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별 때때롱 (양장) 개똥이네 책방 1
권정생 지음, 정승희 그림 / 보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권정생 선생님이 남겨주신 마지막 동화책이다. 랑랑별 때때롱. 발음을 할 때마다 입안에서 구슬이 또르르 굴러간다. 맑고 명랑한, 순수함이 느껴지는 단어들이다.

선생님께서는 과학의 무모하고도 오마한 발전으로 탄생시킨 복제 생명에 대한 탄식과 함께 이 작품을 쓰셨다.

지구 소년 새달이와 마달이는 어느 날 하늘 저 편에서 낯선 음성을 듣는다. 그것은 랑랑별에 싸는 때때롱과 동생 매매롱의 목소리였다.  지구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개구쟁이 랑랑별 소년들과의 낯선 만남.  모험과 우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재밌게도, 새달이와 마달이의 부모님은 외계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들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다.  정말 믿어주는 것인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믿어주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이들의 흥분된 목소리를 '헛소리'로 치부하시지 않는다.

아이들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지만 일기장을 통해 서로 다른 행성에서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을 목격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간간히 지구별을 무참하게 더럽히고 훼손하는 인간들에 대한 자연의 경고도 아이들의 눈을 걸러 얘기해주는 것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집에서 기르는 흰둥이는 랑랑별 때때롱이 일러준 대로 주문을 외워 날개가 돋았고, 그 뒤를 누렁이가 또 왕잠자리와 새달이 마달이가 따라잡아 랑랑별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때때롱의 동생 매매롱과 그들의 부모님, 또 할머니도 만난다. 할머니는 투명 망토를 선물해 주시면서 500년 전 랑랑별로 여행을 시켜주는데, 그곳은 마치 22세기 지구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 펼쳐진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있고 로봇에 의한 노동력 대체로 사람들은 할 일이란 게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산다. 유전자를 검열하고 조작하여 최상의 아이를 생산해 내지만 부모 자식 사이의 끈끈한 정은 없다. 사람들은 놀줄도 모르고 재미도 모르고 낯선 것을 보고 놀라거나 당황하여도 우왕좌왕할 뿐, 심지어 뛰어다닐 줄도 모른다. 그 사회에서 때때롱 일행은 그저 '원시인' 취급을 받을 뿐이다.

랑랑별에선 500년 전에 그렇게 살다가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문명이 온통 파괴되는 격변을 맞은 것일까, 아님 인간 스스로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자각으로 정화운동을 벌였을까. 아무튼 500년 뒤의 랑랑별은 지구의 수십 년 전 순박했던 시골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때때롱의 할머니가 새달이 마달이에게 보여준 것은 결국 지구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이대로 윤리 없는 과학의 발전이 만들어갈 세상이 500년 전 랑랑별의 모습이고, 그러한 지구가 지향해야 할 세상이 또 500년 후의 랑랑별의 모습은 아닌지.

메시지는 쉽고도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권장 독서 나이가 초등 5학년 정도이던데,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권정생 선생님이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이들이 학원에 과외에 치여 이런 책 한권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또 진짜 비극이지만.

그림이 독특하다. 중요한 실루엣들은 모두 검은색 그림자처럼 처리하고 그 밖의 배경을 화사한 칼라로 장식했다. 빛이 많지 않은 시골의 논두렁 풍경의 느낌이다. 반딧불이나 하늘의 별과 달 정도만 빛이 되어주는 그런 세상의 모습과 같은 인상.



랑랑별에 도착해서 그곳 아이들과 물장구 치며 노는 모습이다. 도시에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캐리비언 베이를 가면 모를까...;;;

점점 더 하늘 쳐다보기가 힘들어진다. 무심코 걷기만 하고 음악을 들을 줄은 알아도 고개를 들어 하늘 올려다보는 것은 정말 작심하지 않고는 쉬이 떠오르지 않는 행위가 되었다. 보름달이 이지러질 무렵의 오늘 밤은, 먹구름이 걷혀 달이 뜨기만 한다면 목이 아파라 실컷 하늘을 보았으면 좋겠다. 저 멀리 어디선가 랑랑별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때롱과 매매롱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권정생 선생님의 흔적처럼 따뜻한 느낌의 별빛일 것이다. 우리가 함께 품어 안아야 할 그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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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8-1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고 있으면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선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적이고, 따뜻한 미래를 남겨주어야 할텐데 ... 라는 생각도 들고요.

마노아 2008-08-18 19:14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온몸으로 보여주신 그 삶의 교훈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텐데요. 하늘나라에서 많이 갑갑해하지 않았음 해요.

순오기 2008-08-1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못 봐서 궁금해요~ 마지막 동화라니까 더욱 더!
권정생선생님은 편안히 안식하지도 못할 것 같아요. 요즘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신다면...

마노아 2008-08-19 01:15   좋아요 0 | URL
당신도 이 작품이 마지막일 거라는 것을 알고서 쓰셨다고 하니 더 짠해요.
2008년도의 대한민국을 보셨다면 얼마나 아파하셨을까요ㅠ.ㅠ
 


미래 한국은 내가 지킨다. 차세대 소총 XK-11 [제 799 호/2008-08-18]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 영화 초반에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한 미군들이 잘 구축된 독일군의 진지에서 쏘는 기관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공기나 탱크 그리고 대포와 같은 화력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전선을 돌파하려면 많은 군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현재 전장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과거보다 분대나 소대에 소형 로켓 무기나 유탄 발사기와 같은 중화기가 보급되긴 했지만 그 보유 수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소모성이 크기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 잘 구축된 진지를 돌파하려면 비행기나 기갑장비, 포병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 군인들은 중화기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실용화에 성공하고 일선 부대에 배치를 시작한 한국 차세대 소총인 XK-11 때문이다.

소총은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의 기본 무기로 전장의 최전선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소총의 발전과 그 운용의 패러다임은 1940년대나 현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소총이 노리쇠의 후퇴전진으로 총알을 발사하고 이때 나오는 폭발의 힘으로 탄피의 배출과 재장전이 된다는 기술적인 개념과 적을 향해 정밀 조준으로 한발의 총알을 발사한다는 운용개념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총의 개념 때문에 앞서 강력하게 구축된 적의 진지나 시가지에서의 소총을 통한 전투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게 한다. 숨어 있는 적을 공격하려면 조준사격이 필요한데 5.56~7.62mm 정도 되는 총알로 제압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기존 소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본 소총에 주·야간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있는 조준장치를 부착하고 20mm 유탄을 발사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한 이중총열복합소총(OICW-Objective Individual Combat Weapon)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OICW의 우수성은 미군에서 실시한 모의 전투에서도 증명되었다. 미국의 차세대 OICW소총을 가진 군인과 기존 M16 소총을 가진 군인의 모의 전투 결과 OICW는 무려 69: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위력을 과시했다. 그 이유는 향상된 조준 기능과 소총 탄환보다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20mm 유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된 OICW의 경우 무게가 8~30kg 정도여서 병사 한 명이 운용하기에는 너무 무거운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올해 7월 한국국방과학연구소에서 최신 나노기술과 특수 금속을 사용해 총의 무게를 6.1kg으로 줄여 일반 군인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소총인 XK-11을 개발했다. 이로써 보병들에게 꿈이라 말할 수 있는 차세대 소총을 한국에서 최초로 실용화하고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XK-11의 특징은 5.56mm 소총과 20mm 공중폭발탄 발사기를 하나로 결합시키고, 그 위에 정밀 조준 장치를 장착했다는 것이다. 특히 XK-11의 20mm 공중폭발탄은 기존 20mm 유탄이나 40mm 유탄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정밀하게 조준 되어 목표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여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XK-11의 위력은 매우 놀랍다. 예를 들어 건물 뒤에 숨어 있는 적이나 참호 속에 있는 적의 경우 기존 소총이나 유탄발사기로는 효과적인 제압이 어려웠지만 XK-11의 경우 공중폭발탄을 정확하게 적의 머리 위에서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공중폭발탄 한발로도 적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

20mm 공중폭발탄은 그 자체로 위력이 크지만 정확한 조준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적의 머리 바로 위에서 정확하게 폭발해야지만 공중폭발탄의 위력이 제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XK-11의 조준장치에는 최신의 기술이 들어 있다.
XK-11의 조준장치는 야간투시와 거리측정 그리고 탄도 계산을 통한 정확한 조준점 유도가 가능하다. 최신예 전차의 사격통제장치와 동일한 기능이 소총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런 XK-11의 기능들이 실제로 운용될 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우선 XK-11을 가진 병사는 목표물을 먼저 조준하게 된다. 이때 주간이라면 상관없지만 야간이나 적이 연막탄을 터뜨리면 열 영상 야간 조준경을 통해 조준하게 된다.
조준 됨과 동시에 XK-11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통해 목표물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조준위치를 정한다. 5.56mm 탄이 거의 직선에 가깝게 발사되는 반면 공중폭발탄의 경우 포물선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이런 오차를 고려해야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 목표물의 거리와 조준위치가 계산되면 알아낸 거리를 바탕으로 공중폭발탄의 자폭거리 설정도 이루어진다. 자폭거리는 총열을 감싼 유도코일을 통해 자기장의 형태로 공중폭발탄의 신관에 전달하여 설정된다. XK-11의 공중폭발탄도 최상의 명중률을 얻기 위해 회전하면서 발사되는데 총탄의 총구초속, 단위 시간당 회전수를 토대로 원하는 거리까지의 회전수를 산출하여 그 회전수만큼 회전하면 폭파되도록 자폭거리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자기장 유도코일을 이용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이러한 자기감응 방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교통카드에서도 쓰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XK-11에 내장된 컴퓨터를 통해 순식간에 이루어지게 되고 병사는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장전된 20mm 공중폭발탄이 날아가 목표 상공 3~4m에서 폭발해서 최소 6m 살상반경에 파편을 흩뿌리게 된다. 이 공중폭발탄의 신관은 목표물의 성격에 따라 목표에 충돌 시 즉시 폭발하는 착발, 목표를 관통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폭발하는 지연폭발로 조정할 수도 있다. 또한, 공중폭발탄은 사수의 안전을 위해 25m 이상 날아가야 폭발하므로, 이 거리 내에서는 공중폭발탄을 쓸 수 없다.

이처럼 XK-11은 현재 소총의 개념을 뛰어넘은 차세대 소총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XK-11의 진정한 진가는 네트워크 중심 전쟁에서 드러난다. 네트워크 중심 전쟁이란 전투 지휘관이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스크린을 통해 휘하 부대는 물론 전장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가장 합리적인 명령을 내림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네트워크 중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 중심에 인터넷과 같은 전자 네트워크가 있어야 하며, 시스템의 최말단에는 보병 개개인이 소지한 컴퓨터와 센서, 그리고 XK-11과 같은 차세대 소총이 있어야 된다. 지휘관은 이런 기기들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신속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으며 XK-11과 같은 휴대용 보병 무기로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된다. XK-11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총이 단순히 ‘공중에서 터지는 총알을 쏘는 소총’이 아니라, 기존의 소총과는 패러다임부터가 다른 디지털 군대의 기본화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겠지만 전쟁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어떤 위협이 다가올런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적국보다 더 좋은 무기와 효과적인 대응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전쟁의 위협은 어쩌면 조금 더 줄어들지 않을까? 비록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이지만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개발한 국방과학연구소에 찬사를 보낸다.

글 :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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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8-18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발달된 무기가 과연 평화를 더 당겨올 수 있을까?

bookJourney 2008-08-18 18:11   좋아요 0 | URL
마음이 무거워요 ....

마노아 2008-08-18 19:14   좋아요 0 | URL
세상의 잔인함과 살벌함에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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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한 입소문은 익히 들어왔었고, 그래서 일찌감치 구입해 놓았었는데 한참만에 책을 보게 되었다. 작가의 분위기나 성향을 다른 작품에서 언뜻 만난 적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하고 접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단편집으로 몇몇 이야기가 함께 섞여 있는데 하나같이 날것 그대로의 거친 진실을 담고 있어서 솔직히 많이 불편하다. 첫번째 단편 '사랑은 단백질'은 그나마 가장 희화스럽고 유머러스한 그림체를 자랑하는데 그 내용까지도 가볍거나 웃기지는 않다.

치킨 한마리 배달시켜 먹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린 닭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을 보며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서 언제나 오만한 얼굴을 들고 있는 인간의 생존에 대한 불편한 자각을 갖게 된다. 지금처럼 '육식'이라는 것을 식성을 뛰어넘어 정치적인 자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시국엔 더욱 그렇다.

'콜라맨'은 표제작 공룡 둘리보다도 오히려 더 끔찍한 자각을 갖게 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내면 속에 누적되어 있는 어떤 잔인성을 본 듯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변두리 가난한 마을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과, 자신보다 더 약자인 지체 장애인을 이용/억압한 기억들을 들여다 보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그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갚으려 한들 과연 속죄가 가능한 것일까 되묻게 된다.

'공룡 둘리'는 원작자 김수정씨를 경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그 둘리 친구들이 이런 처참한 몰골로 재생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 김수정씨 뿐아니라 공룡 둘리를 알고 있는 모든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공룡 둘리가 처음 나왔을 때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김수정씨가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굳이 동물로 표현한 것은 어린애(?)가 어른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 당시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아 심의에서 걸렸다고 했다.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그때의 상황처럼, 21세기의 공룡 둘리도 지독한 현실을 반영한다.  둘리는 신분증도 없이 공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기계 작업 도중 손가락이 잘려 초능력도 쓰지 못하고, 희동이가 사고친 합의금을 물어주느라 도우너는 외계인 해부 대상으로 팔려간다. 또치 역시 동물원에서 나가요~ 버전으로 살고 있는 중.

뭐랄까. 대한민국에서 퀴리부인이 태어났다면, 아인슈타인이 태어났다면, 빌 게이츠가 태어났다면, 마이클 펠프스가 태어났다면.... 등등의 버전이 생각난다.  과거에 아무리 꿈과 희망의 심볼이라 할지라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존재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미등록 이주 노동자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길동이에게 사기 쳐서 결국 길동이를 죽게 만든 사기꾼 도우너의 등장이라는 비극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다.

칼라 그림의 '리바이어던'. 마치 동화 패러디처럼 진행되는 이야기는 유머로 포장된 뼈 있는 진실과 역사를 표현해 냈다. 사람들이 일심으로 권력의 상징을 몰아내었을 때, 그 빈자리에 어김없이 들어와 앉는 더 큰 권력과 힘의 존재들. 마치 프랑스 혁명 때의 나폴레옹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승만을 몰아낸 자리에는 박정희가 앉았고, 그 다음에는 전두환이 뒤를 이었으니까.  비단 '권력'이라고 대치시키지 않아도 다른 감정의 찌꺼기들이 그 자리를 메꿀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인간의 욕심같은 것?

역시 칼라 그림으로 진행된 '선택'도 아찔한 내용이었다. 오늘날에도 뉴라이트로 다가오는 '세뇌된' 인간들의 가치관과 신념을 보는 느낌.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분노와 그 표출을 당당하게 여기던 사내가 철거 반대 주민들의 저항을 묵살하고는 월드컵 응원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열광하는 장면의 대칭이란 속이 울렁거릴 것 같은 욕지기를 동반한다.  녀석처럼 표면적인 폭력을 쓰지 않았더라도, 미순이 효순이를 뒤로 하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오늘날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모르되 올림픽에만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범주의 공범이 성립되는 것은 아닐까.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죄가 아닐까 깊은 숨을 쉬어본다.

간간히 나오는 쪽만화도 인상 깊었는데 주변의 크고 화려한 꽃들과 작고 초라한 자신을 비교하던 꽃이 자신의 이름을 묻는 더 작은 꽃의 질문에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마지막 단편은 작가의 데뷔작이다. 군입대로 인해 그 후 정식 지면 연재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당시 최규석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림은 많이 단조롭지만 이미 그 단계는 극복해 내었고, 내용의 깊이와 울림은 그때도 이미 싹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가의 여타 다른 작품들을 더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 기쁘다.  이 작품을 읽고서 느낀 불편한 마음과 쇳가루 냄새가 나는 감동도 몇 차례 더 이어질 것이다. 

출판사 길찾기에서 다룬 타 만화도 좀 더 찾아보련다.  바람구두님이 소개했었던 장경섭 작가의 '그 와의 짧은 동거'도 꼭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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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것,편한것만 보려고 하는 제 시선을 붙드셨네요.
읽으면서도 섬찟하고 마음이 아파요.

마노아 2008-08-18 11:31   좋아요 0 | URL
갈수록 이리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들과 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외면하기엔 너무 깊고 광범위하니까요. 그게 우리 모두의 몫인 듯해요.

다락방 2008-08-1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고 너무 불편했어요. 누구한테 추천을 못하겠더라구요. 이런건 대체 무슨 감정인지.

최규석이 요즘 참 눈에 띄지요?
[습지생태보고서]가 참 좋더라구요. :)

마노아 2008-08-18 13:22   좋아요 0 | URL
불편해서 전 추천해줄 사람이 한 명 떠올랐어요. 근데 만나기가 힘든 사람이라는 게 문제예요^^;;
습지생태 보고서도 이어서 보려구요. 최규석씨 볼 책이 줄줄이네요.
참, '햄릿'은 보고 오셨어요?

다락방 2008-08-18 17:45   좋아요 0 | URL
아니요. 이번주 토요일이에요 >.<

있잖아요, 마노아님~
오필리어랑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웃통을 벗는대요, 햄릿이. ㅎㅎ
지난번에 슬쩍 EBS 공감을 보니까 임태경...가슴에 털도 있는것 같던데요. 난 몰라요, 부끄러워서.
(*__)

마노아 2008-08-18 17:58   좋아요 0 | URL
엄훠 엄훠! 그런 명장면이 있단 말이에요????
아이 참... 울 태경오빠가 또 태권도 유단자잖아요. 가슴 근육이 좀 발달했다는 거!
근데 털도 있단 말이죠? 옴마, 부끄러버라(^^ )( ^^)

순오기 2008-08-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아가씨들의 부끄러운 대화에 아줌마도 끼어들기, 가슴에 털이 있으면 더 멋져 보이지 않나요?ㅎㅎ
아기공룡 둘리와 함께 산 세대들에겐 경악스럽죠. 이 책은 정말 독자를 불편하게 해요~ 하지만 습지는 그림도 더 세련되고 청춘들의 유쾌한 고발이라 할 수 있죠.

마노아 2008-08-19 01:14   좋아요 0 | URL
가슴 털 별로 안 좋아하지만 울 태경 옵빠라면 달리 생각할 수 있어요^^ㅎㅎㅎ
습지는 유쾌한 편인가 보군요. 다행이에요. 연달아 읽고 두배로 충격 받으면 곤란하잖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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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고 책 제목을 클릭했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미 주렁주렁 달려 있는 리뷰의 숫자가 이 책이 얼마나 베스트셀러였는지를 웅변해주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드라마화도 가능했을 테지. 뜬금 없이 살짝 질투가 나려고 한다. 작가분 한 미모도 하더니만...ㅜ.ㅜ

서른한 살의 직장인 오은수. 옛 남자친구의 결혼식날, 함께 노처녀 소리 듣던 친한 친구의 결혼 통보 소식을 듣는다.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이던 그날을 장렬히 보내기 위해서 찾아간 술자리에서, 처음 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게다가 그 남자, 일곱 살 연하였다.  회사의 상관으로부터는 소개팅을 가장한 맞선을 주선 받았고, 특색 없는 데이트로 겨우 구색을 맞춰둔다.

비뇨기과 의사 신랑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삐걱거리는 친구 재인이,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번번히 남자를 갈아치우지만 또 남자 없이 지내는 날도 없는 친구 유희. 그리고 유희의 사촌이자 물려받은 유산으로 놀탱놀탱 지내지만 마음만은 은수랑 너무 잘 맞는 저스트 프랜드 유준. 서른을 막 넘긴 청춘 남녀들의 자잘한 군상들의 대표 이미지로 발탁된 등장 인물들이다.

회사에서는 적당히 유능하게, 적당히 비겁하게, 그렇게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버티고, 출근 시간만은 하늘이 두쪽 나도 지키려고 하는 평범한 직장인 오은수.  부모님은 분당의 40평 아파트에 살고 계시고 아버지는 퇴직 2년 차. 오빠는 분가해서 아이 하나를 두고 있다.  적당히 대한민국 중산층의 표본인 가정. (사실은 제법 잘 사는 표본?)

독립해서 원룸에서 살기 시작한 지 6개월 차. 은수는 7살 연하남 태오와 동거를 시작한다.  영화 감독의 꿈을 한껏 품고 있고 자상하고 따뜻하고 또 열렬히 사랑하지만 현재로서는 백수인 남자 친구.  달콤한 현재가 안정적인 미래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반드시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불협화음. 

해는 바뀌어 은수는 서른 둘이 된다. 친구는 끝내 합의이혼을 했다. 회사에선 치욕을 겪어야 했고 기어이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했지만 안정적인 그 남자 김영수를 다시 만난다. 은수의 행보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동선을 따라가지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냉소를 던질 수도 없는 그런 공감을 보태게 된다. 그녀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딱 그 나이 또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인식 속에서 사는 여자일 뿐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우물 파며 살아왔지만 막상 떨치고 나와 보니 자신의 브랜드 가치라는 게 그렇게 대수롭지가 못했다. 엄마에게는 자신의 '유준'과 같은 오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정황을 있는 그대로 이겨내지를 못하고, 오래도록 아버지로부터 막대해짐을 감당해야 했던 어머니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하신다. 그렇게 자신을 휘몰아치는 사건사건사건들 속에서 은수는 위태롭게 균형 추를 세워둔다.

 결혼을 못해서 안달난 은수도 아니었지만, 결혼을 못할 거라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바로 지금 이때, 비교적 준수한 조건의 그 남자가 나타났을 때 해야한다는 그녀의 선택도 틀려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채워준 뜨거운 사랑이 갖춘 현실의 남루함을 극복하라는 말은 감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은수의 결혼 준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김영수의 과거, 그리고 반전.

작품은 초반 100페이지까지는 큰 감흥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미친 듯이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인데도 작품은 금세 읽힌다.  그만큼 재밌지만 제목처럼 결코 달콤하지는 않다. 마지막 씬에서 그녀가 맛본 빗방울의 맛처럼 무미건조한, 바로 그 서울의 맛을 아는 까닭일 것이다.

주인공 오은수에게 들이닥친 여러 시련들이 내 기준에서 그리 큰 시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나의 비극이지만, 비슷한 또래의 그녀가 안고 가는 고민들은 고스란히 내게도 공감을 일으킨다.  그렇게 온전히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의 확인까지.

두고두고 끌어안을 감동이라던가, 내 맘이 그 맘이야!하고 무릎을 탁 칠 정도의 이해는 아니더라도 잔잔한 감동과 안쓰러움이 찰랑거린다.  저 역설적인 제목과 소녀지심을 뒤흔들 예쁜 일러스트가 묘하게 어울린다.  작가 정이현을 처음 만난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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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었군요~ 드라마로도 제작됐어요? 도통 드라마를 안보고 사는지라 뭘 하는지도...

마노아 2008-08-17 21:19   좋아요 0 | URL
sbs에서 금요드라마로 방송했어요. 저도 방송은 한 번도 못 봤어요. 최강희가 잘 했을 테지만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먼저 보고 싶진 않았거든요. 책 보고 나니까 드라마는 전혀 안 궁금하네요^^;;;

Arch 2008-08-1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가 1.5배는 재미있어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감독님이 연출한건데 마지막에 애매하긴 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쑥 튀어나와 얘기하는 것 같아 좋았답니다. 특히나 저랑 밥먹는게 닮은 최강희가 은수로 나왔다죠. 저 방금 댓글 다는데 으흑, 마노아님... 댓글 다신게 떴어요. 흐흐..

마노아 2008-08-17 23:11   좋아요 0 | URL
저도 책 보고 나서 드라마 정보 보니까 감독님이 재밌는 작품 많이 하신 분이더라구요. 오히려 드라마가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 소개도 좀 더 설득력 있었구요.
근데 밥 먹는 게 어떻게 닮았다는 걸까요??? ^^

노이에자이트 2008-08-1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 님의 말을 처음엔 최강희랑 은수저로 같이 밥먹었다로 알아들었어요.

마노아 2008-08-17 23:11   좋아요 0 | URL
프하하하핫! 은수저로 밥 먹다! 히트에요^^

바람돌이 2008-08-1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내용인줄 알았으면 드라마 볼걸요. ㅎㅎ

마노아 2008-08-18 02:29   좋아요 0 | URL
전 홈페이지 가서 드라마 줄거리만 읽고 왔어요. 대체로 같지만 미묘하게 분위기는 조금 다르더라구요^^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서 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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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17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참 맘에 들어요.^^

마노아 2008-08-17 10:3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두루두루 참 마음에 들어요^^

순오기 2008-08-1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달을 보면서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마음이 달처럼 밝은 사람이겠죠.^^

마노아 2008-08-17 17:41   좋아요 0 | URL
저 달처럼 밝고 넉넉한 마음을 갖고 계신 듯해요.
절망 속에서 한줌 희망을 늘 찾아내 주시고요. 고마운 일이죠^^

클리오 2008-08-1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구실은 하고 사니.. 에휴..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날들이라 저 구절이 가슴에 콕, 박히네요..)

마노아 2008-08-17 17:43   좋아요 0 | URL
생각이 많은 날에 꽉 박히는 구절이었군요. 전 생각이 많아서 일부러 달달한 소설을 읽었는데, 읽고 보니 전혀 달달하지 않았어요. 인생이 그렇듯이요(>_<)

무스탕 2008-08-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저 저녁에 달이 이뻤어요. 맑고 밝은 달 주위의 구름들도 멋졌었죠.
전 반성은 꿈도 안꾸고;; 달아~ 내게 오너라~~ 말도 안되는 주문만 했었어요 ^^;;

마노아 2008-08-17 17:44   좋아요 0 | URL
달 구경을 못했네요. 추석이 한달 정도 남았으니 지금쯤 보름이겠군요. 오늘 밤은 달구경 제대로 해야겠어요^^

bookJourney 2008-08-1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구실은 하고 사니 ... 뜨끔합니다.

마노아 2008-08-17 17:44   좋아요 0 | URL
저두요. 많은 사람들이 뜨끔하면, 그게 차라리 다행인 듯 싶어요..;;;

L.SHIN 2008-08-18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달이 밝았구나. 플러그를 꽂은 달이라니! 멋진데~

마노아 2008-08-18 08:21   좋아요 0 | URL
응? 플러그를 꼽지 않은 달이어서 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긁적긁적^^;;;;

L.SHIN 2008-08-19 01:00   좋아요 0 | URL
앗,아?
아하하하하하 ( -_-) 머쓱~

마노아 2008-08-19 01:13   좋아요 0 | URL
푸훕!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