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의 무게 [제 838 호/2008-11-17]


학창시절 화학을 배운 사람들은 “칼카나마알아철니주납구수은백금”으로 이어지는 이온화 경향을 기억할 것이다. 이 암호 같은 글귀는 각기 칼륨(K), 칼슘(Ca), 나트륨(Na), 마그네슘(Mg), 알루미늄(Al), 아연(Zn), 철(Fe), 니켈(Ni), 주석(Sn), 납(Pb), 구리(Cu), 수은(Hg), 은(Ag), 백금(Pt), 금(Au)을 의미하는데, 앞쪽에 위치한 금속일수록 이온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쉽게 산화된다.

그런데 이 중에서 금(gold)은 이온화 경향에서 가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곧 금이 쉽게 산화되지 않고 용액에도 잘 녹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금은 예로부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대표적인 귀금속으로 인류역사에서 항상 귀한 대접을 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금의 용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결혼반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결혼반지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많이 선호하지만 서구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는 결혼이 아닌 약혼반지로 통용된다. 서구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심플한 금반지를 결혼 선물로 교환한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결혼이 아닌 약혼반지로 통용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르네상스 초기에 베네치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유럽 최고의 무역국가였던 베네치아에는 뛰어난 보석 세공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베네치아에서도 물론 다이아몬드 반지는 고가에 살 수 있는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귀족과 부자들은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혼식 때 신부에게 줌으로써 신부의 몸값을 지불한 셈으로 쳤다고 한다. 알고 보면 다이아몬드 반지에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유래가 숨어 있는 셈이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탄생한 해양도시 베네치아에서는 베네치아와 바다의 상징적인 결혼식이 매년 열리는데, 이때 베네치아 시장이 바다에 던지는 결혼반지 역시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닌 금반지라고 한다.

아무튼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의 손가락에 끼워지는 금반지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맹세를 대변한다. 이는 금이라는 금속이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사랑이 영속할 것이라는 믿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흔히 알고 있는 지식과는 달리, 금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강한 셈이다. 다이아몬드는 불 속에 넣으면 연소되어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그러나 금은 비록 불에 녹아 형태는 변하지만 그 물리적, 화학적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도 금은 다이아몬드보다 결혼에 더 어울리는 귀금속인 듯싶다. 그렇다면 금은 과연 영속적일까?

오스트리아 빈 공대의 연구원인 게오르그 슈타인하우저 박사는 결혼을 하면서 1년간 자신의 금반지가 얼마나 닳을지를 알아보겠다는 다소 엉뚱한 결심을 했다. 슈타인하우저 박사는 결혼 후 매주 목요일마다 자신의 금반지를 초음파 세척기를 사용하여 깨끗이 세척한 후에 정밀한 저울을 사용하여 질량을 측정했다. 그가 끼고 있는 5.58387 그램짜리 18캐럿 금반지는 매주 약 0.12mg씩 닳고 있었다. 결혼한 지 1년 후에 슈타인하우저 박사의 금반지는 6.15mg 줄어들었다. 대략 0.11% 정도 줄어든 셈이니, 결혼 50주년인 금혼식 무렵에는 결혼식 때 주고받은 금반지의 1/20 이상이 닳아 없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계산은 물론 결혼 후 계속 금반지를 빼지 않고 끼고 있다는 가정하에서다. 아무튼 이 비율로 계속 닳는다면 금반지도 900년 후에는 완전히 닳아 없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나 오래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부부는 지구 상에 없을 테니, 이 정도면 금이 변하지 않는 귀금속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신랑 신부가 조금 더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힘든 노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금반지의 닳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래 해변에서 놀다 온 후에 박사의 금반지는 0.23mg, 정원 일을 한 후에는 0.22mg이 닳았다. 스키를 타고 온 후에는 0.20mg, 록 콘서트장에서 열심히 박수를 친 주에는 0.17mg이 닳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독감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었던 주에는 반지가 거의 닳지 않았다고 하니, 결혼반지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주 앓아누워야 하는 것일까?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인구 170만인 빈에 약 30만 커플이 있고, 이 중 약 60%가 18캐럿 금반지를 끼고 다닌다면 1년에 2.2kg이 닳고 금액으로는 약 6만 달러가 없어지는 셈이다. 비슷한 공식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매년 61kg의 금반지가 닳아 없어지고 약 1,640,000 달러가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재미난 연구결과는 학술지인 골드 불루틴(Gold Bulletin)에 발표되었고, 미국화학회 소식지에도 요약 소개되었다. 슈타인하우저 박사는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결혼반지의 무게를 재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자신의 결혼생활 내내 지속할 생각이고,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마감하는 마지막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산화되지 않는 성질, 즉 잘 부식되지 않는 성질 때문에 고대 이후 금은 장신구 외에 화폐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유명한 투탕카멘의 데스마스크처럼 왕이 죽은 후, 부장품을 만드는데도 금이 사용되었다. 또한 CD 등의 데이터 저장 층에 금을 사용하면 저장의 신뢰도를 증진시켜 준다.

잘 부식되지 않는 성질 외에도 금은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하는 성질이 있어서 전자부품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다. 매년 수백 톤의 금이 TV, 휴대전화, 컴퓨터, 반도체 등의 제작에 쓰인다. IT 강국 코리아는 금의 희생(?)을 통해 이룩된 셈이다.

금은 얇게 실이나 막 형태로 가공하기 쉬운 특성을 가지는데, 이를 이용하여 유리창을 아주 얇은 금박으로 코팅하면 빛은 투과되지만 열은 반사하는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항공기 조종석의 창을 얇은 금으로 코팅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불투명한 금박을 우주선의 취약부분에 코팅하면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산소 라티칼이나 강렬한 방사선으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다양한 쓰임새가 있는 금이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은 반도체나 우주선, 여인의 손가락이 아니다. 전 세계의 금 중 상당량은 가공되지 않고 금괴 형태로 은행의 금고에 쌓여 있다. 또, 금 자신은 잘 부식되지 않는 ‘깨끗한’ 금속이지만 금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가 너무 커서 채금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산업’으로 손꼽힌다. 특히 아프리카의 빈곤국가들이 채금산업으로 인해 대규모의 하천 오염과 열대우림 파괴라는 피해를 입고 있으며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고단한 채굴작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은 금이라는 귀금속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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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이트 유용하다. 재밌다. 오홋!

http://www.photofunia.com/

(사진 펑!) 

그리고 완결편...

 

아쉬워서 보너스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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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from 마지막 키스 2008-11-17 17:55 
    마노아님의 페이퍼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만들어 봤으나 누군가 얼굴 알아볼것을 심히 걱정하여, 그저 대박하나 치겠습니다. 마침 눈 감은 사진도 있고 하여.   (식구들이 보면 안되는데...)               덧. 시니에님! 그동안 우리 말로만 했던 '그'신경전을 제가 사진으로 쐐기를 박아 이겼어요. 움화화핫.
 
 
비로그인 2008-11-1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근데 진짜 모델 같아요-

마노아 2008-11-16 21:07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이 한 것만 보다가 직접 해보니까 더 재밌더라구요. 마지막 강마에 사진이 정말 저렇게 걸려 있다면 완전 멋질 것 같아요^^

순오기 2008-11-1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부라보!!^^

마노아 2008-11-17 00:00   좋아요 0 | URL
우히힛, 브라바~(베바의 흔적^^ㅎㅎㅎ)

바람돌이 2008-11-1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화장품 광고는 진짜 모델 같아요. ^^
근데 마지막 사진은 누굴일까요? 진짜 몰라서 묻는 것 맞음.

마노아 2008-11-17 08:12   좋아요 0 | URL
부케 받은 날이어서 좀 화사했던 날이지요^^
마지막 사진은 포청천이 한참 인기를 끌 때 SBS칠협오의 '전조'역을 맡은 배우 초은준이에요. 대만 사람이지요. 한국에선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서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저의 오랜 로망이랍니다^^

무스탕 2008-11-1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그지 표지를 장식하다니욧-! >_<

마노아 2008-11-17 11:02   좋아요 0 | URL
가문의 영광이랍지요^^ㅎㅎㅎ

다락방 2008-11-1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이거 너무 재밌어요. 저도 좀 해봐야겠어요. ㅎㅎ 아 재밌어 >.<

마노아 2008-11-17 17:48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 완전 재밌어요^^ㅎㅎㅎ

다락방 2008-11-17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이거 먼댓글 좀 허용해 주세요. 저도 올리게요 ㅋㅋ

마노아 2008-11-17 17:48   좋아요 0 | URL
앗, 왜 먼댓글이 막혀 있을까요. 지금은 되나요?

춤추는인생. 2008-11-17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화장품모델은 정말 하셔야 할듯 해요.
표정과 각도가 너무 좋은데요^^

마노아 2008-11-17 21:41   좋아요 0 | URL
아하핫, 칭찬 감사해요^^ 저때 사진이 큰 게 있었음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작은 사진 뿐이에요.
오늘 거울 보면서 그 이후로 부피가 많이 늘었구나...하며 한탄했어요ㅠ.ㅠ

노이에자이트 2008-11-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인줄 알고 놀라다가...제목을 보고...휴...이런 기술이 좋으시네요.

마노아 2008-11-18 19:51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만들어주는 사이트도 있고, 진짜 재밌죠? ^^ㅎㅎㅎ

노이에자이트 2008-11-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그럼 저는 하지원이나 문근영 누나랑 데이트하는 장면을....

마노아 2008-11-20 14:13   좋아요 0 | URL
에... 한 사진에 얼굴이 하나여야만 될 거예요. 그나저나 그 정도의 합성이라면 이 사이트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ㅎㅎㅎ
 
아저씨 우산 비룡소의 그림동화 30
사노 요코 글.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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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의 책은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처음 만났다. 
이어서 하늘을 나는 사자를 보게 되었는데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감탄할 소재와 결말을 보여주었다.

투박한 그림체는 예쁘다는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는 표정에서 독자들은 싱긋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아저씨 우산의 주인공은 독특한 사람이다.
아주 멋진 우산을 하나 갖고 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지팡이 같다고 묘사했지만,
사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우산이다.
아저씨는 외출할 때면 늘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셨다.

그러나 정작 비가 오면 펼쳐서 쓰지 않고 비에 젖은 채 걷는다.
우산이 젖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빗발이 더 굵어지면 처마 밑에 들어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우산이 젖기 때문이다.



서둘러 가야 할 길에는 우산을 꼭 껴안고 뛰었고,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우산 속으로 쏘옥 들어가 신세를 진다.

우산이 젖기 때문이다.

도저히 우산이 젖지 않고는 걸을 수 없을 때에는 차라리 외출을 포기한다.

만약 그런 날씨에 우산이 뒤집어지기라도 한다면 아저씨는 얼마나 상심을 하실까.

그럼에도 우비를 입는다든지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는 평소 입던 그 패션에 모자를 고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이 아저씨에게 변화의 기회가 생겼다.

그날도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웬 꼬마 남자 아이가 우산을 씌워달라고 했는데 아저씨는 먼산만 바라보며 못 들은 척 하고 시침 뚝 떼고 만다.

평범한 전개라면 못된 아저씨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생각할 텐데, 귀여운 아저씨에게선 그런 반응이 나오질 않는다.



꼬마 아이는 마찬가지로 꼬마 여자 아이가 우산을 씌워주어서 무사히 돌아가는데,
두 아이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아저씨의 관심을 끌어버렸다.

"비가 내리면 또롱 또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 참방 참-방"

아, 경쾌하다. 일본판에선 의성어를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지만, 국내판 책의 의성어 선택은 참 적절했다.
또롱또롱 또로롱과 참방 참방 참-방의 조화는 대구를 이루면서 리듬감을 준다.

아저씨도 덩달아 소리내어 또롱또롱 또로롱, 참방참방 참-방을 외쳐본다.

그리고 또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일까? 정말 그런 소리가 날까?

그 어떤 거센 비도, 어떤 비바람도, 아저씨의 우산을 펼치지 못했는데,
아이들의 노래 가락이 아저씨의 우산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렇게 말이다!



뭔가 대단한 반전이라도 보여줄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우산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아저씨는 어쩌면 처음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시원하게 뻗은 우산대가 씩씩해 보이고 활짝 펼쳐진 우산의 천이 팽팽한 긴장감도 느끼게 해준다.

아저씨는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아저씨의 멋진, 사랑하는 우산에 비가 뿌려지면서 또롱 또롱 또로롱 소리가 울린다.

아저씨는 신기해졌다. 우산보다 더 멋진 빗소리를 만난 것이다.
이제 신이 난 아저씨는 우산을 빙글빙글 돌려보기도 했다.

발밑을 보니 참방 참방 참-방 소리도 울린다.
걷는 재미도 무시할 수가 없다!



무수한 우산 속에서 똑같이 우산을 받쳐든 아저씨의 모습이다.
우산을 쓰지 않던 날에는 이렇게 빗속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끼는 우산이 젖는 것을 참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제빗소리도 듣고 빗방울 튕기는 소리, 발자국 소리의 음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산의 원래 용도 그대로 사용할 때, 아저씨는 더 멋진 우산과의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산을 든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풍경도, 소리도, 그 차가운 공기의 감촉까지도.

내 안에 가둬둔 우산의 단 하나 가치 말고,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아저씨는 갖게 되었다.

비단 우산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나 혼자만 지켜보겠다고, 나 혼자만 누리겠다고 꼭꼭 숨기고 있으면 더 깊은, 더 큰, 더 넓은 기쁨을 만나지 못할 수가 있다.
그것이 '나눔'의 미학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우산' 하나에만 집중하더라도 작품은 충분히 즐겁다.
이 엉뚱하고 퉁명스런 아저씨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은가.



"비에 푹 젖은 우산도 그런대로 괜찮군. 무엇보다 우산다워서 말이야."

맞다! 우산이 아름다울 수 있을 때는 우산다울 때라는 것 말이다.
우리가 우리다울 때 더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 사노 요코의 또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그에게 있는 듯하다.(아마 여자 작가겠지?)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진 않지만 빗소리는 좋아하는 나.
그래서 실내에 있을 때 비오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도 요즘에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빗소리.
아저씨 우산이 곧잘 떠오를 것이다.
비가 올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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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08-12-10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책이 너무 많네요. 마노아님을 통해 책나라 여행을 실컷 할 수 있겠어요.

마노아 2008-12-10 09:55   좋아요 0 | URL
제가 고수님들 서재에서 마구 배우고 있지요. 희망찬샘님의 리뷰 올라오는 것 보면서 제가 얼마나 깜딱 놀라는데요^^
 
마녀 위니 비룡소의 그림동화 18
코키 폴 브릭스 그림, 밸러리 토머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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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 년 전 오프라인 서점에서 보고는 홀딱 반해서 리뷰를 썼었던 책인데 최근 중고샵에서 구매하게 되었다. 기념 삼아 포토 리뷰 한 판!
시리즈가 많은데 스토리의 차별화보다는 그림의 차별화가 더 압도적인 작품이다.
지극히 마녀스런 느낌의 위니지만, 그 마녀의 모습은 꼬장꼬장하기보다 귀여운 느낌이다.
위니의 집을 보시라. 온통 어둡고 칙칙한 색깔로 도배되어 있다. 벽도 타일도 가구도, 기둥도, 모든 게 다 블랙. 위니의 심란할 정도로 모던한 취향은 블랙으로 온통 도배를 해야 만족할 수 있었나보다.

그랬더니 문제가 생겼다. 바로 위니의 유일한 식구 고양이 윌버. 눈을 뜨고 있을 때엔 괜찮지만 윌버가 눈을 감고 있으면 온통 까만 색인 주변 색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윌버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으면 위니가 실수로 깔고 앉을 수도 있다는 것.

또 복도 한 가운데 앉아서 잠이 들어버리면 위니가 걷다가 걸려서 넘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짜증이 솟은 위니! 마술 지팡이를 휘드르기로 결심!
뭐가 문제인가 마법으로 휘리릭 바꿔버리면 되는 것을.

그래서 윌버는 연두색 고양이가 되고 말았다.
녀석도 나름 자신의 까만 털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텐데 졸지에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고 말았다.
온통 까만 집안에서는 이제 색이 확 두드러져서 위니가 밟을 일은 없지만,
윌버가 바깥에 나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풀숲 사이로 들어간 윌버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바깥에서도 위니는 윌버에게 걸려 넘어지기 일쑤!

화딱지가 나버린 위니는, 이번엔 윌버의 털을 온통 무지개색으로 물들이고 말았다.
윌버는 한층 더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고 말았다.
항의하려는 것일까.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윌버.
그 주변을 새들이 뱅뱅 돌며 깔깔 웃는다.
윌버는 슬펐다. 훌쩍훌쩍 울었다.
위니, 못된 마법사일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이 여런 친구다.
고민 끝에 윌버의 색을 되돌려 주기로 결심.
그렇다면 다시 엉덩방아 찧는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그럴 수는 없지!

위니는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요술 지팡이를 휘드른다.
마법에 뿜어져 나가는 멋진 순간!
자, 어떻게 변신하는지 지켜보자.
위니의 집이 이렇게 달라진다!

빨간 지풍을 가진 노란 집.
하얀 의자, 줄무늬 방석, 분홍색 장미 무늬가 있는 초록 깔개.
아, 아름답다.
멋지다. 근사하다.
위니의 집은 예쁘다 못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제 윌버는 검은 제 털색으로도 위니를 불편하지 않게 한다.
밝은 집에서 지내니 위니의 감수성도 한층 밝아지지 않을까?
칙칙한 패션의 마녀는 이제 한물 갔다는 것을 위니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패션의 선두주자 위니! 너의 마법만큼이나 네 집이 부럽단다.
함께 보면 좋은 책으로 '색깔을 훔치는 마녀'를 추천한다.
마찬가지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멋진 마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색의 '속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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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악기 박물관 신나는 음악 그림책 4
안드레아 호이어 글 그림, 유혜자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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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피아노 치기에 아주 열중하고 있는, 그래서 다른 악기들에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된 조카의 요청으로 언니가 산 책이다.
책이 주는 정보도 훌륭하지만 색감이 너무 좋아서 그림책으로도 빼어난 수작이다.
소풍가는 날, 슈만 선생님을 따라 아이들이 악기 박물관에 갔다.
일종의 악기 동물원 같은 그곳 악기 박물관. 세계 여러나라에서 모은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나저나 저 단풍잎 하나 주워서 책속에 끼워두고 일 년 뒤 펼쳐보고 싶구나!

원시시대 악기들이 전시된 곳이다. 아프리카 토고에서 발견된 '울림돌' 악기.
그밖에 돌이나 나무토막, 동물 뼈같이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소리를 내는 많은 악기들.
원시인들은 동물 뼈에 구멍을 내서 작은 피리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역시 음악은 시대와 공간을 모두 아우르는 만국 공용어!

구불구불 휘어진 금관 악기들.
낮은 음을 내려면 관이 길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관을 구부려서 길게 만든 것들이다.
튜바관은 무려 3미터 반이나 되는 장신을 자랑한다.
오른쪽 벽의 악기들은 마치 뱀처럼 휘어져 있다. 그래서 이름도 '세르팡'이라고.
근데 뱀이라는 뜻이 세르팡은 어느 나라 말?

바이올린, 기타 류 악기 패쓰!
요새 올인하고 있는 피아노 쪽이 더 눈에 확 들어온다.
쳄발로를 작년에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그림만큼이나 앙증맞았었다. 아래 건반이 검은색이고 윗 건반이 흰색이었던, 엄청 오래되고 고가의 악기였는데 건반 한 번 눌러보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벽에 기린과 닮은 피아노도 서 있다. 긴 현을 수직으로 세운 형상이다.

소리의 진동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한 방.
모래가 담긴 금속 탁자를 바이올린 활로 문지르자 탁자 위에 모래가 파도 모양을 그린다.
그게 바로 소리의 진동, 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히야! 이렇게 멋진 현장학습이라니!
음악 수업이 과학 수업도 되고 있지 않은가!

집에 돌아온 아이는 제 방을 악기 박물관으로 꾸몄다.
종이 건반도, 벨소리 나는 종도, 화분도, 시계도, 빈 병도, 모두모두 악기가 될 수 있다.
아이의 창의력이 마구 샘솟을 것 같은 방 분위기다.
물론, 지저분한 모습에 엄마는 경악을 할 지도!

책의 뒤쪽에는 이 책에 소개된 악기 이름과 출신 나라 이름이 써 있고, 해당 악기들은 이렇게 표지 그림에 번호 매겨서 그려져 있다.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를, 천천히 즐겨보는 것도 진기한 경험일 듯!
우리나라에도 악기 박물관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바로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세계 민속 악기 박물관이 파주 헤이리에 있다.
이 책 속만큼이나 다양한 전시물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그만큼의 공간이라도 마련하고 있는 헤이리가 고맙고 근사해 보인다.
쥬니어 책 박물관뿐 아니라 민속 악기 박물관도 꼭 가보고 싶다. 마치 피터팬의 네버랜드를 간 느낌이지 않을까?
이 책도 무척 마음에 든다. 게다가 그림도 어찌나 훌륭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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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11-16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다른 책 세 권도 가지고 있는데, 너무 좋답니다.
생각난 김에 다시 꺼내보아야겠네요. =33 =33

마노아 2008-11-16 12:03   좋아요 0 | URL
다른 책들도 음악 시리즈던데 저도 꼭 보고 싶어요. 아유, 볼 것도 많은데 좋은 책은 더 많아요^^

바람돌이 2008-11-1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치는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예린이한테 필요하나 책이네요. ^^
어째 마노아님은 엄마인 저보다도 더 어린이 책을 잘 아신대요? ^^

마노아 2008-11-17 08:13   좋아요 0 | URL
피아노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니, 장래가 기대됩니다^^
언니랑 저랑 같이 책을 사서 그런가봐요. 매달 어린이 책값이 후덜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