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는 러시아에, 그리고 남쪽으로는 중국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 몽골. 그 몽골에도 바다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 바이칼 호에서 약 200여 km 떨어진 흡스굴이 그것이지요. 아직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호. 흡스굴은 원시의 자연과 유목민의 삶에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어줍니다.



겨울에 볼만하다고 소문이 났지만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하네요. 사실은 호수이지만 바다로 착각할 정도의 크기이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양쯔강을 보면 바다로 착각하는 것처럼...

4월의 몽골은 눈이 녹으면서 없던 물길이 생기기도 합니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는 것이 몽골의 길이라지요.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흡스굴까지 서북쪽으로 약 800km. 꼬박 3일을 달려가면 흡스굴의 입구인 무릉 아이막에 도착합니다. '아이막'은 우리나라의 도청 소재지와 같은 개념으로 무릉 아이막은 흡스굴이 있는 지역의 중심 도시다. 4만 명 가량이 살아가는 몽골에서는 비교적 큰 도시인 무릉. 과거와 현대의 삶이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람과 먼지의 도시. 무릉에서 흡스굴까지는 100여 km 정도를 더 가야 한다. 북쪽으로 갈수록 자주 눈에 띄는 야크. 추위에 강한 녀석들은 히말라야 같은 고산지대에서 키우는 가축. 5월이 다가오지만 흡스굴로 가는 길은 아직 겨울. 모든 것이 완전히 얼어붙어 있는 흡스굴. 6월이 돼서야 녹기 시작한다. 좁고 긴 모양의 흡스굴. 동서로 39km 남북으로 137km. 제주도 면적의 1.5배(정말 크네요!)



몽골인들은 물고기를 즐겨 먹지 않습니다. 라마 불교의 영향이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물을 꺼려하는 습성이 있더라구요.  흡스굴에선 6월부터 물고기를 잡는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낚시로는 보이지 않고 그 지역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지 싶어요. 흡스굴 호수 동쪽엔 해발 3천 미터에 달하는 높은 산이 자리하고 있어요. 90년대 초반까지는 눈표범이 살았다는 험준한 곳이지요.

흡스굴 호수는 시베리아와 연결되는 타이가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짧은 여름을 제외하면 숲은 항상 겨울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요.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차탄족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데, 이들 차탄족에게 순록은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젖과 고기를 주는 고마운 순록.  그런데 이들 차탄족이 관광객과 많이 접하게 되면서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참 딜레마에요. 녹록치 못한 생활에 여유를 주기 위해선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마다할 수가 없는데, 그렇게 접하면 접할수록 마치 청정지역이 오염되듯이 자신들의 것을 내어주게 되니 말입니다.

흡스굴 주위에는 바위산이 많습니다. 흡스굴의 서쪽엔 낮은 구릉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해발 1600m 일대에 자리잡은 고산 습지대가 주변에 있지요. 흡스굴의 초지대에는 땅다람쥐와 같은 초식 동물들이 많습니다. 겨울 잠을 자지 않는 생토끼는 지난 여름에 모아둔 풀을 아껴 먹으며 힘겨운 겨울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는 토끼로도 불리는 생토끼는 백두산 부근에서도 일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마못(타르박)도 막 겨울 잠에서 깨어납니다. 대형 설치류. 덩치에 맞게 먹성도 좋아 먹이 찾느라 분주해요.  



봄볕을 만끽하는 타르박. 몸집이 크고 행동이 둔한 녀석은 늑대나 검독수리 등의 천적들에게 많이 잡아 먹힙니다(애도를..ㅜ.ㅜ). 타르박은 굴파기의 명수라지요. 몸을 숨기기에 적당치 않은 초원에서 땅 속으로 숨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거예요.


초원의 대표적인 맹금류인 초원수리는 날개를 펼치면 2m가 훨씬 넘는 대형 조류입니다.(캡쳐를 미처 못했네요..;;;). 산토끼와 같은 작은 설치류등을 사냥하면서 살아갑니다. 흡스굴 지역에는 초원수리를 비롯한 맹금류가 많습니다. 먹이가 되는 설치류가 많기 때문이지요.

흡스굴은 북쪽으로 시베리아와 연결되어 있어 무척 추운 지역이에요. 4월 중순이지만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흡스굴의 새벽. 기온이 너무 낮아 차의 시동이 안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한낮이라니.... 호수는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녹기 시작합니다. 솔개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보기 힘들어졌지만 몽골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맹금류에요. 흡스굴은 큰고니의 번식지이기도 합니다.

흡스굴 일대에는 사람이 적은 편이에요. 긴 겨울이 혹독하기 때문이지요.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과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라니... 어휴, 너무 가혹하지요. 

한 해에 4회에서 10여 차례까지 이사를 가는 몽골의 유목민들. 봄이 되면 여름을 보낼 곳을 찾아 떠나고 가을에는 또 겨울을 보낼 곳을 찾아 떠나지요. 초원을 찾아 떠나는 게 유목민들의 숙명이랄까요.



6월의 흡스굴은 전혀 새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얼음은 모두 녹아 맑은 물로 흐르고 호수도 하늘도 산도 모두가 생기 넘치는 푸른 빛으로 물들었지요. 짧은 여름의 축복이 찾아온 것.

6월의 흡스굴은 야생화가 지척입니다. 여름이 되면 숲속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물가로 나와 가축을 키우지요. 겨우내 숲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사람과 가축에게 여름의 호숫가는 더 없는 풍요를 안겨주는 고마운 곳이에요.  덥지 않고 시원하고, 또 해충도 많이 없어서 가축도 잘 먹고 잘 자란답니다.

독수리 무리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죽음의 흔적이 있습니다. 독수리(타스).
여러 마리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뼈만 남아버린 말의 주검. 이렇게 여름에 죽는 가축들은 대개 늑대에게 당한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게다가 늑대 녀석들은 뼈째 삼킨답니다. 배설물에 뼈가 그대로 나오긴 하지만요. (성질도 급하고 턱뼈도 강한 듯해요.)


흡스굴 일대는 타이가 숲이 촤르륵 펼쳐져 있습니다. 볕이 많이 들지 않아 음산한 기운까지 느껴지지요. 때문에 풀이 많이 자라지는 않아요. 동물들의 흔적도 찾기 어려운 여름의 숲. 흡스굴의 여름은 낮이 깁니다.



밤 11시는 되어야 해가 져요. 새벽 4시에 해가 뜨기 시작했는데 말이지요. 촬영팀들은 근로기준법을 넘어서서 일했다고 아우성이었어요.(5부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아마도 위도가 높은 탓에 그런 게 아닐까요?  일종의 백야 현상 비슷한 걸까요? (허면 겨울에는 밤이 무지 긴 것???).

아무튼, 6월 말이지만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야 할 정도로 추워집니다.

여름이 되고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흡스굴의 서쪽에는 더 많은 습지가 생겨납니다.  땅다람쥐(조름)들은 지천으로 만발한 꽃을 별미로 삼는다. 그 중 하얀 꽃만 골라 먹습니다. 보라빛 꽃(이름을 까먹었어요..;;;)을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그게 동물들에게는 독이래요. 취하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녀석들이 하얀 꽃을 따 먹는 장면은 굉장히 귀여웠어요. ^^ (캡쳐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없군요..;;;;)

흡스굴 호수의 밑바닥. 물고기 찾아보기 힘들어요. 촬영팀이 수중까지 들어갔지만 너무 추워서 혼즐이 난 채 돌아옵니다. 물고기는 구경도 못한 채로요. 몽골의 초원과 사막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물속은 고요하기만 했지요. 너무 춥고 물고기는 안 보이고...

바다 속 상태지만 많은 수풀이 있었어요. 얼음물보다 차갑다고 카메라 감독은 온몸을 떠네요.  흡스굴의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너무 차가워서 보다 따뜻한 지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바다가 없는 몽골인들은 흡스굴을 어머니의 바다로 부르며 신성하게 여겨요. 바이칼 호와 마찬가지로 지하수가 올라와 형성된 흡스굴은 실제 바다처럼 끝없이 넓고 깊지요. 깊은 곳은 260여m에 이른다니 어휴.... 이곳의 물은 바이칼 호로 흘러들어 갑니다.

흡스굴 호수 동쪽은 해발 3천 미터의 고산지대. 이 산악지대 너머는 차강노르 지역. 하얀 호수라는 뜻의 차강노르는 작은 연못들이 많은 습지대입니다. 그러고 보니 몽골인들이 흰색을 신성시 한다고 하던데 '차강'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네요. 음력 정월을 차강사르라고 해서 최고의 명절로 치는데 그때도 차강이 나오지요. 1부에서 나온 차강제르도 그렇구요.

8시 50분부터 9시 30분까지 EBS에서 다큐 방송을 하는데 이번 주는 작가 김연수가 다녀온 몽골 편이에요. 저는 만세를 불렀지요.

오늘은 고비 사막을 다녀왔던데 내일은 흡스굴 편이 방송한답니다. 내일도 닥본사를 해야겠습니다. 어머니 바다 흡스굴이 나를 기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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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17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골기행 중 흡수글이 제일 가고 싶었어요.

마노아 2008-09-17 17:05   좋아요 0 | URL
어머니 바다라니, 어쩐지 성스러운 느낌일 것 같아요. 영상으로 보면 진짜 투명하던걸요.
 

하늘의 땅 몽골에 이어, '태고의 땅 몽골'도 보았습니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짜임새는 앞 시리즈가 더 탄탄한 듯했지만, '야생'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한 가지 주제에는 더 적합해 보였지요.

1부는 '야생의 초원, 생명을 품다'란 제목입니다.

5부에 가면 제작 일기 비스무리하게 진행되는데, 그때 일지를 보니까 촬영팀이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 게 4월이었어요. 이 무렵의 몽골은 아직도 겨울 날씨였죠. 우리처럼 사계가 뚜렷하지도 않고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자랑하지도 않아요. 여름색과 겨울색, 이렇게 두가지 색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4월의 몽골은 어딜 보나 같은 빛깔이었죠.  그렇지만 하늘만은 아주 시리도록 새파랬습니다.




구름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아득한 하늘일진대, 그 아래 땅에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니, 놀라운 풍경이에요.

 한국은 아주 오지를 가지 않는 이상 어딜 가나 '도시' 냄새가 너무 짙게 풍기지요. 반면 몽골은 수도 울란바토르와 몇몇 큰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초원이 펼쳐져요. 길도 깔려 있지 않고 만들어가면서 내는 길을 달려야 하지요.

몽골의 봄은 잔인합니다. 봄철의 동물들은 비쩍 말라 있어요. 많이 굶어 죽기도 하지요. 우리에게 보릿고개가 있다면 젖이 말라 있는 이때에 몽골에선 '젖고개'를 앓습니다.  이 무렵엔 죽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만 포식할 수 있지요.



타르박은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감이래요. 설치류지요. 우리나라에서 '쥐'하면 꺄악!하고 소리치며 책상 위로 펄쩍 올라가는 그런 풍경을 상상할 텐데, 몽골의 저 타르박은 몹시 귀엽네요.



저 녀석들은 몽골가젤 차강제르에요.  우리 말로 '하얀 가젤'이란 뜻이죠. 녀석들은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닮은 길을 간대요.
다리가 튼튼하고 시속 70km로 달릴 수 있어 초원의 질주자로 통하지요.  여름이 가까워 오면 생기가 넘친답니다. 번식기가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래요.

6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몽골의 연 강수량은 200-220mm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연강수량이 1,400mm인 것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건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나마 이 강수량도 여름 한철에 8,90%가 집중된다고 해요. 우리도 그런 편이지만 여긴 상대적으로 더 극단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비가 내리면서 메말랐던 대지가 푸른 기지개를 켭니다. 7월에 있을 나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들은 말달리기 연습을 하지요. 어려서부터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익힌다는 몽골의 아이들에겐 거의 습관이라 할 수 있어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누가 더 잘 탈까요? 여자 아이들이 더 잘 타는 경우도 흔하답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어디든 너른 초원과 마주칩니다. 몽골인들이 기르는 가축은 전체 인구수보다 많아요.(몽골 인구수는 300만이 못 됩니다.) 가장 많이 기르는 다섯 가지 가축을 '오축'이라고 하는데  말. 소. 낙타. 양. 염소로 이들은 유목민들의 귀중한 재산이지요.

짧은 여름 동안 초원에선 할 일이 많습니다. 낙타의 털 깎기는 너무 일러도 늦어도 안 됩니다. 너무 이르면 낙타가 얼어 죽을 수도 있거든요.




낙타의 털은 옷이나 카펫을 만듭니다.  사진 속에서 가위를 들고 열심히 낙타의 털을 깎는 유목민의 모습이 보이네요.      

유목민들의 생존 문제는 전적으로 가축에 달려 있습니다.  가축의 젖을 짜는 건 지극히 일상적인 일.
젖을 짜는 건 대개 여자와 아이들의 일로 되어 있습니다.  초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제 몫의 일을 찾아 움직일 줄 알아요.



3살 막내가 우리 안에서 가축들과 놉니다. 염소 뿔을 잡고 당겨보지만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지요. 가볍게 염소 승!
몽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가축과 가족처럼 지냅니다. (문득 생각났는데 저 환경에서 만약 털 알러지라도 있다면 살수가 없겠네요. 친자연적이라 그런 알러지가 생기지 않는 걸까요?)

초원의 여름. 사람들은 가축의 젖을 가공한 흰 음식(유제품)을 주로 먹습니다.  반면 겨울에 먹는 것은 소나 양의 고기로 만든 붉은 음식이지요.  흰색과 붉은 색의 조화가 자연스럽니다. 질이 좋은 젖일수록 오래 두고 먹기 위해 건조시킵니다.

엄마들은 여름에 가장 일찍 일어나서 차를 끓이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소젖을 짜서 우유를 끓여요. 점심 전에는 양과 염소의 젖을 짜서 하얀음식(유제품)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죠. 저녁에 가장 늦게 자고 아침에 가장 일찍 일어나요.  아빠라고 일을 안 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 몽골에서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편이에요. 아빠들은 사냥을 하고 양을 치고 바깥일을 하지요.  어린 아이들은 또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고요. 강수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도 아이들의 주된 일이에요. 그리고 난로에 연료로 쓸 '소똥'을 주워오는 것도 여자들과 아이들이 하는 일이죠. 말린 소똥은 섬유질이 풍부해서 냄새도 나지 않고 좋은 연료로 쓰여요. 금방 타버리는 게 단점이지만 연기가 없고 화력이 좋거든요.



아이들이 집안 일을 돕는 사이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합니다. 몽골에서는 하루에 한 번만 식사 준비를 하는데 바쁜 생활 가운데 저녁에는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안정감 있게 식사를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칼국수와 비슷한 랍샤(수프 요리)를 준비합니다.  말려둔 고기를 끓인 물에 밀가루 반죽을 썬 것을 넣습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는 소금 이외에 다른 조미료 쓰지 않지요. 그래서 한국 음식을 접하면 다양한 맛에 놀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음식 간이 좀 센 편이잖아요^^ 안주인이 음식을 하면 집안의 연장자인 남자가 먼저 먹습니다. 영상에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안 계셨는데 계셨다면 노인 먼저 드셨을 테지요.



게르의 지붕을 안쪽에서 촬영한 장면인데 인상적이어서 한컷 캡쳐했습니다. 천창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이네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단순하지만 평화로운 삶의 연속입니다. 내내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생활환경이지만, 그곳에서 일생을 살아온 유목민들에게는 답답한 도심과 결코 바꿀 수 없는 대자연과의 조우일 테지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특별한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집니다. 초원에서 자라는 식물 중 하나인 쉐르츠(허브)가 많기 때문이래요.  몽골 유목민들은 시력만 좋은 게 아니라 후각과 청각도 몹시 발달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귀가 둥글고 짧은 생토끼. 녀석은 짧은 귀 때문에 쥐처럼 보여 쥐토끼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쥐 닮았다는 말은 현재 욕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쥐나 토끼 등과 같은 설치류 등은 초원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근본이 되어줍니다.  초식동물이 있는 곳엔 이들을 먹는 육식 동물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부드러운 털과 퉁퉁한 몸집으로 인기가 좋은 타르박은 몽골인들이 즐겨하는 사냥감이지요. 아까 위에서 사진을 한 번 올렸지요.  녀석들은 호기심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확인을 한다네요.(펭귄이 이런 습성을 갖고 있지 않나요?)



녀석들을 잡는 방법이 재밌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하얀색 옷으로 갈아입고 토끼나 여우의 귀가 달린 모자를 쓰고, 흰말의 꼬리나 야크의 털로 만든 노리개를 흔들면서 타르박을 향해 천천히 뛰어갑니다. 뛰어가다 멈추고 다시 뛰어가다 멈추기를 반복. 타르박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가까이 다가가지요. 몽골인들은 시력이 좋으니까 멀리서도 타르박을 발견하고는 계획적으로(!) 접근하겠지요.  다가오는 하얀 물체가 무엇일까, 타르박은 어김없이 고개를 내밀고 관심을 보입니다. 코앞까지 접근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하는 녀석. 결국 그렇게 굴 밖을 나서면 잡히고 마는 거지요. (탕!)

잡힌 타르박 고기는 먹고, 가죽은 해외 수출용으로 판다고 합니다. 이 가죽을 이용해서 모자, 조끼 그리고 코트를 만드는데 주로 여성용 고급 상품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타르박으로 만든 버덕은 몽골 최고의 요리로 꼽혀요. 가죽 안에 돌과 야채 등을 넣고 구워냅니다. 버덕이 특히 맛이 좋을 때는 가을. 곧 동면에 들어갈 타르박이 최고로 살이 오를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한컷 잡아내긴 했는데 좀 잔인해 보이네요. 결국 다 우리가 먹는 거지만...ㅜ.ㅜ

몽골인들 사이에는 용감한 사람이 늑대를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축을 위협하는 해수이기도 하지만 늑대를 보면 운이 좋아진다고 해서 사람들은 늑대에 대해 예민하면서 관심이 많다고 하네요.

늑대를 잡아서 중국에 파는데 한 마리에 15~20만 투그륵 정도 한다고 합니다. (한화 약 15~20만원)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했던 민족답게 몽골인들이 키우는 가축 중에 특히 아끼는 게 말이에요. 몽골의 말은 서양의 말보다 작지만(게다가 숏다리라지요!) 지구력이 강하고 병에도 강해 거칠고 황량한 몽골의 삶에 알맞은 녀석이에요.




세계 유일의 야생말 타키. 짱짱한 체구에 빳빳하게 선 갈기가 인상적이에요(한 성깔 하게 생겼네요! 게다가 요녀석도 숏다리!). 서식지 파괴와 밀렵으로 1969년. 고비에서 발견된 것이 마지막 야생의 모습이지요.  1992년. 유럽의 한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타키의 복원 시작되었고, 현재는 푸스타민두르(호스타이? 영상에 자막이 없으니 알아듣기 힘들더군요..;;;;) 자연 보호 구역과 고비에 약 600여 마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자연도 최고의 풍요를 만끽하는 여름의 몽골.
7월 초. 몽골 전역에서 나담이 열립니다. 축제라는 뜻의 나담은 가장 좋은 계절의 정점에 열리지요. 몽골에서는 여름에 할 일이 가장 많기 때문에 일손을 돕느라고 아이들도 모두 집에 돌아가서 3개월의 방학을 지내요. 그리고 가을 학기에 1학기가 시작되지요.  우리가 한 해 농사를 힘들게 짓고 팔월 한가위를 축제처럼 즐겼던 것처럼 몽골인들도 나담을 통해 고단함을 씻어내고 활기를 나누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나담과 함께 여름이 가고 있네요. 짧지만 충만했던 여름을 보낸 초원의 모든 생명들은 또 다시 찾아올 고난의 계절에 당당히 맞설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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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1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두산에 사는 우는 토끼도 귀가 짧더라구요.타르박은 정말 귀엽죠.동물의 왕국에선가 한 번 보고 와...귀엽다...하고 감탄했지요.몽골은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말타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 특이했어요.근데 몽골의 소는 제 기억에 뚜렷하지 않네요.그 사람들은 요쿠르트나 치즈도 말젖으로 만든 것이 많다고 하던데...일하는 데도 소를 쓰던가요? 농사를 안 지으니까 안 그럴 것 같기도 하구요.제가 요런 데에 관심이 많아서...

마노아 2008-09-15 22:14   좋아요 0 | URL
사진의 토끼도 운다고 하더라구요. 2부를 보니까 백두산에 사는 녀석과 같은 녀석들이네요. ^^
할머니에게 말타기를 배우는 손녀 손자라니, 참 근사한 풍경이에요. 몽골에서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것 같지는 않고요(일단 농업 비중이 너무 적으니까...). 소젖과 고기를 이용하는 듯해요. 수테채의 원료라고 하네요. 방금 김연수 작가가 다녀온 몽골 고비사막 편을 EBS에서 보고 왔는데 낙타 젖의 맛이 우리 먹는 우유랑 똑같다고 하네요. 내일은 흡스굴이래요. 와방 기대중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재방송인가요? 예전에 제가 몽골 자연인가...본 적이 있어요.제가 오지 민족에 관심이 많아서 봤는데 어쩐지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아...그리고 몽고견 한번 주의해서 보세요.터키의 캉갈견도 늑대를 양들에게서 지키는 용도로 쓰인다는데 몽고견의 체격이나 생김새를 한번 보시길...

마노아 2008-09-15 23:51   좋아요 0 | URL
제가 본 영상들이 지난 3월 달에 방영한 것들이에요. 다큐에 별 관심 없이 살아온 저였는데, 몽골 공부하면서 다큐들이 도움이 많이 되네요. 아무래도 영상과 음향의 힘을 무시 못하겠어요^^
아르갈리 산양을 몽골 야생개가 잡아먹기도 한다는 얘기를 본 것 같아요. 야생에서 자란 개란, 거의 늑대 수준이지 싶어요. 터키의 캉갈견은 처음 들어요. 이름이 독특하네요. 몽고견의 체격이나 생김새도 눈여겨보도록 할게요. ^^
 


제올라이트 없애고, 세제 찌꺼기도 없애고! [제 811 호/2008-09-15]


빨래를 하다 보면 여러 번 헹궈도 뿌연 물이 계속 나올 때가 있다. 도대체 세탁이 제대로 된 건지, 깨끗하게 헹궈진 건지 찝찝한 느낌이 들면서도 딱히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기계로 세탁을 하면 손으로 빨래를 하는 것보다는 때가 깔끔히 빠지지 않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제는 세제다. 세제 속의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성분은 불용성 물질이기 때문에 물에 완전히 녹지 않는다.

제올라이트는 물속에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을 공극 안에 포집하여 센물을 단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바로 경수연화 작용이라 한다. 제올라이트는 환경에 대해서도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수에서의 퇴적량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고 하수처리 과정에서 방해가 되지 않으며 활성오니(活性汚泥) 처리단계에서 오니에 흡착·제거되어 수중생물에 대해서도 나쁜 영향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올라이트는 다공성의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액상성분을 함유하게 함으로써 분체가 잘 흐를 수 있도록 하고, 분말 입자끼리 엉키지 않도록 하여 세제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올라이트는 분말 세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료이지만 반면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제올라이트의 미세입자가 물에 녹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 헹굼과정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아서 소비자들은 여러 번 헹구게 되는 불편을 겪고 있으며, 미처 못 헹궈진 제올라이트는 건조 후 미세한 먼지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세제제조 회사에서는 제올라이트의 함량을 점차 줄여 왔으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세계적인 세제 회사인 독일의 헨켈에서도 의류에 잔류물로 남는 제올라이트를 줄이기 위해 2004년부터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세계최초로 국내 세제제조 회사에서 제올라이트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여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였다. 단순히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 프로세스까지 바꿔 제품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제올라이트가 없으면 분말 세제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제조 프로세스도 바꿔야 했던 것이다.

새로운 소재는 고분자전해질로써 물에 쉽게 녹아 물속에 있는 +2가 이온인 금속이온(주로 칼슘, 마그네슘 이온)들과 먼저 이온결합을 하여 음이온 계면활성제가 +2가 금속과 이온결합 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렇게 되면 음이온 계면활성제는 금속이온과 결합하지 않게 되어 본래의 기능인 계면장력을 낮추는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고 계면장력이 낮아지면 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성분이 잘 섞이게 된다. 즉, 옷에 있는 때가 잘 빠지고, 빠져나온 때는 물과 잘 섞이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고분자전해질을 이온 강도가 높은 성분으로 물에 쉽게 녹게끔 만들어 물과의 친화성을 높였다. 또한 적절한 혼합 모노머를 사용해서 이들의 비율과 분자량의 조절을 통하여 물속에 있는 이온들과 잘 결합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제올라이트보다 경수연화 효과가 2~8배까지 좋아졌고 제올라이트 양의 1/8로도 충분히 제올라이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고분자전해질은 드럼세탁기의 열교환기에 생길 수 있는 스케일의 발생을 방지해준다. 열교환기는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 빨래를 하는 드럼세탁기에 부착되어 물의 온도를 높이는 기능을 하는데, 이때의 온도 변화로 인해 열교환기 표면에 스케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 스케일은 물에 있는 칼슘, 마그네슘과 같은 성분과 세제에 있는 성분들이 결합하여 탄산칼슘, 황산칼슘과 같은 물질을 만들고 이 물질은 물에 녹지 않고 열교환기 표면에 단단하게 부착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스케일이 누적되면 열교환기의 효율을 떨어뜨려 과열과 에너지 낭비의 원인이 되며 세탁기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올라이트 대신 고분자전해질이 첨가된 세제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옷이 말끔히 헹궈지도록 하고 세탁기를 보호하는 효과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제는 뿌옇게 나오는 헹굼물을 보면서 찝찝해하지 않고 안심해도 되는 것이다. 깨끗이 세탁하는 방법! 이것은 앞으로도 세제를 만드는 회사나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제이며, 더 좋은 세탁 세제가 개발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글 : 오영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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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1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드럼 세탁기 실망해서 다시 통돌이 세탁기 인기더만...
 
생 배노? 몽골
루이사 워프 지음, 김옥수 옮김 / 도서출판 오상 / 2004년 3월
품절


"생 배노(안녕하세요)?"

"타이왕(평화롭습니다)."-33쪽

챠강 사르, 오늘은 바로 몽골의 설날인 챠강 사르였다. 몽골의 설날은 5~6개월에 걸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됨을 축하하는 오래된 명절이었다. 설날은 음력으로 정하기 때문에 양력으로는 보통 2월 초에서 말 사이였다. 울란바토르에서는 챠강 사르 연휴가 3일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방에서는 몇 주일 동안 계속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몽골인 대부분은 연휴가 계속되는 동안 찾아올 손님을 대비해 양고기 만두 스천 개를 만들어 얼려놓는다.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은 어디를 가든지 보오쯔를 먹고 애르흐를 마실 수 있었다. -35쪽

봄은 몽골에서 사계절 중에서 가장 변덕스럽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봄을 싫어한다. 도대체 날씨를 믿을 수가 없다며 마치 '여자의 변덕처럼 예측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봄은 정말 가혹했다. 바람이 몰아치고 눈발이 날렸고 태양은 빙판을 뚫기 위해 강렬하게 내려쬐고 있었다. 땅은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얼어붙은 모래처럼 보였고, 혹독한 겨울은 바위에 있던 물기까지 말려버렸다. -63쪽

몽골의 거친 환경은 사람들을 매우 보수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서 했다. 남자는 동물 사냥을, 여자는 식물 채집을 했으며, 각자 맡은 분야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규칙이었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부부, 만나거나 이별할 때 얼굴에 키스하는 부부를 한 번도 못 보았다. 아니,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헤어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말없이 떠날 뿐이었다. '잘 가라'는 의미의 '바야르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가는 누군가에게만 하는 인사였다. -66쪽

모자를 쓰라는 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집을 피우며 하루종일 맨 머리로 마을을 돌아다녔다. 아직 바람에 냉기가 실려 있긴 했지만, 오후 내내 태양이 너무 따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질녘이 되자,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그러더니 결국 머리가 깨져나갈 듯 아팠다. 나는 그날 밤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온몸이 쑤시고 눈도 잘 안보였다. 간신히 진통제를 집어 몇 알 함께 삼켰지만 곧바로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온몸이 떨리고 어지러웠다. 다음날 아침에 간신히 일어날 수 있기는 했지만 눈알이 여전히 뻑뻑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74쪽

우리 모두가 봄의 파편에 뒤덮인 상태였다. 목구멍에 모래 냄새가 올라오고, 머리와 피부에 모래가 달라붙었다.

"아, 지금이 1년 중에 제일 힘든 시기에요. 오히려 겨울은 괜찮아요. 우리 모두 춥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봄은 날씨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위험해요. 또 공기압력이 낮아서 항상 피곤하지요. 사방이 먼지투성이라 가축이 굶주리기도 하고요. 비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겠어요. 아, 정말 힘들다."-79쪽

몽골 전통에 따르면 선물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하면 절대 안 된다. 가방이나 주머니에 가만히 넣어두었다가 혼자 있을 때에 선물을 풀어야 한다. 선물을 받고 고맙다고 말하는 건 선물을 기다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아주 무례한 행동이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물을 꺼내보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커다란 모욕이다. 말없이 선물을 받아 나중에 혼자 열어야 한다. -87쪽

마을 사람들은 캐시미어를 판 돈으로 상점에서 쌀과 밀가루를 구입하고 게르를 해체해 산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사람들은 거기서 여름을 보낼 예정이었다. 이제 이 정적인 마을 전체가 약 3개월 동안 예전의 유목민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쳉겔의 거의 모든 가정은 최소한 몇 마리씩 가축을 기르는데, 일부는 마을 주변에서 기르고 나머지는 알타이 산맥에서 길렀다. 산에 있는 가축은 겨울과 봄을 나는 동안 산에서 사는 친척이 돌봐주었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거의 모든 마을 사람이 알타이 산맥으로 들어가 직접 가축을 기르며 거기에서 나오는 풍부한 우유와 유제품을 먹으며 살았다. -109쪽

학교는 6월 15일에 공식 일정을 마쳤다. 학생 대부분은 이미 1주일 전에 떠났고 행사 때문에 머물던 소수의 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떠나기 위해 준비했다.-112쪽

어떤 나라이든 독재자나 전제군주가 공포로 통치하던 시절, '오랫동안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없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1939년에서 1952년 동안 몽골을 통치한 초이발산 정권. 초이발산 수상은 1930년대에 몽골 전역에 걸쳐 악명 높은 숙청을 단행. 요셉 스탈린을 추종한 초이발산은 10여 년에 걸쳐 반혁명적인 몽골인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 처음 18개월 동안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만 해도 최소한 2만 명 이상. 야당이거나 공산당 정권에 반대한다고 판단되는 학자와 스님 수천 명이 탄압의 표적. 몽골에는 장남을 라마승으로 키우는 오랜 전통. 1945년경 18,000명 이상의 라마승이 처형. 사원 800여곳 파괴. 화를 피한 곳은 단 세곳. 울란바토르의 간당 서원이 그 중 하나. 선전용으로 남겨둔 것. -119쪽

용기를 내서 바깥으로 나가보니, 도시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우중충한 상점과 가판대, 나이트클럽과 술집 등이 중앙 엥흐 타이왕(평화의 거리)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고, 진열장마다 최신 상품이 번쩍이고 있었다. -124쪽

모든 유목민은 여름과 가을 내내 유제품을 먹기 때문에 요구르트와 크림, 치즈를 많이 만들었다. 또 겨울에는 먹을 게 없기 때문에 미리 지방질을 충분히 섭취해야 했다.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거품과 크림이 많은 암말에게서 짠 젖이다. 암말에게서 젖을 짤 수 있는 시기는 약 한 달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유목민들은 그 유명한 아이락(발효시킨 암말 젖)을 몇 통씩 만들어 놓는다. -132쪽

내가 게르에서 여자들과 일하는 동안, 산사르후우를 비롯한 남자들은 바깥에서 밧줄과 나무로 만든 여름용 임시 축사를 손질하고, 말에게 낙인을 찍고, 양에게 이름표를 붙이고 양털을 깎았다.
남자들은 손톱깍이 같은 조그만 가위 두 개로 150마리 이상의 양털을 깎았다.

양털 깎기가 모두 끝나자, 남자 아이들은 웃통을 벗어던진 채 모두 강으로 들어가서 양털을 깨끗하게 빨릴 때까지 맨 손으로 박박 문질렀다. 그런 다음에 비틀어 짜고 쭉 펴서 우중충한 양털을 모아놓았다. 양털은 마치 민들레 꽃씨처럼 보송보송 일어났다. 쭉 늘어놓은 양털은 마치 수많은 거미 떼가 밤새도록 짜놓은 은빛 거미줄처럼 보였다. -135쪽

내가 여름 캠프에서 작성한 일지는 주로 유목민의 작업 방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일하면서도 상호 보완이 되는 방식, 다양한 유제품을 만드는 방식, 끝없는 방목과 젖 짜기, 가축을 잡아서 운반하기 등이었다.
"여름에는 산에서 할 일이 아주 많은 법이야. 오랜 겨울을 지낼 양식을 지금 다 만들어 놓아야 하거든."
그들은 식량을 모으기 위해 산으로 왔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여름은 식량을 수확하는 계절이며, 순간이나마 풍요로움을 누리는 기간이었따. 나른하게 보내도 되는 휴가기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함께 외출한 적이 있었다. 7우러 중순경에 근처 계곡에서 열리는 나담 축제에 참석했다. -136쪽

가장 중요한 나담 축제는 울란바토르에서 매년 7월 11일과 13일 사이에 열린다. 7월 중순경에 열리는 나담 축제는 작은 규모로 전국 수백 곳에서 열린다. 지역에서 열리는 나담 축제는 가축을 하루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당일에 끝났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활쏘기 대회는 대부분 생략했다.

언뜻 보기에, 나담 축제는 오랜 전통의 소박한 여름 축제 같았다. 마당에 하얀 천을 길게 깔고, 그 위에 버르척과 아롤, 치즈, 크림 등을 잔뜩 쌓아놓았다. 젊은 여인 10여 명이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수테채(우유차)를 따라주는 모습도 보였다. 남자와 여자는 따로 떨어져 앉았으며, 아이들은 맨발로 양쪽을 오가며 뛰어놀았다. -137쪽

몽골에서는 결승선을 그려놓지 않아, 언제나 두세 마리가 똑같이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심판은 우승자를 정확히 가려냈고, 사람들은 우승자 주변으로 몰려갔다. 우승마에게는 존경을 상징하는 파랑 비단 하딱(스카프)을 씌워졌다. 그리고 아이락과 쉬밍애르흐를 정중하게 부어주었다. 어린 기사에게는 왕관을 씌어줬다. 그러나 우승마보다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139쪽

나는 데르후우가 차와 음식을 게르 바깥에 있는 낮은 식탁에 준비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몽골인과 투바인은 언제나 집 안에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기 때문이다. 나담 축제처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어떤 유목민이든 결코 바깥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저속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142쪽

몽골에서 에스기(양모 담요)를 만드는 건 곡식을 추수하는 것과 비슷했다. 양모 담요는 게르를 덮는 벽과 좁은 침대의 매트리스나 담요로 사용했다. 염색과 바느질을 거쳐 멋진 양탄자나, 남자들이 겨울에 신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로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부츠는 잘 젖지 않아서 눈길을 걷는 데 아주 좋았다.
데르후우와 마니크가 아주 촘촘히 짠 갈대 돗자리에 양털을 고르게 깔자, 강수흐가 따듯한 물 두 통을 가져왔다. 데르후우가 잘 보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쭉 편 손바닥에 물줄기가 가느다랗게 되도록 부었다. 물방울이 잘 마른 양털에 뚝뚝 떨어졌다.
"먼저 양털을 충분히 적신 다음에 이걸 말아서 에스기로 만드는 거야. 골고루 충분히 적시지 않으면 서로 달라붙질 않아."
양털이 축축하게 젖자, 우리 네 사람은 돗자리와 양털을 기다란 소시지처럼 천천히 단단하게 말았다. 그러자 데르후우가 거기에 기다란 회색 밧줄을 돌려서 꽉 묶었다. 그 일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마른 풀밭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소시지 모양의 돗자리를 앞뒤로 밀었다.
-153쪽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딱딱한 돗자리를 천천히 펼쳤다.
"양털이 잘 엮이지 않았으면 오늘 오후에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할 거야."
마니크는 밧줄을 풀면서 말했다. 모습을 드러낸 양털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신선했으며, 조직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달라붙었다.
"잘 됐어요. 좋은 에스기에요. 보세요."
우리는 하얀 바닥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나머지 양털은 겨울용 델이나 담요에 넣고 바늘로 꿰맸다. -153쪽

남자들이 풀을 베고 돌아왔다. 살갗은 까맣게 탔고 몸은 더 수척해보였다. 벌써 8월 중순, 여름은 어는덧 끝나가고 있었다. -158쪽

알타이 산맥에서 마지막 며칠을 보내는 동안 폭우는 내리기 시작할 때처럼 갑자기 끝났다. 이제 앞으로 아홉 달에서 열 달 동안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기온이 밤사이에 갑자기 내려갔고 계곡 비탈면에는 드문드문 눈발이 스며들었다. 유목민들은 짐을 싸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가을을 보낼 준비에 착수했다. 이들에게는 기온의 변화가 삶의 나침반이었다. -158쪽

여름은 가장 바쁜 계절이야. 겨울에는 일이 약간 쉬워지지. 남자들이 건초를 저장해 놓았고, 통나무집은 따듯해. 하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여서 쉴게가 양 떼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날이 많아. 그리고 야크한테서 우유가 안 나오는 날도 많아. -159쪽

게르를 해체하는 과정은 정말 예술이었다. 우선 바깥에 덮은 천을 벗기고, 그 다음에 벽을 형성했던 양모 담요를 벗겼다. 그러면 단단한 나무 골조가 나오는데, 마름모 격자를 지탱하는 장대를 서너 개만 남기고 천장을 내렸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침대를 모두 꺼내고 옷과 가재 도구를 나무 궤짝과 포대와 여행 가방에 담았다. 게르를 해체하는 작업은 약 두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는 게르가 있던 자리와 난로가 있던 자리에 남은 약간의 잿더미를 바라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친 다음에는 당연히 차를 마셔야 했다. 몽골에서는 서로 이별하기 전에 항상 차를 마신다.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시간보다 항상 늦게 출발한다. 우리가 트럭에 올라탄 건 이른 오후 시간이었다. -161쪽

나는 몽골인과 카자크인과 투바인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가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이고, 보수적인 문화도 거의 비슷했다. 다른 게 있다면 세 민족 가운데에서 카자크인이 가장을 존중하는 문화가 특히 강하다는 것이다. 집에서 여자들이 앉아 있다가 남편이라도 들어오면 모두가 깜짝 놀라 그 집 안주인을 제외한 모든 여자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가장은 집안일을 결코 거들지 않고, 부인이나 딸에게 명령만 내렸다. 그리고 몽골 여자나 투바 여자와 마찬가지로 카자크 여자들도 차나 음식을 남편에게 제일 먼저 대접했다. -175쪽

2주일이 지난 후에 아바이는 아들들을 데리고 풀베기 작업을 마쳤다. 건초를 높이 쌓아올린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들들이 그 꼭대기에서 빙그레 웃으며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건초를 게르 주변과 하샤 뒤편에 널었다. 몽골의 가을은 대체로 아주 짧아서, 겨울을 알리는 짧은 예고편이고 기나긴 추위로 들어가기 직전의 불꽃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난 봄이 아주 길고 여름은 늦더니, 이제 가을을 보세요. 더웠다 춥더니 이제 다시 더워졌어. 이건 문제가 있어요. 올해는 아주 힘든 한 해가 될 거예요, 박쉬."-176쪽

나는 쳉겔에서 영어 수입이 아주 중요하다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마을 사람은 벌써 세 개(러시아어를 포함하면 네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울란바토르까지 갈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도시에서는 영어를 원활하게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지방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갈 거라면 영어가 중요하겠지만, 대학에 들어갈 사람은 더더욱 적었다.-180쪽

토야는 몇 달 전에 얼어 죽은 게렐휴의 조카이자 자신의 먼 친척이 되는 남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몽골인은 죽은 자의 이름을 거의 입에 담지 않았다.

가난한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죽음에 익숙할 거라고, 사람이 죽어도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거라고, 죽은 자를 슬퍼하는 건 여유 있는 나라에서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강바타르와 벌러르마의 게르에서 나는 그렇게 깊은 슬픔을 생전 처음 느꼈다.-183쪽

몽골인은 상대방이 술잔을 안 받는 걸 대단한 모욕으로 여겼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계속 술잔을 부어대는 이곳의 문화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190쪽

여름이 되면 타왕 벅드에 야생화가 만발하며, 목초지마다 물과 풀이 풍성했다. 1년에 3~4개월 동안은 목초지에 풀이 많기 때문에 가축을 거느린 유목민들에게 황금기다. 하지만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었다. 목초지는 꽁꽁 얼어붙고 가축은 먹이를 찾을 수 없었다. 거세게 몰아닥친 눈은 커다란 야크까지 빠져서 질식할 정도로 쌓인다. 그래서 '짧은 황금의 계절'이 겨울에게 밀려날 즈음이 되면 유목민들은 왕들의 왕관을 포기한 채 말을 타고 높은 절벽이나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통나무집에서 겨울을 보낸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타왕 벅드로 돌아간다.-204쪽

라디오 방송에 의하면 지금 굉장히 많은 군중이 수흐바토르 중앙 광장으로 몰려나와 이흐 ㅎ ㅗ랄 앞에서 항의하고 있어요. 몽골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곳은 러시아처럼 마피아가 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우리 정치인들이 안전하게 일한다고 생각했어요. 초이발산 정권 이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전혀. 민주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죽은 사람은 물론 감옥에 간 사람조차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이 나라는 자유국가에요. -222쪽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평상시라면 담요를 둘러쓴 채 깊이 잠자고 있을 시간에, 나는 여전히 난로 옆에 앉아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촛불이 타들어가고 어깨에는 염소가죽으로 만든 델이 걸쳐 있었다. 나는 두 손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손바닥과 손가락을 바라보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피부가 마르고 거칠었다. 손바닥에 딱딱하고 노랗게 굳은살이 박혔고 이리저리 갈라졌다. 손톱은 울퉁불퉁하고 더러웠으며 손가락 끝은 문드러졌다. 내 생전 처음으로 일하는 손을 가져본 것이다.-227쪽

"받으세요, 박쉬, 나는 발라크(물고기)를 먹지 않아요."
쳉겔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은 생선을 먹지 않았다. 생선은 보오쯔(양고기 만두)나 염소고기, 또는 쇠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가운데 하나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고기 대신 먹는 창피한 음식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강가에서 놀이삼아 낚시하는 아이들을 아주 많이 보았지만, 어느 집을 가든 생선 요리를 대접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233쪽

이곳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나이가 몇 살이며, 이름은 무엇이며, 남편은 언제 사망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239쪽

"당신이 사는 나라에도 가축이 있소?"
아팜이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똑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240쪽

"생 배노, 박쉬. 우리 집에 가서 차를 마셔요. 여기에서 아주 가까워요."
이것이 몽골 방식이다. 모두가 사람을 너무나 친절하게 반긴다. 내가 "챠뜨씅(배가 부르다)."하고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41쪽

1990년 말에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에서 독립을 선언했어요. 우리는 나자르바에프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자마자, '잘됐다, 이제 모두 카자흐스탄으로 가자'고 말했지요.

나자르바에프 대통령과 카자크 정부는 몽골 카자크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오면 살 만한 집과 직장을 주고 노인에겐 연금도 주겠다고 홍보했지요.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벌써 몽골 카자크인이 수천 명에 달했고 그들은 묵을 짋과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를 스고 있었어요. -244쪽

카자흐스탄과 몽골 사이에는 물리적인 국경선이 없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려면 그저 러시아 일부 지역을 지나기만 하면 된다. 유목민들은 국경선에 신경 쓰지 않고 아주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 국경지대를 넘나들었으며, 게르를 세웠다. -245쪽

쳉겔 카자크는 자신들이 카자흐스탄에서 천대를 받고 심지어 쫓겨나기도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러시아 카자크들이 자신들을 이민자로 여긴다는 사실도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은 정말로 살기 좋다는 말만 되풀이했다.-249쪽

유목민은 계절의 지속성에 극단적으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겨울이 이렇게 오다가 가고, 그러다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이들에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지금은 눈과 얼음이 필요한 시기였다.
"지금은 이 스텝지대를 뒤덮을 눈이 필요해요. 가축들이 싹을 모두 갉아먹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지금 가축이 계속 싹을 갉아먹으면 내년 봄에 자라날 풀이 없어질 거예요. 지금 모조리 먹어치우면 스텝지대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거예요. 여름이 되면 다시 자라겠지만 그땐 이미 늦어요."-254쪽

"강물이 얼어붙으면 우리 모두 산으로 가서 가축을 잡아올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겨울 초입에 가축을 도살한답니다. 여름 내내 풀을 뜯어먹어 살이 통통한데다 날씨도 고기를 냉동하기에 적당하거든요. 겨울과 봄이 지나고 풀이 다시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우리 모두 고기를 충분히 저장할 수 있어요."
가축을 도살하면 부위대로 나눈 후, 마을 통나무집마다 옆이나 뒤편에 만들어 놓은 오랜 방식의 조그만 저장소에 넣고 얼린다. 이것은 냉장고 역할을 하는데, 여름에 먹고 남은 유제품 역시 이곳에 저장한다. -255쪽

가을이 지나가고 몽골 특유의 앞이 보이지 않는 강풍과 함께 겨울이 몰려왔다. 기온은 곤두박질쳤으며, 얼어붙은 호브드 강에서 물을 길어오기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얼음물은 두 손을 마비시키고, 얼음조각은 물통을 때렸다. 밖에 빨래를 널어도 곧바로 얼어버려, 하루생활이 갑자기 너무 힘들어졌다.-259쪽

아바이는 항상 지시만 내릴 뿐이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카자크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불만이었다. 이들의 언어는 산사람 특유의 굵고 그윽한 후음이 가득해 정말 듣기가 좋았으며, 구슬프고 애처로운 덤버르 가락은 아무리 가혹한 싸움꾼이라도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슬람 종교는 실용적이고 편안했으며, 사람들도 모두 관대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그래서 아바이네 집에 들어가면 매번 폭소를 터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들고 귀찮은 일은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259쪽

나는 굴짱의 따듯한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양가죽 장갑을 벗어 오른손으로 자물쇠를 잡았다. 그런데 얼어붙은 쇳덩이에 따듯하게 메마른 손이 아교풀처럼 달라붙고 말아, 나는 깜짝 놀랐다.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린 채 피부가 천천히 찢겨나가는 걸 느끼며 그냥 손을 잡아당겼다. 피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나간 가느다란 피부가 쭈그러든 실타래처럼 쇳덩이에 얼어붙었으며, 오른손은 불에 댄 것처럼 콕콕 쑤시고 간지러웠다.-273쪽

1주일이 지나자, 남자 10여 명이 식은 땀으로 뒤범벅 된 말을 탄 채 산에서 양떼와 염소 떼를 몰고 내려왔다. 짧은 낮 시간에 남자들이 가축을 몰고 얼어붙은 호브드 강 빙판을 건너오자, 쳉겔 전역이 죽을 때만 기다리는 가축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에 가축을 모두 도살하기 위해 온 가족과 이웃이 달라붙었다. 그리곤 모두 신선한 고기로 잔치를 벌였다.
...... 암소 두 마리, 양과 염소 열 마리, 낙타 한 마리와 갈기가 무성한 말 두 필을 몰고 우리 하샤로 들어왔다. 낙타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도살할 예정이었다. -275쪽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손가락을 닦았다. 크아츠가 아들에게 채찍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기름기가 잔뜩 묻어있는 손으로 채찍을 받은 후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가죽에 먹여 부드럽게 만들면서 그는 다른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 마을에서는 무엇이든 버리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유용하게 사용했다. -277쪽

이곳 몽골의 변방에서는 결코 개를 집 안에 들여놓지 않았다. 물론 번개가 칠 때는 예외였다. 몽골인은 번개에 대해 거의 종교적인 공포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실내에 들어올 때마다 발로 내차고 먹이도 찌꺼기만 주었으나, 번개가 치는 동안에는 겁에 질린 개에게 동정을 베풀기도 했다. -284쪽

강수흐-쇠도끼
산사르후우-우주의 아들
얄타-승리
어피아-약초 이름
어뜨게렐-별빛
부타커즈-낙타 눈알
아마르후우-힘이 매우 강한 소년
쇼뜨락-주먹
쪌빙-무숙자
사스트-독한 냄새
엥흐쟈르갈-커다란 행복
네르구이-이름이 없다
보그-소
제를렉-야만인
엔비쉬-이것이 아니다
바토르-영웅
후우-아들
수흐바토르-도끼 영웅
엥흐바토르-위대한 영웅
나랑체첵-해바라기
뭉흐체첵-은빛 꽃
알탕토올-황금빛 불꽃
게렐휴-빛의 아들
아메르후우-위대한 힘의 아들-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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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스페셜 에디션 1
김진 지음 / 이코믹스미디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드라마 바람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태왕사신기(아니, 태왕복사기) 덕분에 제작이 무산되었었는데, 기사회생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1편을 보았는데 설정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방 수호신을 태왕사신기에서 이미 갖다 썼으므로 자칫 오리지널이 짝퉁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이니까. 아직 드라마 초반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원작을 아끼는 사람으로서는 아쉬움이 여러모로 많다. 그래도 해신 피디분과 다모 작가님이 만났으니 뭔가 한 건 해주지 않을까 또 나름 기대 중!

'바람의 나라' 스페셜 에디션 1권은 작년 5월에 구입하고 여태 읽지 않았었다. 92년 연재 이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완결이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두 출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다 나온 후 한꺼번에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 2권이 출간되면서 이벤트가 끼어버려서 갑작스레 읽게 된 케이스랄까^^;;

읽으면서 달라진 대사와 생략된 컷 등에 자못 놀랐다. 그래서 스페셜 에디션인 것일까. 몇몇 좋아하는 장면 등은 사라진 게 몹시 아쉬웠다. 이를테면 연과의 첫날 밤에 세류 공주가 꽃비를 내려주었다가 심술 나서 애벌레 떨어뜨리는 장면은 통으로 삭제되었다. 아흑 동동다리..ㅠ.ㅠ

그래도 대체로 대사가 좀 더 쉬워지고 컷도 좀 더 친절하게 더 늘어난 편이다. 연은 '차비'로 시집 왔었는데, '차비'란 표현을 빼버렸다. 원비보다 먼저 차비를 들인다는 설정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까봐 혹 배려해주신 것일까? 잘 모르지만 내 상상^^

원체도 대사가 많고 내용이 깊어서 빨리 읽기 어려운 작품인데 2권 분량의 책이니 짬짬이 하루 온종일 읽었다.(실은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운영체제 다시 까는 중에 기다리면서 독서^^;;;) 시간이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역사적인 사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사극 취향이 아닌 사람들은 읽을 때 인내가 좀 필요할 듯하다. 게다가 김진 선생님 그림체가 좀 어둡고 과감한 컷과 연출을 구사하시기 때문에 독자에게 친절한 그림은 아니시니까.

그래도 나는 늘 바람의 나라를 접할 때마다 애틋하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유리왕을 닮아가는 차가운 임금 무휼. 그는 아버지이고 한 남자이기 이전에 늘 '왕'이어야만 했다. 선생님께서는 상처 없는 왕은 있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무휼을 떠올리면 200%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대무신왕'이라고 불린 유일한 임금인데 자료가 너무 적고 제대로 비춰지질 않았는데, 그런 그를 종이 안에서 바깥으로 끄집어내 형상화한 김진 선생님께 무한 감사와 영광을!

2006년도는 뮤지컬 바람의 나라로 오래도록 잊고 있던 바람의 나라 사랑에 다시 불을 지폈는데, 2007년도는 편집된 뮤지컬이 다소 실망스러웠고(특히 하얀거탑과의 중복된 노래 사용으로 뮤지컬에서 노래 제대로 망춰놓았었다.ㅡㅡ;;;) 2008년도는 그나마 제작도 안 되었기에 여러모로 슬펐는데, 그 부분은 드라마에서 때워야 할 듯 싶다. 만족의 강도와 종류가 많이 다르겠지만.

최근 몽골에 관한 책으로 '바람의 나라'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오늘 내게 도착했는데, 여러모로 '바람의 나라'가 나와 인연이 많은 듯하다. 다음 주에는 2권을 읽어야지. 3권은 더 빨리 나오기를!

ps. 11세에 태자가 되고 15세에 호동의 아버지가 되어 임금까지 올라가는 무휼인데, 송일국이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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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1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배우가 전편의 캐릭터로 박혀 있는 상태에서 다른 배역에 캐스팅한다는 것 자체가 시청자를 우롱하는 처사라 생각돼요. 뭐 드라마를 그닥 보지 않지만... 기사를 보면서 송일국은 아니지~ 싶었어요.ㅜㅜ
책은 못 봤으니 님의 리뷰로 감 잡아봅니다~~ ^^ 명절 잘 보내셔요!

마노아 2008-09-13 13:18   좋아요 0 | URL
전체적으로 배우진들이 너무 늙었어요ㅠ.ㅠ 원작의 나이를 그대로 살려가긴 어렵지만 주몽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송일국에게 주몽 손자 역을 맡기는 건 좀 너무 안일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맞붙은 베토벤 바이러스가 워낙 막강해서 시청률에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아 또 걱정이에요. 김진선생님을 생각할 때 드라마도 잘 됐으면 좋겠거든요.^^ 순오기님도 명절 잘 지내셔용! 전 동그랑땡 부치다가 들어왔어요^^

2008-09-15 0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5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