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음악학교 신나는 음악 그림책 3
안드레아 호이어 글 그림, 유혜자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의 대부분, 음악은 언제나 아름답다. 음악은 꼭 반드시 옳은 것만 같고 선한 것만 같은 절대적 지지를 주고 싶은 대상이다.  

음악 영화는 거의 대부분 감동적이고 명작이란 생각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음악을 소재로 한 동화도 즐겁고 재미난다.  

안드레아 호이어는 음악 시리즈를 많이 썼는데, 이 책은 신나는 음악 그림책 세번째 책이다.  

역시나 화사한 색감이 일단 눈을 사로잡는다. 이번엔 어떤 계기로 음악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파울은 여섯 번째 생일 선물로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 중 압권은 할머니의 '상품권'이다. 이 상품권은 파울이 배우고 싶은 악기를 고르면 그 악기를 배우는데 필요한 경비를 할머니가 대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빨강머리 앤에서 보면 다이애나의 할머니가 다이애나의 음악수업료를 내주려고 했다가 성질이 나버려서 취소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렇게 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쓸 수 있는 지를 아는 할머니의 존재, 너무 근사하고 멋지다.  

파울은 그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악기를 고르지 않고 음악 학교를 찾아가서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배우고 싶은 악기를 찾는 과정을 거친다. 이 탐색 과정은 무척이나 훌륭하면서 교육적이다. 이런 학교 어디 없나요? 



지하 연습실에서 드럼을 쳐본 파울. 나도 개인적으로 드럼은 참 많이 배우고 싶은 악기다. 작은 언니도 꼭 배우고 싶은 악기 0순위에 언제나 드럼을 올려놓고는 했다. 비트에 몸을 맡기고 마구 머리를 흔들어대는 상상을 해본다. 푸훗! 

오른쪽에 다섯 살 꼬마 아이가 1/16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인 바이올린의 1/16 크기는 아니겠지? 왜 저렇게 부르는지 궁금하다. 요새 조카는 피아노 학원에서 있는 겨울방학 특강에 바이올린을 배우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한 달 가리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계속 하겠다고 한다면 뒷감당이 힘들어진다는 거. 배우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바이올린은 좀 많이 부담스럽구나.ㅜ.ㅜ 



피아노 연습실, 리코더 연습실, 그리고 기타 교실 등등을 두루 살펴본 파울. 아직까지 마음에 콕 박히는 악기를 못 찾아냈다.  

리듬악기 반은 음악 유치원으로 불러도 좋을 공간. 어린 아이들이 탬버린, 심벌즈, 트라이앵글, 피리, 실로폰 등을 연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 추억의 악기들이로구나! 캐스터네츠는 안 보이나? 

그 밖에 오보에와 트럼펫 등을 살펴 보고 합창하는 형 누나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시작되는 공연을 지켜본 파울. 



무대 위의 공연은 색깔이 어둡게 나와서 그 환상적인 분위기는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마츄어 아이들의 무대인지라 화려함보다는 진지함 쪽에 더 맞춘 것은 아닐런지.  

아무튼, 이 공연을 지켜본 것이 파울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당연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이런 문화적 접촉과 충격을 받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 울 조카도 이런 무대를 구경시켜줘야 하는데... 



집에 돌아온 파울은 아름다운 색깔의 멋진 꿈을 꾼다. 많은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혁악단 한가운데서 연주하는 근사한 꿈.  

팀파니를 연주하는 파울의 모습이 수줍어 보이면서도 제법 의젓하다. 학교에서 채플을 드릴 때 음악과 학생들은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연주를 하곤 했는데, 그때 항상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팀파니였다. 북이 둥둥 울릴 땐 내 심장도 쿵쿵쿵 뛰는 것 같았다. 아,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는구나. 나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데, 이런 음악학교가 있어서 악기들도 만져보고 소리도 내보고 할 수 있다면 참말로 좋겠다. 어린이 음악 교육 활성화에 더 큰 역할도 하지 않을까?  

나도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는 꿈고 싶구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12-2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리는지 마구 존경심이 일어요~~~ ^^
이 책도 못 본 책이니 확실하게 입력하고...

마노아 2008-12-25 15:15   좋아요 0 | URL
빈틈이 없는 꽉 찬 그림이에요^^

메르헨 2008-12-2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말 너무도 다양하고 ... 돌아보면 못본게 너무 많아요.
이책도 전 첨 보내요.유후~~멋져요.

마노아 2008-12-26 22:31   좋아요 0 | URL
어린이 책의 세계에 빠진 건 마약같은 중독성이 있는데, 그래도 후회되지 않아요. 큰 즐거움을 주잖아요. ^^
 
새벽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0
유리 슐레비츠 지음, 강무환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리 슐레비츠의 비오는 날은 찬사에 비해서 감흥이 덜했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이 작가를 좋아하는지 다소 의아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나서 명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날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림으로 모든 걸 말하는 이 작품은 글자도 적고 내용도 매우 간결한 편이다.
새벽이 오고 있는 그 고요한 시각의 공기, 소리, 떨림, 호수에 비친 그림자, 그리고 그 새벽과 맞닥뜨린 할아버지와 손자가 배를 타고 나아가면서 새벽 뒤에 드러난 아침녘의 산과 호수의 조우를 정말 헉 소리 날만큼 신비로운 그림으로 담아냈다.  

원래도 글 없이 그림만 있는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글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거의 그림으로 이야기한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새벽녘의 그 고요하고 축축한 공기. 그 파랗고 신비로운, 그리고 신성한 느낌의 시간대가 주는 황홀한 떨림.  

그러나 그 경험치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네버랜드 시리즈는 작은 종이 책자가 끼어 있기 마련인데 중고샵에서 구입한 터라 그 작은 책자가 없는 게 많이 아쉽다. 이래서 시공사는 왜 책붙박이로 해설서를 안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설마 제작비를 아끼려고? (버럭!) 

말이 들어가면 사족이 될 터. 이미지들을 이어서 붙여보련다. 원래 크리스마스 선물로 조카 줄 책 목록 중 하나였는데, 그냥 내가 갖기로 했다.(이봐!) 

그리고 좀 전에 유리 슐레비츠의 다른 책이 중고샵에 있길래 얼른 주문 넣었다. (이런!) 

음, 이건 좀 내가 원하던 방향은 아닌데 말이지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okJourney 2008-12-2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정말 새벽 느낌이네요. (그림으로 그 느낌을 낼 수 있다는 데 감탄~)
저희 집에서도 '비오는 날'에 호응이 적어서 유리 슐레비츠의 다른 그림책은 찾아보지도 않았었는데 ... 이 책은 느낌이 다르네요. ^^

마노아 2008-12-25 15:15   좋아요 0 | URL
이런 물빛 새벽빛이라니, 놀랍고 신기해요. 비오는 날에 대한 반응이 저와 같았군요. 동지감을 느껴요^^

순오기 2008-12-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 책 조카선물로 주는 것보다 님이 갖는게 훨씬 제값을 할걸요.
애들한테 보여주면 그야말로 '뭥미?'한다니까요~ㅎㅎㅎ
어른들이 보고 또 보면서 감동하고 감탄하고 그러지요~~~^^

마노아 2008-12-25 15:15   좋아요 0 | URL
호호홋, 그쵸? 제가 진짜 임자였어요. 앙, 다른 책도 막 궁금해져요^^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지럽다. 혼란스럽고 메스껍기도 하다. 뭔가 대단히 쿨해 보이는 표지를 한, 뭔가 시적인 느낌을 주는 '밤은 노래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읽을 때의 내 감정이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머리는 맑아지지 않았다. 동요하던 마음도 충분히 가라앉질 못했다. 이 책,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김연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첫 만남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이 책, 독하다.  

1930년대 동만주를 배경으로 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았어도 좋았을 법한 한 사내가 겪은 지극히 특별하고 끔찍한 이야기. 우리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했던 비극적인 일임에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 '민생단'을 소재로 했다.  

주인공 김해연은 나라가 일제에 넘어가던 경술년에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경성에서 측량 기술을 배웠다. 만철 용정 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신여성 이정희를 만났고, 어느 날 그녀에게로부터 편지를 받은 직후 경찰에 체포된다. 자신에게 떨어진 운명이 뭔지도 모르고 헤매던 이 청년은, 사랑하던 그녀가 이미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녀가 공산주의자였으며 자신의 친구와 깊은 사이였던, 온통 인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폭포수처럼 맞게 된다. 자신이 알던 이정희는 누구였을까. 내가 알던 나는, 또 누구인가.  

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나라가 넘어간 뒤였고, 아마도 그는 별다른 공포나 증오 없이 성장한 듯 보인다. 나름의 엘리트 코스로 편한 인생 대로를 걷던 그는, 그랬기에 사랑에 모든 걸 내던질 수 있었고, 그 사랑에 아파하며 제 목숨을 버릴 각오도 하였다. 비록, 그 자신 아직 죽을 팔자가 못 되었지만.  

사랑을 잃고, 영혼을 잃고, 그리하여 말을 잃고 살아가던 용정에서 만난 여옥이. 은사로부터의 초청으로 경성에서의 새 삶을 꿈꾸며 기대하던 중 맞닥뜨린 토벌대의 기습. 그 총격전에서 함께 하던 모든 사람이 죽었고, 여옥이는 한쪽 다리를 잃었고, 그만이 살아남았다. 복수와 분노의 마음으로 공산주의자로 거듭나려던 김해연. 그리고 거기서 민생단 사건과 맞닥뜨린다.  

민생단 사건은 떠올리자니 침이 마르고 혀끝이 쓰디 써진다. 적과 싸우다가도 아니고, 아군 손에 의해, 동지 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독립 용사들. 당의 무오류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중국인 공산주의자들의 위기의식에 의해서, 혹은 우리 내부의 파벌 싸움에 의해서, 그리고 일본이 획책한 분열 의도가 그대로 적중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말았다. 누군가는 밥풀을 흘려서, 누군가는 밥을 물에 말아 먹다가, 또 누군가는 너무 열심히 일을 했다는 이유로 허무하게 죽게 된 그들은 누구보다도 항일에, 반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었다. 그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해연은 누가 적인지 동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왜 그들이 싸워야 하는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 역시도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당할 뻔하였고, 그때 눈을 가렸던 검은 천 때문에 온통 암흑만인 세계에 갇혀야 했었다. 물리적인 눈뿐 아니라, 그의 마음이, 정신이,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처지가 그렇게 암흑이었을 것이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  

작품은 친절하지 않다. 민생단 사건을 알지 못하고서 작품에 뛰어든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혼란을 겪는 주인공처럼 어지럽게 왔다갔다 하는 시점과 사건과 인과관계가 독서의 흐름을 많이 끊어 놓았다. 이정희는 정말 자살했을까. 그녀를 죽게 한 건 결국 누구였을까. 그녀가 정말 사랑한 것은 누구였을까. 등등의 의문들이 꼬리를 잇는다. 어쩌면, 독자의 그같은 궁금증과 의문 역시 작가가 안배해 놓은 장치들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 김해연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었다. 그 시절에 온 몸과 마음을 바쳐 항일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 반대로 민족의 적이 된 것도 아니고, 사랑도 일도, 그 자신의 정체성 찾기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다. 그리고 그건, 이 책을 읽는 무수한 독자들인 우리네의 모습이기도 하다. 혼란을 겪고 상처를 받고, 해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들인 우리들의 모습.  

문득, 영화 '색 계'가 떠오른다. 독립의지를 불태운 청년들이 민족의 반역자를 척살하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으로 무장하여 제 몸들을 던져 도전했지만, 그들의 뜨거운 피와 용기가 허무해질 만큼 미약한 존재였다는 것, 그들의 계획이란 치기 어린 어린애 장난 같은 소소한 일 뿐이었다는 사실들, 그 끝에 무엇도 해내지 못하고 무엇도 가지지 못했던 쓰라린 결과들이 떠오른다.  

멋모르고 김해연이 달려간, 자의던 타의던 걸어간 그 길들은 다른 청춘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다른 형태로 다가올 것이다. 밤은 깊었고 새벽은 한참이나 남은 듯 보이지만, 그 길의 저 끝에서 희망이란 이름의 태양이 떠오를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 희망이 주는 폭력성은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순진한 얼굴로 노래를 할 터이지. 혁명을 의심치 않으면서.  

세상의 날짜는 크리스마스 2부로 축복이 가득해야 마땅할 듯한데, 어쩐지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 한자락을 느낀다. 그리고 떠오른 노래는 존 레논의 imagine. 

무거운 소설 한 편을, 이제 마음에서 밀어내버린다. 감당하지 못할 무거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핑계를 대본다.  

덧글) 103쪽 밑에서 8줄 '겨울은 내 모습만을 보여줄 뿐'>>>'거울' 

        201쪽 첫번째 줄. '일본군와' >>>>'일본군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12-2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책 하나도 안 읽어서 잘 모르는데~~ 이상하게 별로 댕기지도 않아요.
아마도 젊은 작가는 내가 기피하는 듯...
그냥 내 또래의 작가들이 나와 같은 세대를 사니까 좋아요.ㅋㅋ

마노아 2008-12-25 15:14   좋아요 0 | URL
저도 첫 만남은 그저 그랬어요. 소재나 배경이, 좀 더 나이들고서 도전했어야 할 영역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알라딘에선 굉장히 뜨거운 반응이더라구요. 아직 저는 공감이 안 되고 있어요^^;;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구판절판


"하지만 용정으로 나가 살아가면서 차츰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됐소. 태어난 나라가 없으니 우리에게는 당도 없소. 나라도 없고 당도 없는 자에게는 민족도 없는 것이오. 중공당에 가입한 뒤부터 나는 내 혈관에는 국제주의의 피만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국제당만이 우리의 당이고 나라고 정부요. 내가 알기로 지금 간도 땅에서 진정으로 항일하는 조선인 공산주의자 중에 국제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나는 일본놈들만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증오하오. 지난 시기, 그들은 가짜 정부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참된 애국자들을 학살했소. 그런 내가 민생간 감투를 쓰게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소."-231쪽

"사람을 죽이고 나면 얼마간은 미쳐 있게 마련이오. 다시는 누군가를 죽이기 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오. 물론 그것도 진실이오. 하지만 나는 톨스토이를 버렸소. 설득과 타협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상 세계를 만들겠다는 중학 시절의 드높았던 포부를 버렸소. 가족과 애인과 개인적 미래를 다 버렸소. 그 대가로 나는 진실에 눈뜨게 됐소. 진실이란 전혀 아름답지 않지. 그런 추한 것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진실을 보게 된다오. 그리하여 이 세계가 너무나 잔혹한 곳이라는 것을, 그 잔혹함마저도 기실은 진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잔혹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받아들이게 됐소. 그러고 나면 두 눈으로는 한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가 보이게 된다오. 물론 그런 것 따위는 몰라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소. -235쪽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죽음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듯. 죽음이 지척에 있는 곳에서 청춘은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죽음이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인 곳에서는 누구나 임종을 앞둔 노인일 뿐이다. 총성이 그치지 않는 만주에서 우리는 누구나 노인일 뿐이다. -29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는 방법 [제 854 호/2008-12-24]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더 나은 새해를 맞이하고픈 연말연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크리스마스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경제 한파로 인해 조금 주춤한 듯하지만 어려울수록 함께 나누는 분위기는 이웃의 소중함을 새삼 깨우쳐 준다. 어떻게 보면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선물로 주는 것이다.

또한 크리스마스는 과학의 각 분야에 연구할만한 거리를 제공한다. 그중에는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루돌프는 수사슴으로 대부분 알고 있으나 수사슴은 크리스마스 무렵에 뿔이 떨어지기 때문에 루돌프가 암사슴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 사이에 크리스마스만 되면 우울해지는 크리스마스 우울증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점 또한 낭설이다.

심리학자 브라이스 보이어는 1955년 <미국 심리 분석협회 저널>에 크리스마스 우울증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온 세상이 축복하는 날인데, 자신은 아기 예수에 비해 온 세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설일 뿐이고, 실제로는 ‘계절 영향 장애(SAD)’에 의해 우울증이 생긴다는 학설이 조금 더 설득적이다. SAD란 1984년 정신과 의사 로먼 로젠탈이 정의한 증후군으로, 겨울에 일광 시간이 감소하면 뇌의 화학 작용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이다. 빛이 부족하게 되면 뇌 속 신호 전달 화학 물질인 세로토닌의 대사가 영향을 받아서 우울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지루하게 보낸 사람들과 달리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낸 사람들의 경우 그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 상태가 심장 마비와 고혈압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사과나 팝콘 등의 특별한 음식으로 꾸민 풍요로운 우리에서 지낸 쥐들이 표준 우리에서 지낸 쥐들보다 수행 능력이 뛰어났다고 하니 여러모로 크리스마스를 즐겁고 풍요롭게 보내는 편이 좋겠다.

풍요로운 크리스마스에도 과학은 숨어 있다. 크리스마스 때 세일을 함으로써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을 10퍼센트 낮추면 판매량이 20~30퍼센트 올라가고, 디스플레이를 잘해 놓으면 판매량이 80퍼센트나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상품에 대한 소비자 심리를 철저히 분석한 결과에 따른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선물 고르기에 노력을 더 많이 쏟고 포장이나 진열에 신경을 쓰는 반면 남성은 점원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하여 남성 고객을 끌어들이고 싶은 상점은 포장이나 진열에 신경 쓰기보다 점원을 많이 배치해서 남성 고객들이 구매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면 된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은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크리스마스의 마스코트 산타를 떠올려보면 웃음 짓고 있는 얼굴과 입을 덮는 덥수룩한 휜 수염, 그리고 산타의 트레이드 마크인 불룩한 배가 생각난다. 산타의 배가 언제나 뚱뚱한 이유는 무엇일까?

산타는 아마도 결함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만 유전자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몸이 지방을 태울 수 있는 능력이 한계를 넘어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방을 갈구한다. 단백질 생성을 관장하는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체내에 얼마 만큼의 지방이 축적되어 있는지를 뇌에 알려주고 그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뚱뚱한 사람의 결함을 가진 비만 유전자는 이 호르몬이 부족한 것이다. 심각한 비만이 아니더라도 조금 뚱뚱한 사람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유전자 결함이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뚱보 문제의 핵심은 유전자에 있다. 지방이 너무 많으면 당의 대사가 무질서해지는 당뇨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산타는 세계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음식물섭취를 관리할 것을 권유한다. 더불어 산타는 몸을 항상 따뜻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체온 유지를 위한 에너지 발생이 1퍼센트가 줄어들 경우 1년 동안 체중이 2.3kg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의 성인이 기준이다.

산타가 크리스마스의 마스코트라면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도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 예수가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은 금, 유향, 몰약 등을 바쳤다고 한다. 고귀한 금은 축하 선물로 이해가 되지만 유향과 몰약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향과 몰약은 모두 나무에서 나오는 진을 채집한 것으로 향기가 나는 원료이면서 악을 물리쳐 준다고 전해져 왔다. 나무는 흰개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나 나무껍질의 손상 부분을 덮기 위해 진을 생산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상처 치료에 쓰여 왔던 유향과 몰약은 최근에도 항균, 항염증 효과가 입증되었다.

요컨대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가 희망과 자선을 노래하는 날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처럼 우울한 마음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저절로 풍요로운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하늘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글 : 이상화 과학칼럼니스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꿈꾸는섬 2008-12-25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겠죠? ㅎㅎ

마노아 2008-12-25 23:45   좋아요 0 | URL
아, 오늘 참 즐겁게 보냈어요. 꿈꾸는섬님도 꿈같은 시간 보내셨나요? ^^