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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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껍데기를 벗겨내면 속 표지가 나온다.
책을 제본하고 있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손이다.
푸른 빛의 배경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헌책을 새책으로 둔갑시켜주는 마법의 손이기도 하다.

나무를 너무도 사랑하는 소피.
도감을 하도 많이 봐서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낱장으로 떨어져버린 그림들.
새 책이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끼던 이 책을 고치고 싶은 게 소피의 마음.

사람들이 알려준 책 고쳐주는 를리외르의 집.
책들과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이곳에서 소피의 책은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들이 무수한 표정을 안고 있다.

'를리외르'라는 말에는 '다시 묶는다'라는 뜻도 있단다.
를리외르 아저씨는 표지도 새로 만들어 주시기로 하셨다.
아저씨에게 아카시아 나무를 설명하는 소피.

너덜너덜해진 책은 실로 땀땀이 떠서 꿰매 줘야 해.
그런 다음에 풀칠을 하고 말리는 거야.
책등을 망치로 두들겨서 둥글려 주는 것.
그래야 책이 잘 넘어가거든.

책등에 세양사(그물코가 촘촘한 천)를 붙인다.
그 위에 종이를 두 번 더 붙인다.
하루 동안 눌러서 말린다.
그 다음 양가죽이나 천으로 전체를 씌운다.

를리외르 아저씨의 아버지도 를리외르셨다.
를리외르의 일은 모조리 손으로 하는 것.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모두 손으로 기억하는 것.
책에 깃든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를 미래로 전해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완성된 소피의 책.
소피의 나무들...이란 책 제목이 새롭게 붙여졌다.
아카시아 그림은 표지로 다시 태어났고, 이름도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속지는 소피가 좋아하는 숲 색깔.
책에 얼굴을 파묻고 너무 좋아하는 소피.
아이의 흥분된 감정이 그림 너머 독자에게로 전달된다.
를리외르 아저씨에게는 고마움의 답례로 아카시아 씨를 싹 틔운 화분을 선물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책은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피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
고마운 를리외르 아저씨.
아저씨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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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를리외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 중 한사람!
다른분들 리뷰를 본 책이지만, 사진으론 처음 봤어요. 나는 소피가 되고 싶어요!^^

마노아 2008-01-19 21:37   좋아요 0 | URL
이 책 읽고서 막 두근거렸어요. 이런 직업도 너무 아름답고 소피의 꿈을 지켜준 아저씨의 솜씨가 진짜 훌륭해요. 저도 소피가 막 부러웠어요^^

bookJourney 2008-01-24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멋지지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이 남는 책이었어요.
를리외르 아저씨의 혼잣말 같은 대사도 좋았고, 마지막의 "그리고 나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는 소피의 대사도 좋았답니다.

어른에게도 권하고 싶은 그림책이에요 ~

마노아 2008-01-24 02:12   좋아요 0 | URL
정말, 너무너무 맘에 들었던 책이에요. 어른들에게 주면 더 좋을 책이었지요.
이 참에 어른에게 선물하면 좋을 동화책/그림책 리스트 하나 만들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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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 우리 옛이야기 곧은나무 그림책 16
서정오 글, 이영경 그림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옛 이야기에 강한 서정오 선생님의 그림책이다.  옛날 어느 부부가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지극한 정성으로 빌고 또 빌었더니 산신령님이 아이 하나를 점지해 주셨다.  뒷산 큰 바위 밑을 파보았더니 주먹만 한 알이 나왔고, 그 알을 깨고 작은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니 이름하여 주먹이다.   



몸집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주먹만 했던 주먹이. 병도 없이 탈도 없이 잘 자랐지만 몸집만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다섯 살 때에도 주먹만 했고, 일곱살 때에도 주먹만 했다.  흔히 어린 녀석을 얕잡아 말할 때 쓰는 '주먹만 한 녀석이!;의 바로 그 주인공 되겠다.  

아이가 작은 덕에 아버지 손바닥 위에서 놀고, 어머니 어깨 위에서 놀고, 나막신 안에서 또 반짇고리 안에서도 놀았다.  거의 인형놀이 수준이라지만 주먹이는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이다. ^^

하루는 낚시하러 가시는 아버지 따라 갔다가 심심한 나머지 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녀석의 키에 비해서 수풀이 너무 큰 탓이다.  몸집이 작으니 목소리도 작아 아버지를 찾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때부터 주먹이의 고생길 모험이 시작된다.  음메~하고 우는 소에게 먹혀 본의 아니게 내장 여행도 하고..;;;; 소가 힘주니 똥구멍 통해서 툭! 떨어져 나왔다.  그러다가 솔개에게 낚여 역시 본의 아니게 하늘 위를 날다가 솔개의 먹잇감을 노린 독수리의 공격을 받는다. 둘이 옥신각신 하는 바람에 그만 주먹이를 놓치고 마는 솔개. 이때 그림이 재밌는데 솔개가 거의 울부짖는다. 얼마나 아까웠으면^^;;;;
 




다행히도 주인공답게 죽지도 않는 주먹이! 풍덩 강으로 빠져 큰 잉어 뱃속에 들어간다.  소의 뱃속보다 좁고 갑갑하다며 낑낑대던 주먹이(니가 요나냐!)는 아버지를 마구마구 불러댄다.  여태 고기 잡고 계시느라 주먹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부지가 때마침 잉어를 잡아내어서 주먹이를 구해준다는 이야기~! 





무사히 구해진 주먹이는 그 후에도 아버지 어머니랑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후문인데, 그 후로도 주먹만한 크기로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안데르센의 엄지공주와 마찬가지로 작은 사람 이야기이다.  작아도 얼마든지 남들과 똑같이(별로 똑같지는 않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먹이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흥미를 줄 듯 싶다. 자기들처럼 어리고 또 작기까지 하지만 모험에 가까운 여정을 잘 헤쳐나갔으니 말이다. 

옛날 옛적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갔지만 그림을 보아서는 아주 오래 전 배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에겐 모두 지나간 옛 이야기. 그래서 또 구수한 이야기일 것이다.

직접 주먹이를 그려보거나 만들어 보고, 주먹이와 어떻게 놀 것인가...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아이와 나눠보는 것도 즐거운 독후 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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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오선생님의 글맛과 '아씨방 일곱동무'의 이영경 그림이 만났으면 괜찮은 책일듯 싶은데요.^^
마노아샘도 이제 동화매니아로 확실히 자리매김 하신 듯해요.^^

마노아 2008-01-19 21:37   좋아요 0 | URL
아핫, 아씨방 일곱 동무 작가의 그림이었군요. 그 책도 현재 보관함에 있지요^^;;;
이제 저도 동화매니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가요? 멋진 타이틀이에요^^
 
도마뱀아 도마뱀아 비를 내려라 국시꼬랭이 동네 14
이춘희 지음, 이성표 그림 / 사파리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뭄이 들어 비가 간절했을 때 우리 조상들은 '기우제'라는 것을 지냈다.
간절히 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를 올리는 것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동자 기우제'라는 것을 소개한다.

물에 관련된 최고의 지배자는 '용왕'이란 생각에, 우리가 생각하는 용왕님 형상에 가장 닮은 동물인 '도마뱀'을 이용한 기우제다. 
극 중 도마뱀 이야기를 해주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용왕님은 뭍으로 나올 때는 도마뱀의 형상으로 온다고 한다. 
아이들은 도마뱀을 잡아 협박(!)해서 비를 오게 할 마음으로 볕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을 잡아버린다.



고무신 짝을 들어 도마뱀을 덮치고 바로 독에다가 집어넣어버리는데,
처음엔 노발대발하던 용왕님 호통에 아이들 기절도 하지만, 곧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도마뱀을 협박/설득하여 비를 내리게 만든다. 
비를 주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고 하니 용왕님도 별 수 있겠는가. 
기어이 용왕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늘을 날으니, 이때 번개가 번쩍 히더니 마른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도마뱀 다그치기(..;;;) 작전의 성공이다.



옛 이야기가 재밌고, 아이들의 모험담이 흥미롭고, '구지가'를 닮은 동자 기우제의 노래에 눈길이 간다. 
오늘날의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기우제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지게 되니 공동체 의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냈음을 알 수 있다. 
사극 등을 보면 기우제 지내는 장면이 간혹 나오기도 하는데, 책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또 어른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면 한다.



국시꼬랭이 시리즈는 전통 '풍습'을 소개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재미가 다소 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재미와 교훈, 배움을 다 함께 잡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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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1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두시 삼십 팔분에 그림책 갖고 뭐하신거에요?
그 시간에 저는 잤는데요...
님은 잠도 없으시네요.
그럼....언제 일어나시나요?
저는 일곱시에 일어났어요.
님은....?
잠이 부족하지 않으시나요?

오늘은 잠 얘기로...뜬금없는 댓글을 썼어요.
그래도...괜찮죠?ㅎㅎㅎ

마노아 2008-01-19 10:42   좋아요 0 | URL
헤엣, 밤 늦게 리뷰 올리고 잤어요.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났답니다.
근데 좀 춥게 잤나봐요. 컨디션이 영 메롱이에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방학 때는 그게 영 안 되더라구요^^
아아 반성 중이에요....ㆀ

순오기 2008-01-1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시꼬랭이 중 요 책은 제가 못 본 책이라서 님께 감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 안해도 되는 방학이 그래서 좋은 거 아닌가요?
맘껏 즐기세요. 즐길 수 있을 때..^^

마노아 2008-01-19 11:52   좋아요 0 | URL
요책이 가장 '이야기책' 다웠어요. 다른 책들은 학습책에 가까웠는데 말예요^^
일찍 안 자고 일찍 안 일어나도 되는 방학을 만끽하기... 헤헷, 고마워요. 마음의 짐(?)이 줄어들었어요^^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주제사로의 접근은 흥미롭다.  통사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된 흐름은 부족할 수 있지만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묶어놓은 이야기 갈래들이 새롭거나 뜻밖일 경우가 많아서 신선함을 주기 때문이다.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열 두 꼭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조선 시대에 비주류에 속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생을 바쳐 움직였지만, 그들의 행보 모두를 옳다 혹은 바람직하다고 몰아 말하기는 어려웠다.  호불호, 혹은 과오에 상관 없이 그들은 '소신'을 지킨 사람일 뿐이다.  저자의 시각은 그들이 신념을 바친 소명에 집중할 뿐 객관적인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조선은 성리학 사회였고 양반 사대부가 주체가 된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성리학 사회의 주류에 서지 않고, 임금이나 명망 있는 사대부의 판단에 반기를 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500년을 넘게 유지해 온 그 사회가 아무리 닫힌 사회였다고는 하나 체제에 반항하고 다른 길을 가고자 한 이가 없을 리가 없었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던 '이옥'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학자 군주였던 정조가 과연 사상을 탄압하고자 한 의도로만 '문체반정'을 일으켰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그는 패관소품을 인정하지 않았고 문장 또한 바꿀 것을 명했다.  그러한 때에 자신의 문장을 고수한 이옥은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아이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다면 그의 자유로운 형식의 문장은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언진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제 문장에 큰 자부심을 가졌던 그가 박지원의 성의 없는 반응에 울화가 치민 것은 당연한 일.  더군다나 중인 출신이었던 그가 양반 사대부들에게서도 인정 받았다고 자부했는데 그것이 틀어졌다고 생각하니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한 것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본시 유학의 큰 덕목은 수신인데 그는 자부심이 지나쳐 마음 수양은 덜 채운 듯하다.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명을 당길 만큼 분을 품을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고생을 덜한 게다!)  아무튼, 죽어서 오히려 그 문장력에 칭송을 받았으니 억울함이 조금은 가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아내에게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숭과 손자의 육아일기를 남긴 이문건은 이 책의 구성원 중 가장 독특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글을 썼던 시대 배경이 바로 그 '조선'이기 때문이다.  연애편지가 미덕인 시절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아내'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남사스러웠던 때가 아닌가.  부인과의 이별을 친구와의 이별만도 못하다고 여기던 그때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나 둘도 아니고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숭의 마음이 애잔하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 그 솔직함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우울증을 감소시킨다는 학계 보고가 있는데, 심노숭같은 자세로 살았다면 조선 선비들이 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문건은 가족 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낳아놓은 자식들이 요절하기 일쑤였고, 병에 걸려 장애가 있는 경우도 수차례였으니까. 그러니 그가 손자에게 쏟은 정성이 어느 정도였을 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비록 손자가 그의 뜻에 맞게 자라주지 않았고, 기대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했지만.  이문건은 아들도, 손자도 모두 매를 들어 키웠지만 아들 때만큼 독하게는 못한 것이 역시 손주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엄마에게 자식 키울 때랑 손주 볼 때랑 언제가 더 사랑스럽냐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손주 이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셨다.  이문건도 분명 그랬으리라.

친구의 죽음에 과거를 포기한 박지원, 스승의 죽음에 평생을 은둔한 양산보.  이들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자신의 출세와 맞바꾼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생계위험형 가문은 아니었다라는 전제가 있긴 했지만, 과거를 통한 출사, 그리고 출세를 일생의 목표로 삼던 그 시절에 이런 각오는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소쇄원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를 듯 싶다.

행동파 유학자 정인홍, 북벌에 일생을 바쳤던 윤휴, 경세에 목숨을 걸었던 김병욱, 천주교에 맞서 싸운 김치진 등은 모두 제 소신을 발로 뛰면서 설파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일생이 결코 편치 않았고, 영예를 보았던 적은 있어도 황혼이 불운하기도 했지만 결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소신파들이다.  다른 인물들은 그래도 이름 석자 역사책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들이었지만 김치진은 꽤 낯설었는데, 잠상으로 몰려 처형까지 당한 인물이어서 더 애처롭기까지 했다.

'대장부의 삶'을 읽었을 때에도 느꼈지만, 소품을 이용한 책 디자인이 책의 맛깔스러움과 고급스러움에 꽤 일조를 한다.  사진 자료는 꼭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흔치 않은 것들도 있어서 눈이 호강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의 내용은 평이하게 읽었는데, 소재로 잡은 주인공의 약력 소개와 '더 읽어보기'에 소개되는 뒷이야기 혹은 배경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아내에게 지극했던 추사 김정희, 중인 출신 문인들, 커닝도 불사한 조선 후기 과거 시험장 풍경, <구운몽>은 정말 한글로 지어졌을까? 등등.

다소 아쉬운 점은, 책의 내용을 잘 배치하면 조선사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의 진행도 가능했을 터인데,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지 않은 점이다.  그랬더라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시작과 끝이 같이 진행되었을 텐데 말이다. 

주제사로 접근했지만 통사의 장점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책이다.  분절된 내용들이기 때문에 꼭 이어서 한꺼번에 읽을 필요없이 쉬엄쉬엄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실제로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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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끌리네요. 요즘도 역시 소신있는 사람들이 비주류로 살고 있으니...
여름방학에 광주오세요. 제가 소쇄원 제대로 안내할게요. 소쇄원은 4계절 모두 가 봤지만, 역시 정원은 푸르름이 한창일때가 제맛일 듯해요. 담양 메타세쿼이아길도 같이 걸어보고요~~~ 좋은 사람과 함께 오면 더 좋아요! ^^

마노아 2008-01-19 21:39   좋아요 0 | URL
대대로 소신 있는 사람들은 비주류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역사가 그렇게 증명하네요.
와, 광주 놀러가면 함께 가볼 곳이 많군요. 벌써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요.
여름방학의 멋진 여행을 기다릴게요. 좋은 사람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것참..;;;;;;

순오기 2008-01-20 12:27   좋아요 0 | URL
어제 한국사 전(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TV프로)에 송강 정철 나오더군요. 송강정과 식영정, 가사문학관등 소쇄원과 같이 둘러볼 수 있어요. 답사전문가 모시고 제대로 안내할게요. 한여름은 너무 더울려나? 그래도 방학이라야 맘 놓고 움직일 수 있겠죠~~~~ '광주이벤트'추진해 볼까~~ 내가 자칭 이벤트 아지매인데.... ^^

마노아 2008-01-20 12:47   좋아요 0 | URL
광주 이벤트, 근사해요^^ 광주에서 엠티를 계획하는 겁니다. 여름맞이 알라딘 배 답사 모임^^
한국사전도 챙겨봐야겠어요. 유익하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
 



 
눈 위의 발자국, 너 누구니? [제 708 호/2008-01-18]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의 색체 향연이 끝난 겨울 산의 모습은 황량하다. 메마른 풀과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고요함만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산허리에 올라 목을 축이고 한참을 둘러봐도 움직이는 것은 작은 새들뿐. 박새나 곤줄박이, 멧비둘기가 간혹 기웃거리다 사라진다. 새들은 작은 몸집에도 날아다녀 쉽게 눈에 띄지만 산짐승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노출된 흙이나 눈 쌓인 길가에서 야생동물의 발자국과 배설물은 어김없이 발견된다. 우연히 야생동물을 만날 때 그들이 왜 그 시각에 그 곳을 지나는지 알 수 없지만 흔적을 찾아 뒤쫓게 되면 책을 보지 않아도 그들의 생태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동물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동물원이 아닌 산이나 강가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덩치 큰 포유동물은 보호색이 강하고 울음소리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그만큼 자기와 다른 생물종과는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하지만 수컷과 암컷이 만나 사랑을 하거나 경쟁자와 영역다툼을 하기 위해서 야생동물은 반드시 자신의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다. 우리도 그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야생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셈이다.

일반인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야생동물의 흔적은 바로 고양이 발자국이다. 시내 주택가뿐 아니라 인근 야산에도 많은 수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고양이의 발자국과 개의 발자국이 언뜻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와 개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고양이의 발자국은 개에 비해 원형에 가깝고 발톱 자국이 없다. 물론 진흙땅을 밟거나 뛰어 내디딜 때는 고양이도 발자국에 발톱 자국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발톱을 숨기다 사냥하거나 경쟁자와 싸울 때 발톱을 사용한다. 또한 개 발자국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반면 고양이는 발자국이 비대칭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면 왼발 자국인지 오른발 자국인지 알 수 있다.

관찰의 시선을 발자국에서 발걸음으로 넓히면 고양이의 성격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고양이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주 까다롭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도 발을 끌지 않고 또박또박 내딛는다. 즉 개들보다 발을 더 높이 들어 올려 걷는다는 얘기다.

나무 가지나 줄기 끝에서만 시작되고 사라지는 발자국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청설모의 발자국이다. 다람쥐의 발자국일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울에는 만날 수 없다. 걷지 않고 주로 뛰어 다니는 청설모는 앞발 자국 2개와 뒷발 자국 2개가 규칙적으로 나란히 찍힌다. 또 청설모는 까치처럼 나뭇가지를 빼곡히 모아 침엽수나 땅바닥에 둥지를 튼다. 까치는 주로 활엽수에 둥지를 트는 것이 일반적이니 나무를 보면 청설모집과 까치집을 구별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이나 하천 등지에 가면 평소 보지 못한 ‘V’자 모양의 발자국을 발견할지 모른다. 바로 고라니다. 겨울철 철새 구경을 위해 철원 일대를 찾거나 한강변 김포습지, 상암동의 하늘공원에 가보면 쉽게 고라니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V자 모양의 발자국은 사슴이나 노루, 산양, 염소일 수도 있다. 이들은 배설물도 까만 구슬모양인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고라니나 노루의 배설물에선 은은한 계피향이 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고라니와 노루를 구별할 수 있을까. 이럴 땐 발자국 주변의 나무줄기를 살펴라. 사슴과 동물들은 뿔을 날카롭게 유지하고 영역표시를 하기 위해 나무에 뿔을 간다. 나무를 긁은 자국이 땅바닥에서 30cm 아래면 사슴이나 노루나 또는 산양이고 40cm 위면 고라니다. 뿔을 비비는 사슴과 동물은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송곳니로 긁는 고라니는 고개를 쳐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라니는 뿔이 없어 송곳니로 영역 표시를 한다.

산 속에서 누구나 쉽게 발견하는 야생동물의 흔적은 여기저기 땅을 파헤쳐 놓는 자국이다. 바로 ‘반항아’처럼 거친 멧돼지의 흔적이다. 멧돼지는 봄나물이나 고사리, 칡 같은 식물의 뿌리를 즐겨 먹는데, 겨울에도 쥐가 굴에 저장해 놓은 도토리를 찾기 위해 주둥이로 땅을 뒤엎는다. 만약 두 개의 발굽과 함께 ‘며느리발톱’이 선명하게 찍힌 자국(그림 참조)을 발견했다면 멀지 않은 곳에 멧돼지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실 야생동물의 흔적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큰 발자국은 몸집이 큰 동물이라는 뜻이고 선명한 발자국은 최근에 지나갔다는 얘기다. 똥에 풀이 섞여 있으면 초식동물의 것이고 뼈와 털이 섞여 있으면 육식동물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숲에서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은 20종을 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집안에 움츠리고 있지만 말고 자연에 나와 야생동물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어떨까.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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