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식사는 사무실 사람들과 어울려 주변의 식당을 찾았습니다. 주메뉴야 닭도리탕인데 평시에는 보지 못했던 반찬 한가지가 더 올라와 있었습니다. 하얀 보숭이에 담긴 메뚜기였습니다. 그런데 메뚜기는 설탕과 간장에 조려져 있었고 예전에 먹던 메뚜기맛을 생각하고 입안에 넣으니 바삭거림은 여전한데도 맛은 옛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메뚜기가 반찬으로 나오니 무척 신기하였는데, 주인장에게 식당에서 튀긴것이냐고 물으니 농수산시장에서 구입해 왔다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나는것이 있어 포장을 좀 보자고 가져와 달라고 해서 포장을 보니 원산지가 중국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원가가 비싼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면봉지 두 배 정도되는 메뚜기의 가격이 제법 되더군요. 아마 수입상은 분명 싼 가격에 수입을 했겠지만 유통과정에서 가격이 많이 부풀려 진것 같습니다.
제가 어려서 생활하던곳은 돈암동이었습니다. 이맘쯤이면 동네 아이들과 작당을 하여 미아리 고개를 넘어 길음천 부근에 다다르면 바로 논가에 다다랐었죠. 논의 이곳 저곳에는 벌써 벼베기가 끝나서 낱가리를 쌓아둔 논과 주인이 게을러서인지 익을대로 익은 벼가 고개를 푸욱 수그리고 있음에도 베지 않고 있는 논이 있었는데, 이 논에는 가마귀와 참새가 알방구리 드나들듯 마음껏 배를 채우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길섶에 키만큼 자란 강아지풀 몇 개를 쑤욱 뽑아들고는 논으로 갑니다.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이리 푸드득 저리 푸드득거리는 벼메뚜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어떤때는 커다란 녀석을 발견이라도 하게되면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쫒아가서 결국은 어린 손바닥에 가득차는 그 녀석을 붙잡고는 좋아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잡은 메뚜기는 목 뒤로 강아지풀의 끄트머리를 밀어넣어 아래로 내리면 꼼짝을 못하며 버둥대기 시작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아이들의 손에는 너 댓개의 강아지풀에 잔뜩 꿰여있는 메뚜기를 들고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뒷덜미가 강아지풀에 꿰인 메뚜기들은 긴 다리를 서로 차기도 하면서 몸부림을 치지만 한번 꿰인 메뚜기는 목이 달아나기 전 까지는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동네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먹을 시간이 안된 경우에는 동네 골목에서 잔불을 피워놓고는 강아지풀의 끄트머리를 손에 잡고 메뚜기를 불 속에 집어 넣어 굽게 되는데, 불 속에서 바등거리던 메뚜기들은 잠시 후에는 빨갛게 익었다가는 금방 새까만 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잘 구워진 메뚜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입속에 넣고 씹어 먹노라면 그 맛은 어느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꿀맛이랍니다. 그래도 몇 가닥의 강아지풀에 남은것이 있으면 집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그런 생물을 왜 잡아왔느냐고 겉나무라시지만 동생과 같이 구멍마다 뱀의 혀 처럼 날름거리는 연탄아궁이의 불위에 살짝만 올려 놓아도 아주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훌륭한 고단백의 간식거리가 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때도 메뚜기를 잡아먹어 보았지만, 벌써 그 때도 농약 오염이니 뭐니 해서 메뚜기를 먹는것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철에 농촌에 갈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기회만 닿았다면 아마도 많은 메뚜기를 더 잡아먹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은 농촌에 가서도 잘 보이지 않고 메뚜기가 보이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어렸을 때 처럼 가을걷이를 마무리하는 논의 이곳 저곳을 비상하던 메뚜기떼는 구경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지방에 자료조사차 내려갔다가 메뚜기 양식을 한다는 분이 계셔서 그 양식장에 가 본적이 있었습니다. 양식장이라고 해서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양식장이라는 곳에는 나무 기둥이 박혀있고 너 댓개의 모기장이 쳐저 있었는데 양식장에서 비교적 먼 거리임에도 무엇인지 스왁~스왁~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습니다. 그 소리의 정체는 모기장에 가서야 알 수 있었는데 그 모기장이 바로 양식장이며 모기장 속에는 수많은 메뚜기가 자라고 있었고, 아까의 그 소리는 메뚜기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는 옥수수잎을 갉아먹는 소리였습니다. 어찌나 순식간에 해 치우던지...그 모습을 보니 아프리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메뚜기떼의 대 공습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수억만 마리의 메뚜기떼가 한꺼번에 돌아다니면서 곡식을 갉아 먹는다면 남아날 것이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럴때는 화염방사기를 발사해서 날라다니는 메뚜기를 아예 구이로 만들어 적당한 가미를 하고 포장을 하여 우리나라 같은 메뚜기를 술안주로 삼는 나라에 수출을 하면 될텐데...아직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그런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어제의 메뚜기는 고소한 맛 보다는 설탕과 간장에 조리는 바람에 오히려 약간은 달착지근한 맛이 강해서 예전의 그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런 고단백의 식품에는 관심이 없을까요? 워낙 먹거리가 풍부해서인지...아니라면 논에 가도 메뚜기가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그도 아니라면 방과후 피아노다 태권도다 학원에 가느라 시간이 없어서인지 말입니다. 제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몇 군데의 유기농 논에는 우렁이와 메뚜기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 주말에는 아이들과 그곳이라도 찾는다면 보기 힘든 메뚜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기회가 된다면 잡아서 구워 먹어도 보고요....
* 메뚜기는 보호색을 띈다고 합니다. 흔히 벼메뚜기는 논에 심겨진 벼와 함께 살기에 녹색을 띄며, 가을에 마른 풀섶에 사는 메뚜기는 갈색을 띄고 있어 '송장메뚜기'라고 하여 논에서 자라는 메뚜기와 구별을 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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