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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유명해진 책이지만, 내게는 지난 2002 대선 때 가수 신해철이 노무현 후보 지지 연설 때 언급했던 책으로 더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오래 못 보다가 미용실에 가는 길에 들고 가서 한권을 다 읽고 나왔다. (미용실에서 오래 지체됐다는 소리..ㅠ.ㅠ)
짐작보다 더 진지했고, 덜 무거웠고, 보다 창의력이 넘쳤던... 그러면서 전작보다는 덜 감동적인... 나로서는 꽤 복잡한 느낌을 전달해준 셈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배경, 대체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는 시간대...
그곳에 모모라는 아이가 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그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고, 이야기 끝에 상처를 치유케 하는 묘한 힘을 가진 어린 소녀.
그녀의 주변에 자리한 마음 따뜻한 사람들, 그녀의 친구들, 또래 아이들...
그런 평화로운 마을에 시간 도둑이 나타났다.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함을 가중시켜, 시간을 저축하라고 강요한 뒤, 저축된 시간을 도둑질하는 시간 도둑. 회색 옷과 회색 웃음. 중절모, 그들의 가방... 전형적인 도시인의 샐러리맨 같은 모습의 그들은 한기를 내뿜으며 등장하고 연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더 바빠진다. 잠시라도 따스한 온기를 나눌 여유는 없어지고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분주해지고, 마음은 더 날카로워져 웃음이라고는 모르는 사람들도 변해간다.
미하엘 엔데가 시간을 도둑 맞은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내용들은, 사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보다 성공하기 위해, 잠을 쪼개고, 꿈을 쪼개고, 마음을 쪼개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추억을 빼앗기는 것도 모르고 숨가쁘게 달려 왔다. 대체 왜 그렇게 달려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투쟁이고 도전인 지를 모른 채, 모두가 그렇게 달리기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한 발자국이라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아이들은 놀이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학원이다 과외다 쫓겨가기 바쁘고, 어릴 때부터 자격증에 시달리고, 학교라는 공교육의 울타리에 들어가면 입시의 중압감으로 날마다 무거워지는 어깨를 이고 지고 산다.
아이들 뿐이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대학 가면 끝이 나나. 절대 그럴 리 없다. 입시보다 더 무서운 취업의 문이 딱 버티고 있고, 이어 결혼 출산 육아 노후 기타 등등... 챙겨야 할 것은 너무 많고, 감당해야 할 의무는 너무 많은데, 죽자 살자 들어간 회사라고 나의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고, 비정규직은 도처에 깔려 있고, 출산율이 너무 저조하다고 국가는 달달 볶지만 낳아놓는다고 저절로 자라나. 육아, 탁아 문제는 저 먼 섬나라 이야기이고, 키운다고 내 뜻대로 자라나...
헥헥... 이야기하자면 너무 끝이 없다. 그 숨가쁜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며 지내고 있을까. 그들 중에서 꿈을 키우며,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들 모두가 시간을 스스로에게 도둑맞고 저당잡히며 산다는 것을 아는 이가 대체 몇이나 될까.
참 모순된 마음이다. 요새 월든도 같이 읽고 있는데, 그렇다고 모든 문명의 이기를 떠나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라고 하면 그건 가능한가? 절대 노일 테지.ㅡ.ㅡ;;;;
뭐든 극단적으로 접근할 이유는 없지만, 어느 쪽도 참 편치 않다는 기분이 든다.
모모처럼 단순히 시간 도둑을 해치우고 마을에 다시 평화와, 창의력, 상상력을 찾아다 주는 해피 엔딩이 우리 사회에도 가능한 것일까.
대답은 결국 각자의 몫으로 보인다. 시간에 쫓겨 사는 것, 시간을 관리하며 사는 것... 그 모든 것은 누가 해주지도 않고, 해낼 수도 없다. 미하엘 엔데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이같은 일들은 이미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일 수도 있는 것.
새벽이라 감정이 좀 복잡해져서 말이 많았다. 왜 이런 복잡한 마음들이 떠오르는 지는 책을 보면서 직접 판단하기를...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대와 마음 밭에 따라서 후기라는 것은 읽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게 나올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멋진 모험담이 될 테니까.
ps. 미하엘 엔데의 새 책이 나왔던데, 결국 보관함으로 직행. 아, 이 넘의 지름신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