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티클리어와 여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87
제프리 초서 원작 | 바버러 쿠니 그림, 개작 | 박향주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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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샵에서 구했다. 제프리 초서라는 이름이 일단 눈에 띄었고, 바버러 쿠니가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오홋! 했고, 최근 무척 감명깊었던 부엉이와 보름달 책을 번역한 사람 책이라 또또 내 책이라 생각하고 일단 구입!

읽은 지 좀 되었는데 몰아서 리뷰를 쓰게 되었다. 기억이 가물가물이라는 게 문제!

몰랐는데, 바버러 쿠니는 원래 판화를 공부한 사람이다. 이 작품은 판화기법으로 그렸는데 그래서 색깔은 단조롭고 펜선은 날카롭지만, 독특한 풍미가 있다.





 

 

 

 

조그마한 계곡 아래 작은 숲 가장자리 조그만 오두막집에 사는 한 과부와 두 딸의 이야기. 그러나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다.

바로 제목에 나왔던 그 거창한 이름 챈티클리어라는 이름의 수탉이다.  이렇게 생겼다.



늠름하고 나름 섹시하게 생겼다. 자신의 볏과 부리와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까지, 온 몸에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이 수탉의 또 다른 매력은, 자신이 매력덩어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화근이었다. 이 수탉, 왕자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수탉과 암탉의 대화를 들어보면 마치 6,70년대 영화 속에 나올 법한 힘이 꽉 들어찬(최근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의 주인공들이 쓰던 말투) 목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느껴진다.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대목인데, 그게 또 이 작품 속에는 몹시 잘 어울리더란 이야기!

오두막집 옆에는 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꾀많은 여우는 챈티클리어의 오만함을 이용하여 맛난 먹이로 삼을 계획을 세운다.



자신을 향한 칭찬을 빙자한 아첨에 넘어간 수탉은 그만 일생 일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마는데....

수탉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암탉들이 고함을 지르고, 그 소리를 들은 과부와 두 딸이 열심히 달리고, 작은 계곡가에서 일대 소란이 벌어지고 만다.



나름 치열한, 긴박한 분위기가 전해지지 않는가.

대조적인 선명한 색깔들이 또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오만했던 수탉은, 그래도 지혜는 갖추고 있어서 스스로 위기를 벗어나는데...

아첨에 귀를 기울이면 어떻게 되는지, 지나친 오만이 불러오는 파국에 대한 고전적인 교훈과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글보다는 그림이 주는 기쁨이 내게는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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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바버러 쿠니가 판화를 공부했군요.^^
나도 베스 크롬스의 판화그림에 필이 꽂혀 '겨울할머니' 빌려왔어요.ㅋㅋ

마노아 2008-12-13 22:39   좋아요 0 | URL
우리 뭔가 통했군요! ^^
바버러 쿠니 말고도 판화 기법으로 그림 그리는 작가가 또 있었는데 누구였는지 지금 잘 안 떠올라요. '큰 고니의 하늘'도 판화 그림이긴 한데, 이 작가 말고 또 있었던 것 같거든요.
전 이철수씨 보내주는 나뭇잎 편지의 그림도 판화인지 아닌지도 너무 궁금해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러운데 판화일까요.
 
까마귀 소년 비룡소의 그림동화 28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 비룡소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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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분이 100년 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쓰여진 때도 꽤 오래 전 일일 것이고, 이 작품의 배경도 몇 십년은 지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 진하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학교에 간 첫날 아이 하나가 없어진다.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던 그 아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땅꼬마'로 불리었다.

이 낯선 아이는 선생님을 아주 무서워했고,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들도 무서워하는 바람에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했다.
공부할 대도, 놀 때도 따돌림 받는 아이.
아이의 어둡고 외로운 마음이 그림 속에서 절절히 묻어난다.
생략과 여백을 많이 둔 간결한 그림이고, 색도 제법 많이 사용했는데, 책 전반에 걸쳐서 소년의 외로운 마음이 자꾸 묻어난다.

혼자 사팔뜨기 흉내를 내거나 뚫어지게 천장만 쳐다보기, 책상의 나뭇결을 골똘히 살펴보기,
동무 옷의 꿰맨 곳을 살피는 것 등등이 땅꼬마로 불리는 녀석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아이는 수업을 듣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지만 무수한 관찰을 통해서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는 사람과 멀어져 있는 듯 보였지만 세상 가까이, 한 중심에 서 있었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쳤지만, 아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타박타박 걸어 학교에 왔고, 늘 그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나.
바로 6학년 졸업반이 된 아이들에게 오신 이소베 선생님.
얼굴에 늘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학교 뒷산에 올라가셨다.
자연을 제대로 보여줄 줄 아는 멋진 선생님!
그리고 이때 땅꼬마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된다.
꽃과 채소와 식물 등등 모르는 게 없었던 땅꼬마!
선생님도 녀석의 놀라운 면면에 반해 버리셨다.

땅꼬마가 그린 그림, 땅꼬마만 알아볼 수 있는 삐뚤빼둘한 붓글씨도, 모두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면, 땅꼬마랑 자주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이들하고는 아무 얘기도 않는 땅꼬마였지만, 필시 아소베 선생님과는 깊은 대화가 오고 갔을 듯하다.
아소베 선생님이 말을 하면, 적어도 고개는 끄덕이며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두 사람만의 교감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 글이 날라가서 다시 쓰고 있다. 포토리뷰라서인지 임시저장도 안 되어 있다. 달랑 네 개만 살아 있구나ㅠ.ㅠ)
6학년이기에 마지막 학예회가 되었던 그 해 무대에 땅꼬마가 올라가자 학생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녀석이 보여준 건 까마귀 울음 소리였다.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 엄마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에 우는 소리,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소리, 즐겁고 행복할 때 우는 소리 등등.

그 소리들은 청중들을 땅꼬마가 매일 학교로 걸어오는 그 머나먼 길로 인도했다.
녀석이 그 소리를 익히게 만들어준 그 길고도 외로운 길을.
지난 6년 간 녀석이 겼었을 외롭고 서러웠던 시간을.
학생들은 모두 울고 말았다.
자신들의 철없던 행동이 한 소년을 얼마나 아프게 만들었는지.
녀석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반성하면서.

졸업식 날, 개근상을 받은 것은 땅꼬마 혼자 뿐이었다.
누구도 몰랐는데,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림자 같던 그 아이는 사실 한결같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변함 없이.
이제 땅꼬마는 '까마동이'로 불린다. 녀석도 그 이름이 싫지 않은 눈치다.
별명에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 깃들어 있다. 악의 없는 이름에는 상대의 특징이 녹아 있기도 하다.

까마귀 소년에게 아소베 선생님 같은 분이 없었더라면 녀석의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은 얼마나 외로운 것 뿐이었을까. 친구들에 대한 기억도 없이 말이다.
학교라는 시공간 속에서 무수히 있을 법한 이런 따돌림 문제에 전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관심과 사랑으로 소박하게 접근하는 아소베 선생님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자신의 소신과 재량을 제대로 발휘해서 아이들을 따스하게 품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선생님을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늘 꿈꿔본다.
비록, 소신을 지키고 바른 교육을 위해 애쓴 대가가 '파면'으로 돌아오는 험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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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날리고 다시 쓸때의 심정, 잘 알지요~ ^^
그래도 좋은 책으로 인정받는 까마귀 소년이니 안 쓸 수가 없잖아요.ㅜㅜ
그림 색깔을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인쇄가 잘못 돼 번진 것 같아서 마치 옛날 해적판 그림을 보는 거 같더라고요.^^

마노아 2008-12-13 22:40   좋아요 0 | URL
그나마 일곱 개 중에서 네 개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답니다. ^^ㅎㅎㅎ
그림 상태가 좀 독특하지요? 부러 그랬다고 하기엔 좀 많이 촌스런 티가 나기도 하구요^^;;;
 
허리케인 미래그림책 33
데이비드 위스너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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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위스너의 책들은 글 없이 그림만으로도 무한대의 상상력과 감동을 주는 멋이 있었다.
이 책은 내가 본 책 중에는 드물게 글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집이 날아가고 나무가 뿌리 채 뽑힐 만큼의 돌풍이 부는 일이 거의 없지만,
미국에선 허리케인이 좀 더 귀에 익은 단어일 것이다. 우리로 치면 태풍같은 느낌일까?
하늘도 캄캄하고, 온갖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람 부는 날.
아이들 둘은 그저 신기한 게 많을 뿐이다.

정전이 되어서 초를 켜둔 상태.
아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렇지만 당장 나가볼 수는 없는 일.
내일 아침을 기대해볼 수밖에.

아니나다를까!
커다란 느릅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뿌리채 뽑혀서 마당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하마트면 옆집 윌버 아저씨네 집을 부술 뻔한 느릅나무.
정말 거대하다.
저 큰 나무를 쓰르뜨린 바람도 대단대단!
아이들은 놀라움과 걱정 대신 신나는 놀이부터 생각해 버린다.
이 우거진 나무와 뿌리를 보며 이곳을 '정글'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

두 아이는 탐험대를 이끌고 정글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용사가 되어 있다.
코끼리 부대를 보니 한니발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한니발인데, 설마 그 때문???
아이들은 무시무시한 표범을 나뭇 가지 하나만으로 물리칠 수 있는 용사 중의 용사!
저 멀리 만년설이 쌓인 곳은 설마 킬리만자로????

정글에 가 보았으니 바다를 못 가볼까!
바다 괴물이 나타나도, 해적이 출몰해도 무서울 게 없다.
아이들은 용사 중의 용사니까!
저 바다괴물은 어디서 유래한 형상일까?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15소년 표류기에 바다 괴물이 나오던가? ㅡ.ㅡ;;;;)

그래. 정글과 바다를 가보았는데, 우주를 못 갈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달나라에도 가보고 외계인과도 조우한다.
뜬금 없지만, 어저께가 달과 지구 사이가 가장 가까워져서 평소보다 30% 더 밝았다고 하던데, 정말 어제 뜬 달은 엄청 크고 밝더라! 보았으니 다행이지 못 보았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렇듯 쓰러진 큰 느릅나무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이들의 비밀스런 꿈을 펼치는데 방해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이웃집에서 쓰러진 나무를 베어서 치워버린 것.
이럴 수가! 아이들의 커다란, 너무도 근사한 놀이터가 사라져 버렸다.
크게 실망하는 아이들.
이제 아이들의 눈초리는 옆으로 옮겨간다.

그 무서운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하나 남은 느릅나무!
제발 다음 번엔 우리집 마당으로 쓰러지길 바라는 아이들의 기막힌 속내!
느릅나무도 쓰러지는 걸 원치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웃집 아저씨네보다는 이들 몽상가들에게로 넘어가는 게 더 나을 테지?
그나저나, 아이들 옆에 자리한 나무들이 원근법 탓인가. 엄청 작아보인다.
때마침 비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은 컴컴해지고 있다.
아빠는 폭풍이 오고 있다고 어여 들어오라고 소리 치신다.
아이들은 덩달아 신이 나는 순간!
다음 장에선 한니발이 창 밖 풍경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리 창 너머 놀라운 세계가 비쳐지고 있다.
아이들이 바라보고 노는 이 세상과 다른 그 무엇을 한니발은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글이 없는 그림책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해서 더 매력적이지만, 이 책에도 데이비드 위스너 특유의 상상력은 맘껏 묻어 있다. 내가 칼데콧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그리고 번역도 하시고 해설도 곁들이시는 이지유씨 책도 너무 좋다.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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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미스트'의 도입부 같군요~ 쓰러진 나무가 아이들의 놀이터로 그만이었는데~ ^^

마노아 2008-12-14 13:50   좋아요 0 | URL
미스트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군요. SF영화였던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나요.^^;;;

무스탕 2008-12-1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렇게 큰 나무가 쓰러진것도 놀랍고 그 나무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로 변해서 갖가지 놀이를 즐기는 그림도 즐겁네요.
요즘같으면 참 약올라요. 요런 마노아님이나 순오기님 페이퍼를 5년쯤 전에 만나서 정성이나 지성이에게 실컷 보여줄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ㅠ.ㅠ

마노아 2008-12-14 13:52   좋아요 0 | URL
'상상력'의 세계는 너무 놀랍고 아름다운 것 같아요. 동화를 볼 때는 그 점에서 가장 감동을 많이 받지요.
아이들이 자라버려서 아쉬운 그런 때가 있지요. 나중에 제 아이가 생기면 이미 다 본 책이라고 설마 지루해 하지는 않겠지요? 임자도 없으면서 별 걱정을 다 해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미래그림책 25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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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책을 좋아한다. 압둘 가사지의 정원도 인상 깊었고, 북극으로 가는 급행 열차도 좋았더랬다.(올 크리스마스에 '폴라 익스프레스' 재개봉 하더라.) 얼마 전에 밴의 꿈도 중고샵에거 구입했는데 언니네 집에 먼저 가 있고, 이 책도 역시 중고샵에서 건진 맘에 쏙 드는 책이다.

'무화과'란 열매는 성경책에서 자주 보던 단어인데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수년 전에 변비에 좋다고 해서 자주 먹었던 그 자주빛 열매란 걸 알고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표지에서 주인공 치과의사 비보 씨가 무화과 열매를 반으로 잘라서 맛나게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작가의 그림 특징은 꼭 세밀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혹은 점묘화 기법으로그린 듯한 느낌. 앤서니 브라운의 자세한 그림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보통의 동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비보 씨는 친절하거나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비보 씨는 기껏 치료를 해준 할머니가 돈이 없다며 치료비 대신 건넨 무화과 열매를 내던져 버리기까지 했다.

할머니께서는 이 무화과가 아주 특별하다며, 꿈을 꾼 것을 현실로 재현시키는 힘이 있다고 속삭였지만 비보 씨는 할머니를 미친 사람 취급해서 내쫓았다.

비보 씨는 자기 전에 밤참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치과 의사이니 적어도 양치질은 하고 자겠지!)

이 날, 할머니가 주고 간 무화과 두 개 중에 한 개를 먹은 비보 씨. 무화과는 아주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달고 맛있는 무화과였음에 틀림 없다.

그리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 밤 자신의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던 것.

비보 씨는 난데 없이 속옷 바람으로 산책을 하고 말았고, 파리의 에펠탑은 고무처럼 축 늘어져 모든 사람의 정신을 집중시킨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제 비보 씨는 할머니의 말이 사실임을,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무화과 열매가 엄청난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만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 비보 씨는 고민하고 또 공부하기 시작한다. 원하는 꿈을 꾸는 '연습'까지 해 가면서!





 

 

 

 

마침내, 드디어,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 비보 씨! 비보 씨가 원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

꿈 속에서 비보 씨는 멋진 보트와 자가용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중해에 있는 궁궐 같은 집에 사는 부자가 되었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이뤄질 터였다.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는가.

드디어 결정의 그 날! 멋드러진 밤참을 준비하는 비보 씨. 무화과와 함께 곁들이기 위한 치즈를 꺼내기 위해 등을 돌리는 순간, 맨날 비보 씨로부터 구박 받기 일쑤였던 개 마르셀이 그만 하나 남은 무화과를 꿀꺽 삼키고 만 것이다.

아뿔싸! 이를 어찌 하나!

기회는 한 번 뿐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구나. 그런데, 문제는 그 뿐일까? 단순히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친 것에 불과할까?

아니다. 여기엔 멋진 반전이 있을 수 있다. 무화과 열매를 누가 먹었는지 생각해 보자.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아이들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선물을 하나 가지게 될 때, 아이들이 요구하는 소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적어도 어른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처럼 멋없고 획일적이진 않을 것 같다.

그러는 나는? 글쎄. 나도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기는 한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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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수프
하야시바라 다마에 글, 미즈노 지로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월
품절


공교롭게도, '눈 오는 밤'과 비슷한 내용의 책을, 같은 날 이어서 보게 되었다.
내용으로 치면 먼저 읽은 눈 오는 밤이 더 나았고, 그림은 이 책의 색감이 더 맘에 든다.
푸른 하늘과 푸른 빛 눈.
신비로운 느낌을 주면서 추위와 따스함이 공존해 있다.
그러니까 눈의 차가운 감촉을 상상하게 만들면서 굴뚝의 연기와 할머니가 만들고 계시는 야채 수프의 온기, 그 고소한 향기까지 그림 밖으로 새어나오는 그런 느낌!

똑똑똑,
토끼 한 마리가 문을 두드린다. 야채 수프 냄새에 끌려서 할머니 집에 방문하게 된 것.
할머니는 기꺼이 식탁 한 자리를 내주고 토끼의 그릇에 야채 수프를 덜어주신다.
자, 이제 다음 장면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이 넓은 식탁에 둘 말고도 또 앉을 수 있는 다음 손님의 등장이 예상되지는 않는지?

여우 한 마리, 곰 한마리가 이어서 방문한다.
먼저 도착한 손님들은 다음 손님이 도착할 때마다 함께 먹을 양이 남아 있지 않다고 야박하게 굴지만, 할머니는 모두의 그릇에서 조금씩 수프를 덜어내어 다음 손님의 자리까지 기꺼이 만들어주신다.
그런데 곰은 겨울잠을 안 자던가???
안 자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저 곰이 저 의자에 앉으면 부서질 텐데...
아, 이런 어른의 상상력은 곤란하다!

얼마나 고소하고 따스한 냄새였길래 숲 속 친구들을 모두 불렀을까.
생쥐도, 까마귀도, 너구리도...
그밖의 다양한 친구들이 할머니의 야채 수프를 먹고자 한 자리에 모였다.
먼저 도착한 곰과 여우와 토끼가 의자를 나르고 숟가락을 자리에 놓는다.
등받이 의자가 하나뿐인 것을 보니 저건 할머니 몫인가 보다.
손님들 챙기느라 그새 수프가 식을 것 같아 걱정이다.
차갑게 식을지라도 저 자리엔 그 이상의 따뜻한 마음이 흘렀을 테니 아쉬울 필요는 없겠다.
할머니 생김새가 꼭 호호아줌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 작가의 다른 그림도 찾아보고 싶다. 색감이 아무래도 너무 마음에 든다.
(찾아보니 이 책 하나 뿐이다ㅠ.ㅠ)
그나저나, 저 야채 수프......
한 자리 끼어서 나도 한 입 먹어봤음 좋겠다. 아, 침 넘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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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림도 예쁘고 따뜻한 내용도 좋은데요~ ^^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티베트 이야기 라싸로 가는 길'도 그림이 예뻐서 반했어요.

마노아 2008-12-13 20:13   좋아요 0 | URL
아앗, 티벳이 나오면 또 우린 반하잖아요! 최근엔 도서관 이용을 거의 못 했어요.
집에도 소화 못한 책이 많은지라 불만이랄 수 없는데, 그런데도 아쉬운 거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