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추천글을 쓴 우석훈 교수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다가 찔찔 짜는 꼴불견을 연출했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그랬다. 면접보러 나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보다가 훌쩍훌쩍 울고, 그러다가 중요한 전화 한통을 못 받기까지 했다. 앉아 있었으면 덜 챙피했을 텐데 서서 울었으니 더 민망했다.

충격의 크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게는 노란색 표지의 씨즌 1 지식 e가 가장 최고의 책이었다. 그때는 지식e라는 프로그램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후 방송으로 많이 접하고 씨즌2에 이어 씨즌3까지 만났지만, 감동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 슬픔의 면역이 되어있질 못하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고 또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 편의 에피소드가 실렸다. 10개씩 잘라서 homoartex, homoviolence, homoethiques로 인간의 창조성, 폭력성, 윤리성을 말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실제 방송에 나왔던 그 자막들과 영상들을 편집했는데 시적인 운율감을 자랑한다. 그리고 보완할 내용들은 그 뒤에 이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진지하게 설명한다. 1편에서는 참고문헌에 붙여서 설명을 한단락씩 끊었는데 책이 2편, 3편 나오면서 보여주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균형점을 찾은 듯하다. (책으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지만, 삽입된 곡에 대한 제목만이라도 소개해 주면 참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이다.)

지식e의 방송이 많은 정보를 주며 또 이 사회에 요구되어야 할 바람직한 지식을 전달하지만 가장 감탄을 끌어낸 것은 그 '창의성' 때문이었다. 기존에 이런 방송이 있었던가, 이런 시도가 있었던가.  교육방송인 탓에 주목을 덜 받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시청률에 개의치 않고 뚝심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역설이 성립한 듯 하다. 시청자로서 독자로서는 참 고마운 일.

homoartex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대부분이 우울했던 소년'과 '콜라와 햄버거, 그리고 '미국의 정신''편이었다. 개인적으로 팀버튼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의 독특함과 천재성에는 손을 꼽아주고 싶다. 그 음울함마저도 창의력으로 바꿔버리는 놀라운 재주라니.  아울러 워렌 버핏의 가치 투자라는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다. '실용'이라는 말이 천박하게만 들리는 대한민국 현재에서 경제활동의 올바른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다'는 낙타에 관한 이야기인데 뭐랄까... 선문답 느낌이었다. 그들만이 알고 있는 신의 100번째 이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만이 알고 있다니 내가 알 도리는 없지만 이런 설정이 나온 것은 대체 무엇 때문? 방송 볼 때도 궁금했는데 책이 나오면 혹 의문이 풀릴까 했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제작진은 알까?)

homoviolence와 homoethipues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내용이었다. 폭력을 지양하고 앞서 생각해야 하는 윤리성. 그 윤리성을 파괴하는 폭력성. 그래서, 두 챕터 20개의 이야기는 참으로 아팠다. 내가 지하철에서 찔찔 짜야만 했던 바로 그 이야기들.

이미 본 내용이 많았음에도 다시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이 아프지 않으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 비극적인 주인공들이 다시 보이지 않을 그런 세상이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가 언제일지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프고 더 서럽다. 그런 날이 빨리 다가오도록 앞장서는 매체로 이 책이, 이 방송이 꾸준히 한 몫을 해내기를 바랄 뿐.

국가가 자행했던 온갖 폭력.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그리고 피해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정말 극소수.  국가는 그 잘난 이름을 앞세워 '민영화'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오늘자 뉴스에서 가스 민영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좀 더 지나면 민영화 아닌 것을 찾는 일이 부질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대체 국가가 그 모든 것을 멋대로 해치울 권리를 누가 주었을까. 아니 이 정권이 그래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을까.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굴러가는 이 시스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숨에 갑갑증만 더 늘어난다. 존 레논이 노래했던 'imagine'이 문득 떠오른다.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짧은 글짓기 숙제가 있었는데 교과서에 밑줄을 잘못 그어서 선생님이 내주지 않은 엉뚱한 단어에 '밑줄'을 그어 본의아니게 짧은 글을 지었었더랬다. 단어는 '제국주의'였고 교과서 본문은 삼일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6학년 짜리가 제국주이란 어려운 단어로 어떻게 짧은 글짓기를 할 것인가 고심을 하다가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적었었다. 잘못 해간 숙제였으니 달리 써먹을 일도 없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내게 남아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것일까. 해외에 식민지를 세워본 적 없건만, 이 나라가 자행하는 부도덕한 일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버마에 군수품을 수출했던 대우인터내셔널, 티벳을 억압하는 중국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극구 거절하기, 국외뿐 아니라 국내로 들어오면 더 디테일해지고 더 한심해진다.  국가란 국민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라고 믿고 살았던 그 시간을,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도 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책의 말미에 제작진들이 제작 후기와 감상 등을 나눈 페이지가 있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고 없는 김진혁 피디를 생각하며 또 다시 한숨 한번 베어 문다. 다른 제작진들이 처음 제작동기를 잃지 않고 의미있고 보람된 작업을 계속 해주기를 소망해 본다.

ps. 노랑 표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예뻤고, 빨강 표지도 못지 않게 예뻤지만 파랑표지는 좀 안 이뻤다. 다음엔 어떤 색이 나올까? 주홍색도 예쁠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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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편을 골라만 읽고 제대로 안 읽어서 3편은 못 샀어요.ㅜㅜ 읽은 거는 밀리고 사고 싶은 책은 불어나고...^^
그렇게 찔찔, 훌쩍훌쩍 했다니 봐야겠군요.

마노아 2008-09-02 01:04   좋아요 0 | URL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많아서 이 책도 오래 걸려서 다 읽었어요. 저도 딱 그래요. 사놓은 것은 엄청 밀렸고, 그럼에도 새로 갖고 싶고 또 막 읽고 싶은 책은 줄줄이구요. 오늘 생각했는데, 제 유일한 충동구매는 책사기인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9-02 09:01   좋아요 0 | URL
흐흐흐~ 저도 지난 겨울에 태그 페이퍼 쓰기에서 내 인생의 유일한 충동구매는 오직 '책'뿐이라고 썼지요. 그런데 쌓이는 책이 많다보니 애들 눈치가 보여서~ 사는 것 또한 자유롭지 않아요.ㅋㅋㅋ

마노아 2008-09-02 12:13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결심했어요. 당분간 중고샵 '출입'을 끊겠다구요. 보면 흔들리니까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방법이에요. 더 이상은 정말 안 되어요. 감당이 ㅠ.ㅠ

바람돌이 2008-09-0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3권이 가장 좋았습니다. 감동이 있는 글들이 많았다고나 할까요? ^^

마노아 2008-09-02 01:26   좋아요 0 | URL
첫충격이 커서 1권을 최고로 꼽지만 이번 책도 정말 감동이었어요. 배울 게 많은 책이에요. 제작진에게 늘 감사하고 있어요^^

건조기후 2008-09-0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공개장소가 아니었어서 눈물 맘껏 주르륵거리며 봤다는.. 음 전 요 파란색도 이쁘던데. 지식e 표지는 모두 색감이 무척 고와서 참 보기 예뻐요.

마노아 2008-09-02 19:34   좋아요 0 | URL
이런 강렬한 원색이 참 좋아요. 노랑 빨강 참 예뻤어요. 개인적으로는 파랑보다는 하늘색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입은 저 옷 색깔 같은 거요.(제가 원색이 참 안 어울립니다..;;;)
근데 지식e의 느낌을 말하자면 원색이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긴 해요. 블랙과 화이트도 강렬한 것이 잘 어울릴 것 같구요^^

건조기후 2008-09-02 23:09   좋아요 0 | URL
책은 계속 또 나올까요? 에혀.

마노아 2008-09-02 23:12   좋아요 0 | URL
실리지 않은 방송 분량이 많으니까 책의 내용물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참 걱정이 되지요. 정말, 계속 책이 나오고 또 방송이 무사히 진행 될지요...ㅜㅜ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이안나 지음 / 첫눈에 / 2005년 7월
품절


몽골에는 초원 지대가 70% 정도를 차지.
전체적인 지형을 보면 산악 지대는 주로 서부, (삼림)초원 지대는 중북부와 동부, 사막 지대는 중남부에 걸쳐 있다. -12쪽

몽골의 지하자원은 전 국토의 30%에 걸쳐 분포. 약 80여종의 지하자원을 채굴할 수 있다.금, 은, 구리, 주석, 아연, 형석, 몰리브덴, 우라늄, 인회토, 석유, 석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세계 10대 자원부국으로 불린다. 구리 체굴은 세계 1위.
몽골의 광산업은 국내 생산의 50%, 수출 소득의 60% 차지. 그러나 가공기술이 부족해 순이익을 많이 내지 못하는 실정. 외국인 투자의 비율로 보면 광산업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17쪽

1911년 만주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찾은 몽골은 제8대 버그드 짜브장담바를 왕으로 추대했으며, <이흐 후레>를 몽골 정부의 중심지로 삼고 그 명칭을 <니이스렐 후레>라고 했다. 다시 1924년 인민혁명이 달성된 후 혁명 영웅인 '수흐바타르'를 기념하여 수도명을 '붉은 영웅'이란 뜻의 <울란바타르>라고 개칭했다. -20쪽

연평균 기온은 -2.2도, 1월 평균 기온 -19도, 가장 더운 7월은 17도. 가장 추웠을 때의 기온은 -49도, 가장 더웠던 기온은 38.5도

해마다 10월 9일을 수도의 날로 정해 기념함.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시는 한국의 수도 서울과 1995년 10월 6일 우호 협력을 다지는 자매결연을 맺음으로써 양국의 수도는 역사적 관계를 시작. 이를 기념하여 1996년 울란바타르 시 중심부에 총 길이 2.1km의 '서울의 거리'가 조성. '서울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울란바타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21쪽

울란바타르를 둘러싸고 있는 네 산에는 각기 독특한 상징성을 지닌다. 남쪽의 버그드 항 산은 '정치', 서쪽의 성긴 하이르항 산은 '용기', 북쪽의 칭겔테 산은 '지식', 동쪽의 바양주르흐 산은 '재물'을 각각 상징한다.-27쪽

몽골은 북반구의 건냉 지역에 속해 있으며, 아시아 4대 건조 지역의 하나이다. 사계절이 분명하며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덥다. 그러나 한냉 건조 지대에 속하는 몽골의 기후는 하강 온도에 비해 체감온도가 그리 낮지 않은 편이다. 몽골은 세계에서 맑은 하늘(연 평균 250일)과 일조량(연 2,600-3,300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평균 강수량은 230mm 정도이며, 609월 사이에 90%가 내린다. 북쪽 지방은 연평균 250-400mm 정도의 비가 온다면, 남쪽 지방은 100-150mm 정도의 적은 비가 내린다. 7월이 가장 더운 달이라면 1월은 가장 추운 달이다. 몽골은 연중 건조한 편이며 또 연교차도 심해 90도 정도의 교차를 보일 때도 있다. 연평균 기온은 서북쪽의 산악지대는 영하 5도, 초원 지대는 영상 5도의 기온을 보인다.-33쪽

봄은 음력으로 1월, 양력으로는 대개 3월부터 시작되며,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깨어나고, 얼음이 녹으면서 점차 기온이 풀리지만, 연중 가장 건조한 때이며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바람에 먼지가 날려 거리가 온통 먼지로 뒤덮이는 때가 많다. 이때는 추운 겨울보다 오히려 지내기가 힘들며, 몽골 생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계절이다. 봄에는 일정한 기온을 보이지 않으며, 때로 덥다가도 갑자기 심한 바람이 불면서 추워지기도 하고, 때 아닌 눈이 오기도 한다. -34쪽

여름은 5월 말부터 9월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는 비교적 비가 많이 내린다. 고기압에 드는 날이 많고 청명하고 하늘이 드높고 맑다. 30도 이상의 높은 기온을 나타내지만 건조한 대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지 않으며,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를 금방 식힐 수 있다. 7월이 가장 더운 때로 지역에 따라 15~40도까지의 분포를 보인다. 산악지대가 시원한 편이라면, 고비 지역은 매우 높은 기온을 보인다.

여름이 되면 도시의 사람들은 고향이나 가까운 도시 외곽으로 나가 주로 1달 정도의 휴가를 보낸다. 도시의 많은 가정들은 도시 외곽에 '조스랑'이라는 여름집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춥고 길었던 겨울과 변덕스러웠던 봄을 지내느라 지친 심신의 피로를 푼다. 몽골 사람들은 여름집에 가면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유유히 1달 정도를 쉬는데, 이것은 몽골의 변화가 심한 날씨 때문에 누적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건강법의 하나이다. -36쪽

몽골의 가을은 겨울로 이동해 가는 과도기적인 계절로 비교적 짧다. 9월 초부터 11월 초까지로 보며, 몇 년 전만 해도 10월 정도만 되어도 겨울이라 할 정도로 추웠으나 최근에는 기후 변화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보통 몽골 사람들은 나담이 끝나는 7월 중순부터 가을이 서서히 시작된다고 본다. 가을은 가축의 젖이 풍부하여 이것으로 유제품인 차강이데를 만들고, 말이나 낙타읮 ㅓㅈ으로는 젖술을 만들어 겨울을 대비한다. 또 양고기나 쇠고기를 말리거나 저장을 시작하며 가축에게 먹일 건초를 준비한다. -37쪽

몽골의 겨울은 가장 길고 추우며 혹독한 날씨를 보인다. 보통 11월부터 3월까지의 긴 기간을 이른다. 겨울에는 눈이 간헐적으로 자주 오기는 하나 그렇게 많은 눈ㄴ이 오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영하 20도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놀라곤 하는데, 이곳의 기온은 건조한 대기로 인해 체감 온도가 그렇게 낮은 편이 아니며 특히 겨울에는 바람이 적기 때문에 지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바람이 없기 때문에 대기가 정체되어 있고, 저녁에서 아침까지 도시 주변 게르촌에서 때는 유연탄 가스로 심한 스모그가 발생해 겨울을 지내기 어렵게 만든다. -37쪽

몽골에는 9.9 추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한겨울부터 시작하여 추위가 9일 단위로 9번 지나야 겨울이 지나간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9.9 추위는 동지인 12월 22일부터 계산하여 81일 동안의 기간을 이른다. -38쪽

여름에 모기를 쫓기 위해 소똥을 태우기도 한다. 똥은 땔감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겨울에 가축우리의 보온을 위해 우리의 벽면을 똥으로 두껍게 발라 추위를 막아 준다.

몽골 사람들은 가축 가운데서도 말을 가장 존중하고 사랑하여, 예전에는 주인이 죽으면 말을 함께 순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72쪽

몽골인들은 흉노시대부터 국가의 수호기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고대로부터 아홉 개의 깃대를 가진 흰 수호기(유승 차강 술드)는 국가의 신성함을 나타내고 번영과 성장을 상징하는 신앙적 대상물이었다. 9수는 존귀함, 숭고함을 상징하며 여러부족들의 화합을 뜻하기도 한다. -75쪽

마두금은 몽골 남자의 정기가 될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마두금이 없는 가정, 마두금을 연주하지 못하는 남자는 없었다고 한다. 남이 집에 방문한 남자는 호오르를 연주할 수 있든 없든 악기 소리를 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1920년대부터 머링호오르(마두금)는 일반 가정의 악기에서 전문적인 무대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전문 연주가들이 연주하게 되었다. -78쪽

예로부터 몽골에서는 홀수를 길한 수로 여겼다. -99쪽

새해 첫날, 해가 뜨면 식구들은 서로 절을 하는데, 부부는 서로 한 몸이라고 생각하여 절을 하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 절을 하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는 속신이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어른께 절을 할 때 하득 위에 돈을 올려 드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풍속과는 반대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나 자식들이 절을 할 때는 연장자는 덕담을 하며 한 해의 소원이 성취되기를 기원해 준다.
오후가 되면 식구들은 집안의 어른이 사는 집을 시작으로 친척이나 스승의 집을 돌며 새해 인사를 한다. -102쪽

친지나 은사, 친구들끼리 새해 인사를 위해 집을 방문하는 것은 보통 새해 첫날부터 보름 정도까지 계속된다. 다른 집을 방문할 때는 값에 관계없이 적절한 선물을 가지고 가며, 때로 돈을 선물과 함께 드리기도 한다. 방문한 손님이 돌아갈 때 집 주인은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을 손님에게 주는 풍습이 있다. -103쪽

말경주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대개 5~13세의 어린 아이들이며 그 가운데 6~8세의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말경주에는 남자 아이들뿐 아니라 여자 아이들도 참가한다. 경주마는 2세, 3세, 4세, 5세가 된 말까지는 나이 별로 경기를 하며, 6세 이상의 말 '이흐나스'라 하여 나이 제한이 없이 한꺼번에 경기를 하고, 종마는 따로 경기를 한다. 이렇게 6종류의 경기를 하며, 측대말을 타고 단거리를 도는 시범 행사가 있다. 경기의 거리는 말의 나이에 따라 달리 정한다. 2세의 어린 말은 10~14km, 3세 말은 14~18km, 4세 말은 18~22k,, 5세 말과 종마는 22~25km, 나이가 많은 말은 대략 25~28km를 달린다. 어린 기수들은 안장 없이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안장이 없으면 말에서 떨어지더라도 말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때문에 말로 인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115쪽

몽골의 게르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오늘날의 펠트 게르 형태는 16세기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게르를 주거 형태로 한 민족은 터키, 만주, 몽골의 유목 민족들이다. 몽골의 에스기 게르를 러시아어로는 '유르트', 중국인들은 '바오', 야코트 사람들은 '모걸 오라스', 알타이 사람들은 '아가쉬' 등으로 부른다.

몽골의 왕정 시대에는 일반민이 사는 게르 이외에 왕이나 귀족의 궁궐, 관청 등의 고정 건물이 지어졌고, 정착 도시가 생기면서 고정 가옥이 지어지기도 했다. 도시 아파트는 러시아 기술로 1940년부터 시작하여 점차 소규모로 지어지다가 1960년대에는 상당수의 아파트가 지어졌다. 그후 계속해서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졌으며, 현재는 건축업이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활기를 띠고 있다. -126쪽

게르의 크기는 재산의 정도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게르의 면적과 크기는 '한'이라고 하는 벽체의 수로 나타내는데, 보통 4,5,6,8,10,12,15한의 게르가 있다. 15한의 경우 150개의 천정 받침나무가 들어가는 큰 게르인데, 이렇게 넓은 게르에는 왕이나 귀족들이 주로 살았으며,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부자들은 대개 6,8한을, 평민들은 4,5한을 짓고 살았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지어지는 크기는 5한으로 평균 5명 정도가 살 수 있다. 일반적으로 4한 게르의 크기는 15~20m2, 5한은 20~30m2, 6한은 30~50m2가 된다.

몽골인들은 길한 모든 것들이 위의 천창을 통해 들어온다고 생각하여 이를 매우 존숭했다. 또 천창을 게르의 생명이라고 보아 매우 중시하는데, 이것은 하늘과 연결되는 통로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기둥의 높이는 5한의 경우 228cm, 6한은 245m 정도가 되며, 일반적으로 천장과 벽체의 높이는 60대 40 정도의 비율을 이룬다. -128쪽

시골에서는 주로 소나 말똥을 이용하여 불을 때고 있으나, 울란바타르의 경우 외곽을 끼고 형성된 고정가옥이나 게르촌에서 나무나 유연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연이 심하게 나고 이것이 환경 오염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추운 겨울 저녁 시간 때부터 시작하여 울란바타르 시내 공기는 매캐한 연기로 뒤덮여 호흡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몽골의 대기가 겨울에는 바람이 없이 정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울란바타르 시가 고분지 지역이기 때문에 공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은 채 시내에 정체되어 있어 이러한 공해 현상은 더욱 가중된다. -135쪽

몽골 민족들은 광대한 초원에서 수 세기 동안 유목 생활을 해온 민족으로 손님을 맞는 예의가 각별하다. 이것은 인적이 드문 외로운 초원 생활 속에서 인간을 그리워하는 심정에 한 원인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동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한다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데서 오는 미풍양속일 것이다.

주변에 다른 인가가 없을 경우 주인이 집을 비울 때는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가기 때문에 나그네가 들어가 쉴 수도 있었다. -137쪽

드넓은 고비의 집

먼 여행길을 걸어
피곤에 지친 나는 한 잔의 차를 갈망하여
끝없이 광활한 고비의 인가를
보석 찾듯 살피며 갔다.
한참을 헤매다 어느 집에 이르니
게르 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주인 목자는
먼 초지에 가축 떼를 방목하러 간 듯
오 한의 게르 안에는 가구며 그릇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원하는 어떤 이를 위해 준비해 놓은 뜨거운 차
갈증으로 찾아온 어느 누군가가 차를 마시고 갔다면
집 주인이 기뻐하는 고대 풍습을 나는 안다.
태양과 바람이 스며든 육포로
체력을 보충하고 떠난 이가 있다면
이생에서 해야 할 일을 이루었다 자랑하는
소중한 풍습을 나는 안다.
진한 향기의 차로 갈증을 풀고
의심 없는 믿음의 깊이에서 나는
마음의 갈증을 풀었다.
펠트 게르 문은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채
믿음을 잃지 않은 주인이
가축 떼를 이끌고 초지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의 광활한 고향을 찾는다면 당신은 잘 안다,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사구가 펼쳐진 고비, 몽골인의 마음에는 인색의 자물쇠가 없다.'
"몽골 현대시선집"에서-139쪽

몽골에서는 술을 뿌려 올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고시레 풍속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약지를 사용하여 3번을 올리는데 이것은 푸른 하늘과 대지, 인간(천지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약지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약지는 다른 사물에 닿지 않는 가장 깨끗한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147쪽

부족이나 한 나라의 지배자를 아무도 알지 못하게 철저히 숨기는 것은 아마도 적으로부터 시신을 보호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칭기스칸이나 쿠빌라이칸 등 ㅁ오골 대칸들의 묘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죽음을 비밀로 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장례행렬 도중에 만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음에 처했다.

왕족은 매장을 주로 했으며, 왕족이나 귀족, 고승의 경우 때에 따라서 화장을 하여 뼈를 날리거나 탑에 넣어 모시기도 했다. 어떤 때는 미이라로 만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몽골의 가장 보편적인 장례법은 풍장이었다. 그 후 매장 방식이 바뀌었으며 현재는 매장이 일반적인 장례법이 되었다. -166쪽

장지에 가는 길에 유가족들은 소리 내어 울지 않으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간다. 눈물을 흘리면 죽은 이의 영혼이 물에 빠져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속은 곡을 하고 소리를 매기며 슬픔ㅇ르 표하는 우리의 풍속과는 사뭇 이질적이다. -169쪽

흉노인들은 한 해를 4계절 12달로 나누고, 봄은 호랑이, 토끼, 용
여름은 뱀, 말, 양
가을은 원숭이, 닭, 개
겨울은 돼지, 쥐, 소 달이라고 했다.
12동물이 각각 단위가 되는 역을 흉노에서 한나라가 받아들여 사용했으며,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용했다. 몽골에는 12지지 이외에 10간지가 함께 사용된다. -173쪽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 세 명의 아들이 있는 경우 맏아들은 정치적인 일에 힘쓰고, 둘째 아들은 지식이나 종교적인 일을 위해 집을 떠나고 셋째인 막내는 집안에 남아 부모의 일을 도우며 갈 걸럼트를 계승한다는 말이 있다. -225쪽

쿠빌라이칸 시대부터는 무당들 대신 국사에 승려를 앉힘으로써 무교는 통치의 기반에서 물러나게 된다. 불교는 무교의 의례를 불교화 했으며, 이러한 불교적 영향 밑에 들어간 무당을 '샤링 버어' 즉 황무당이라 한다. 원나라 시대에 비록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고 정치적인 주된 역할을 수행했으나, 일반 민중들의 대다수는 무속에 의지해 살았다. 쿠빌라이칸과 원나라의 칸들은 불교를 존중하고 전파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들 역시 무속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생활 속에서 여전히 무속의 지배를 받았다. -244쪽

어워는 유목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몽골 사람들은 충분한 초지를 제공하는 대지와 그 초지를 가능하게 하는 태양, 비 등을 내려 주는 하늘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경외의 마음을 드러내고, 앞날의 삶을 가호하고 축복을 내려 줄 것을 기원하며 어워를 세웠다. 또한 먼 길을 떠날 때 높은 산이나 고개 위에 어워를 세워 방향을 가늠하는 방향자가 되게 했으며, 어워는 초원의 험한 여행길에서 여행객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기도 했다. 전쟁을 떠날 때에도 어워에 제의를 드림으로써 하늘에 가호를 비는 의식을 행했다.
현재 몽골에서 어워제를 드리는 곳은 800여 곳에 이르며, 신성이 거하여 제의를 드리는 어워는 420여 개가 된다.
어워는 큰 산이나 언덕, 고개 위나 강, 호수, 샘물 옆에 또 초원 등에 만들어지며 몽골의 어느 지역을 가든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돌을 쌓고 맨 위에 기나 하득을 묶은 버드나무나 나뭇가지 등을 꽂아 놓은 형태이다.-256쪽

불교는 기원전 6세기 경에 인도에서 발생하여, 7세기 경 티베트에 전파되었다. 티베트 불교를 일명 라마교라 하는데 라마란 티베트 불교에서 '정신적 스승'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원래는 사원의 지도자나 위대한 스승에게만 붙일 수 있었던 '라마'라는 명칭이 오늘날에는 일반 승려에 대한 경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몽골에 들어온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 한 이유는 티베트 불교의 새로운 개혁 종파가 경전보다는 스승의 가르침 즉 '라마'를 존중한 데서 붙여진 명칭으로 생각된다. -263쪽

개혁파 불교에서 스승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이 불교를 곧바로 라마교라고 부르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라마교라는 것은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이 몽골 불교를 비하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불교가 몽골에 강하게 전파된 것은 16세기 말 경이지만, 그 이전에도 몇 차례 불교가 전파되었던 역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흉노 시대부터 간헐적으로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본다. -264쪽

불교가 몽골에 들어온 역사적 시기는 13세기이다. 칭기스칸은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세계 정복에 이르게 되었을 때, 여러나라의 종교 문제에 있어 상당히 관대한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전통적인 무속을 신봉하여 결정적인 사건에 마주치면 영원히 푸른 하늘의 가호를 비는 의식을 행하고 무당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또한 외국의 용한 점쟁이나 점성가들의 예언이나 조언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칭기스칸은 거란인 야율아해나 야율초재와 같이 양의 견갑골로 점을 치는 점쟁이들을 주위에 데리고 있었으며, 원정을 떠나기 전 점을 쳐보게 하기도 했다. 또한 도교 교단의 장로인 장춘진인에게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여 장생의 비법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265쪽

원나라 시대에 몽골의 칸들은 중국에 널리 퍼져 있던 유교와 도교를 금지하지 않았으며,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지원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융화적 태도는 매우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중국인들 가운데 큰 명성을 얻었거나 영향력이 있는 유가 혹은 도사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특별히 도사들에게 공적인 세금을 면제해 주고, 유교 사당을 부흥시키고 제를 드리게 하는 등의 일을 지원했다. 그와 동시에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몽골 지역에 전파되는 것을 보이지 않게 엄격히 규제하는 이중 정책을 썼다. 일반적으로 그 시대 몽골 칸들은 유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나라의 중심 종교로 삼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종교적 확산과 영향력을 막기 위해 티베트에서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사상적으로 중국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의 한 방편이었다.-271쪽

불교가 통치자들의 야심에 의해 몽골에 전파되긴 했으나 그 시대 상황에 몇 가지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즉, 귀족과 봉건 영주들 간의 투쟁과 위기를 어느 정도 약화시키고, 한 집단의 정치인 결집을 확고히 하며 민중들에게 문자를 전파시키고 불교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자국의 문화를 발전, 확대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몽골의 지방 통치자들과 귀족들은 불교의 서로 다른 분파를 옹호하면서 불필요한 경쟁을 하고, 자신의 확고한 지위를 굳히기 위한 일환으로 가능한 한 불교의 높은 칭호를 얻기 위해 애썼던 것은 마침내 그들의 이익과 관심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라의 독립을 잃게 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277쪽

몽골의 유목 문화는 자신들의 수천 년 역사 중 외래 종교, 문화에 그렇게 크게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만주가 1644년부터 150년 이상 정책적으로 불교를 몽골에 전파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1800년대 초에는 몽골에 1,000개 이상의 사원이 생겨났다. 승려들은 사회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일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주는 불교의 지도자를 비롯해 일반 승려들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다.-279쪽

하르호름 시는 122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1238년(어떤 학자는 1235년이라고도 함) 이곳에 어거대칸의 궁전을 세움으로써 하르호름은 더욱 발전하고 확장되어 몽골 대제국의 경제, 문화, 정치의 중심지가 된다. 이 도시에서 몽골의 여러 나라들을 통치했으며, 이곳을 통과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400여 년 동안 유라시아와의 상업이 이루어졌다.-291쪽

하르호름은 140년 간 존속하지만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시기는 32년간이었다. 1215, 1268년 큰 화재가 있었으며 1380년, 1466년 중국인에 의해 파괴를 당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복구되었다.

수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km 거리에 위치해 있고 울란바타르에서 차로 6~8시간 정도 걸린다.-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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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형 방수, 생각대로 하면 되고~ [제 805 호/2008-09-01]


성서를 보면 노아는 대홍수를 피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방주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pitch)을 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분에 비가 내리는 수개월 동안에도 물을 퍼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역청에서 시작한 방수재료는 합성고무, 아크릴수지, 폴리우레탄수지 등으로 발전했고 더 완벽한 방수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1976년 미국 고어텍스사가 라미네이트 기술을 개발하면서 방수기술은 한 단계 더 진화를 하게 된다. 인체 내에 땀은 증발시키면서도 완벽한 방수기능을 재현한 투습방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기존의 방수소재가 비옷을 입을 때처럼 후덥지근한 것이라면, 투습방수 소재는 땀을 배출하기 때문에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투습방수 기능은 수증기의 크기(0.0004μm)와 빗방울이나 물방울의 크기(100~3,000μm)가 크게 다른 점을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폭우 때 물방울은 3,000μm, 보통 비는 2,000μm, 이슬비는 500μm, 안개는 100μm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수증기는 빗방울이나 물방울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0.0004μm의 크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소재의 표면에 물방울보다 작지만 수증기보다는 큰 구멍(0.2~10μm)을 무수히 많이 만들면 땀은 원활하게 배출하되 뛰어난 방수기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현재 투습방수 재질은 기술적으로는 초극세섬유를 사용해 고밀도 직물로 가공하는 방법, 견직물에 투습방수성수지를 코팅하는 방법, 미세한 다공질 막을 라미네이트(laminate : 접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코팅 방식은 무엇보다 가공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코팅 방식을 이용한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에서 나온 엔트란트가 있다. 엔트란트는 우레탄계열의 수지 75%와 불소계 발수제 25%로 만들고 있는데 구김에 강하고 세탁을 하는데도 편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라미네이트 방식과 비교해도 방수 방풍 성능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투습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라미네이트 방식는 무수히 많은 얇은 다공질 필름을 나일론 같은 소재에 접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생산 공정이 복잡해 직접 코팅에 비하여 제조원가가 비싼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원단 본래의 촉감을 거의 해치지 않고 높은 수압에서도 방수가 되는 소재를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고어텍스(Goretex), 심파텍스(Sympatex) 등 고가의 투습방수원단은 대부분 라미네이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고어텍스의 경우, 폴리사플루오르에틸렌(PTFE)으로 만든 고어텍스 멤브레인(GORE-TEX membrane)을 사용한 직물이다. 고어텍스 멤브레인에는 ㎠당 14억 개의 미세한 구멍이 있다. 고어텍스의 구멍 크기는 직경 0.2μm 정도이며 물방울 입자의 2만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부의 비나 눈 그리고 바람을 막아준다. 반면 수증기 입자보다는 700배가 넓어 신체활동에 의해 발생한 땀 등 내부의 더운 습기는 쉽게 배출한다.

고어텍스는 화학약품에 안정적이고 피부에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화학적으로 안정하다는 의미는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하여 쉽게 다른 물질로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방진복이나 유전 작업복 등 기능성 옷뿐만 아니라 의료용으로 몸속에 삽입하는 인공혈관 등 보조기구, 전선의 피복제, 관 연결 틈새를 막아주는 개스킷 등으로 이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또 뷰렛의 꼭지부분, 테프론 테이프, 비교적 저온 반응장치, 저장용기의 마개 등 과학실험실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물이나 기름을 완벽하게 차단하면서도 이들 액체를 통과시킬 수 있는 소재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의 연구팀은 폭이 400μm 정도 되는 실리콘 못을 빈틈없이 배열하여 액체를 차단하는 방수소재를 개발했다. 실리콘 못을 이용한 이 방수소재로 표면처리를 하면 액체가 표면에 물방울처럼 맺혀 있게 된다.




특히 실리콘 못 방식은 물이나 기름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액체를 모두 차단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극한 상황에서의 방수 기능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헬리콥터의 날개인 로터 블레이드다. 즉 헬기는 고도를 높일수록 로터 블레이드에 결빙이 되기 때문에 위험성이 커지는데 실리콘 못의 완벽한 방수-방유 기능을 활용하면 높은 고도에서도 헬리콥터의 안전한 운항이 가능해진다.

실리콘 못은 차단했던 액체를 다시 흘려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실리콘 못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전기를 흘려주면 실리콘 못의 간격이 벌어지고 실리콘 못 사이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다. 이처럼 원하는 대로 방수에서 투과로 성질이 바뀌는 특성을 갖춘 데다 생산 공정이 라미네이트나 코팅 방식보다 간단하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작은 칩 위에서 각종 화학실험을 수행하는 랩 온 어 칩(lab on a chip)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역청에서 시작된 방수 소재의 진화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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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절판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시간과 계절, 바다생물, 순록, 식용 식물, 수학, 풍경, 신화, 음악, 미지의 세계, 매일매일에 대해 수세기에 걸쳐 인간이 생각해온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미국 스워스모대학의 데이비드 해리슨 언어학 조교수-49쪽

사람들은 '가치'보다 '가격'에 더 주목합니다.
가격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지만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98쪽

2007년 5월의 주주총회에서 부모를 따라온 10살 소녀가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부모나 어른들과 자꾸 상의하세요. 돈에 관한 공부는 어려서부터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 어린 것 같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빚을 지지 마세요."-101쪽

모두에게 쉽게 허락되는
건강도
아이도
사랑도
얻지 못한

프리다 칼로

1954년 47살
그녀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112쪽

사람들은 왜 억압을 욕망할까? 사람들은 어째서 부당한 권위에 '기꺼이' 복종할까? 사람들은 어째서 자유로부터 도피할까? 나치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던 유럽에서 불과 몇십 년 만에 극우정당들이 다시 힘을 얻는 게 가능한 일일까? 어째서 저소득층들이 오히려 보수정당을 지지할까? 어째서 사람들은 독재정권을 향수하고 독재자의 재림을 부단히 꿈꾸는 것일까? 이 진부하고도 유효한 질문들에 빌헬름 라이히가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 -137쪽

영국에서는
물기업의 이익이 692% 오르고
물기업 CEO의 봉급이 708% 오르는 동안
물값은 450% 상승하고 단수 사례는 50% 증가했다.
물기업들이
수돗물 누수와 폐수불법방류 등으로
기소된 사례만 128차례
영국 환경청은
자국의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집단으로
주요 물기업들을 지목했다.-153쪽

2007년 11월
우토로 지원책이 국회에 계류되는 동안
한국의 시민들은
성금 5억여 원을 모았다.

"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잘되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마음만이라도 우리를 지켜주세요.
저는 끝까지 여기
우토로에 남을 겁니다."
-우토로 주민 김군자 할머니(78)-167쪽

사실 우토로 문제에는 한국정부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1965년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수교과정에서 전후 보상 문제를 정부 대 정부의 차관 형식으로 일괄타결함으로써 민간차원이나 개인차원의 보상청구권 문제를 원천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사과 및 보상 문제에 있어서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169쪽

2004년 1월
'특수임무수행자 지원에 관한 법류'이 제정되어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북파의 증거'를 제시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더군요.

정부가 공식 확인한 전사자만 7,519명이었지만
당시 가족에게 발송된 전사통지서는
136장뿐이었습니다.

결국 '증거'를 제시한 유가족 660여 명에게만
822억 7,000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178쪽

1968년 멕시코 올림픽, 200m 결승, 신기록의 주인공 토미 스미스

"우승 덕분에 난 흑인이 아닌 미국인이 됐지만, 내가 이기지 못했다면 검둥이(negro)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의 백인들은 우리들이 승리하면 미국이 이겼다고 말하고, 반대로 나쁜 일이 있으면 흑인이 했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항의는 미국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평등을 요구하는 권리이며, 흑인사회의 단결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흑인들은 우리의 행동을 이해할 것이다."-205쪽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문화적 교차점이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십자로라는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동서양의 강대국들은 확장과 수축을 거듭할 때마다 이 지역을 짓밟고 지나갔다. 특히 14세기에 오스만 투르크가 400여 년간 이 지역을 통치함으로썽 ㅣ후 가톨릭교, 크리스정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와 알바니아계, 그리스계,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계, 터키계 등 5개 민족, 4개 언어, 2개 문자권이 뒤섞인다. 이 지역이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모자이크가 형성된 이유이다. -216쪽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를 것 같다.
그 나라들은 가해자였던 경험밖에 없지만
한국은 피해자였으니 우리를 더 잘 이해할 것 같다."

2006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한국의 대우인터내셔널은 2002년부터 2006년 10월까지
포탄 제조공장과 설비, 기술을 미얀마에 불법수출했다.-227쪽

아웅산 수치는 <아웅산 수치의 평화>라는 수필에 이렇게 썼다.

"겁준다고 겁먹지 말되 겁 없이 살지는 말라. 자유의 대가는 가벼운 적이 없으나 특히 버마에서는 그 대가가 무겁다. 하지만 사랑과 진실이야말로 어떤 형태의 강압보다 더욱 강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증오와 복수심으로 우리를 짓밟고 없애버리려 사납게 날뛰는 이들 역시 버마인, 곧 우리 동포다."-232쪽

ABSDF의 무장 투쟁을 현장에서 밀착 취재한 바 있고 스스로를 '전선기자'라 칭하는 정문태 분쟁전문 프리랜서 기자는 얼마 전 미얀마의 국경전선을 찾아가 ABSDF를 다시 만나본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모두들 살이 찌고 배가 나왔다. 국경 전선을 달리던 시절의 앳된 모습들은 사라지고 어느덧 중년 티가 났다. 반가운 얼굴들은 저마다 총 대신 새로 찾은 '혁명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건 이른바 '정치'라고 부르는 소재였다."-233쪽

서울의 6.4배 면적의 두바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에 접한 UAE(아랍에미리트)의 일곱 토후국 중 하나다. 자국민은 25만 명에 불과하지만 체류노동인구를 포함하면 아랍에미리트 내에서는 연합국의 수도 아부다비 다음으로 인국가 많다. '두바이'는 아랍어로 '메뚜기'를 뜻한다.


강력한 리더십과 종교적 지원, 그리고 막강한 오일머니를 밑천으로 두바이는 마침내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첨단의 세계도시를 일구어내는 데 성공한다. 두바이는 현재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항, 세계최대의 국제공항, 세계 최대의 쇼핑몰, 세계 최대의 테마파크를 보유한, 그야말로 '세계 최대의 허브'로 인정받고 있다.


두바이 개발의 초점은 무엇보다 '자유무역'에서 찾을 수 있다. 개발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20년 사이의 일이지만 이미 두바이는 1800년대부터 관세를 철폐하고 타국 상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무역이 지속된 상황에서 1960년대에 석유가 터지고 막대한 오일머니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266쪽

평(3.3m2)당 1천만 원씩 오르는 땅값
급격하게 치솟는 분양가
인근지역까지 덩달아 오르는 집값 땅값
결국
이주보상비로는
재입주는커녕 아예 서울 시내에서 집을 구할 수 없게 되고
세입자들은 물론 주택소유자들 또한
몇억 원대로 치솟은 뉴타운 분양가를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273쪽

2005년 4월 첫 입주가 시작된
길음 뉴타운
서울시가 애초에 장담했던
40~50%와 달리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17.1%에 그치고 만다-274쪽

서구권 국가 중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유일한 나라
미국

하루하루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의료보험 미가입자 5천만 명...
하지만
의료보험에 가입된 2억 5,000만 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284쪽

쿠바는 기초적인 의약품과 의료장비의 수입조차 막아버린 미국의 경제 봉쇄를 40년 이상 견디고 있는 나라다. 1959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의사 3천여 명이 미국으로 망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무료 의료시스템과 수준 높은 의료 기술 덕분에 늘 '의료 관광객'으로 붐비는 나라. 의사 1인당 국민수는 150명이다.(미국 390명, 한국 630명). 정부가 지출하는 1인당 의료지원금은 1년에 270쿠바달러(약255만원).

쿠바의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가정의 시스템을 따른다. '기쵸의학'보다는 '예방의학'에 주력하고 있다는 뜻.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경제적이고 보건적이기 때문. 그래서 쿠바의 의사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주민들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어떤 체질이며 어떤 지병을 갖고 있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해둔다. 쿠바의 1차진료기관은 각각 10~20가정을 담당한다.

쿠바의 의사들은 가난하고 의료시스템이 열악한 세계의 오지에 나가 무상의료 지원활동을 벌이는 것으로도 유명. 1963년 이후 지금까지 아프리카, 중남미 등 101개국에서 약 10만 명의 쿠바 의사들이 지원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맨발의 의사들'이라는 별칭을 얻었다.-293쪽

2007년3월 현재
사망 해외이주 등의 이유가 아닌
주민등록 말소자는
64만여 명
그들 중 대부분이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에서 40배나 증가한
'사회극빈층'이다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고물수집
막노동
꼬지(앵벌이)...
그나마 요즘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도
신분증이 종종 요구된다

2001년 8월 복지보건부는
주민등록 말소자들에게도 기초생활보장번호를 부여하지만
"1개월 이상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으면 자격미달..."
결국
전국 403명만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었다.-304쪽

현재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인도와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두 나라는 다양한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상황에서 국가적 언어통일을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케이스로 '국가경쟁력 확보'나 '세계화 대비'등의 목적과는 그 의미가 다소 다르다. -325쪽

문화제국주의가 과거의 식민주의 시대에는 보완적 기능을 수행했지만 신식민주의 시대에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서, 영어의 이데올로기적 폭력이 신식민주의 시대에 와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제3세계에 작용하는 것이다.-327쪽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생기고
그럴듯한 핑계가 생깁니다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합시다
옳은 일을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라는 걸 명심합시다"

"적어도 실패는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입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356쪽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故 이종욱(1945-2006)-357쪽

이종욱이 평생에 걸쳐 저개발, 개발도상국가들의 보건환경 개선을 위해 몸바쳤던 것과 달리 다국적제약회사들은 개발도상국들의 저렴한 복제 의약품 개발을 방해하는 한편 저개발국에서 '의료지원'을 빌미로 신약 실험을 실시하는 등 극단적인 영리주의로 일관해왔다. 인간을 대상으로 충분한 임상실험을 거칠 수 없는 제약업계의 특성상 저개발국의 낙후된 보건환경은 오히려 좋은 실험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359쪽

헬싱키 선언이란 196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의사협회 총회에서 채택된 의료윤리선언이다.

1.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과학원칙에 따라야 하며, 연구대상자(피험자)들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윤리적 기준에 합당해야 한다.
2. 실험계획과 수행은 독립적인 윤리심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쳐야 한다.
3. 연구대상자의 이익에 대한 고려는 과학발전과 사회이익에 앞서야 한다.
4. 약자의 입장에 있는 연구대상자들은 특별히 보호돼야 한다.
5. 연구대상자가 연구자와 종속관계에 있는 경우 특히 주의해야 한다.
6. 연구 자체의 목적과 방법, 예견되는 이익과 내재하는 위험성 등에 관하여 연구대상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려주어야 하며, 그들로부터 충분한 설명에 근거하여 자유로이 이루어진 동의를 바당야 한다.
7. 동의는 그 연구에 참가하지 않고 독립된 위치에 있는 의료인이 받아야 한다.
8. 법률상 무능력자에 대해서는 국내법에 따라 법적 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9.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 연구자는 이 선언에 규정된 원칙을 따라야 한다.
10. 학술지는 이 선언을 준수하지 않는 논문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3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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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101755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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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08-3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따라쟁이하고픈 심정이네요

마노아 2008-09-01 00:00   좋아요 0 | URL
제목에서부터 감동 한 번 먹고 들어갔어요..

순오기 2008-09-0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에게 솔직한 글이 감동을 주지요~ 세상은 참 그분마저 믿을 수없게 만들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ㅜㅜ

마노아 2008-09-01 00:29   좋아요 0 | URL
인간이 끼어들면 본래의 의도가 왜곡되는 일이 많고, 아름다운 것들이 더렵혀질 때가 참 많아요. 아름답게 창조되었을 인간이어야 할 텐데 우리 인간들은 왜 이럴까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