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거 봤어? - TV 속 여자들 다시 보기
이자연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전부터 '어제 그거 봤어?' 로 시작하는 전날의 드라마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자연의 <어제 그거 봤어?>를 읽고나니 내가 왜 좋아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주 가끔 좋아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떠올려볼 수 있었다. TV 수신료 안 내고 산 지 십 수년이지만, 이슈 되는 것들만 한 번씩 OTT 서비스로 찾아 본다. 이 책은 이런 나도, 재미있는 드라마나 쇼들 찾아 보는 사람도 모두 의미있게, 재미도 있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미디어가 보여주는대로만 보지 않고, 미디어를 보는 시각을 길러주는 책으로 꼭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이었던, 혹은 스쳐지나갔던 많은 여성캐릭터들에 다시금 포커스를 맞추어 볼 수 있었다. 책도 그렇지만, 영상도 그렇다. 지금까지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들만 잔뜩 봤어서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들을 본다는 것이 정말 짜릿하고 신선하다. 지금까지 봐 온 남성이 메인이었던 그 많은 이야기들과 균형을 맞추려면, 아주 오래, 아주 많이 내가 좋아하고, 아끼고, 응원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봐야 할 것이다. 


여성서사라는 말이 마케팅으로 쓰이면서 좀 닳긴 했지만, 여기 제대로 된 여성서사 안경을 빌려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한 번 보이게 된 것을 우리는 계속 보게 되고, 그 외연을 넓혀나갈 수 있다. 


하이킥 시리즈에 나온 여성의 '책상의 부재'는 인터넷에 많이 회자된 이야기라 아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일기 쓰는 서민정,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자주 하는 이현경, 공부하는 황정음과 백진희. 이들은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읽고 쓸 때 책상이 없어 화장대에 앉아야 했다. 남성 인물의 생활 환경을 비교해 보면 문제점은 더욱 극명해진다. 공부와 담쌓은 이윤호에게도, 다락방 신세인 이민용에게도, 조연인 강세호에게도 모두 책상이 있다. 공부 안 하는 정준혁과 안종석도, 백수인 이준하도, 똑똑한 이민호와 윤계상도 모두 무언가를 하기 위해 책상 앞으로 향했다. 모든 시즌을 통틀어 공간의 크기와 열악함, 연령대, 주조연, 지적 수준, 성격을 막론하고 남성 인물은 전부 자신의 일에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책상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시즌 2와 3에서도 황정음이 공부에 매진할 때 결연한 다짐이 이뤄진 장소는 화장대, N포세대의 상징인 백진희가 악에 받쳐 공부할 때도 화장대 앞으로 갔고, 국어 선생이고 편지와 일기 쓰기를 퍽 좋아하는 하선마저 책상 하나 없었다고 한다. 


학생 신분인 정해리와 김지원에게는 화장대가 아닌 책상이 주어졌지만, 학생이어도 책상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있었고, 학생이 아니라고 책상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파트의 일률적인 모양처럼, 집안의 가구 또한 비슷하기 마련인데, 식탁, 화장대, 책상, 작업대 등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남자의 공간에는 책상과 서재, 여자의 공간에는 집이 크건 작건, 방이 하나건 두 개건 화장대라는 것을 꾸준히 미디어가 보여주는대로 보고 살았다. 


은근히, 또는 대놓고, 혹은 언젠가 유출되어 많은 이들을 기함하게 했던 '무해한 음모'처럼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이 나오는 환상 가득한 클리쉐들에 노출되어 왔다. 여자들은 남자 저자들의 책도 많이 읽는데, 남자들은 여자 저자들의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가디언지의 기사를 읽었다. 반대 성에 대한 공감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나영석 PD는 방송계 남성중심문화를 선도하기로 유명하다. KBS <1박2일>을 시작으로 tvN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청춘>, <알쓸신잡>에서 대부분 남성 출연자를 기용했고, 화룔정점으로 <신서유기> 시리즈에서는 각종 범죄에 연루된 연예인들을 자체 용서하고 복귀시키는 데 힘썼다. <꽃보다 누나>가 있지 않냐고? 제작 공동인터뷰에서 "여배우가 다른 남성 출연진들보다 5,000배 예민"하다고 유난이었던 게 누구더라. " (148)


예능 보기 힘들어진지 오래지만, 예능붐을 이뤄왔던 스타PD들의 남성중심 예능이 예능을 멀리하게 된 기점이었던 것 같다. 그게 다인줄 알았는데, 요즘은 볼만한 예능, 마음 편한 예능들이 꽤 늘어났다. 이 책에도 나오는 '삼시세끼 산촌편' 도 그 중 하나이다. 여자들끼리 있으니 일이 착착 돌아가고 보기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 '노는 여자들'이나 '퀸덤', '골 때리는 여자들'도 민경 장사가 나오는 '운동뚱'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신입사관 구해령'을 찾아봐야겠다 싶고, '빈센조'의 최명희 서사만 모아둔 유튜브를 봤다. '스타트업'을 보게 된다면 인재를 더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 OTT 오리지널과 다양한 TV 프로그램 사이에서 누군가 여성들을 폄훼한다면, 나는 그걸 제지하는 1인으로서 기능하고 싶다.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 기꺼이 딴지를 걸며 화면 조정을 이뤄내고자 한다." 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걸 제지하는 1인을 늘려가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지금 나를 위해서도 나는 계속 딴지를 걸 것이다.  

<런 온>의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괴로워하고 또 성취한다. 일이 반드시 자아실현을 이뤄주는 건 아니지만, 일로써 진짜 나를 감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 몇 주 도서관 편하게 다녔는데, 간만에 책짐 들고 고행. 그러다보니, 다 읽지도 못하는 책들 반납하고,대출하는 것에 현타가 와서 딱 읽을 책만 빌리겠어. 마음 먹었지만, 읽으려던 책들만 빌리다보니 열 다섯 권. 그래. 오늘은 열 다섯 권만 빌려가자. 하고 도서관을 나오려는 순간, ‘신청하신 희망도서가 도착했습니다‘ 문자를 받았다. 고민의 힘은 약해빠졌고, 나는 기쁘게 데스크로 가서 회원증을 내밀었다. ˝희망도서 신청 도착 문자 받았어요.˝ 룰루랄라 스무권을 이고 지고 버스 정류장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편하네. 하면서 또 책짐을 날랐다.

그렇게 여름날 한 마리 조랑말처럼 이고 지고 날라온 책들.
스무 권 빌리지만, 그 두 배는 챙겨 놓고 고민해서 골라오는 책들이다. (내가 잔뜩 빼 둔 책들은 내가 제자리에 다시 꽂아둔다.)

* 오늘은 알라디너TV 한 번에 잘 올라가기 바라며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2-06-0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 잘 봤어요. 예전에 하이드님 “신간마실” 코너 생각나요. 조금만 빌려야지…열다섯 권, 다시 가서 다섯 권 추가 ㅎㅎ

20분쯤부터 야옹~ bgm 은 셋 중 누굴까 궁금하네요. 이번 영상에선 아르테미시아 책 찜했어요.

하이드 2022-06-07 15:57   좋아요 0 | URL
말로입니다! 셋 다 목소리 달라요. 신기하죠. ㅎ 저도 그 생각했어요. 책 잔뜩. 그나마 사는 책 아니라 죄책감 덜하니 자제가 안됩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2-06-05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권씩이나 대출이 가능하네요?!
저희는 5권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저의 경우는 나름 보상이 있어서 10권인데...^^
도서관에 좋은 책들이 많이 있네요~!

하이드 2022-06-07 15:58   좋아요 1 | URL
희망도서신청 넘 좋죠! 사실 신간 5권 읽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깐요. 제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서관과 동네도서관 이용하고 있답니다. 저희도 5권인데, 가족카드 다 가지고 다닙니다!
 

어린이책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5월이 너무 빨리 가버렸다.
그래픽노블도 고르고 골라 아홉 권을 골랐는데, 그 중에서도 세 권 엄선!

롤러 걸, 리얼프렌즈, 스마일 모두 작가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어린이책 읽는다는 느낌 없이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담아둘 이야기들도 많았다. 어린이들에게는 현실을 미리 경험, 혹은 동시에 경험하는 독서가 될테지만, 어린 시절을 겪고 나온 어른에게는 감정의 재연으로서의 독서다. 어느 쪽이나 성장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치유 받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근데, 진짜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롤러 걸의 Tougher, stronger, fearless 는 아침 확언에 포함될 예정
embrace the fear, because the best things in life are worth fighting fo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주에 올렸던 도서관 책 다 읽고 반납하기 공언은 성공입니다.

30페이지 이상 읽기로 했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더 많이 읽었고요, 일단 시작한 모든 책은 다 읽는 중인 책으로 부지런히 완독하여 6월 #나의상반기pick 에 소개해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분들 민음사 북클럽 도착 글들을 손톱을 물어뜯어며 초조하게 보다가 시기와 질투와... 도민 배송 피해의식까지 발동해서 오만 곳에 왜 안 도착하냐며. 아부(민음티비 마케팅 팀장님), 북클럽 선물을 어서 내놔. 징징거렸는데,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 민망함과 조금만 더 기다릴걸 후회와 기쁨과 설렘과 반가움에 언박싱 sing sing

같은 값이면 비싸고 두꺼운 책을 고른 자가 맞게 되는 결말.

뭐 어때. 좋습니다.
저걸 다 합해서 5만원. 그리고, 포인트도 주고, 이 포인트는 민음사 패밀리데이때 사용 가능. 왜 이제 알았지. 앞으로 꾸준히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작년 북클럽 책들 아직 다 못 읽었다는 분들이 많던데,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읽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