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 내 맘이 안그래

그 흔하디흔한 행복하라는 착한 작별인사를 해 주기엔 내 맘이 안 그래
그 때 난 무섭고 또 네가 미웠어

청춘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말로 되는 건
그 시간동안 너무도 서롤 알아왔던 탓

차라리 모든 게 거짓말이라면
모자란 사랑이 내 몫이 아니라면
내 헌신이 내 진심이 너에겐 불편했구나
헌신이 진심이 너에겐

미안하단 말 듣는 거 싫은 거 알아
함부로 억지로 그러지 않아...
근데 내 맘이 안 그래
어쨌든 고맙고 또 고마웠으니

추억으로 가장한 벅찬 시간속의 우리
떨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나란 사람

못 다한 내 사랑에 보낸다
I loved you 치밀어 오르는 내 슬픔에 바친다
내 눈물이 내 노래가 너에겐 곧 나였다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못 다한 내 사랑에 You were my hunger
치밀어 오르는 내 슬픔에 바친다
내 눈물이 내 노래가 너에겐 곧 나였다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그래도 내 맘이 안 그래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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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0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 어려워...-_-;;;;;

코코죠 2007-11-0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앨범 말랑말랑하대서, 푸딩 위를 걷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슬프자네요! 따끔따끔거려요, 앨범 이름 따끔으로 바까요! 힝-

마노아 2007-11-05 22:44   좋아요 0 | URL
아마도 평소 하던 '락'음악에 비한다면 말랑말랑 '발라드표' 음악이 들어있단 의미 같아요.
두번째 보니까 더 슬프네요. 마지막에 나무 인형 손가락에 반지가 아프게 빛나요...ㅜ.ㅜ

하루(春) 2007-11-0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노래는 부드러운 rock ballad죠. ^^

마노아 2007-11-05 23:05   좋아요 0 | URL
그렇게 분류하게 되나요? ^^

하루(春) 2007-11-0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분류까지야.. 그냥 제가 듣기에 rock 요소가 빠지진 않았으니 그런 거 아니냐 ... ㅋㅋㅋ

마노아 2007-11-06 07:06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그러네요. 이번 곡에서도 제대로 질러주시죠^^

산사춘 2007-11-0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정지화면 이승환 표정 보구 한참 웃었어요. 노래듣고 경건해질께요.

마노아 2007-11-06 23:19   좋아요 0 | URL
아하핫! 노래 가사나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은 채 저 화면만 보면 웃길 수도 있겠어요.ㅋㅋㅋ
그래도 노래는 꼭 감상하셔욧^^
 

수업 마치고 돌아오니 부재중 통화 하나. 알라딘에서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됐고, 번호를 남겨놓으니 몇 분 뒤에 연락이 왔다.

하지만 알라딘에서 왜 연락을 했는지 전화주신 분도 알 길이 없고, 다시 알아보고 연락준다고 한다.

별 일 아니면 문자로 남겨주셔도 됩니다~했는데, 정말 별 일 아니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고....'

소심한 나는 아까 올린 리뷰가 너무 줄거리를 길게 적은 탓에 리뷰가 아닌 '페이퍼'로 옮기라는 경고를 듣는 게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 버렸지 뭔가.(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페이퍼를 서재 생활 초기에 읽었었다. 그때는 줄거리가 아니라 생활성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뭔 일이 있을 때 '내가 뭘 잘못했나보다'라고 덜컥 겁부터 먹는 성향은 좀 안 좋은 것 같다. 반대 경우도 영 아니지만.

맘에 안 드는 성격이네.

날은 으스스 내내 을씨년스러웠고, 싹퉁 바가지 학생 녀석 때문에 열 받고, 그런 녀석들을 따끔하게 혼을 내지도, 또 부드럽고 능숙하게 넘기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 못마땅했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그래서 친구처럼 편한 선생님이 되고 싶지만, 나의 친절은 늘상 '쉬운 사람'으로 취급되어 이용당하기 일쑤.  최소한의 '예의'를 벗어날 때가 너무 많은데, 꼭 필요한 분노도 발산하지 못해서 속만 앓고 있다니. 이도 저도 아니어서 더 바보같다.

영악한 아이들보다 더 여시가 되어야 하건만, 난 워낙 곰 성향이어서 말이지...ㅜ.ㅜ

흔히들 '착해서 그래'라고 말해주지만, 별로 착한 것 같지도 않고(그냥 무능력하달까..;;;) 착하다는 게 곧 멍청하다고 취급되는 세상인지라 하나도 위로도 안 되고...

엉엉.... 요샌 집에 가도 이마에 내 천자고, 학교서도 힘들고, 안팎으로 너무 시달린다.  왜 이리 바보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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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0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올림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게군요...^^ (닥쵸!)

마노아 2007-11-05 18:31   좋아요 0 | URL
약오르지 않을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니구요? 흑흑....ㅠ.ㅠ

책향기 2007-11-0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착하다는 말 정말 듣기 싫은 심정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마시고 기운내셔요 마노아님~

마노아 2007-11-06 23:28   좋아요 0 | URL
책향기님 감사해요. 위로가 되었어요. 히힛... 생긴대로 살아야죠 뭐...ㅠ.ㅠ
 



 
층 버튼 없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제 676 호/2007-11-05]
 

두레박은 낮은 곳의 물을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그 유래가 기원전까지 올라가는 두레박은 원래 ‘물건’을 운송하는 수단이었지만, 차츰 ‘사람’까지 운송하게 됐다. 바로 현대인이라면 하루에 한번쯤 이용하는 운송수단, 엘리베이터다. 초기에는 물을 이용했지만 증기기관을 거쳐 전동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초고층빌딩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지금, 엘리베이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대만의 타이베이금융센터(508m)이지만 더 높은 초고층빌딩이 속속 건설되고 있다. 2009년 완공을 목표로 버즈두바이(705~950m)가 곧 왕좌에 오를 전망이다. 건물 높이가 20층만 넘어도 비상구 계단보다 엘리베이터가 우선적인 운송 수단이 된다. ‘편리한’ 운송수단에서 ‘필수적인’ 운송수단이 된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정교한 장치다. 엘리베이터 한 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부품은 모두 3만~5만개. 이들이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운행된다. 기본 요소는 승객이 타는 밀폐된 공간인 ‘카’(car)와 카를 올리고 내리는 ‘로프’와 이들을 건물에 고정하는 ‘고정도르래’다. 두레박에서 물 담는 바구니, 줄, 고정도르래가 필요한 것과 똑같다.

로프는 안전을 위해 가장 튼튼히 만드는 부분이다. 여러 겹의 강철을 꼰 선을 다시 꼬고, 이를 섬유 소재의 심 중심으로 감아 만든다. 최대 정원 무게의 10배를 견딜 만큼 튼튼하다. 윤활유를 발라 마찰로 닳지 않게 하고, 정기적으로 교체한다. 로프의 다른 쪽 끝에는 무거운 균형추가 달려있다. 최대 정원의 40~45% 무게로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 내려오고, 내겨갈 때 올라와 전동기의 부담을 줄여준다. 투명 엘리베이터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 균형추가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로프가 없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각각의 카에는 전동기가 부착되고, 카의 옆에 달린 바퀴는 엘리베이터 통로에 있는 레일에 꼭 고정돼 움직인다. 로프가 없으면 하나의 엘리베이터 통로에 여러 대의 카를 운행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로프를 교체할 필요도 없고, 엘리베이터가 수직은 물론 수평으로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프가 없는 엘리베이터는 정전 시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고 전력 소모도 훨씬 많아 아직 많이 쓰이지 않는다.

건물의 높이가 계속 올라가면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야 할 조건도 더 많아졌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속도. 현재 타이베이금융센터에는 1층부터 꼭대기까지 30초에 주파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있다. 아파트에 설치하는 중저속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분당 45~120m. 이 엘리베이터로 타이베이금융센터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무려 11분이나 걸리니 초고층건물에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필수다.

공기 저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초고속 엘리베이터 카의 상ㆍ하부는 유선형으로 설계돼 있다. 벽과 바닥은 이중으로 만들어 진동을 줄인다. 공기의 흐름과 압력 변화를 시뮬레이션하며 설계한다. 승차감도 중요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의 최대 속도 수준이다. 승객들이 속도 변화를 최대한 느끼지 못하도록 가속ㆍ감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승차감에서 가속도 변화도 더 중요한 것은 기압의 변화다.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위 기압이 낮아지면 고막이 팽창하며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우주비행사가 기압 적응훈련을 받을 때 쓰는 수학 모델로 연구한 결과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움직여도 기압차가 1800Pa(파스칼, 1Pa=1N/㎡) 이하이면 불쾌감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 초고층건물의 엘리베이터는 1층과 최고층의 기압차이가 1800Pa를 넘지 않도록 설계한다.

엘리베이터를 더 똑똑하게 만들기 위한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전문가 따르면 승객의 조급함은 기다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하고, 승객은 엘리베이터를 40초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승객의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학자들과 프로그래머들이 머리를 모으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시스템은 ‘목적지예고시스템’. 승객이 1층에서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 제어시스템은 여러 엘리베이터 중에서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낸다. 승객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층이 표시된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 행선 층이 같거나 비슷한 승객들이 함께 타기 때문에 도착 시간과 에너지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당연히 목적지예고시스템을 사용하는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층을 선택하는 버튼이 없다.

인공지능으로 점점 똑똑해지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예를 들어 출근시간에는 1층에서 각 층으로 올라가는 수요가 많을 것이고, 점심시간에는 각 층에서 식당으로 가는 수요가 많을 것이다. 시간에 따라서, 또 요일에 따라서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를 데이터로 축적해 승객이 가장 적게 기다리도록 엘리베이터를 운행한다.

최근에는 초고층 엘리베이터를 넘어 우주엘리베이터가 거론되고 있다. 적도 상공의 우주에 정지위성을 띄우고, 이 정지위성과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50km 높이의 탑과, 강철보다 100배 튼튼한 로프가 필요한 등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과학자들은 50년 내에 실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레박에서 출발했던 엘리베이터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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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1-0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밌네...
근데 난 과학향기 오다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안온다..

마노아 2007-11-05 17:00   좋아요 0 | URL
호곡, 그런 일이! 다시 신청하셔야겠어요^^;;;
http://www.yeskisti.net/yesKISTI/Briefing/Scent/View.jsp?seq=3580&SITE=KLIC
왼쪽 하단에 메일링 서비스요~

딸기 2007-11-0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다시 오네 ^^;;

마노아 2007-11-07 17:11   좋아요 0 | URL
전 가끔 건너 뛰고 주말에 올 때도 있던데 언니는 아예 건너 뛰었나 봐요^^;;;

마노아 2007-11-07 20:44   좋아요 0 | URL
컥, 그러고 보니 전 오늘 안 왔어요.ㅡ.ㅡ;;;;
 
10월의 책입니다-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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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이 노벨 문학상을 타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구매를 좀 더 미루거나 아예 모른 채 지나가지 않았을까.  그녀가 큰 상을 받았기에 호기심이 동했고,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라는 '세트도서'로서의 자리가 구매를 유발시켰다.  주체적인 선택은 그닥 아니었지만, 즐거운 독서였고 신선한 만남이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때는 60년대였지만, 그들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접근을 원했던, 그리고 그것을 아낀다는 점에서 통했다.  그들은 런던까지 출근이 가능한 소도시에 위치한 빅토리아풍의 거대한 저택을 구입한다.  집은 우거진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을 끼고 있었고, 2층과 3층의 방을 다 합하면 8개에 이르며, 꼭대기엔 다락방까지 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저택이었다.  물론, 그들의 월급만을 가지고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고, 데이비드는 오래 전에 이혼해서 새엄마와 살고 계시는 부자 친아버지의 도움으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호텔처럼 거대한 이 집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었던 것이냐면, 그들은 '가족'으로 꽉꽉 채울 셈이었다.  그들은 여섯 명의 아이를 낳기를 희망했고,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는 동안 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척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기간은 몇 주를 넘어서 몇 달에 걸치기까지 했지만 그들은 즐거워했고 모인 사람들 역시 만족스런 시간을 보냈다.(그 어마어마한 경비는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의 수표로 충당하곤 했다.)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해리엇의 어머니 도로시의 헌신이 요구되었고, 친척들은 그들 부부가 더 이상 아기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이들 부부의 강력한(!) 의지는 꺾일 줄을 몰랐다.  그래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몸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어서 네번째 아이를 낳고는 조심을 한다고 하였는데, 그만 다섯 째 아이가 덜컥 들어서고 만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책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가 뱃속에 있었던 여덟 달 동안 해리엇은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뱃 속에서 너무 요동을 쳤던 것이다.  해리엇은 조산했고,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아이는 너무 무거웠고 울지조차 않는 녀석의 공격적인 젖먹기는 거의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다섯 째 아이의 이름은 벤이었다.  벤은 성장이 빨랐다.  두 달만에 모유수유를 멈춰야 했고(아니었다면 엄마의 가슴을 통째로 삼켰을 아이였다.) 그 호전적인 눈빛에 다른 아이들은 슬금슬금 벤을 피하기 시작했다.  벤은 기어다닌적도 없이 바로 걷기 시작했고, 돌쟁이 무렵엔 개를 목졸라 죽였고 이어 고양이도 같은 식으로 죽여버리는 끔찍한 일들을 저지른다.

평화로웠고 행복했던 일상의 순간들은 모조리 깨져버렸다.  이제 친척들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그 자리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벤의 형과 누나들은 동생을 피하고 경계했으며, 벤의 폭력에 의해 팔목이 삐기까지 했던 넷째 폴의 분노와 공포는 극에 달했다.  누구도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고(심지어 부모조차도) 가족들은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이들은 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엄마 해리엇은 마지못해 수용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엄마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이가 창문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곳으로 마구 달릴 때에, 가까스로 아이를 잡았을 때 해리엇이 느낀 감정은 지극히 솔직한 마음의 소리였다. "하필이면 내가 이때 들어오다니......"

옳지 않고, 당연히 엄마로서 할 소리가 아님에도, 아이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독자 역시 그녀의 그 참담한 마음에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전혀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영화 '오멘'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달까......

벤이 수용소로 보내진 날, 네 명의 아이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 바쁘다. "우리들도 보내실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해리엇은 울고 싶었을 것이다.  큰 아이 루크는 "벤이 우리하고 아주 달랐기 때문에 데려간 거야"라고 대신 대답을 하는데, 그 대답이 자못 슬프다. '다르다'라는 것이 다른 쪽으로도 읽혀서 말이다.  어떤 가정에서 장애 아이가 태어난다던지, 혹은 사고로 장애아를 갖게 되었을 때 집안에 드리워지게 되는 검은 구름이 떠올랐다.  물론, 작품 속 해리엇의 집은 얘기가 좀 다르다.  벤은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특이한 아이였지만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운증후군 조카보다도 더 사회생활이 힘든, 심지어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남다른 아이였다.

아이가 보호소에 갇혀 있는 동안에 집안에 다시 평화가 돌아오는 듯했다.  넷째 폴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하지만 엄마 해리엇은 아들을 방치시킨 채 그 사실을 속에 담고 내내 버틸 수가 없었다.  아이가 어찌 지내는지 보고 오기 위해 떠났던 길에서, 결국 해리엇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자신을 말리지 못했다.  끔찍한 보호소에서 약물로 통제되던 벤은 집에 돌아와서도 그 공포에 짐승같은 보호본능과 공격성을 쉽게 꺾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해리엇은 집안의 공적이 되고 만다.

아이들은 기숙학교로 자청해서 떠나버리고, 폴은 히스테릭하게 성장했고, 데이비드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채 일에만 파묻혔다.  그 커다란 저택에 온통 사람들로 꽉 차서 모두가 행복해했던 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리엇은 벤의 존재가 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남다른 유전자, 지구상에서 잘 발견되지 않은 이상 생명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이 행복해지고자 했던 그 마음이 욕심이었던 거라고 자조적인 말도 하게 된다.  네 명의 아이를 열심히 잘 키워낸 것에 대해선 누구도 칭찬하지 않는데, 벤이라는 아이를 낳았다는 것으로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고 비난을 받는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는 해리엇은 점점 지쳐가고 늙어갈 뿐이다.

당연하다고 여긴 그들의 행복한 가정, 그들이 추구한 가치 등이 모두가 허망한 것이라고, 너무도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굳이 이 작품을 정치적인 내용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혹은 그 아이를 끌어안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질타성 감상을 내놓고 싶지 않다.  벤이 가족들(혹은 사회 구성원 전체)과 남다른 특성으로 외로웠을 것처럼, 해리엇 역시 그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히 외로웠다.  누구라도 겁나고 두려웠을 그 상황에 다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작품 속에선 의사 선생님들조차 원론적인 얘기들만 고집할 뿐, 이들에게 서툰 '위로'조차도 건네주지 못한다.)

작품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권선징악적 구조도 아닌, 그저 이런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소설'로서의 이야기로 읽힌다.  여기에 교훈적 깨달음이나 반성을 꼭 갖다 붙일 필요도 없다.  작품 속에서 끊어지는 대목이 전혀 없어서 끊어 읽기가 아주 망하지만, 끊어 읽고 싶지 않게끔 충분히 매력적인 글쓰기를 작가는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굳이 노벨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리스 레싱의 문장은 맛있었다. (사실 노벨상 받은 작품인데 지루하지 않다고 여긴 예는 오랜만이었다..;;;) 책꽂이에서 다른 민음사 세계 문학 시리즈와 함께 빛날 '다섯째 아이'가 내심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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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라는 이름때문에 구입한 책이 저도 몇 권 있어요.

마노아 2007-11-05 15:17   좋아요 0 | URL
나란히 꽂아 놓으면 참 폼나는 책 시리즈지요^^;;;

순오기 2007-11-0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상 작품이라 살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었어요.
저도 노벨상 작품들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했거든요~~ㅎㅎㅎ
님의 리뷰는 확실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마노아 2007-11-05 22:51   좋아요 0 | URL
이 작품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어요^^
읽으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문학과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어요. 우리나라 책들은 최근엔 많이 달라졌지만, 특히나 과거 시대 이야기를 할 때는 꼭 '한의 정서'가 따라붙는데, 이 작품에선 비극적인 이야기를 함에 있어도 그 끈적한 느낌들이 배제되어 있어요. 건조하면서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요. 히잇, 끌어당기는 힘이라니....부끄러와요^^

프레이야 2007-11-0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두었는데 책 읽고 나서 님의 리뷰 읽을래요. 추천은 미리 ^^

마노아 2007-11-06 07:05   좋아요 0 | URL
히힛, 감사해요~ 전 혜경님의 리뷰를 기다릴래요^^

2007-11-06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1-1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리뷰 당선 축하해요~~~
미리 추천 눌러두길 잘 한거에요..^^

마노아 2007-11-16 17:55   좋아요 0 | URL
히힛, 감사해요. 뜻밖이어서(늘 뜻밖이지만..;;;) 더 기분 좋아요. 헤헷^^

물만두 2007-11-1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7-11-16 1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물만두님^^

아영엄마 2007-11-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저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

마노아 2007-11-16 19:49   좋아요 0 | URL
아영엄마님, 감사해요. 부끄부끄(^^ )( ^^)

순오기 2007-11-17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합니다~~~
아직도 이 책 안사고 있는데, 이러면 막 사고 싶어지잖아요! ^^

마노아 2007-11-17 09:23   좋아요 0 | URL
막 부추기는 거죵. 재밌다구요^^;;; 축하 감사해요~

2008-06-2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6-29 07:09   좋아요 0 | URL
땡스투의 주인공이었군요! ^^
토론도서로 선정되면 미뤄둔 책도 읽을 수 있게 되는 장점이 따라오네요.
멋져요, 멋져^^

이매지 2007-11-1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두긴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_ㅜ
어여 읽어봐야겠군요 :)

마노아 2007-11-17 10: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매지님^^
책이 얇은 것에 비해서 글씨가 많구요. 그럼에도 생각보다 빨리 읽혀서 신기했어요.
아마 재밌어서 그랬나봐요^^

달콤한책 2007-11-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7-11-18 10:27   좋아요 0 | URL
달콤한책님 고마워요^^

책향기 2007-11-18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마노아님~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 어려울거라 생각했는데 님의 리뷰 읽으니 흥미가 생기네요

마노아 2007-11-18 23: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향기님^^ 저도 좀 쫄았는데, 괜찮았어요. 이 작품. 사실 노벨상 받은 책은 '황금 노트북'인데 그건 길어서 도전을 못하...;;; (탕!)

뽀송이 2007-11-19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에 관심이 잔뜩!!
노벨문학상 탄 작품들은 은근히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는데... 이 책은 괜찮을듯 해요.^^;;
얼른~ 읽어 볼게요.^^

마노아 2007-11-19 08:47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감사해요^^
전 기대 없이 읽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도리스 레싱이란 작가를 알게 되어서 기뻐요^^

다락방 2007-11-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축하해요~~
저도 읽어서 리뷰를 쓰려다 포기했는데 말입니다.리뷰는 어려워요 ㅜㅜ 흣.

마노아 2007-11-19 13:33   좋아요 0 | URL
헤엣, 감사합니다. 전 리뷰를 거의 의무적으로 기계적으로 쓰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더 중요한 것은 독서인데, 리뷰에 목숨을 걸어서요. 목숨 건 대가로 적립금 오만원 벌었어요^^ㅋㅋㅋ

로드무비 2007-11-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축하!
오만 원 바통을 받으셨네요.ㅎㅎ
이 책은 오래 전 사두고 읽지는 않았어요.
수상 소식에 읽어야지 해놓고 또 까먹고 있었는디.

마노아 2007-11-20 22:18   좋아요 0 | URL
헤헷, 로드무비님의 행운이 제게도 이어졌나봐요.
적립금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어요. 히힛^^;;;;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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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하나 읽고나면, 그 다음에는 비소설을 읽어야지...하는 조그마한 원칙을 세웠다.(그러나 무시될 수 있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이다.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 우리 사회의 진보적 좌파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났다.  각각의 사람들을 따로 시간차를 두고 만났지만, 그들에게서 묻고 있는 것들은 결국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대한민국의 현 주소란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자본이 주인이 되어버려 파시즘에 이르른 광기 어린 우리 사회이며, 10%의 가진 자(강자)를 위해서 희생되고 있는 90%의 약자가 사는 곳이란 얘기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를 함께 물으며 공존하지 못하고 대립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두 개의 현실을 긴 대화를 통해서 정리하였다.

첫 인터뷰이는 박노자씨였다.  한국에 귀화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 지성인은, 우리가 안에 있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모순들을 우리 바깥에서 거침없이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곤 했는데, 우리 안에 인이 박혀버린 '노예근성'을 얘기할 때에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승희 사건 때에 제대로 밝혀졌지만, 백인(특히 미국인)에게 과도하게 친절하고, 유색인종은 얕잡아 보는 이중적 태도란 우리 스스로 존엄성을 포기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가르치는 자들이 먼저 그 습성을 버려야 하는데,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란 이미 뼛속 깊이 노예근성이 박혀있을 때가 많아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고는 선생님께서 불편해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애써 '근로자'라고 단어를 바꾸셨는데, 그와 같은 경우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의 신성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비천하게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땀흘려 일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수치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짜 수치임을 모르는 사태이다.  작년에 본 급훈 중에서 충격적인 문구가 있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글이었는데, 명확하게 나눠진 대립적인 계급과 가치에, 그것이 교실 높은 곳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급훈을 정한 사람이 그 학급 담임이라는 사실에 더 기가 막혔다.)

그나저나 조승희 사건을 얘기하였는데, 인터뷰 날짜가 2006년인 것은 2007년의 오기가 아닐까 싶다.

두번 째 인터뷰이는 오랜 세월 망명의 시간을 보냈던 홍세화씨.  그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 대해서 일갈을 두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라는 단어를 '수구'와 혼동해서 쓰이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보수'라는 말 자체에는 지켜야 할 아름다운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파들은 지킬 가치라는 게 고작해야 자신들의 '기득권' 뿐이었으니 이 단어가 혼용되어 섞이는 것이 이상치는 않다만 주의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홍세화씨는 '삼성 공화국'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부패공화국, 도박공화국, 부동산 공화국 등등... 건전치 못한 부정한 단어에 붙어 쓰기엔 '공화국'에 내포되어 있는 공공의 가치가 지나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미처 감지하지 못했는데 맞는 지적이다.  은연중 이런 단어를 자꾸 쓰다 보면 모르는 새 '공화국'이라는 가치마저도 동반격하될 수도 있으니까.

세번째 인터뷰이는 김규항씨.  개인적으로는 김규항씨 관련된 글을 처음 읽은 듯했다.  이렇게 신랄하면서 유머러스한 논객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에 내심 섭섭함을 느꼈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김규항씨는 어린이 교육에 무척 힘을 쏟고 계신데, 그래서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열심히 발간하고 계시는 중이기도 하다.  "왜 사회는 민주화 되었는데 아이들은 더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옳은 말이다.  부족하다 할지라도 과거에 비해서 분명 민주화된 사회이건만, 아이들의 삶은 더 권위주의에 휘둘리고 있다.  성인 근로자의 적정 노동 시간이 8시간인 것처럼, 아이들의 적정 공부 시간이라는 것이 8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공평할 듯한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학원에 도서관에 과외에 얼마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가.  거기에 얼마만큼의 자발적 의지가 동원될까.  가엾고 안타까운 우리의 아이들이다. 

위인전에 대한 지적도 낯 뜨거웠다.  과거의 위인이란 군사 파시즘의 일환으로 이용된 면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위인이란 오로지 돈 잘 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마 전의 일인데 옆 학급에서는 CA 수업을 위해서 거둔 돈이 남았는데, 그 돈으로 피자를 사먹을까, 균등분배해줄까 하고 물었더니 돈으로 돌려달라고 했단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본인들의 돈이니 원하는 대로 해줬다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답지 않은 반응에 영 찝찝했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  나 역시 동의했다.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렇게 아이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 어른들의 문제이다. 

황우석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익' 망령에 사로잡혀서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갔던 부끄러웠던 시간.  그의 연구가 '돈'이 되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그런 반응이었을까.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 다이하드 4를 보면서, 국가 전복을 거의 실현시킬 뻔한 악당의 최종 목표라는 것이 단지 '거액의 돈'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시시하고 비현실적이라 여겼는데, 사실은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외치는 것은 이상주의자이거나 몽상가라는 평을 듣기 일쑤인데, 김규항씨는 진보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우리가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멀고도 아득하게 느껴진 것이지, 두눈 부릅뜨고 현실로 뛰어들어 덤볐다면, 진보가 그렇게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새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떠올랐다.  단 10석 만으로도 재평가되었던 그들의 입장과 노력이.

개인적으로 7명의 인터뷰이 중에서 가장 편하게, 재밌게, 또 의미있게 읽혀진 이가 한홍구씨였다.  아무래도 대중적 역사 쓰기에 익숙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관심 분야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반가운 인터뷰 대상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쉽고도 편안했으며 구체적이었다.(홍세화씨의 관념적이고 어려운 단어들과 설명과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비관적이었던 박노자씨와는 구별되게 최소한의 '희망'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 반가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그 수염은 영 아니었다.  지금도 기르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IMF위기와 탄핵 정국이 우리에게 있었던 최대 반전의 '기회'였다는 지적에 몹시 속이 쓰렸다.  극적이었던 만큼 반전의 효과도 더 클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상처란 치유해야 새 살이 돋는 법인데, IMF때 외환위기를 몰고 온 재벌들은 오히려 승승장구 살아남고 애꿎은 서민들의 경제만 파탄난 것이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는 원수로 느껴져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뿐아니라 친일파라던가 군사 독재 시절의 의문사라든가 기타 등등 비슷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처벌하지 않았기에 보복이 생기는 것이라는 지적은 얼마나 섬뜩하게 울리던지....(강풀의 26년을 꼭 같이 보길 바란다!)

평화박물관 일도 같이 하시는 한교수님과 '평화'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갔는데 반핵, 북한 끌어안기, 파병반대 등등 어느 한 구절도 버릴 말씀이 없었다.  40년 전 박정희 정권 때에도 파병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알았는데, 21세기 현 정권은 파병연장을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부끄러워 미칠 노릇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게 만드려면, 핵을 포기하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남한이 해야 할 몫이다.  그것은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며, 우리가 함께 일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 감군을 결정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적정한 예산을 편성할 때, 여기에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 문제도 같이 해결할 수 있고 예산의 적절한 사용으로 경제 발전도 같이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쪽이 이기고 한쪽이 지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북한을 감싸안으며 큰소리 칠 배짱 혹은 밝은 지성이라는 게 있느냐인데, 아직까지는 답답한 답만이 떠오른다.

심상정씨와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온화하면서도 단단한 어조와 한미 FTA 반대에 대한 열정이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진정 이 나라 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발로 뛰기에 감동을 받았으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더 깊은 믿음으로까지 연결이 되었다. 

진중권씨는 앞으로 본업에만 충실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사회적으로 안타까운 손실이란 생각이 들지만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독단적인 마음들에 일침을 가하며, 우리 모두를 위한 교육에 힘껏 지지를 보낸다.  그 방법 역시 다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누구 하나 뽑아 놓으면 만사가 다 잘 될 거라는 사람들의 무책임하고도 무지한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도 힘주어 얘기하셨는데,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손석춘씨와의 인터뷰에서 R통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책으로 이미 출간되어 있는 줄 몰랐다.  좋은 책을 더불어 건진 셈.

초반 홍세화씨 인터뷰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그 후부터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유익하게 이어진 독서였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우리나라의 현실과 달라져야 할 부분들에 대한 일정한 정리가 스스로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 작업들이 가능하게 길을 터준 인터뷰어 지승호씨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다만 열 몇 군데 정도 오타가 눈에 띄는데 책이 많이 팔려서 다음 번 찍을 때에는 모두 수정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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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 몇 분만 맛보기를 했어요. 날 잡아서 진중하게 봐야 할 책이라 아직은...
님의 리뷰로 훨씬 친근하게 읽게 될 것 같아요. 홍세화씨.. 정말 강연도 어찌나 졸립고 재미없게 하던지~ㅎㅎ

마노아 2007-11-04 18:19   좋아요 0 | URL
아하핫, 순오기님 홍세화씨 강연 가보신 적 있군요^^ㅎㅎㅎ
같이 식사해 본 어느 기자분이 대단히 친근한 아저씨 분위기라 돌출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뭐랄까... 너무 선비 분위기라 좀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 같은 분위기에요. 책에서 읽혀지는 느낌이 말예요.^^;;하지만 이 책은 참 좋은 인터뷰집이었어요. 읽고 나니 좀 더 힘이 나기도 했구요~

마냐 2007-12-1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감사, 그리고 님도 축하드려요. ㅎㅎ 님이 아니었음, 암 생각 없이 모르고 지나갈 뻔 했슴다. 워낙 요즘 게으름 피우고 있어서요. 처음에 리뷰대회 공지났을땐...저 중에 3~4권은 해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실제로는 달랑 하나 밖에 못썼슴다. 타석에 한번 서서 1루타는 날렸으니..흐흐. 고마울 뿐이죠.

마노아 2007-12-14 16:07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공지 떴을 때 욕심냈던 책이 많았는데 날이 갈수록 목표량이 줄었어요^^;;;;
1루타 남기신 마냐님, 승률이 높아요. 헤헷^^

순오기 2007-12-14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리뷰보고 이 책 구입했었는데... 전 읽지를 못해서 못 올렸어요.
3관왕이시던가요? 축하축합니다!!

마노아 2007-12-15 00:30   좋아요 0 | URL
4관왕했어요^0^ 그치만 순오기님의 한건에 미치질 못합니다^^ 저도 마구마구 축하 날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