론을 쓰는 것도 그러한 요구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만큼 살아가기도 해야 한다는 것. 어쨌거나 (당분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건 또다른 요구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가 짜낼 수 있는 묘안은 이런 류의 페이퍼로 잠시 자리를 데우는/때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릿광대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으니까."(34쪽)

 

06.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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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에서 한참 웃었네요.
저는 아마 국립묘지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묘비명에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에만 볼드 처리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6-01-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파님/ 이보 안드리치를 전공하시나요?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유리 로트만(1992-1993)은 러시아 최대의 문화이론가이자 기호학자이며 문학연구가이다. 오래전 학원 시절에 작성한 글 하나를 그에 관한 '소개'의 글이 될 만하겠다 싶어서 여기에 옮겨온다. 혹 텍스트이론이나 문화기호학에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소용이 닿았으면 싶다.

로트만의 저작으론 <예술텍스트의 구조>(고려원, 1991), <문화기호학의 이해>(민음사, 1993), <영화기호학>(민음사, 1994), <문화기호학>(문예출판사, 1998) 등이 번역/소개돼 있다. 물론 그의 학문적 업적과 국제적인 지명도에 비하면 소략한 편이다. 로트만 문화기호학의 기본 개념들과 프로그램 등에 대한 소개는 송효섭의 <문화기호학>(아르케, 2000) 등을 참조할 수 있다(세번째 이미지는 러시아에서 나온 로트만 전집 중 마지막 권의 표지이고, 마지막 이미지는 강의중인 로트만. 그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대학에 오래 봉직했다. 아래 사진은 타르투대학의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1. 텍스트에서 텍스트-기계로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30여년 간의 지적 여정을 통해 러시아의 대표적인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은 기호텍스트/문화텍스트에 대한 방대한 양의 또다른 텍스트를 남겼다. 그의 텍스트들이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기호텍스트(예술텍스트)[초기]와 문화텍스트[후기]의 의미생산 방식이다. 그에게서 물질계와 생명계의 모든 현상은 기호작용을 통해 언어[기호]로 번역되어 기호계로 편입된다. 그리고 이 기호계는 무엇보다도 의미의 생산과 소통의 메카니즘으로 구성되는 세계이다. 이 기호계에 편입되면서, 현상은 비로소 현상의 이름에 값하는 의미를 획득하며, 현실의 사태는 사태로서의 규모와 의의를 부여받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의미작용이다. 

의미작용이란 의미를 생산하는 작용이다. 여기에 어떤 텍스트가 주어졌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하게 어떤 의미 잠재태, 의미 가능태를 지닌 존재의 현실태일 따름이다. 텍스트는 그저 사물로서 존재한다(로트만의 아들 미하일 로트만은 자신의 아버지를 칸트주의자로 규정하면서 그의 기호학의 기본개념인 텍스트가 칸트 철학에서의 물자체(Ding an sich)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사진은 미하일 로트만). 즉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텅빈 기호로 자신의 존재를 변환시켜야 한다[=기호작용]. 그리고서는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 이름부르는 행위가 바로 ‘읽기’이며, 이 읽기를 통해 텍스트는 자신의 많은 가능태 중의 하나를 현실태로 만든다{=의미작용]. 이러한 일련의 과정, 그러니까 다수의 가능태가 하나의 현실태로 고정되는 가역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이 바로 의미생산과정이며, 이것은 의미작용의 결과이다.

 

이때 이러한 과정 속에 놓이게 되는 대상이자 주체인 텍스트는 말의 정당한 의미에서 텍스트-기계가 된다. 그것은 생산하면서 생산되는 특수한 기계이다. 로트만의 기호학이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로 이 텍스트-기계이다로트만이 직접 ‘텍스트-기계’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텍스트-기계'는 그의 ‘텍스트’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참고로, 텍스트-기계(textual machine)는 에코에게서 빌어온 개념이다). 그래서 그가 텍스트 기호학자라는 말은 이 텍스트-기계의 기계공학자라는 말과 등가적이 된다. 사실, 이러한 명칭은 그의 지적 경력에 잘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

  

 

 

 

 

 

 

 

 

2. 기호와 기호-기능       


기호는 기호작용의 결과로 생성된다. 기호는 기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부품이며 원소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다소의 모호함을 내포하게 되는데, 바로 텅비어 있음이 기호의 기본적인 자질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것이 기호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아니어야 한다. 기호는 다만 어떤 것이 되기 위한 가능성일 따름이고 준비상태일 따름이다. 그래서 기호는 기호-기능과 별다른 의미차이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U. 에코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호-기능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에코가 퍼스(C. S. Peirce) 기호학의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받아들이고 있는 한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때 실용주의적인 사고란 것은 이름껍데기만 있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고를 말한다.

 

이에 대한 로트만의 입장은 조금 차이를 보인다. 그는 텍스트의 자리를 텍스트-기계 이전의 단계에 물자체와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서 마련해둔 것처럼 기호의 자리를 기호-기능 이전의 단계에 마련해둔다. 에코적인 입장에서 보면, 기호는 본 얼굴이 없고 단지 마스크들만 있는 것이고, 로트만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그런 마스크들의 가족유사성을 보장해주는 어떤 얼굴(혹은 얼굴의 흔적)이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미묘하긴 하지만 여러 가지 효과를 낳는다. 텍스트와 텍스트-기능에 대한 로트만의 구분은 이 효과에 속한다. 그것은 기호와 기호-기능의 구분과의 연관성 속에서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3. 텍스트와 텍스트-기능


텍스트는 일반적으로 표현성, 경계성, 구조성에 의해 규정된다(<예술텍스트의 구조> 참조). 여기서 표현성이란 공간적인 고정화를 말하고, 경계성이란 비텍스트와의 대립관계 속에서 규정된다는 걸 말하며, 구조성이란 특수하게 조직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한다. 이걸 뭉뚱그려서 표현성이라고 한다면, 언어학적 텍스트는 이 표현성에 의해 규정되는 텍스트이다. 그런데 이 언어학적 텍스트만이 텍스트의 전부가 아니다. 로트만은 거기에 메타언어학적 텍스트 개념을 도입한다.

 

 

 

 

 

 

 

 

 

메타언어학적 텍스트는 진리성이라는 사회적/문화적 가치에 의해 규정되는 텍스트이다. 즉 언어학적 텍스트가 존재론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면, 메타언어학적 텍스트는 가치론적 규정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로트만의 기호학 이론체계 속에서 텍스트는 종적 분화를 일으킨다 어떤 기호나 텍스트가 그것 자체로 가치담지적이라고 보는 바흐친/볼로쉬노프의 입장과 로트만의 입장 사이의 차이가 부각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그리고 이것이 로트만의 텍스트론의 바탕을 이루면서 문화텍스트에 대한 그의 기호학을 생산적인 것으로 만든다(참고로,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랜덤하우스중앙, 2005)에는 로트만 기호학에 대한 해설과 함께 바흐친과의 흥미로운 비교가 제시돼 있다).  

 

텍스트 = 언어학적 텍스트(표현성) + 메타언어학적  텍스트(진리성) 

 

이 메타언어학적 텍스트를 로트만은 텍스트-기능이라고 부른다. 이 텍스트-기능이 문제되는 지점은 텍스트가 문화적 가치체계의 변동 속에 놓이면서 언어학적 텍스트와 메타언어학적 텍스트의 단일성이 의심받게 되는 지점이다. 즉 언어학적 텍스트의 표현성이 더 이상 메타언어학적 텍스트의 진리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될 때, 텍스트의 권위에 가려져 있던 비텍스트 그룹의 숨은 주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텍스트를 사칭하는 일이 발생한다. 텍스트와 비텍스트 간의 동력학은 이런 과정을 문화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견인해낸다. 그리고 이 동력학에 의해 로트만의 형식주의는 특이한 활력을 획득한다. 텍스트적인 하위약호들의 조직화(표현성)를 전제로 한다면(로트만은 '텍스트와 기능'이란 논문에서 마이너스 표현성까지 고려하여 원래는 텍스트를 8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텍스트와 텍스트-기능은 네 가지 범주의 텍스트 유형을 만들어낸다.

          

 

     텍스트

    텍스트-기능

   텍스트Ⅰ

        +

         +

   텍스트Ⅱ

        +

         -

   텍스트Ⅲ

        -

         +

   텍스트Ⅳ

        -

         -

 

먼저 텍스트Ⅰ은 텍스트의 언어학적인 의미론적 통사론적 구조와 메타언어학적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그리고 텍스트Ⅳ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로서 비텍스트, 즉 텍스트의 예비주자이다. 텍스트Ⅱ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더 이상 텍스트-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에 대한 예로서 로트만이 들고 있는 것은 1830년대 러시아 시문학이다. 시에서 산문으로 이행하던 이 시기에 시(=텍스트)는 더 이상 가치담지적인 장르로 인식되지 않았고 따라서 텍스트-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반면에 이 시기의 산문은 텍스트Ⅲ에 속하게 되는데, 새로운 산문 장르가 가치담지적이라는 당대의 믿음 때문에 1830년대 산문문학은 텍스트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 네 가지 텍스트 유형은 당연히 고정적이거나 정태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론적으로 규정되는 언어학적 텍스트는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가치론적으로 규정되는 텍스트-기능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자리바꿈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시대는 어떤 보편적인 가치체계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가치들이 양립하고 있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동일한 텍스트일지라도 개개인이 가진 가치관이나 문화적 선입견에 따라 서로 다른 텍스트 유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예를 더 들어보기로 하자.

 

 

 

 

 

 

 

 

 

4. 피에르 메나르의 경우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보르헤스 전집2: 픽션들>, 민음사, 1994, 67-89쪽)는 나보코프와 동갑내기로서 형이상학적 주제(혹은 문학이론)를 서사화한 대표적인 작가로 주목받는 호르헤 보르헤스(1899-1986)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메나르(허구적 인물)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 일부를 한 자도 틀리지 않게 베껴썼음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를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다시 쓰기, 베껴쓰기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많이 이해되는 이 단편을 로트만의 텍스트/ 텍스트-기능 범주를 이용하여 다시 읽게 되면, 이 작품이 문학텍스트에 대한 ‘읽기’의 문제 또한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세르반테스의 텍스트와 피에르 메나르의 것은 언아상으로는 단 한자도 다른 게 없이 똑같다. 그러나 피에르 메나르의 것은 전자보다 거의 무한정할 정도로 풍요롭다”고 주장하는 서술자는 이어서 직접 한 대목을 비교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진리, 진리의 어머니는 시간의 적이고, 사건들의 저장고이고, 과거의 목격자이고, 현재에 대한 표본이며 충고자이고, 그리고 미래한 대한 상담관인 역사이다. (<돈키호테> 제Ⅰ부 9장)


  17세기의 <평범한 천재>인 세르반테스에 의해 편집된 이러한 열거형 문장은 역사에 대한 단순한 수사적 찬양에 불과하다. 반면 메나르는 이렇게 적는다.


……진리, 진리의 어머니는 시간의 적이고, 사건들의 저장고이고, 과거의 목격자이고, 현재에 대한 표본이며 충고자이고, 그리고 미래한 대한 상담관인 역사이다.


  역사는 진리의 <어머니>이다. 이러한 생각은 놀라운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와 동시대 사람인 메나르는 역사를 현실에 대한 탐구가 아닌 현실의 원천으로 생각한다. 메나르에게 있어 <역사적 진실>이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마지막 문구는 뻔뻔스럽게도 실용주의적이다. (...) 또한 문체에 있어서의 차이점도 아주 명명백백하다. 메나르의 고어체-무엇보다도 외국어 문체적인-는 작위적인 흔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따.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던 선구자 세르반테스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 메나르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그때까지 초보적이고 불완전했던 읽기라는 예술을 풍요하게 만들었다. 고의적인 시대 교란과, 잘못된 원저자 설정의 테크닉을 통해서 말이다.  

 

여기서 세르반테스의 텍스트와 메나르의 텍스트 간의 언어학적 텍스트, 즉 표현성은 동일하다. 하지만 메나르가 3세기 후에 다시 (베껴)쓴 텍스트는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된다. 이것을 텍스트 개념만 가지고 이해하려 하면 패러독스에 부딪치게 된다. A=A이면서 A≠A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률에 위배되는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기능 개념을 도입하여 읽게 되면, 세르반테스의 텍스트가 평범한데 비해서 메나르의 것은 놀랍다는 서술자의 주장은 그다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두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가치체계의 차이로 말미암아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두 텍스트는 가치론적으로는 서로 다른 텍스트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언어학적 텍스트와 메타언어학적 텍스트 사이의 불일치가 여기에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베겨)쓰기’가 아니라 ‘읽기’이다. 이 읽기는 텍스트를 재현하는 모방론적 읽기가 아니라 텍스트를 생산하는 생성론적 읽기이다.(이런 관점에서 [메나르가] “초보적이고 불완전했던 읽기라는 예술을 풍요하게 만들었다”는 서술자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텍스트는 없고 텍스트-읽기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로트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비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텍스트-읽기[현상]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텍스트[물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그의 칸트주의적인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기호이론 체계에서 객관적 실재에 대한 요구는 중심적인 것이다. 그가 텍스트-기계의 의미생산에 관심을 두면서도, 동시에 기호활동의 목적이 일정한 내용[전언]의 전달에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요구가 놓여 있는 것이다(그의 이러한 입장은 의미작용(signification)을 강조하는 R. 바르트 기호학의 쾌락주의와 의미전달(communication)을 강조하는 U. 에코 기호학의 실용주의의 중간쯤에 자리하는 것이다. 이걸 규범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이 점은 “(로트만의) 예술텍스트 분석이 결국 예술어를 비예술어로 번역함으로써 예술텍스트의 어떤 일정한 의미, 명백한 의미를 알아내고 있는 작업이라는 사실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바흐친과 달리 예술텍스트 구조분석에 로트만이 전적으로 시텍스트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흐친 또한 산문텍스트만 연구대상으로 사용하면서 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쨌든 과연 이 두 이론체계를 평가할 수 있는 공약적인 준거가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칸트철학과 헤겔철학이라는 두 비공약적 전통에 기대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흐친의 경우 (신)칸트주의 입장과 헤겔주의의 입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이에 대해서는 페터 지마의 <문예미학>, 을유문화사, 1993 참조). 어쨌거나 예술텍스트의 번역가능성은 로트만 기호학의 기본 전제이다.(아래 사진은 아내이자 저명한 러시아문학 연구자인 민츠 여사와 함께 한 만년의 로트만.) 

5. 로트만-기계와 한국 현대시 

한 이론의 이론으로서의 생산성을 판단하는 한 가지 기준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데이터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이론의 번역가능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로트만-기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이론이 한국 문학, 특히 한국 현대시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그의 시텍스트 분석 개념과 방법이 우리 나라에 일부 소개된 바 있지만(유재천, '로트만의 시의 기호학', <현대시사상>(1991년 여름호) 등), 아직 실제적인 분석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어(교착어)와 러시아어(굴절어) 사이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시 장르 자체가 언어 기호의 가능성(특히 기표적 가능성)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한 언어의 가능성에 근거하여 정초된 시이론이나 분석방법이 다른 언어에 그대로 적용될 리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로트만의 텍스트/텍스트-기능 범주는 언어학적인 범주가 아니라 메타언어학적 범주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한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적용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 한국 현대시, 1980년대와 90년대의 몇몇 시인의 경우를 가지고 로트만 텍스트론의 적용가능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대 초반은 ‘시의 시대’라 불릴 만큼 많은 시인들이 활동했고 다량의 시들이 생산됐던 시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의 시대’의 대표주자들이 자신의 시를 의식적으로 반시 혹은 비시로서 규정하고자 했던 점이다. 이것은 80년 광주 경험 이후, 모든 현실적인 가치에 대한 부정에서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확인하고자 했던 젊은 시인들의 정치적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식과 어법을 파괴와 해체와 두드러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즉 시의 텍스트성(표현성)이 더 이상 가치담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 이상, 오히려 반텍스트성, 즉 텍스트에 대한 파괴와 해체가 시의 시다움을 보장해주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등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는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① 그해 가을 나는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壁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女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을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家族들이

   埋葬을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假面 뒤의 얼굴은 假面이었다  


②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지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③ 수영이 삼촌 별아저씨 오늘도 캄사캄사합니다. 아저씨들이 우리 조카들을 많이많이 사랑해 주신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코리아의 유구한 푸른 하늘 아래 꿈 잘 꾸고 한판 잘 놀아났습니다.

   아싸라비아

   도로아미타불 

 

 

 

 

 

 

 

 

 

 

①은 이성복의 '그해 가을'(부분), ②는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전문), ③은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부분)이다(보다 더 형태파괴적인 시들이 있지만(특히 황지우의 경우), 인용의 번거로움 때문에 여기서는 ‘모범적인’ 시들을 골랐다. 참고로 이들의 데뷔시집은 이성복, <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1981)이다).

 

이 시들에서 표출되고 있는 환멸, 증오, 풍자, 연민 등의 정서는 이전 세대의 시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직선적이고 공격적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서정시에 길들여진 독자라면 “이것도 시인가?”라는 반응을 보일 만도 하다(좋은 시는 정서를 순화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 하지만 이런 공격성(=전투성)이야말로 이 시대 시의 징표였다. 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시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 우리는 텍스트-기능의 관점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바, 이들은 기성의 가치와 체제에의 저항이야말로 시의 존재의의이며 기능이라고 보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시대의 문화적 컨텍스트는 존재론적으로 규정되는 텍스트보다는 가치론적으로 규정되는 텍스트, 즉 텍스트-기능을 보다 더 많이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80년대 후반(그리고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몇몇 시인들의 시에도 시/비시[텍스트/비텍스트]의 문제틀은 텍스트-기능과 관련하여 적용될 수 있다. 장정일, 유하, 기형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④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작은술/ 후추가루 ¼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⑤ 경천동지할 무공으로 중원을 휩쓸고 우뚝 무림왕국을 세웠던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이 주지육림에 빠져 온갖 영화를 누리다

   무림의 안위를 위해 창설했던 정보기관 동창서열 제이위

   낙성천마 금규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무림계는 난세천하를 휘어잡으려는 군웅들이 어지러이 할거하기 시작했다

   차도살인지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용했던 천마대제 만박

   천상옥음 냉약봉, 중원제일미 녹부용이 그의 진기를 분산시킨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수하친병의 벽력장에 철골지체 천마대제가 어이없이 살상당한 건

   곁에 있는 사람도 자객으로 변한다, 삼라만상을 경계하라는

   무림계의 생리를 너무도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⑥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④는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부분), ⑤는 유하의 '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부분), ⑥은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전문)이다(참고로 이들의 데뷔작은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유하, <무림일기>(1989),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1989, 유고시집)이다. <무림일기>의 이미지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을 대신 띄운다).

 

④, ⑤에서 특징적인 것은 규범문화 속에서 비텍스트에 속하는 요리책과 무협지의 언어들이 시어로 편입되면서 텍스트화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텍스트화에는 사회적 인준의 절차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바, ④를 표제시로 한 시집이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고 ⑤의 연작시 또한 정통 문학지의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이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텍스트-됨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비시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시적인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 것인데, 비텍스트의 마이너스적 가치가 오히려 플러스적인 가치로 전화된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⑥은 시의 내용에서 그런 마이너스적인 가치가 시적인 질감을 얻게 된 경우이다. 비교적 전형적인 시텍스트의 형식과 어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시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비관적인 음조의 자기통찰은 독특한 개성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때문에 평자에 따라서는 “시가 아니다”고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의 새로운 구석을 보여줌으로써 이 시인의 경우 90년대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시인들의 작업 배경에 바야흐로 소비 사회의 도래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학적 가치의 영역에 있어서도 오래 음미하면서 읽어내는 시가 아니라 한번 읽고 재미보는 시들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점차 문학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고, 앞에서 열거한 세 시인의 경우는 기존 문단의 순수시(이건 고정관념이지만)와 새로 등장한 소비성 시 사이의 경계에 놓여 있다(특히 ④와 ⑥은 베스트셀러 시집이었다). 이 점은 8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지식인-시인, 투사-시인들과 비교될 만한 것이다. 이후 90년대 중․후반에도 여전히 많은 시들이 씌어지고는 있지만 앞에서 열거한 80년대 초반, 후반 시인들의 시적 인식틀과 문제틀을 넘어설 만한 새로운 시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물론 이러한 진단은 '과거'의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 새로운 시인들이 많이 등장했으므로. 소위 '다른 서정'의 '미래파'들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텍스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컨텍스트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어떤 시가 새로울 수 있느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바, 그것은 변화하는 시대,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텍스트-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로트만 텍스트론의 관점을 한국 현대시에 적용하여 본 바, 시에 대한 거시적인 준거점의 확보에 그의 이론이 잘 원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보다 말끔하고 정치한 분석은 다른 자리를 요구하는 것이긴 하지만.

 

 

6. 재약호화와 텍스트-기능


로트만의 기호이론은 약호화(coding)와 재약호화(recoding; transcoding)를 구분하는 바('재약호화'는 '코드변환'으로도 번역된다), 이 또한 그만의 특징이 된다. 약호화, 즉 일차적인 약호화는 기호의 기표 체계와 기의 체계 사이의 등가적인 관계 형성이다. 이것은 달리 기호화라 말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기호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재약호화는 이에 비해 광범위한 의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관계맺음이다. 이것은 약호화의 정태적인 이항 모델과대비되는 동태적인 컨텍스트 모델을 구축한다. 여기서 이항 모델이 안정된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해주는 근거가 된다면, 컨텍스트 모델은 다의미성의 모태가 된다.

 

이 컨텍스트 모델에서 기표(표현층위)와 기의(내용층위)는 교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묶음[다발]에서 만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이 기표와 기의 주자들은 댄스장에서 만난다. 이들에겐 어떤 정해진 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댄스 레퍼토리에 맞는 짝을 고르면 된다. 그리고 이 댄스 레퍼토리가 바로 다양한 의미 컨텍스트이고 문화적 컨텍스트이다. 따라서 이 레퍼토리에 대한 고려 없이는 기호의 의미생산 메카니즘을 알 수가 없게 된다. 어째서 그런 짝이 맺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약호화, 즉 이차적인 약호화란 것은 텍스트 구조 속에서, 그리고 문화적 장 속에서, 마치 댄스 레퍼토리에 따라 새로운 짝들이 맺어지듯이, 구축되는 새로운 관계쌍을 말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게 된다. 예술텍스트가 정형화된 형식 속에서도 다른 텍스트들보다 많은 정보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보다 많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먼저 텍스트 내적으로는, 운율적 층위에서, 어휘적 층위에서, 그리고 통사적 층위에서 예술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의 다양성이 한정된 구성소를 가지고서도 다양한 의미조합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또 텍스트 외적으로는 텍스트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 중에 개입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텍스트를 주무르게 됨으로써, 텍스트의 의미는 그 손때만큼이나 확장되게 된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예를 들어보자.


   한 명의 아줌마 안에 수백 수십 명의 아줌마가 숨어 있다

   그 수심의 깊이는 아줌마가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한다

   아줌마는 현재 우리 집 안에도 있다

   아줌마가 생각하는 것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것이다

   아줌마의 생각을 알려면 아줌마들만의 은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학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다.

 

김상미의 '아줌마'(<시와 시학>(1997년 봄호), 55-56쪽)란 시의 1연이다. 이 시에서 ‘아줌마’란 단어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같은 항렬의 여자”라거나 “동년배 혹은 젊은 남의 부인을 높여 정답게 부르는 말”로서의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인 뜻만 가지고 시텍스트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오지 않는다. 이 시텍스트 속에서의 ‘아줌마’는 그동안 자신의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가(그래서 아줌마들끼리는 “은어”로 소통한다) 비로소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 이 시대 한국 주부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에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아줌마이다(이 시는 한국시사에서 ‘아줌마’란 제목을 가진 최초의 시이다). 말 그대로 아줌마들의 손때가 묻은 ‘아줌마’인 것이다. 이런 사정은 이 ‘아줌마’ 대신에 ‘아저씨’나 ‘아가씨’란 단어를 대입시켜 읽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아저씨/아가씨가 생각하는 것은 아저씨/아가씨들에겐 중요한 것이다”란 진술이 결코 “아줌마가 생각하는 것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것이다”란 진술 만큼의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아줌마’의 경우 컨텍스트적 모델로서 재약호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기호는 텍스트-기호가 된다.

 

기호는 의미작용 과정에서 텍스트가 되려는 성향을 갖는다. 예술텍스트에서의 기호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기호는 회화적인 이미지, 어떤 공간적인 이미지가 그렇듯이 단의적인 의미에 저항한다. 그걸 로트만은 의미(론적) 면적이란 말로 표현한다. 이때의 면적이란 것은 여러 묶음 체계가 교차하는 공간이고, 다의적인 의미가 현실화되는 공간이다(라흐만에 의하면, 로트만의 '텍스트-기호'는 바흐친/볼로쉬노프의 ‘대화성’이나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 개념과 등가적이다). 

 

이 공간은 복수적 약호화에 의해 그 규모가 유지된다. 가령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라고 할 때, 13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13이란 숫자에 교차하고 있는 많은 문화텍스트적 의미가 다 소진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그 의미의 테두리만을 대충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그걸 언어로 테두리 지으려고 할 때와 비슷한 사정이다.

 

문제는 특히 예술텍스트의 경우, 텍스트-기호의 가능성을 모두 허용하면서도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텍스트-기호 이전 단계에 기호의 자리를 인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낳는다. 이런 식으로 해서 로트만 기호이론체계에서 모든 개념은 두 단계로 이분화된다(그의 견고한 이분법!). 이차모델화가 그렇고, 재약호화가 그렇고 텍스트-기능이 그렇고 텍스트-기호가 그렇다. 이러한 형식적 이분화가 로트만 기호학의 균형감각을 지탱해주는 밑바탕이다. 특이한 것이 이런 이분화가 동태적인 모델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그의 기호학은 이상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7. 이제 시작인 결말


앞에서 대략 로트만 기호학의 특징적인 몇 가지 개념에 대한 이해(+오해)의 몇 단락을 늘어놓았다. 문학/문화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기호학은 이미 20세기 후반의 한 지배적인 학적 패러다임이 되었고, 톰슨(E. M. Thompson)의 지적대로, 자연과학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정보이론)과 인문(과)학에서의 기호학(=구조주의)은 통합적인 방법론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양대 지적 조류이다. 이 두 조류가 유행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20세기 전반을 지배했던 과학-정향성(그리고 새로운 과학/통합과학)에의 요구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정초된 섀넌(C. E. Shannon)과 위너(N. Wiener)의 커뮤니케이션/정보 이론과 소쉬르와 퍼스의 기호학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학제적 모델이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문학/문화 텍스트에 적용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는 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또한 이러한 방법론사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로트만의 동료 퍄티고르스키는 1960년대를 회고하면서, 모스크바-타르투학파는 인문학에 ‘정밀과학’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했으며 자신들은 ‘현대적인 (과)학자’를 자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자신들의 학적 태도에 특히 20세기 중반 비엔나 학단의 (논리)실증주의가 미친 영향을 인정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모스크바-타르투학파가 ‘2차 모델화 체계’를 기호학의 연구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과학의 언어를 철학의 연구 대상으로 규정한 카르납(R. Carnap)을 따른 것이다(이때 철학은 언어분석이 된다). 이러한 대상 규정은 단순히 방법론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다. 카르납이 하이데거(M. Heideggar)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리)실증주의를 나치즘과 파시즘, 즉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이념(=논리)으로서 제시한 사실은 이 시기의 과학-정향성, 즉 합리주의에 대한 요구가 방법론적인 요청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요청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철학자 로티(R. Rorty)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시사적이다. “영어권 철학에서 1930년대 이전에는 과학철학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1945년경에는 그것이 철학의 중심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하이데거와 카르납 간의 논쟁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카르납은 반나치즘의 정치적 태도와 정치적 자유주의 등을 자연과학의 위상과 연합시켰으며 라이헨바흐, 헴펠, 파이글 등과 더불어 과학의 본질 이해는 곧 나치즘의 비합리성 이해에 중요하다는 레토릭을 설득력 있게 피력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즉 거기에 반기를 드는 것은 곧 나치즘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고 간주되었고, 확증의 논리 등을 탐구하는 과학철학은 철학의 중심 영역이자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실용주의와 과학과 기술', <과학사상>(1997년 봄호), 190쪽)

 

로트만 기호학의 과학-정향성 속에 숨겨진 정치적 무의식을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로트만이 자신의 문화유형론 속에 20세기 러시아 문화유형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이너스 정치참여로 볼 수 있다). 그것은 1930년대 중반 소비예트 권력에 의해 중단된 러시아 형식주의의 학문적 유산과 과학적 정신을 암묵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주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문적 저항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신)칸트주의(neo-Kantian Formalist position)와 헤겔주의(Hegelian Idealism) 사이의 갈등의 한 양태이다. 이러한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도식화한다면, “과학=실증주의=합리주의=형식주의=형식논리=(진리 유보적) 칸트주의 대(對) 이데올로기=역사주의=비합리주의=내용주의(사회학주의)=변증법=(진리 담보적) 헤겔주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밑그림을 가지고 로트만 기호학의 개념체계에서 텍스트/텍스트-기능 개념을 자세하게 분석해보는 것이 이 글의 구상이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의 미비로 말미암아 문장 대신에 몇 개의 단어만 나열되어 있는 형국이 되었다. 그나마 이런 형국에도 몇 가지 오해가 개입되어 있을 테지만, 다시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점들이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워밍업은 끝난 것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기호학을 공부해볼 만한 시간이다. 비로소 시작인 것이다...

 

06. 01. 16.

 

 

P.S. 참고로, 왼쪽은 영어권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로트만 연구서인 앤드류스(E. Andrews)의 'Conversations with Lotman'(토론토대학 출판부, 2003)이며, 오른쪽은 로트만의 저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영역선집 'Universe of the Mind'의 신간본(인디애나대학 출판부, 2000). 이 영역본의 서문을 움베르토 에코가 썼으며, 책은 국역본 <문화기호학>의 대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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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networking 2007-12-3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위의 글을 찾게 되어 잘 읽었습니다(다른 글들도 그렇구요.)

아, 그런데 "7. 이제 시작인 결말" 부분에 정보이론과 기호학을 통합적 방법론이라고 이른 "톰슨(E. M. Thompson)"에 대해 조금만 더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의 관심의 하나는 정보이론과 기호학이 커뮤니케이션을 이론화하는 차원에서 어떻게 만나고 있느냐인데,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문학/문화 텍스트에 적용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유리 로트만의 기호학이 바로 그렇게! 평가된다는 점도 흥미롭고, 말씀하신 예의 "방법론사의 맥락"을 좀 더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톰슨씨가 그런 얘기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꼭 톰슨이 아니어도 방법론사의 맥락에 참고할 것이 있을지요...)

감사합니다!

로쟈 2007-12-30 16:52   좋아요 0 | URL
기억엔 대학원시절에 쓴 발표문이고 '톰슨'은 그때 읽은 한 논문의 필자입니다. 출처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별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냥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에 관한 영어권 입문서/연구서를 한권 읽어보시고 참고문헌을 좀 훑어보시면 맥락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unnetworking 2007-12-3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도움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하는 저로서는) 계속 공부해볼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듯 합니다. 정보이론 등의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기호학 등의 인문과학을 충돌시켜보는...
 

재작년 모스크바통신에 올린 글에서 '공부와 학습'에 관련된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이미지-버전으로 올린다. 이 또한 오프라인용 글쓰기를 위한 '베이스캠프'이다. 당시 글을 쓴 계기는 북매거진 <텍스트>에 실린 한 서평이었지만, 몇 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호 <텍스트>에는 <백범 김구 평전>(시대의 창, 2004)에 대한 서평도 실려 있었는데(서평자도 쓰고 있지만, 이 책이 최초의 평전이라는 건 다소 믿기지 않는다. 정말로 그런가?), 백범의 '나의 소원' 중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언제 읽어도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대목을 옮겨본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반 세기도 더 전의 글이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류가 불행한 것은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보다 근본적인 건 계급적 적대인가?). 그런데 그걸 키워줄 수 있는 건 자연과학이 아니라(예컨대, 인간복제가 아니라) 문화이고 문화의 힘이다(그렇다면, 백범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이 아니라 문화이다. 우리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가?).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고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게 독서문화이고 출판문화이다(거꾸로 괴로움을 주는 건 문화가 아니다. 날림출판은 문화가 아니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야 우리는 인의와 자비와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줄 수 있다. 즐거움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런 즐거움의 향유는 사실 유교적 전통에서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알다시피 공자의 어록인 <논어>는 즐거움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지 않는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즉 배우고 수시로 그것을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여기서 익히다란 말은 (1)(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기 위해) 암기/습득하다 (2)(생활 속에서) 실천하다 등으로 해석되는 듯한데, 러시아어 번역은 이 대목을 배우고 완성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옮기고 있다(세메넨코의 번역). 러시아어본에 따를 때, 군자(君子)자기완성의 인간이고, 유교는 자기완성을 위한 종교이다. 문제는 무엇이 완성인가라는 점. 무엇이 배움의 완성이고 자기완성인가 

 

열심히 사서삼경(혹은 육법전서)을 암기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고시에 패스하는 것이 배움의 완성인가? 그건 어떤 단계(혹은 집안의 부흥)를 뜻할 수는 있을지언정 완성으로는 좀 모자라 보인다(요즘은 특히나 그럴 것이다. 고시도 자격증화되었다고 하니까). 그리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소 막연하다(사실 막연하기 때문에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익힌다는 말을 보다 적극적/구체적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비록 공자가 학이시교지(學而時敎之)라고 말하고 있진 않지만 말이다(()자는 너무 딱딱하긴 하다). 왜냐하면, 배움의 완성은 가르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단순한 논리인데, 군자의 모델로서의 공자야말로 (자신이 배운/터득한 걸) 가르치는 사람 아닌가? 더불어 실습(實習), 즉 실제로/진짜로 배운다는 건 무엇인가? 자신이 배운 걸 해보는 것인바, 교사들의 교생 실습이란 자신이 배운 걸 실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걸 말한다 




 

 

 

직접 가르쳐보는 경험 속에서 자신이 배운 건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그러니까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행위 속에서 비로소 군자가 된다. , 자왈(子曰) 이전에는 공()선생도 군자도 없는 것이다(군자이기에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에 군자이다). 이것이 배움의 변증법이다. , 우리가 진정으로 배우는 것은, 배움을 완성하는 것은 가르침으로써이다(가르칠 수 없는 앎은 완성된 앎이 아니다). 그러니까 학이시습지의 즐거움, 학습(學習)의 즐거움은 가르침으로써 배움을 완성하는 즐거움이다. 학습이란 말이 (주로 사무/행정적인 용어로만 남아있고) 일상어에서는 공부(工夫)(=쿵푸)로 대체된 것은 그래서 좀 아쉽다(동무란 말처럼 북한에서 너무 자주 쓰기 때문일까? 그래서 동무 대신에 친구를 갖게 됐듯이, 우리는 주로 학습하는 대신에 공부하는 것일까?). 공부란 말에는 즐거움이 왠지 빠져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비변증법적이다(거기에 대비되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유물변증법 학습일 것이다).



 


 

 

변증법적인 학습배우다-가르치다란 의미쌍을 조금 확장하면(물론 '가르치다-배우다'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건 가라타니 고진이지만 여기서는 거기까지 나가진 않도록 하겠다), 얻다-베풀다가 될 것이다(배움은 얻음이고, 가르침은 베풂이니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는 것은 무엇을 베풂으로써이다. 그리고, 그것은 덕()이란 말이 진정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베풂으로써 덕을 쌓는 것이니까 말이다(김용옥은 ()얻음으로 옮긴다).

 

그러한 사정은 읽다-쓰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가 어떤 책을 진정으로 읽게 되는 것은, 그러니까 그 책에 대한 읽기를 완성하는 것은 그에 대한 글을(혹은 책을) 씀으로써이다(지젝은 라캉에 대해 계속 씀으로써 비로소 라캉을 읽는다. , 읽기 위해서 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독자가 읽어내는 텍스트(readerly text)와 독자가 써나가는 텍스트(writerly text) 사이의 바르트식 구별은 사소하다. 모든 텍스트는 씌어지는 텍스트이어야 하며, 그리고 그 씌어짐을 통해서 비로소 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컨대, 리뷰를 쓰는 건 책읽기를 통해 얻은 걸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책읽기를 완성해나가는 건 그러한 베풂이다). 그러한 쓰기/베풂의 여정은 끝이 없는가? 그렇다. 그것은 무한이기에 그렇다 

 

<도덕경>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나오는데(대기만성인과응보와 함께 중학생때 교내 가훈전시회를 위해서 급조해낸 우리집 가훈이었다. 사자성어 사전에서 뜻이 좋다고 골라낸 것인데, 인과응보에 나는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대기만성이라나!), 그 뜻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큰 그릇은 이루어짐이 없다이다(만약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크지 않다!). , 큰 그릇이란 무한을 가리킨다. 아무리 큰 유한도 무한보다는 작기 마련이기에 가장 큰 유한이란 곧 무한인 것. 해서, 큰 그릇의 바깥은 없다! 공자가 말하는 성인, 곧 군자도 마찬가지이다 

 

군자란 완성된 인간이지만, 그 자기완성이란 건 미래완료형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진정 완성된 인간(=가장 큰 유한)이란 끊임없이 완성되어 가는 인간(=무한)이다. 그래서 자왈 한 마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하며, 끊임없이 쓰고 또 써야 한다. 글쓰기가 자동사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무엇을 이룬다는 타동사는 자동사의 극한이며, 자동사의 미래완료형이다. 모피를 뒤집어쓴 잉크(=사르트르)가 끊임없이 써댄 것은 그런 때문이다(해서, 앙가주망은 그런 자동사적 글쓰기와 대립/모순되지 않는다). 데리다가 끊임없이 써댄 것은 그런 때문이다.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데리다의 이 말은 많은 오해를 부른바 있는데, 그는 그 말을 (다소 상식적인) 컨텍스트의 바깥은 없다와 등가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텍스트-무한은 곧 컨텍스트 아닌가?)  




 

 


 

 

해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즐거움 또한 끝이 없다. 그런 즐거움을 배우고 익히는 것, 즉 다시 가르치고 베푸는 것이 나는 교육의 몫이라고 생각한다(해서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언제나 즐거운 지식이며, 새로운 계몽주의즐거운 계몽주의이다). 그것이 시민의식의 함양이고 시민교양의 양생(養生)이다. 시민의 학습이고 합창이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떠들어대라! 그것이 한편으론 시인 이성복의 말을 빌자면(그는 한동안 경전 공부를 했었다), 세상과의 연애이다

세상과의 연애를 통해서 제가 깨우친 바가 있다면 삶의 의미는 끊임없는 배움에 있으며, 그 배움은 공경하는 마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더 자세하게 살피자면 배움은 다름 아닌 공경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앞도 뒤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세월 속에서 구원도 해탈도 아닌 막막한 걸음걸이,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막막함을 함부로 제 멋대로 제 편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가는 것, 모든 공부는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 같은 것입니다. (이성복, '세상과의 연애')  

물론 매일같이 읽고 쓰는 우리의 공부, 혹은 학습이 당장에 좋은 세상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백범의 표현을 빌면,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은 데리다의 민주주의만큼이나, 혹은 메시아만큼이나 더디게 (하지만 언젠가는 예기치 않게) 올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울음 또한 당장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詩를 쓰고 쓰고 쓰고서도 남는 작부들, 물수건, 속쓰림…”(이성복, '아들에게')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작부들과 물수건과 속쓰림은 또 그 나름대로 자동사이다. 울음이 그러하듯이. “한 여인이 웬 서류 봉투를 손에 쥐고 흐느끼며, 흐느껴 울며 갔다 콸콸대는 물소리 같은 울음을 거푸 울며 여러 번 길을 건너갔다 아무한테도 그 울음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세상 끝까지 울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듯이 울며 갔다 비교도, 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 꽃핀 벚나무의 검은 가지처럼 검은 길을 그 울음으로 적시며”(이성복,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27')  

우리는 그렇듯 비교도, 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에 대해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면서 다만 기다려볼 따름이다. 배우고 가르치고 베풀면서 고대해볼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날을. 하지만 그때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장 큰 나라와 마찬가지로 경계와 구별이 없는 나라일 것이니, 세계 자체와 등가일 것이다(우리나라=세계). 우리 나라도 너네 나라도 없는 세상 말이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진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초월론적 가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갖다 부으면서, 세상을 밥 먹듯이 구원하면서, 읽고 쓰고 떠들면서, 속쓰림을 참아가면서, 사랑하면서 실연하면서, 가끔은 못살겠다고 도망치면서, 저항하면서 이를 갈면서, 이빨을 갈면서, 즐겁게 아주 즐겁게   

 

06.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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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2010-07-2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로쟈님 글을 보면서 공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1월 1일에 "시편 1편에 대한 읽기"라고 운을 떼고서 한참 늑장을 부린 글을 대충 정리하도록 한다. 어느덧 1월의 중순이다.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같이 안 가면 혼자만 지옥에 간다고 아이가 엄포를 놓는다) 얼떨결에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또 놀면 뭐하겠느냐고 가서 하는 짓이 영한 성경을 펼쳐놓고 '고전'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건 코란이건 불경이건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신앙심을 갖고 있지 않은 탓에(참고로 나는 '신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나는 그냥 '신이 있으나 없으나'를 믿는다. 더불어 내가 존중하는 팩트는 신이 존재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존재는 확실하다는 점이다. 모든 팩트는 존중되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인류의 한 '고전'으로서만큼 언제든지 읽어볼 용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성서 이야기>를 읽은 지도 오래된 만큼 이 참에 '시편' 정도는 읽어두는 게 도리일 것 같기도 하고.

 

 

 

 

겸사겸사 구한 책은 지난 여름에 출간된 이원우의 <성서>(살림, 2005). "서양문화의 뿌리이자 원류인 고전, <성서>"라고 규정해놓은 것이 일단 마음에 든다(한데, 책은 그다지 많이 팔린 것 같지 않다). 400쪽 정도의 분량이므로 '부피'에 대한 나의 요구도 얼마간 충족시키고 있다. 다만, '관련서'라고 참고문헌을 나열해 놓은 대목에서 '허걱'했는데, 모두가 영문으로 된 신학 원서였던 것. 한국어 참고문헌이 왜 하나도 없는 것일까, 의아했는데, 저자가 미국의 한 대학 종교학과 교수였다. 그러니 한국어 책을 읽어볼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 사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참고문헌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건 유감이다. 이전에 사놓고 읽다 만 <인간을 옷을 입은 성서>(책세상, 2001)을 다시 들춰봐야겠다.

참고로, 내가 갖고 있는 관련서는 디스커버리 총서의 <성경>(시공사, 2001)이 거의 유일하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성서의 기호학적, 정신분석학적 해석에 대한 책들도 갖고 있고, <예수는 신화다>(동아일보사, 2002)나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 등도 소장도서이다. 지젝 덕분에 바울에 관한 책들도 몇 권 되고. 하니 엄살을 부릴 일은 아니고 게으름이나 탓해야 할 일이겠다.

 

 

 

 

하지만 욕심은 또 욕심 나름이니, 더 여유가 된다면 클라시커 시리즈의 <성서>(해냄, 2002)와 <아시모프의 바이들>(들녘, 2002) 정도를 서가에 꽂아두고 싶다. 2권짜리 <기독교 죄악사>(평단문화사, 2001)도 읽어두고 싶은 책이고. 비록 종교학 강의들은 몇 과목 들은 바 있으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문외한' 수준이니만큼(보다 정확하게는 '무관심'이었지만) 나머지 책들은 대개 리뷰 등을 참조해야 하는 형편이다. 내가 '관련서'나 '참고문헌'에 민감한 이유이다. 

  

 

 

 

낮에 아서 단토의 책을 구하기 위해 구내서점에 들렀었는데, 아가페출판사에서 나온 <쉬운성경>(2004/2005)이 눈에 띄었다. 실상은 공동번역 성경의 고답적인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성경 읽기를 미루어두기도 했는지라(비슷한 이유에서 나는 우리 법전들을 읽지 않으며 의학서적들을 읽지 않는다. 모두가 어휘나 통사 모든 면에서 아직 일본어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경우, 아버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고시 공부를 하지 않은 이유는 6법전서의 '문장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이다. 최근에 나오고 있는 '순한글' 법전들의 경우 얼마만큼 개선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번쯤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읽고자 했던 시편 1편은 이렇게 번역돼 있었다.    

A

1 행복한 사람은 나쁜 사람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꼐 서지 않으며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2 그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합니다.
3 그들은 마치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새가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4 나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겨와 같습니다.
5 그러므로 나쁜 사람들은 하나님꼐서 내리시는 벌을 
   견뎌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죄인들은 착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6 착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여호와께서 보살펴 주시지만
   악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이와 비교해 볼 것은 기존의 성경 번역이다.  

 

 

 

 

B

1.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걸 우리말답게 약간 푼 번역도 있었다.

C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 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6.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그리고 영역본(그밖에 러시아어본도 참조했지만, 여기에 옮겨놓지는 않겠다). 물론 영역본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아래에 옮겨온 것은 그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시편 1-2편에는 따로 제목이 붙어 있지 않으며 영역에 붙은 제목은 주석상의 필요 때문에 달려 있는 것이다. 1편의 내용인즉슨, '의인의 길과 악인의 종말'이라는 것.

PSALM 1: The Way of the Righteous and the End of the Ungodly

1. Blessed is the man
   Who walks not in the counsel of the ungodly.
   Nor stands in the path of sinners,
   Nor sits in the seat of the scornful;

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i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3. He shall be like a tree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
   That brings forth its fruit in its season,
   Whose leaf also shall not wither;
   And whatever he does shall prosper.

4. The ungodly are not so,
   But are like the chaff which the wind drives away.

5. Therefore the ungodly shall not stand in the judgment,
   Nor sinners in the congregation of the righteous.

6. For the LORD knows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ungodly shall perish.

 

 

여기까지 옮겨놓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애초에 가졌던 글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렸다(아무래도 나는 '쭉정이'인 모양이다). 그간에 시편 1-2편에 대한 제법 많은 분량의 (영어)주석을 읽어본 것이 그냥 나대로의 수확이다. 하고픈 이야기의 '알곡'은 제시한 번역들을 세심하게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태신자'의 성경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진행하기로 한다.

06. 01. 01 -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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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1-0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성경까지..-_- 다음편은 코란인가여? ^^

지난 한해동안 좋은글 많이 읽을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로쟈 2006-01-0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억지로(?) 교회에 잡혀갔다가 들은 설교 말씀이 시편 1편이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제 딴에는 성에 차지 않아서 제 식으로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주제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덕담을 건넬 때 그 '복'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생각해보려는 것뿐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몇 안되는) 관련서들이 흩어져 있어서 짤막한 글 한편 쓰는 것도 불편하네요...

Viator 2006-01-2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번역 중에서는 200주년 기념성서가 가장 희랍텍스트에 충실한 것 같더군요. 개신교쪽에서는 표준새번역 개정판이 괜찮은 것 같고요. 비교해서 읽으실때 참고하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로쟈 2006-01-2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변처녀 2006-04-1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성경을 오랫동안 접해와서인지 쉬운성경은 매우 낯설군요.
우선 "복"이라는 의미가 매우 다르게 다가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무슨일이든 다 잘 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삶에 이루어지는 것을 복이라고 말하고, 때로는 고난이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죠... 개역개정판 3판을 읽고있는데, 그 편이 낫게 여겨지네요^^(시편 1편에 한해서~^^다른 부분은 못 읽어봐서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완전히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수 있겠어요!
믿는 사람들도 어려운 단어가 많이 쓰인 보편적으로 쓰이는 개정판 또는 개역개정판과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것 같아요. 한번 사서 보아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
 

한 교외강좌에서 3주 연속으로 한국 현대시에 대한 강의를 맡게 됐다. 오늘이 첫날이었는데,  대략 '한국 현대시 개관'이란 제하의 강의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좌이기 때문에(모두 여성이고 대부분이 주부) 가급적 평이해야 한다는 게 제1원칙이고, 웬만큼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제2원칙이다(요즘은 대학강의에서도 이런 원칙들이 요구되는 듯해서 유감스럽지만). 모두가 경청해주신 건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이 더러 계셔서 보람이 없지는 않았다(요즘은 대학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은 드물게 만난다).

강의자료로 쓴 것 중 일부는 이미 6년전에 써두고 강의했던 것이어서 이번이 말하자면 '재탕'이었는데, 그간에 늘어난 건 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이래저래 순발력을 발휘하는 '능청'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기형도 시에 대한 편집증적 읽기, 분열증적 읽기'에 포함돼 있었던 간략한 현대시사를 조금 보충해가며 다시 올려놓는다. 이 또한 '재탕'일 텐데, '이미지-버전'이란 핑계가 없지는 않다(능청과 핑계가 어쩌면 나의 왼팔과 오른팔인가?). 읽기에/보기에 편하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대신에 군더더기말들을 더러 집어넣었다.

강의는 시 일반론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서 20세기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는 한국시의 대표적 시인들을 거명하는 식이었는데, 여기서는 20세기 시사에 대한 간략한 리뷰만을 정리해둔다.

 

 

 

 

<황무지>(1922)의 시인이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20세기 시인, T. S. 엘리엇은 시뿐만 아니라 시론에서도 정력적이었는데, 그가 유달리 강조한 것은 전통과 역사의식이었다(러시아에서 '토마스 엘리어트'의 두툼한 비평적 에세이 선집이 작년에 나왔었는데, 나는 그가 '티. 에스. 엘리엇'이란 걸 뒤늦게야 알았다. '토마스'란 이름이 너무 낯설었기에! 거기에 러시아어로 번역된 평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 등이 포함돼 있었을 터인데, 애석하게도 책을 구입할 여유가 내겐 없었다. 참고로, 엘리엇은 우리 시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국 시인의 한 사람이다. 비록 요즘은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란 <황무지>의 시구를 읊조리는 중고생들을 만나기가 아주 힘들 뿐더러 젊은 시인들조차도 '열심히' 읽는 것 같지 않지만).

 

 

 

 

모름지기 25세 이후에도 시를 쓰려는 자는 역사에 대한 '감'을 먼저 연마해야 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역사는 단순한 시사(詩史)를 넘어서 종교사, 종교적/상징적 상상력의 역사에 걸쳐 있지만, 하여간에 시란 것이 젊은 날의 겉멋이나 치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줄곧 강조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김춘수는 (25세 이후에도?) 시론(詩論)을 갖고 있지 않은 시인은 천재이거나 아마추어라고 평했는데(<시의 위상>), 시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 혹은 관념(idea)이 없다면 일찌감치 시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뜻을 그의 주장은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참고로, 시작법이 아니라 작시법이 거의 부재하는 한국 현대시에서 '천재'가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적 조건'이다. 그러니 '치기'나 '도취'로 시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론은 필수적이다. 새삼 확인해두자면, '시론'이란 시에 대한 로고스, 즉 논리를 갖추는 걸 말한다).

그런데, 시론이란 것이 모국어에 대한 감각과 시사(詩史)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가능하지 않다고 할 때,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시의 전통과 역사적 전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에 대한 부단한 의식 속에서, 그것과 맞서며 아주 조금씩 전진해나갈 따름이다. 시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편집증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시인은 그 이전에 씌어진 모든 시를 다 읽고 나서야 거기에 한 문장, 혹은 한 글자 덧붙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시의 역사를 재구성할 때, 20세기 한국시란 무엇이었나?(한국 현대시의 세 가지 원천으로 나는 민요, 한시, 그리고 번역시를 꼽는다. 김소월과 이육사는 각각 민요적 전통과 한시적 전통의 핵심에 놓여 있는 시인들이다. 이상은 많이 밝혀진 바이지만, '한국어'라는 자연어가 아닌 '기호'로 시를 썼던, 보다 정확하게는 문학행위를 했던 시인/작가이다) 20세기 초에 한국시의 기초를 이룬 시인들의 이름으로 김소월(혼의 시), 이육사(정신의 시), 이상(기교의 시) 등등의 계보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김윤식의 분류이다). 

 

 

 

 

 

 

 

 

 

하지만, 20세기를 통틀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을 꼽으라면, 단연 시업(詩業) 60년을 넘긴 미당 서정주를 들 것이다(물론 미당에 버금가는 시인으로 백석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의 시업은 상대적으로 너무 짧았다. 때문에 백석은 '제도로서의 문학'과는 거의 무관한 시인이다. 물론 그의 계보를 따르는 시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령,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시인 안도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의 정치적 과오 때문에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가 우리 부족시의 족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이 '부족시'는 상대적으로 '국가'나 '민족'과는 무관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을 자임하던 그의 시를 보라.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어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깎어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깎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이/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시를 못쓰날에 할망구 손톱 발톱 깎어주며 마음 달래는 일도 '이뿌게' 시로 만드는 그의 솜씨는 대가급이다. 그러나 서정주의 시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있는, 체념적 달관 혹은 달관적 체념의 세계(비평가 김현은 서정주의 정신주의에 대해서 “그의 정신주의는 그가 그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태도의 희극”이라고 적은 바 있다.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 참조)는 이념(idea), 혹은 형이상(形而上)을 배제한 세계이다(“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추천사(鞦韆詞)>는 구절에는 그의 체념적 달관이 집약되어 있다(참고로, 요즘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친일파' 미당의 시들이 거의 빠져 있다고 한다. 문학 교과서에서 경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라고. 대개 학생들은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부정적으로' 인지하곤 하므로, 역설적이지만 미당 시의 독자들에겐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겠다. 학생들에게 미당의 시를 안 읽히는 방법은 교과서에서 빼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집어넣어서 '물리도록' 혹은 '신물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이념-이후에 그는 “가난이란 한낱 襤樓에 지나지 않는다/.../ 靑山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無等을 부며>)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것이 또한 달관적 체념의 세계이다). 참고로, 한국시에 형이상학적 깊이가 결여돼 있다는 비판은 김우창 교수의 평문 '한국시와 형이상'을 참조할 수 있다(<궁핍한 시대의 시인> 혹은 <김우창 전집1> 참조. 나는 이 절판된 전집에 재출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며 유감스럽다. 더불어 유감스러운 건 김화영 교수의 <미당 서정주의 시에 대하여>(민음사, 1984)도 절판된 채로 다시 구해보기 어렵게 된 것. 본격적인 시인론이자 시분석론인데 당시로서는 드문 시도였다).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같이 활동했던('부락'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민집단'을 뜻하는 걸로 안다) 청마 유치환은 서정주와 달리 이념적 ‘깃발’을 표나게 내세운 바 있으나, 언어적 조탁에 있어서 그에 미치지 못했고, 한자어투로 이루어진 그의 남성적 어조는 계보를 얻지 못했다(청마를 가까이 한 이에 김춘수가 있지만, 김춘수의 여성적 세계는 유치환의 남성적 세계와 대조적이다. 김춘수 자신이 시인하는 바이지만, 그의 초기시는 서정주의 계보에 속한다). 그리고 그의 시업(詩業) 또한 너무 일찍 한국시사에서 단절되었다. 그리하여 멀리는 40년대부터, 한국시단은 미당과 그 일가(一家)에 의해 접수된다(이른바, '미당스 패밀리' 되시겠다. 문단 용어로는 '미당 사관학교'라 하고).

 

 

 

 

 

 

 

 

한편으로, 한국시사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사례인 ‘청록파’의 경우, 박두진의 몇몇 시편들을 제외하면 비이념적 정관적(靜觀的) 세계관에 침윤되어 있다. 박목월의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구름에 달가듯”한 세계엔 이념이 틈입할 여지가 없다. 그림(=풍경)만 남고 목소리가 빠진 시는 왜소하다(지난주 고종석도 자신의 연재 '시인공화국의 풍경들'에서 지적한 것이지만, 이러한 '과대평가'에 한몫한 것은 이 세 시인이 모두 훌륭한 인격으로 후배 시인들이나 학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이들과 다른 경향의 시(인)들이 문학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하여 여기에 유사-오디푸스 콤플렉스가 개입한다. 미당 이후의 시인은 하여간에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미당과 싸워야 했다(김현의 어투이다). 그를 넘어서거나 그와 다른 세계로 질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5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이 잠시 시림(詩林)을 떠들썩하게 했지만(박인환, 김수영 등이 참여한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곧 빈수레였다는 것이 들통난다. 그들은 木馬를 타고간 소녀의 옷자락 얘기만 잠시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언어(말부림)’를 가지고 미당에 맞서 그보다 윗길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고은 정도가 서정주의 어법을 가지고도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남은 희귀한 사례이다. 그의 시업이 60년을 넘길 수 있을는지? 한편, 미당학교의 '장학생'이었던 박재삼 등도 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당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한 대안이라는 것은 미당의 이념적 ‘퇴행’을 걸고 넘어질 수 있는 이념이어야 했다. 60년대 김수영과 김춘수는 이 점에서 제각각의 방식이긴 하지만, 뚜렷하다. 6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이념적 화두가 ‘자유’였다는 점에서 김수영은 6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색이 없다. “달나라의 장난” 같은 그의 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노래, 아니 절규한 것이 바로 자유였기 때문이다. 산문적인 그의 시의 어법 또한 미당과는 전혀 종류를 달리하였다. 4.19 이후에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그 방을 생각하며>)고 그는 적고 있는데, 조금 다른 맥락에서, 김수영은 미당의 그늘 아래 놓인 해방 이후 한국시사에서 자신의 ‘방’을 마련한 드문 예에 속한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김춘수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미당의 빈 자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는 언어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관념)을 자신의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이 또한 의미(=역사)로부터의 도피, 혹은 퇴행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힘든 경우지만, 어쨌거나 언어의 가지 끝에 매달리는 데는 성공한다. 이념의 부재로 미당의 시를 특징지울 수 있다면, 김춘수의 시는 한술 더 떠서 의미의 부재를 지향한다. 언어적 자의식을 대표하는 그에게 시는 “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고 “얼굴을 가리운 나의 新婦”이다. 그것은 말부림의 세계가 아니라, 말 비우기의 세계, 의미의 빈 그릇의 세계이다. 그리하여 어쨌거나 김수영과 김춘수에 와서 한국시는 미당시에서 탈색된 근대성(=시대성)을 다시 획득한다. 그러나 그것은 김수영의 이른 죽음을 대가로 치른 것이었다. 그리고 맞은 70년대에도 미당시는 여전히 도전/극복의 대상이다.

 


 

 

 

 

 

 

젊은 전사들의 이름으로 평론가 김현은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등을 지목하고 있는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즐거운 편지>)의 황동규는 “물 빛 라일락의 빛과 香”을 가진 미당의 '永遠' 대신에 비극적 세계인식의 '자세'를 대립시키고,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병신 같은 女子, 시집 같은 女子...”(<한 잎의 女子>)의 오규원은 대상과 언어와의 관계를 의혹이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연기(緣起)론 세계인식에 딴지를 건다. 거기에 “나는 별아저씨, 바람 남편이지”의 시인 정현종의 '숨통'과 '걸음걸이'가 미당의 행보를 뒤쫓는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70년대를 증언할 수 있는 시인은 70년대의 포문을 연 <오적(五賊)>(1970)의 김지하이다. 그는 대뜸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이 황토(黃土)의 땅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는 일에 비하면, 조곤조곤한 시들은 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가 70년대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것 또한 그의 ‘대표성’을 수긍하게 한다. 시 또한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마땅했을 시기가 아니었던가.

 

 

 

 

 

 

 

 

 

80년대 한국시는 80년 광주에서 시작된다. 그보다 조금 먼저 등단한 이성복은 이 “정든 유곽”의 땅에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한 바 있지만, 가장 명료하게 80년대를 규정한 이는 황지우이다. “여기는 초토입니다/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에프킬라를 뿌리며>) 여기서 황지우의 '초토'는 김지하의 '황토'에 견줄 만하다. 80년대는 죽음의 연대였고, 시인들은 네크로필리야(necrophilia)에 들린 파리떼처럼 몰려들어 그 죽음을 파헤치고 음미하였다. 죽음에 분노하였고, 그 부채의식에 통곡하였다. 간혹 미치기도 하였다. “아싸라비야, 도로아미타불”이나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찍이 나는>)고 한 최승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성복의 어법을 빌리자면, “모두 죽었는데, 아무도 죽은 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죽음의 기운이 조금씩 떨쳐지는 것은 87년 이후이다. 그 이후 한국사회는 개량적․형식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이어진 90년대에 80년대는 이미 '과거'가 돼 버리고, '후일담'이 횡행한다(한국사회는 가끔 (나쁜 쪽으로) 정신분열증적이다. 과거-망각(청산이 아니다!)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듯하다. 정신분열증적인 포스트-모던사회에서의 선전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우울'을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 돼지들아!"

 

 

 

 

 

 

 

90년대적인 시(현상)으로 장정일과 유하의 경우를 들고 싶다(비록 그들이 등장한 건 80년대 말이지만).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의 장정일과 <무림일기>(1989),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유하는 키치적인 상상력과 패러디적인 기법으로 무장하고 “진지한 시”의 전통에 냉소를 퍼붓는다(이미지가 지원되지 않는군. 이게 언제적 유하인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식혀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 무렵 하남 땅에서 민초들의 항쟁이 있었다/ 아, 이름하여 하남의 대혈겁(大血劫)/ 광두일귀는 공수무극파천장(空輸無極破天掌)을 퍼부어 무림잡배의 폭동을/ 무사히 제압했다고 공표, 무림의 안녕을 거듭 확인했다”

 

 

이들의 “가벼운 흥분”과 재미의 세계는 80년대적인 무거움과 극적이면서 단호하게 결별한다. 이는 새로운 시이면서, 시의 끝(=종말)이다. 근황? 장정일은 일찍이 시를 그만 두었고(소설을 쓰다가 급기야는 <삼국지>까지 옮기고 방송진행자까지 되었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유하는 영화계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시의 초심(初心)으로 되돌가겠다며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를 발표하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만들고 이번엔 성공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생각만큼 미친짓은 아니다. 특히 요즘은.

 

 

 

 

 

 

 

 

 

그리고 기형도. 그의 시가 자리하는 건 80년대 말이다. 이 글은 전체가 사실 기형도론의 서론으로 씌어진 것이기도 했다. 물론 100년의 한국시사가 두 쪽 분량으로 요약될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편집증적인 시읽기에 있어서) 시의 전사(前史)를 모르고 한 시인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전공작이 필요하다고 당시엔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대해선 얼마전에도 몇 자 적어둔 바 있다. 언젠가 제대로 된 규모의 글을 쓴다면, 아마도 이 전사(前史) 또한 제대로 된 규모로 재구성되어야 하리라. 제대로 읽는다는 건 제대로 사는 것만큼이나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05.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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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5-12-2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공들인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poptrash 2005-12-29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학기에 미당의 제자이신 노교수님께 한국 문학사를 배웠어요. 비록 달리고 달려도 해방직전까지 겨우 배울 수 있었을 뿐이었지만. 좋은 글 잘봤습니다.

jiwok 2005-12-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로쟈님.
잘 읽었습니다.
저는 2차대전 러시아 사회에 대해 관심이 있는 회사원 입니다. 실례되는 것은 알지만 마땅한 자료를 구하지 못해서요. 궁금한 것은 한국에 번역된 서적 중 1940년대 독-소 전쟁 시기에 대한 경험담/개인적인 회고록/소설/ 역사서 등이 있는지요? "여기 들어오는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은 읽었습니다만 자주 인용되는 서적 중에 Vasilli grossman의 "Life & Fate"가 있던데 매우 궁금했습니다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로쟈 2005-12-2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을 검색해보니까, 그로스만의 책은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고 불역본이 들어와 있네요(원저는 물론 러시아어본입니다). 말씀대로라면 영역본도 있겠습니다. 스탈린시대에 관한 회고록 등은 차고 넘치치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 그와 관련한 국내 논문들을 교정할 일이 있었는데, 요즘은 학술논문들이 원문 서비스가 되므로 그쪽을 검색해보셔도 되겠습니다. 톰슨의 20세기 러시아사 책도 참고할 만하겠고, 역자가 전문가이므로 저보다는 더 확실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한번 문의해보시길...

jiwok 2005-12-2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스탈린 시대에 관한 회고록 등이 차고 넘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모두 학술논문인가요?

2. 저의 구체적인 관심사는 독-소 전쟁 시기의 전쟁을 경험한(전선 또는 후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전투 그 자체에 대한 자료들은 많이 보유하고 있거든요.

건강하십시오.

추신) 로쟈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직업적 연관성이 높다해도 이다지도 분야의 포괄성과 깊이를 모두 안고 갈 수 있다는데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로쟈 2005-12-2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고록'들을 다룬 논문들도 많이 씌어지고 있고, 당연히 그 재료가 되는 회고록들은 넘쳐날 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올해가 러시아에서는 승전 60주년이었기에 이에 대한 관련서들이 쏟아져나왔을 거라는 짐작도 보태보고요. 개인적으론 스탈린주의와 그 시대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회고록' 같은 1차 자료는 문학도들보다는 역사학도들의 관심대상입니다. 때문에, 제가 자세한 도움의 말씀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혹 관련서 집필 계획을 갖고 계신 건가요?

니브리티 2005-12-3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iwok님/2번 항목의 독-소 전쟁 경험과 관련한 소설이라면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없는 세대>가 잘 알려져 있는 거 같아요.(꽤 유명한 소설임)

니브리티 2005-12-3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전에 말씀드렸던 공간 오픈겸 해서 사람들을 오늘 30일 저녁 7시에 초대했거든요. 너무 늦게 말씀드리는 것 같은데,,;;;; 혹시 관심있으시면 나중에라도 한번 들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www.800.or.kr (800은 서지분류상 문학 항목...--;;)

로쟈 2005-12-3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브리티님/ 저는 아이와 함께 지금 코엑스몰에 와 있습니다. 초대에 응하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좋은 시간, 공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5-12-3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빛비둘기님/ 새해 인사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열씸히 쓰겠습니다(생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도에서). 열씸히 읽어주시고 가끔은 코멘트도 해주시길. 물론 생계에 지장을 받으시지 않는 한도 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