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오늘이었으면 했다. 2007년도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꼭 오늘 가고 싶었다.
힘겹고 서러움이 많았던 2007년도의 끄트머리에서, 그래도 나의 지난 일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말해줄, 나만의 증거가 필요했다.  좀 더 마음이 따스해질 수 있는, 희망을 채울 수 있는 그런 증거...

그래서 다녀왔다.
태안 천리포 해수욕장.

환경연합 단체에서 주관하는 일정은 무박 2일로, 나의 부도덕한 체력에 신뢰가 가질 않아서 캠프나라에 신청하고 다녀왔다.
다행히 당일치기였고 집에서 6시 50분에 출발해서 밤 10시에 도착했다. 어째 도착해서 봉사한 시간보다 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던 터라 걱정했던 것만큼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버스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공기가 달라진 게 멀미 날 것 같아서 우려했는데 잘 참아냈다.  워낙에 호흡기가 안 좋아서 공기가 나빠지면 졸도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런 불상사는 없었으니 뿌듯!

내내 따뜻했었는데 때마침 날씨도 엄청시리 추워주시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데, 우리는 김치 국밥을 눈과 함께 말아먹었다. (덤으로 머리카락도 나와주시공...;;;)

점심 먹고 바로 투입되어 들어갔는데, 처음엔 뭘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자세히 바위들을 들여다 보니 원유의 흔적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그 시커멓고 끈적끈적한 액체들.  면 옷 바리바리 싸들고 갔지만 수건만 못했고, 수건도 두꺼운 것보다는 가재 손수건 정도가 사용하기 편했다.

오늘 나의 최대 실수는, '안경'을 끼고 갔다는 것. 장시간 버스 안에서 보낼 시간을 생각해서 안경을 고집했는데, '마스크'를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  입김에 자꾸 시야가 흐려지고 우리 작업하는 내내 눈보라가 쳐서 시야 확보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그렇다고 마스크를 벗기에는 냄새가...ㅜ.ㅜ

결국 눈보라가 너무 심해져서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더 일찍 철수해야 했다. 때마침 준비해 간 수건도 똑 떨어진 시점이었고 고무장갑 속의 면장갑도 다 젖어들던 시점.

우리 차 인솔자는 몹시 친절한 분이셨는데, 이쪽 단체분들이 대체로 진행엔 헛점이 많았다. 일단 인원점검을 너무 못하더라^^

일행 별로 접수 받아놓고는 명단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와서 일행이 다 떨어져서 차에 타게 된 것이다. (차 6대) 그러니 다시 붙이느라 애먹고, 그 명단을 다시 확인하느라 처음부터 출석 확인하고...;;;;

그래도, 애쓰신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린 친구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돌멩이 닦던 모습 인상적이었고...

보라매 공원에서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의 계획처럼 마음이 편해지거나 혹은 어떤 충만감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몰두한다고 해서 잊혀질 마음의 짐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말뿐인 계획으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오늘 밤은 좀 일찍 쉬련다. 방학은 이제부터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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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3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셨네요, 마노아님... 충만감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지 않을까 싶은 현장 체험. ㅠㅠ
님, 푹 쉬고 앞으로 한달 간 펼쳐질 방학~~~~~ 행복하게 보내시길!!

마노아 2007-12-30 00:12   좋아요 0 | URL
기대보다 많이 참여해준 자원봉사 덕분에 응급처치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 정부와 피해 기업의 보상 문제가 길게 남은 것 같아요. 현지 주민들에게는 그게 더 급한 일일 것 같구요.
씻고 나니까 피곤이 밀려와요. 어여 자야겠습니다. ^^ 순오기님은 이제 '개학'하신 거죠^^;;;

hnine 2007-12-3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날, 애 쓰셨네요.
이제 방학의 시작이라니, 편안한 마음으로 언 몸과 마음, 녹이시기 바랍니다.
방학의 계획이 궁금해지네요^ ^

마노아 2007-12-30 16:25   좋아요 0 | URL
언 몸과 마음 녹이기, 그거야말로 제가 바라는 멋진 방학의 계획이에요.
hnine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용^^

라로 2007-12-30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마음은 있어도 한다는게 어려운데,,,애 많이 쓰셨어요.
보내겠다던 크리스마스 카드는 집안에 우환이 겹겹이 겹쳐서
올해는 못보냈어요,ㅠㅠ
죄송하구요,,,,내년을 기약할께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마노아 2007-12-30 16:27   좋아요 0 | URL
나비님, 소소한 도움이었지만 그래도 보탤 수 있어서 기쁜 일이었지요.
가족들 건강은 나아졌나요? 여러모로 힘든 시간 보내셨어요.
카드는 즐거이 내년을 기다릴게요.
나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히 지내셔요~ 찬 바람 많이 쐬시면 안 됩니다(>_<)

stella.K 2007-12-3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을 얼마 안 남기고 좋은 일하셨네요. 뿌듯하죠?
한해를 어떻게 살았던지간에 마지막을 앞두고
좋은 일하면 1년을 잘 산것 같잖아요.
잘 살았죠, 마노아님?!ㅎㅎ
새해는 보다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셨네요.
마지막은 그래서 좋은가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마노아 2007-12-30 20:43   좋아요 0 | URL
마무리가 좋으면 다 좋은 거겠죠?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2008년도는 더 아름답게 힘차게 살 테야요. 스텔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욧^^

비로그인 2007-12-3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날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마노아 2007-12-30 20:43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다녀오셔놓고는 뭘^^;;;
엘신님도 새해 복 담뿍 받으셔요~

프레이야 2007-12-3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으로 실천하신 마노아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날씨가 안 좋다고 하던데 오늘 몹시 추웠지요?
푹 쉬세요.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7-12-30 22:35   좋아요 0 | URL
어제 내린 눈이 예사롭지 않던데 폭설주의보에 경계에, 눈발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지원의 손길이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좀 걱정이 되었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 다녀온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희망했지요.
오늘은 몹시 춥더라구요. 몸살 기운이 있나봐요. 오늘도 일찍 자야겠어요. 혜경님 감사해요^^
 



 
나이테로 방향을 알 수 있다? 없다? [제 699 호/2007-12-28]
 


산에 올라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에 푹 빠져 길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계곡의 물길을 따라 내려온다. ②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찾는다. ③나무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보고 방향을 찾는다. ④수크령이나 질경이처럼 사람이 지나는 길에 자라는 풀을 찾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방법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계곡을 찾기 위해 물가에 잘 자라는 식물을 알아두면 좋다. 예를 들어 고마리 같은 풀이나 물푸레 같은 나무는 물을 좋아해 계곡 주변을 선호한다. 다만 겨울에는 낙엽이 지고 풀이 자라지 않아 이런 식물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밤하늘의 별을 볼 때까지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큰일이다.

흔히 나무 그루터기에서 나이테를 보면 방향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햇빛을 많이 받아 생장이 활발한 남쪽은 나이테의 폭이 넓다는 주장이다. 매우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경사면이나 바람, 햇볕 같은 다양한 자연 환경의 조건에 따라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든 나이테의 폭이 넓게 자랄 수 있다.

평평한 곳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진다. 즉 동서남북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산에서 자라는 나무는 어릴 때는 산의 경사면과 수직으로 자라다 차츰 지구의 중력방향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의 나이테가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친 ‘편심생장’을 하는 이유다. 미국 시러큐스대 티멜 교수에 따르면 땅의 경사가 약 2°만 기울어져도 나이테에 편심생장이 일어난다.

신기한 것은 소나무나 잣나무, 낙엽송 같은 침엽수는 나이테의 중심이 산 위쪽 방향에 생겨 나이테가 산 아래로 넓게 만들어지는 반면 참나무류나 단풍나무, 서어나무 같은 활엽수는 나이테의 중심이 산 아래쪽 방향에 생겨 나이테가 산 위쪽으로 넓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경사지지 않은 평지에서도 편심생장이 일어날 수 있다. 울창한 숲의 하층 식생에서 자라는 어린 나무는 햇볕을 좇아 열린 공간으로 방향을 틀면서 자란다. 이때 편심생장이 일어날 수 있다. 또 침엽수는 바람 부는 반대쪽으로, 활엽수는 바람 부는 쪽으로 나이테가 더 넓게 자랄 수 있다. 이는 침엽수와 활엽수에서 성장호르몬인 옥신의 분비가 정반대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옥신이 분비될수록 세포분열이 왕성하게 일어나 나이테의 폭이 반대편에 비해 더 넓어진다.

비록 나이테로 방향을 알 수는 없지만 나이테는 많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루터기를 관찰하다 보면 매년 생길 것 같은 나이테가 온전한 원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옥신의 공급이 충분치 않았거나 양분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혹은 1년 동안 성장해야 할 나이테가 2개나 관찰될 때도 있다. 나무는 1년 내내 크는 게 아니다. 3월에서 9월말까지만 자라고 이듬해 3월까지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휴면에 들어간다.

성장이 왕성한 봄에는 세포의 크기가 크고 세포벽이 얇은 춘재(春材)세포가, 여름에는 세포의 성장이 둔해지면서 크기가 작고 세포벽이 두꺼운 하재(夏材)세포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춘재세포는 세포벽이 얇아 밝게 보이고 하재세포는 세포벽이 두꺼워 상대적으로 색상이 어둡다. 이런 과정이 해마다 반복되면서 밝은 원과 어두운 원이 겹겹이 쌓여 나이테를 형성한다. 그런데 봄철 생장이 왕성해야 할 무렵 가뭄이나 늦서리, 병충해 피해가 생기면 춘재세포만 커야할 시기에 하재(夏材)세포가 잠시 형성됐다 다시 춘재세포가 자라나 한해 두 개의 나이테가 생기거나 완전한 원형을 이루지 못한 나이테가 생기기도 한다.

또 그루터기에서 나이테를 관찰하면 무슨 나무인지 알아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침엽수는 춘재세포에서 하재세포로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다. 즉 나이테의 무늬가 뚜렷하다. 반면 오동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는 나이테가 흐려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춘재세포에서 하재세포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부터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방향을 맞춘다고 그루터기를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말자. 해가 서산에 걸치기 전에 하산하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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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2-2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지...그럼, 나는 나이테가 13개 뿐이겠구나.
그 때부터 자라지 못했거든요.(웃음) 하지만 13번째 나이테는 아주 굵게 파였을 겁니다.^^;

마노아 2007-12-28 18:18   좋아요 0 | URL
하하핫, 저랑 비슷한 나이테를 자랑하겠군요. 씨익^^

비로그인 2007-12-28 18:47   좋아요 0 | URL
오옷, 역시 우린 나이테도~? ㅋㅋ

마노아 2007-12-28 18:55   좋아요 0 | URL
그렇다니까요. 빙고^^

bookJourney 2007-12-2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쪽 방향으로 나이테가 넓은게 아니라고요? 음 ... 그동안 알고 있던게 틀렸다는 거군요.
아이한테 아무거나 알려주면 안되겠네요. ^^;

마노아 2007-12-28 21:15   좋아요 0 | URL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틀렸다는 것을 종종 만날 때 많이 당황하게 되어요.
공부는 끊임없이 하게 된다니까요. 그죠^^;;;

비로그인 2007-12-2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테를 보고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죠?

마노아 2007-12-29 23:1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는 그게 '진실'이었을 텐데 말예요^^;;;
 



 
비정규직 산타의 하소연, 엘 리뇨 [제 698 호/2007-12-26]
 


딸랑 딸랑.
최고 산타의 루돌프가 목에 달린 방울을 흔들었다. 작년에도 같은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워낙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보통 영리한 녀석이 아니다. 지금도 연례 회의에 참석해야 할 산타들이 적당히 모이자 제가 알아서 집중하라고 소리를 낸 것이다. 최고 산타는 장내를 스윽 둘러보더니 말했다.
“다들 모였나? 자 그럼 호명할 테니 대답하라구. 귀찮겠지만 형식이라는 게 있으니까. 자, 북유럽 1호 산타.”
순서에 맞게 여기저기서 대답들이 들린다. 거의 모든 사람이 출근 점검을 마치자 최고 산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남미 방면에 12호 산타가 있었나? 아, 작년에 비정규직으로 한 명 채용했었지.”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살짝 손을 들어보였다. 최고 산타는 흰 수염 너머로 인간들의 백화점 간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최고 산타는 작년과 달리 곧바로 주소록 분배에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자, 올해는 회의 과정에 항목이 하나 더 늘었어. 업무 과정을 개선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거든. 그래서….”
“연장 회의 시간도 초과 수당 나옵니까?”
북미 3호 산타가 이렇게 묻자 산타들이 킬킬 거렸다. 하지만 최고 산타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고 웃음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최고 산타는 하던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인간 개인이 아닌 다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나 의논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네. 사실 소원 통계국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알다시피 그 쪽은 배달할 수 있는 물건들만 취급하거든. 그러니 업무를 수행하면서, 아니면 평상시에 보고 느꼈던 인류의 총체적 소원을 하나씩 얘기해 보라구.”

산타직을 어디까지나 연말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던 나는 조금 흥미가 일었다. 하지만 의견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침묵이 흐르고 나자 누군가가 첫 안을 내놓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물질적인 부 아닐까요?”
최고 산타는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논외야. 금전적인 문제는 인간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지 않나.”
그제야 우리들은 이 새 절차의 의미가 뭔지를 깨달았다. 산타 업무에는 꽤 까다로운 제약 사항이 있다. 그 조건으로 이것저것 걸러내고 나면 남는 것은 세계 평화나 사랑의 충만처럼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들뿐일 것이다. 최고 산타는 그걸 적어서 상부에 제출하고, 윗사람들은 행정 개선 창구를 하나 추가했다며 뿌듯해 할 것이다. 산타들은 인사 고과 점수를 떠올리면서 어서 누군가가 얼굴을 붉히며 ‘세계 평화’라는 안을 내놓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무서울 것이 없다. 여기서 퇴출당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게다가 평화나 사랑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날씨요.”
최고 산타가 무슨 소린지 몰라 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날씨?”
나는 산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일어섰다.
“올 한 해 인간들은 이상 기후 때문에 지독하게 당했습니다. 뭐 저야 비정규직이니 기후 담당 부서에 그 원인을 뭐라고 하는지는 모릅니다만, 인간들은 올해의 이상 기후 원인을 두 가지로 꼽더군요. 지구 온난화와 엘 니뇨가 겹쳐서 그렇다구요.”
최고 산타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 의제의 절반을 잘라버렸다.
“우선 지구 온난화 해결은 소원에 해당하지 않네. 그건 인간들이 제 손으로 자처한 셈 아닌가. 이산화탄소라든가 각종 공해에 산업 폐기물들. 그러니 그건 우리가 고려해 줄 문제가 아니지.”
“그럼 엘 니뇨는 어떻습니까?”
최고 산타는 모자를 벗더니 머리털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정수리를 긁었다. 난처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옳거니. 나는 얼렁뚱땅 형식적으로 넘어가려던 최고 산타의 약점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 때 남극 1호 산타가 내 소박한 계획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엘 니뇨가 뭐야?”
나는 낭패감을 숨기며 대답했다.
“열대 태평양 쪽에서 나타나는 이상 고온 현상입니다. 정확히는 심해의 한류가 올라와야 할 곳을 엉뚱한 난류가 대신하면서 생태계와 기후를 망가뜨리는 거죠. 이름의 뜻은 ‘신의 아들’이라고 합니다만, 그 뜻과는 달리 악영향이 더욱 큰 모양입니다.”
‘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몇몇 원로 산타들이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나는 못들은 척 얘기를 계속했다.
“지구의 거시적 기후는 계절풍, 무역풍 등의 기류와 해류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람들의 생활도 이에 맞춰져 있고 지역색 또한 여기에 맞게 생기는 거지요. 한데 엘 니뇨는 주기적인 기후 순환을 흔듭니다. 어떤 지역은 어획량이 늘어나서 기뻐하기도 합니다만, 대개의 경우 건조하던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홍수를 일으키거나 서늘하던 지방에 혹서를 퍼부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제 담당 구역인 페루에서는 대 홍수가 있었죠. 칠레에는 큰 가뭄이 들었구요. 엘 니뇨가 발생하면 어촌 아이들의 소원도 바뀌더군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안 받아도 되니 아버지가 고기를 많이 낚게 해달라구요. 하지만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도 기근으로 시달렸고, 이제 전 지구가 엘 니뇨의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결국 지구의 총체적인 이상 기후에 큰 몫을 하는 셈이죠. 몇몇 인간들은 인간이 빚은 지구 온난화가 엘 니뇨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 지구 온난화와 엘 니뇨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내 선배, 그러니까 남미 2호 산타가 푸념을 털어놓았다.
“사실 엘 니뇨는 우리 업무하고도 연관이 있어. 루돌프들이 얼마나 환경 변화에 민감한지는 다들 알지? 이 녀석들이 최고의 몸 상태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큼 선물 배달이 늦는단 말이야. 한데 이 엘 니뇨는 크리스마스 전후해서 발생하거든. 게다가 완전히 주기적인 것도 아니라서 미리 대처하는 게 불가능하다구. 지속 기간은 또 어떻구? 짧을 때는 1년 정도 가다가 그치기도 하지만 길면 5년 까지도 계속 되거든. 이러다 루돌프가 병이라도 걸려봐. 대체 운용 루돌프를 신청하면 3년이나 있어야 하는데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란 말이지. 하물며 한 철만 활동하는 우리도 이런데 평생을 거기서 살아야하는 인간들은 어떻겠어.”

자, 이렇게 해서 형식적인 회의를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려는 내 계획은 성공했다. 인간들의 큰 소원 하나를 골라내서 산타들이 얼마나 인간들을 생각해주는가 생색이나 내자던 회의의 취지는 어느새 실직적인 과제로 변했고, 거기에 산타들의 근무 환경과 루돌프들의 복지 문제까지 겹치니 최고 산타도 구태의연한 보고서만 제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있던 남미 산타들도 앞다퉈 불만사항을 토로했다.
“알았어, 알았다구. 하지만 근무 복지는 이번 회의하고는 상관이 없지 않나. 그건 따로 시간을 내서 얘기해보도록 하고, 문제를 엘 니뇨 하나로 좁히면 되겠지?”
최고 산타의 타협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엘 니뇨는 지구 남반구의 생활에 큰 타격을 주고 있으며, 이제는 그 피해가 지구 전반에 미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기후의 안정화이며, 그 일환으로 엘 니뇨 현상을 없애주시거나 그게 어려울 경우 고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정도로 보고를 올리면 되겠나?”

좋다. 첫 출발로는 아주 좋다. 만의 하나 이 새로운 회의가 매년 계속 된다면 실질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코 묻은 아이들에게 새 게임기를 안겨주거나 애인을 원하는 노처녀에게 인연과 만날 수 있노라며 야구장 입장권을 건네주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 산타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아보였다. 그 때문에 나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최고 산타는 각 지역장 산타들을 앞으로 불러서 주소록을 나눠주려는 참이었다. 나는 얼른 손을 들었다.
“음? 얘기가 아직 안 끝났나? 자네도 결론에 만족한다면서?”
“예, 제출안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만, 결과는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무슨 결과?”
“그러니까…. 엘 니뇨는 언제 해결되는 거냐 이 말씀입니다. 그도 아니면 대답을 언제….”
“그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예?”
나는 멍하니 최고 산타를 바라보았다.

“내가 받은 지시는 다수의 소원을 전달할 창구를 만들라는 것뿐이었네. 그걸 충실히 이행한 것뿐이야. 뭐 문제라도 있나?”
나는 큰 소리로 한 마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눈길을 돌려 동료 산타들의 피로에 젖은 얼굴들을 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중간 관리자이자 실무진이다. 최고 산타도 예외는 아니다. 그저 상처받은 인간들을 잠시 위로해 줄 수 있는 선물을 전해 주는 게 우리의 일이고, 또 능력의 전부다. 언제나 그랬듯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윗사람들은, 아니 우리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존재하는가도 분명치 않은 윗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서 어떤 해결책도 내려주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극동 지역 산타에게 전해들은 속담 하나가 떠오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계약이 있으니 올해의 산타 노릇은 제대로 할 셈이지만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 해야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인류는 엘 니뇨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당분간 살던 ‘절’을 떠날 수도 없을 것이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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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소리를 나 혼자 듣는다!? [제 697 호/2007-12-24]
 


누구나 좋아하는 소리만 듣고, 싫어하는 소리는 듣지 않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런 욕구조차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손님을 끌기 위해 볼륨을 한껏 높인 상점의 스피커 소리, 옆 사람의 이어폰을 통해 새 나오는 음악 소리 같이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할 때가 많다.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TV, 라디오, 컴퓨터의 볼륨을 작게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게 기분 좋은 음악도 타인에게는 듣기 싫은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소리를 줄이기 위해 그저 조용조용히 다니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일까? 여기 소리로 소리를 제어하는 방법이 있다.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원 김양한 교수팀은 특정 개인에게만 소리를 들리게 하는 ‘음향집중형 개인용 음향시스템’(sound focused personal audio system)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소리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고 사용자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든 장치다. 귀를 아프게 하는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쓰지 않아도 나 혼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모니터에 일렬로 배치된 9개의 스피커에서 800Hz에서 5kHz의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내게 하여 모니터 정면에 지름 30cm 정도의 청취영역을 만들었다. 김 교수 팀에 의하면 청취영역에서는 나란히 늘어선 9개의 스피커에서 나온 음파가 다른 공간 보다 20dB(데시벨, 소리의 단위) 큰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스피커의 앞부분을 0도부터 180도까지 구분한다면 스피커의 바로 정면에 해당하는 60~120도 사이에서 크게 들리고 다른 각도에서는 매우 작게 들린다. 미국 음향학회(ASA)에 발표된 자료와 각도별로 나는 소리를 듣기 원하면 다음 사이트를 방문해 보자.
소리 들으러 가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소리가 근본적으로 파동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2개 이상의 파동은 서로 섞여 간섭현상이 일어나는데 위상이 같은 파동끼리 만나면 커지고, 위상이 반대인 파동끼리 만나면 작아진다. 커지는 경우를 보강간섭, 작아지는 경우를 상쇄간섭이라고 부른다. 김 교수의 스피커는 청취영역에서만 보강간섭이 일어나고, 다른 장소에서는 상쇄간섭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사실 소리의 간섭현상으로 소리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됐다. 대표적인 시도가 듣기 싫은 소음을 제거하는 능동소음제거(ANC: Active Noise Control) 기술이다. 능동소음제거 기술은 소음과 반대 위상의 소음을 만들어 소음을 없앤다. 이미 1932년 독일의 발명가 루에그에 제안됐으며, 최근 전자제어기술의 발달로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건축용 돌을 자르는 현장의 근로자는 엄청난 소음에 시달리는데, 석쇄기의 소음을 녹음해 이와 반대되는 위상의 소음을 근로자에게 들려준다. 항공기도 이 기술을 이용해 엔진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을 줄인다. 최근에는 고급 승용차에도 엔진이나 바퀴와 지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제거하기 위해 능동소음제어 기술을 쓴다.

이 기술을 쓰면 방음, 흡음제를 쓰지 않아도 소음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철로나 도로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 설치되는 대규모 방음벽은 비용이 많이 들고 조망권도 해친다. 물론 능동소음제거 기술의 한계도 있다. 발생하는 소음이 불규칙하면 이를 정확하게 계산해 반대 위상의 소음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잘못하면 보강간섭을 일으켜 오히려 소음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능동소음제거 기술처럼 물리적으로 소리가 제거되는 것과 달리 생리적으로 소리가 제거되는 현상도 있다. ‘마스킹효과’(masking effect)는 한 소리에 의해 다른 소리가 가려져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먼저 물을 내리고 소변을 보면 소변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음으로 소음을 덮는 것이다.

여러 소리가 섞인 시끄러운 장소에서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게 하는 방법도 있다. 사람은 적당한 소음이 있어도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는 능력이 있는데 이를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 부른다. 라이브 공연을 할 때 가수의 목소리가 반주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일시적으로 가수가 쓰는 마이크의 볼륨을 크게 증가시킨 뒤 서서히 감소시키면 칵테일파티 효과에 의해 청중들은 가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를 제어하는 것은 역시 소리다. 소리로 소리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에 다투거나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음악 소리로 더 이상 불쾌함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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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12-2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당장 눌러주고 왔습니다 ^^*

마노아 2007-12-24 13:38   좋아요 0 | URL
우리 날마다 동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