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귀신 국시꼬랭이 동네 5
한병호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구판절판


국시꼬랭이 시리즈는 우리의 전통 풍습을 쉽게쉽게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어쩌면 아이들 흥미에는 그닥 끌리지 않을 수 있지만,
들을수록 정이 가고 구수해지는, 겨울철 따뜻한 이불 속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야광귀신은 설날 밤에 신발 훔치러 오는 귀신이다.
녀석들은 단점이 있는데 눈이 어둡고 또 셈에 약하다는 것이다.

올해는 '체'의 구멍 세는 일을 잘해 내기 위해서 호박에 구멍 뚫어서 맹연습도 시도해 본다.

아버지는 야광귀신 물리치기 위해 장대 끝에 소쿠리를 올려놓는다.
책을 세로로 놓은 채 그려진 그림인데 멀리서 잡으니 그림이 안 잡혀서
높다란 장대 끝만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
(내 핸드폰만큼이나 언니 디카도 별로란 말이지..;;;)

한 구멍, 두 구멍... 키다리 귀신은 숫자에 약해서 결국 헤매고 만다.
큰눈 귀신은 눈이 어두워서 구멍 자체를 잘 못 찾는다.

그래서 둘은 힘을 합하기로 결심!
키다리가 길눈 역할을 하고, 큰눈이가 숫자를 세기로 한 것.
그러나 아뿔싸! 닭이 울면서 새벽을 알려온다.
금년에도 신발 훔치기는 실패다.

설날 밤에 야광귀신이 내려와서 신발 훔쳐간다는 얘기를 이 이야기를 통해서 처음 들었다.
나 역시도 일주일의 첫날에 재수 없는 일이 있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고, 아침에 힘든 일이 생기면 하루 일과를 망치는 일이 많은데, 한 해의 첫날인 설날에 신발을 도둑 맞으면 괜히 운수가 나빠질 것 같은 예상이 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해에 닥칠 나쁜 기운을 몰아내자는 의미의 이 풍습이 정겹고, 아이들의 신발을 숨겨 저녁 외출을 삼가고 일찍 재우려는 어른들의 속뜻엔 지혜가 담겨 있다.

차분한 갈색 톤의 그림이 '설날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묘사해주는 느낌이 든다. 어리숙한 귀신들 약올리며 우리는 실컷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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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리숙한 귀신이나 도깨비를 놀려먹는 건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ㅎㅎ
저 어릴때도 명절이나 돼야 새 신발 얻었어요. 그러니 닳아질세라 얼마나 아꼈는지!^^

마노아 2008-01-06 13:38   좋아요 0 | URL
어벙벙 귀신 놀려먹으면 재밌을 거야요. 두 귀신이 서로 멍청해서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요.
어릴 땐 '설빔'이란 말을 들어본 것도 같고... 입어보았던가???
 
기차 비룡소 아기 그림책 27
바이런 바튼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절판


도널드 크루즈의 '화물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원서인데 알라딘에선 검색이 안 돼서 한글판 책에다 리뷰를 씀^^

굵은 선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강렬하다.
더군다나 원색의 대비가 아찔해서 기차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철길 위로 기차가 달린다.
화물열차는 짐을 싣고 간다.
승무원은 맨 뒷칸에 있다.
교차로에서 차는 기다려야 한다. 기차가 지날 때까지.

역에 도착하면 기차는 멈추어 선다.
승객들이 한결같이 기차가 들어온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딱 두 사람 빼고~)
종이 인형같이 딱딱한 그림체인데 두살 박이 조카가 좋아라 한다.
보드북이어서 어린 아기에게 좋을 듯.
한글판 책은 무지 작은데, 영어판 책은 한글판 책의 대략 4배 정도의 크기다. 그래서 자이언트 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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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님 조카가 둘이에요? 두살과 여섯 살?
좋은 이모 노릇, 나도 참 많이 했어요.
어찌나 이쁘던지, 친구들 만나러 갈 때도 데리고 나가 구박도 받았죠! ^^
색깔이 강렬해서 아이들 시선을 끌겠네요!

마노아 2008-01-06 13:40   좋아요 0 | URL
두살 여섯 살이었는데, 해바뀌어서 세살 일곱살 되었어요. 세살짜린 그래봤자 17개월 됐지만요^^;;;
옆에서 보던 울 언니가 사람들이 모든 책을 다 내가 산줄 안다고 삐죽거렸어요^^ㅋㅋㅋ
어제 도착한 책들은 모두 다 언니가 산 책이거든요. 근데 배송은 울 집으로 하기 때문에 제가 먼저 보고 리뷰도 쓰고 그래용.
저도 데리고 나가서 자랑질 하고 싶은데 혼자서 애들 감당이 안 되는 것 있죠.
보는 거랑 같이 놀아주는 것은 또 달라서 말예요. ^^

순오기 2008-01-06 14:09   좋아요 0 | URL
ㅋㅋ, 우리 조카도 뭐든 이모가 해 주고 이모만 잘 하는 줄 안다고 언니가 투덜거렸어요.
그 조카가 결혼해서 아기 가졌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아직 조심하느라 아는 척 안하고 있어요.
작년에 실패하고 오래 기다렸거든요. 그저 마음으로 빌어주고 있어요.
이모 노릇보다 엄마되면 세상에 나서 내가 잘한 일이 딱~~ 이거다 싶어요! ^^

마노아 2008-01-06 16:03   좋아요 0 | URL
엄마되기와 이모되기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딸은 좋다, 언젠가 너도... 이런 책이 나오나봐요. 시집 안 가고도 공감이 가는 어머니의 위대함^^

bookJourney 2008-01-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저희 둘째 아이가 골랐던 책인데, 신착도서라 대출은 못하고 그냥 보고만 왔었답니다.
한글판은 귀엽게 생겼는데, 영어판 책은 자이언트 북이라 하니 선명한 색상이 눈에 확 들어오겠네요 ~

마노아 2008-01-07 23:24   좋아요 0 | URL
글자가 거의 없는 책이라 도서관에서 보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진짜 색이 선명하게 나왔네요. 모처럼 사진이^^;;;
 
이야기하며 세계 여행 이야기하며 접기 6
올챙이 지음, 이승석 그림 / 아이즐북스 / 2007년 11월
구판절판


기획이 우수한 책이다. 두더쥐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세계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
허풍쟁이 할아버지는 자신이 땅을 파다가 잘못 나오는 바람에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졌다고 뻥을 친다. 그림만 보면 꽤 그럴싸하게 들린다^^

네덜란드의 홍수를 막은 소년의 이야기도 본인의 이야기로 둔갑시킨다.
뭐 이 스토리의 핵심 주제는 할아버지의 허풍이 아니라, 각 나라마다 유명한 '건축물'들이니,
이해하고 넘어가자. 네덜란드에선 풍차가 주인공이다.

앞부분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건축물들을 소개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허풍 가득 이야기가 나오고 뒷부분은 종이 접기가 펼쳐진다.
하루 저녁에 다 해치운 건축물 퍼레이드...;;;;
*러시아의 상크트바실리 대성당
황제 이반 4세가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지음

너무도 유명한 파리의 에펠탑.
1889년 프랑스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짐

오스트레일리아의 오페라하우스.
이번에 접은 것 중 제일 모양새가 안 나왔다..;;;;

많아서 한꺼번에 찍었다.
네덜란드의 풍차,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그리고 아까 나온 대성당
그밖에 미처 찍지 못한 것과 찍었으나 사진이 안 나온 것들로는
노르웨이의 바이킹 배, 인도의 타지마할,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중국 만리장성, 대한민국 숭례문, 미국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초코파이 부록으로 주던 조립품보다 더 쉬워서 몇 시간만에 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나름대로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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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라, 네덜란드의 풍차랑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찍은 사진이 아니네.... 사진 다 지워버렸는데.......ㅠ.ㅠ

바람돌이 2008-01-0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아이들이 좋아하겠는데요. 다음번 주문에 넣어야겠어요. ㅎㅎ
근데 옛적에 말예요. 우리집에 초코파이 조립품이 종류별로 다 있었어요. 시리즈마다 다요. ㅎㅎ
얼마나 많은 초코파이를 사먹었는지...
그때 제가 알라딘을 했으면 사진 찍어서 올리는건데...

마노아 2008-01-06 00:29   좋아요 0 | URL
아이가 어리니까 엄마랑 아빠가 다 만들어주게 되지만, 그래도 지켜보면서 엄청 좋아라 하더라구요.
아이들 눈높이에 딱인 것 같아요^^
초코파이 조립품 줄 때 넘넘 좋았어요. 요샌 그 이벤트 안 하려나? ^^;;

순오기 2008-01-0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재밌겠다.ㅋㅋ 우리집에도 초코파이 건축물 몇개 장식장에 들어있어요.
이웃집 꼬맹이 올때마나 하나씩 작살나지만...^^ '정'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린 초코파이 사랑해요!

마노아 2008-01-06 17:24   좋아요 0 | URL
초코파이가 판촉을 제대로 한 것 같아요. 모두에게 깊은 신상을 주었잖아요^^
영화 '말아톤'에서는 뜻하지 않은 어부지리도 얻구요^^
 
Look-Alikes Christmas: The More You Look, the More You See! (Hardcover)
조운 스타이너 지음 / Little Brown Books / 2003년 10월
절판


놀라운 책을 만났다. 오늘 조카에게 온 영어책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그림책!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일상의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재활용 해서 한바탕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기둥들은 리코더, 찬장은 비스켓으로, 장 속의 인형은 땅콩으로 만들었다.
의자의 다리는 생일 초로, 의자 위 쿠션의 모양은 우표로 꾸몄다.
할머니가 입고 계신 원피스는 양말을 이용한 듯 보인다.
오른쪽 기둥엔 줄자가 있고, 바닥에 실패도 보인다. 성냥개비를 이요한 자동차가 보이고,
벽난로는 강낭콩인가 보다.
무수한 아이디어들의 총체가 즐거워서 조카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찾아내기 시작했다.

해상도가 떨어진다는 게 안습이지만....ㅜ.ㅜ
쇼윈도의 건물 위 찬란한 장식은 목걸이를 재활용. 그 아래 반짝이는 것은 머리핀, 그 아래 테두리는 줄자다.
초가 지붕은 성냥개비로, 벽은 땅콩으로, 기둥은 효자손이다.
왼쪽 아래 보라색 코트를 입은 아주머니의 옷은 목장갑이며, 허리의 장식은 클립이다.
구세군 아저씨의 옷 단추는 옷핀으로 장식했다. 왼쪽 위쪽으로 각도기도 보이고,
오른쪽에 초록색 옷을 입은 여자가 들고 있는 선물 꾸러미는 아마 주사위 같다.
또 오른쪽 끝의 아저씨가 들고 있는 선물 꾸러미는 트럼프이다.
맨 오른쪽 끝의 하얀 온 입은 여자의 가방은 우표로 장식되어 있으며 목에 두른 목도리는 비스켓이다.
들여다 볼수록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마법 상자 같다.
크리스마스 전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더 신이 났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다.

역시 해상도는 별로지만...ㅡ.ㅡ;;;;
트리의 장식은 파스타로, 식빵을 터널로 삼았으며, 머리 빗을 눕혀서 만든 화물 열차도 보인다.
벌집핏자 모양의 과자가 역사 창문을 장식했으며, 집의 문은 비누가, 창문은 열쇠고리가, 지붕은 지갑이 장식했다.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을 듯한데, 작가의 장인 정신이 돋보인다.

식빵 터널의 디테일!

리코더를 이용해서 교회 건축물의 고딕 양식 비스무리한 연출을 보여주었다.
그 뒤의 건물 벽은 키보드 판으로, 그 위에 첨탑은 110볼트 콘센트다.
웨하스 같은 비스켓으로 연출한 벽돌이 보이고,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모두 '과일'로 연출된 것이다.
나 역시 해피 뉴 이얼~ 하고 외쳐주고 싶은 모습이다.

작가가 작업에 사용한 도구들을 한꺼번에 찍어놓은 사진이다.
영어 글에는 어떠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었다~라는 설명이 나올 것이다.(아마도..;;;)

테이블의 디테일. 탁상 다리는 작은 가위로, 파라솔은 사기 그릇으로. 의자는 과자로,
왼쪽 의자는 클립으로 다리를, 성냥곽으로 의자 몸체를 만들었다.
그 뒤에 빗으로 연출한 쿠션도 보인다.

달걀곽 위에 사탕을 올려놓았다. 머리에 쓴 것은 꼬깔콘^^ㅎㅎㅎ
어떻게 세웠냐 하면 몸체 기둥을 이쑤시개를 이용했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다.
한글판 책도 더 있던데, 다음 씨리즈는 우리말 버전으로 구입해야겠다.

알라딘은 표지가 없길래 표지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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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0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보인다 보여시리즈던가 하여튼 그것도 이런식으로 온갖 주변의 물건들을 활용한거였는데 이 책도 그렇군요. 아이들이 참 좋아하던데.... 이 책 한글판은 어디 있을려나요? ㅎㅎ 찾아봐야지... ^^

바람돌이 2008-01-0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찾아보니까 <난 네가 보여>시리즈랑 같은 거군요. ㅎㅎ 근데 제가 산 시리즈에는 저 책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직 번역이 안된 것도 있나봐요. ㅎㅎ

마노아 2008-01-0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네가 보여가 같은 작가의 시리즈더라구요. 이 책은 한글판이 안 보였어요. 다음엔 난 네가 보여 사려구요^^

순오기 2008-01-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책도 있군요.
마노님은 엄마되면 이 좋은 것들을 다 아이에게 읽어주고 보여주고... 그 애기는 행복하겠당! ^^

마노아 2008-01-06 13:4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먼저 아기 키운 언니를 보고 지내서 시행착오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근데 내 짚신 짝이 안 보인다는 것...^^ㅎㅎㅎ

비로그인 2008-01-06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이 대단한~ doll house 가 떠오르는군요.^^

마노아 2008-01-06 16:04   좋아요 0 | URL
doll house 재밌었지요? 여기 인형들보다 더 정교했을 거예요. ^^

비로그인 2008-01-06 20:10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정교하다마다요~ 사진으로 잘 찍어놓으면 진짜 같은걸요.^^
하지만 지난번 행사 때는 가지 않았습니다,시간이 없어서.(긁적)
요즘의 Doll House는 그림처럼 고가에 판매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나중엔 본격적인 예술의 장르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금의 애니메이션처럼 - ^^
저도 나중엔 꼭 제대로 배워서 작품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마노아 2008-01-06 21:46   좋아요 0 | URL
우와, 직접 만들겠다는 각오까지! 멋져요^^
제 친구 하나도 구체관절인형을 직접 만들겠다고 재료도 사고 그랬는데 완성했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습니다^^

조선인 2008-01-0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건 우리집에 없는 거다. 다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부릅.

마노아 2008-01-06 22:06   좋아요 0 | URL
푸후훗, 저도 눈 부릅!

라로 2008-01-07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리즈 보면서 아이들하고 찾아내기 하던 기억이,,,어즈버,,,ㅎㅎ
다시 희망이와 그짓을 하게되겠지요,,,조만간,,ㅎ

마노아 2008-01-07 10:50   좋아요 0 | URL
그날이 멀지 않았어요. 희망이와 숨은 그림 찾기^^
 

도착적 가족윤리는 패륜이야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가족을 사설 자선단체인 줄 아는 생모와 동생에 관한 에피소드에 답한다
 
 
한겨레  
 








 

» 가족을 사설 자선단체인 줄 아는 생모와 동생에 관한 에피소드에 답한다
 
사람을 가장 힘들 게 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이다. 보자.


1. 삼십대 직장인입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 여의고 생모가 개가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딱 두 번 봤고, 조부모 밑에서 내내 컸지만 불행하다 느껴본 적 없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성인이 된 후 시작됐습니다. 생모가 ‘다시 홀로’ 되어 여동생들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너무나도 맞지 않아 전 다시 조부모댁으로 갔고 3년 전 결혼까지 했는데, 그때부터 생모와 여동생들이 시집노릇을 하며 제 집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혼수 문제로 난리가 나 신혼여행 돌아오는 날부터 각서를 써야 했고, 아내를 너무나 구박해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하며 혼자 밤새 운 일도 있습니다. 게다가 생모는 하는 일 없이 카드를 계속 써 여동생과 매제까지 신불자가 된 상태고, 저 역시 몇 해 현금서비스 돌려막기로 그 빚 갚아주느라 돈 한 푼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엔 거짓말까지 해 집사람 카드마저 가져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정말 힘든 건 당장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아니라 바로 이기적 친모로 말미암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이 고초를 묵묵히 견뎌 온 제 착한 아내에게도 너무나 미안할 뿐입니다. 어떻게 제 삶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민 가야 할까요?


생모, 사연, 있을 수 있다. 그녀 인생 역정, 만만찮게 기구했을 수 있다고. 그러니 그녀 삶에다 대고 섣불리 주석 달진 말자. ‘다시 홀로’ 된 후 재결합, 재결별 한 거, 거기까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변이다. 문제는 생모라는 자격을 친자에게 사회경제적 무한결제 요구할 천부의 채권으로 여기는 대목, 바로 거기서부터 발생한다. 피치 못 할 의탁을 미안해하거나 최소한 남세스러워라도 해야 하는 게, 생모고 나발이고 떠나 한 인간으로 마땅한 염치다. 더구나 자기 살 길 찾아갔던 처지면, 친자에 대한 권리도 함께 두고 갔던 거다.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이치가 그렇단 거다. 그런데 그런 친자의 법률혼 상대에게까지 일방적 권리행사라니. 그거 시집살이 아니다. 행패다.


물론 양육기간 불문하고 생모는 마땅한 감사 대상이다. 내 존재를 가능케 했으니까. 하지만 생모라는 이유만으로 친자 인생을 그녀 삶의 번제로 요구할 자격은, 결코 없는 법이다. 그러니 감당 가능한 액수 정해 정기적으로 원격 지원하되, 왕래는 끊으시라. 그거 패륜 아니다. 친자를 보험 취급하는 게 정말 패륜이지. 당신은 죄 없다.



2. 공부 못해 대학 못 간 저와 달리 명문대 3학년인 동생이 있습니다.부모님도 집안자랑으로 여기시고 저도 무척이나 대견해합니다. 그런 동생이 유학을 가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집안 형편이 안 된다는 겁니다. 처음엔 안 된다 하시던 부모님이 동생이 매달리자 결국 동생 유학비 보조해 줄 수 있냐는 말을 제게 어렵게 꺼내시더군요. 전세 줄여 이사 가도 모자란다며. 전 그동안 직장생활하며 6년 동안 결혼비용을 저축했고 이제 석 달 후면 애인과 결혼하기로 날짜까지 잡혀 있었거든요. 곤란해하시는 부모님 면전에 차마 거절은 못하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부모님은 제 눈치만 봅니다. 동생은 제 앞에선 아무 말 않지만 이미 친구들한테 알리고 준비하느라 신이 났구요. 하지만 오늘도 몇 번이고 통장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망설이는 제가 이기적인 건가요.


결혼날짜 정해 졌다면 알고 있었겠네, 동생도. 그 돈, 형 결혼자금이란 거. 근데 신나한다고. 이런 씨바. 돈, 주지 마. 자기 위해 형의 삶이 통째로 지체되는 걸, 당연할 걸로 치부하는 정도의 싸가지 위해, 당신 인생 유보할 필요, 뭐 있나. 그래봐야 겨우 공부 좀 잘한다는 게 남 밟고 서도 좋단 허가증이라도 되는 줄 안다.


도저히 마음이 불편해 안 되겠다. 그럼 부모 빼고, 동생하고 직접 담판해 보시라. 현지 가서 스스로 벌며 공부할 수 있겠냐. 그 해법, 찾아지면, 그때 가라. 가서 노력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 연락해라. 그 부족분만큼은 빌려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역시 부모님이 아니라 내게 직접 연락해라.


 

»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그렇게 성인남자 대 성인남자로 결론 보시라. 다 큰 새끼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어서 어리광인가. 계속 징징거리면 죽통을 날려 버려라.


3. 생모도 동생도, 가족이 자신을 위한 사설 자선단체인 줄 안다. 자신의 몰염치와 이기심을 오히려 가족의 권리인 줄 안다. 인간관계에 이만한 착각도 없다. 이 도착적 가족윤리, 자본주의 출현, 사생활의 탄생과 더불어 발명된 ‘신성한 가족’이란, 근대의 가족신화로부터 도출된 거다. 이 신성한 가족주의의 허구에 대해선 담에 폭로키로 하고. 오늘 여기서 결론 내자.


존재를 질식하게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김어준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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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4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 대한 '예의'란 말이 사무친다.T_T

2008-01-04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4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4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4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1-05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간이 된 사람은 이런 막된 요구를 절대 할 수 없지요.
슬픈 현실이군요. 내 삶을 저당잡히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싶군요.

마노아 2008-01-05 02:05   좋아요 0 | URL
'가족'이라는 이름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커다란 힘이 되어줄 때가 분명 있지만 도리어 굴레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선 그게 특히 심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