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상의 그림세상] '개발 독재' 시동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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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26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오빠가 '그'오빠 였어요~ ㅜㅜ 미처 돌아가는 세상!!

마노아 2008-08-26 15:21   좋아요 0 | URL
하루하루가 참 초조하고 섬뜩해요. ㅜㅜ

전호인 2008-08-2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드라마 엄뿔에서 강부자의 "업빠"가 갑자기 생각나 웃음이 납니다.
어디까지 밀어부칠런지 걱정이 앞섭니다.

마노아 2008-08-26 15:54   좋아요 0 | URL
엌 소리가 나는데 아직도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면 컥 소리가 나오는 요즘이지요.

bookJourney 2008-08-26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예상치 못한 것들, 바라지 않았던 것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 걱정됩니다.

마노아 2008-08-26 19:01   좋아요 0 | URL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카피가 떠올라요ㅜ.ㅜ

L.SHIN 2008-08-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득아, 제발, 아직 바쁘냐?

ㅡ.,ㅡ...

마노아 2008-08-27 14:33   좋아요 0 | URL
응??? 무슨 얘긴가 한참 고민....;;;;
저 드디어 완득이 봤어요(>_<)
완득이가 누구 좀 데려가달라고 기도해야 할 인물이 요새 특히! 많아졌어요ㅜ.ㅜ

감은빛 2008-08-2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제발 그거 타고 바다속으로 들어가버렸으면 좋겠당~!

마노아 2008-08-27 17:53   좋아요 0 | URL
물고기들이 같이 못 살겠다고 육지로 올라올지도 몰라요ㅠ.ㅠ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구판절판


물가 상승도 물가 상승 나름이다. 극심한 물가 상승은 해롭지만 (40%까지의) 적당한 물가 상승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며, 심지어 급속한 성장 및 고용 창출과 양립할 수도 있다. 역동적인 경제에서는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가 변화하면 물가가 변하는 법이니,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 활동이 많은 경제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233쪽

낮은 물가 상승률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 놓은 것을 더 잘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정책은 노동자들이 미래에 벌 수 있는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 왜 그럴까? 물가 상승률은 낮은 수준, 그것도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엄격한 금융, 재정 정책은 경제 활동의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 수요의 감축, 실업 증대, 그리고 임금 감소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물가 통제는 노동자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 물가 상승률의 하락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연금 수급자와 고정된 이율로 금융 자산에서 수입을 얻는 (금융 산업을 포함한) 경제 주체들에 한정된다. 이들은 노동 시장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엄격한 거시경제 정책이 미래의 고용 기회나 임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반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은 오히려 더 잘 보호된다. -233쪽

개발도상국의 실업률은 실제 실업의 정도를 크게 낮아 보이게 만든다. 가난한 많은 사람들은 실업 상태로 남아 있을 여유가 없어 (거리에서 싸구려 물건을 팔거나, 문을 열어 주고 푼돈을 받는 일 따위의) 극히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를 통해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위장 실업'이라고 한다.-235쪽

지나치게 엄격한 통화 정책은 투자를 줄인다. 그리고 낮은 투자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감소시킨다. 부자 나라들은 높은 생활수준, 관대한 복지 정책, 낮은 빈곤율을 달성한 상태이므로 이런 문제들이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절박할 정도로 더 높은 소득과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심각한 소득 불평등 문제를 대규모의 재분배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엄격한 통화 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237쪽

부자 나라는 경제 후퇴기에 들어서면 대개 통화 정책을 완화하고 예산 적자를 늘린다. 개발도상국에 같은 일이 발생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실업이 세 배로 늘어나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IMF를 통해 이자율을 불합리한 수준으로 올리고, 예산 균형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예산 흑자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243쪽

아르헨티나 재무 장관 카발로가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이 필요한 '반항하는 10대'와 같다는 말은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그가 정말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10대는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 10대 청소년이 다 큰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며 저축을 늘리겠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이 이미 '다 큰' 국가들에게나 어울리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이 해야 할 일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부자 나라들이 사용하는 정책에 비해서 보다 투자 지향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그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금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244쪽

자이레 : (지금은 콩고 민주공화국인) 자이레는 1961년에 연간 1인당 소득 67달러의 극빈국이었다. 모부투 세세 세코는 1965년에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여 1997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21년 동안 자이레를 주무르면서 50억 달러를 축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11억 달러였던) 1961년 국민소득의 4.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49쪽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는 1961년에 연간 1인당 소득이 49달러에 불과한, 자이레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였다. 1966년에 모하메드 수하르토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여 1998년까지 통치했다. 그는 32년 동안 150억 달러를 축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일부에서는 그 금액이 3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자녀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사업가가 되었다. 150억 달러와 350억 달러의 평균치인 250억 달러는 48억 달러였던 1961년 국민소득의 5.2배에 해당한다. -249쪽

부패만을 기준으로 하면, 인도네시아는 자이레보다 경제 사정이 훨씬 더 나빴어야 했다. 그러나 모부투가 집권하는 동안 자이레의 생활수준은 세 배나 악화되었던 데 반해, 수하르토가 집권하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생활수준은 세 배 이상 향상되었다.
......
이렇게 자이레와 인도네시아를 대비해 보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부정부패야말로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것은 아니라 해도) 상당히 큰 장애물'이라며 갈수록 즐겨 떠벌이는 주장의 한계를 알 수 있다.
......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부패는 큰 문제이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것을 약속했던 원조를 삭감하는 명분으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들이 원조를 삭감할 경우 해당 국가의 부정직한 지도자가 입는 손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손실이 더 클 것이고, 극빈국들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250쪽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부정부패와 관련된 돈이 대부분 국내에 남아서 고용과 소득을 창출했다. 자이레의 경우는 부패한 돈이 대부분 국외로 빠져나갔다. 부패한 지도자가 있다면 최소한 더러운 돈을 국내에 남겨 두기를 바라야 한다. -255쪽

부정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해당 부패 행위가 어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느냐, 뇌물을 받은 사람이 뇌물을 어떻게 쓰느냐, 그리고 만일 부패가 없었다면 뇌물이 과연 어떻게 쓰일 수 있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256쪽

역사를 살펴보면,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는 부정부패를 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극빈국들의 경우 하나같이 청렴도가 높지 않다는 사실은, 어떤 나라가 뇌물 수수 관행을 크게 줄일 수 있으려면 절대적인 빈곤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고 존엄성을 사기는 쉽다.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밀가루 한 포 준다는 유혹을 받고도 표를 팔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수가 낮은 공무원들은 뇌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개인적인 존엄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257쪽

일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통치자의 독단적인 재산 몰수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데, 이런 보호가 없다면 부를 축적할 동기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는 "민주주의의 확대는 개인이 번영과 향상된 복지를 누릴 기회를 증진시킨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 시장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라면 민주주의는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를 강력하게 지지하였던 것이 그 사례라 하겠다. -263쪽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길이냐 하는 질문을 접어두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질문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 시종일관 그렇지 않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은 실제로 천생연분이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65쪽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게 되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욕구 가운데 가장 하찮은 요소들까지 실현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조차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해마다 말라리아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백만 명이 시달리고 있지만, 세계는 말라리아 치료약 개발보다는 살 빼는 약 개발에 20배나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또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법원의 판결, 공직, 학위와 (법률가, 의사, 교사) 특정 직업의 자격증 등이 그 예이다. 누구든 돈만 있으면 이런 것들을 살 수 있는 사회는 단순히 정당성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사들이나 교사들의 자질이 적절한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노동력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법원이 불공정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 계약법의 효력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267쪽

민주주의와 시장은 둘 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우리는 양자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그리고 경제 발전 사이에 효과적인 순환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268쪽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실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경제의 탈정치화를 독촉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 정체 안에서의 정책 결정을 탈정치화한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말해) 바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손에서 모든 중요한 결정들을 빼앗아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기구에 속하는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의 손에 넘긴다면, 민주주의를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 바꾸어 말해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과 모순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칭송하는 것이 모순된다고 보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몹시 무력한 민주주의이다. -270쪽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유리한 근거도, 불리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연구자들이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여러 나라들을 조사하면서 통계학적인 규칙성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유리한 쪽으로나 불리한 쪽으로나 별다른 체계적인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272쪽

물론 민주주의가 경제적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있어야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비록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가치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더욱 강력하게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한다. -273쪽

노르웨이는 당시 유럽에서 몹시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민주 국가가 되었다. (노르웨이는 1907년에 최초로 보통 선거제를 도입한 뉴질랜드에 이어 두 번째인 1913년에 보통 선거제를 도입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는 1인 1표라는 아주 형식적인 기준으로만 볼 때도, 이미 큰 부자가 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와서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캐나다는 1960년이 되어서야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62년이 되어서야 '백호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투표를 허용했다. 미국의 남부 주들은 1965년이 되어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투표를 허용했는데, 이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의 인물들이 주도한 시민권 운동 덕분이었다. 스위스는 1971년에야 여성들의 투표를 허용했다. -274쪽

(만일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 두 개의 주 아펜첼아우서로덴과 아펜첼이너로덴이 각각 1989년, 1991년 이전까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은 것까지 따진다면 이 시기는 훨씬 늦춰진다.) 인도는 최근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6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고, 한국과 대만은 상당히 부유해진 1980년대 말이 되어서야 민주 국가가 되었다.-275쪽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을 촉진하고, 자유 시장은 다시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견해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사이에는 강한 긴장이 있으며,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일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면, 이것은 대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처럼 자유 시장을 촉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75쪽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입으로는 항상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조치들을 장려하는 것이다. 규제 완화가 그 한 예인데, 그것이 민주주의 약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완화는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고, 민주주의의 영역을 축소시킨다. 그 밖에도 엄격한 국내법 혹은 국제 조약으로 정부를 구속하고, 중앙은행이나 여러 정부 기국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하는 따위의 고의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276쪽

1세기 전의 일본인들은 근면하지 않고 게을렀으며, 충실한 '일개미'가 아니라 독립심이 지나쳤고,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게 아니라 감정적이었으며, 심각하다기보다는 실없었고, (높은 저축율로 표현되는 지금과는 달리)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오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다. 또 그 반세기 전의 독일인들은 능률적인 게 아니라 나태했고, 협조적이 아니라 개인적이었으며,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었고, 똑똑하기보다는 어리석었으며, 준법 정신이 투철하기보다는 부정직하고 도둑질을 잘했고, 자제심이 강하기보다는 태평했다.

우리가 일본인과 독일인에 대한 이런 성격 묘사를 읽으면서 어리둥절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인들과 독일인들은 이렇게 '나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둘째, 당시의 일본인 및 독일인들과 오늘날의 일본인 및 독일인들이 어째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떻게 해서 이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적 습관'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을까?-285쪽

문화에 근거하여 경제 발전을 설명하는 견해는 1960년대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나 시민권 운동과 탈 식민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이런 설명에는 (인종주의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문화 지상주의적인 기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런 설명들은 비판을 받았다. -287쪽

유교(Confucianism)는 기원전 6세기 중국의 위대한 정치 철학자 공자의 라틴식 이름인 Confucius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유교에는 신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기 때문이다. 유교는 그보다는 정치 및 윤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가정생활의 편제 및 사회적 예법과도 관련이 깊다. -289쪽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 이후로 유교 문화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이 지역의 경제적 성공을 가져 온 원인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 나갔다. 유교 문화는 근면, 교육, 검약, 협동,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인적 자본의 축적을 독려하고, (검약을 강조함으로써) 물리적 자본의 축적을 장려하며, 협동과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291쪽

그런데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지역의 발전 지체를 유교 탓으로 돌렸다. 옳은 이야기였다.

유교는 사람들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산업과 기술 따위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꺼려 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유교식 사회 체제의 정상에는 학자-관리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통치 계급 상 하급에 해당하는 직업 군인들과 함께 농민, 장인, 상인(그 아래에는 노비들이 있다.)의 순으로 위계를 이루고 있는 평민 계급을 다스렸다. 그런데 평민 계급 중에서도 농민과 그 아래의 다른 계층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경계가 있었다. 농민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나마 공직 경쟁 시험인 과거에 합격하면 통치 계급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인이나 상인은 이 시험에 응시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공직 시험은 유교 문헌에 대한 학문적 지식에 대해서만 시험을 본다는 것이다. 이런 요 인들 때문에 유교 사회의 통치 계급은 실용적인 지식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292쪽

유교는 또한 독창성과 기업가 정신을 막는다. 앞서 언급했듯 엄격한 사회적 위계질서를 고집함으로써 (장인이나 상인 같은) 특정 계층 사람들의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게 만ㄷ르었다. 또 사회적 위계질서는 윗사람에 대한 충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의 강조를 통해 유지될 수밖에 없는데, 상급자에 대한 충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은 순응주의를 낳고 독창성을 억눌렀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뛰어난 독창성이 필요치 않는 기계적인 일에 능하다는 문화적인 고정관념은 유교의 이런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93쪽

유교는 법치주의를 무력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공자의 '만일 사람들을 법으로써 이끌고 처벌로써 화합시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처벌을 피하려 노력하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만일 사람들을 덕으로써 이끌고 예절로써 화합시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선량해질 것이다."라는 유명한 진술에서도 드러난다. 공자의 말은 옳다. 법적 제재를 엄격하게 하면 사람들은 처벌이 두려워 법을 준수할 것이다. 하지만 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사람들은 도덕적인 해위자로서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법의 준수를 넘어선 도덕적인 행동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법치주의를 업신여기기 때문에 그만큼 전횡적인 통치에 취약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만일 통치자가 덕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293쪽

그렇다면 유교란 정확히 어떤 문화인가? 헌팅턴이 한국과 관련하여 표현한 것처럼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그리고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인가? 아니면 실용적인 직업을 멸시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고 법치주의를 저해하는 문화인가?
둘 다 맞다. 앞의 묘사는 경제 발전에 유리한 요소들만 뽑아 낸 것이고, 뒤의 묘사는 경제 발전에 불리한 요소들만 뽑아 낸 것이긴 하지만. -294쪽

유교만이 이중인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회교의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회교 문화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업가 정신과 독창성을 가로막고, 내세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의 축적과 생산성 향상 같은 세속적인 일에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밖에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여성들에 대한 활동 제한은 재능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동력의 질까지 떨어뜨린다. 어머니들이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면 자식들에게 충분한 영양과 학업에 대한 도움을 제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식들의 학업 성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회교의 (지하드 개념으로 구체화된) '군사주의' 경향은 돈벌이 대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칭송한다. -294쪽

하지만 회교 문화에는 다른 대부분의 문화와는 달리 고정된 사회적 위계질서가 없다. (그래서 남아시아의 하층 카스트에 속하는 힌두교도들이 회교도로 개종했던 것이다.) 따라서 열심히, 그리고 독창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회교 문화는 유교의 위계질서에서와는 달리 공업이나 상업 활동을 경멸하지 않는다. 예언자 무하마드 자신이 상인이었다. 회교는 상인의 종교이다 보니 계약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결혼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절차가 있다. 이런 경향은 법치주의를 장려한다.(알라의 9개 이름 중 두 가지는 '정의로운 분') 실제 회교 국가들의 판사 양성 역사는 기독교 국가들보다 수백년이나 앞선다. 회교 국가에서는 또 합리적인 사고와 학습을 강조한다. 아랍 세계는 한때 수학, 과학, 의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또 코란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대 이전의 회교 사회는 대부분 기독교 사회보다 훨씬 관대했다. 1492년 스페인 기독교도들의 국토 회복 운동 직후 이베리아 반도의 유대인들이 오토만 제국으로 망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295쪽

자본주의 초기 시절 경제 발전에 성공한 국가들의 대부분이 신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신교가 특히 경제 발전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천주교 문화권인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남부 독일이 급속히 발전하자 신교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가 '신통한' 문화로 취급되었다. 일본이 부자 나라가 되기 전에는 동아시아가 유교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일본이 번영을 이룩한 뒤에는 중국과 한국의 유교가 개인의 계발을 중시하는 데 반해, 일본의 유교는 협동을 강조하기 때문에 급속한 경제 발전이 가능했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이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유교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은 잊혀졌다. 유교야말로 근면과 검약, 교육과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경제 발전에 가장 적합한 문화가 되었다. 요즘에는 회교권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불교권인 태국, 그리고 힌두교권인 인도가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296쪽

많은 문화주의자들이 은연중 전제하는 것처럼 문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에 일본 문화나 독일 문화가 경제 발전에 불리한 것처럼 보였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더 부유한 나라 출신의 관찰자가 (특히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에 대해 가진 편견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부자 나라의 상황과 가난한 나라의 상황은 다르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진정한 '오해'도 있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질로 자주 인용되는 게으름에 대해 살펴보자. 부자 나라 사람들은 으레 나라가 가난한 것은 국민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단히 가혹한 조건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게으르게 '보이는' 것은 시간에 대한 '산업 사회적인'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연장이나 간단한 기계만 가지고 일할 때에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 반면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자 나라 사람들을ㄴ 시간 개념에 대한 이런 차이를 게으름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297쪽

가난한 나라에 '게으르게 지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빈둥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들이 게으르게 지내는 주된 원인은 가난한 나라의 경우 실업 혹은 준실업 상태(사람들이 직업은 있지만 할 일이 충분치 않은 경우)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것은 문화가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으른' 문화를 가진 가난한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부자 나라로 이주한 뒤에는 현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때 크게 떠벌여지던 독일인들의 '부정직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심지어는 불법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가난은 또 법의 집행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위법 행동을 '문화적으로' 수용하기까지 한다.-298쪽

일본인들과 독일인들의 '감정 과잉'에 대해서는 어떤가? 합리적인 사고가 없는 상태가 '감정 과잉'이라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인 사고는 대개의 경우 경제 발전의 결과로 발전한다. 현대의 경제는 합리적으로 조직된 활동을 전제로 하고, 이것이 다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미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오늘을 위해 사는 것'혹은 '태평하게 사는 것' 역시 경제적인 조건이 빚어 내는 결과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경제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새 직업 같은) 새로운 기회나 (수입품의 갑작스런 유입 같은) 예기치 않은 충격을 예상할 때에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난한 경제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신용, 보험, 계약 따위의) 장치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299쪽

닫시 말해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날의 일본과 독일 문화가 자신의 선조들의 문화와 크게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그리고 그 밖에 '긍정적인'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 -300쪽

그러나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은 자만에 빠질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 한국은 기술적으로 자본을 통제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은 신중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자본 시장을 대폭 개방했는데, 이는 미국의 압력도 있었지만 20년 동안 경제 '기적'을 계속한 뒤라 자만에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부자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996년 OECD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부터는 부자 나라처럼 행동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소득을 대부분의 OECD ㅎ ㅚ원국들과 비교하면 3분의 1수준, 가장 부유한 회원국과 비교하면 4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1997년의 금융 위기는 이런 행동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316쪽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개선하라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이 원칙 때문에 미국인들은 19세기에 자유 무역을 실시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얼마 전까지도 핀란드 사람들은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60년대에 세계은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를 건설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스위스 사람들은 19세기 말이 되기 전까지는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 사람들은 외국인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결국 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여섯 살 먹은 아들 진규를 공장에 보내 생계비를 벌어오게 하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321쪽

능력 개발을 위한 투자는 그 열매를 거두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력에 대해 논평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그걸 말하기에는 너무 때가 이르다."고 대답한 것으로 유명한, 마오쩌뚱 아래서 오랫동안 중국 수상을 지낸 저우언라이 정도로 시간을 길게 잡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앞에서 노키아의 전자 부문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그저 전주에 불과하다. 도요타는 30년 넘게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한 뒤에야 비록 하급차지만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이 모직물 제조 부문에서 저지대국을 따라잡기까지는 헨리 7세 시대부터 시작해서 거의 100년이 걸렸다. 미국이 고나세를 폐지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경제를 발전시키기까지는 130년이 걸렸다. 만일 이렇듯 시간을 길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했더라면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견직물이, 영국에서는 모직물이, 미국에서는 면직물이 주력 수출 품목이었을 것이다.-321쪽

스위스는 비밀은행에 예치된 검은 돈에 의지해 먹고 사는 나라도 아니고, 소 목에 다는 종이나 뻐꾸기시계 따위의 시시한 기념품을 사들이는 관광객에 의지해 먹고 사는 나라도 아니다. 사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이다. 2002년에 스위스의 1인당 제조업 생산고는 세계 최고였는데, 이는 세계 2위인 일본에 비해서는 24%나 높고, 미국에 비해서는 2.2배, 오늘날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는 중국에 비해서는 34배, 인도에 비해서는 156배나 높은 수치이다. 금융의 중심지이자 무역항으로 번창ㅇ하는 ㄴ도시 국가로 알려진 싱가포르 역시 마찬가지로 대단히 공업화된 나라인데, 1인당 제조업 생산고가 '공업 발전소'로 통하는 한국보다 35%, 미국보다 18%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325쪽

자유 무역 경제학자들이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장하고, 탈공업화를 부르짖는 경제 예언가들이 서비스를 개발하라고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은 번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길이다. 여기에는 훌륭한 이론적 근거가 있고, 이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도 풍부하다. 우리는 스위스, 싱가포르 등 제조업을 기반으로 여전히 번창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서 서비스 경제의 성공 사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326쪽

국제 경쟁은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경기자들이 참여하는 게임이다. 우리 개발 경제 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하자면, 스위스에서 스와질란드에 이르는 모든 나라들이 맞붙어 싸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약한 나라에게 유리하도록 '경기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이 공정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약한 나라들이 자국의 생산자들에 대한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규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선진적인 나라들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도록 지적소유권 보호를 완화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한다. 또 부자 나라들은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술을 이전해 줌으로써 이들을 도울 수도 있는데, 이는 가난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지구 온난화 방지라는 절박한 필요에 좀 더 부합된다는 추가적인 이득도 거둘 수 있다.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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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펠러와 날개가 만나다 [제 802 호/2008-08-25]


여름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려지는 풍경은 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이다. 그리고 이 그림에 배를 하나 추가해 보자.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그리던 돛단배보다 훨씬 크게. 자, 여러분은 운동장만한 배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소개할 선박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선박들은 길이가 보통 300m 이상인데 실감이 잘 나지 않으면 63빌딩(높이 약 250m)을 물 위에 누인 것보다 더 크다고 보면 된다. 생각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이런 대형 선박들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

커다란 덩치의 대형 선박들이 물 위에 떠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배 끝에 달려 있는 프로펠러 한두 개의 추진력으로 대양을 누빈다는 점도 참 신기하다. 사실 거친 파도를 뚫고 빠르게 움직이는 배를 만들기 위해서 각 조선소는 물의 저항을 최소로 받게 하는 부드러운 유선형의 배 디자인과 큰 추진력을 낼 수 있는 최적의 프로펠러를 개발하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로펠러의 주기능은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선풍기 날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풍기 날개는 모터에 의해서 회전을 하지만, 선풍기 날개들은 회전면에 경사가 져서 붙어 있기 때문에 회전을 하면서 앞으로 바람을 밀어주는 직선운동을 일으킨다. 배에 달린 프로펠러는 공기가 아닌 물을 밀어주고 이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 배는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프로펠러 전후의 물의 흐름은 완전한 직선방향의 흐름이 되지 못하고 프로펠러 회전에 의해 소용돌이 같은 회전류가 생긴다.

프로펠러가 회전을 하면 회전축을 중심으로 완전한 대칭이 되는 흐름이 생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즉, 이론상으로는 프로펠러를 회전할 때는 전진방향으로 밀어주는 방향의 힘과 회전하는 힘만 발생해야 하는데 프로펠러의 상하 압력 비대칭에 의해서 옆으로 밀어주는 힘도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비대칭의 힘이 상당히 커서 프로펠러를 하나만 설치한 배는 이론과 달리 똑바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한쪽으로 조금씩 선회를 하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는 배를 똑바로 앞으로 직진시키고 싶을 때는 오히려 방향타를 약간 틀어주어야 한다. 같은 이유로 프로펠러를 두 개 설치한 배는 두 개의 프로펠러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서 옆으로 밀어주는 힘이 상쇄되어 배의 직진성능을 높여준다.

또한 프로펠러가 회전류를 일으킨다는 것은 전진방향의 물의 흐름을 만들어서 배를 앞으로 밀어주는 데 써야 할 에너지가 회전하는 흐름을 만드는 데 낭비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프로펠러의 추진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 국내 조선소들이 프로펠러의 단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기술로 높은 추진효율을 갖는 배를 건조했다는 기쁜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있다.

프로펠러 앞부분에 잔류고정날개를 설치한 D 조선업체는 최근에 대형 유조선의 실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일반적으로 프로펠러는 배의 뒷부분에 설치되기 때문에 프로펠러에 들어오는 물의 흐름은 균일하게 들어오지 못하고 배를 스쳐 지나오면서 복잡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펠러 앞부분에 설치된 전류고정날개는 배에 의해 발생되는 불균일한 물의 흐름을 보다 균일하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프로펠러 하류로 빠져나가는 물의 회전운동 에너지를 최소화하여 효율을 높여주는 데 성공하였다. 실제로 이 업체 32만 톤급의 초대형 유조선에 전류고정날개를 설치해서 테스트를 한 결과 약 5%의 연료절감 효과를 얻었다. 현재 건조 중인 초대형유조선과 컨테이너선에도 이 장치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프로펠러 뒤의 방향타 앞에 추력날개를 설치한 H 조선업체는 프로펠러 뒤의 회전류를 정류시켜 회전에너지의 손실을 줄여 주면서 동시에 프로펠러 뒤로 발생하는 회전류에 의해 추가적인 양력이 발생하도록 설계하였다. 이 업체는 4~6%의 연료절감 효과가 있는 추력날개를 이미 대형컨테이너선에 적용해서 인도하였고 앞으로도 동급 컨테이너선에 추력날개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회전하면서 추력을 얻는 프로펠러 주위에 회전하는 흐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오늘날 국내 조선소들이 전 세계 조선업의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조선 최강국의 자리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저 커다란 배를 또 어떻게 조금씩 변신시켜 나갈지 기대가 된다.

글 : 유병용 (‘과학으로 만드는 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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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NANA 19
야자와 아이 지음, 박세라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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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패턴이다. 나나(하치코)의 독백으로 시작되고, 사라져버린 나나를 찾으려고 하는 친구들의 노력들. 그리고 다시 무언가가 터지기 직전의 그들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는 아직도! 알 길이 없고, 다만 그들의 불안불안한 위험 요소들을 지켜볼 뿐이다.

최근 몇 권(그래도 몇 년인가?)은 같은 패턴의 반복이긴 했는데, 그래도 질릴 수 없고 나무랄 수 없는 게, 이 작품은 보이는 것과 달리 긴 호흡으로 읽고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답답하다고 해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가로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나와 렌의 불화, 타쿠미와 레이라의 위험한 사랑, 신과 레이라의 잠재적 이별, 렌의 약물 중독 등등.

이번 이야기에선 유독 타쿠미와 레이라의 감정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듯하다. 명백히, 불륜이다. 타쿠미는 원래부터 바람둥이였고, 알면서도 레이라는 그를 사랑했다. 타쿠미에게 있어서 레이라는 여자 그 이상의 무엇으로 보였다. 그 놀라운 재능을 빛나게 해줄 능력이 그에게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자신의 여러 외도의 대상 중 하나로 전락시키지 않을만큼 사랑했다. 그리고 레이라는 차라리 그런 여자 중 하나가 되고 싶을 만큼 그를 원했다.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면 굉장히 진부하고 어찌 보면 또 찌질한 느낌이 드는데, 이걸 작품으로 만나면 그런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들은 절박했고 절실했고 절절했다.  '윤리'의 시각으로 보면 지탄의 대상이건만, 그들의 마음이, 사랑이, 그 감정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작품은 언제나 1대1로 만나야 알 수 있는 법!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 주는 야스의 포스. 이번에도 아직 어린애에 불과한 신을 제대로 교육(?) 시켜 준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늘 곁에 있어주는 그의 포커페이스가 근사하다. 그 바람에 그가 감당하고 있는 어떤 한계가 폭발할까 봐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참 책 팔아치울(?) 때 일러스트집을 중고샵에 내놓아 팔았는데, 뒤늦게 좀 후회가 된다. 그림이 너무 만화적(..;;;)이어서 기대보다 별로였고, 일러스트집은 자주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므로 팔았는데, 그런 책은 사실 '소장'에 의의가 있는 법이니까.

뭐, 그렇다고 다시 살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냥 작가가 일러스트집 두번째를 빨리 내줬음 하는 마음. 원래도 그럴 계획이었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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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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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부자 나라들에 의해 결정된다. 설령 부자 나라들이 의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된다. 부자 나라들은 세계 생산고의 80%를, 국제 무역의 70%를, (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의 70~9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부자 나라들의 국가 정책이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58쪽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형성에 있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적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58쪽

부자 나라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전체 투표권 중 60%를 장악해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가장 중요한 18개 영역에서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이다. -62쪽

세계화와 관련해서 불가항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만일 기술이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증기선과 유선전신에 의존하던) 1870년대보다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대화된 운송과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1970년대에 세계화가 덜 진전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은 세계화의 외부적인 경계를 규정지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해 세계화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어떤 국가 정책을 만들고, 어떤 국제 협정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안 없음'이라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있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다. -67쪽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정치에서 노예 제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분열적 요소가 아니었다. 노예 제도 철폐론자들은 일부 북부 주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매사추세츠 주가 특히 심했다. 그러나 북부에서도 노예 제도 철폐론이 우세한 견해는 아니었다.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흑인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해 투표권을 비롯한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는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예 제도를 당장 철폐하자는 급진론자들의 제안을 대단히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해방자'인 링컨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링컨은 즉각적인 노예 해방을 촉구하는 신문 사설에 대해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만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일부 노예만 해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썼다. -88-89쪽

당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링컨이 1862년에 노예 제도를 철폐한 것은 도덕적인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조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초래한 노예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화였다. -89쪽

독일의 경우는 항상 관세가 낮았다. 19세기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20세기 초에 걸쳐 독일의 평균 공업 관세율은 5~15%로, 영국과 미국의 (1860년대 이전) 평균 공업 관세율 35~50%보다 낮았다. 산업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1920년대에도 독일의 평균 공업 관세율은 20% 근처에 머물렀다. 독일의 이런 사례를 고려할 때 파시즘과 보호 무역주의를 동일시하는 자유 무역 이론은 사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93쪽

안타깝게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이미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해 효과를 보았던 민족주의적인 정책들ㅇ르 통해 경쟁국들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자 나라들의 클럽에 최근 합세한 나의 모국 한국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보호주의적인 나라였지만, 지금은 WTO에서 완전한 자유 무역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조업에 대한 관세를 크게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 더욱 어이 없는 현실은 한국에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어느 시기에 국가 개입주의와 보호 무역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겼던 장본인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99쪽

다행스럽게도 역사에서는 선진국들이 반드시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쁜 사마리아인 행세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자 나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는 사례들도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중요 사례로는 1947년 마셜 플랜이 시작되고 나서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가 부상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들 수 있다.
......
실제로 투입된 금액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마셜 플랜은 필수적인 수입 비용과 사회간접자본의 재건 비용을 조달함으로써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의 경제 발전에 시동을 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마셜 플랜의 경우 미국이 과거이 적국들까지 포함된 다른 나라들의 번영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본다는 신호였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한 다른 부자 나라들을 설득하여 가난한 나라들이 민족주의적 정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을 돕거나, 아니면 최소한 허용이라도 하도록 이끌었다. -100쪽

부자 나라들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부분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가진 식민주의에 대한 죄책감에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주도권자로 나선 미국이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개발에 대해 (계몽된)깨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깨인' 전략은 눈부신 결과를 낳았다. 부자 나라들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1950-1973)를 경험했다. ...... 엄청난 성장의 달성과 함께 소득 불평등 완화와 경제 안정도 이루어졌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시기 동안 개발도상국들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101쪽

미국이 1947~1979년 사이에 가난한 나라들에게 너그럽게 굴었던 것은 소련과의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냉전 상황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냉전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치하해야 할 공적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강국들은 극심한 경쟁을 하면서도 약소국들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굴었던가. -102쪽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앞으로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108쪽

나의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은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는 안이함과 나태함만 유발할 뿐이므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 부여 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108쪽

무역 자유화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관세 수입의 축소로 말미암아 정부읭 ㅖ산 압박이 커지는 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가난한 나라들은 세금 징수 능력이 취약한데, 관세는 개중 가장 징수하기 쉬운 세금이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들은 (관세 수입이 전체 세입의 50%를 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관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게다가 무역 자유화로 말미암은 경제 활동의 약화와 높은 실업률 역시 소득세 세입을 감소시켰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IMF로부터 예산 적자를 줄이라는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었던 만큼 세수 감소는 곧 극심한 지출 감축을 의미했고, 이것은 대개 교육, 의료, 사회간접자본 등의 필수적인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을 줄여 장기적인 성장에 악영향을 주었다. -112쪽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오나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119쪽

하지만 무역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 무역이 경제 발전에 가장 좋다(또는 무역이 자유로울수록 더 좋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ㅇ른 반대론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암시하는 교묘한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다. -130쪽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 무역을 해야만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유치산업을 장려하지 않고 자유 무역주의를 추구했다면 한국은 지금과 같은 중요한 무역 국가가 되지 못하고, 아직도 1960년대에 주된 수출 품목이었던 (텅스텐 원광, 생선, 해초 등의) 원료들이나 (직물,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 같은) 낮은 기술, 낮은 가격의 상품들을 수출하고 있을 것이다.-131쪽

핀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집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우랄 알타이어계로 가까운 이웃인 스웨덴이나 러시아 말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말에 더 가깝다. 핀란드는 또 스웨덴 식민지로 600여 년을 지냈고, 러시아 식민지로 다시 100여 년을 보냈다. 수천 년 동안 한족, 훈족, 몽고족, 만주족,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주변에 있는 민족들에게 시달려 온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핀란드 사람들의 이런 심정에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핀란드 사람들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18년 이후로 외국인들을 멀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 온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135쪽

핀란드는 1930년대에 외국인이 20% 이상을 소유한 기업들 모두를 공식적으로 '위험한' 기업으로 분류하는 법률을 도입하기까지 했다. 결국 핀란드는 외국인 투자를 거의 받지 못했다. ......
핀란드에서 외국인 투자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된 것은 1993년의 일이었는데, 이것도 1995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준비 조치의 일환이었다.
신자유주의 정통파의 견해에 따른다면, 50년이 넘도록 지속된 이런 극단적인 외국인 배척 전략은 핀란드의 경제 전망에 극심한 악영향을 미쳤어야 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의 성공적인 본보기로 칭송 받고 있다. -136쪽

개발도상국들이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강권에 못 이겨 자본 시장을 개방한 뒤로 금융 위기를 훨씬 자주 경험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다. 탁월한 경제 사학자 두명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금융의 개방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1945~1971년 사이에 개발도상국들은 금융 위기는 단 한 번도 겪지 않았고, 통화 위기는 16번, (금융 위기와 통화 위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 '쌍둥이 위기'는 한 번 겪었다. 그러나 1973~1997년 사이에 개발도상권 국가들에서는 17번의 금융 위기와 57번의 통화 위기, 그리고 21번의 쌍둥이 위기가 발생했는데, 이는 1998년 이후 (브라질,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금융 위기는 포함되지도 않은 숫자이다. -139쪽

미국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외국인 투자를 가장 많이 받았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외국인 투자에 대해 다방면으로 엄격한 통제를 실시했는데, 이는 최근 중국의 경우와 비슷하다. 중국 역시 최근 몇 십 년 동안 초국적기업을 엄격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면 투자의 흐름이 줄어들고, 외국인 투자 규제를 완화하면 외국인 투자의 흐름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의 유지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부분적으로는 바로 그런 규제 덕에-19세기부터 192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했던 경제였다. 이는 외국인 투자 규제가 경제의 성공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적인 견해의 토대를 허무는 것이다. -148쪽

외국인 투자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 명백한 진실은 규제 체계가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해당 국가의 경제가 매력적인 시장과 높은 품질의 (노동, 사회간접자본 등의) 생산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외국 기업들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외국 기업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나라만이 초국적기업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156쪽

공산주의가 경제 시스템으로서 실패했다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서 국영 기업이나 공기업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이끌어 낸다면 이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이런 견해는 1990년대 초반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주도했던 선도적인 민영화 프로그램 이후 널리 퍼져 나갔고, 과거 공산주의권 경제들의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던 1990년대에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조의 지위를 얻었다. 과거에 공산주의에 속했던 세계는 한동안 전부 '민영은 좋고, 국영은 나쁘다.'는 주문에 홀린 것 같았다. 이런 국영 기업의 민영화 역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했던 신자유주의 방침의 주요 항목이었다.-164쪽

자유 시장을 공언하는 정뷰가 대규모 민간 기업에 대해 국가적인 금융 지원을 시행한 사례는 실제로도 많다. 스웨덴의 조선 산업은 1970년대 말 파산에 이르렀는데, 당시 44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장악한 우파 정부의 국유화 조치에 의해 구제되었다. 그런데 이 우파 정부는 국가 규모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정부였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초 위기에 직면했지만, 당시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의 선봉에 섰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정부에 의해 구제되었다. 칠레는 부실하게 계획된 금융 자유화를 때 이르게 실시했다가 1982년에 금융 위기를 맞은 뒤 전체 은행 부문을 구제하기 위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자유시장과 사적 소유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 정부에 의해서 말이다. -169쪽

거의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로 되어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정부 관련 회사들이 전화, 전력, 운송 등의 일반적인 공익 '시설'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민간 부문이 소유하고 있는 반도체, 조선, 엔지니어링, 해운, 은행 등의 분야까지 운영한다. -170쪽

한국에도 (과거 포항제철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민영화된) 제철회사 포스코라는 공기업의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1960년대 말에 현대적인 제철 회사를 세우기 위해 세계은행에 융자를 신청했는데, 세계 은행은 이 사업 계획이 실행 불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융자를 거절했다. 당시 한국의 최대 수출품은 어류와 값싼 의류, 가발, 그리고 합판이었다. 한국에는 또한 제철에 필수적인 주요 원료 철광석과 점결탄 광산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가까운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할 수도 없었는데, 이는 동서 냉전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은 제철에 필수적인 원료를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실어와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다 한국 정부는 이 모험적인 사업을 국영 기업으로 운영하겠다고 주장했다. 실패를 위한 처방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본의 은행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1973년에 조업을 시작한 지 10년도 채 안 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효율적인 제철회사가 되었고, 지금은 규모 면에서 세계 3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71쪽

이렇게 성공적인 공기업들이 많은데 우리는 왜 이런 기업들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걸까? 이는 언론계 혹은 학계에서 행하는 보고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언론은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범죄, 파산 따위의 나쁜 사건들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 언론계와 학계가 국영 기업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경우는 대개 (비효율성이나 부정부패, 또는 태만 같은) 좋지 못한 일과 관련되었을 때뿐이다.

그러나 국영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가 적은 데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3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인해 국가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나간 상황 탓에 성공한 국영 기업들 스스로가 국가와 연관되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싱가포르항공은 자사가 국가 소유라는 사실을 광고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 민영화되었지만) 르노, 포스코, 엠브라에르 역시 자사가 국가 소유 시절에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다는 사실을 눈에 띄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소유권의 일부가 국유인 경우에는 대개 그 사실이 은폐된다. 예컨대 독일의 니더작센 주 정부가 폭스바겐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74쪽

국영 기업은 '자연 독점'이 있는 분야에도 설립될 수 있다. 자연 독점은 기술적인 조건 때문에 공급자를 하나만 두어야 시장의 요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을 이르는데, 전기, 수도, 가스, 철도, 그리고 전화 같은 것이 자연 독점의 사례라 할 수 있다. -176쪽

정부가 국영 기업을 설립하는 세 번째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서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에게 맡겨 둘 경우 외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우편, 수도, 교통 등의 중요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예컨대 스위스에서는 외딴 산간 지역의 주소지로 편지를 보내는 비용은 제네바의 주소지로 보내는 비용보다 훨씬 높다. 이윤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이 우편 업무를 맡을 경우 이렇듯 산간 지역으로 보내는 우편 요금이 올라가게 되고, 그러면 그곳 주민들은 우편 서비스 이용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이용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핵심적인 서비스에 대해서는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공기업을 세워 그 사업을 운영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177쪽

정부는 대개 부실한 기업, 정확히 말하면 잠재적인 구매자들로부터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기업을 팔려고 한다. 이 경우 정부는 민간 부문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해당 부실 기업에 대해 막대한 투자 및 구조 개편을 선택적으로 혹은 병행해서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소유 하에서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째서 민영화를 하려 한단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의 강력한 민영화 의지 없이는 어떤 공기업의 재건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영화를 하지 않도고 공기업이 가진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영화 대상 기업은 '적절한 가격'으로 매각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재산을 위탁 받은 정부의 의무이다. 국영 기업을 지나치게 싼 값에 매각하는 것은 공공의 부를 구매자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바로 여기서 분배라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이전된 부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갈 경우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부의 손실이 일어난다. 구매자가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경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보다 높아진다. -181쪽

국영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정부패 문제를 자주 들먹이곤 하는데, 얄궂게도 민영화 과정에도 역시 부정부패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가 국영 기업 내의 부정부패를 통제하거나 일소할 능력이 없다면 민영화를 한다 해서 갑자기 부정부패를 막을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183쪽

정부의 세금 징수 능력 혹은 규제 능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 독점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나 대규모 투자와 높은 이험도를 수반하는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 그리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국영 기업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국영 기업은 선진국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 시장이 발전되어 있지 않고 규제와 징세 능력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 더 필요하다. -185쪽

특허 제도를 비롯한 다른 유사한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독점으로 인한 비효율성과 '승자 독식' 구조에서 빚어지는 경쟁으로 인한 낭비는 그 제도가 가진 유일한 문제점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문제점도 아니다.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 후진국으로 지식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선진적인 외국 기술의 흡수이다. -197쪽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짝퉁 제조나 복제품 제조는 현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지식의 관점에서 볼 때 후진적이었던 시절에 하나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닥치는 대로 침해했다. -206쪽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지적인 노력들이 혼합된 발효조에서 튀어나오는 것인데, 어떤 발명품에 '마지막 손질'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영예-그리고 이익-를 독차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는 의문에서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바로 이런 근거에서 특허에 반대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소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소유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았고, 실제 수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212쪽

솔직히 말해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지적소유권 제도가 경제 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 나라들이 전체 특허의 97%를, 그리고 저작권 및 상표권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소유권 보유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면, 개발도상국들의 지식 획득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216쪽

지식을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면, 오늘날의 지적소유권 제도는 비옥한 경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막아 기술의 황무지로 바꾸어 놓는 댐과 같다. 이런 상황은 뜯어고쳐야 마땅하다.-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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