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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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러니깐, 난 모르지만  이 책을 읽는다.

볼테르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움은 발랄한 책표지나 '낙천주의자 캉디드' 라는 역시 발랄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키는 책은 아니다.

'당대 최고의 철학소설' 에 대한 역자후기에서 작가는 낙천주의라는 당대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철학적 논쟁 중에서 라이프니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라이프니츠의 틀에 박힌 듯한 낙천주의를 공격하는 것일까? 반대로 니체나 쇼펜하우어와 같은 비관주의 또는 염세주의의 편에 가담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제3의 철학을 택할 것인가? 그 대답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는 시점에서야 알게 될것이다. 라고 하지만.

철학문맹인 나야 뭐 라이프니츠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30장으로 나뉘어진 철학소설( 동화) 을 킥킥대며 읽어낸다. 만년에 신으로까지 추앙되었다던 볼테르의 책에 대한 불손한 태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 꽤나 재미있다.

독일의 한 성에 살고 있던 캉디드란 소년이 남작의 딸 퀴네콩드와 사랑에 빠진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성에 머물던 시절에 그는 팡글로스라는 철학선생(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를 대변하는) 을 만나 그의 사상을 흡수하게 된다. 어느 날 퀴네콩드는 팡글라스가 파케트라는 조그맣고 예쁜 하녀에게 '실험물리학' 수업 실습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며 팡글로스 박사의 지론인 '충족이유'와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고 자신도 박식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차 설레는 마음으로 젊은 캉디드를 찾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퀴네공드와 캉디드가 병풍 뒤에서 아주 우아하게 입을 맞추었을때 마침 지나가던 남작이 이 '원인과 결과'를 보게 되고 캉디드는 엉덩이를 발로 세게 걷어차이고 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야기는 이후 유럽의 여러나라와 아메리카까지 여행을 하며 자신의 사랑 퀴네콩드를 찾아가는 긴 여정의 이야기이다. 그 중간중간에 팡글라스와 퀴네공드의 오빠가 나타났다 죽었다, 죽은줄 알았더니 다시 살아 나타났다 그러면서 역사 속의 여러 폭동과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기쁨과 행복과 불행과 배신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책에서 캉디드는 순수한 소년에서 낙천적인 청년으로 그러다 죄를 짓게되고 "아, 애석하게도! 제기랄! 나의 옛 주인이며 친구이며, 처남이 될 사람을 내가 죽이다니!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는 내가 벌써 사람을 셋이나 죽였고, 그 중에 신부가 둘이나 되다니!" 끊임없이 도망치고, 그러면서도 순수한 사랑 퀴네공드를 찾아 헤매인다.

불행과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여행하다가 흘러든 '엘도라도' 는 황금의 땅 모든 것이 완벽한 곳. 길거리의 모두가 낙천주의자인 곳. 그리고 신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없는 곳. " 그럼 종교가 둘일 수도 있나?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종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신께 경배한다오." 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이는 그 곳에서 뛰쳐나오자마자 불행한 흑인 노예를 만나고 그는 낙천주의를 버릴 수 밖에 없겠다고 부르짖는다. '낙천주의가 뭐지요?"라고 묻는 하인에게 " 아! 인간이 불행할 때도 모든 것이 잘 이루어져 있다고 우기는 일종의 광기라네." 라고 답한다. 그러니깐 이것이 낙천주의에 대한 볼테르의 입장인 것일까?

모든 불행한 일들을 겪은 등장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최선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를 대변하는 팡글라스를 대변하는 캉디드에게 '이래도 세상은 최선의 것이냐?' '이래도 내가 행복해보이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그런 모든 불행한 일들을 겪어낸 사람중 한명인 예전에 교황과 공주의 딸이었던 노파는 결국 캉디드가 바라던대로 모두가 모여 살게 된 그 때가 되자 또 묻는다. "나는 어떤 것이 더 불행한 삶인지 알고 싶어요. 검둥이 해적들한테 1백번이나 겁탈 당하는 것. 엉덩이 한 쪽을 잘리는 것, 불가리아인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는 것, 종교화형식에서 죽도록 매맞은 다음 교수형을 당하는 것, 교수형 당한 수 다시 해부 당하는 것, 그리고 갤리 선에서 노를 젓는 것,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겪은 이 모든 불행들, 아니면 아무 할 일 없이 이곳에서 지내는 일들 중에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이오?"

결론은 좀 모호하다. 철학적인 의도가 개입된 철저한 목적소설이라는 이 책은 끊임없이 낙천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관주의 염세주의를 대변하는 자(마르탱)들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현실적인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모든 이들이 모여 있는 와중에 누군가 말한다. " 추론을 그만두고 일합시다. 일을 하는 것만이 삶을 견딜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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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4-0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내용이었군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안 읽고 있던 책 중의 하나였는데, 이 리뷰보고나니 읽고 싶어지네요. (근데, 저 올해 안엔 책 안사기로 했는뎅. 벌써부터 흔들리게 만드시면 어떻해요. 흑.)

하이드 2005-04-06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계속 미루고 있다가 ( 아니 사실은 사 놓고 읽을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오늘 갑자기 뭐에 홀린듯 꺼내서 읽었는데요, 재밌네요. 뭔가 좀 휘둘리는것 같긴 하지만. 아프락사스님이 추천해주신 '관용론'도 슬슬 읽어봐야겠어요.

마태우스 2005-04-0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테르가 지었는데 재미있단 말이죠? 볼테르 그분, 저같은 대중들을 생각해주는 좋은 철학자시네요..
 
어스시의 마법사 - 제1권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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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등학교때 반지의 제왕을 읽었을때. 그 때는 '반지전쟁'이라는 제목의 3권짜리 책이 있었따. 프로도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왠지 책도 더 무거운 것 같았고, 수험생이라는 암울하다면 암울한 당시의 생활과 오버랩이 되어, 내 자신을 고생하는 프로도에 비기곤 했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난 어느 날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얘길 듣고 분노했고, 잊고 있다가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반지의 제왕 1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연례행사로 매년 연말. 1, 2, 3부를 봤었고, 3부에서는 아, 이젠 끝이구나. 하며 눈물을 질질 흘려야 했다.

판타지에 존재하는 그 모든 세계를 창조했던 톨킨의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선과 악의 대결구조이지만, 굉장히 어두침침하다.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르니아 연대기와 함께 판타지 문학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는 이 작품 역시 못지않게 어둡고 읽기가 힘들다.

읽기가 힘들다는 것은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한다는 이야기. 주인공 '새매'는 자신이 불러낸 어둠의 그림자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거듭하며, 마침내는 그 어둠의 이름을 찾게 되어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현자 오지언을 만나고, 그 누구보다 큰 힘을 지니고 있는 소년은 현자 오지언을 떠나 마법학교가 있는 로크 섬으로 가게 되고, 자신의 인생의 동료가 되어주는 들콩을 만난다.

어스시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본래의 이름을 아는 것이 마법을 하게 되는 혹은 하지 못하게 되는 열쇠이다. 진정한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은 정도이고, 반대로 적의 이름을 찾아 부르게 되면 적을 제압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림자의 이름을 찾아 헤매이던 새매, 게드는 '그것'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그림자의 이름을 찾아내어 '그것'을 물리치지 않고도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지루하고 힘든 선과 악의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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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0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어슐라 르 귄이 미국사람인거 이제 알았다. 편견이지만, 미국작가와 고전 판타지는 안어울린다. 유럽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데 -_-a

BRINY 2005-04-0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사람이지만, 유럽에 유학가서 유럽사람과 결혼했으니, 유럽의 영향은 다른 미국 작가에 비해 크지 않을까 싶네요.

하이드 2005-04-0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나라별로 리뷰를 나누어 놓다보니 그런 문제가 있어요. 알랭 드 보통을 영국이 아닌 스위스로 넣을 수도 없고, 헤밍웨이가 빠리에서 7년을 보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그걸 미국으로 넣을 수도 없고 말이지요. ^^ 아무튼. 근데, 미국사람인거 알고 사진 보고 그러니깐, 갑자기 확 박혀버린거 있죠. 어슐라 르 귄=미쿡사람~

panda78 2005-04-0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어스시 시리즈 중에 1권이 그나마 덜 어둡지 않은가요?
저는 1권이 제일 재밌었어요. ACE전집에 있는 판으로 읽었는데 그 제목은 [매는 하늘에서만 빛난다]였지요.

보르헤스 2005-04-0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의 같은 이름의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 졌습니다. 어스시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영화 자체는 B급 영화였습니다만 주인공도 못생겼구...^^

하이드 2005-04-05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B급영화 . 못생긴 주인공. 그렇군요.
판다님, 2,3권은 더 어두침침하다굽쇼? 에구에구. 암튼, 빼앗긴 자들은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술술 읽히긴 하네요.

자비눌 2005-06-1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달쯤에, 일본에서 어스시의 마법사(게드전기)를 17년 동안 번역한 시미즈 마사코씨가 한국에 와서 인터뷰했었는데(저는 보조로), 어슐러 르귄과 2년전에 만났었데요. 받은 상들이 모두 부엌구석에 쌓아져있었데요.ㅋ

프리마벨라 2005-07-26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스시의 전설은 극장 개봉한 영화가 아니라 TV판 영화로 만들어졌죠,,남자주인공은 숀 애쉬모어 라는 배우이고 미국에서 꾀 유명한 배우인데요,,영화 액스맨에 나왔었죠,,못생긴 정도는 아닌듣 한데,, 여주인공 스리스틴 크룩은 정말 이뿌죠,,국내에서도 드라마 "스몰 빌"로 상당히 알려진 배우이구요,,영화도 3시간 불량 그럭저럭 볼만했는데요,,^^지루할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말이죠,,^^;;

하이드 2006-03-1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댓글 봤네요.
받은 상들이 부엌구석에 쌓여져 있었다니 ^^;
프리마벨라님, 저도 나중에 영화 찾아서 봤었는데, 환타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하나봐요. 집에서 모니터로 봤더니, 책느낌 안나더라구요. 여배우, 남배우, 말씀하신 영화,드라마 다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책과 바람난 여자'라니, 너무 약하다. 그 정도로는, 바람이야 났다가 시들었다가 그러는거고, 왔다가 갔다가 그러는거지만, 책에 인생 코꿰어버리는건 좀더 잔인하고, 무기력하고, 돈들고 시간들고 주변에서 따돌림 당하고, 그러면서도 그걸 즐기는 내 안의 매저키스트적인 점까지 드러내 버린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그저 그런 '책이야기'로만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어 , 이여자 보통이 아닌걸에서 젠장, 키득키득 젠장 키득키득. 남들 아무도 안 알아주고 외면하는 경험들의 총집합인 단문들을 읽으면서 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정도까지는 아니야 안도하면서( 믿거나 말거나 )

책이야기가 아니라 책에 얽힌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모르는 작품들의 이름이 홍수처럼 나오건, 읽어봐야지 싶은 작품들의 메모로 아마존의 카트가 점점 늘어가건간에 술술술술 읽힌다.

책에서 나는 '냄새', 책 장을 넘길때 나는 '소리' 책 선물하기, 빌리기, 여행갈때 들고 갈 책 고르기, 날마다 책 싸들고 다니면서 느껴지는 어깨 통증, 시간이 붕 떴는데, 읽을 책이 없을때의 패닉상태 등등 그 동안  종종 얘기했던 책에 관한 얘기들도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얘기들도 있다.

저자는 출판사에서 삼십년동안 교정작업을 한 베테랑 업계종사자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때로는 업계종사자의 냄새가 나지만 대부분은 그저 책을 좋아하고,아니 그 단계를 넘어서서 책에 집착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일 것이다.

즐거웠다.  단숨에 읽어내린 책이었고, 아주 친한 친구 하나 만든 기분이다.

* 아, 그러니깐, 난 이 책을 다 읽어버렸으니 ,오늘 읽을 책이 얇디 얇은 어스시의 마법사 1권밖에 없구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맞다. 마침 오늘 아마존에서 배달온 cloud atlas 와 seperate peace 가 있구나. 휴-

사실 나도 안다.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지하철 20분. 걸어다니면서 읽는 시간 지하철 기다리면서 읽는 시간 다 합쳐도 한시간이 조금 안 될 것이고, 그 동안에는 시작도 안 한 어스시의 마법사를 반이나 읽으면 많이 읽었다는 것을. 원래 그렇지 않은가? 어깨힘은 쎄도 소심하고, 섬세한 사람들이다. 우리 책벌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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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4-0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지하철 탔다가 보던 책 다 읽으면 이거 우짜나 하면서 당황스럽슴다.
책 두권 들고 오는 건데 하면서...^^;;

2005-04-04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5-04-05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거 사셨군요,. ^^ 별점을 다섯개나~ ! 꼭 사서 읽어봐야지.. 히히

하이드 2005-04-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재밌었어요. ^^

2005-04-25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4-25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제가 다른 분 댓글에 단 거 보고 원제 얘기 하시나 보네요. 아이고, 제가 왠만하면 원제랑 비슷하게 가는걸 좋아하지만, 이 책이 원제로 결단코 갈 수 없다는데에는 동감합니다. ^^ 수많은 오자와 교열미스에 대해서는 원래 둔감하기도 하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에 나온것처럼 재미있어하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러니깐 적어도 이 책에 한해서는요. ^^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간서치 2005-09-2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바람난 여자라...
 
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절판


어떤 표지들은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탐을 내던 책조차도 거들떠보지 않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창 독서를 하다가 책의 내용과 표지, 아니면 텍스트와 저자 사진을 대조해 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저자의 사진 역시 내 신경을 건드린다. 이 작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는 수염도 없고 바싹 마른 그를 상상했다. 그런데 턱수염을 기른 데다 살이 쪄 투실투실하기까지 하다. 도도하고 투박한 여자일 거라고 믿었던 저자는 한껏 교태를 부리는 세련된 도시 여자다.


*
얼마전에 본 닉 혼비의 '피버 피치' 자신은 써포터지 홀리건은 아니라고 하지만, 책 날개의 대머리 사진은 게다가 가죽자켓. 음. 딱 홀리건 스타일인걸. 생각이 들어버렸다. 게다가 그 책의 표지는 정말정말정말 유치찬란하기 그지 없다. 원서 페이퍼북의 깔끔한 노란 표지가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만약, 인터넷에서 사지 않았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표지중 하나다. -63쪽

나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신성 모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숭배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신성 모독죄를 저지르는 공상을 품을 정도로 책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기는 하다. (...) 책 귀퉁이를 접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백지로 남아 있는 책 마지막 페이지에 스케치를 하는 일은 즐긴다.
옳든 그르든, 나는 이러한 자잘한 탈선들이, 소심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시도하는 나름대로 대담한 이 행동들이 더 큰 탈선, 엄청난 피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면, 책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 반면, 나는 본문 위의 여백에 수채화를 그리라고 한다면 기꺼이 하겠다. 게다가 나는 이미 최근에 다시 읽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 안드레스의 성찰이 끝나는 폴리오 판 395페이지 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일을 시작했다. 나는 파스텔로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그렸는데, 너무 못 그려 당분간 그 짓은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주 단단히 미쳐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경우만 빼놓고. 하지만 나는 내가 미치기 훨씬 전에 그 짓을 다시 시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수채화, 파스텔화, 데생으로 완전히 뒤덮인 책, 마치 스케치북이라도 되는 듯. 맞아,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어디 있어? 하지만 어떤 책에다? 내가 좋아하는 책(아까워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치사해라)?

*
나는 귀퉁이를 잘 접는다. 나중에 다시 보고 리뷰에 참조하거나 밑줄 긋고 싶은 부분들에. 그러나 읽던 부분을 표시하기 위에 접는 것은 절대로 안한다. 나의 타부라고나 할까. 가장 선호하는 책갈피는 책날개이고 물론. 그 다음은 책 끈. 이도 저도 없으면, 굴러다니는 종이를 끼워 넣게 되거나, 종이마저 안 보이면, 그냥 덮어버리고 만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하드커버면서, 책끈도 책날개도 없다. 책의 반 이상을 읽을때까지도 나는 덮었다 폈다 어디까지 읽었나 찾았다를 되풀이 해야했다. -92-95쪽

가방에 책 여러 권을 - 나머지 소지품도 함께 - 늘 넣고 다닐 정도로 체력이 튼튼하면서도 독서광은 어떤 심리적인 허약함, 병적일 정도의 예민함을 보인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흘낏거리는 것을 참아내질 못한다. 특히 흘낏거리는 그 눈에 " 어디 뭘 읽고 있는지 좀 볼까..."라는 참기 힘든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을 때는 ( 밥맛없는 현학자!). [공작의 주인](아, 동물을 좋아하시는군요!)나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넬슨 알그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을 때는 그런대로 참을만하다. 하지만 퍼트리샤 콘웰의 최신작을 읽을 때는 전반적인 탐정소설, 특히 이 책을 싫어한다는 것을, 이런 책은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순전히 직업의식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하지만 그 후로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느라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무슨수로 느끼게 할 것인가

*
병적일 정도의 예민함이라. 근데, 그게 참, 꽤나 주관적이어서, 책 읽는 사람들끼리도 이해는 더 잘 하지만, 참 다들 다르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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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의 하루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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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네이얼 웨스트를 처음으로 접했던 미스 론리하트에 비해 이 책은 참 실마리가 없다. 책을 어떻게 읽어나가야할지 난감하다고나 할까.  읽는 내내 불행하고 꼬인 버전의 '티파티에서의 아침을'을 보는 느낌이었다.

은유로 가득차서 읽는 내내 머리가 갑갑스러웠다. 읽는 당시 너무나 감동이었던 '미스 론리하트'는 어느새 내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읽은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나의 리뷰를 다시 보니, 당시 그렇게나 재미있게 읽어놓고, 다시 떠올려 보려면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은 메뚜기의 하루에서는 더 심해져서 책의 끝장을 덮을 즈음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책 속의 사건들이 신속하게 기억에서 사라져가 버려서 리뷰 쓰려고 옆에 책 놓고 앉아 있는 지금 계속 책을 펼쳐 뒤적이게 된다.

미스 론리하트에서 굉장히 여러가지 주제를 중편 길이의 책에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좀 더 긴 중편소설에 더 집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폭력과 사랑, 야망등으로 그 주제는 집약되는데,

페이 그리너라는 팜므파탈적인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를 쫓아다니는 별볼일 없는. '돈이 많거나 잘생긴'이라는 그녀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착한' 토드와 ( 본인 입으로 착하다고는 하나, 왜 자신이 착하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융통성이 없고 사회성이 없어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 표현을 자학의 방법으로밖에 못하는 페이에게 분노와 수치감과 경멸을 동시에 안겨주는 호머가 있다.

페이는 헐리우드의 단역배우이다. 남는 시간에는 광대였던 아버지와 집에서 만든 광택제를 팔러 다닌다.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모두 현실을 연기한다. 그들이 하는 연기는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여전히 현실을 배경으로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페이의 주위에는 페이와 비슷한 삼류인생들의 모임이다. 난장이, 건달 양아치, 닭싸움 시키는 멕시코인.

그 모두의 생활은 구질구질하지만 나름대로 생생하다. 진흙바닥에 딩구는 굵은 지렁이들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아니면, 예전의 주차장이었던 공터에 잡초와 잔디가 자라 버린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끊임없이 팔딱대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그러다가 차에 치여 혹은 발에 밟혀 죽어버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할까?

개인으로서는 힘없고 비굴하고 수줍다가도 머리가 둘이상 셋이상 혹은 몇십, 몇백, 몇천이 늘어나기만 하면 포악해지고, 용기백배해지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의로워지는등 미쳐돌아간다.

몇장에 걸쳐서 잔인하게도 자세하게 묘사된 닭싸움의 장면이나 시사회장에서 메뚜기떼처럼 잔뜩 몰려 이리저리 휩쓸리는 장면이나 그 아수라장에서 악마같은 아이에게 돌을 얻어맏고 아이를 죽여버리려고 하는 끈이 끊겨버린 호머의 모습이나 경찰차에 실려가면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사이렌 소리를 흉내내는 토드의 모습은 자극적이지만 동시에 드라이하다. 드라마틱하지만 동시에 현실이다.

어떤 기분이 들때 이 책을 다시 잡고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읽은 지금으로선 머릿속에 온통 수많은 퀘스쳔마크가 떠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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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4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