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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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포토카피.


포토카피는 '복사하다' 는 뜻이다. 존 버거는 이 책에서 사람을, 순간을, 의미를 복사하듯 글로 옮긴다. 이 책은 존 버거의 또 다른 책인 '본다는 것의 의미' 나 '말하기의 다른 방법'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에 연장되는 멋진 책이다.


존 버거 책의 매력은 항상 군더더기가 없고 가장 적절한 시간에 가장 적절한 단어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첫느낌은 조금 달랐다. 비유적인 표현도 많고 최대한 자세히 상황을 묘사하려는 듯 보였다. 이질감을 느끼며 책장을 여러장 넘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포토카피.

존 버거는 '보는 것은 말하는 것에 선행한다' 고 말해왔다. 말하는 것의 다른 방법. 말 하는 것의 덧없음 혹은 그 뒤의 말해지지 않은 빙산의 드러나지 않은 나머지 부분과도 같은 부분들에 대해 얘기해 왔는데, 이건 또 다른 그의 '말하기(표현하기) ' 위한 시도이구나 싶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영어권 미술 평론가이기도 한 예사롭지 않은 관찰력과 심미안의 소유자인 존 버거가 만나서 포토카피하는 인물들 한명 한명에 대한 묘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일견 가장 쉬워보이는 '묘사' 에서, 3-4장을 채 넘어가지 않는 짧은 순간의 묘사에서 삶과 삶의 의미를 엿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존 버거의 눈을 빌려서.


이전에 읽었던 그의 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시작했던 이 책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존버거의 책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책이 되어 마음에 깊이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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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0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ㅜㅜ 생각 안나. 그분이 가셨어요.
알라딘은 날라간 내 리뷰를 백업해내라. 해내라.

하루(春) 2005-05-05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하지 마세요. 대신 추천해 드리죠. 좋은 책인 것 같군요.

하이드 2005-05-05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하루님. ㅜㅜ 네. 정말 좋은 책이에요. 존 버거 시작할때 처음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딸기 2005-05-0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입니다.

하이드 2005-05-0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딸기님!!

돌바람 2005-05-1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표지 사진이 주는 끌어당기는 힘에 비해 내용은 좀... 사진이 더 있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원서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존 버거의 책은 사진과 이야기를 함께 읽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말하기의 다른 방법', '제7의 인간',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는 제겐 잊을 수 없는 책이지요. 듀안 마이클과는 다른 사진의 정적인 세계, 이야기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으니까요.

하이드 2005-05-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표지를 제대로 안 봤군요. 알라딘의 이미지로는 제대로 안 보이니 집에가서 봐야겠지만요 ^^ 저는 개인적으로 존 버거의 책들중 이런 책들이 좋아요. 장 모로(이름 맞게 썼나요? -_-a) 의 사진이 들어간 책들은 그 나름으로 좋고, 그림과 이미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도 좋지만, 글로써 그림을 그리고 글로써 사진을 찍는 존 버거의 책들(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과 이 책 열화당에서 나왔는데, 같은 사이즈의 굉장히 정적이면서 무한한 느낌을 주는 책들이에요.) 보면 경외감이 들정도랍니다. '결혼을 향하여'란 소설도 사 놓고 있는데, 어떨지 궁금해요. '제 7의 인간'은 얼마전에 포켓의 형태) 와 함께 샀는데, 역시 기대됩니다.

비로그인 2007-10-1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멋진 책이예요. 원서로 사들여 그의 말을 그대로 듣고싶어요. 님이 사신게 있음 보고싶어요

유부만두 2015-03-27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책 읽어싶어요, 했더니
북플이 하이드님 10년전 리뷰를 추천!

하이드 2015-03-27 08:32   좋아요 0 | URL
와.. 십년전의 제 리뷰군요! 으아아아..
 
안녕, 레나
한지혜 지음 / 새움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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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화려함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빈궁함을 더욱 강조하는건가?

서문도 작가 소개도 없이 시작된 첫 단편 '호출''결혼식을 앞두고 옛 애인들과 관계된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람을 잊기 위해,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을 잊기 위해, 혹은 그 때 아팠던, 지난했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사진을 태우고, 편지를 태운다. '자전거 타는 여자'에서도 식물인간인 아버지를 보낼 준비를 하면서 아버지와 관계된 물건을 정리하고, 태울 수 있는 것들을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무언가를 태우면서 마음 한 구석의 재를 날려버린다는건 내게는 너무 드라마스럽고 닭살스럽다. '호출'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두번째 단편인 '안녕 레나' 에서는 온라인으로 도피하는 인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진학에 실패했고 ,재수를 할 형편도 아니었고, 실무 능력 따위는 배운 적 없는 인문계 고등학생이다 보니 작은 회사에 겨우 취직하지만, 내 인생이 작은 사무실에서만 정착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우울해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뭔가 확 저질러보고 싶은 충동이 나를 들쑤신다' 그러다가 찾은 '통신'이란 '탈출구'   익명성을 무기로 매번 새로운 자신을 꾸며대는 그 곳에서의 안락함을 흔들어대는 '레나'라는 아이디의 그녀. 그리고 '숲' 이라는 아이디의 그. 그들과의 '안녕'을 끝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궁금하다. 그 후 '나'의 삶이. 또 어떤 다른 도피처를 찾아 해메이고 있는건지. 

그 이후의 단편들도 계속 불편하다. 목소리 큰 엄마의 모습. 식물인간의 모습이거나 부재인 아버지의 모습.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들.  나의 이 불편함의 정체는 책을 찜찜하게 책을 덮고 책 표지의 화려한 꽃문양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뒷표지의 같은 꽃 문양에 써 있는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이다.

' 하루에도 몇 번씩 뭔가 확 저지르고 싶은 청춘들의 우울을 경쾌하게 포착한 소설들. 대체적으로 '청년'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이 소설집 속의 젊은이들은, 우리 소설에 자주 등장했던 삐딱한 난동자, 엽기적인 호색한, 과격한 몽상가, 항우울성 페시키스트, 차가운 냉소주의자, '쿨 보이들'과 '럭셔리 걸' 등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어떤 인물인가, 요컨대 이 시대의 '이태백' 계열에 속하는 인물들. 그러니까 '확 저지르고 싶은' 젊음의 열망은 충만하지만, 대체적으로 경제난이 초래한 일상의 하중에 압도되어 푸릇한 미래의 희망과 출구가 봉쇄되어버린, 이 시대의 전형적인 젊음의 초상들인 것이다. '

평론가는 이와 같은 것들을 작가의 장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똑같은 얘기를 하지만 그 반대에 서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 책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바로전에 읽은 중남미의 마꼰도라는 마을 이야기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뉴스가 아니라 소설에서 읽어야 했는데, 우울이 경쾌하게 포착되지도, 소름끼치게 사실적이지도, 와닿는 말로 포장되지도 않아서 맘에 안 드는 것이다.  한국작가들의 궁상스런 소설들을 멀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내 주위의 궁상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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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3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03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일수록, 동시대가 배경인 소설일수록 취향이 분명하게 들어나고 거기에 상황과 사적인 감정까지 개입되어 책에 푹 빠지기가 힘들어요. 조금만 좋다고 하면 귀 파닥파닥 하며 사는데, 그 재미있다던 성석제나 천운영이나 등등등 전혀 안 사고 있는거 보면 말이지요. 최근에 읽었던 한국작가 책중 정말정말정말 재미있었던건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었네요. 정말 멋졌는데!

하이드 2005-05-03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권해주신 책 땡기는군요. 역시 저랑 취향이 정말 통하십니다.

하이드 2005-05-03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밑에 보니 황진이도 재미있게 봤었네요.

panda78 2005-05-03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옥 전집 말씀하시던 생각 납니다. ^^
저도 그래서 우리나라 소설은 적게 봐요. 성석제도 두 권 빌려 읽고 말았구.. 천운영도 안 봤구나..
요 며칠 사이 재미있게 본 거로는 이윤기 [하늘의 문1-3]이랑 - 특히 2권은요, 제가 전쟁소설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책 좀 더 볼까.. 싶게 만들 정도로 재미나더랍니다.
[고래]요! 음. 재미있더라구요. 흠흠.. 그 변사체 말투도 그렇고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런 식으로 뭔가 주욱 나열하는 것도 그렇고
문체가 참 재밌었어요.

panda78 2005-05-03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황진이 관심없었는데, 재미있게 보셨다니 궁금해지네요. 새벽별 언니한테 담번에 빌려달라 그래야지. ^^
근데 정이현은 소설집 한 권 뿐인가봐요. 그거 말고는 무슨 수상작품집 같은 데 한편씩 실려있는 듯. 신작이 기다려집니다. ^^

하이드 2005-05-03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사실 읽지도 않고 별로다 하는건 반칙이긴 해요. ^^a 이윤기는 다아 좋아요. 근데 이양반것도 소설 읽은지는 디게 오래되긴 했네요.

panda78 2005-05-03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홍글씨]이후 백만년 만에.. ;;;
근데 지금 불붙어서 쫘악- 살까 생각중입니다.
새로 에세이집도 나왔던데 그거랑 해서요. ^^

panda78 2005-05-03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 다들 칭찬하시던 권지예의 폭소가 별로였던 탓에, 이젠 뭐가 재밌더라 해도 한국소설은 잘 안사게 되더라구요.;;;

2005-05-03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당연하죠. 그러니깐, 같은장소 같은시대 소설에 대해서는 제 성격과 상황이 이입되어 버린다니깐요. 그래도 못 읽을뻔 하다가 읽어서 좋아요.^^ 독서는 나의 힘!

돌바람 2005-05-1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둘러보면 '레나'라는 닉네임의 익명성과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레나와 같은 익명의 레나들이 양상되는 걸 보면 작가가 포착하고 있는 현실 공간에 줌을 맞춰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진짜 뭔가 저지르고 싶어하는, 허나 저지르지 못하는 인간군이 어디든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쭈뼛거리게 되던데, 나는.
 
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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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밀란 쿤데라-

굳이 밀란쿤데라의 말이 아닐지라도, 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백년동안의 부엔디아 집안의 이야기는 너무나 대단해서, 최고 작가인 마르케스가 23년동안 고민하고  이 소설을 세상에 내보였다고 하는데 23년까지는 아니라도 오래 고민하고 흡수하고 리뷰를 쓰는 것이 허접한 리뷰를 피하는 길이긴 하겠지만, 두번째 읽고, 두번째 리뷰, 세번 읽고 세번째 리뷰를 쓸것을 자신과 약속하고, '백년의 고독'과의 첫만남에 대해 주절거려 본다.

이 책을 읽기는 쉽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장면이나 헷갈리는 장면이 나와도 안 찾아보고 일단 그냥 읽어내려가는 나에게는 마지막까지도 이 사람은 누구더라? 하는 인물이 몇 있었다.

그러나 읽고 나면, 특히나 강렬한 마지막 열장정도를 읽고 나면,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진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로 시작하는 부엔디아 집안의 흥망은 결국 한가지 이야기다. 중간정도 읽을때까지만해도, 되풀이 되는 이름과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 여기서 끝나도 하나도 안 이상하겠다며 페이지를 끈기있게 넘기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그 모든 이야기가 이 결론을 향하여 치달았구나.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쾅 친다.

옮긴이의 말처럼 '백년의 고독' 을 '백년의 근친상간의 이야기' 로 바꾸어 놔도 될 정도로 이 이야기는 근친상간으로 시작해서 근친상간을 끝난다. 등장인물들의 고독도 근친상간이라는 비도덕에서 오는 고뇌에서 온다.  정녕 그렇다. 이 '근친상간'모티브에는 외부세계(서양세계)와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비확실한 근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굴절된 역사와 현재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그 중에서도 콜롬비아의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책에 나온 굵직굵직한 사건들( 19세기 말에 일어났던 천일전쟁과 바나나 농장 파업사건)과 인물들은 실존인물들과도 실제 사건들과도 겹친다.

이 책은 역시 호세 아르까디오의 성격을 지닌 아들들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성격을 지닌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내성적이었지만 머리가 뛰어난 반면에,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충동적이며 담이 컸으나 어떤 비극적인 운세를 지니고 있었다. '

1982년 노벨 문학상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수없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소설을 한 번 읽고 어떻다 말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위에 썼듯이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 책을 보는 것은 많은 것을 놓치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런저런 숨은뜻과 배경지식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 텍스트만으로도 다시 접하기 힘든 충분히 처절하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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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5-02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마지막이 압권이었어요. 맨 마지막 장을 읽고났을때야 비로소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는 책 제목이 확실히 이해됐었죠.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상당히 어렵게 읽었었는데요. 워낙 어렸을 때 읽었고, 특히 마술적 사술주의 기법이란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보니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던 것 같아요. (2번 읽다 포기했고, 3번째 시도만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뿌듯함과 허무함, 황홀감이 마구 교차했던 책이었어요.

하이드 2005-05-0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요. 맞어요. 마지막장! 저도 어렸을 때 접하고 지금 또 나이 들어서 접하고, 나중에 또 접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정말 대단하단 말 밖에 안 나와요.

해적오리 2005-05-0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요.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본 어디게 좋은가요?

하이드 2005-05-06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음사꺼밖에 안 읽어봐서요. 근데, 대체로 민음사께 믿음직 한것 같아요. ^^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
에프라임 키숀 지음, 변상출 옮김, 송은경 그림 / 좋은생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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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스테이크 ' 이후 오랜만에 읽는 키숀의 책이다. 그의 입담은 대단하다. 이스라엘에서의 유머는 정말 멀고도 멀어보이지만, 아니, 그걸 떠나서 이스라엘과 유머는 당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숀의 책은 시종일관 가볍고, 참을성있는 ( 이 참을성이란건 우울하기보다는 희망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참을성이다.) 등장인물들과 짜증나는 상황을, 돌아버릴것 같은 상황을 유머로 바꾸어 버리는 대단한 책이다.

'주문한 식탁을 기다리며' 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4월 7일 식탁이 부서지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와 함께 자파의 생산자에게 가서 식탁을 주문하기로 한다. 훨씬 저렴하고 빠르기까지 하다고 한다. 요제프 네벤짤이라는 사람에게 식탁을 주문하고 월요일 정오무렵까지 배달해준다고 한다. 아내는 울상을 지으며 더 빨리는 안되겠냐고 하자 그럼 일요일 정오까지 배달해준다고 한다. 4월 8일의 일이다. 일요일 정오가 되고 식탁은 배달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핑계의 나날들이 계속되고 식탁배달은 그 달을 넘기고, 또 몇달을 넘긴다. 그러는 와중에 만나게 된 작년 크리스마스때 주문한 의자를 기다리는 부인, 올초에 주문한 옷장을 기다리는 교수 등 네벤짤에게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네벤짤 클럽' 을 만들어 장부를 만들고 돌아가면서 네벤짤을 독촉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회보를 발행하며,  '이번엔 어떤 핑계로 네벤짤이 배달을 미룰까' 혹은 ' 피셔씨의 침대는 언제 배달이 될까' 등으로 내기를 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편인 저자는 모임의 첫번째 총무가 되어 열심히 활동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는 식탁의 배달을 3년뒤 8월17일로 300파운드를 걸었다.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1월 10일 요제프 네벤짤씨가 식탁같은 것을 들고 집 앞에 나타난다. 이미 식탁의 사용법을 잃어버린 가족들은 당황해 하고 결국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는 아래서 밥 먹고 식탁밑에서 휴식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세상에서 가장 짜증나는 이런 지연된 배달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공상을 하고 있는 키숀이란 작가가 정말 궁금하다. 짜증내고 화내고 고소하기 보다 클럽을 만들어 친목을 다지는 등의 긍정적인 행동을 한다는 아이디어가 정말 기똥차지 않은가.

완전 깔깔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꿀꿀한 기분을 확 전환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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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bahnstrasse 2005-05-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대인(물론 이스라엘과 동일 개념은 아니겠습니다만)의 유머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 디아스포라의 오랜 세월 동안 온갖 핍박 속에서 다져진지라, 골계가 장난 아닌 것 같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http://en.wikipedia.org/wiki/Jewish_humor 를.

하이드 2005-05-0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렇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아니 ,근데, 이런 싸이트는 도대체 어떻게 아시는거야요. 그네들의 일화성 유머들이라거나 하는 얘기 들이 이 책하고 잘 맞네요.

einbahnstrasse 2005-05-0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을 공부하다보니(쿨럭-ㅂ-;) 그렇게 되었습니다. 싱어나 맬러머드 등의 유대계 미국 작가들 작품들 역시 그런 유대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듯 하네요.

하이드 2005-05-0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나도 옛날엔;;; 문학도였는데;; 그 애착만 남아있고, 기억나는건 거의 없네요. 한심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공부까진 못해도 많이 읽고, 많이 알고 싶어요. ^^

2005-05-02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02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속삭이신님. 그런거 신경 안써도 된답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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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책 표지에 반했어. 그 다음엔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모데라토 칸타빌레' . 뭐였더라, 책에 나오겠지 뭐. 그리고 나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녀랑 어른 남자랑 사랑하는 그런 영화였지 아마? 그래. 그 양갈래로 머리한 배우. 생각난다. 하얀 원피스에 하얀 모자에. 약간 못난 이에 활짝 웃는 모습. 활짝 웃는데 디게 쓸쓸하고 씁쓸하기까지 해보이던 그 모습.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 이 작은 책을 꺼내들고 표지를 다시 봤다. 이런 짧은 앞머리에 굽슬한 파마의 숏커트머리는 절대로 프랑스 여자에게만 어울리는 머리야. 단정하고 부드러운 눈썹에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짙고 긴 속눈썹. 오만해 보이는 코에 도톰한 입술은 자존심이 강해보여. 동그란 얼굴에 감춰져 있는 귀는 아주 귀여울 것 같아. 브이자로 파인 검은 옷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어. '악보 위쪽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읽어볼래? '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하고 아이가 대답했다.

고집스런 아이는 백번도 더 말해준 그 뜻을 끝끝내 말하지 않는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 '보통빠르기로 노래하듯이' 가만히 따라해본다. 소리지르는 피아노 선생 앞의 얼굴 굳어진 아이 대신 가만히 되뇌어 본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그날 그 시간. 피아노 레슨 중. 아이가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을 이야기 하지 않아 혼나고 있는 그 시간 밖에는 여느때처럼 사이렌 소리가 들렸는데, 평소와 달랐던 것은 여자의 비명소리였다. 길게 이어지는 비명소리. 그리고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음에 분명한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 '내일이면 무슨 일인지 알겠죠' 아이의 엄마와 피아노 선생은 이야기 하고, 레슨은 계속되고, 피아노 선생은 계속 화내고, 아이는 고집 부리다가 피아노 치다가 다시 멈췄다가 다시 치기를 반복한다. 아이의 엄마는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아이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피아노 선생님에겐 변명을 늘어 놓는다.

레슨이 끝났다. 피아노 선생님집에서 내려와서 거리로 나선 엄마와 아이.

'여자의 비명' 이 끝난 그 까페 앞을 지난다. 광기에 휩싸인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자를 애무한다. 남자는 피범벅이다. 여자에게 키스하고 여자 옆에 눕는다. 경찰이 오고 그를 데려간다.

그 강렬한 사건후의 소진. 재로 남은 남자. 를 본 여자는 몹시 흔들린다. 그녀를 십여년동안 지탱하고 있던 받침 하나가 빠지면서 이제 그녀가 기울어 쓰러지는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티내지 않으려는 노력이 먹히는 시간이다.

소도시 공자주의 아내 '안'  그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움쭉달쑥 못했던 십여년동안에서 벗어나려 한다. 저택 밖의 창문으로 공장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중에 한 둘은 목련꽃 향기가 짙은 밤이면 떠올려 보곤 한다. 그녀의 일탈의 징조이다.

부둣가로 산책을 나가 노동자들의 까페로 들어가 쇼벵을 만난다. 그 둘은 어쩌면 예전부터 알았고, 어쩌면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고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그 날 사랑해서 여자의 부탁에 의해서 사랑해서 총을 쏜 사랑해서 파멸한 연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본인들을 거기에 대입시켜 사건을 되풀이 한다. 사랑을 되풀이 한다.

그녀의 의심. ' 아이가 정말 존재하는지 '에 대한 의심은 나로 하여금 '쇼벵'의 존재에 대한 의심. 나아가서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인가' 에 대한 의심까지 들게 한다.

책의 마지막은 그들이 예정했던 수순으로 끝난다.

소소한 내용이 머리에 박히기보다는 그 여운만이 길게 남는 책이다. 후르륵 마셔야 했지만, 맛이나 향따위 음미하며 마실 수 없었지만, 카페인과 같은 각성제가 나도 모르는새 더 빨리 흡수되어, 그 여운이 더 긴 책이다. 그렇게 또 빨리 잊혀질 책이려나.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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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4-2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을 때 뭔지 모르게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어요.
책을 덮으면서 심호흡을 했던 기억도 나구요. 뒤라스의 글은 늘 그런 것 같네요^^

Phantomlady 2005-04-2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뒤라스 이 아줌마가 좋아요 부영사나 에밀리 엘의 사랑도 넘 좋아요..

하이드 2005-04-2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책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이냣!

비연 2005-04-2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영사는 절판되었더군요..흠. 이것도 재미난 건 사실입니다.

moonnight 2005-04-2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글 좋아하는데..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