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여기가 아닌감? 급 당황 모드로 우왕좌왕.
너무나 많은 전경들을 곁눈길로 살피고 광화문 쪽으로 나왔다. 교보문고에 들려 화장실을 다녀오고 시청 쪽으로 향했더니 사람들이 다 거기 있었다. 처음부터 이쪽으로 올 걸...;;;;
촛불과 피켓을 든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구호가 여기저기서 난무한다. 그래도 별 상관 없다. 누군가 선창하면 그에 맞춰서 구호를 외치면 되었으니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온 초등생 손녀도 있었고, 어린 아이를 업고 온 주부, 임신한 채 남편의 손을 잡고 온 아주머니, 조카를 데리고 나온 이모 등등. 명동 쪽으로 지날 때는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열심히 응원을 해주었다. 괜히 어깨 으쓱^^
명동에서 방향 틀어 다시 시청으로 나왔는데 전경들이 아까보다 훨씬 살벌하게 깔려 있다. 미련 없이 다시 방향 틀어 또 명동으로 go! 명동 주변을 뱅뱅 돌았다. 처음엔 도로가 꽉 채워질 정도였는데 두번째 돌 때부턴 한쪽 차선은 비워둔 채 행진. 일부러 그런 건지 인원이 줄어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명동에서 남대문을 돌아 서울역까지 가는가 했는데 어느 틈에 닭장차가 따라와 선을 긋는다. 우쒸...;;;;
결국 다시 시청으로 향했다. 광장 옆 도로를 메워버린 시민들. 닭장 차 앞에 선 어느 경찰 아저씨가 마구마구 방송을 해댄다. 불법이니까 당장 광장으로 옮겨가라고.
시민들 들은 척도 안 한다. 우린 우리대로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 서장의 따따따에 대꾸하는데 그 말들이 좀 재밌었다.
처음엔 "비켜라!" 그러다가 계속 쫑알쫑알대니 "닥쳐라" 그래도 안 그치니까 "퇴근해라" 그 다음엔 "전경들도 불쌍하다"까지.
어떤 양복 입은 아저씨가 명함을 돌리신다. 받아 보니 '연행시 대처요령'이 담겨 있었다.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1. 연행시 미란다 원칙(진술거부권, 변호사 선임권 고지)을 말하지 않으면 불법연행
2. 연행시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3. 경찰 심문시 진술을 거부하고 앞 면 번호로 전화 해 상담후 진술하세요
4. 변호사와 통화시 경찰이 옆에 있을 경우 물러나라고 요구하세요
5. 여성을 연행할 때는 여성경찰이 연행해야 합니다. 여성경찰을 요청하세요
6.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나 변호인의 참석을 요구하세요
7. 경찰 폭행, 폭언 시 소속, 직급, 성명을 가능한 한 확인하세요
유용하다. 지갑에 넣어둬야지.
누군가 연주를 한다. 자세히 보니 멜로디언이다. 아침이슬을 부르고 산자여 나를 따르라, 광야, 헌법제1조 등등...
우리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저쪽에선 계속 불법을 외치고, 이젠 시민들이 니들도 노래 부르라고 넘긴다.
"노래해, 노래해, 경찰서장 노래해! 경찰서장 답가해라!"
이게 또 재밌어진다. "노래를 못하면 진급을 못해요. 아, 미운 사람~"
이게 계속 반복되니까 저쪽에서도 웃기게 나온다. 광장으로 올라서면 노래를 해주겠다나...(됐거든요!)
광장에서의 대치상태가 정확하게 얼마만큼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대략 한시간 미만? 11시쯤 되어서 슬슬 해산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시민들 마지막까지 유머 감각을 놓지 않는다. "택시비!!"
뒤에서 어떤 남자가 외친다. 돈많은 대통령, 택시비 내놔라!(어유, 건강보험료 2만원 내는 사람한테 무슨..;;;;)
그렇게 11시 조금 넘어서 귀가를 결정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이상하게도 빨간버스만 오고 초록버스는 한 개도 안 온다. 경찰이 오더니 차 없을 거란다. 아니 왜???
결국 종로2가까지 더 걸어가서 버스 타고 돌아왔다. 오래 걸었고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프겠거니 했는데 아마 낮에 침 맞아서 더 그럴거라고 어무이 말씀하신다. 그런가???
아무튼, 체력비축을 위해서 오늘은 좀 일찍 자자.(이미 새벽 두시거든.ㅡ.ㅡ;;;)
맨날맨날 참석한 아프님 체력 좀 짱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